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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최근 글</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link>
<description>A Korean Anglican Theology & Liturgy Forum</description>
<language>en</language>
<pubDate>Wed, 10 Mar 2010 00:43:34 +0000</pubDate>

<item>
<title>spiritus on "(한국에 번역된) 성공회 저자 서지 목록 02: 마커스 보그"</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567#post-1017</link>
<pubDate>토, 06 3월 2010 20:15:28 +0000</pubDate>
<dc:creator>spiritus</dc:creator>
<guid isPermaLink="false">1017@http://liturgy.skhcafe.org/</guid>
<description>&#60;p&#62;서지 추가 : 김기석 옮김, 『예수 새로 보기』 한국신학연구소, 1997년 9월.&#60;br /&#62;
Jesus: A New Vision - Spirit, Culture and the Life of Discipleship. SPCK Publishing; 2nd edition, 1994.
&#60;/p&#62;</description>
</item>
<item>
<title>viamedia on "(한국에 번역된) 성공회 저자 04 : 데니스 베넷 신부"</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569#post-1012</link>
<pubDate>목, 04 3월 2010 17:34:25 +0000</pubDate>
<dc:creator>viamedia</dc:creator>
<guid isPermaLink="false">1012@http://liturgy.skhcafe.org/</guid>
<description>&#60;p&#62;spiritus / 이 포럼 게시판에서는 BBcode 를 사용합니다. 이를 이용하여 게시물을 모양을 편집할 수 있습니다. &#60;/p&#62;
&#60;p&#62;BBCode 안내서 &#60;a href=&#34;http://bit.ly/d5Pw6g&#34; rel=&#34;nofollow&#34;&#62;http://bit.ly/d5Pw6g&#60;/a&#62; 참조하세요.
&#60;/p&#62;</description>
</item>
<item>
<title>viamedia on "안녕하세요 ^^"</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570#post-1011</link>
<pubDate>일, 28 2월 2010 18:21:45 +0000</pubDate>
<dc:creator>viamedia</dc:creator>
<guid isPermaLink="false">1011@http://liturgy.skhcafe.org/</guid>
<description>&#60;p&#62;Elyot 님, 반갑습니다. 함께 나누며 함께 배워 갑시다.
&#60;/p&#62;</description>
</item>
<item>
<title>Elyot on "안녕하세요 ^^"</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570#post-1010</link>
<pubDate>토, 27 2월 2010 23:21:40 +0000</pubDate>
<dc:creator>Elyot</dc:creator>
<guid isPermaLink="false">1010@http://liturgy.skhcafe.org/</guid>
<description>&#60;p&#62;안녕하세요 ^^. 서울대성당에 나가고 있는 신자입니다. 성공회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 가입했습니다. 많이 배우고 가겠습니다 ^^.
&#60;/p&#62;</description>
</item>
<item>
<title>spiritus on "(한국에 번역된) 성공회 저자 04 : 데니스 베넷 신부"</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569#post-1007</link>
<pubDate>토, 27 2월 2010 18:04:33 +0000</pubDate>
<dc:creator>spiritus</dc:creator>
<guid isPermaLink="false">1007@http://liturgy.skhcafe.org/</guid>
<description>&#60;p&#62;&#60;center&#62;데니스 J. 베넷 사제&#60;br /&#62;
(Rev. Dennis J. Bennett, 1917.10.28. ~ 1991.11.1.)&#60;/center&#62;&#60;/p&#62;
&#60;p&#62;▶ 저자 소개 :&#60;br /&#62;
그는 미국 성공회 사제로, 1900년대 초부터 시작된 오순절(성령)운동(Pentecostal Movement)의 연속선상에서 일어난, 1960년대 미국의 주류교회(Mainline Church) 내부의 은사주의 운동(Charismatic Movement)을 이끌었던 인물 가운데 한 명이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1973년 연감에 “1960년대, 데니스 베넷 신부는 자신의 회중에서 자신이 성령의 새로운 임재를 경험했다고 선포함으로써 갱신운동이 시작될 수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라고 기록되어 있을 만큼 은사주의 운동에서 그의 공헌은 매우 컸다.&#60;br /&#62;
또한 그의 아내인 리타 베넷과 ‘기독교갱신협회’(The Christian Renewal Association)를 설립했으며,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해, 그리고 교회와 캠퍼스에서 그들은 열정적으로 사역하였다. 그들은 특히 정서적, 영적 치유사역으로 유명했다.&#60;/p&#62;
&#60;p&#62;▶ 번역서 목록 :&#60;br /&#62;
천슬기 옮김, 『오전 9시, 성령이 임하는 시간』 서로사랑, 2009&#60;br /&#62;
Nine O' Clock in the Morning, Bridge-Logos Publishing, 1970&#60;/p&#62;
&#60;p&#62;한대훈 옮김, 『성령님과 당신』 서로사랑, 2005&#60;br /&#62;
The Holy Spirit and You, Bridge-logos Publishing, 1971, 1998&#60;/p&#62;
&#60;p&#62;박홍래 옮김, 『성령의 임재를 구하는 기도』 서로사랑, 2004&#60;br /&#62;
How To Pray For The Release Of The Holy Spirit, Bridge-logos Publishing, 1987 &#60;/p&#62;
&#60;p&#62;# 그에 대한 위키피디아 소개: &#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Dennis_Bennett&#34; rel=&#34;nofollow&#34;&#62;http://en.wikipedia.org/wiki/Dennis_Bennett&#60;/a&#62;&#60;/p&#62;
&#60;p&#62;## 저자 소개 중, 일반적으로‘성령운동’ 또는 ‘오순절 운동’으로 표기하는 부분을 ‘오순절(성령)운동’으로 표기했다. 근대 이후의 성령운동 중, ‘고전적 오순절운동’(Classical Pentecostal Movement)으로 분류하는 기존 교단으로부터 축출되거나 분립된 1세대 오순절운동, 이후 기존 교단 내에서 교단의 울타리를 떠나지 않은 상태에서 일어난 2세대 운동인 ‘은사주의 운동’(Charismatic Movement), 그리고 앞의 흐름들과 연속/비(非)연속성의 선상에서 진행되고 있는 ‘제3의 물결’(Third Wavers) 모두, ‘오순절’(Pentecostal) 사건과 ‘성령’(Holy Spirit)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이에 여기서는, 이 모든 흐름을 하나의 카테고리(category)에 담을 수 있는 ‘오순절(성령)운동’이라는 표기를 사용한 것이다.&#60;/p&#62;
&#60;p&#62;이에 대한 좀 더 자세한 내용은 빈슨 사이난(Vinson Synan)이 지은 『세계 오순절 성결 운동의 역사 The Holiness Pentecostal Tradition』의 ‘머리말’ 부분이나 피터 와그너(Peter Wagner)의 『피터 와그너의 제 3의 바람 How To Have a Healing Ministry Without Making Your Church Sick』의 ‘저자의 글’과 ‘제 1장: 제3의 물결’, 『21세기 교회성장의 지각변동 Church quake』 의 ‘제1장: 새 가죽부대는 왜?’와 ‘제2장: 개신교의 새로운 전망’부분을 참고하라.
