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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최근 글</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link>
<description>A Korean Anglican Theology & Liturgy Forum</description>
<language>en</language>
<pubDate>Mon, 06 Feb 2012 00:18:31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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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Cranmerian on "안녕하세요 ^_^"</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711#post-1314</link>
<pubDate>일, 05 2월 2012 01:37:06 +0000</pubDate>
<dc:creator>Cranmerian</dc:creator>
<guid isPermaLink="false">1314@http://liturgy.skhcafe.org/</guid>
<description>&#60;p&#62;환영합니다.&#60;br /&#62;
이곳에는 많은 자료들과 사목현장의 문제제기들이&#60;br /&#62;
앃여있습니다.&#60;br /&#62;
먼저 구석구석을 돌아보시면 공부하시는데 많은 도움이 되리가 생각됩니다.
&#60;/p&#62;</description>
</item>
<item>
<title>id360 on "안녕하세요 ^_^"</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711#post-1313</link>
<pubDate>금, 03 2월 2012 11:30:31 +0000</pubDate>
<dc:creator>id360</dc:creator>
<guid isPermaLink="false">1313@http://liturgy.skhcafe.org/</guid>
<description>&#60;p&#62;가입 인사 드립니다.&#60;br /&#62;
뉴욕 롱아일랜드 교구 소속으로 현재 The General Theological Seminary에서&#60;br /&#62;
MDiv과정을 하고 있는 정요한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60;br /&#62;
자주 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60;/p&#62;
&#60;p&#62;(주신부님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_^)
&#60;/p&#62;</description>
</item>
<item>
<title>viamedia on "전례 여행 20 - 전례와 선교"</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710#post-1312</link>
<pubDate>일, 15 1월 2012 14:25:48 +0000</pubDate>
<dc:creator>viamedia</dc:creator>
<guid isPermaLink="false">1312@http://liturgy.skhcafe.org/</guid>
<description>&#60;p&#62;20. 세상의 종말 - 전례와 선교&#60;/p&#62;
&#60;p&#62;“다 이루었다.”&#60;/p&#62;
&#60;p&#62;예수께서 십자가 처형의 막바지에 숨을 거두시며 남기신 말씀이다. 다 이루는 일. 이것이 교회가 말하는 종말의 원래 뜻이다. 부족함 없이 모든 것이 채워지는 하느님의 시간이 종말이다. 그래서 교회는 예수께서 다 이루신 일의 행적을 되돌아 살피며 다시 기억하는 공동체이다. 교회는 오늘과 내일, 하느님께서 만드신 창조세계를 부족함 없이 완성하시려는 일에 참여하는 공동체이다. 교회는 전례 안에서 이 기억과 참여의 행동을 시작하고 몸으로 수련한 뒤 세계로 파송 받는 선교 공동체이다. 그러니 교회는 예수께서 이루신 종말을 전례와 선교 안에서 지금 살면서 하느님 나라를 향해 가는 순례 공동체이다.&#60;/p&#62;
&#60;p&#62;종말에 대한 뿌리 깊은 오해가 있다. 그 극단적 사례가 바로 시한부 종말론자들이다. 예수께서 다시 오실 날짜를 계산하여 그날을 믿고 준비하는 이들이다. 사회에 희망을 둘 수 없고, 교회에서 신뢰를 발견하지 못할 때마다, 그 실망한 이들을 꼬드겨 사익을 챙기는 못된 거짓 혹설이다. 이들은 교회 역사에 되풀이해서 등장했다. 물론 정해진 날짜에 아무런 일이 없어서 웃음거리가 되기 일쑤였다.&#60;/p&#62;
&#60;p&#62;그러나 여러 교회와 지도자가 잘못 가르쳐서 이런 불씨가 생겼다. 심판에 대한 공포로 종말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땅을 세속이라 경멸하고 하늘만 거룩한 것이라고 분리해서 가르친 탓이다. 게다가 세상과 사회에 대한 건전한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교회는 사람들의 절망감에 기름을 붓는다. 시한부 종말론자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이다. 그러니 그들만 나무랄 일이 아니다. 이런 잘못된 이해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반쯤은 그들과 다름없다.&#60;/p&#62;
&#60;p&#62;반면, 전례를 신앙생활의 중심으로 삼는 교회는 다르다. 우리는 성찬기도 안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가로질러 하느님의 시간을 완성하는 구원의 역사를 기억한다. 우리가 한목소리로 외치는 “신앙의 신비” 선포는 이 종말의 뜻을 바르게 세운다.&#60;/p&#62;
&#60;p&#62;“그리스도는 죽으셨고, 그리스도는 부활하셨고, 그리스도는 다시 오십니다.”&#60;/p&#62;
&#60;p&#62;하느님은 성육신하시어 우리와 살며 고통당하다 죽으셨다. 그러나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전례 공동체 안에 함께 하신다.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과 평화를 누리도록 우리를 초대하시고, 주님께서 친히 마련하신 그분의 잔칫상에 먹고 마시도록 한다. 종내에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이 모든 역사는 부족함 없이 거룩하게 완성될 것이다. 이 과정 모두가 하느님 나라의 도래요, 하느님 시간의 완성이요, 종말이라는 선포이다.&#60;/p&#62;
&#60;p&#62;종말은 교리가 아니며, 선포에 머물지도 않는다. 종말은 교회의 경험이다. 예수 안에서 펼쳐진 하느님의 구원 사건을 품은 교회가 그 완성인 하느님 나라를 향해 끝까지 걸어가는 순례 경험이다. 이 순례의 핵심은 반복해서 거행하는 성찬례이다.&#60;/p&#62;
&#60;p&#62;성찬례는 하느님 나라를 미리 맛보는 행동이요, 시간이요, 공간이다. 메시아가 베푸는 잔칫상이다. 잔칫상에 와서 우리는 차별 없이, 부족함 없이 와서 함께 부르게 먹으라고 초대를 받았다. 축성된 음식을 먹고 우리 자신이 축성되어 변화하라는 초대요, 경험이다.&#60;/p&#62;
&#60;p&#62;성찬례 안에서 우리는 여전히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대하고 희망한다. 이미 맛보고 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긴장감이 신앙인의 겸손함을 이끌고, 아직 부족한 현실을 견디며 변화를 꿈꾸고 희망하도록 돕는다.&#60;/p&#62;
&#60;p&#62;성찬례는 미리 맛본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도록 우리를 파송한다. 선교는 어떤 지적 교리나 도덕적 규율을 선전하거나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선교는 성찬례 안에서 우리가 경험한 삼위일체, 그 춤추는 친교의 삶을 우리 몸으로 이 세상에서 증언하는 일이다.&#60;/p&#62;
&#60;p&#62;그러니 전례와 걷는 신앙의 순례 여정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60;/p&#62;
&#60;p&#62;‘종말의 시간이 전례를 통해서 우리 삶에 파고들어온다. 전례를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고, 다시 하느님 나라는 전례, 특히 성찬례를 통해서 우리 안에 들어온다. 전례가 끝나고 우리는 이 종말의 하느님 나라를 가지고 세상 속에 나아간다. 성찬례는 하느님 나라의 성사이다.’&#60;/p&#62;
&#60;p&#62;(성공회 신문 2012년 1월 14일치 6면)&#60;/p&#62;
&#60;p&#62;사례: 지난 1년 동안 “주낙현 신부와 함께 하는 전례 여행”을 사랑하고 격려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여러가지 부족한 점이 많은데도, 많은 분의 관심과 격려로 힘을 얻어 마칠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좋은 지면을 허락해 주신 성공회 신문사와 관계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주낙현 신부 합장.
&#60;/p&#62;</description>
</item>
<item>
<title>viamedia on "전례 여행 19 - 전례와 사회"</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708#post-1309</link>
<pubDate>금, 23 12월 2011 07:00:22 +0000</pubDate>
<dc:creator>viamedia</dc:creator>
<guid isPermaLink="false">1309@http://liturgy.skhcafe.org/</guid>
<description>&#60;p&#62;주낙현 신부와 함께 하는 전례 여행&#60;/p&#62;
&#60;p&#62;19. 성찬례의 인간 - 전례와 사회&#60;/p&#62;
&#60;p&#62;교회와 사회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그리스도교의 여러 교파는 이 질문에 다양하게 답하고 행동했다. 교회는 세속 사회에 전혀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드높은가 하면, 예수님께서 정치와 종교 권력을 저항하고 비판하다 희생당하신 분이므로 사회에 대한 예언자의 목소리를 내는 일은 당연히 교회의 사명이라는 주장도 그에 못지않다. 교회의 사회 참여를 둘러싼 논란은 그 줄다리기가 팽팽하다. 이 일로 교회 안에서는 분란이 일기도 한다.&#60;/p&#62;
&#60;p&#62;그렇다면 전례 전통에 충실한 성공회는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까? 성공회는 그 질문을 좀 다르게 던진다. 교회의 중심 행동인 전례는 사회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다시 말해, 전례 안에서 선포되는 말씀, 그리고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거룩하게 변하는 사건, 함께 모여서 그 축성된 몸을 먹고 나누는 우리는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는가? 성공회 신자는 전례의 사건 속에서 이런 질문에 답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책임 있는 행동을 살피려 한다.&#60;/p&#62;
&#60;p&#62;‘말씀’이란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그리스도이시다. 성서는 ‘말씀이신 하느님-그리스도’께서 일으키신 사건을 우리에게 되새겨주는 그릇이다. 적어도 전례 전통의 교회에서는 ‘말씀의 전례’에서 읽는 성서 독서를 성직자나 신자 개인의 호불호나 멋대로 선택하지 않는다. 세계 여러 교회가 함께 연구하여 지정한 정과표를 따른다. 좋든 싫든 성서에 드러난 말씀을 그대로 듣겠다는 뜻이다. 나를 비판하고 호통치는 대로 받아들이겠다는 말이다. 그 말씀이 사회를 향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이를 피하고서는 말씀을 듣는 신앙인이라 말하기 어렵다.&#60;/p&#62;
&#60;p&#62;모든 전례의 목적은 변화이다. 특히 성찬례는 그 변화를 가장 잘 드러낸다. 전례 참여의 중요한 행동 가운데 하나는 우리 삶의 모든 것들을 제대 앞으로 가져오는 일이다. 우리의 땀과 수고, 우리의 잘못과 상처, 우리의 기쁨과 슬픔, 결국 세계 전체를 제대 앞으로 가져온다. 하느님께서 이 모든 것을 변화시켜 주시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 거룩한 변화가 일어나는 사건 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래서 빵과 포도주는 세계 전체를 상징한다. 성찬례 안에서 하느님은 이 세계 전체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거룩하게 변화시키신다. 이것이 축성이다. 이 변화의 사건을 믿지 않고는 신앙인이라고 말하기 어렵다.&#60;/p&#62;
&#60;p&#62;영성체는 세계 전체가 제대 위에 바쳐져서 거룩하게 변화된 것을 나누어 먹는 행동이다. 우리는 그 변화의 결과를 ‘그리스도의 몸’이라 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몸’이 우리 안에 들어가 우리 몸과 영의 에너지와 피가 되어 우리 몸을 돌아다닌다. 새로운 몸과 피를 받았으니 우리 자신도 변한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우리 몸을 돌도록 허락하지 않으면 우리 몸은 거부반응을 일으켜 몸이 굳고 더는 살아갈 수 없다. 게다가 하나인 ‘그리스도의 몸’을 여럿이 나누어 먹었으니, 교회를 떠나 우리가 들어가 살아가는 세계와 사회도 우리를 통해서 변화와 나눔의 은총이 일어나야만 한다. 이 변화된 그리스도의 몸에 비추어 우리 삶과 우리 사회에 변화가 일어나지도 않고, 우리 자신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살아간다면? 이는 우리가 진정으로 ‘영성체’하지 않았다는 말이다.&#60;/p&#62;
&#60;p&#62;적어도 성공회 전통은 우리가 전례 안에서 변화를 경험하는 만큼, 사회도 그렇게 변할 수 있으며, 변해야 한다는 희망을 고수했다. &#60;/p&#62;
&#60;p&#62;“그리스도인은 전례를 통해서 ‘경제적인 인간’(homo economicus)이나 ‘소비적인 인간’(homo consumericus)이기를 포기한다. 대신 ‘성찬례의 인간’ 즉 ‘나눔의 인간’(homo eucharisticus)으로 변화된다.” 지난 세기 최고의 전례학자 그레고리 딕스(Gregory Dix) 수사 신부의 말이다.&#60;/p&#62;
&#60;p&#62;이것이 전례를 통해서 경험하는 거룩한 변화의 진정한 뜻이며, 전례가 비추는 사회의 비전이다.&#60;/p&#62;
&#60;p&#62;“거룩한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을 예배하려 한다면, 우리는 이제 자신의 성막을 나와, 우리 안에 신비하게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이 세상의 거리로 걸어나가야 한다. 그리고 도시와 마을 사람들 안에서 같은 예수님을 찾아야 한다. 빈민촌에 머무시는 예수님에 대한 측은지심이 없이는 우리는 성막에 있는 예수님을 예배하노라 할 수 없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죽기까지 자신을 바쳤던 선교사 프랭크 웨스턴 주교의 외침이다.&#60;/p&#62;
&#60;p&#62;이런 고민과 전통을 돌아보며, 우리는 우선 교회와 전례와 사회의 관계에 대해서 좀 더 세밀하고 신실하게 물어야 한다. 전례 안에서 읽고 듣는 예언자적인 말씀이 불편하더라도 귀와 마음을 열어 그 도전을 받아들이는가? 사적인 고민뿐만 아니라 사회와 세계의 갈등과 아픔을 제대 위에 봉헌하는가? 하느님께서 그 세속적인 것들을 축성하여 우리에게 거룩한 몸으로 나누어 주실 때, 거리낌 없이 우리 살과 피로 먹고 마시는가? 그리하여 우리 교회와 자신도 그 몸을 모시고 세상 밖에 나가 세계와 사회도 그리스도의 몸이 되도록 실천하는가?  &#60;/p&#62;
&#60;p&#62;(성공회 신문, 2011년 12월 24일자)
&#60;/p&#62;</description>
</item>
<item>
<title>viamedia on "성공회 저자 03 : 케네스 리치 신부"</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568#post-1305</link>
<pubDate>금, 09 12월 2011 05:48:18 +0000</pubDate>
<dc:creator>viamedia</dc:creator>
