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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태그: 고교회 http://liturgy.skhcafe.org/ A Korean Anglican Theology & Liturgy Forum en Mon, 22 Jan 2018 16:11:47 +0000 viamedia on "전례 여행 11 - 예배 전쟁? - 다시 생각하는 고교회와 저교회" 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678#post-1219 화, 16 8월 2011 12:27:06 +0000 viamedia 1219@http://liturgy.skhcafe.org/ <p>Cranmerian / 중요한 지적입니다. 이미 이에 대한 논의를 이곳에서 나눈 적이 있습니다. 이번 글은 그때 펼친 이야기를 요약한 것입니다. <a href="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87" rel="nofollow">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87</a></p> <p>ochlos / 좋은 제안입니다. 좀 더 나은 표현은 "전례 중심의 교회" 혹은 "전례 전통의 교회" 등이라 하면 좋을 것인데, 입에 붙기에 너무 길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성사적 교회"라는 표현도 좋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 역시 '성사'라는 단어의 쓰임새와 너비에 대한 이해가 엇갈리므로 '전례적'이라는 표현의 장단점을 함께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필요와 맥락에 따라 '전례적 교회' 혹은 '성사적 교회'라는 말을 교차하여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p> ochlos on "전례 여행 11 - 예배 전쟁? - 다시 생각하는 고교회와 저교회" 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678#post-1213 화, 09 8월 2011 14:54:22 +0000 ochlos 1213@http://liturgy.skhcafe.org/ <p>'성사적교회'와 '비성사적교회'라고 표현하면 어떨까요? '전례'라는 말이 광범위하기 때문에 '비전례적 교회'라고 하면 아나밥티스트나 무교회주의 등 일부만을 일컫는 말이 될 성 싶습니다. 개신교에서는 '성사'를 '성례전'이라고 부르더군요. 한국 성공회는 '성례전적 교회' '성사적 교회'이다라는 말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p> Cranmerian on "전례 여행 11 - 예배 전쟁? - 다시 생각하는 고교회와 저교회" 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678#post-1206 월, 01 8월 2011 16:05:30 +0000 Cranmerian 1206@http://liturgy.skhcafe.org/ <p>저교회파, 고교회파라는 용어는 성공회 내에서 피할 수 없는 용어라고 생각합니다.<br /> 그리고 우리 교회내에서 사용되는 이 용어는 거의 대부분이 논쟁적인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에,<br /> 어느정도라도 개념정리가 필수적이라고 봅니다-시급하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교회<br /> 현실을 파악하고 미래를 설계하는데도 커다란 장애가 계속될 것이며, 이 용어들 자체에 대한<br /> 냉소적인 반응을 지울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p> viamedia on "전례 여행 11 - 예배 전쟁? - 다시 생각하는 고교회와 저교회" 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678#post-1202 토, 23 7월 2011 06:04:39 +0000 viamedia 1202@http://liturgy.skhcafe.org/ <p>주낙현 신부와 함께 하는 전례 여행</p> <p>11. 예배 전쟁? - 다시 생각하는 고교회와 저교회</p> <p>우리 교회에서 말 많고 탈 많은 이야깃거리 하나는 예배이다. 