&#60;/p&#62;</description>
</item>
<item>
<title>spiritus on "(한국에 번역된) 성공회 저자 03 : 케네스 리치 신부"</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568#post-1006</link>
<pubDate>토, 27 2월 2010 16:58:20 +0000</pubDate>
<dc:creator>spiritus</dc:creator>
<guid isPermaLink="false">1006@http://liturgy.skhcafe.org/</guid>
<description>&#60;p&#62;&#60;center&#62;케네스 리치 신부&#60;br /&#62;
(Rev. Kenneth Leech, 1939~ )&#60;/center&#62;&#60;/p&#62;
&#60;p&#62;▶ 저자 소개 :&#60;br /&#62;
케네스 리치는 성공회 사제로서, 기도와 영성 강의로 유명하다. 또한 그는 영국 성공회 안에서 가톨릭 전통이 강한 앵글로 가톨릭(Anglo Catholic)의 영향을 많이 받은 사회 신학자이기도 하다.&#60;br /&#62;
1961년 런던 대학(University of London)을 졸업하고, 옥스퍼드 트리니티 칼리지(Trinity College, Oxford)와 성 스티븐 하우스(St. Stephen's House, Oxford)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1965년 사제 서품을 받고 런던 빈민 지역인 이스트엔드(East End)와 소호(Soho)에 위치한 교회에서 목회활동을 했으며, 1974년 상황신학을 옹호하는 ‘주빌리 그룹(Jubilee Group)’을 공동 설립하고, 이후 영국의 청년 노숙인을 돕는 자선단체인 센터 포인트(Centre Point) 재단도 설립했다. 1987-1990년에는 인종문제와 문화적 다양성을 연구하는 러니메드 트러스트(Runnymede Trust)의 책임을 맡기도 했다. (저자 소개는 위키피디아와 책에 있는 저자 소개를 옮겼다.)&#60;/p&#62;
&#60;p&#62;▶ 번역서 목록 :&#60;br /&#62;
노진준 옮김,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 은성, 1992&#60;br /&#62;
True Prayer : An Invitation to Christian Spirituality. London, Sheldon Press, 1980.&#60;/p&#62;
&#60;p&#62;신현기 옮김, 『사회적 하나님 - 교회는 왜 사회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는가』 청림출판, 2009.&#60;br /&#62;
The Social God. London, Sheldon Press, 1981.&#60;/p&#62;
&#60;p&#62;최승기 옮김, 『영성과 목회』 한국장로교출판사, 2000.&#60;br /&#62;
Spirituality and Pastoral Care. Cowley Publications in Cambridge, MA, 1989.&#60;/p&#62;
&#60;p&#62;신선명 · 신현복 옮김, 『영혼의 친구』 아침영성지도연구원, 2006.&#60;br /&#62;
Soul Friend : Spiritual Direction in the Modern World. Morehouse Publishing, New Revised Edition, 2000.&#60;/p&#62;
&#60;p&#62;# 그에 대한 위키피디아 소개: &#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Kenneth_Leech&#34; rel=&#34;nofollow&#34;&#62;http://en.wikipedia.org/wiki/Kenneth_Leech&#60;/a&#62;
&#60;/p&#62;</description>
</item>
<item>
<title>spiritus on "(한국에 번역된) 성공회 저자 서지 목록 02: 마커스 보그"</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567#post-1005</link>
<pubDate>토, 27 2월 2010 01:29:09 +0000</pubDate>
<dc:creator>spiritus</dc:creator>
<guid isPermaLink="false">1005@http://liturgy.skhcafe.org/</guid>
<description>&#60;p&#62;&#60;center&#62;마커스 보그&#60;br /&#62;
( Prof. Marcus J. Borg, 1941~ )&#60;/center&#62;&#60;/p&#62;
&#60;p&#62;▶ 저자 소개 : &#60;/p&#62;
&#60;p&#62;그는 성공회(Episcopal Church) 평신도 신학자이다. 성공회 성서학자 협의회(Anglican Association of Biblical Scholars)의 회장을 역임했으며, 오리건 주립대학교(Oregon State University, OSU)의 종교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교로부터 종교와 문화 분야의 세계 100대 저명한 교수로 인정받았다.&#60;/p&#62;
&#60;p&#62;그는 대표적인 역사적 예수 연구가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미국 성사학회의 역사적 예수 분과 책임자이며, 〈예수 세미나〉의 정회원이다. &#60;/p&#62;
&#60;p&#62;그는 스웨덴과 노르웨이계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집안은 루터교회(Lutheran)를 믿어왔다. 1940년대 노스다코다에서 자랐으며, 콘코디아 칼리지에 진학하였다. 유니언 신학교를 졸업했다. 마커스 보그는 부인이자 성공회 사제인 캐논 마리안네 웰스 보그 사제(Reverend Canon Marianne Wells-Borg)가 목회하고 있는 성공회 교회(Episcopal Church)에서 활동을 시작하여, 현재 포틀랜드 주 오레곤의 트리니티 성공회 주교좌 대성당(Trinity Episcopal Cathedral)에서 사제를 돕는 복사와 영성 프로그램 기획자(directs)로 일하고 있다. &#60;/p&#62;
&#60;p&#62;▶ 번역서 목록 : &#60;/p&#62;
&#60;p&#62;구자명 옮김, 『미팅 지저스』 홍성사, 1995년 12월.&#60;br /&#62;
Meeting Jesus Again for the First Time: The Historical Jesus and the Heart of Contemporary Faith. HarperOne, 1995.&#60;/p&#62;
&#60;p&#62;한인철 옮김, 『새로 만난 하느님』 한국기독교연구소, 2001년 08월.&#60;br /&#62;
(The) God we never knew : beyond dogmatic religion to a more authentic. HarperOne, 1998.&#60;/p&#62;
&#60;p&#62;남정우 옮김, 『예수 · 2000년』 대한기독교서회, 2003년 6월.&#60;br /&#62;
Jesus at 2000. Basic Books, 1998.&#60;/p&#62;
&#60;p&#62;김준우 옮김, 『예수의 의미』, 톰 라이트 공저, 한국기독교연구소 2001년 04월.&#60;br /&#62;
The Meaning of Jesus: Two Visions. Co-authored with N. Thomas Wright, HarperOne, 1999.&#60;/p&#62;
&#60;p&#62;김중기· 이지교 옮김, 『성경 새롭게 읽기』 연세대학교 출판부, 2쇄, 2006년 6월.&#60;br /&#62;
Reading the Bible Again for the First Time. HarperCollins, 2001.&#60;/p&#62;
&#60;p&#62;김준우 옮김, 『기독교의 심장』, 한국기독교연구소 2009년 11월.&#60;br /&#62;
The Heart of Christianity: Rediscovering a Life of Faith. HarperOne, 2004.&#60;/p&#62;
&#60;p&#62;오희천 옮김, 『예수의 마지막 일주일: 예루살렘 입성 이후 십자가처형 부활까지의 요일별 기록』 존 도미닉 크로산 공저, 중심, 2007년 03월.&#60;br /&#62;
The last week: What the Gospels Really Teach About Jesus's Final Days in Jerusalem. co-authored with John Dominic Crossan, HarperOne, 2007.&#60;/p&#62;
&#60;p&#62;김준우 옮김, 『첫 번째 바울의 복음』 존 도미닉 크로산 공저, 한국기독교연구소, 2010년 2월.&#60;br /&#62;
The First Paul: Reclaiming the Radical Visionary Behind the Church's Conservative Icon. co-authored with John Dominic Crossan, HarperOne, 2010.&#60;/p&#62;
&#60;p&#62;# 그에 대한 위키피디아 소개: &#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Marcus_Borg&#34; rel=&#34;nofollow&#34;&#62;http://en.wikipedia.org/wiki/Marcus_Borg&#60;/a&#62;&#60;br /&#62;
# 그에 대한 위키피디아 소개(Kor): &#60;a href=&#34;http://ko.wikipedia.org/wiki/&#34; rel=&#34;nofollow&#34;&#62;http://ko.wikipedia.org/wiki/&#60;/a&#62;마커스_보그
&#60;/p&#62;</description>
</item>
<item>
<title>spiritus on "(한국에 번역된) 성공회 저자 서지 목록 01: N.T.라이트 주교"</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566#post-1003</link>
<pubDate>금, 26 2월 2010 18:16:15 +0000</pubDate>
<dc:creator>spiritus</dc:creator>
<guid isPermaLink="false">1003@http://liturgy.skhcafe.org/</guid>
<description>&#60;p&#62;평소에 자주 ‘정직한 설전(?)을 나누곤 하는,&#60;br /&#62;
선배 신부님과 나눈 이야기들은 내게 많은 도전을 줬습니다. &#60;/p&#62;
&#60;p&#62;그리고 그 도전 가운데&#60;br /&#62;
길벗(道伴)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기 시작했죠. &#60;/p&#62;
&#60;p&#62;그렇게 해서 정리된 일 하나. &#60;/p&#62;
&#60;p&#62;한국에 번역되어 있는 성공회 사목자나&#60;br /&#62;
성공회 소속 신앙인들의 글이나 책을 정리하는 것이었습니다. &#60;/p&#62;
&#60;p&#62;그래서 먼저, 각자가 읽었거나 읽기 위해 갖고 있는 서지 목록을 정리해 보기로 했죠.&#60;br /&#62;
허나 다들 이러저러한 이유로 시작도 못하고 있다는.. =.,=;;&#60;/p&#62;
&#60;p&#62;그런 이유로 제가 먼저 정리를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60;/p&#62;
&#60;p&#62;기준이라면 첫째, 한국에 번역되어 있는,&#60;br /&#62;
둘째, 성공회 사목자나 성공회 소속 신앙인들의 책. &#60;/p&#62;
&#60;p&#62;이후 분과별이나 시대별, 또는 특징별 분류를 해 볼 생각이 있지만,&#60;br /&#62;
일단 정리해 두는 것으로 만족하려 합니다. &#60;/p&#62;
&#60;p&#62;그 첫 번째 인물로는 한국 개신교파에 많이 소개되었고,&#60;br /&#62;
근래 그가 복음주의냐 아니냐를 가지고 논란 중인 톰 라이트 주교.&#60;/p&#62;
&#60;p&#62;(저자 소개는 책 표지에 나와 있는 것이나 온라인 서점에 나와 있는 걸 옮겼다.)&#60;/p&#62;
&#60;p&#62;&#60;center&#62;◎ N. T. 라이트 주교&#60;br /&#62;
(Rt. Rev. Nicolas Thomas Wright, 1948.12.1~ )&#60;/center&#62;&#60;/p&#62;
&#60;p&#62;▶ 저자 소개 :&#60;br /&#62;
저명한 역사가이자 신약학자로 활동하는 영국 성공회 더럼(Durham)의 주교(Bishop)로,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맥길 대학교에서 신약학을 가르쳤다. 리치필드(Lichfield)의 주임 사제이자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참사회원 신학자(Canon Theologian)로도 활동했던 그는, 영국의 기독교 서점에 톰 라이트 코너가 따로 있을 정도로 인기 있는 다작의 저술가이자 방대한 학술 서적과 대중적 저술 모두에서 호평을 받는 흔치 않은 인물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기독교의 기원과 하나님에 관한 물음’이라는 방대한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학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바 있으며, 현재는 제3의 역사적 예수 탐구와 바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선두 주자로 인정받는 학자다. 아울러 ‘21세기의 C. S. 루이스’라는 별명까지 얻은 그는, 이미 21세기에 가장 주목받는 변증가로 자리잡았다. &#60;/p&#62;
&#60;p&#62;▶ 번역서 목록 :&#60;br /&#62;
박문재 옮김, 『신약성서와 하나님의 백성』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3년 05월.&#60;br /&#62;
The New Testament and the People of God: Christian Origins and the Question of God. Augsburg Fortress, 1992.&#60;/p&#62;
&#60;p&#62;박문재 옮김,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4년 03월.&#60;br /&#62;
Jesus and the Victory of God: Christian Origins and the Question of God, Volume 2. Augsburg Fortress, 1996.&#60;/p&#62;
&#60;p&#62;이혜진 옮김, 『나를 따르라 : 톰 라이트의 기독교 제자도』 살림, 2008년 02월.&#60;br /&#62;
Following Jesus: Biblical Reflections on Discipleship. Wm. B. Eerdmans, 1997 / SPCK, 1994&#60;/p&#62;
&#60;p&#62;이혜진 옮김, 『예수』 살림, 2007.&#60;br /&#62;
The Original Jesus: The Life and Vision of a Revolutionary. W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97.&#60;/p&#62;
&#60;p&#62;강선규 옮김, 『내 주님 걸으신 그 길: 톰 라이트와 떠나는 성지순례』 살림출판사, 2008.&#60;br /&#62;
The Way of the Lord: Christian Pilgrimage Today. W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99.&#60;/p&#62;
&#60;p&#62;이진섭 옮김, 『Jesus 코드 - 역사적 예수의 도전』 한국성서유니온, 2006년 6월.&#60;br /&#62;
The Challenge of Jesus: Rediscovering Who Jesus Was and Is. Hardcover ed. InterVarsity Pr., 1999 / SPCK, 2000.&#60;/p&#62;
&#60;p&#62;박문재 옮김, 『하나님의 아들의 부활』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5년 07월.&#60;br /&#62;
The Resurrection of the Son of God. Augsburg Fortress, 2003.&#60;/p&#62;
&#60;p&#62;김재영 옮김, 『톰 라이트와 함께하는 기독교 여행』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2007년 10월.&#60;br /&#62;
Simply Christian: Why Christianity Makes Sense. Hardcover ed. SPCK, 2006.&#60;/p&#62;
&#60;p&#62;노종문 옮김, 『악의 문제와 하나님의 정의』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2008년 06월.&#60;br /&#62;
Evil and the Justice of God. SPCK, 2006 / Intervarsity Press, 2006&#60;/p&#62;
&#60;p&#62;양혜원 옮김,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2009.&#60;br /&#62;
Surprised by Hope. Society for Promoting Christian Knowledge. 2007.