<guid isPermaLink="false">1305@http://liturgy.skhcafe.org/</guid>
<description>&#60;p&#62;케네스 리치, [하느님 체험] 우리말 번역본에 '부록'이라고 적고 번역했지만, 실은 '후기'이자 이 책 전체를 장별로 요약한 '선언'을 아래와 같이 조금 수정 번역하여 올립니다. 참조하시기 바랍니다.&#60;/p&#62;
&#60;p&#62;&#60;strong&#62;후기:  쇄신된 영성을 향한 선언&#60;/strong&#62;&#60;/p&#62;
&#60;p&#62;1. 쇄신된 그리스도교 영성은 하느님의 비전을 현대 세계에 회복하는 일에 관심한다. 이 영성은 현재의 상황에 의미있는 방법들을 통하여 하느님에 대해서 말하고, 영의 깊은 차원에 대해서 말하려고  노력한다. 이 영성은 겸손하고 신중하게 마르크스주의와 심층 심리학, 풍요로운 자각을 향한 사회적 탐구에서 얻은 통찰을 고려하는 동시에, 그리스도교 영성 전통에 충실하려고 노력한다.&#60;/p&#62;
&#60;p&#62;2. 이 영성은 유대 백성의 삶에 나타난 하느님 경험에 근거한다. 구약성서 연구를 통하여 이 영성은 광야에서 순례하는 백성에게 드러난 하느님의 계시를 증언한다. 이 영성은 하느님의 거룩함과 정의에 대해서 말하며, 개인과 사회의 삶 속에서 그 거룩함과 정의를 추구한다.&#60;/p&#62;
&#60;p&#62;3. 이 영성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중심을 두며, 그리스도 안에 육체로 거하시는 하느님의 충만함을 본다. 이 영성은 예수의 하느님 나라 선포에 충실하려 노력한다. 이 영성은 예수 안에서, 성육신하신 하느님과, 동지인 인간, 즉 드러난 신성과 들어 올려진 인성을 함께 본다. &#60;/p&#62;
&#60;p&#62;4. 이 영성은 신약성서에 나타난 사도적 교회의 신앙을 바라본다. 그것은 인류에게 일치를 주시는 하느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과 화해를 이루신 하느님에 대한 신앙이요, 빛과 사랑의 하느님, 자유를 주시는 성령의 하느님, 그리스도의 몸을 양육하고 세우시는 하느님에 대한 신앙이다. 구약성서와 마찬가지로 신약성서 연구를 통하여 이 영성은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느님에 대해 알려고 노력한다.&#60;/p&#62;
&#60;p&#62;5. 이 영성은 사막의 영성이다. 사막의 경험을 통하여 교회의 관상적 삶을 그리워하며 이를 굳건히 하려고 노력한다. 이 영성은 영성 생활에 똑같이 중요한 홀로됨과 함께함을 같이 추구한다.  &#60;/p&#62;
&#60;p&#62;6. 이 영성은 구름과 어둠의 영성이다. 하느님의 마음에 있는 신비와, 인간과 하느님의 만남 속에 있는 신비를 증언한다. 이 영성은 손쉬운 답변만 내놓는 종교에서 사람들을 이끌어 신앙의 어둔 밤으로 인도하려고 노력한다. 이는 관상적인 영성이다. &#60;/p&#62;
&#60;p&#62;7. 이 영성은 물과 불의 영성이다. 즉 씻어내는 영성, 정화하는 영성, 쇄신하는 영성, 영적인 따스함의 영성이다. 세례의 물과, 성령의 불이라는 상징 속에서, 이 영성은 지속적인 거듭남과 삼키는 불이신 하느님에게서 매일같이 도전받으라는 부르심을 본다. 이는 카리스마적인 영성이다.&#60;/p&#62;
&#60;p&#62;8. 이 영성은 육신이 된 말씀에 근거한 영성이다. 이 영성은 성육신하신 하느님의 진리를 붙잡고, 하느님 자녀의 살과 피 속에 있는 하느님을 찾고 그분을 섬기려고 노력한다. 하느님의 선물인 물질과 인간의 성을 즐거워하고, 인간적인 것 안에서 하느님께 이르는 관문을 본다. 이는 유물론적 영성이다. &#60;/p&#62;
&#60;p&#62;9. 이 영성은 성찬례의 영성이다. 그 중심에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성사인 성찬례 거행이 있다. 이 영성은 성찬례 안에서, 그리고 그분의 본질을 나누는 사람들 속에서 그리스도를 알아본다. 이 영성은 세상 속에서 나눔과 평등의 성찬례적 삶을 선언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므로 이는 공동 생활의 영성이요, 거룩한 나눔의 영성이다. &#60;/p&#62;
&#60;p&#62;10. 이 영성은 고통의 영성이다. 예수의 고난과 죽음에서 복음의 핵심을 찾기 때문이다. 이 영성은 십자가에 처형당한 예수를 선포하고, 십자가의 길을 따르려 한다. &#60;/p&#62;
&#60;p&#62;11. 이 영성은 신비주의 저자들에게 배우면서 하느님이 모든 실재와 우리 존재의 근거임을 본다. 이 영성은 참된 그리스도교 신비주의를 그리스도교 신학의 필수 요소로 회복하고 증진하려고 노력한다. 이 영성은 영적 지도와 내적 생활을 심화하는 사목을 발견하여 증진하며, 신앙생활의 신비적 차원과 정치적 차원을 함께 묶으려고 노력한다. &#60;/p&#62;
&#60;p&#62;12. 이 영성은 여성의 역사에 나타난 하느님 경험, 성서와 전통 속에서 하느님에게 여성의 이름을 붙였던 일, 그동안 잊혀지고 무시당했던 여성적 방식으로 하느님을 경험하고 묘사한 저자들의 통찰 등을 진지하게 다룬다. 이 영성은 현대 여성 운동이 그리스도교 비판하는 소리를 귀 기울이고, 배우려고 노력한다. &#60;/p&#62;
&#60;p&#62;13. 이 영성은 정의와 평화의 영성이다. 이 영성은 모든 사람을 위한 정의를 추구하며, 인종 차별을 비롯한 여러 지배에 반대하는 투쟁 속에서, 세계평화와 핵무장 해제 군축을 도모하는 운동 속에서, 가난과 불평등을 없애는 캠페인 속에서 하느님을 알고자 하고 그분을 따르고자 한다. 좀 더 인간적인 세상을 만드려는 투쟁 속에서, 이 쇄신된 영성은 하느님의 얼굴을 알아보며, 헤아릴 수 없는 하느님이 주시는 평화를 나눈다. &#60;/p&#62;
&#60;p&#62;Kenneth Leech, &#60;em&#62;Experiencing God&#60;/em&#62;, 1985, 421f.
&#60;/p&#62;</description>
</item>
<item>
<title>viamedia on "전례 여행 18 - 성무일도와 성찬례"</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706#post-1304</link>
<pubDate>금, 09 12월 2011 05:18:56 +0000</pubDate>
<dc:creator>viamedia</dc:creator>
<guid isPermaLink="false">1304@http://liturgy.skhcafe.org/</guid>
<description>&#60;p&#62;주낙현 신부와 함께 하는 전례 여행&#60;/p&#62;
&#60;p&#62;18. 성전의 두 기둥 - 성무일도와 성찬례&#60;/p&#62;
&#60;p&#62;천하장사 삼손은 들릴라의 꼬임에 넘어가 머리칼을 잘리고 눈까지 빼앗긴다. 결국, 그는 불레셋 사람의 신전 잔치에 무기력하게 끌려가 조롱거리가 된다. 눈멀어 절망 속에 있는 삼손은 주위 사람에게 그 신전을 떠받치는 두 기둥 사이에 자신을 데려다 달라고 부탁한다. 그는 하느님께 마지막으로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기도하고는 두 기둥을 밀어 넘어뜨린다. 신전은 완전히 무너지고 만다. &#60;/p&#62;
&#60;p&#62;이 비극적인 마지막 순간은 교회의 삶에 역설적인 질문을 던진다. 교회의 삶이라는 성전을 지탱하는 두 기둥은 무엇인가?&#60;/p&#62;
&#60;p&#62;전례 전통의 교회에서 교회 생활의 두 기둥은 단연 성무일도와 성찬례이다. 이 두 전례 행태는 초기 그리스도인들 이래 교회 전통 속에서 그리스도교 영성의 가장 깊은 젖줄이었다. 현대 교회의 여러 예배 모양도 바로 이 두 젖줄에서 비롯한다. 건강한 전례 전통 교회를 가꾸려면, 성무일도와 성찬례의 뜻과 실천, 그리고 두 전례의 관계를 잘 살피며 실천해야 한다.&#60;/p&#62;
&#60;p&#62;성무일도는 조금 무거운 번역어이다. 성무일도라는 말은 매일 기도가 수도원의 발전에 따라 수도자들이 매일 정해진 시간에 따라 드리는 의무적 기도라는 뜻을 담은 용어이다. 매일 기도는 참여자와 열리는 곳에 따라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발전했다. 하나는 일반 교회의 매일 기도요, 다른 하나는 수도원의 매일 기도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교회 전통은 대부분 사라지고 수도원 전통만이 살아남았다. 다시 말해 일반 교회에서는 한동안 매일 기도가 사라졌다는 말이다.&#60;/p&#62;
&#60;p&#62;성무일도를 다시 교회의 예배 생활에 회복한 사람은 성공회 전례 개혁가 토마스 크랜머 대주교였다. 크랜머는 수도자의 전유물이 된 성무일도를 대폭 개정하여 공동기도서에 실어 모든 신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아침의 여러 기도를 종합해서 아침 기도(조도)를, 저녁과 밤의 여러 기도를 엮어서 저녁 기도(만도)를 마련했다. 1930년대 주일 성찬례 회복 운동이 있기 전까지, 아침 기도는 주일 예배를, 저녁기도는 성가대가 함께 하는 아름다운 노래 예배(이븐송)로 자리 잡아 성공회 영성을 키웠다.&#60;/p&#62;
&#60;p&#62;번역어와 역사가 어떻든, 성무일도는 세 가지 구성 요소가 뚜렷하다. 즉 말씀 읽기와 찬양, 그리고 세상과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도이다. 교회 전통이 찬양에 좀 더 강조점을 둔 반면, 수도원 전통은 말씀 읽기를 강조하곤 했다. ‘거룩한 독서’(렉시오 디비나)가 그것이다. 세상과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는 늘 성무일도의 핵심을 이뤘다. 그리스도인은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늘 세상과 남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들이다.&#60;/p&#62;
&#60;p&#62;성찬례는 그리스도교 예배의 핵심이다. 그리스도의 부활 신비를 기뻐하며, 그 부활 사건을 통해서 이루신 구원에 감사하는 공동체 예배이기 때문이다. 성무일도는 성찬례를 준비하고, 성찬례를 다시 일상의 삶으로 확장한다. 성찬례를 둘러싼 준비와 확장이 바로 성무일도의 위치요, 역할이다. 성찬례가 성무일도의 중요한 세 요소 - 독서, 찬양, 기도 - 를 포함하면서(말씀의 전례) 성찬기도와 영성체로 구성된 것(성찬의 전례)은, 주일 성찬례를 통해서 매일의 기도 생활을 완성한다는 뜻이다. 성찬례 막바지에 세상 속으로 파송 받은 우리는 매일 기도 생활과 더불어 선교 사명을 실천한다.&#60;/p&#62;
&#60;p&#62;매일의 성무일도와 주일의 성찬례는 우리 삶을 새로운 시간으로 나눠 주기적으로 기도하게 한다. 그런 탓에 성무일도를 ‘시간 전례’라고도 부른다. 주간의 매일과 주일을 관통하는 주기적인 리듬감이 우리 기도 생활을 이룰 때, 우리는 몸에 밴 전례 생활을 할 수 있다. 일찍이 사제요 시인이었던 조오지 허버트는 이렇게 노래했다(1663년).&#60;/p&#62;
&#60;p&#62;“그저 하루만이 아니라, 칠일 동안 내내 / 내가 주님을 찬양하리니 / 내 비록 하늘에 있지 않더라도, 마음을 들어 / 주님께 올리리라.” &#60;/p&#62;
&#60;p&#62;허버트 신부는 성공회 영성이 매일의 찬양, 말씀 읽기와 기도, 그리고 주일의 성찬례에 뿌리 내리고 있다고 확신했다. 이와 더불어 교회력이 비추는 구원의 역사라는 새로운 시간에 우리 몸과 마음을 맡기는 일이 우리를 봉헌하는 삶이라고 가르쳤다. 이러한 시간의 리듬에 맞춘 전례 생활이 그리스도인의 영성을 빚어낸다. &#60;/p&#62;
&#60;p&#62;한편, 언젠가부터 우리 교회에서는 주중의 성무일도가 사라지고 매일 성찬례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매일 성찬례가 굳이 성공회의 오랜 전통이라고 할 수 없을지라도, 이미 널리 퍼져 신앙생활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면 좋은 일이다. 다만, 이로써 교회 전례 전통의 다른 한 기둥인 성무일도가 퇴색한다면 몹시 안타까운 일이다. 세계 곳곳에서 주일 성찬례의 회복과 더불어, 성무일도에 대한 관심과 실천이 새롭게 일어나는 흐름을 보노라니 더욱 그렇다.&#60;/p&#62;
&#60;p&#62;성공회 신앙 전통의 두 기둥이 튼튼하게 서서 우리 교회의 전례와 신앙을 올곧게 떠받치고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60;/p&#62;
&#60;p&#62;(성공회 신문 2011년 12월 10일자 6면)
&#60;/p&#62;</description>
</item>
<item>
<title>spiritus on "성공회 저자 03 : 케네스 리치 신부"</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568#post-1303</link>
<pubDate>목, 08 12월 2011 16:05:15 +0000</pubDate>
<dc:creator>spiritus</dc:creator>
<guid isPermaLink="false">1303@http://liturgy.skhcafe.org/</guid>
<description>&#60;p&#62;(번역서 추가)&#60;/p&#62;
&#60;p&#62;홍병룡(장신대 영성학 교수) 옮김,『하나님 체험』 청림출판, 2011. (색인포함, 845쪽)&#60;br /&#62;
Experiencing God: Theology as Spirituality. Wipf and Stock Publishers, 1981.
&#60;/p&#62;</description>
</item>
<item>
<title>Elyot on "번역: 로완 윌리엄스 대주교, 기도란 무엇인가?"</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705#post-1282</link>
<pubDate>월, 28 11월 2011 02:10:59 +0000</pubDate>
<dc:creator>Elyot</dc:creator>
<guid isPermaLink="false">1282@http://liturgy.skhcafe.org/</guid>
<description>&#60;p&#62;&#60;a href=&#34;http://www.archbishopofcanterbury.org/pages/prayer.html&#34; rel=&#34;nofollow&#34;&#62;http://www.archbishopofcanterbury.org/pages/prayer.html&#60;/a&#62;&#60;/p&#62;
&#60;p&#62;Q: 대주교님께 여쭙고 싶습니다. 기도란 무엇입니까?&#60;/p&#62;
&#60;p&#62;A: 기본적으로 기도란, 하느님과 연결되는 것이지요. 하느님이 다가오실 수 있는 곳에 자신을 두는 것이고, 하느님께 시간을 드리는 것이며, 자신을 하느님께, 하느님의 마음에 맞추는 것입니다. &#60;/p&#62;
&#60;p&#62;Q: 저는 하느님께서 저와, 하루 종일, 제가 하는 모든 일에 함께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왜 기도를 할 필요가 있는 거죠?&#60;/p&#62;
&#60;p&#62;A: 당신이 휴일에 가족과 함께 있을 때... 그들은 하루 종일 당신과 함께 있죠? 당신은 그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족들과 함께 테이블을 마주 하고 앉아서, 여기 우리가 있어, 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면, 그건 정말 나쁜 가족 휴일이겠지요. 기도도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테이블을 마주 하고 앉아서, 여기 있어요, 하며 시간을 함께 즐기는 거지요. &#60;/p&#62;
&#60;p&#62;Q: 우리가 기도할 때 취해야 할, 특별한 방법이 있나요? 우리는 앉아서, 두 손을 무릎 위에 두거나, 두 손을 모아야 하나요? &#60;/p&#62;
&#60;p&#62;A: 저는 사실, 기도할 때 몸이 어떤 자세를 취하든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몸을 통해 우리 자신을 표현하지요. 저는 당신과 얘기할 때, 손도 움직이고, 얼굴 표정도 계속 변하고, 몸 자세도 달라집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스스로에게 이런 걸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난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가? 어떨 때, 저는 흠모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무릎을 꿇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들이 하듯이 [...못들음] 할 수도 있습니다. 어떨 때, 당신은 단지 듣고 있다는 것,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앉아서, 자신을 가라앉히고, 자신에게 집중하겠지요. 그리고 당신은, 당신 귀가 자라나는 것처럼 느껴야 합니다. (웃음) 그리고 숨을 들이쉬며, 하느님이 거기에 계시도록 합니다.