예배가 대화의 주제가 된다면 전례적 교회로서는 좋은 일이다. 그런데 가만히 들춰보면 사정이 좀 다르다. 성공회 예배는 엄숙하긴 한데, 음악 콘서트나 열탕 같은 열기가 부족하다고 말하는가 하면, 적당한 온기로 온몸을 감싸는 찜질방 같은 맛을 즐기는 게 낫노라는 말도 있다. 모두 일리가 있다. 성공회 예배는 뜨겁고 열정적인가 하면, 엄숙하고 절제된 맛을 건네주기도 한다. 신자 개인과 교회 공동체, 성직자에 따라서 그 맛을 경험하고 느끼는 기대와 방법이 다양하다. 그러나 예배에 대한 생각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의 취향이 아니라, 예배를 이끌고 주도하시는 하느님이다.</p> <p>한편, 식견이 좀 있다는 이들은 종종 한국 성공회의 전례가 ‘고(高)교회’ 일색이어서 문제이고, 그동안 소개되지 않은 개신교 풍의 ‘저(低)교회’ 예배를 받아들여야 한다고들 한다. 반발도 만만치 않다. 저교회 예배는 예배로서 풍모가 없을뿐더러, 요즘은 개신교마저도 성공회의 고교회적인 예배를 모범으로 새롭게 발견하는 처지라고 반박한다. 그런데 이런 구분과 주장이 옳은가? 적어도 이런 용어가 어디서 나왔고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살펴야 한다.</p> <p>‘고교회’나 ‘저교회’라는 용어가 꼭 옳은 표현은 아니다. 성공회 안에 그런 ‘교회’들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런 태도를 보인 ‘신자들’이 있었다. 즉 ‘고교회파 신자들’(high churchmen)과 ‘저교회파 신자들’(low churchmen)이 더 나은 표현이다. 또 이런 표현도 ‘영국’ 성공회의 특정한 역사적 시기와 상황에서 나와 다양하게 발전했다. 게다가 성공회는 영국을 넘어서 세계로 발전하고, 지난 20세기에는 ‘전례 운동’이라는 거대한 전례 쇄신 운동을 겪지 않았던가? 그러니 오늘날 우리 교회의 전례를 두고 적용하려면 훨씬 조심해야 한다.</p> <p>‘고교회파 신자들’은 17세기 영국 교회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애쓴 성직자와 신자들 무리이다. 이들은 영국 교회가 오랜 공교회 전통에 근거하고 있으며, 국가와 교회, 주교직, 전례와 성사들의 권위에 높은(high) 신적인 기원이 있다고 보았다. 19세기의 ‘옥스퍼드 운동’은 이들과는 여러모로 생각이 달랐지만, 교회의 전통과 전례에 대한 강조에서는 비슷한 생각을 이어갔다. 그러나 이들은 눈에 보이는 전례의 행동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성찬례를 전례의 중심으로 여겼지만, 그 실천과 변화는 보잘 것 없었다. 오히려 중세 초기 전통을 받아들여서 전례 행동을 장엄하게 꾸민 이들은 후대의 ‘의례주의자들’이었다.</p> <p>한편, ‘저교회파 신자들’은 국교인 영국 성공회 내의 사람들과 국교 자체를 반대하던 사람들(비국교도)을 모두 아우르는 말이다. 이들은 제도적 교회와 성직, 성사의 권위를 낮게(low) 보려 했다. 이런 흐름은 나중에 소위 성공회 ‘복음주의자들’과도 연결되지만, 그것도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영국 교회 다수를 차지하던 ‘자유파 신자들’이 저교회파였기 때문이다. 이들 역시 예배를 신앙생활의 중심으로 여겼지만, 그 주일 예배 형태는 대체로 ‘아침기도식 예배’였다.</p> <p>고교회파와 저교회파를 딱히 구분하기도 어렵다. 그 안에는 상반되는 다양한 목소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존과 찰스 웨슬리 형제는 전형적인 ‘고교회파’ 출신으로 복음주의 운동을 일으켰고, 헨리 뉴먼은 전형적인 ‘저교회파’ 출신으로 ‘옥스퍼드 운동’을 일으켰다가 천주교로 넘어가지 가지 않았던가? </p> <p>특히 오늘날에는 ‘고교회냐, 저교회냐’라는 구분이 적절하지 않은 이유가 또 있다. 지난 회에 살핀 것처럼, 지금의 세계 성공회와 그리스도교 전반의 예배 생활에 영향을 끼친 ‘전례 운동’ 때문이다. 16세기 종교개혁이 1차 종교개혁이었다면, 20세기 교회 일치 운동과 전례 쇄신 운동은 2차 종교개혁이라 할만하다. 그 의도와는 관계없이 16세기의 개혁이 교회와 성사에 대한 이해의 분열을 낳았다면, 20세기의 개혁은 교회의 공통 유산에 대한 재발견과 그에 근거한 새로운 대화와 이해를 찾았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고교회 대(對) 저교회’라는 낡은 틀로 대결할 때가 아니라는 말이다.