&#60;/p&#62;</description>
</item>
<item>
<title>viamedia on "성공회 정체성 - 미국 성공회 한 프로젝트에서 배우는 것"</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559#post-1001</link>
<pubDate>화, 09 2월 2010 12:11:17 +0000</pubDate>
<dc:creator>viamedia</dc:creator>
<guid isPermaLink="false">1001@http://liturgy.skhcafe.org/</guid>
<description>&#60;p&#62;ssyu1 님 / cranmerian 님&#60;/p&#62;
&#60;p&#62;매우 중요한 의견을 주신 두 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60;/p&#62;
&#60;p&#62;몇 가지 토를 달면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60;/p&#62;
&#60;p&#62;1. 정체성 논의는 매우 중요합니다. 물론 정체성이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맥락과 신앙 경험 안에서 발전시키고 구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체성은 항상 어느 정도 &#34;배타성&#34;을 염두합니다. 그리고 중립적인 의미에서 이런 배타성은 어떤 집단의 고유한 특성을 드러냅니다. 누구든지 어떤 특성이 있어야, 그것을 가지고 누군가에게 공헌을 할 수 있습니다. 성공회의 정체성을 생각하는 것은 성공회의 신앙 전통 속에서 다른 신앙 전통, 다른 종교 전통에 어떤 공헌을 할 수 있느냐와 연결되어 있다고 봅니다. 공헌할 내용이 없으면, 굳이 있을 필요가 없으니까요. ㅎㅎ&#60;/p&#62;
&#60;p&#62;2. 성공회 정체성의 주제 자체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그 주제를 함께 공유하고 정리하고 있느냐는 점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신앙 경험을 함께 나누고 살피고 그것을 정리하는 노력 속에서 성공회 정체성, 그리고 우리의 성공회 전통이 생겨납니다. 그런 노력이 한국 성공회에 부족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미국 성공회의 이번 보고서는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 한국 성공회에서 이런 '개념'잡기 노력이 쉽지 않다면, 다른 나라의 경험과 개념을 우리에게 비춰보는 것은 큰 도움이 됩니다. 특히 이번 보고서의 주제들은 그동안 산발적으로 언급되었던 성공회의 특징들을 매우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것들을 실마리로 삼아 우리의 신앙 전통과 경험에 대한 고민을 발전시켜 나갔으면 합니다. 그 실마리 없이 맨바닥에서 시작하는 것은 효율성도 없고, 성공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60;/p&#62;
&#60;p&#62;3. 지금까지 이런 노력을 교구나 관구 차원에 기대했습니다. 혹은 몇 사람의 신학자에게 기대했습니다. 매우 잘못된 방법입니다. 그 잘못된 방법은 결과를 봐서 압니다. 그동안 결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내용도 없습니다. 또 염려하신 대로, 어떤 성과도 자신의 권위 혹은 힘의 과시를 위해서 독식하고 마는 위험이 있습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은 아래로부터의 방법, 그리고 여러 사람들과 협력하는 방법입니다.&#60;/p&#62;
&#60;p&#62;4. 그런 점에서 이 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미 cranmerian 님이 제안하신 대로, 신자들이나 성직자들 자신이 나름대로 관심있는 주제와 내용에 대해서 공부하고 논의를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 논의들이 이 포럼에서 나눠졌으면 합니다. 수렴되어 어떤 결과가 마련된다는 더욱 좋은 일이겠지만, 그 과정 자체 만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이 포럼을 활성화시켜 주십시오.&#60;/p&#62;
&#60;p&#62;5.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물적인 자원입니다. 인력이 중요하고, 또 그것을 정리해 내는 시간과 비용이 중요합니다. 재정적 지원이 매우 중요합니다. 일을 만들려면 재정적인 지원을 생각해야 합니다. 산발적으로 이곳 저곳 중심없이 돈이 쓰이지 않고, 중요한 일을 위해서 집중적으로 써야 어떤 성과물이 나옵니다. 특히 우리 한국 성공회처럼 여러 면에서 자원/재원이 부족한 처지에서는 이런 지원의 집중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를 위해서 신자들과 성직자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 주셨으면 합니다.
&#60;/p&#62;</description>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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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viamedia on "촛불을 켜는 순서에 대해서."</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564#post-1000</link>
<pubDate>화, 09 2월 2010 11:52:03 +0000</pubDate>
<dc:creator>viamedia</dc:creator>
<guid isPermaLink="false">1000@http://liturgy.skhcafe.org/</guid>
<description><div style='margin:-1em 0 0.5em 0; padding:1px 0; font-size:larger; border-bottom:1px solid #ddd;'>촛불 켜는 순서 - 제대, 부활초, 절기 촛불</div>&#60;p&#62;안녕하세요, andersen 님,&#60;/p&#62;
&#60;p&#62;답변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렇게 늦게야 답변을 하게 되었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동안에 다른 분이라도 어떤 의견을 주리라 싶어 기다리는 점도 있는데 아무도 참여하지 않는군요. &#60;/p&#62;
&#60;p&#62;우선 바로 적용하면 되는 방법으로 답변하고, 이후에 다른 분들에게도 안내한다는 면에서 제대에 촛불을 켜는 순서를 확인하고, 그 의미를 살펴 보겠습니다.&#60;/p&#62;
&#60;p&#62;1. 제대 촛불 켜고 끄는 순서&#60;/p&#62;
&#60;p&#62;제대를 바라보는 위치에서,&#60;br /&#62;
오른쪽을 먼저 켜고,&#60;br /&#62;
왼쪽을 그 다음에 켭니다.&#60;/p&#62;
&#60;p&#62;끌 때는 이와는 반대 순서로,&#60;br /&#62;
왼쪽을 먼저 끄고,&#60;br /&#62;
오른 쪽을 그 다움에 켭니다.&#60;/p&#62;
&#60;p&#62;제대에 많은 초가 있을 때,&#60;br /&#62;
위와 동일하되,&#60;br /&#62;
안쪽의 촛불부터 바깥쪽으로 나아가도록 켜고,&#60;br /&#62;
끌 때는 바깥쪽 촛불부터 안쪽으로 꺼나갑니다. &#60;/p&#62;
&#60;p&#62;2. 대림초의 경우&#60;/p&#62;
&#60;p&#62;대림초를 켜는 특별한 의식이 있을 때와 없을 때를 구분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60;/p&#62;
&#60;p&#62;대림(환)초는 원래 가정에서 시작된 예식의 일부였습니다. 그것이 나중에 교회로 들어간 것이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다리는 의미를 어떤 행동과 표징으로 드러내는 것이니 매우 중요한 상징이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특별한 예식은 사라지고, 대림(환)초만 남았습니다. 우리 교회의 현 습관도 그렇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정리하면 좋겠습니다.&#60;/p&#62;
&#60;p&#62;대림초를 켜는 특별한 예식을 성찬례 시작 전에 한다면, 그 예식 안에서 대림초를 켜는 것으로 시작해서, 예식을 마친 후, 대림초의 촛불에서 제대의 촛불을 켜는 방법이 좋을 듯합니다.&#60;/p&#62;
&#60;p&#62;특별한 예식이 없다면, 실제로 제대의 촛불을 켜는 것도 예배의 준비에 해당하는 것이니, 제대에 촛불을 켠 다음, 대림초를 켜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60;/p&#62;
&#60;p&#62;그러나, 대림초를 먼저 켜는 것도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봅니다. 모두 전례 준비 부분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60;/p&#62;
&#60;p&#62;3. 부활초와 대림초&#60;/p&#62;
&#60;p&#62;부활초와 대림(환)초는 그 상징의 정도가 다릅니다. 그러니 그것을 구분해야 합니다.&#60;/p&#62;
&#60;p&#62;부활초는 부활일 밤 미사에 처음으로 켜는 교회의 '빛'입니다. 이것은 제대 촛불이 애초에 갖는 실용적인 용도를 넘어서는 매우 중요한 상징입니다. 즉 부활초가 교회 전례에서 사용하는 모든 빛(혹은 촛불)들의 원초적인 상징이라고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그러니 부활초(부활밤부터 성신강림일까지 - 혹은 어떤 전통에서는 예수 승천 축일까지)는 늘 제대의 불 이전에 켜는 것이 원칙이라고 생각합니다.&#60;/p&#62;