&#60;/p&#62;</description>
</item>
<item>
<title>viamedia on "전례 여행 17 - 삼위일체와 전례"</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704#post-1281</link>
<pubDate>금, 25 11월 2011 09:10:26 +0000</pubDate>
<dc:creator>viamedia</dc:creator>
<guid isPermaLink="false">1281@http://liturgy.skhcafe.org/</guid>
<description>&#60;p&#62;주낙현 신부와 함께 하는 전례 여행&#60;/p&#62;
&#60;p&#62;17. 춤추시는 하느님 - 삼위일체와 전례&#60;/p&#62;
&#60;p&#62;삼위일체 교리는 지난 2천 년 교회 역사 동안 많은 신학자와 신앙인을 괴롭힌 신학 주제다. 내로라 하는 대학자들도 헷갈려서 많은 이단 논쟁이 여기서 나오곤 했다. 그러니 그 교리를 여전히 잘 설명하지 못하는 신학자, 성직자나, 잘 이해하지 못하는 신자라 해서 자기 머리를 쥐어박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고 삼위일체 교리를 성서의 명확한 근거 없이 몇 사람들이 만들어 강요한 것이라고 내칠 수 없다. 그러기에는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의 활동이 매우 다채롭고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노라고 성서와 교회가 증언하기 때문이다. &#60;/p&#62;
&#60;p&#62;교리에 앞서 경험과 증언이 있었다. 난해한 삼위일체 교리가 확정되기 이전에 삼위일체의 행동이 먼저 있었다. 창조하시는 하느님, 성육신하시어 구원하시는 그리스도,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님의 활동이 먼저 있었다. 이 구원의 행동을 많은 초대 그리스도인이 경험하고 증언했다. 이를 다시 기억하고 새로운 상황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경험하며 물려주는 공간이 바로 전례였다. 이 경험을 좀 더 정교한 논리를 써서 교리로 만든 일은 나중 일이었다. 이 선후를 바꾸면 오해가 생긴다.&#60;/p&#62;
&#60;p&#62;세례와 성찬례는 삼위일체의 행동을 되새겨 준다. 세례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선물처럼 주어진다. 이 삼위일체 이름이 있고 없음으로 세례가 유효한지 무효인지 판가름한다. 성찬기도의 절정은 막바지 삼위일체 영광송이다. “전능하신 하느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과 하나되어, 온갖 영예와 영광을 영원토록 받으시나이다.”&#60;/p&#62;
&#60;p&#62;왜 세례와 성찬례는 이 삼위일체 이름을 고집하는가? 성찬기도 마침 영광송이 드러내듯이, 하느님과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나누는 관계 때문이다. 서로를 통해, 서로 함께, 서로 안에서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것이 하느님의 삶이다. 그러니 하나의 세례를 나눈 그리스도인들은 성찬례와 세상의 삶 속에서 이와 닮은 관계를 누리며 살아야 한다. 이런 공동체의 삶이 바로 삼위일체의 삶이다.&#60;/p&#62;
&#60;p&#62;전례 공동체로 모인 신자들은 거듭해서 삼위일체 하느님을 예배한다. 전례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성령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해달라고 청원한다. 이 삼위일체의 전례가 우리를 공동체로 이끌며, 공동체의 신앙을 만들고, 이 신앙을 세상에 적용하며 살아가도록 인도한다. 이런 전례의 경험이 없으면 삼위일체는 우리 삶과는 무관하게 허공을 떠도는 난해한 교리가 된다.&#60;/p&#62;
&#60;p&#62;다시 말해, 삼위일체는 교리로 설명할 이론이 아니라, 그 삶으로 드러나야 할 행동이다. 그 두 차원은 ‘함께 나누는 친교’(코이노니아)이며, ‘서로 뒤섞여 하나가 되는 춤’(페리코레시스)이다. 15세기 이콘 하나와 20세기 그림 하나는 이를 잘 보여준다. &#60;/p&#62;
&#60;p&#62;&#38;lt;그림&#38;gt; 안드레이 류블레프 - 삼위일체&#60;br /&#62;
&#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File:Angelsatmamre-trinity-rublev-1410.jpg&#34; rel=&#34;nofollow&#34;&#62;http://en.wikipedia.org/wiki/File:Angelsatmamre-trinity-rublev-1410.jpg&#60;/a&#62;&#60;/p&#62;
&#60;p&#62;잘 알려진 15세기 러시아 삼위일체 이콘은 원래 낯선 나그네를 환대했던 아브라함 이야기(창세 18장)를 그린 것이다. 낯선 떠돌이를 극진하게 대접했던 아브라함은 이 세 손님이 친교를 누리는 시간과 장소를 마련했다. 이 친교의 현장이 바로 삼위일체 이콘이 되었다. 이 이콘을 설명하기보다는, 이것이 비추는 친밀한 교제를 응시하는 일이 먼저다.&#60;/p&#62;
&#60;p&#62;&#38;lt;그림&#38;gt; 앙리 마티스 - 춤&#60;br /&#62;
&#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File:Matissedance.jpg&#34; rel=&#34;nofollow&#34;&#62;http://en.wikipedia.org/wiki/File:Matissedance.jpg&#60;/a&#62;&#60;/p&#62;
&#60;p&#62;20세기 초 화가 앙리 마티스는 ‘춤’이라는 그림을 그렸다. 옷을 입지 않은 여럿이 손을 맞잡고 원을 그리며 춤을 춘다. 어떤 이들은 나체는 우리가 태어난 삶의 본연이고, 서로 마주 잡은 손은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고, 원은 그들이 만든 공동체를 의미한다고 풀이한다. 그러나 춤을 추는 운동이 더 중요하다. 신앙은 뜻풀이가 아니라 행동이라는 말이다. 삼위일체는 춤추는 하느님이시며, 우리를 춤의 공동체가 되도록 부르신다. &#60;/p&#62;
&#60;p&#62;삼위일체의 전례가 가진 이 두 가지 차원은 교회에 선교적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낯선 이들을 환대하는 공동체인가? 우리는 낯선 이들과 함께 손을 붙잡고 춤을 출 수 있는 공동체인가? 우리는 전례를 이런 삼위일체의 춤으로 만들 수 있는가?&#60;/p&#62;
&#60;p&#62;이 질문과 씨름할 때, 레너드 코헨의 노래가 들린다.&#60;/p&#62;
&#60;p&#62;“불타는 바이올린 선율과 당신의 아름다움에 맞추어, 나와 춤을 춰요. 내가 모든 두려움을 넘어서 평온으로 모여들 때까지, 나와 춤을 춰요. 당신의 손으로 나를 만지고, 사랑이 끝날 때까지, 나와 춤을 춰요. 사랑이 끝날 때까지, 나와 춤을 춰요.”&#60;/p&#62;
&#60;p&#62;&#60;a href=&#34;http://www.youtube.com/watch?v=1MsgJsin3p0&#34; rel=&#34;nofollow&#34;&#62;http://www.youtube.com/watch?v=1MsgJsin3p0&#60;/a&#62;&#60;/p&#62;
&#60;p&#62;(성공회 신문 2011년 11월 26일자 6면)
&#60;/p&#62;</description>
</item>
<item>
<title>Elyot on "번역: 프라도 미술관의 회화들."</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693&#038;page=3#post-1280</link>
<pubDate>토, 19 11월 2011 22:26:57 +0000</pubDate>
<dc:creator>Elyot</dc:creator>
<guid isPermaLink="false">1280@http://liturgy.skhcafe.org/</guid>
<description>&#60;p&#62;&#60;a href=&#34;http://www.museodelprado.es/en/the-collection/online-gallery/on-line-gallery/zoom/1/obra/the-immaculate-conception/oimg/0/&#34;&#62;&#60;img src=&#34;http://www.museodelprado.es/typo3temp/pics/48a469a436.jpg&#34;&#62;&#60;/a&#62;&#60;/p&#62;
&#60;p&#62;&#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Giovanni_Battista_Tiepolo&#34;&#62;티에폴로, 지암바티스타&#60;/a&#62;&#60;/p&#62;
&#60;p&#62;&#60;a href=&#34;http://www.museodelprado.es/en/the-collection/online-gallery/on-line-gallery/obra/the-immaculate-conception/&#34;&#62;무염시태&#60;/a&#62;&#60;/p&#62;
&#60;p&#62;1767 - 1769&#60;/p&#62;
&#60;p&#62;281 cm x 155 cm&#60;/p&#62;
&#60;p&#62;동정녀 마리아가 세계의 구 (球) 와 초승달 위에, 원죄의 뱀을 밟고, 성령의 비둘기에게 관을 받으며 나타난다. 그녀는 천사들에게, 그리고 관습적으로 그녀를 상징하는 몇가지 것들, 즉 백합꽃 가지, 종려나무 가지, 분수, 그리고 거울에 둘러싸여 있다. 이 장면은 동정녀의, 원죄 없는 무염시태를 표현하는 전통적인 방식을 보여준다.&#60;/p&#62;
&#60;p&#62;이 작품은 &#60;a href=&#34;http://es.wikipedia.org/wiki/Real_Sitio_y_Villa_de_Aranjuez&#34;&#62;아랑훼즈&#60;/a&#62;의 &#60;a href=&#34;http://es.wikipedia.org/wiki/Convento_de_San_Pascual_(Aranjuez)&#34;&#62;성 파스쿠알 교회&#60;/a&#62;를 위해, 왕명으로 위촉되었다.&#60;/p&#62;
&#60;p&#62;이 유화의 스케치는 런던의 &#60;a href=&#34;http://www.courtauld.ac.uk/index.html&#34;&#62;코톨드 연구소&#60;/a&#62; 갤러리에 있다.