</p> <p>굳이 구분이 필요하다면, 성공회 전통과 20세기 전례 운동의 성과를 함께 받아들여서, ‘전례적 교회’와 ‘비전례적 교회’로 나눌 수 있겠다. 다시 말해, 성찬례를 예배 생활의 중심으로 삼는 교회는 전례적 교회요, 그렇지 않은 교회는 비전례적 교회라 할 수 있다. 전례 행동과 실천에서 보이는 겉모습의 ‘스타일’은 교회 공동체에 따라 다양할 수 있고, 그 다양성은 오히려 격려할 일이다. 다만, 여전히 좁은 해석으로 특정한 신학적 입장을 연결하여 파벌을 떠올리는 주장과 남들을 모방한 스타일은 빗나간 일이기 쉽다. 그참에 하느님께서 이루신 구원의 역사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축하하러 모인 예배는 사람들의 예배 전쟁 수단이 될 위험이 있다.</p> <p>(성공회 신문 2011년 7월 23일) </p> viamedia on "전례 여행 9 - 전례 운동 1 - 성공회의 이상과 공헌" 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668#post-1186 토, 25 6월 2011 17:41:10 +0000 viamedia 1186@http://liturgy.skhcafe.org/ <p>주낙현 신부와 함께 하는 전례 여행</p> <p>9. 전례 운동 1 - 성공회의 이상과 공헌</p> <p>종교개혁 이후 근대 사회로 발전하면서 개인의 가치와 공동체의 가치가 서로 다투는 일이 잦았다. 위치가 역전되어, 종종 개인의 자유가 공동체의 가치를 밀어내곤 했다. 사회생활이든 신앙생활이든 그동안 집단과 공동체가 개인의 자유와 신앙을 억압한 일이 많았기 때문에 이런 변화는 꼭 필요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개인과 공동체가 서로 존중하지 않고 대립하면 개인과 공동체 모두 위험에 빠진다. 개인 신앙의 자유가 교회 전통을 배척하면, 교회는 이를 위협으로 여겨 그 자유를 억누르려 한다. 반대로, 교회가 교권으로 통제를 일삼으면 개인은 교회와 전통을 멀리한다. 사회와 종교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이 와중에 서로 더욱 배타적이 되고 마음은 옹졸해진다. 이를 넘어서는 길이 가능한가?</p> <p>‘근대 전례 운동’은 그 길을 찾으려는 하나의 시도였다. 이 운동은 19세기 중반 성공회와 천주교에서 일어나서 지난 20세기 내내 다른 개신교회들에 영향을 끼친 전례 쇄신 운동이다. 성공회 종교개혁과 그 이후 여러 경험은 이 운동에 중요한 공헌을 했다. 전례를 통한 교회 개혁과 교회 일치를 이상으로 삼고, 여러 개인의 다양한 신앙 경험을 공동 예배를 통하여 공동체의 경험과 신학으로 안내하려 했기 때문이다. 사회와 교회가 서로 배척하고, 개인과 공동체가 서로 멀리하면서 갈등과 혼란이 심해지던 시기에 성공회의 이상과 경험은 더욱 중요했다. </p> <p>전례 쇄신과 관련한 성공회의 경험은 크게 네 가지이다.</p> <p>첫째, 성공회 고교회 전통과 존 웨슬리가 강조한 전례 생활의 회복이다. 고교회 전통은 성공회 종교개혁 초기부터 초대 교회 연구를 통해서 전례 생활을 교회와 개인의 신앙과 밀접히 연결하려 했다. 그러나 18세기에 들면서 예배는 형식적이 되었다. 성찬례 거행 횟수도 매우 적었다. 고교회 전통에 있던 웨슬리는 성찬례를 자주 거행하고 참여하자는 운동을 벌였다. 웨슬리는 또, 개인의 신앙적 감동과 변화를 위한 설교를 중요시했다. 설교는 교리 해설이나 도덕적 교훈이 아니라, 삶의 변화를 위한 복음의 가치와 도전을 담아야 한다고 확신했다.</p> <p>둘째, 19세기 ‘옥스퍼드 운동’은 교회와 성직과 성사의 중요성을 되새겨 주었다. 이 운동에 따르면, 교회는 세속사회를 추종하거나 무시할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 거룩한 하느님의 영역을 지키고 확대해야 한다. 성직은 이를 위해 사도에게서 이어오는 봉사직이며, 성사 생활은 그 거룩함을 경험하고 확인하는 일이다. 특히 성찬례는 성사의 핵심으로써 신자 공동체와 성직자가 가장 중요하게 실천할 교회의 생명 활동이다. 이 운동은 교리에 대한 집착 때문에 나중에 중단되고 말았지만, 교회의 본질을 좀 더 깊이 생각하도록 이끌었다.</p> <p>셋째, 성공회 그리스도교 사회주의는 위의 여러 성과를 바탕으로 19세기 당시 급격한 산업화로 비인간화하던 세태를 비판하고,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켜야 할 선교 사명과 실천을 제시했다. 