&#60;p&#62;부활초 예식과 관련해서, 대림초를 이해하는 것도 도움은 됩니다. 다시 말해 부활초를 켜는 것은 특별한 예식이 있으며, 그에 따라 다른 모든 빛을 켜듯이, 아예 대림초도 그렇게 먼저 켜고, 나중에 제대 초를 켜도 좋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대림초의 경우는 어떤 순서를 따라도 관계가 없지만,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부활초처럼 대림초를 먼저 켤 수 있다는 말입니다.&#60;/p&#62;
&#60;p&#62;사족을 하나 달자면, 최근에 보니 대림초의 색깔이 달라졌습니다. 전통적으로는 자색 초 3개에 장미색 초 1개가 있는 구성인데, 최근에는 진한 자색에서 그 색깔이 엾어져 급기야 흰색이 되거나 아예 다섯 번째 초를 배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대림절 초기의 '참회'가 성탄일이 가까워지며, '기쁨'의 흰색으로 변한다는 생각을 적용한 것 같습니다. 뭐라 할 일은 아닙니다. &#60;/p&#62;
&#60;p&#62;실제로 성공회 전통(중세 이후의 영국의 사룸 미사 전통)에서는 대림절 색깔은 자색보다는 '청색'입니다. &#60;/p&#62;
&#60;p&#62;어쨌든, 전통적으로 장미색 초 하나 있었던 것이 좀 혼동스럽게 한 것은 아닌가 생각하기도 합니다. 원래 장미색은 대림 3주일에 켜는 것이었습니다. 대림 3주일에는 이른바 &#34;가우데테&#34;(Gaudete: 기뻐하라) 주일이라고 불러서, 성모 마리아를 통한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는 캐롤을 부르는 데서, 이 장미색이 유래했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 뜻이 없어지고, 새로운 초 색깔 배합이 생긴 것이지요. 어떤 점에서는 최근 천주교의 대림초 색깔 변용을 그대로 따라간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국의 전례 용품 시장은 이제 천주교 밖에 없으니까요. 아쉬운 대목입니다.     &#60;/p&#62;
&#60;p&#62;4. 제대 촛불 켜는 순서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설명&#60;/p&#62;
&#60;p&#62;제대에 촛불을 켜는 순서를 서신서편(Epistle side)와 복음서편(Gospel side)의 순서라고 하셨는데, 이를 다시 풀어보면, 제대(동쪽)를 바라보는 위치에서, 오른쪽(남쪽)이 서신서편이 되고, 왼쪽(북쪽)이 복음서편이 됩니다. 이런 용어는 전통적인 교회 공간 배치에서 서신서를 읽는 독서대와 복음서를 읽는 독서대(혹은 설교대)의 구분에서 나온 것이기도 합니다. &#60;/p&#62;
&#60;p&#62;5. 제대 촛불 켜는 순서의 의미&#60;/p&#62;
&#60;p&#62;기억할 것은 촛불은 그저 실용적인 이유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이후에 다른 의미들일 부가되었지만, 그 실내를 환하게 밝히는 그 실용적인 의미가 가장 우선입니다. 그런 이후에 시간이 흐르면서, 어차피 켜는 촛불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의 시청각 자료로서 그것을 볼 때마다 어떤 성서적 혹은 교리적 내용을 상기시키거나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순서 자체에 대한 설명도 저마다 조금씩 다릅니다.&#60;/p&#62;
&#60;p&#62;예를 들어, 촛불을 굳이 서신서편(오른쪽)에서 켜는 것을 두고, 어떤 이들은 정면(혹은 공중)의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심장(왼쪽이니까 보는 이에게는 오른쪽)을 먼저 기념하여 켠다고도 했고, 어떤 이들은 복음서를 위한 촛불은 다른 촛불을 켜지 않은 채 외롭게 혼자서 켜 있도록 할 수 없으니, 오른쪽 편에서 켠다고도 합니다. &#60;/p&#62;
&#60;p&#62;어떤 해석이 되었든, 그 시작이 실용성에서 비롯되어, 어떤 의미가 덧붙어져서 지금에 이르렀다고 봅니다. 그러니 이런 연유의 순서를 헤아리지 않고 고집하면 오해가 생깁니다. &#60;/p&#62;
&#60;p&#62;또 지금까지 별로 생각하지 않았던 점을 하나 생각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바로 미적인 요소입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전례의 미적인 면들에 대해서 논의가 펼쳐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60;/p&#62;</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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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viamedia on "안녕하세요!"</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563#post-999</link>
<pubDate>화, 09 2월 2010 11:50:17 +0000</pubDate>
<dc:creator>viamedia</dc:creator>
<guid isPermaLink="false">999@http://liturgy.skhcafe.org/</guid>
<description>&#60;p&#62;반갑습니다. 지난 12월에 짧게나마 함께 이야기 나눴던 시간에 큰 고마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늦게 인사 받아서 미안합니다. &#60;/p&#62;
&#60;p&#62;cranmerian 님을 통해서 몇 가지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곳에서 고민하고 펼치려는 내용들을 함께 나눠주시고, 또 함께 성과을 만들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관심과 격려, 그리고 참여가 가장 큰 힘입니다.&#60;/p&#62;
&#60;p&#62;고맙습니다.
&#60;/p&#62;</description>
</item>
<item>
<title>Cranmerian on "안녕하세요!"</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563#post-998</link>
<pubDate>일, 07 2월 2010 15:16:29 +0000</pubDate>
<dc:creator>Cranmerian</dc:creator>
<guid isPermaLink="false">998@http://liturgy.skhcafe.org/</guid>
<description>&#60;p&#62;늦었지만 포럼에 참여해주셔서 반갑습니다. 저도 자주 들르지 못하였지만, 아마도 &#60;/p&#62;
&#60;p&#62;올 겨울은 저희 회원 모두에게 잔인한 겨울인가 봅니다. &#60;/p&#62;
&#60;p&#62;사순절 절기에 맞게 묵상에 관한 글을 올려주시면 어떨까요. &#60;/p&#62;
&#60;p&#62;모든 회원들이 심기일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60;/p&#62;
&#60;p&#62;포럼에서 함께 고민하면서 미래를 열어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60;/p&#62;</description>
</item>
<item>
<title>andersen on "촛불을 켜는 순서에 대해서."</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564#post-997</link>
<pubDate>화, 22 12월 2009 22:02:02 +0000</pubDate>
<dc:creator>andersen</dc:creator>
<guid isPermaLink="false">997@http://liturgy.skhcafe.org/</guid>
<description>&#60;p&#62;안녕하세요. 신부님.&#60;/p&#62;
&#60;p&#62;촛불을 켜는 순서에 대해서 의문이 있어 이렇게 글 올립니다.&#60;/p&#62;
&#60;p&#62;보통 제대의 촛불 두 개를 제외하고는 부활초, 대림초, 기타 장식 초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60;/p&#62;
&#60;p&#62;이때 자료에 근거하지는 못했지만 관습대로 부활초는 성체등에 우선할 정도로 중요하기에 가장 먼저 켜는 초라고 배웠습니다. 대림초는 기타 장식 초만큼은 아니지만 제대의 초에 비해 장식초에 가까우므로 가장 나중에 켜도록 배웠습니다.&#60;/p&#62;
&#60;p&#62;그런데 어느 날 어느 신부님께서 대림초는 부활초만큼이나 중요한 초이기 때문에 가장 먼저 켜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혼란이 생겨서 (진작 했어야 하는 작업이지만 말입니다. 공부하지 않은 제 잘못이 크지요.)그제야 자료를 찾아 보았습니다.&#60;/p&#62;
&#60;p&#62;하지만 보통 서간편(Epistle side)과 복음편(Godpel side) 중 어떻게 어느 방향으로 먼저 초를 켜는 정도 밖에는 정보를 얻지 못했습니다. &#60;/p&#62;
&#60;p&#62;어쩌면 전례나 감사성찬례에 있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으나, 저와 더불어 함께 이 의문을 풀고 싶은 교우분도 있습니다. &#60;/p&#62;
&#60;p&#62;부디 좋은 정보 알려주시길 바라면서 이만 글 줄이겠습니다.