&#60;/p&#62;</description>
</item>
<item>
<title>Elyot on "BBC 라디오 3 의 &#60;Choral Evensong&#62;."</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696&#038;page=2#post-1279</link>
<pubDate>토, 19 11월 2011 22:18:46 +0000</pubDate>
<dc:creator>Elyot</dc:creator>
<guid isPermaLink="false">1279@http://liturgy.skhcafe.org/</guid>
<description>&#60;p&#62;&#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File:Lincoln_Cathedral_from_Castle_Hill.jpg&#34;&#62;&#60;img src=&#34;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2/27/Lincoln_Cathedral_from_Castle_Hill.jpg/800px-Lincoln_Cathedral_from_Castle_Hill.jpg&#34;&#62;&#60;/a&#62;&#60;/p&#62;
&#60;p&#62;&#60;a href=&#34;http://www.bbc.co.uk/programmes/b01757vx&#34;&#62;Live from Lincoln Cathedral on the Eve of the Feast of St Hugh of Lincoln.&#60;/a&#62;&#60;br /&#62;
Introit: Christe Jesu, pastor bone (John Taverner)&#60;br /&#62;
Responses: Tomkins&#60;br /&#62;
Hymn: O God, thy loving care for man (Exultet caelum laudibus)&#60;br /&#62;
Psalms: 133, 134, 135 (Ley, Stainer, South)&#60;br /&#62;
First Lesson: Ecclesiasticus 50 vv1-22&#60;br /&#62;
Canticles: The Fifth Service (Tomkins)&#60;br /&#62;
Second Lesson: Hebrews 12 vv18-end&#60;br /&#62;
Anthem: Wie lieblich sind deine Wohnungen (Brahms)&#60;br /&#62;
Hymn: Come, lift your joyful voices (Ellacombe)&#60;br /&#62;
Organ Voluntary: Allegro from Symphony no.2 op.20 (Vierne)&#60;br /&#62;
Aric Prentice (Director of Music)&#60;br /&#62;
Colin Walsh (Organist).&#60;/p&#62;
&#60;p&#62;&#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File:LincCathplanDehio.jpg&#34;&#62;&#60;img src=&#34;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d/d5/LincCathplanDehio.jpg/800px-LincCathplanDehio.jpg&#34;&#62;&#60;/a&#62;&#60;/p&#62;
&#60;p&#62;&#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File:Lincoln-028.jpg&#34;&#62;&#60;img src=&#34;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3/30/Lincoln-028.jpg/800px-Lincoln-028.jpg&#34;&#62;&#60;/a&#62;&#60;/p&#62;
&#60;p&#62;&#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File:Inside_Lincoln.jpg&#34;&#62;&#60;img src=&#34;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b/b0/Inside_Lincoln.jpg&#34;&#62;&#60;/a&#62;&#60;/p&#62;
&#60;p&#62;&#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File:Lincoln-038.jpg&#34;&#62;&#60;img src=&#34;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e/e6/Lincoln-038.jpg/450px-Lincoln-038.jpg&#34;&#62;&#60;/a&#62;&#60;/p&#62;
&#60;p&#62;&#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File:Main_door,_Lincoln_Cathedral.JPG&#34;&#62;&#60;img src=&#34;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en/thumb/a/a3/Main_door%2C_Lincoln_Cathedral.JPG/800px-Main_door%2C_Lincoln_Cathedral.JPG&#34;&#62;&#60;/a&#62;&#60;/p&#62;
&#60;p&#62;&#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File:Main_front_of_Lincoln_Cathedral,_2009.jpg&#34;&#62;&#60;img src=&#34;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f/fa/Main_front_of_Lincoln_Cathedral%2C_2009.jpg/800px-Main_front_of_Lincoln_Cathedral%2C_2009.jpg&#34;&#62;&#60;/a&#62;
&#60;/p&#62;</description>
</item>
<item>
<title>Elyot on "BBC 라디오 3 의 &#60;Choral Evensong&#62;."</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696#post-1278</link>
<pubDate>토, 19 11월 2011 22:12:32 +0000</pubDate>
<dc:creator>Elyot</dc:creator>
<guid isPermaLink="false">1278@http://liturgy.skhcafe.org/</guid>
<description>&#60;p&#62;&#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File:Ely_Cathedral_3.jpg&#34;&#62;&#60;img src=&#34;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3/35/Ely_Cathedral_3.jpg/450px-Ely_Cathedral_3.jpg&#34;&#62;&#60;/a&#62;&#60;/p&#62;
&#60;p&#62;&#60;a href=&#34;http://www.bbc.co.uk/programmes/b016vpxw&#34;&#62;From Ely Cathedral&#60;/a&#62;&#60;br /&#62;
Introit: Never weather beaten sail (Richard Shephard)&#60;br /&#62;
Responses: Sumsion&#60;br /&#62;
Psalms: 47, 48, 49 (Beckwith, Elvey, Walmisley)&#60;br /&#62;
Hymn: Christ mighty Saviour, light of all creation (Iste confessor)&#60;br /&#62;
First Lesson: Leviticus 26 vv3-13&#60;br /&#62;
Magnificat and Nunc Dimittis in C sharp minor (Paul Edwards)&#60;br /&#62;
Second Lesson: Titus 2vv1-10&#60;br /&#62;
Anthem: They that go down to the sea in ships (Sumsion)&#60;br /&#62;
Organ Voluntary: Toccata from Plymouth Suite (Whitlock)&#60;br /&#62;
Sarah MacDonald (Director of Music)&#60;br /&#62;
Oliver Hancock (Organist).&#60;/p&#62;
&#60;p&#62;&#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File:EB_1911_Plan_of_Ely_Cathedral.png&#34;&#62;&#60;img src=&#34;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7/72/EB_1911_Plan_of_Ely_Cathedral.png/287px-EB_1911_Plan_of_Ely_Cathedral.png&#34;&#62;&#60;/a&#62;&#60;/p&#62;
&#60;p&#62;&#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File:Peter_gunning_monument.jpg&#34;&#62;&#60;img src=&#34;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2/20/Peter_gunning_monument.jpg&#34;&#62;&#60;/a&#62;&#60;/p&#62;
&#60;p&#62;&#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File:TheNave.JPG&#34;&#62;&#60;img src=&#34;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en/thumb/7/7a/TheNave.JPG/800px-TheNave.JPG&#34;&#62;&#60;/a&#62;&#60;/p&#62;
&#60;p&#62;&#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File:High_alter_ely.jpg&#34;&#62;&#60;img src=&#34;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2/2a/High_alter_ely.jpg/600px-High_alter_ely.jpg&#34;&#62;&#60;/a&#62;&#60;/p&#62;
&#60;p&#62;&#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File:Ely_Cathedral_colourful_stained_glass.jpg&#34;&#62;&#60;img src=&#34;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en/thumb/7/78/Ely_Cathedral_colourful_stained_glass.jpg/380px-Ely_Cathedral_colourful_stained_glass.jpg&#34;&#62;&#60;/a&#62;&#60;/p&#62;
&#60;p&#62;&#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File:ElyElevDehio.jpg&#34;&#62;&#60;img src=&#34;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d/d5/ElyElevDehio.jpg&#34;&#62;&#60;/a&#62;&#60;/p&#62;
&#60;p&#62;&#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File:Ely_Cathedral_From_Air.jpg&#34;&#62;&#60;img src=&#34;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2/25/Ely_Cathedral_From_Air.jpg&#34;&#62;&#60;/a&#62;
&#60;/p&#62;</description>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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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Elyot on "BBC 라디오 3 의 &#60;Choral Evensong&#62;."</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696#post-1277</link>
<pubDate>토, 19 11월 2011 22:01:48 +0000</pubDate>
<dc:creator>Elyot</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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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60;p&#62;&#60;a href=&#34;http://ja.wikipedia.org/wiki/%E3%83%95%E3%82%A1%E3%82%A4%E3%83%AB:WestminsterCathedralFull.jpg&#34;&#62;&#60;img src=&#34;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0/05/WestminsterCathedralFull.jpg/450px-WestminsterCathedralFull.jpg&#34;&#62;&#60;/a&#62;&#60;/p&#62;
&#60;p&#62;&#60;a href=&#34;http://www.bbc.co.uk/programmes/b016kf27&#34;&#62;Solemn Requiem Mass for the Faithful Departed from Westminster Cathedral.&#60;/a&#62;&#60;br /&#62;
Introit: Requiem æternam (Victoria)&#60;br /&#62;
First Lesson: Isaiah 25vv6-9&#60;br /&#62;
Gradual: Requiem æternam (Victoria)&#60;br /&#62;
Second Lesson: Matthew 11:25-30&#60;br /&#62;
Homily: Fr Alexander Master&#60;br /&#62;
Offertory: Domine Iesu Christe (Victoria)&#60;br /&#62;
Sanctus (Victoria)&#60;br /&#62;
Agnus Dei (Victoria)&#60;br /&#62;
Communion: Lux aeterna (Victoria)&#60;br /&#62;
Martin Baker (Master of Music).&#60;/p&#62;
&#60;p&#62;&#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Westminster_Cathedral&#34;&#62;웨스트민스터 대성당 (가장 고귀하신 피의 수도 대성당).&#60;/a&#62;&#60;/p&#62;
&#60;p&#62;잉글랜드와 웨일즈 천주교의 모교회. 웨스트민스터 대주교의 주교좌이며, &#34;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고귀하신 피&#34; 에 봉헌되었다. 영국에서 천주교 사제들의 위계적 구성은 19세기 말에 겨우 막 복원된 상태였으며, 초대 추기경 와이즈먼을 추모하며 성당 기금이 처음 마련되었다. 2대 추기경 매닝이 1884년에, 원래 감옥이 있던 자리인 현재 땅을 구입하였다. 1867년과 1892년의 두 차례에 걸친 공사 시도가 실패한 후, 1895년에, 3대 추기경 본의 주도로, 건축가 존 프란시스 벤틀리의 설계에 의하여, 비잔틴 양식의 영향을 많이 받은 디자인으로 공사가 시작되었다. 1903년에 문을 열었으나, 경제적인 이유로 인해 내부 장식은 아직 시작하지 못한 상태였으며, 이 공사는 여전히 진행 중에 있다.&#60;/p&#62;
&#60;p&#62;&#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File:Westminster_Cathedral_IMG.jpg&#34;&#62;&#60;img src=&#34;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e/e1/Westminster_Cathedral_IMG.jpg/578px-Westminster_Cathedral_IMG.jpg&#34;&#62;&#60;/a&#62;&#60;/p&#62;
&#60;p&#62;&#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File:Westminster_Cathedral_4227r.jpg&#34;&#62;&#60;img src=&#34;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f/f6/Westminster_Cathedral_4227r.jpg/450px-Westminster_Cathedral_4227r.jpg&#34;&#62;&#60;/a&#62;&#60;/p&#62;
&#60;p&#62;&#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File:Westminster_Cathedral,_London_-_02.jpg&#34;&#62;&#60;img src=&#34;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f/fc/Westminster_Cathedral%2C_London_-_02.jpg&#34;&#62;&#60;/a&#62;
&#60;/p&#62;</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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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Elyot on "BBC 라디오 3 의 &#60;Choral Evensong&#62;."</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696#post-1276</link>
<pubDate>토, 19 11월 2011 21:54:43 +0000</pubDate>
<dc:creator>Elyot</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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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60;p&#62;&#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File:Merton_College_Chapel_from_just_north_of_the_Meadow.jpg&#34;&#62;&#60;img src=&#34;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9/93/Merton_College_Chapel_from_just_north_of_the_Meadow.jpg/800px-Merton_College_Chapel_from_just_north_of_the_Meadow.jpg&#34;&#62;&#60;/a&#62;&#60;/p&#62;
&#60;p&#62;&#60;a href=&#34;http://www.bbc.co.uk/programmes/b0167v06&#34;&#62;From the Chapel of Merton College, Oxford&#60;/a&#62;&#60;br /&#62;
Introit: O quam gloriosum (Victoria)&#60;br /&#62;
Responses: Smith&#60;br /&#62;
Psalm: 119 vv145-176 (Murrill, Lang, Knight, Buck)&#60;br /&#62;
First Lesson: Baruch 5&#60;br /&#62;
Canticles: Howells in G&#60;br /&#62;
Second Lesson: Mark 1 vv1-11&#60;br /&#62;
Anthem: Valiant for Truth (Vaughan Williams)&#60;br /&#62;
Hymn: When all thy mercies, O my God (Contemplation)&#60;br /&#62;
Organ Voluntary: Kyrie, Gott heiliger Geist BWV 671 (Bach)&#60;br /&#62;
Benjamin Nicholas and Peter Phillips (Directors of Music)&#60;br /&#62;
Anna Steppler (Organ Scholar).&#60;/p&#62;