이 주장을 따르면, 성찬례는 예수의 성육신 사건이 계속되는 표현이며, 우리가 하느님과 연합하는 통로이다. 이 성찬례에서 나누는 신자들의 친교는 모든 인류가 함께 이뤄야 할 형제애와 자매애의 초석이다. 그러므로 성찬례에 참여하는 신자들은 세상과 사회의 바른 변화에도 깊이 참여해야 한다. 이 운동은 현대 성공회가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과 가르침의 기초를 마련했다.</p> <p>넷째, 성공회 전례학자들의 전례 연구는 교회 일치 운동과 대화의 물꼬를 텄다. 성서 연구, 초대 교회 전례 자료 번역과 연구, 다른 교단 학자들과 대화가 활발했다. 1930년대에는 매주일 성찬례 거행 운동이 크게 일어났다. 이때야 비로소 주일 성찬례 거행이 성공회 신앙 생활의 중심이 되었다. 그전까지 주일 예배는 대체로 아침기도식 예배였다. 성공회 베네딕토회 수도원장이었던 그레고리 딕스의 연구서 “전례의 형태”는 전례가 교회 일치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그는 전례가 교리 문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행동과 사건을 기억하는 특별한 구조이자 행동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로써 성찬례의 구조와 행동의 원칙에서는 일치하고, 교단마다 전례문을 개정하여 서로 대화하는 일이 가능하게 되었다.</p> <p>성공회의 이러한 경험과 공헌은 개인과 교회, 신앙과 전통을 대립시키던 흐름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 ‘신자 개인은 그리스도의 한몸 안에서 지체’라는 성서적인 비유와 가르침을 다시 확인했다. 이를 실제로 경험하는 통로는 함께 드리는 예배이며, 그 예배의 중심은 성찬례이다. 성찬례에 근거해서 교회에 대한 이해, 사목에 대한 이해, 신앙과 영성에 대한 이해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특별히 세상과 사회에 교회가 참여하는 이유와 원칙을 마련했다. 이 과정에서 교회 일치 운동과 대화가 더욱 활발해졌다. 20세기 천주교의 전례 쇄신과 뒤따른 개신교의 예배 쇄신은 이렇게 성공회의 오랜 경험과 전통에 연결된다.</p> <p>(성공회 신문 2011년 6월 25일) </p> ssyu1 on "말씀과 성사 - 두 단어 혹은 한 단어?" 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85#post-836 수, 12 8월 2009 10:50:40 +0000 ssyu1 836@http://liturgy.skhcafe.org/ <p>말씀과 성사에 관한 이해가 다시 은총으로 다가온다...</p> <p>기억과 잊음의 반복속에 새로 각성되는 </p> <p>"말씀은 성사를 비추고, 성사는 말씀을 구체화하여 우리 몸으로 느끼게 한다."</p> <p>이렇게 또 다시 나는 현재를 말씀과 성사가 되어 산다. </p> viamedia on "고교회 high church 와 저교회 low church" 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87&page=2#post-281 화, 29 4월 2008 18:53:02 +0000 viamedia 281@http://liturgy.skhcafe.org/ <p>논평 감사합니다.</p> <p>뭔가 비슷하면서도, 혹은 동의하는 것 같으면서도 계속 엇나가는 구석이 있습니다. 그 문제는 이미 제 댓글에서 설명한 바이므로 더이상 토를 달지는 않겠습니다. 자칫 불필요하게 말이 반복될 것 같습니다. 아마도 서로 어떤 주제만 파고 들면 더 분명한 답과 방법이 옆에 있는데 못보는 경우가 흔하다고 봅니다.</p> <p>아마 저와 Cranmerinan 님도 그럴 수 있겠다 싶습니다. 