&#60;/p&#62;</description>
</item>
<item>
<title>andersen on "안녕하세요!"</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563#post-996</link>
<pubDate>화, 22 12월 2009 21:49:18 +0000</pubDate>
<dc:creator>andersen</dc:creator>
<guid isPermaLink="false">996@http://liturgy.skhcafe.org/</guid>
<description>&#60;p&#62;안녕하세요, 주신부님.&#60;/p&#62;
&#60;p&#62;일전에 성공회대 기도실에서 만났던 신대원생 김태완 니니안입니다.^^&#60;/p&#62;
&#60;p&#62;말씀나누고 힘 받았습니다. 앞으로 더 열실히 공부하겠습니다.&#60;/p&#62;
&#60;p&#62;가끔 필요에 의해서 원서를 부분적으로 짧게 발췌 번역을 하곤하는데 이곳에서 더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요?&#60;/p&#62;
&#60;p&#62;엉성하지만 짧은 교리문답과 사순절 묵상 글을 완역한 것이 있습니다. &#60;/p&#62;
&#60;p&#62;이곳에도 올릴 수 있는지 알려주십시오.&#60;/p&#62;
&#60;p&#62;신부님, 한국은 더욱 추워졌습니다.&#60;/p&#62;
&#60;p&#62;미국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감기 조심하세요.
&#60;/p&#62;</description>
</item>
<item>
<title>humanist76 on "전례 예복 유감 - 성직자 순행을 보면서"</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152#post-995</link>
<pubDate>토, 28 11월 2009 21:55:43 +0000</pubDate>
<dc:creator>humanist76</dc:creator>
<guid isPermaLink="false">995@http://liturgy.skhcafe.org/</guid>
<description>&#60;p&#62;오랫만에 명쾌한 글을 읽고 돌아갑니다. 주낙현 신부님 글은 언제나 시원한 답을 주십니다. 고맙습니다.
&#60;/p&#62;</description>
</item>
<item>
<title>viamedia on "캔테베리 대주교, 로마 강연 번역문"</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562#post-994</link>
<pubDate>일, 22 11월 2009 11:55:03 +0000</pubDate>
<dc:creator>viamedia</dc:creator>
<guid isPermaLink="false">994@http://liturgy.skhcafe.org/</guid>
<description>&#60;p&#62;@ 일러두기&#60;/p&#62;
&#60;p&#62;교황청의 [사도 헌장] 발표 배경 설명&#60;br /&#62;
캔터베리 대주교의 로마 방문과 강연&#60;br /&#62;
강연 내용 요약&#60;br /&#62;
번역에 대하여&#60;br /&#62;
용어 해설&#60;br /&#62;
인용 및 배포&#60;/p&#62;
&#60;p&#62;@ 첨부 문서 (아래에서 pdf 다운로드)&#60;/p&#62;
&#60;p&#62;캔터베리 대주교 로마 강연 - 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60;br /&#62;
교황청의 [사도 헌장] 발표에 대한 간단한 해설 - 주낙현 신부&#60;br /&#62;
교황청의 [사도 헌장] 발표에 대한 미국 성공회의 논평 - 크리스토퍼 엡팅 주교&#60;/p&#62;
&#60;p&#62;교황청의 [사도 헌장] 발표 배경 설명&#60;/p&#62;
&#60;p&#62;2009년 10월 19일 천주교 교황청 신앙과 교리 성성은, 성공회를 떠난 특정 그룹들이 천주교로 들어오고자 할 때, 이들을 받아들이고 이들을 위한 특별 관리 교구를 만들도록 하며, 이들이 사용하고 있는 성공회 전례의 일부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교황청은 이번 조처는 성공회를 떠난 특정 그룹이 지난 몇년 동안 요청해 온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 조처를 담은 [사도 헌장]은 근 시일 내에 발표될 것이라고 했고, 2009년 11월 4일 &#34;ANGLICANORUM COETIBUS&#34;라는 제목의 교황령 [사도 헌장]을 발표했습니다.&#60;/p&#62;
&#60;p&#62;한편, 교황청은 이 조처를 발표하기 2주 전에야 이와 관련 사실을 캔터베리 대주교 측에 전달했습니다. 발표 당일인 10월 19일 영국 천주교 빈센트 니콜스 대주교와 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는 이 발표에 관한 공동 기자 회견을 가졌습니다. 이 공동 기자 회견은 캔터베리 대주교가 이 발표에 동의한다는 의미가 아니며,  갑작스러운 발표에 대한 혼란을 막고자 기자 회견에 참여한 것으로 보입니다. 캔터베리 대주교는 이번 조치가 불확실하게 떠도는 이들에게 하나의 길이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60;/p&#62;
&#60;p&#62;이 조처 발표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은 이미 제가 10월 21일 관구 게시판에 올린 글과, 11월 1일자 [성공회 신문]에 기고한 내용을 참조할 수 있으며, 제 개인 블로그인 &#60;a href=&#34;http://viamedia.or.kr&#34; rel=&#34;nofollow&#34;&#62;http://viamedia.or.kr&#60;/a&#62; 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문서에 첨부)&#60;/p&#62;
&#60;p&#62;한편, 미국 성공회 교회 일치와 종교 간 관계 책임자인 크리스토퍼 엡팅 주교는 이 교황청 조처에 대한 논평을 짧게 발표했습니다. 그것은 이 조처가 양 교회 간에 있었던 교회 일치 논의의 맥락에서 나온 것은 아니며, 그 성과를 훼손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이 조처로 천주교로 가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천주교 신자일 뿐이고, 이 조처가 교회 일치에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이 논평은 관구게시판과  서울교구 성직자 카페, 그리고 성공회 신학-전례 포럼에 게시했습니다. &#60;a href=&#34;http://liturgy.skhcafe.org&#34; rel=&#34;nofollow&#34;&#62;http://liturgy.skhcafe.org&#60;/a&#62; (이 문서에 첨부)&#60;/p&#62;
&#60;p&#62;캔터베리 대주교의 로마 방문과 강연&#60;/p&#62;
&#60;p&#62;한편, 캔터베리 대주교는 이미 계획에 잡혀 있던 대로, 로마에 방문하고 강연을 했으며, 교황 베네딕도 16세와도 회담을 가졌습니다. 회담에 앞서 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는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교에서 열린 요한네스 빌레브란트 추기경(교황청 교회 일치 평의회 초대 의장, 1909-2006) 탄생 100주년 기념 강연(11월 20일)에 초대받아, 교회 일치의 신학적 주제와 도전에 관한 강연을 했으며, 여기서 교황청 [사도 헌장]의 파장에 즈음하여, 교회 일치 대화의 방법론을 재정리하고, 논란이 되는 신학적 주제들을 예로 들어 설명했습니다. &#60;/p&#62;
&#60;p&#62;캔터베리 대주교의 강연은 성공회의 주장을 전달한 것이 아니라, 지난 40여 년 동안 성공회와 천주교, 그리고 천주교가 다른 그리스도교 전통들과 나누며 내놓았던 교회 일치 대화 문서의 정신과 그 신학을 되새겨 주었습니다. 이 점에서 캔터베리 대주교는 최근 천주교의 행태들과 조처들이 그간 스스로 참여했던 교회 일치 대화의 정신을 무시하거나, 최소한 이와는 모순된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60;/p&#62;
&#60;p&#62;강연 내용 요약&#60;/p&#62;
&#60;p&#62;위에 말한대로, 캔터베리 대주교는 이 강연에서 지난 40여년 동안 성공회, 천주교, 정교회, 루터교, 개혁 교회 등이 참여한 교회 일치 대화와 그 문서들을 되짚으며, 교회 일치 대화을 통해서 그리스도교 전체가 발전시켰던 교회론(Ecumenical Ecclesiology)을 되새긴 다음, 교회 일치 대화에서 논란이 되는 몇가지 주제들, 특별히 천주교와의 관계에서 논란이 되는 사안들에 대해서, 이 교회론에 바탕하여 비판적인 물음을 던졌습니다. &#60;/p&#62;
&#60;p&#62;그 내용의 개략은 다음과 같습니다.  &#60;/p&#62;
&#60;p&#62;1. 지난 40여년 동안 그리스도교계는 교회 일치 대화를 통하여 교회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에 어떤 수렴점에 도달했다. 그것은 교회가 근본적으로 삼위일체의 친교 안에 있는 하느님의 본질을 그대로 반영하는 관계여야 한다는 것이고, 이 점에서 교회는 하나인 이중적인 선교적 전망, 곧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나누는 친교(communion), 그리고 이에 따라 이웃과 나누는 친교를 지니고 있다. 교회 일치 대화와 실천의 모든 내용은 바로 이 교회 이해에 기초해야 한다. &#60;/p&#62;
&#60;p&#62;2. 특히, 선교를 위해 일치된 교회를 향한 지난 40여 년의 대화 속에서 볼 때, 이 교회 일치의 선교적 교회론에 따라서, 일차적인 것과 부차적인 것을 식별해야 한다. 일차적이고 근본적인 것에 합의해 놓고서, 부차적인 것으로 갈등을 일으키는 일이 타당한 일인가?&#60;/p&#62;
&#60;p&#62;3. 이 점에서 세가지 신학적 주제가 부각된다. 권위의 문제(교도권, magisterium)), 수위권(primacy), 그리고 지역 교회(local church)와 보편 교회(universal/catholic Church)의 관계이다. 거듭하거니와, 이 신학적 주제들은 천주교를 포함하여 그리스도교가 참여한 교회 일치 대화의 어떤 합의 원칙에 바탕하여 논의되고 적용되어야 한다. &#60;/p&#62;
&#60;p&#62;4. 권위의 문제: 교회의 권위는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친교를 어떻게 우리의 삶 속에서 드러내느냐에 달려 있다. 세례받은 이들이 공동체적인 친교를 지탱하기 위한 책임이 바로 권위의 근간이다. 이 책임을 다하기 위한 상호 협력으로서만 권위가 설 수 있다. 규율적, 위계주의는 권위가 아니다.&#60;/p&#62;