&#60;p&#62;&#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File:Merton_College_chapel_organ.jpg&#34;&#62;&#60;img src=&#34;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8/86/Merton_College_chapel_organ.jpg/800px-Merton_College_chapel_organ.jpg&#34;&#62;&#60;/a&#62;&#60;/p&#62;
&#60;p&#62;&#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File:Merton_College_and_chapel_from_St_Marys.JPG&#34;&#62;&#60;img src=&#34;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d/d0/Merton_College_and_chapel_from_St_Marys.JPG/800px-Merton_College_and_chapel_from_St_Marys.JPG&#34;&#62;&#60;/a&#62;
&#60;/p&#62;</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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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Elyot on "BBC 라디오 3 의 &#60;Choral Evensong&#62;."</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696#post-1275</link>
<pubDate>토, 19 11월 2011 21:43:05 +0000</pubDate>
<dc:creator>Elyot</dc:creator>
<guid isPermaLink="false">1275@http://liturgy.skhcafe.org/</guid>
<description>&#60;p&#62;&#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File:Westminster_Abbey_London_900px.jpg&#34;&#62;&#60;img src=&#34;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8/83/Westminster_Abbey_London_900px.jpg/400px-Westminster_Abbey_London_900px.jpg&#34;&#62;&#60;/a&#62;&#60;/p&#62;
&#60;p&#62;&#60;a href=&#34;http://www.bbc.co.uk/programmes/b015ndgr&#34;&#62;From Westminster Abbey on the Eve of the Feast of Edward the Confessor&#60;/a&#62;&#60;br /&#62;
Introit: Os justi meditabitur (Bruckner)&#60;br /&#62;
Responses: Matthew Martin&#60;br /&#62;
Psalms: 98, 99 (Elvey, Morley)&#60;br /&#62;
First Lesson: Ecclesiasticus 2 vv7-18&#60;br /&#62;
Canticles: The Second Service (Leighton)&#60;br /&#62;
Second Lesson: 1 Corinthians 1 vv18-end&#60;br /&#62;
Anthem: Give unto the Lord (Elgar)&#60;br /&#62;
Hymn: Christ is the King (Vulpius)&#60;br /&#62;
Organ Voluntary: Prelude and Fugue in B flat Op 35 no 6 (Mendelssohn)&#60;br /&#62;
James O'Donnell (Organist and Master of the Choristers)&#60;br /&#62;
Robert Quinney (Sub Organist).&#60;/p&#62;
&#60;p&#62;&#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File:London_westminster_1894.jpg&#34;&#62;&#60;img src=&#34;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7/78/London_westminster_1894.jpg/419px-London_westminster_1894.jpg&#34;&#62;&#60;/a&#62;&#60;/p&#62;
&#60;p&#62;&#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File:Westminster_Abbey_by_Canaletto,_1749.jpg&#34;&#62;&#60;img src=&#34;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7/79/Westminster_Abbey_by_Canaletto%2C_1749.jpg/614px-Westminster_Abbey_by_Canaletto%2C_1749.jpg&#34;&#62;&#60;/a&#62;&#60;/p&#62;
&#60;p&#62;&#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File:Westminster_Abbey_Interior_.jpg&#34;&#62;&#60;img src=&#34;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1/11/Westminster_Abbey_Interior_.jpg/800px-Westminster_Abbey_Interior_.jpg&#34;&#62;&#60;/a&#62;
&#60;/p&#62;</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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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Elyot on "BBC 라디오 3 의 &#60;Choral Evensong&#62;."</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696#post-1274</link>
<pubDate>토, 19 11월 2011 21:29:00 +0000</pubDate>
<dc:creator>Elyot</dc:creator>
<guid isPermaLink="false">1274@http://liturgy.skhcafe.org/</guid>
<description>&#60;p&#62;&#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File:Exeter-28Ap11-wyrdlight.jpg&#34;&#62;&#60;img src=&#34;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1/13/Exeter-28Ap11-wyrdlight.jpg/800px-Exeter-28Ap11-wyrdlight.jpg&#34;&#62;&#60;/a&#62;&#60;/p&#62;
&#60;p&#62;&#60;a href=&#34;http://www.bbc.co.uk/programmes/b0159w9r&#34;&#62;From Exeter Cathedral&#60;/a&#62;&#60;br /&#62;
Introit: A Celtic Psalm (Stephen Tanner)&#60;br /&#62;
Responses: Shephard&#60;br /&#62;
Psalms: 27, 28, 29 (Monk, Clark, Hylton-Stewart, Atkins)&#60;br /&#62;
Hymn: O blest creator of the light (Lucis Creator)&#60;br /&#62;
First Lesson: Proverbs 2 vv1-15&#60;br /&#62;
Canticles: Gloucester Service (Richard Shephard)&#60;br /&#62;
Second Lesson: Colossians 1 vv9-20&#60;br /&#62;
Anthem: Laudate Dominum (Ronald Corp) (first broadcast)&#60;br /&#62;
Hymn: Word of God, come down on earth (Liebster Jesu)&#60;br /&#62;
Organ Voluntary: Dance Rondo (Philip Moore)&#60;br /&#62;
Stephen Tanner (Director of the choir)&#60;br /&#62;
David Davies (Organist).&#60;/p&#62;
&#60;p&#62;&#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Exeter_Cathedral&#34;&#62;엑세터 대성당 (엑세터의 성 베드로 주교좌 성당).&#60;/a&#62;&#60;/p&#62;
&#60;p&#62;1050년, 데본과 콘월의 주교가 바다로부터의 습격을 피하기 위해 크레디튼으로 옮겨 가면서, 엑세터의 주교좌가 설립되었다. 정복왕 윌리엄의 조카인 윌리엄 워럴워스트가 주교로 오고 나서, 1133년부터는 노르만 양식으로 대성당의 건축이 시작되었다. 1258년에는 이미 이것이 낡은 양식인 것으로 간주되었으므로, 인근의 솔즈버리 대성당의 예를 따라, 장식적인 고딕 양식으로 개축되었고, 공사는 1400년경에 마무리되었다. 다른 많은 영국의 대성당들과 마찬가지로, 헨리 8세의 수도원 철폐에 의해 건물의 피해를 입었으나, 더 큰 피해는 영국 내전 때로서, 회랑이 붕괴되기도 하였다. 찰스 2세의 왕정 복고와 함께 새로운 파이프 오르간이 들어섰고, 그의 여동생인 헨리에타 앤은 1644년 이곳에서 세례받기도 하였다. 빅토리아 시대에 고딕 리바이벌 건축가 조지 길버트 스콧에 의해 교회의 많은 부분들이 새롭게 단장되었다.&#60;/p&#62;
&#60;p&#62;&#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File:Cathedral_of_Exeter_edit.jpg&#34;&#62;&#60;img src=&#34;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1/1b/Cathedral_of_Exeter_edit.jpg/785px-Cathedral_of_Exeter_edit.jpg&#34;&#62;&#60;/a&#62;&#60;/p&#62;
&#60;p&#62;&#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File:Exeter_cathedral.JPG&#34;&#62;&#60;img src=&#34;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e/e6/Exeter_cathedral.JPG/450px-Exeter_cathedral.JPG&#34;&#62;&#60;/a&#62;&#60;/p&#62;
&#60;p&#62;&#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File:ExeterCathedralBosses.JPG&#34;&#62;&#60;img src=&#34;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en/d/d2/ExeterCathedralBosses.JPG&#34;&#62;&#60;/a&#62;&#60;/p&#62;
&#60;p&#62;&#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File:Exeter_cathedral_009.jpg&#34;&#62;&#60;img src=&#34;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d/d9/Exeter_cathedral_009.jpg&#34;&#62;&#60;/a&#62;&#60;/p&#62;
&#60;p&#62;&#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File:Exeter_cathedral_007.jpg&#34;&#62;&#60;img src=&#34;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a/aa/Exeter_cathedral_007.jpg/450px-Exeter_cathedral_007.jpg&#34;&#62;&#60;/a&#62;&#60;/p&#62;
&#60;p&#62;&#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File:Exetercathedralclock.jpg&#34;&#62;&#60;img src=&#34;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1/10/Exetercathedralclock.jpg/433px-Exetercathedralclock.jpg&#34;&#62;&#60;/a&#62;
&#60;/p&#62;</description>
</item>
<item>
<title>Elyot on "BBC 라디오 3 의 &#60;Choral Evensong&#62;."</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696#post-1273</link>
<pubDate>토, 19 11월 2011 21:20:29 +0000</pubDate>
<dc:creator>Elyot</dc:creator>
<guid isPermaLink="false">1273@http://liturgy.skhcafe.org/</guid>
<description>&#60;p&#62;&#60;a href=&#34;http://ja.wikipedia.org/wiki/%E3%83%95%E3%82%A1%E3%82%A4%E3%83%AB:Winchester_Cathedral_-west_front-21July2008.jpg&#34;&#62;&#60;img src=&#34;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8/88/Winchester_Cathedral_-west_front-21July2008.jpg/479px-Winchester_Cathedral_-west_front-21July2008.jpg&#34;&#62;&#60;/a&#62; &#60;/p&#62;
&#60;p&#62;&#60;a href=&#34;http://www.bbc.co.uk/programmes/b0151r5c&#34;&#62;From Winchester Cathedral during the Southern Cathedrals Festival on the Eve of the Feast of St Michael and All Angels. Sung by the cathedral choirs of Chichester, Salisbury and Winchester.&#60;/a&#62;&#60;br /&#62;
Introit: Hail gladdening light (Wood)&#60;br /&#62;
Responses: Rose&#60;br /&#62;
Psalm: 91 (Alcock)&#60;br /&#62;
First Lesson: 2 Kings 6vv8-17&#60;br /&#62;
Canticles: Stanford in A&#60;br /&#62;
Second Lesson: Matthew 18vv1-6, 10&#60;br /&#62;
Anthem: Te Deum (Collegium Regale- Howells)&#60;br /&#62;
Hymn: Ye holy angels bright (Darwall's 148th)&#60;br /&#62;
Organ Voluntary: Fugue on the chorale 'Ad nos, ad salutarem undam' (Liszt)&#60;br /&#62;
Director of Music: Andrew Lumsden&#60;br /&#62;
Organist: Simon Bell.&#60;/p&#62;
&#60;p&#62;&#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Winchester_Cathedral&#34;&#62;윈체스터 대성당 (성 삼위일체와 성베드로와 성 바울로와 성 스위던의 주교좌 성당).&#60;/a&#62;&#60;/p&#62;
&#60;p&#62;햄프셔 주 윈체스터에 있는 대성당으로, 신랑은 유럽의 고딕 대성당들 가운데 가장 길다. 642년에 처음 설립된 것은 구 (舊) 민스터로서, 971년에는 수도원의 일부가 되었으며, 1093년에 이 건물은 파괴되었다. 현재 건물은 노르만 양식의 것으로, 공사는 1079년에 시작되었고, 이후 수세기동안 계속되었다. 헨리 8세가 수장령을 반포하여, 이곳의 유서깊은 베네딕트회 공동체는 해체되었으나, 성당은 살아남았다. 1905-12년간에 복구 공사가 진행되었다.&#60;/p&#62;
&#60;p&#62;&#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File:WinCath30Je6-4836wiki.jpg&#34;&#62;&#60;img src=&#34;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c/c3/WinCath30Je6-4836wiki.jpg/800px-WinCath30Je6-4836wiki.jpg&#34;&#62;&#60;/a&#62;&#60;/p&#62;
&#60;p&#62;&#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File:WinchesterCathplan.jpg&#34;&#62;&#60;img src=&#34;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2/26/WinchesterCathplan.jpg&#34;&#62;&#60;/a&#62;&#60;/p&#62;
&#60;p&#62;&#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File:Winchestercathedralnave.jpg&#34;&#62;&#60;img src=&#34;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2/28/Winchestercathedralnave.jpg/395px-Winchestercathedralnave.jpg&#34;&#62;&#60;/a&#62;&#60;/p&#62;
&#60;p&#62;&#60;a href=&#34;http://www.flickr.com/photos/stevecadman/2726427828/sizes/z/in/photostream/&#34;&#62;&#60;img src=&#34;http://farm4.staticflickr.com/3208/2726427828_ff831afaf2_z.jpg&#34;&#62;&#60;/a&#62;
&#60;/p&#62;</description>
</item>
<item>
<title>viamedia on "전례 여행 16 - 전례와 성령"</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703#post-1272</link>
<pubDate>수, 09 11월 2011 16:18:09 +0000</pubDate>
<dc:creator>viamedia</dc:creator>
<guid isPermaLink="false">1272@http://liturgy.skhcafe.org/</guid>
<description>&#60;p&#62;주낙현 신부와 함께 하는 전례 여행&#60;/p&#62;
&#60;p&#62;16. “우리에게 내리시는 영” - 전례와 성령&#60;/p&#62;
&#60;p&#62;지난 20세기는 성령 운동의 시대라 할 만큼 성령의 활동에 대한 체험이 세계 교회 곳곳에서 남달랐다. 이 체험은 성령쇄신 운동, 은사(카리스마) 운동, 오순절 운동 등으로도 불린다. 이 체험은 신앙인의 뜨거운 내적인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신앙은 교리와 관습을 머리와 이성으로 이해하는데 머물지 않는다. 신앙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과 용서의 은총을 가슴과 몸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이런 각성과 주장이 널리 힘을 얻었다. 교회의 기존 관습과 구조에 변화를 일으켰고, 급속한 양적인 성장도 이끌었다. &#60;/p&#62;
&#60;p&#62;성부 하느님의 높으신 위엄과 성자 예수님의 고통스러운 희생을 너무 강조했던 탓일까? 교회의 신학과 관습은 너무 무겁고 복잡하여 자신에게 닥친 신앙적 갈증을 풀어주지 못한다고들 느꼈다. 이런 와중에 마음의 상처를 감싸는 위로, 감정을 격하게 흔드는 힘을 체험한 이들은 그것이 성령 하느님의 활동이라고 증언했다. 이는 과연 그동안 교회 생활과 신학에서 잊혀진 성령 하느님을 재발견하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60;/p&#62;
