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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태그: 세례 http://liturgy.skhcafe.org/ A Korean Anglican Theology & Liturgy Forum en Mon, 22 Jan 2018 16:11:39 +0000 Cranmerian on "비세례인의 영성체" 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671#post-1197 월, 18 7월 2011 15:13:20 +0000 Cranmerian 1197@http://liturgy.skhcafe.org/ <p>저는 두 교단의 정책적인[원칙] 변화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세례와 영성체[성찬에의 참여]가 연결되어 있다는 원칙에도 공감합니다. </p> <p>평신도로서 느끼는 것은 사목현장에서 사목자의 목회원칙에 따라 그 실행방식이 다르지 않나<br /> 생각합니다. 전에 다녔던 엘에이의 큰 교회에서 관할사제 신부님께서는 평화의 인사가 끝나면<br /> 광고를 하면서[당시에 제게는 인상적이었습니다], 광고를 끝내고 성찬의 전례를 위하여<br /> 제대로 올라가지 직전에 세례받은 모든 신자들을 성찬에 초대한다며 참여를 권고하시더군요. </p> <p>그리고 교회의 조그만 가족같은 교회에서는 관할사제께서 성찬기도를 끝내고 영성체를 시작하기<br /> 직전에 이 성찬에 모든 교우들[예배참여자들]을 초대한다고 말씀하시더군요. </p> <p>하지만, 신앙교육이나 설교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말씀하시겠지요.</p> <p>다른 신부님들께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접근하시는지 궁금하군요? </p> zinkoo on "비세례인의 영성체" 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671#post-1189 화, 05 7월 2011 06:11:25 +0000 zinkoo 1189@http://liturgy.skhcafe.org/ <p>지금 미국 방문 중인데 어제는 감리교 교회에서 영성체를 했습니다. 그런데, 감리교는 세례를 받지 않아도 본인이 신앙이 있다고 하면 영성체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듣기로는 미국 성공회도 그런 방향으로 가려고 한다는데 여기에 대해서 다른 분들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제 생각은 두 개의 성사는 연결되는 것이기에 세례를 받지 않고 영성체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p> viamedia on "어린이 영성체 문제와 몇 가지 제안" 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613#post-1118 목, 06 1월 2011 16:17:05 +0000 viamedia 1118@http://liturgy.skhcafe.org/ <p>"부모가 받아서 먹여" 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 </p> zinkoo on "어린이 영성체 문제와 몇 가지 제안" 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613#post-1115 금, 31 12월 2010 00:30:39 +0000 zinkoo 1115@http://liturgy.skhcafe.org/ <p>신부님 의견에 절대 동의합니다. 영성체를 시작하는 시기는 세례 이외의 어떤 것에 의해서도 제한 받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 아직 너무 어려서 지시 사항을 못 알아 들을 정도의 나이는 (2실 미만?) 제외해야 하지 않을까요? 부모가 받아서 먹여 주는 것도 방법일 것 같긴 하지만요. </p> viamedia on "어린이 영성체 문제와 몇 가지 제안" 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613#post-1113 금, 24 12월 2010 07:58:09 +0000 viamedia 1113@http://liturgy.skhcafe.org/ <p>성공회 안에서 어린이 영성체 문제에 대한 몇 가지 고민과 질문이 전해진 바 있습니다. 교회 현장에 있는 선생님들과 성직자들의 고민과 지혜를 듣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여, 저 나름대로 고민한 내용을 나누고자 합니다. 생각을 나누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좀 더 진전이 있었으면 합니다. </p> <p>어려운 조건에서도 애쓰시는 교회 학교 선생님들과 조언을 주신 신부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p> <p>~~~</p> <p>어느 교회의 선생님께서 고민 어린 내용을 나눠주셨습니다. 그 세부 내용은 여기서 밝히지 않겠습니다. 관련된 어린이 영성체 문제에 대해서 우선 저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 생각을 간명하게 밝힌 뒤, 그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고, 몇 가지 제안을 하겠습니다. 이후 고민의 나눔과 토론으로 발전시켜 주시기 바랍니다.</p> <p>1. 저는 모든 세례받은 사람은 유아든지 성인이든지, 나이와 관계없이, 영성체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p> <p>2. 