그러니 이 글타래를 주시하고 있는 분들의 논평을 들어보면 좀 환한 구석이 나타날 것 같습니다. </p> <p>어떻게들 생각하시는지요? </p> Cranmerian on "고교회 high church 와 저교회 low church" 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87#post-280 화, 29 4월 2008 14:45:07 +0000 Cranmerian 280@http://liturgy.skhcafe.org/ <p>비아 메디아님은 고교회파와 저교회파와 관련하여 ‘우리식’의 새로운 이해를 추구하면서, 성사에 대한 강조점과 그 실천과 관련하여 &lt; ‘고교회’는 성찬례를 매주하는 흐름이고, ‘저교회’는 그렇지 않은 ‘흐름’이라고 보면 좀 더 분명하면서 포괄적인 이해를 가질 수 있을 것&gt;이라며, 이를 통해서 과거의 역사를 새롭게 볼 수 잇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과거와의 단절로 성찬례에 대한 이해와 실천의 폭이 크게 확장되었다고 했습니다. </p> <p>저는 앞에서 말씀과 전례(성사)를 성공의 태생적인 특징이라고까지 했습니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저교회파와 고교회파의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에 대한 개념규정을 16-7세기에 집중한다고 해서 이후의 전개과정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p> <p>저는 고교회파와 저교회파를 성공회라는 하나의 스펙트럼안에 있는 경향성을 나타낸다고 하였읍니다. 덧붙인다면 이 둘의 중간지대는 오히려 이들보다도 더 넓게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두가지 성향은 복합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분명하게 구별지을 수 없을 때도 있고 동시적으로 존재할 수도 있기 때문에 어떤 성향을 더 강조하고 덜 강조하였느냐라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고 봅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 두가지의 극단적인 성향을 마치 이 두가지 성향의 대표인 처럼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비아 메디아님의 지적처럼 ‘단선적인 개념규정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문제는 잘못된 이해나 교단정치적인 이용을 올바른 이해를 통해서 극복하자는 것입니다. </p> <p>하지만 성사와 관련하여 비아 메디아님의 고교회와 저교회의 구분법(위의 요약에서)은 또다시 이분법적인 이해를 시도하여 본질을 흐뜨린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구분은 지나친 단순화이고, 성사의 신학적 의미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20세기 이전에 고교회파 성향의 성직자들은 성찬례를 잉글랜드 국교회가 규정한 수보다 자주 거행하였으며, 저교파성향을 포함한 대다수의 교회들은 국교회가 규정한 수(일년에 4번)만큼의 성찬례를 거행하였습니다. 고교회파 성향의 성직자들이 집례하는 성찬례에 모든 신자들이 다 참여했던 것도 아닙니다. 당시 성찬례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그 전에 자기 나름대로의 신앙적 성찰을 먼저 요구했습니다. 이 때문에 평신도들중 일부만이 자주 참여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당연히 성찬례를 통해서 하느님의 구원의 은총을 받는 것이기 때문었습니다. </p> <p>20세기의 전례개혁운동과 교회일치운동의 성과를 수용하여 매주일 성찬례를 거행하고 전례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수용하는 것과 고교회와 저교회적인 성향과의 관련성을 직접적으로 연관시키는 것은 지나친 것이 아닌가 봅니다. 세례와 성찬례에 대한 초대교회들의 삶과 경험을 수용하는데 두 경향의 차이점은 있을 수 있어도, 이 결실의 수용 여부로 구분할 수 없다고 봅니다. 오히려 입교례(initiation, 오늘날의 세례와 견진, 성찬례참여을 하나로 묶은 것)를 수용하기 주저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고교회적인 성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p> <p>특히 성찬례의 경우, 오늘날 우리교회에서도 차별화(?)