&#60;p&#62;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 운동들은 지금 몇 가지 질문과 씨름하고 있다. 성령 하느님 체험이 개인의 감정에 머문 나머지 공동체에는 무관심하지 않는가?(개인주의) 몇몇 특별한 은사만 강조하다가 다른 다양한 은사들은 무시하지 않는가?(은사의 차별) 지금의 강렬한 체험에만 의지하면서, 전례 안에서 일어나는 성령의 변화를 오해하지 않는가?(전통과 전례의 약화).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 사건이 현재의 성령 체험과 무관한 것이 되지 않는가?(예수와 성령의 분리) &#60;/p&#62;
&#60;p&#62;루가복음서가 전하는 예수님의 삶은 하느님의 영에 이끌린 삶이다. 예수님은 '영'으로 잉태했고, ‘영’에 이끌려 광야에 나가셨고, ‘영’의 내림을 받아 복음을 선포하셨으며, 십자가 위에서 그 ‘영’을 하느님께 되돌려 드리셨다. 마침내 그 ‘영의 몸’으로 부활하셨다. “주님의 영(프뉴마)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며,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루가 4:18) 이 ‘프뉴마’가 바로 예수의 삶 속에 녹아든 성령 하느님이시다.&#60;/p&#62;
&#60;p&#62;교회의 전례 속에서 우리는 그 ‘영’에 이끌려 사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한다. 더불어, 그 ‘영’이 예배 공동체로 모인 우리 모두에게 내리기를 청원한다. 예수 기억(아남네시스)과 성령 청원(에피클레시스)이 성찬기도의 핵심이다. 이 둘이 함께하지 않으면 성찬기도는 불완전하고, 이 둘을 우리 의식과 몸과 행동에 새기지 않으면 예배는 완전해질 수 없다. &#60;/p&#62;
&#60;p&#62;그렇다면, 완전한 예배 속에서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물과 사람을 거룩하게 변화시키는 일이다. 그래서 성찬기도 전체는 축성기도이다. 이 축성은 이중으로 일어난다.&#60;/p&#62;
&#60;p&#62;첫째, 성령께서는 빵과 포도주와 같은 세속적인 사물을 거룩하게 하신다. 우리가 창조 세계에서 땀 흘리고 수고하여 만들고 거둬들인 것을 거룩하게 하신다. 이로써 에덴동산의 타락 이후 저주와 징벌이었던 우리의 노동은 이제 거룩한 것이 된다. 우리가 봉헌한 하찮은 빵과 포도주는 이제 고귀한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어 우리 생명을 살린다. 이 거룩한 변화는 이제 세상의 그 어떤 작은 사물도, 생명도, 생활도 고귀한 것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과 희망을 품게 한다.  &#60;/p&#62;
&#60;p&#62;둘째, 성령께서는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일치하게 하신다. 하느님께서는 일찍이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당부하셨다(레위 11:44-45; 1베드 1:16). 우리 힘만으로 그리할 수 없으니 성령께 우리를 거룩하게 해달라고 청원한다. 그러므로 축성기도는 봉헌한 예물만이 아니라, 예배에 참여한 우리가 모두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이 되도록 바치는 기도이다. 이때 거룩한 몸의 표지는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인 ‘우리’이다. 그래서 이 축성기도는 그리스도의 한 몸과 한 피를 나누는 하느님 백성의 일치를 위한 청원 기도이다. 그러니 그리스도의 몸으로 거룩하게 된 공동체 안에는 차별이 없다. 오직 기도를 통한 연대만이 있다.&#60;/p&#62;
&#60;p&#62;성령은 바람처럼 마음대로 분다. 그 자유로운 성령을 우리 손아귀에 붙잡아 두고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지난 세기에 성령의 바람은 교회의 굳은 관습과 짓누르는 권위주의를 무너뜨리고 신앙의 활력을 교회에 불어넣었다. 그러나 지금, 같은 성령의 바람은 예수님의 삶을 이끄신 복음과 해방과 자유의 영을 우리 몸 안에 되살리라고 촉구한다. 세상의 질서와 세속적인 것을 업신여기지 말라고, 오히려 그 거룩한 가능성을 발견하라고, 우리 등을 떠민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로 분열된 우리의 신앙과 삶을 그리스도의 몸인 공동체로 변화시키라고 부른다.&#60;/p&#62;
&#60;p&#62;전례는 성령이 이끄시는 그 거룩한 변화의 체험 현장이다.&#60;/p&#62;
&#60;p&#62;(성공회 신문 2011년 11월 12일자 6면)
&#60;/p&#62;</description>
</item>
<item>
<title>viamedia on "전례 여행 15 - 전례의 기억과 시간"</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702#post-1271</link>
<pubDate>목, 20 10월 2011 14:07:49 +0000</pubDate>
<dc:creator>viamedia</dc:creator>
<guid isPermaLink="false">1271@http://liturgy.skhcafe.org/</guid>
<description>&#60;p&#62;주낙현 신부와 함께 하는 전례 여행&#60;/p&#62;
&#60;p&#62;15. “나를 기억하라” - 전례의 기억과 시간&#60;/p&#62;
&#60;p&#62;&#60;strong&#62;“나를 기억하여 이 일을 행하라.”&#60;/strong&#62;&#60;/p&#62;
&#60;p&#62;그리스도교는 기억 위에 세워진 종교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교회 역사 속에서 계속 펼쳐지는 신앙인들의 삶과 증언을 기억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역사가 종내에 완성되리라는 하느님의 약속을 기억한다. 이 역사의 기억을 망각하고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다. 전례와 전례력은 이 기억을 우리 온몸으로 보존하고 축하하며 우리 일상 생활에서 훈련하는 장치이다.&#60;/p&#62;
&#60;p&#62;전례를 통한 기억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한 기억이다. 교회는 이 전례적 기억을 성서 희랍어를 따라 ‘아남네시스’라 부른다. 성찬기도는 이 특징을 아주 잘 보여준다. 성찬기도는 하느님을 향한 감사 기도인데, 이 감사는 기억에서 나온다. 하느님께서 과거에 베푸셨고, 현재도 베푸시고, 미래에도 베푸실 사랑과 은총의 구원 행동에 대한 기억이다. 성찬기도는 그 기억의 세 차원을 이렇게 아우른다.&#60;/p&#62;
&#60;p&#62;&#60;strong&#62;과거 기억&#60;/strong&#62;: 이 기억의 핵심은 하느님의 창조 사건과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이다. 하느님은 우리를 ‘보시기에 참 좋은 것’으로 창조하셨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하고 하느님과 이웃에게 죄를 범했다. 때마다 하느님께서는 구원을 베푸셨지만, 인간은 배신을 계속했다. 마침내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몸소 인간이 되시어, 우리가 사는 사회, 정치, 경제 환경 속에서 함께 사셨다. 그러나 그 삶의 방식때문에 정치와 종교 지도자들에게 억압을 당하셨고 십자가 위에서 죽임을 당하셨다. 우리는 이 고난의 상황과 죽음의 사건을 기억한다.&#60;/p&#62;
&#60;p&#62;&#60;strong&#62;현재 기억&#60;/strong&#62;: 예수의 부활은 죽음을 되풀이하는 과거의 악순환을 끊고 새로운 시간을 여는 사건이다. 신앙인은 죽음을 이기신 예수의 부활을 ‘지금 여기서’ 기억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예수 부활 이후, 역사는 부활의 현재형이다. 부활은 모든 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길을 마련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사시며 보여주셨던 사목과 선교, 그의 자기 포기와 희생은 이제 고난과 죽음의 십자가를 넘어서 부활의 생명과 몸을 이룬다. 그 부활을 사는 것이 우리가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방법이다.&#60;/p&#62;
&#60;p&#62;&#60;strong&#62;미래 기억&#60;/strong&#62;: 우리 신앙에서 기다림과 기억은 같은 말이다. 성찬기도는 일치와 정의와 평화와 사랑으로 가득찬 시간의 완성을 기억한다. 종말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며, 심판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이 모든 것을 거룩하게 채우는 사건이다. 먼저 떠나간 이들과 지금 살아가는 우리들이 모두 모이는 시간이다. 세상이 만든 분열과 분리의 벽을 무너뜨리고, 다같이 하느님의 잔치에 참여하는 시간이 바로 종말이다. 삼위일체 하느님께 드리는 성찬기도의 마지막 영광송은 우리 삶을 그 삼위일체의 사랑과 친교처럼 만들겠다는 다짐이다.&#60;/p&#62;
&#60;p&#62;그러나 시간은 기억의 적이다. 시간은 망각을 부추기고, 사람들은 그 망각에 기대어 잘못을 숨기기도 한다. 시간의 망각을 막으려는 기억 장치가 바로 전례력(교회력)이다. 망각하는 세상의 시간을 잊을 수 없는 거룩한 시간으로 재배치한 새로운 달력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걸으신 삶의 행적에 우리 자신의 삶을 얹혀 놓는다. 예수님을 닮고자 한다면 그분이 가신 길과 세월을 그대로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다.&#60;/p&#62;
&#60;p&#62;전례력에 따라 전례에 참여하면서 우리의 기억은 두뇌의 작동에 머물지 않고 우리 몸과 일상 생활을 수련하도록 이끈다. 계획이 잘 짜여진 운동으로 ‘몸짱’을 만들 듯이, 전례력에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만들기’를 한다. 이런 뜻을 깊이 헤아리지 않으면 전례력과 전례는 거추장스러운 전통의 찌꺼기가 되고 만다. 이런저런 체력단련 도구를 사다가만 놓고, 그 작동법도 모르고 계획대로 실제 운동도 하지 않으면서 그 도구만 나무라는 꼴이다. &#60;/p&#62;
&#60;p&#62;이 모든 기억은 우리에게 위험할 수도 있다. 예수님께서 고난과 죽음의 길을 걸으셨으니, 그 길을 기억하고 따르는 일은 위험할 수 밖에 없다. 하느님의 정의로운 창조 세계를 회복하시려고 스스로 한없이 낮추신 그리스도의 포기와 희생, 고난과 죽음을 누군가 선포하면, 우리가 바라는 편안한 삶을 위협하는 소리로 듣기도 한다. &#60;/p&#62;
&#60;p&#62;이 모든 기억은 다른 어떤 이들에게도 위험한 말로 들린다. 그 기억은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하다가 스러져간 한 청년의 삶을 되새기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일을 덮고 싶은 가해자들에게는 그 사건을 기억에 되살리는 일은 위험하다. 그래서인지 그 가해자들은 종종 그 기억의 장치를 고장내고는 쓸모없다고 단언한다.&#60;/p&#62;
&#60;p&#62;예수님에 대한 기억은 ‘위험한 기억’이다. 예수님께서 걸으셨던 복음의 가치에 따라 우리 자신에게 도전하고, 우리의 변화를 요구하고, 우리의 책임있는 행동을 촉구하기 때문이다. 그 기억의 장치와 궤도인 전례와 전례력 안에서, 우리는 이 위험한 도전에 몸과 마음을 열어야 한다. 온몸을 통해서 기억한다는 것은 그 위험을 온몸으로 산다는 것이다. &#60;/p&#62;
&#60;p&#62;&#60;strong&#62;“나를 기억하여 이 일을 행하라.”&#60;/strong&#62;&#60;/p&#62;
&#60;p&#62;(성공회 신문 10월 22일, 6면)
&#60;/p&#62;</description>
</item>
<item>
<title>viamedia on "전례 여행 14 - 전례와 몸의 감수성"</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701#post-1270</link>
<pubDate>화, 11 10월 2011 14:21:32 +0000</pubDate>
<dc:creator>viamedia</dc:creator>
<guid isPermaLink="false">1270@http://liturgy.skhcafe.org/</guid>
<description>&#60;p&#62;주낙현 신부와 함께 하는 전례 여행&#60;/p&#62;
&#60;p&#62;14.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 - 전례와 몸의 감수성&#60;/p&#62;
&#60;p&#62;“그 어떤 것도 나에게 아무런 존재가 되지 못하던 시절. 어머니가 조개껍데기 모양의 예쁜 마들렌 케이크를 주셨다. 기력이 빠진 나는 마지못해 입을 열고 마들렌을 적신 차를 조금 맛보았다. 케이크 부스러기가 섞인 따뜻한 차가 입천장에 닿자마자 나는 몸서리 쳤다. 갑자기 그 맛이 기억났다. 그리고 거리 위쪽의 오래된 잿빛 집이 작은 현관과 분리된 무대처럼 우뚝 치솟았다.”&#60;/p&#62;
&#60;p&#62;마르셀 프루스트의 &#38;lt;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38;gt;라는 긴 소설을 다 읽지 않은 사람이라도, 병상에서 그가 맛본 작은 마들린 케이크와 홍차의 향기가 잊고 있었던 오랜 기억을 새롭게 살려주었다는 이 대목쯤은 어디선가 들었을 것이다. &#60;/p&#62;
&#60;p&#62;이 경험에 공감했는지 심리학자들은 냄새가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실험으로 밝혀내기도 했다. 그리고는 맛과 따뜻함에 묻어난 냄새가 기억을 상기하는 현상을 ‘프루스트 효과’라고 이름 붙였다. 그러나 교회 전통을 통해서 보았더라면, ‘전례 효과’라 고쳐 불렀을지도 모른다. 교회는 몸의 다섯 가지 감각(오감)이 모두 작동하는 전례를 거행하면서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 사건을 생생하게 기억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전례적 교회는 몸의 오감을 총동원하여 과거의 사건을 오늘에 되살리고, 되살린 기억에 따라 내일을 다짐하며 살아가는 교회이다.&#60;/p&#62;
&#60;p&#62;우리 몸의 오감이 전례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예를 들어 간단히 설명한다.&#60;/p&#62;
&#60;p&#62;시각: 예배를 드리러 신자들이 모이는 교회 공간은 그 시각적 초점이 분명하다. 아무리 크고 찬란한 성당이라도, 전세살이하는 작은 교회라도, 우리 시선의 초점은 중앙의 제대로 모인다. 오랫동안 십자가를 시선의 중심으로 여기기도 했고, 스테인드글라스나 멋진 성화에 눈을 빼앗기기도 했다. 그러나 전례 공간의 중심은 제대이다. 그 제대는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한다. &#60;/p&#62;
&#60;p&#62;촉각: 많은 교회는 입구에 세례대(성천)나 작은 성수대를 마련하여, 성당에 들어오는 신자가 손을 적셔 세례의 기억을 되살리도록 돕는다. 손끝에 묻힌 물의 촉감은 이마로 이어져서 온몸에 십자성호를 긋고, 이전에 받은 세례의 은총이 우리 몸에 물처럼 부어졌음을 되새겨준다. 세례받지 않은 새신자라도 거룩한 물로 마음과 몸을 깨끗이 한다는 다짐을 한다.&#60;/p&#62;
&#60;p&#62;후각: 많은 성공회 신자에게 전례의 냄새는 유향을 피우는 냄새이다. 다양한 꽃의 향과 나무의 진액을 뽑아 여러 과정을 거쳐 결정체로 만든 유향은 우리 인간의 고된 노동을 상징하거니와, 우리 기도를 하늘에 올리는 상징이기도 하다. 또한 예배드리는 공간과 성물, 그리고 거기에 참여한 사람들을 정화하고 드높인다는 다양한 뜻을 지닌다. 이런 해설 이전에 그 냄새는 우리를 아늑한 어떤 기억으로 데려간다.&#60;/p&#62;
&#60;p&#62;청각: 전례 공간에서 울리는 다양한 소리는 우리의 청각을 자극한다. 하느님을 찬양하는 신자들의 목소리, 악기 연주, 그리고 말씀의 전례를 통해서 우리 귀에 꽂히는 성서의 말씀과 설교자의 음성, 또 집전자와 신자들의 모든 음성이 청각에 작용한다. 이와 더불어, 서로 평화의 인사를 나누며 안부를 나누는 다정한 잡담마저도 우리가 공동체요 한 식구인 것을 되새겨 준다.&#60;/p&#62;
&#60;p&#62;미각: 대체로 미각은 후각과 함께 작동한다. 영성체에서 맛보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우리 몸에 직접 영향을 미치며, 말 그대로 우리 몸속 깊이 흘러들어 우리 신앙의 기력을 만든다. 우리 노동의 상징이며 우리 봉헌의 표지이고, 다시 우리에게 그리스도 희생의 은총으로 주어진 선물을 내 몸의 혀로 맛보며 목으로 넘기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몸으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다.&#60;/p&#62;
&#60;p&#62;이러한 감각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전례가 진정한 전례이다. 설령 개인의 신체적인 처지에 따라 몇몇 개별 감각을 느낄 수 없을지라도, 이런 감각에 담긴 상징과 의미를 알고, 다시 전례와 일상에서 몸으로 느끼는 훈련을 거듭할 때 전례에 더욱 깊이 참여할 수 있다. 전례는 몸으로 그리스도의 구원 사건을 기억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오감을 넘어선 육감의 전례를 드릴 수 있다. 이제 전례는 육감이다. 우리는 이것을 전례적 감수성이라고 한다.&#60;/p&#62;
&#60;p&#62;“사람이 죽은 뒤, 사물이 부서지고 흩어진 뒤, 과거의 먼 시간을 거치며 살아남는 것은 없다. 다만, 맛과 냄새만이 살아남을 터이니, 어쩌면 그것은 더 미약한 것일지언정 더 오래가며, 더 불확실할지언정 쉽게 소멸하지 않는다. 이것은 더욱 신실한 것이어서, 오랫동안 꿋꿋하게 살아남을 수 있다. 그것은 영혼처럼, 모든 것들이 남기고 간 폐허 속에서도, 기억하고 기다리고 희망하며 버티는 힘이다. 어떤 위협이나 유행에도 흔들리지 않고, 그 작고 미세한 한 방울의 힘이 바로 모든 기억의 광대한 구조를 지탱한다” (마르셀 프루스트)&#60;/p&#62;
&#60;p&#62;이것이 감각을 통한 기억의 감수성이며, 우리 전례가 지향할 영적인 몸의 감각, 즉 교회의 감수성이다.&#60;/p&#62;
&#60;p&#62;(성공회 신문 2011년 10월 8일, 6면)
&#60;/p&#62;</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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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viamedia on "세계 성공회 전례 협의회 참석 후기"</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699#post-1268</link>
<pubDate>일, 02 10월 2011 14:07:03 +0000</pubDate>
<dc:creator>viamedia</dc:creator>
<guid isPermaLink="false">1268@http://liturgy.skhcafe.org/</guid>
<description>&#60;p&#62;&#60;strong&#62;우리 삶을 가꾸는 전례를 향하여 - 세계 성공회 전례 협의회(IALC) 참석 후기&#60;/strong&#62;&#60;/p&#62;
&#60;p&#62;주낙현 신부(요셉, 서울 교구)&#60;/p&#62;
&#60;p&#62;저는 지난 8월 1일부터 6일까지 영국 캔터베리 주교좌 성당에서 열린 세계 성공회 전례 협의회에 다녀왔습니다. 이 지면을 통해서, 우리에게 생소한 이 '협의회'를 간단히 소개하고, 이번 회의의 내용과 결과를 적은 뒤에, 이 회의와 별개로 영국 런던 방문 중에 얻은 몇 가지 사적인 경험과 배움을 나누겠습니다. &#60;/p&#62;
&#60;p&#62;&#60;strong&#62;1. 세계 성공회 전례 협의회(International Anglican Liturgical Consultation)&#60;/strong&#62;&#60;/p&#62;
&#60;p&#62;이 협의회는 1985년에 시작되었습니다. 성공회 전통에서는 전례가 신앙생활의 기초입니다. 전례를 통해서 성공회의 전통을 쇄신하고 그 정체성을 세워나간다는 공감이 점차 커졌습니다. 그리하여 세계 성공회 각 관구가 처한 다양한 상황 속에서 전례를 통하여 신앙과 사목과 선교를 새롭게 하자는 목적으로 출발했습니다. 런던의 세계 성공회 사무소는 각 관구에 전례 관계 대표자를 파견하도록 요청합니다. 그 대표자들이 최우선 참가자들입니다. 그리고 각 관구와 교구 전례 위원회의 위원도 참가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그리스도교 전체를 아우르는 세계 전례학회(Societas Liturgica)의 성공회 회원들 역시 이 협의회에 참가할 자격이 있습니다. 별 문제가 없는 한, 2년마다 모입니다.&#60;/p&#62;