현재 한국 성공회 법규에 영성체 나이에 대한 제한이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첫 영성체 교육을 한 뒤에 영성체에 참여할 수 있다고 밝힙니다(헌장 15조 및 교구 법규 127조)</p> <p>3. 영성체 대신에 영성체를 흉내 내서 다른 어떤 것을 주는 것에 저는 절대 반대합니다. 매우 좋지 않은 관습입니다. </p> <p>4. 어린이 영성체의 가장 좋은 방법은, 말씀의 전례 부분을 따로 가진 뒤, 성찬의 전례 시에 어린이들이 가족에게 돌아가 (가족이 신자가 아닌 경우에는 선생님들과 함께) 그 이후 모든 전례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이상적이고 성찬례의 의미를 잘 드러냅니다.</p> <p>5. 다만, 교회마다 어린이 영성체에 대한 '합의'가 있을 것입니다. 그 합의가 성직자의 사적인 견해보다 더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만, 점차 모든 어린이가 나이와 관계없이 영성체를 할 수 있도록 교회(신자)를 설득해야 하며, 처지에 따라 어린이 영성체 방법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p> <p>위의 주장은 저 자신이 전례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실제로 사목하는 성직자로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아래 내용은 위의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는 것입니다. </p> <p><strong>1. 세례는 그리스도인 됨의 출발이며, 성찬례에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strong> </p> <p>세례는 그리스도인 됨의 출발입니다. 그리고 이 성사는 본질적으로 성찬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초대 교회 이후의 세례와 성찬례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이요, 원칙이며, 전통이었습니다. 세례-(견진-기름 부음)-성찬례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입교 의식(Christian Initiation)의 기본 형태입니다.</p> <p>물론 이러한 이해와 행동의 전통은 성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유아 세례가 퍼지기 전의 일이었습니다. '원죄'에 대한 신학과 더불어 유아 세례가 퍼지면서, 세례가 대체로 유아 세례로 한정되었습니다. 따라서 신앙교육(catechism. 이를 '교리교육'으로 번역하는 것은 잘못된 행태에 대한 잘못된 번역입니다)을 유아에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를 문제 삼아 신앙교육 후에 첫 영성체를 하는 관습이 발전했습니다. 이 문제 때문에 종교개혁기에는 유아세례를 반대하며 세례는 성인에게만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은 세례가 유아이든 성인이든 하느님께서 주도하시어 베푸시는 은총의 성사인 것으로 이해하고 오래된 교회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유아세례자뿐만 아니라 성인 세례 후보자들을 위해 세례 후보자 교육(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에 대하여)을 강화시키는 것으로 생각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현대 성공회는 이 전통을 깊이 지지합니다.</p> <p>그러나 여기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성인 세례자의 경우, 신앙교육 후 세례-(견진)-성찬례로 이어지는 입교식을 통해서 오랜 교회의 전통을 회복하여 적용시킬 수 있지만, 유아세례자는 경우는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p> <p>이에 대해서 두 가지 주장이 맞섭니다. 1) 어떤 이들은 신앙교육을 받지 않은 유아세례자의 경우는 신앙교육을 받을 때까지, 특히 성찬례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마련되기까지 영성체를 미뤄야 합니다. 천주교와 많은 개신교, 그리고 여러 나라의 성공회가 아직 이런 주장을 폅니다. 그래서 적정한 나이(이것이 또한 논란거리입니다만)가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2) 한편, 이런 주장은 세례 자체를 차별하는 처사라는 반대가 있습니다. 세례는 하느님의 주도권으로 일어나는 은총의 성사인데, 어떻게 사람이 그 등급을 구분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게다가 신앙교육을 받았다 하더라도 성찬례의 깊은 신비를 어느 누가 전적으로 알 수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런 주장에 선 분들은 모든 세례자에게 영성체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 세례와 성찬례라는 성사의 의미에도 맞고, 논리적으로도 바르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주장은 성공회를 비롯하여 여러 개신교에서 새로운 지지를 받고 있으며, 점차로 그 실천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p> <p>저는 후자의 태도가 성사에 대한 바른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성공회에서는 성사에 대한 좀 더 넓고 깊은 이해와 그에 따른 일관된 실천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어린이든 성인이든 세례받은 모든 이들은 영성체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실천하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p> <p><strong>2. 