&#60;p&#62;5. 수위권 문제: 수위권 문제는 교회 일치의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러나 법적 제도적 장치로서만 수위권을 이해하면 이는 곧 통제의 장치가 될 수 있다. 다양한 공동체들이 서로 다르나 함께 친교하면서 하나의 공동체(community of communities)를 이룰 때, 수위권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길이 열린다. 한편 교황청의 [사도 헌장]에 말한 조치는, 성공회를 떠난 이들을 배려한 사목적인 조치일 뿐, 교회론적인 근거는 없다.&#60;/p&#62;
&#60;p&#62;6. 지역 교회와 보편 교회의 관계: 교회가 하느님과 맺는 친교의 거룩함 속에서 세례와 성찬례라는 성사를 나누는 일에 충실할 때, 그 자체로 보편 교회를 담고 있다. 지역 교회의 어떤 결정, 예를 들어 여성 성직에 관한 결정은 바로 이 세례받은 공동체 안에서 하느님과 누리는 친교의 거룩함이라는 전망 속에서 진행된 것이라면, 그것은 지역적 결정이지만, 역시 보편 교회의 한 부분이다. 최소한 성공회의 여성 성직 서품은 교회론에 대한 교회 일치 대화의 성과와 원칙을 지역적으로 확장시키고 발전시킨 것이었다. 여성 주교 문제가 실제로 교회의 선교를 훼손한 적이 있는가?&#60;/p&#62;
&#60;p&#62;7. 불일치 속에서 갖는 일치에 대한 전망: 지난 40여 년 일치 대화에 참여하면서 얻었던 신학적 원칙을 되새기며 여기에 자신을 내어 놓고 성찰해야 한다. 다시 자신의 틀 속에서 이 원칙들을 협소하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일은 모순된 일이다. 그간의 대화에서 확인한 영적이고 성사적인 전망이 가져다 주는 도전에 스스로를 맡겨야 한다. &#60;/p&#62;
&#60;p&#62;번역에 대하여&#60;/p&#62;
&#60;p&#62;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의 글들은 의미들이 중첩되어 있어서 읽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 영어가 평이하지 않으니 우리말 번역이 힘겹습니다. 이번 강연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능력의 한계도 분명한 터라, 옮기는 과정에서 곤란이 겹쳤습니다. 몇가지를 머리에 담아 번역했습니다. &#60;/p&#62;
&#60;p&#62;우선 직역을 강조했습니다. 직역과 의역의 경계는 없고, 정확한 번역과 잘못된 번역만 있다는 말에 수긍하지만, 굳이 번명하자면, 캔터베리 대주교의 글 자체에 담긴 조심스러운 수사법을 담아내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니 불편한 우리말이 눈에 띌 것입니다. &#60;/p&#62;
&#60;p&#62;그런 와중에도 제 능력의 한계(우리말/영어)때문에 우리말로 옮기기 어려운 표현들은 풀어쓰거나 의역했습니다. 또한 이미 통용되는 번역어 가운데 잘못 번역되었거나, 오해의 여지가 있는 것들에는 새로운 번역어를 썼습니다. &#60;/p&#62;
&#60;p&#62;이 모든 과정에서 캔터베리 대주교의 깊은 뜻들이 왜곡되지 않을까 저어했지만, 우선은 독자들에게 접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겠다는 만용을 부렸습니다. 오역이나 잘못된 표현은 지적해 주십시오.&#60;/p&#62;
&#60;p&#62;용어 해설&#60;/p&#62;
&#60;p&#62;번역어로 사용된 몇가지 용어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덧붙입니다.&#60;/p&#62;
&#60;p&#62;천주교: Roman Catholic Church 에 대한 우리말은 '천주교'이니 모든 &#34;Roman Catholic (Church)&#34;에 해당하는 단어는 '천주교'로 번역했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가톨릭'이라는 용어때문이기도 합니다.&#60;/p&#62;
&#60;p&#62;가톨릭: 우리말 음차로 쓰는 '가톨릭'은 catholic 에서 나온 말입니다. &#34;보편적&#34;(universal)이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어디에서든 'catholic church'는 &#34;(Roman) Catholic Church&#34;와 대비되어, '보편 교회'로 번역해야 합니다. 그러니 '가톨릭'은 천주교가 독점적으로 쓸 말이 아닙니다. 번역문에 나오는 모든 '가톨릭'은 '보편적'으로 뜻으로 쓰입니다. 이 표기에 대한 논의를 이미 [성공회 신학-전례 포럼]에서 한 적이 있으니 참조할 수 있습니다.&#60;/p&#62;
&#60;p&#62;자녀됨을 통한 공동의 거룩함: 교회의 목적을 설명하는데 거듭되는 말입니다. filial and communal holiness 등의 표현을 우선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60;/p&#62;
&#60;p&#62;친교 / 친교적 공동체: 이 번역문에 나오는 모든 '친교'라는 말은 'communion'의 번역말입니다. 그저 '코뮤니온' 혹은 원어를 따서 '코뮤니오'로 쓸까 했지만, 친교로 정했습니다. 좀더 설명이 깃든 번역어라면 '친교의 공동체' 혹은 '사귐의 공동체'라고 하면 좋겠으나, 어수선해 보여서 그리 했으니, '친교의 공동체' 쯤으로 읽어 주십시오. &#60;/p&#62;
&#60;p&#62;지역 교회와 보편 교회: 교회론에서 '지역 교회'(local church)라는 말은 '보편 교회'(universal church)와 함께 쓰여, 삶의 맥락에 지역적으로 존재하는 실제 교회를 말합니다. 이때 '지역 교회'는 개별 교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구 혹은 관구 같은 개별 교회의 지역적 연합을 가리킵니다.&#60;/p&#62;
&#60;p&#62;인용 및 배포&#60;/p&#62;
&#60;p&#62;이 번역문은 주낙현 신부의 사적인 공부와 성공회 성직자 및 신자들의 편의를 위한 것입니다. 원저자 및 번역자의 허락 없이 내용을 변경할 수 없습니다. 인용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합니다. 또한 번역문 위치 링크 이외에는 다른 방식으로 배포하지 말아 주십시오.&#60;/p&#62;
&#60;p&#62;PDF 다운로드 연결: (이미 공지한대로 강연 번역문 전체는 한시적으로만 공개하고, 오늘로 다운로드를 닫았습니다. 강연 전문은 곧 소책자로 출간되어 신자들을 만나도록 하겠습니다. 그 이후에 다시 이곳에 등록하겠습니다. 2009년 11월 28일)&#60;/p&#62;
&#60;p&#62;평화를 빌며&#60;/p&#62;
&#60;p&#62;주낙현 신부 합장&#60;/p&#62;
&#60;p&#62;블로그 &#60;a href=&#34;http://viamedia.or.kr&#34; rel=&#34;nofollow&#34;&#62;http://viamedia.or.kr&#60;/a&#62;&#60;br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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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p&#62;</description>
</item>
<item>
<title>viamedia on "바티칸 '사도 헌장' 발표에 대한 미국 성공회의 견해"</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561#post-993</link>
<pubDate>목, 19 11월 2009 08:20:20 +0000</pubDate>
<dc:creator>viamedia</dc:creator>
<guid isPermaLink="false">993@http://liturgy.skhcafe.org/</guid>
<description>&#60;p&#62;천주교 로마 교황청(바티칸)의 &#34;사도 헌장&#34; 전문 발표에 대해, 미국 성공회 교회 일치 및 종교 간 관계 책임자인 크리스토 엡팅 주교가 미국 성공회의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아래는 그 내용의 전문 번역입니다. (이 번역을 다른 곳으로 옮기시거나 이용하실 때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번역 전문과 번역자, 번역문의 출처를 함께 표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낙현 신부)&#60;/p&#62;
&#60;p&#62;---&#60;/p&#62;
&#60;p&#62;바티칸 '사도 헌장' 발표에 대하여&#60;/p&#62;
&#60;p&#62;크리스토퍼 엡팅 주교 (Bishop Christopher Epting)&#60;br /&#62;
미국 성공회 교회 일치 및 종교 간 관계 책임자 (Deputy for Ecumenical and Interreligious Relations, The Episcopal Church)&#60;/p&#62;
&#60;p&#62;2009년 11월 16일&#60;/p&#62;
&#60;p&#62;이미 성공회를 떠난 이들을 천주교로 받아들이는 조치를 담은 바티칸의 &#34;사도 헌장&#34; 전문이 나왔다. 어떤 이들은 이 조치를 &#34;교회 일치를 위한 제스처&#34;라고 해석하려 하지만, 그저 '사목적' 조치로 이해할 만한 것이지, 교회 일치를 위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는 없는 것이 분명하다. 최근에야 발터 카스터 추기경이 어느 신문 인터뷰를 통해서 해명하려 했지만, 실제로 이 사안에 대하여 교황청 그리스도교 일치 진흥 위원회는 침묵으로 일관했던 것이 분명하다. 이것은 교리와 신앙 성성 쪽의 일방적인 행동인 것을 드러내며, 지난 40년 동안 느리게나마 지속적으로 진척시켰던 교회 일치 대화의 면전에 날라든 것이었다.&#60;/p&#62;
&#60;p&#62;이 조처는 분명히 &#34;로마로 돌아오라&#34;는 선언이다. 성공회에서 서품을 받았다가 성공회를 떠난 사람들은 천주교 안에서 다시 사제로 서품을 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그 전제 조건인 부제로도 서품을 받아야 하며, 게다가 견진 성사까지 다시 받아야 한다. 이 과정을 거치는 사람은 결코 성공회 신자도, 성공회-가톨릭(Anglo-Catholic) 성향의 신자도 아니며, 다만 천주교 신자일 뿐이다.&#60;/p&#62;
&#60;p&#62;이미 많은 경우를 겪으며 말했듯이, 우리는 나름의 양심에 따라 천주교 신자가 되기로 작정한 모든 성공회 신자를 축복하며 떠나 보낼 것이다. 마찬가지로 양심에 따라 세계 성공회와 온전한 상통 관계를 맺고자 성공회로 오는 모든 천주교 신자를 환영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들은 개인 자격으로 진행되어야 하지, 그 개인들의 집단으로 진행되어서는 안된다. 바티칸은 우리가 성공회 안에 천주교를 떠난 신자들만을 위한 &#34;천주교 특별 교구&#34;를 절대로 만들지 않을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천주교나 다른 어느 그리스도교단을 떠나 캔터베리 대주교와 상통하며, 세계 성공회로 들어오고자 하는 이들을 개인 자격으로 받아들여 환영할 것이다. &#60;/p&#62;