&#60;p&#62;이 협의회에 모인 전례 전문가들과 전례학자들은 세계 성공회의 전례와 성사 생활에 대한 신학적 원칙들과 사목적 지침을 연구하고 토론합니다. 그런 다음 그 결과 문서를 세계 성공회 협의회(ACC)에 보고하고, 각 관구 전례 개정의 지침으로 회람하도록 합니다. 지난 25년 여 동안 협의회는, “어린이와 영성체” “전례를 통한 신앙 형성” “전례의 토착화” “입교 예식” “성찬례 신학과 그 개정 원칙” ”교회와 성직” “전례와 성공회의 정체성” 같은 주제로 연구와 토론을 진행하고 문서를 펴냈습니다. 이 모임은 협의회인지라 그 문서는 법적 구속력이 없습니다. 세계 성공회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존중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이 문서들은 세계 성공회의 많은 전례 전문가들이 모여 마련한 전례 신학 문서이기 때문에 현대 성공회의 전례 이해와 전례 개정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60;/p&#62;
&#60;p&#62;그동안 한국 성공회는 이 협의회와 적절한 접촉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6년 전 회의에서 일본 측 참석자였던 가토 히로미치 신부님(현재 일본 도호쿠 교구 주교)이 아시아 교회, 특히 한국 성공회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환기했고, 그 이후에 제가 관여하여 2년 전 회의에 처음으로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성공회와 세계 성공회 전례 협의회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미국에서 전례학을 공부하면서, 인터넷에 성공회 신학-전례 포럼이라는 공간을 만들어 전례 협의회의 문서를 부분적으로 번역하여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60;/p&#62;
&#60;p&#62;2년 전 뉴질랜드 회의에 처음 참석하자마자, 저는 아시아 참석자들에게 아시아 지역 성공회 전례 협의회에 대한 구상을 제안했습니다. 우선 한국, 일본, 필리핀 참석자들이 함께 모여서 신학 교육 안에서 전례 교육에 대한 협력을 논의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올해 다시 만난 아시아 참석자들과 새로 온 홍콩 성공회 참석자들과 이 제안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논의가 무르익으면 각 관구의 협조를 얻어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소개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60;/p&#62;
&#60;p&#62;&#60;strong&#62;2. 혼인 성사와 예식&#60;/strong&#62;&#60;/p&#62;
&#60;p&#62;이번 회의의 주제는 &#34;혼인 성사와 예식&#34;이었습니다. 회의 주제는 세계성공회협의희(ACC)의 연구 요청이나, 관구 교회의 요청, 또는 협의회 운영위원회의 제안 등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지난 4년 전에 협의회부터는 사목 예식에 관심을 돌려서 &#34;죽음과 관련된 성사와 예식&#34;을 다루었고, 2년 전 뉴질랜드 회의에서는 &#34;혼인 성사와 예식&#34;을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60;/p&#62;
&#60;p&#62;이번 회의는 2년 전 논의의 연속이었습니다. 뉴질랜드 회의의 임시 보고서를 기초로, 혼인과 관련한 교회와 사회의 사목적 상황, 혼인성사의 신학, 그리고 혼인 예식의 구조와 의례 행동에 대한 연구와 토론을 계속했습니다. 2년 전 회의처럼 전례학자들의 관련 발표가 있었고 토론이 계속되었습니다. 이번 회의의 발표자는 탄자니아 성공회 주교님과 영국 성공회 전례학자였습니다. 또한, 미국 성공회 ‘전례와 음악 상임위원회’의 요청에 따라서 미국 성공회가 검토하고 있는 동성애자의 시민적 결합 축복 예식안에 대한 열띤 논의도 있었습니다. &#60;/p&#62;
&#60;p&#62;이어진 토론과 연구는 2년 회의에서 임시 보고서를 발전시켜서 신학 문서를 마련하는 일이었습니다. 세계 성공회 각 관구의 사회와 문화 상황을 존중하면서, 그리스도교 신앙에 바탕한 혼인(결혼)의 신학을 어떻게 정리하고, 그 예식의 구조를 어떻게 제안할 지를 두고 깊고도 세밀한 논의가 이어졌습니다. 문서 초안의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두고 지리한 논의를 거듭하는 회의였습니다. 이 논의를 모아서 문서 편집 모임이 최종안을 낼 것입니다. 이런 태도에서 얻은 경험과 배움이 컸습니다.&#60;/p&#62;
&#60;p&#62;일주일 간 계속된 회의는 꽉 짜인 틀의 반복이었습니다. 매일을 캔터베리 주교좌 성당에서 열리는 아침기도로 시작하여, 연이어 드린 협의회 만의 아침 성찬례, 정해진 발표와 토론, 다시 주교좌 성당으로 이동하여 수 백명의 참여자(대체로 관광객)와 함께 드리는 영국 성공회의 &#34;노래 저녁기도&#34;(이븐송)이 이어졌습니다. 기도와 전례에 실제로 참여하는 일은 내노라는 전례학자들에게도 피곤함을 잊게 하는 기쁘고 감동스러운 경험이었습니다. 아시아 참석자들은 한국 성공회 성찬례(영문)로 주중 하루의 아침 미사를 함께 이끌었습니다. &#60;/p&#62;
&#60;p&#62;회의 마지막 날 아침 시간까지 공동성명서 작업이 이어졌습니다. 채택된 공동성명서는 협의회 일정과 결과에 대한 진행 보고입니다. 당시 결의에 따라 그 내용을 세계 성공회 웹사이트에 게재했고, 우리말로도 번역하여 같은 곳에 올렸습니다. 우리 관구 웹페이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60;/p&#62;
&#60;p&#62;저 자신이 이번 회의에서 협의회 운영위원으로 선출된 것은 쑥스럽고도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새롭게 참여하는 한국과 아시아, 그리고 젊은 전례 연구자들에 대한 기대가 반영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4년 간 2회기에 걸쳐서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운영위원회는 협의회 연구 주제를 기획하고 진행할 책임이 있습니다.   &#60;/p&#62;
&#60;p&#62;&#60;strong&#62;3. 몇 가지 사적인 경험과 배움&#60;/strong&#62;&#60;/p&#62;
&#60;p&#62;회의가 열린 캔터베리로 가기 전에 나흘 먼저 런던에 도착했습니다. 런던 한인 교회를 방문하고, 영국 성공회 내의 새로운 교회 공동체 운동을 살펴볼 요량이었습니다. &#60;/p&#62;
&#60;p&#62;영국 런던에서 한인 교회 사목을 맡으시면서 영국인 교회에서도 사목하시는 김호관 신부님과 가족을 기쁘게 만났습니다. 런던 한인 교회의 초대로 주일 미사에서 설교도 했습니다. 저 자신이 미국에서 작은 한인 신앙 공동체를 돌보는 처지인지라, 또다른 이국 땅 런던에서 작은 공동체를 붙들고 분투하는 신부님과 신자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바다와 대륙을 건너 마련된 공동체 간의 연대 의식이 바로 우리 성공회의 가장 큰 힘인 것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작지만 사랑과 희망이 넘치는 신앙 공동체였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김호관 신부님과 가족, 그리고 런던 한인 교회 여러분의 환대에 깊이 감사드립니다.&#60;/p&#62;
&#60;p&#62;런던에 머무는 동안 런던 교구의 &#34;무트 공동체”(www.moot.uk.net)라는 새로운 선교 공동체를 만났습니다. 이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관련 자료들을 통해 살피고 있다가 이번 기회에 약속을 잡고 공동체를 방문했습니다. 두 번에 걸친 전례 모임과 잇따른 긴 대화에서 많은 고민과 희망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60;/p&#62;
&#60;p&#62;무트 공동체는 성공회의 전례와 영성 전통에 바탕하여 시작한 실험적인 신앙 공동체입니다. 이들은 교회와 신학이 변화하는 문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여 사람들과 멀어지는 현실을 깊이 돌아봤습니다. 교회를 떠나는 젊은 세대가 실제로는 신앙과 영성에 대한 큰 갈망으로 떠돌고 있음을 알아채고 사람들의 이런 갈망을 함께 나누고 채울 대안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 대안은 “성공회 전통의 성사적인 영성을 현대인과 나누며 살아가는 새로운 수도원적 공동체&#34;입니다. 여러 사람과 깊은 대화를 나누어 보니 이들의 의지와 투신이 선연하고 깊은 것을 확인했습니다.&#60;/p&#62;
&#60;p&#62;7년 전에 출발한 이 공동체는 여러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굽히지 않고 자신들의 선교 사명을 뿌리내리며 자라고 있었습니다. 모든 이들을 환대하는 공동체로서, 주중에는 커피숍을 운영하고, 영성 토론 모임과 매일 성무일도에 초대합니다. 주일에는 오후 늦게 모여서 밤기도 혹은 관상기도를 드립니다. 이틀 간의 짧은 경험과 대화 속에서, 이 공동체가 성사적 영성에 어떻게 접 근하며 실현하려 하는지, 그 선교적 지향이 분명한지에 대한 질문을 서로 던지며 고민을 나누었습니다. 한국 교회에 대한 고민과 여러모로 겹쳤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도 이같은 새로운 공동체의 선교 방향과 그 성사적인 삶에 대한 논의가 깊어졌으면 합니다.&#60;/p&#62;
&#60;p&#62;체험과 배움이 있어 여러 신앙의 벗들과 나누는 일은 늘 즐거운 일입니다. 이런 기쁜 일을 마련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신앙의 순례길에서 만난 여러 벗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마음을 다하여 격려해주시고 후원해 주신 몇몇 분의 도움이 컸습니다. 고맙습니다. 귀한 지면을 허락해 주신 [성공회 신문] 관계자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60;/p&#62;
&#60;p&#62;(성공회 신문 9월 10일, 9월 24일, 6면)
&#60;/p&#62;</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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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viamedia on "가입인사"</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698#post-1267</link>
<pubDate>일, 02 10월 2011 14:02:31 +0000</pubDate>
<dc:creator>viamedia</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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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60;p&#62;matgio / 반갑습니다. 이곳에서 더 많은 대화와 교류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60;/p&#62;</description>
</item>
<item>
<title>matgio on "가입인사"</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698#post-1266</link>
<pubDate>화, 27 9월 2011 08:54:56 +0000</pubDate>
<dc:creator>matgio</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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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60;p&#62;성공회대학원에서 TH.M을 한 김원혁이라 합니다. 세례명은 예레미아이고요. 성공회 신문에 게재된 들을 읽다가 칼럼을 보게 되었고, 이렇게 가입합니다.
&#60;/p&#62;</description>
</item>
<item>
<title>Cranmerian on "번역: 존 맥쿼리, &#60;&#60;성사에 대한 안내&#62;&#62; 서문"</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669#post-1265</link>
<pubDate>월, 26 9월 2011 14:55:10 +0000</pubDate>
<dc:creator>Cranmerian</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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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60;p&#62;저는 최근에 이 책을 읽어보고 있습니다. 주신부님과 상의하면서 초역을 준비하고 있습니다.&#60;br /&#62;
prayandwork님께서도 혹시 이 책을 읽고 계신지요? 그렇다면 함께 독서하며 공부하면 어떨까요?&#60;/p&#62;
&#60;p&#62;그리고 이곳을 찾는 회원 여러분들 중에서 관심을 갖고 계신 분도 참여를 환영합니다.&#60;br /&#62;
함께 공부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서로 의논해서 결정하면 좋을 것같습니다.&#60;br /&#62;
제 이메일은 &#60;a href=&#34;mailto:cranmerian@hotmail.com입니다.&#34;&#62;cranmerian@hotmail.com입니다.&#60;/a&#62; &#60;/p&#62;
&#60;p&#62;함께 공부하여 얻은 성과물을 이곳의 회원들과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60;/p&#62;</description>
</item>
<item>
<title>Elyot on "BBC 라디오 3 의 &#60;Choral Evensong&#62;."</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696#post-1264</link>
<pubDate>금, 23 9월 2011 22:48:10 +0000</pubDate>
<dc:creator>Elyot</dc:creator>
<guid isPermaLink="false">1264@http://liturgy.skhcafe.org/</guid>
<description>&#60;p&#62;&#60;a href=&#34;http://www.stmatthews-northampton.org.uk/&#34;&#62;&#60;img src=&#34;http://www.jwaller.co.uk/stmatthews/images/StMatthewsChurch_medium.jpg&#34;&#62;&#60;/a&#62;&#60;/p&#62;
&#60;p&#62;&#60;a href=&#34;http://www.bbc.co.uk/programmes/b014qsvh&#34;&#62;The choir of Clare College, Cambridge, live from St Matthew's Church, Northampton, on the Feast of St Matthew.&#60;/a&#62;&#60;br /&#62;
Introit: Let all the world in every corner sing (Leighton)&#60;br /&#62;
Responses: Kenneth Leighton&#60;br /&#62;
Psalms: 119 vv33-40, 89-96 (Jones, Crotch)&#60;br /&#62;
First Lesson: Ecclesiastes 5 vv4-12&#60;br /&#62;
Canticles: Walton Chichester Service&#60;br /&#62;
Second Lesson: Matthew 19 vv16-end&#60;br /&#62;
Anthem: Rejoice in the Lamb (Britten)&#60;br /&#62;
Hymn: Thine arm, O Lord, in days of old (St Matthew)&#60;br /&#62;
Organ Voluntary: Prelude and Fugue on a theme of Victoria (Britten)&#60;br /&#62;
Nicolas Haigh (Senior Organ Scholar)&#60;br /&#62;
Peter Harrison (Junior Organ Scholar).&#60;/p&#62;
&#60;p&#62;성 마태오 교회, 노스햄튼.&#60;/p&#62;
&#60;p&#62;1893년에 피터버러 교구의 소교구 성당으로 출발하였으며, 헨리 무어의 조각 &#38;lt;성모와 아기&#38;gt;, 그레이엄 서덜랜드의 회화 &#38;lt;십자가에 달리심&#38;gt; 등, 영국의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 교회는 음악과 전례가 매우 특화되어 있으며, 역시, 벤저민 브리튼과 같은 영국의 현대 음악가들과 깊은 관계를 맺어 왔다.&#60;/p&#62;
&#60;p&#62;&#60;a href=&#34;http://www.stmatthews-northampton.org.uk/&#34;&#62;&#60;img src=&#34;http://www.jwaller.co.uk/stmatthews/images/organOverview.jpg&#34;&#62;&#60;/a&#62;
&#60;/p&#62;</description>
</item>
<item>
<title>Elyot on "BBC 라디오 3 의 &#60;Choral Evensong&#62;."</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696#post-1263</link>
<pubDate>토, 17 9월 2011 21:55:51 +0000</pubDate>
<dc:creator>Elyot</dc:creator>
<guid isPermaLink="false">1263@http://liturgy.skhcafe.org/</guid>
<description>&#60;p&#62;&#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File:Neresheim-frontansicht.jpg&#34;&#62;&#60;img src=&#34;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8/87/Neresheim-frontansicht.jpg/450px-Neresheim-frontansicht.jpg&#34;&#62;&#60;/a&#62;&#60;/p&#62;
&#60;p&#62;&#60;a href=&#34;http://www.bbc.co.uk/programmes/b014fhct&#34;&#62;Choral Evening Prayer for the Feast of the Exaltation of the Holy Cross from Neresheim Abbey, Southern Germany, sung by the Royal Academy of Music Chamber Choir with the Royal Academy of Music Baroque String Ensemble.&#60;/a&#62;&#60;br /&#62;
Prelude:Sinfonia settima (Johann Rosenmüller )&#60;br /&#62;
Introit: Adoramus te Jesu Christe (Jacob Handl)&#60;br /&#62;
Initium: Deus in adjutorium (Giovanni Gastoldi)&#60;br /&#62;
Psalms: Dixit Dominus, Laudate pueri (Anon 17th cent)&#60;br /&#62;
Reading:1 Corinthians 1 vv18-25&#60;br /&#62;
Responsorium: O Crux ave (Richard Dering)&#60;br /&#62;
Homily:The Revd Fr Gregor Hammes OSB&#60;br /&#62;