한국 성공회의 해당 법규는, 유아세례자에 대한 영성체를 '첫 영성체 교육' 후에 한다고 말합니다.</strong> </p> <p>오랜 교회의 관습으로 유아세례를 차별해온 탓에, 우리 교회의 법규는 '첫 영성체 교육'이라는 단서를 두고 어린이 영성체를 허락합니다. 여기서 간단히 몇 가지 문서의 조건 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p> <p>관구 법규 제15장과 서울 교구 법규 제127조(2007년판 기준)입니다. </p> <p>1) 성체성사 집전자는 각 성체성사 중에 성체를 영하여야 한다.<br /> 2) 모든 세례자는 성체성사 중에 성체를 영할 수 있다.<br /> 3) 유아세례자는 첫 영성체 교육을 받은 후 성체를 영할 수 있다.</p> <p>2항과 3항에 논리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모든 세례자'에 '유아세례자'를 포함하지 않는다는 말은, '하나인 세례"(우리가 신조에서 고백하는)에 차별을 두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큽니다. 물론 교회의 오랜 관습을 반영한 것입니다.</p> <p>한편, 성공회 기도서(2004년)는 위의 관구 법규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p> <p>"세례받은 모든 신자는 성찬에 참여할 수 있으며, 유아세례자는 교리학습을 받을 수 있는 나이가 되면, 교리학습 후 첫 영성체를 할 수 있다." (기도서 235쪽)</p> <p>기도서의 이 설명은 법규에 대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실제 적용이 매우 좁아진 해석입니다. "교리학습을 받을 수 있는 나이가 되면"이라고 하여, 나이 제한을 암시하였습니다. 또 법규의 '첫 영성체 교육'을 '교리학습'으로 말을 바꿨습니다. 오랜 관습이었으니 별로 중요하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해석은 법규가 원래 가지고 있는 사목적인 여유로움을 제한할 수 있습니다. '나이'를 매우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세례 전후를 통해서 계속되어야 할 신앙교육인 신앙의 대화(catechism)와 신앙 신비 교육(mystagogy)의 연속성이 깨지는 문제를 당연시할 여지가 있습니다. </p> <p>게다가 이를 적용하는 일에서 사목 현장에서 몇 가지 혼란이 있는 듯합니다. 가상으로 사례 하나를 들겠습니다. '교리학습'을 받았든 안 받았든, 이미 어린이가 영성체를 한 교회가 있습니다. 그런데 주임 사제가 바뀌어서 어린이 영성체 참여 정책을 바꾸어, 특정 나이가 되지 않거나, '교리학습'을 받지 않았다고 판단되면, 영성체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른 판단일까요? 일관성 있는 사목 정책일까요?</p> <p>백번 양보에서, '나이'와 '교리학습'을 유아세례자의 첫 영성체 조건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이와 교리학습이 아니라, '첫 영성체'입니다. 다시 말해, 나이와 교리학습이라는 조건은 '첫 영성체'라는 행위에 종속된다는 말입니다. 이미 '첫 영성체'가 이루어졌다면, 그 임의적 조건들이 소급되어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즉 그 '어린이'는 이후에도 계속 영성체를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다시 뒤집을 수가 없습니다. 만일에, 이를 뒤집어서 해당 어린이들의 영성체를 금지한다면, 어린이들에게 큰 혼란을 줄 뿐만 아니라, 교회 공동체의 사목적인 정책의 혼란과 더불어, 교회 법규를 자의적으로 해석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p> <p>다시 말씀드리면, 법규가 계속 제한하는 한, '첫 영성체 교육'을 한 후에 유아세례자의 영성체를 허락하는 방법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첫 영성체'를 한 뒤라면, 그 해당 유아세례자에게 영성체를 금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p> <p><strong>3. 한편, 영성체 때에, 어린이에게 성체가 아닌 다른 어떤 것을 주는 것에 저는 절대 반대합니다. 매우 좋지 않은 관습입니다.</strong></p> <p>영성체를 하지 못하는 어린이(비신자이든 신자이든)에게, 영성체를 하는 줄에 참여하게 해서, 성체 대신에 다른 과자나 사탕, 심지어 비타민을 주는 행동이 있다고 합니다. 이는 사목자 자신이 성찬례에 대해 크게 오해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 참여자들에게 성찬례에 대한 오해를 부추길 수 있는 잘못된 행동입니다. 영성체 때의 성체와 보혈은 그 어떤 방식으로도 다른 것이 대체할 수 없습니다. 특히나 그것은 성찬기도를 통하여 공동체 안에서 주님 몸의 현존으로 축성된 것이 아닙니까? 