&#60;p&#62;특별히 미국 성공회는 국내의 교회 일치 대화(미국 내 성공회-천주교 협의회)와 성공회-천주교 국제 협의회에 헌신적으로 참여할 것이다. 이에 관하여 발터 카스퍼 추기경이 지난 11월 15일 '옵세바토르 로마노' 지에서 이러한 대화는 지속되리라 밝힌 점을 환영한다. 최근의 &#34;사도 헌장&#34;은 혼란을 야기하고 있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그리스도교 공동체인 천주교와 그 세 번째인 성공회 사이의 진정한 교회 일치 대화의 목표에서는 작은 소동일 뿐이다.&#60;/p&#62;
&#60;p&#62;번역: 주낙현 신부&#60;br /&#62;
일시: 2009년 11월 18일&#60;/p&#62;
&#60;p&#62;원문: &#60;a href=&#34;http://episcopalchurch.typepad.com/episcope/2009/11/bishop-christopher-epting-comments-on-the-vaticans-apostolic-constitution.html&#34; rel=&#34;nofollow&#34;&#62;http://episcopalchurch.typepad.com/episcope/2009/11/bishop-christopher-epting-comments-on-the-vaticans-apostolic-constitution.html&#60;/a&#62;&#60;/p&#62;
&#60;p&#62;번역문: &#60;a href=&#34;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561&#34; rel=&#34;nofollow&#34;&#62;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561&#60;/a&#62; (성공회 신학-전례 포럼)
&#60;/p&#62;</description>
</item>
<item>
<title>Cranmerian on "성공회 정체성 - 미국 성공회 한 프로젝트에서 배우는 것"</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559#post-992</link>
<pubDate>화, 10 11월 2009 15:38:33 +0000</pubDate>
<dc:creator>Cranmerian</dc:creator>
<guid isPermaLink="false">992@http://liturgy.skhcafe.org/</guid>
<description>&#60;p&#62;정체성 논의가 뜨겁게 일어나고 있다니 반가운 소식입니다. &#60;/p&#62;
&#60;p&#62;하지만 이에 대한 환경에 대한 우려를 너무 의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체성을 표현하는 주제들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이를 어느 한 모임에서 모두 소화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미국성공회처럼 다양한 인적 자원과 막강한 재정적 후원이 있지 않는 한, 한국적인 상황에서는 이를 모두 고려하기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60;/p&#62;
&#60;p&#62;오히려 교구의회나 관구의회에서 정식으로 특별위원회를 상설하여 인적 자원과 재정적 자원을 확실하게 지원한다면 어느 정도의 방향성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60;/p&#62;
&#60;p&#62;이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양한 주제들중 하나를 연구하는 분들이 이를 발표하고 공유할 수 있는 '광장'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함께 모여 논의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곳의 포럼과 같은 곳도 좋은 광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초기 단계에서 비공개적인 공간이 필요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두번째로는 이러한 논의를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주도적인 모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60;/p&#62;
&#60;p&#62;거창하게는 '...연구회' 일 수도 있고 기존의 모임이 있다면 그것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성직자들을 다 참여시켜야 할 필요도 없으며, 모두에게 강요할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관심있는 사람들끼리 서로의 의견과 연구과정을 공유하고 서로 자극받는다면 좋은 모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결실이 생긴다면 그때에 보다 공개적인 활동으로 전파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60;/p&#62;
&#60;p&#62;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앞서 발표하신 분들처럼 더 이상 현실의 환경 때문에 주저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이미 독자적으로 공부하거나, 소모임에서 논의하고 계신 분들이 계시다면 꼭 서로 연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그 연결고리를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60;/p&#62;</description>
</item>
<item>
<title>ssyu1 on "성공회 정체성 - 미국 성공회 한 프로젝트에서 배우는 것"</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559#post-990</link>
<pubDate>수, 21 10월 2009 11:50:15 +0000</pubDate>
<dc:creator>ssyu1</dc:creator>
<guid isPermaLink="false">990@http://liturgy.skhcafe.org/</guid>
<description>&#60;p&#62;꼭 필요하고 흥미로운 연구라고 생각합니다.&#60;br /&#62;
수 많은 교단중에서 '정체성'이라는 용어에 유독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곳이 성공회가 아닌가 합니다.&#60;br /&#62;
'정체성'의 고민은 성공회 역사와 그 궤를 같이 해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한국 성공회 역사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성공회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정의를 내리는 일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입니다. 정체성에 관해 무언가를 말할 수 있다면, 역사와 시대속에서 교회가 반응했던 역사에 관해 말하는 것이 가장 정확히 성공회를 드러내는 것이겠지요. &#60;/p&#62;
&#60;p&#62;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시대와 직면한 성공회를 분명히 말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미국성공회의 연구에 등장하는 이 주제들은 오늘날 미국 성공회가 세상을 마주하는 방식일 것입니다. 당연히 미국성공회의 정체성은 이 주제들로부터 형성되어 갈 것이고요. &#60;/p&#62;
&#60;p&#62;그렇다면 한국성공회는? 한국성공회에서도 그러한 작업들이 있었으면 합니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시대의 요구와 우리의 문제의식들을 모을 수 있다면 이처럼 몇 가지 주제들이 나올 듯 합니다. 그러면 그 주제들을 중심으로 정체성 논의를 지속할 수 있을 것입니다. &#60;/p&#62;
&#60;p&#62;그러나 '주제'그 자체가 꼭 정체성을 형성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주제'는 단지 정체성 논의를 진행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할 뿐이지요. 예를 들자면 이러한 경우이겠습니다. 만일 한국성공회에서 이 작업을 하였을 경우, '좌파적'이라는 주제가 평신도 층에서 제시되었다고 가정해 봅니다. 물론 반대편에 있는 이들은 '사회참여적'이라는 주제로 해석해서 받아들일 수 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렇게생각하기에는 그들이 사용하는 '좌파적'이라는 용어에는 왜곡되어진 그들의 정치적 시선과 정서가 너무도 깊게 베여있습니다. 그럴경우, 당연히 그들이 제기하는 '좌파적'이라는 주제가 성공회의 정체성을 형성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한국성공회가 진실로 그들이 생각하는 '좌파적'인가에 대해서는 논의를 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60;/p&#62;
&#60;p&#62;현재, 한국성공회 내에서도 정체성논의가 뜨겁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성직자들 사이에서 그러한 분위기는 더 고조되어 갑니다. 한국성공회 역시 몇 가지 방향성을 가지고 주제를 설정해 보는 일이 필요하겠지요. 그러한 생각이 간절하면서도 다음과 같은 염려스러운 현실이 우리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60;/p&#62;
&#60;p&#62;그 현실이란,&#60;/p&#62;
&#60;p&#62;성공회는 당연히 이런 교회다 라는 전제를 갖고서 우리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주제를 설정하는 일,&#60;br /&#62;
소모적 논쟁만을 부각시켜 그것이 정체성을 결정짓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일,&#60;br /&#62;
설정된 주제들을 진지한 논의과 고민없이 무 비판적으로 우리의 정체성이라고 인정해버리는 일,&#60;br /&#62;
정체성 논의에는 참여하지 않은체 필요한 것만 쏙 빼먹고 결국 자신의 뜻대로만 움직이려는 방관주의와 파렴치함,&#60;br /&#62;
논의 구조의 경직성 &#60;/p&#62;
&#60;p&#62;등등입니다.