Office Hymn: Vexilla Regis (Monteverdi)&#60;br /&#62;
Magnificat on the eighth tone (Johann Kaspar Kerll)&#60;br /&#62;
Prayers and Lord's Prayer (Robert Stone)&#60;br /&#62;
Anthem: Laudate Dominum (Monteverdi)&#60;br /&#62;
Chorale: Zieh an die Macht, du Arm des Herr&#60;br /&#62;
Organ Postlude: Toccata I (Georg Muffat)&#60;br /&#62;
Celebrant:The Very Revd Prior Fr Albert Knebel OSB&#60;br /&#62;
Director of Music: Patrick Russill&#60;br /&#62;
Organists: Richard Brasier, Peter Holder.&#60;/p&#62;
&#60;p&#62;&#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Neresheim_Abbey&#34;&#62;네레샤임 수도원&#60;/a&#62; (성 &#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Ulrich_of_Augsburg&#34;&#62;울리히&#60;/a&#62;와 &#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Saint_Afra&#34;&#62;아프라&#60;/a&#62;의 네레샤임 수도원)&#60;/p&#62;
&#60;p&#62;독일 남부 &#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Baden-W%C3%BCrttemberg&#34;&#62;바덴-뷔템베르크&#60;/a&#62;의 네레샤임이라는 마을에 있는 수도원. 1095년에 &#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Augustinian_Canons&#34;&#62;아우구스티누스 참사회&#60;/a&#62;의 수도원으로 설립되었으나, 1106년에 베네딕트회 수도원으로 바뀌었고, 현재 건물은 18세기에 &#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Balthasar_Neumann&#34;&#62;발타자르 노이만&#60;/a&#62;의 설계로 지어졌다. 1802년 수도원이 폐쇄되기도 했으나, 1919년에, 같은 바덴-뷔템부르크 주에 있는 &#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Beuronese_Congregation&#34;&#62;보이론 대수도원의 베네딕트회 공동체&#60;/a&#62;와, 프라하의 &#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Emaus_Abbey&#34;&#62;에마우스 수도원&#60;/a&#62;의 도움으로, 베데딕트 수도회가 재건되었다.&#60;/p&#62;
&#60;p&#62;중세 때부터 내려오는 건물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Basilica&#34;&#62;바실리카&#60;/a&#62;였으나, 1695년에 &#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Baroque&#34;&#62;바로크 양식&#60;/a&#62;으로 개축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1747-92년에 지어진 것으로, 발타자르 노이만의 설계에 의하였으며, 1753년에 그가 죽은 후에는 그의 제자들과 계승자들이 작업을 이어 나갔다. 유럽 바로크 건축의 걸작 중 하나로 손꼽힌다.&#60;/p&#62;
&#60;p&#62;네레샤임 수도원의 소년 성가대는 2004년에 창설되었으며, 교회의 예식들에서 정기적으로 봉사하고, 교회 밖에서도 공연한다.&#60;/p&#62;
&#60;p&#62;&#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File:Neresheim-fresko2.jpg&#34;&#62;&#60;img src=&#34;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2/27/Neresheim-fresko2.jpg/800px-Neresheim-fresko2.jpg&#34;&#62;&#60;/a&#62;&#60;/p&#62;
&#60;p&#62;&#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File:Neresheim-altar.jpg&#34;&#62;&#60;img src=&#34;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2/21/Neresheim-altar.jpg/373px-Neresheim-altar.jpg&#34;&#62;&#60;/a&#62;&#60;/p&#62;
&#60;p&#62;&#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File:Neresheim-orgel-holzhay.jpg&#34;&#62;&#60;img src=&#34;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e/e2/Neresheim-orgel-holzhay.jpg/449px-Neresheim-orgel-holzhay.jpg&#34;&#62;&#60;/a&#62;
&#60;/p&#62;</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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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Elyot on "번역: 프라도 미술관의 회화들."</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693&#038;page=3#post-1262</link>
<pubDate>화, 13 9월 2011 13:52:02 +0000</pubDate>
<dc:creator>Elyot</dc:creator>
<guid isPermaLink="false">1262@http://liturgy.skhcafe.org/</guid>
<description>&#60;p&#62;&#60;a href=&#34;http://www.museodelprado.es/en/the-collection/online-gallery/on-line-gallery/zoom/1/obra/the-cardinal/oimg/0/&#34;&#62;&#60;img src=&#34;http://www.museodelprado.es/typo3temp/pics/18b71fa182.jpg&#34;&#62;&#60;/a&#62;&#60;/p&#62;
&#60;p&#62;&#60;a href=&#34;http://it.wikipedia.org/wiki/Raffaello_Sanzio&#34;&#62;라파엘&#60;/a&#62;&#60;/p&#62;
&#60;p&#62;추기경&#60;/p&#62;
&#60;p&#62;1510년경&#60;/p&#62;
&#60;p&#62;79 cm x 61 cm&#60;/p&#62;
&#60;p&#62;이 추기경의 초상은 각각 &#60;a href=&#34;http://it.wikipedia.org/wiki/Francesco_Alidosi&#34;&#62;알리도시&#60;/a&#62;, &#60;a href=&#34;http://it.wikipedia.org/wiki/Bernardo_Dovizi_da_Bibbiena&#34;&#62;비삐엔나&#60;/a&#62;, &#60;a href=&#34;http://it.wikipedia.org/wiki/Alderano_Cybo-Malaspina_(1613-1700)&#34;&#62;퀴보&#60;/a&#62; 또는 &#60;a href=&#34;http://it.wikipedia.org/wiki/Scaramuccia_Trivulzio&#34;&#62;트리불지오&#60;/a&#62;의 모습으로 추정되어 왔다.&#60;/p&#62;
&#60;p&#62;이 작품은 라파엘이 로마에 있을 때 그려졌는데, 그 때 그는, 그의 동료가 말한대로, &#34;사람을 그 사람의 실제보다 더 실제처럼 그리는&#34; 능력의 정점에 달해 있었다.&#60;/p&#62;
&#60;p&#62;구성은 &#60;a href=&#34;http://it.wikipedia.org/wiki/Da_Vinci&#34;&#62;레오나르도 다 빈치&#60;/a&#62;의 &#60;a href=&#34;http://it.wikipedia.org/wiki/Gioconda&#34;&#62;&#38;lt;모나 리자&#38;gt;&#60;/a&#62; 에서 가져 왔다. 두 작품 모두에서, 모델은 앉아 있고, 그 또는 그녀의 몸과 팔이 삼각형을 이룬다. 이 그림에서 특히 놀라운 점은, 모자의 선명한 빨간색과 소매와 얼굴의 흰 빛 사이의 색채의 대비로서, &#60;a href=&#34;http://www.arcyart.com/ad-highlight.htm&#34;&#62;하이라이트&#60;/a&#62;가 사용되어 있다. 이같은 특징과 세심한 필획은, 인물에게 삼차원적인 성격을 부여하며, 당시 라파엘이 조각에 대해 갖고 있던 관심을 보여 준다.&#60;/p&#62;
&#60;p&#62;이 작품은 &#60;a href=&#34;http://it.wikipedia.org/wiki/Carlo_IV_di_Spagna&#34;&#62;카를로스 4세 (1748-1819)&#60;/a&#62; 가, 아직 왕자였을 때, 로마에서 입수하였다.
&#60;/p&#62;</description>
</item>
<item>
<title>Elyot on "번역: 프라도 미술관의 회화들."</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693&#038;page=3#post-1261</link>
<pubDate>화, 13 9월 2011 13:43:07 +0000</pubDate>
<dc:creator>Elyot</dc:creator>
<guid isPermaLink="false">1261@http://liturgy.skhcafe.org/</guid>
<description>&#60;p&#62;&#60;a href=&#34;http://www.museodelprado.es/showpic.php?file=uploads%2Fpics%2F3.santotoomas_03.jpg&#38;#38;title=Image&#38;#38;width=800m&#38;#38;height=600m&#38;#38;bodyTag=%3Cbody+bgcolor%3D%22%23FFFFFF%22%3E&#38;#38;wrap=%3Ca+href%3D%22javascript%3Aclose%28%29%3B%22%3E+&#124;+%3C%2Fa%3E%3Cbr%3E%3Cfont+face%3D%22arial%22+size%3D%221%22%3E1.+Saint+Thomas%2C+Jos%C3%A9+de+Ribera.+Oil+on+canvas%2C+105+x+84%2C5+cm.+c.+1609+-+1610.+Budapest%2C+Sz%C3%A9pm%C5%B1v%C3%A9szeti+M%C3%BAzeum%2C+inv.+788+Estherh%C3%A1zy+collection%0D%3C%2Ffont%3E&#38;#38;md5=dcfdb016561215a40caa12396242dffa&#34;&#62;&#60;img src=&#34;http://www.museodelprado.es/typo3temp/pics/86da3e4b64.jpg&#34;&#62;&#60;/a&#62;&#60;/p&#62;
&#60;p&#62;성 토마스, 호세 데 리베라, 캔버스에 유화, 105 x 84,5 cm. 1609-1610년경. 부다페스트, &#60;a href=&#34;http://www.szepmuveszeti.hu/&#34;&#62;순수 미술 박물관&#60;/a&#62;, 재고 788 &#60;a href=&#34;http://www.fondazione-delbianco.org/inglese/relaz00_01/bud1.htm&#34;&#62;에스테르하지 콜렉션&#60;/a&#62;&#60;/p&#62;
&#60;p&#62;&#60;a href=&#34;http://www.museodelprado.es/en/exhibitions/exhibitions/at-the-museum/el-joven-ribera/the-exhibition/&#34;&#62;젊은 리베라 전&#60;/a&#62;&#60;/p&#62;
&#60;p&#62;2011년 4월 5일에서 7월 31일&#60;/p&#62;
&#60;p&#62;&#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Jose_Ribera&#34;&#62;호세 데 리베라&#60;/a&#62;는 1591년 &#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X%C3%A0tiva&#34;&#62;하티바&#60;/a&#62; (&#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Valencia,_Spain&#34;&#62;발렌시아&#60;/a&#62;) 에서 태어났으나, &#60;a href=&#34;http://it.wikipedia.org/wiki/Parma&#34;&#62;파르마&#60;/a&#62;, 로마, 그리고 나폴리에서 살고 작업하면서, 카라바지오에 기반한 스타일을 발전시켰다. 그는 파르마와 로마, 그리고 나폴리에서의 젊은 시절에, 자연주의의 언어를 연구하고 재탐색하였다. 본 전시는 이 시기, 즉 리베라의 작업이 다양한 양식적 국면들을 통과하고, 광범위한 주제들을 다루며, 양식과 도상학의 심오한 상호 작용에 도달하였던 때에 집중한다.&#60;/p&#62;
&#60;p&#62;로마에 있을 때, 리베라는 정확한 묘사법과 명암법을 구사하여, 다섯 감각, 사도들, 철학자들 등의 전통적인 제재들을 혁신적으로 그려낸다. 나폴리에서, 그는 동일한 예술적 수단들을 이용하여, 종교적인 주제들을 그 특유의 강렬하고, 엄격하며, 극적인 감각을 가득 담아 표현하였다. 이 전시는 여러 부분으로 나뉘어, 서로 관련있는 작품들을 모아놓거나, 리베라의 로마 시기와 나폴리 초기 연간의 특정한 시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60;/p&#62;</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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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Elyot on "번역: 프라도 미술관의 회화들."</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693&#038;page=2#post-1260</link>
<pubDate>화, 13 9월 2011 13:36:01 +0000</pubDate>
<dc:creator>Elyot</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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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60;p&#62;&#60;a href=&#34;http://www.museodelprado.es/en/the-collection/online-gallery/on-line-gallery/zoom/1/obra/the-adoration-of-the-shepherds/oimg/0/&#34;&#62;&#60;img src=&#34;http://www.museodelprado.es/typo3temp/pics/a50e7ebcc3.jpg&#34;&#62;&#60;/a&#62;&#60;/p&#62;
&#60;p&#62;&#60;a href=&#34;http://de.wikipedia.org/wiki/Anton_Raphael_Mengs&#34;&#62;멩스, 안톤 라파엘&#60;/a&#62;&#60;/p&#62;
&#60;p&#62;목자들의 경배&#60;/p&#62;
&#60;p&#62;1770년경&#60;/p&#62;
&#60;p&#62;256 cm x 190 cm&#60;/p&#62;
&#60;p&#62;일군의 목자들이 동정녀와 아기 예수를 둘러 싸고 다양한 표정으로 경배하고 있으며, 앉아 있는 성 요셉, 그리고 왼쪽에서 이 기적적인 사건을 보여주고 있는 화가 자신과 더불어, 넓은 반원형을 이루고 있다.&#60;/p&#62;
&#60;p&#62;이 작품은 &#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Antonio_da_Correggio&#34;&#62;코레지오 (1493-1534)&#60;/a&#62; 가 같은 주제를 다룬 그림인 &#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Nativity_(Correggio)&#34;&#62;&#38;lt;밤&#38;gt;&#60;/a&#62; (&#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Gem%C3%A4ldegalerie_Alte_Meister&#34;&#62;드레스덴, 회화 갤러리&#60;/a&#62;) 에서 직접적으로 영감을 받았는데, 그 작품은 18세기의 화가들에게 매우 영향력이 있었다. 구성에서는 작가가 원근법과 환영의 효과를 깊이 연구하였음이 드러난다. 빛과 그림자가 강력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아기 그리스도에게서 방사되어 나오는 빛이, 다른 물체들을 드러내 보여 주고 있다.&#60;/p&#62;
&#60;p&#62;코레지오의 성공적인 구성과, 그것이 멩스에게 미친 영향은, 그가 다른 방식으로 만든 다양한 복제품들로 인해 증명된다.
&#60;/p&#62;</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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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Elyot on "번역: 프라도 미술관의 회화들."</title>
<link>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693&#038;page=2#post-1259</link>
<pubDate>화, 13 9월 2011 13:32:40 +0000</pubDate>
<dc:creator>Elyot</dc:creator>
<guid isPermaLink="false">1259@http://liturgy.skhcafe.org/</guid>
<description>&#60;p&#62;&#60;a href=&#34;http://www.museodelprado.es/en/the-collection/online-gallery/on-line-gallery/zoom/1/obra/abraham-and-the-three-angels/oimg/0/&#34;&#62;&#60;img src=&#34;http://www.museodelprado.es/typo3temp/pics/49da89732d.jpg&#34;&#62;&#60;/a&#62;&#60;/p&#62;
&#60;p&#62;티에폴로, 지암바티스타&#60;/p&#62;
&#60;p&#62;&#60;a href=&#34;http://en.wikipedia.org/wiki/Giovanni_Battista_Tiepolo&#34;&#62;아브라함과 세 천사들&#60;/a&#62;&#60;/p&#62;
&#60;p&#62;구약에 따르면, 가장인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는, 마므레의 그들 집에 나타난 세 명의 나그네들을 맞아 들여, 친절히 씻겨주고, 먹을 것을 내어 주었다. 답례로, 방문자들은 그들이 신이 보낸 세 천사들로서, 이 연로한 부부가 곧 기적적으로 아들 (이삭) 을 낳을 것이며, 그가 이스라엘인의 기원이 될 것임을 알려준다 (창세기 18, 1-19).&#60;/p&#62;
&#60;p&#62;티에폴로는 천사들이 가장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순간을 묘사하였는데, 아브라함은 이 광경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듯 두 손을 모으고 있다. 나그네의 짐과 붉은 지팡이가 오른쪽 하단에 보인다. 왼쪽 하단의 바구니에는 나누어 먹을 음식이 담겨 있다.&#60;/p&#62;
&#60;p&#62;이 작품은 화가의 스페인 체류 기간의 것으로서, 대담한 구성, 역동적인 인물들, 그리고 대조적인 색채가 두드러진다.&#60;/p&#62;
&#60;p&#62;어느 교회를 위해 이 작품이 그려졌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60;/p&#62;</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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