를 위하여 명칭까지 새로이 만들고 있습니다만(좋은 의미라도), 전례학 개론이나 초대교회의 삶에 대한 개론서만 읽어봐도 신앙의 선조들이 드렸던 예배 자체가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를 하나로 묶은 예배였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이것이 곧 우리들이 따라야 할 예배이지 무슨 특별한 예배인 것처럼 이름을 만들어야 하는지 안타깝습니다. </p> <p>성사와 관련하여, 성사에 대한 신학적 이해도 여기에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저교회파와 고교회파와의 구별에서 성사를 ‘높게’그리고 ‘낮게’보려는 이해를 하나의 기준으로 지적했습니다. 물론 이들은 모두 성사를 좁게, 교회가 규정한 성사들만을 생각하였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오늘의 우리들은 이렇게 좁게 규정할 수 없다고 봅니다.</p> <p>다음으로 이 모든 논의들의 뒤에 숨어있는 ‘현재 우리들의 교회 상황’에 대한 서로 다른 평가입니다. 이 논의에서 명확하게 드러나지않고 있습니다만 토론의 참여자들이나 관중들은 나름대로의 평가를 갖고 있다고 봅니다. 저 역시 오히려 이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앞에서 사례연구를 제안하였습니다. </p> viamedia on "고교회 high church 와 저교회 low church" 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87#post-276 목, 24 4월 2008 15:53:43 +0000 viamedia 276@http://liturgy.skhcafe.org/ <p>어떤 역사적 용어의 사용은 그 유래와 원래 의미와 더불어서, 그것이 현재의 시점에서는 어떻게 사용되고 어떤 의미로 변주되는가도 살펴 보아야 한다고 봅니다. 이 두 가지 일이 행복하게 만나는 경우도 있지만, 역사가 복잡할 수록 그 의미의 차이가 왜곡되고 변형되는게 심해서, 이에 대한 언급이 불필요한 혼란을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 한동안은 역사적인 신학적인 의미를 밝혀내는 일과 더불어, 이 과정에서 우리 현재에 적절하게 적용할 수 있는 안내를 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고교회와 저교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관심과 글은 바로 이 고민 선상에 있습니다. </p> <p>이런 점에서 저는 이미 첫글에서 "고교회"와 "저교회"의 구분법 문제, 그리고 이 문제를 '우리 식'으로 바로보는 방법의 내용을 제안했습니다. 이는 분명 하나의 제안이고, 이 제안은 장래에 불필요한 이런 이분법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라고 봅니다.</p> <p>Cranmerian 님은 이런 구분법의 폐기 주장에 반대하고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만, 이런 구분법의 폐기는 제가 지금 당장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논의의 과정을 거친 후에 내릴 결론의 방향이라고 이미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실제로 '고교회'와 '저교회'의 역사적 맥락을 설명했고, 이른바 학문적인 수준에서 이에 대한 논의를 지속하는 한편, 우리의 사목 현장, 즉 성직자와 신자들이 이 문제를 바라보는 당장의 실천적인 관점을 제공하기 위해서 우리 현실에 맞는 고교회와 저교회에 대한 이해 방식을 제안했던 것입니다. </p> <p>그런데 실제로 Cranmerian 님이 이후에 펼치시는 설명은, 제가 여러 번 지적한 "역사의 연속과 단절"이 어떤 단선적인 개념 규정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고 읽힙니다. 우려하는 바는 Cranmerian 님께서 고교회와 저교회의 역사적 유래와 그 특성에 과도하게 집중하는 탓에, 그 시각이 이후의 복잡한 역사 전개에 대한 이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듯 합니다. </p> <p>복잡한 역사 전개의 예는 이미 지적한 웨슬리의 경우도 그러하고, "고교회 운동"이라고 매우 단조롭게 지칭되어 오해가 깊어지는 '옥스퍼드 운동'에도 적용됩니다. 