&#60;/p&#62;</description>
</item>
<item>
<title>viamedia on "1990 성가의 번역 문제: Tantum Ergo 의 경우"</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153#post-989</link>
<pubDate>토, 17 10월 2009 02:51:11 +0000</pubDate>
<dc:creator>viamedia</dc:creator>
<guid isPermaLink="false">989@http://liturgy.skhcafe.org/</guid>
<description>&#60;p&#62;khdhdo 님 / 고맙습니다. 글을 쓸 때 천주교의 해당 성가를 살폈습니다만, 인용하지는 않았습니다. 보는 분들이 참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60;/p&#62;</description>
</item>
<item>
<title>kdhhdo on "1990 성가의 번역 문제: Tantum Ergo 의 경우"</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153#post-988</link>
<pubDate>금, 16 10월 2009 22:52:23 +0000</pubDate>
<dc:creator>kdhhdo</dc:creator>
<guid isPermaLink="false">988@http://liturgy.skhcafe.org/</guid>
<description>&#60;p&#62;참고하시라고 천주교 성가집에서 번역을 빌려옵니다.&#60;/p&#62;
&#60;p&#62;가톨릭성가 192. 지존하신 성체&#60;/p&#62;
&#60;p&#62;   1) 지존하신 성체 앞에 꿇어 경배 드리세 묵은 계약 완성하는 새 계약을 이뤘네 오묘하온 성체신비 믿음으로 알리라&#60;/p&#62;
&#60;p&#62;   2) 영원하신 성부성자 위로자신 성령께 구원 받은 환희로써 영광 찬미드리세 무한하신 권능권세 영원무궁 하리라 아멘
&#60;/p&#62;</description>
</item>
<item>
<title>viamedia on "성공회 정체성 - 미국 성공회 한 프로젝트에서 배우는 것"</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559#post-987</link>
<pubDate>토, 10 10월 2009 02:26:37 +0000</pubDate>
<dc:creator>viamedia</dc:creator>
<guid isPermaLink="false">987@http://liturgy.skhcafe.org/</guid>
<description>&#60;p&#62;한국 사회에서 &#34;성공회 신자가 된다&#34;는 것은 무엇인가? 다시 말해 성공회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우리에게 오랜 사목적, 신학적 고민이요, 좀더 본능적으로 생존이 달린 주제이기도 합니다. 여러 논의가 있었다고 생각하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하고 싶은 개인적인 의견이 있지만, 잠시 접고 한가지만 소개하겠습니다.  &#60;/p&#62;
&#60;p&#62;최근 미국 성공회는 몇년 동안 &#34;성공회 정체성 프로젝트&#34;(Episcopal Identity Project)를 진행하여, 이를 기반으로 성공회의 구체적인 선교 목표와 사목 방향을 잡아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보고서의 일부를 우선 발표했습니다. 요약된 보고서 내용 가운데 몇가지만 뽑아서 옮겨 놓습니다.&#60;/p&#62;
&#60;p&#62;&#60;blockquote&#62;왜 &#34;정체성&#34;인가?&#60;/p&#62;
&#60;p&#62;&#34;우리는 누구인가?&#34;&#60;br /&#62;
굳이 성공회 신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60;br /&#62;
우리의 중심적인 가치는 무엇인가?&#60;br /&#62;
어떤 점에서 우리는 다른 그리스도교 신앙 전통과 다른가?&#60;br /&#62;
우리가 지닌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가?&#60;br /&#62;
우리가 가진 가능성과 기회는 무엇인가?&#60;/p&#62;
&#60;p&#62;우리가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어디로 이끄시는지를 알지 못하고서, 우리 교회에서나 세계 속에서 지도자로 설 수 없는 일이다. &#60;/p&#62;
&#60;p&#62;비판과 고민이 교차한다. 한편으로는 다른 교회의 자료를 받아들여서 그 경험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삼자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우리가 지켜왔던 정체(polity)를 끝까지 밀고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60;/p&#62;
&#60;p&#62;이런 고민은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와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큰 문제는 이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투신이 부족하다는 것이다.&#60;br /&#62;
&#60;/blockquote&#62;&#60;/p&#62;
&#60;p&#62;이런 정체성에 대한 고민 속에서, 미국 성공회는 여러 대학 연구 기관과 실천 신학자들을 통해서 미국 성공회 성직자들과 신자들에게 성공회의 정체성에 관한 인터뷰와 설문 조사를 해서, 그 강조된 내용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60;/p&#62;
&#60;p&#62;&#60;blockquote&#62;&#60;strong&#62;성공회 정체성의 4가지 분류&#60;/strong&#62; (성공회 신자들이 선호하고 중요시 여기는 것을 순서로 분류)&#60;/p&#62;
&#60;p&#62;&#60;strong&#62;핵심 주제:&#60;/strong&#62;&#60;br /&#62;
그리스도 중심성 - 성사적 - 공동기도서 - 성육신적 - 성서적 - 사목적 &#60;/p&#62;
&#60;p&#62;&#60;strong&#62;2차 주제:&#60;/strong&#62;&#60;br /&#62;
이성 - 포용적 - 전통 - 공동의 전례 - 예식 - 경험 - 사회의 변화에 대한 대응&#60;/p&#62;
&#60;p&#62;&#60;strong&#62;3차 주제:&#60;/strong&#62;&#60;/p&#62;
&#60;p&#62;중용의 길 - 다양한 신학적 입장 - 에큐메니칼 - 다양한 형태의 영성 훈련 - 예언자적 - 사회 변화를 위한 힘 - 함께 나누는 권위&#60;/p&#62;
&#60;p&#62;&#60;strong&#62;기타 주제:&#60;/strong&#62;&#60;br /&#62;
엘리트 - 구원의 통로 - 고백적&#60;br /&#62;
&#60;/blockquote&#62;&#60;/p&#62;
&#60;p&#62;어느 주제 혹은 가치들 하나도 빠져서는 안될 중요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성공회 신자들이 느끼고 있고, 또한 바라고 있는 정체성의 주제를 그 경중으로 분류해 살펴보는 것은, 우리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선명하게 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어디서부터 출발할 지, 어떤 점에 강조를 두어야 할 지가 분명해진다는 것이지요.&#60;/p&#62;
&#60;p&#62;여기서 우리 한국 성공회가 배울 점들은 무엇일까요? 공유할 점들은 무엇이고, 우리와 동떨어진 것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어느 지점에 관심을 두고 있나요? 그리고 그 무게와 지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우리 교회를 쇄신하기 위해서 우리가 출발해야할 지점, 아니 그 일의 시작과 방향은 어디여야 할까요? 이른 아침에 읽은 자료로 바탕으로 급한 생각을 덧붙였습니다.&#60;/p&#62;
&#60;p&#62;평화를 빌며&#60;/p&#62;
&#60;p&#62;주낙현 신부&#60;/p&#62;
&#60;p&#62;참조: 프로젝트 웹페이지: &#60;a href=&#34;http://episcopalchurch.org/aroundonetable/&#34; rel=&#34;nofollow&#34;&#62;http://episcopalchurch.org/aroundonetable/&#60;/a&#62;
&#60;/p&#62;</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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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viamedia on "[공지 및 사과] 서버 정리 중 게시물 유실"</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555#post-983</link>
<pubDate>금, 18 9월 2009 08:27:36 +0000</pubDate>
<dc:creator>viamedia</dc:creator>
<guid isPermaLink="false">983@http://liturgy.skhcafe.org/</guid>
<description>&#60;p&#62;최근 스팸들을 처리하느라 서버의 데이타 베이스를 손질하다가, 몇몇 귀한 토론 글들(2-3개)이 삭제된 것을 알았습니다. 백업에도 문제가 생겨서 이를 되살릴 길이 없습니다. 해당 토론글(댓글)을 적으신 분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60;/p&#62;
&#60;p&#62;다음에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더욱 신중하게 관리하고 처리하겠습니다. 성공회 신학-전례 포럼에 참여하시는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60;/p&#62;</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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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sonar530 on "가입인사드립니다."</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473#post-897</link>
<pubDate>화, 01 9월 2009 15:50:10 +0000</pubDate>
<dc:creator>sonar530</dc:creator>
<guid isPermaLink="false">897@http://liturgy.skhcafe.org/</guid>
<description>&#60;p&#62;가입인사드립니다.일본성공회 동경교구 네리마성가브리엘교회 부제 탁지웅입니다. 10여년 전에 대학교회에서 많은 신세 졌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좋은 자료 감사드립니다.
&#60;/p&#62;</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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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ssyu1 on "말씀과 성사 - 두 단어 혹은 한 단어?"</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85#post-836</link>
<pubDate>수, 12 8월 2009 10:50:40 +0000</pubDate>
<dc:creator>ssyu1</dc:creator>
<guid isPermaLink="false">836@http://liturgy.skhcafe.org/</guid>
<description>&#60;p&#62;말씀과 성사에 관한 이해가 다시 은총으로 다가온다...&#60;/p&#62;
&#60;p&#62;기억과 잊음의 반복속에 새로 각성되는 &#60;/p&#62;
&#60;p&#62;&#34;말씀은 성사를 비추고, 성사는 말씀을 구체화하여 우리 몸으로 느끼게 한다.&#34;&#60;/p&#62;
&#60;p&#62;이렇게 또 다시 나는 현재를 말씀과 성사가 되어 산다.
&#60;/p&#62;</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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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ptreefish on "서울 주교좌 성당 성찬례 동영상 토론"</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134#post-804</link>
<pubDate>목, 30 7월 2009 12:37:39 +0000</pubDate>
<dc:creator>ptreefish</dc:creator>
<guid isPermaLink="false">804@http://liturgy.skhcafe.org/</guid>
<description>&#60;p&#62;오래간만입니다. 전례복장과 관련하여 전례복의 명칭과 유래, 용도 등에 대하여 사진을 덧붙여 설명해 주시면 참 좋을 듯합니다. 같은 전례복을 두고서도 다른 명칭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나눔의집처럼 제의를 다 갖출 수 없을 때 어떤 복장이 감사성찬례 집전 때 좋은 모습일는지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60;/p&#62;</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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