그 운동의 지도자 가운데 하나였던 존 헨리 뉴먼도 그 신앙적 배경은 실제로 영국 교회 내의 복음주의 흐름이었습니다. </p> <p>이러한 역사에 대해서 우리와 같은 후세대는, 우리 자신이 위대해서가 아니라, 역사라는 거인에 무등을 탄 채로 바라보기에 좀더 멀리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역사의 무등에 탄 난쟁이인 우리가 기대고 있는 중요한 어깨 가운데 하나가 바로 에큐메니칼 대화를 통한 그리스도교 전통에 대한 좀더 넓은 연구와 전례 운동을 통해서 제기되고 연구된 내용들입니다. 이 최근의 성과를 통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여전히 19세기의 논쟁 안에 머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입니다.</p> <p>p.s. 저는 어떤 식으로도 "선생"이 아닙니다. 저 역시 밑천이 없으니 이런 동네를 만들어서 듣고 배워보자는 겁니다. 또한 제가 생각하지도, 할 수도 없는 "어떤 불이익"에 대해서는 겁내지 않으셔도 됩니다. ㅎㅎ </p> Cranmerian on "고교회 high church 와 저교회 low church" 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87#post-275 목, 24 4월 2008 14:46:56 +0000 Cranmerian 275@http://liturgy.skhcafe.org/ <p>zinkoo님의 지적으로 저도 조금 자세히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즉 잉글랜드 국교회라는 스펙트럼내에서 고교회적인 성향과 저교회적인 성향이 함께 존재하면서 강조점의 차이이지 서로 상반된 개념으로 양자택일을 해야하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어느 교단이나 이러한 성향들은 존재하지만, 잉글랜드에서는 이러한 성향을 high church와 low church라는 명칭을 부여하여 사용하였고, 상대적으로 더욱 심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잉글랜드국교회의 전통을 물려받은 세계성공회와 대한성공회 역시 이같은 유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바로 이점 때문에 저는 ‘이제 더이상 저교회와 고교회의 구분은 필요없다’는 비아 메디아 님의 결론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p> <p>학생의 입장에서 선생님을 반박하려니 밑천이 딸리고 다가올 불이익이 겁나지만, 고교회니 저교회니 하는 논란은 성공회가 존재하는 한 언제나 따라다닐 것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개념이라도 규정하고 써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앞으로의 논의에서도 논점을 정확하게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p> <p>그렇다면 고교회적 성향과 저교회적인 성향의 개념을 어디서부터 규정할 것인가? 저는 이 용어가 태어난 시대를 기준으로 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앞에서 지적한 비아 메디아님의 기준-성직, 주교직, 성사-이 최소한의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비아 메디아님의 지적처럼 이후에 새로운 역사적 상황-새로운 문제제기나 위협-에 직면하여 이에 대처할 때 두 경향내에서도 여러 갈래로 쪼개졌기 때문에, 이 때부터는 이 용어의 일괄적인 적용이 어렵고 오히려 새로운 상황이나 사상에 직면하여 어떻게 변화되었는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zinkoo님이 말씀하신 웨슬리의 경우처럼(개심체험과 성령이라는 새로운 요소), 비아 메디아님이 논의의 확장을 노리는 전례운동과 에큐메니칼운동에 대한 대응에서도 저교회적인 경향과 고교회적인 경향내에 너무나 다양한 목소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다양한 갈래들중 어느 하나만를 선택하여 이를 고교회나 저교회라고 윤색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전개과정에 대한 이해가 더욱 중요하다고 봅니다만, 저는 자세히 모르기 때문에 비아 메디아님의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