그 현존을 나누고 새기며, 몸으로 받아서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것이 성찬례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그 핵심은 사라진 채로, 영성체에 대한 법적인 문제와 신학적인 문제(자신의 해석에 따라서)를 피하고자, 그 대체물을 어린이에게 주는 행동은 성찬례와는 관계없는 매우 자의적인 행동입니다.</p> <p>어떤 분들은 이렇게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아직 영성체를 받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서 영성체 훈련의 한 방법으로 사용한다고 말입니다. 어떤 분들은 영성체에 참여하지 못하는 어린이의 심정을 이해하고 이를 달래고 환영하기 위한 표시로 그리한다고도 할 법합니다. 좋은 의도, 특히 그 사목적인 배려를 깊이 이해하지만, 그 좋은 의도를 전혀 다른 맥락에 잘못 적용시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되풀이하자면, 그리스도의 현존에 참여하는 행위에 대한 왜곡된 이해를 심어줄 수 있습니다. 사족입니다만, 정말로 어린이에게 어떤 선물을 줄 것이라면, 미사가 끝나고 나갈 때, 간단한 빵이나 과자를 모든 어린이에게 줄 수 있을 것입니다(정교회 전통 참조).</p> <p><strong>4. 어린이는 성찬례에서 말씀의 전례 부분을 따로 가진 뒤, 성찬의 전례 부분(특히 평화의 인사 때부터)에 모두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strong> </p> <p>이 경우 어린이들은 은 가족에게 돌아가 (가족이 신자가 아닌 경우에는 선생님들과 함께) 그 이후 모든 전례에 참여합니다. 그것이 가장 이상적으로 성찬례 전체의 맥락 속에서 영성체를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고 성찬례의 의미를 잘 드러냅니다. 나아가, 처지가 허락한다면, 입당 순행을 어린이들과 함께 하고, 개회 예식 첫머리에서 아이들에게 그날 미사에 대한 권고(혹은 기도)를 한 뒤, 다시 어린이 예배(말씀의 전례를 위한)로 이동하도록 보내는 방식이 좋을 것입니다.</p> <p><strong>5. 이상의 논의와 관련하여 다음 사항을 제안하고자 합니다.</strong></p> <p>우선 교회마다 어린이 영성체에 대한 '합의'가 있을 것입니다. 그 합의가 성직자의 사적인 견해보다 더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 합의 내용이 없다면, 지금부터 시작해서 어린이 영성체에 대한 합의와 전통을 만든 것이 좋다고 봅니다. 전례를 연구하고 그 사목적이고 선교적인 적용에 관심이 많은 저로서는, 점차 모든 어린이가 나이와 관계없이 영성체를 할 수 있도록 교회(신자)를 설득해야 한다고 봅니다.</p> <p>위에서 말한 제 생각을 정리하고 제안하면 이렇습니다.</p> <p>1) 이미 '첫 영성체'를 한 경험이 있는 어린이는 중단 없이 계속 영성체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이미 위에서 밝혔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 경우는 법규에 나온 제한 사항에 해당하지 않습니다.</p> <p>2) 법규를 적용한다면, 되도록 이른 나이에 첫 영성체 교육을 하여 영성체를 준비하고, 영성체에 참여하도록 해야 합니다. 어린이도 자신이 영성체에서 배제되고 있는지 아닌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또 영성체에 대한 그런 접근이 성인의 '설명적 이해'에는 해당할지 몰라도, 그 신비에 대한 감각에서는 어린이들이 더 가깝다는 것을 오래도록 경험한 바 있습니다. </p> <p>3) 세례를 받은 이든 아니든, 성인이든 어린이이든, 영성체 때에는 성찬례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영성체를 하는 줄에 참여해야 한다고 봅니다. 영성체를 할 수 없는 분들은, 성체와 보혈을 나눠주는 성직자(혹은 조력자) 앞에서 양손을 십자 형태로 가슴에 포개고, 성직자(혹은 조력자)가 각각 "그리스도의 성체" "그리스도의 보혈"을 들어 보여주며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물론 성체를 받아서 영하지는 않습니다. 이 경우, 어린이(어른들도 가능)에게 손을 얹어 강복할 수 있습니다.</p> <p>4) 한편, 특수한 사정에 따라서 세례받은 신자라도 영성체를 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면병에 만들 때 쓰는 밀가루의 '글루텐' 알레르기가 있는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들을 위해서는 글루텐이 제거된 밀가루로 만든 면병을 따라 축성하면 좋을 것이나, 사정이 그렇지 못하면, 위와 같이 손을 가슴에 포개고 영성체에 참여합니다. 또 술에 문제가 있는 분들의 경우, 보혈을 마시지 않고 같은 방법으로 영성체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p> <p>5) 어린이들이 성찬의 전례 전체에 참여하도록 합니다. 될 수 있으면 입당 시에 집전자와 함께 순행에 참여한 뒤 말씀의 전례 동안 어린이 예배를 위한 말씀의 예배를 하도록 이동하면 좋을 것입니다.</p> <p>몇 분들의 고민이 제게도 닿아서, 이런 나눔과 토론의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여러분의 의견을 경청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 viamedia on "번역: 나이로비 선언 - 예배와 문화" 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557#post-985 일, 04 10월 2009 06:23:45 +0000 viamedia 985@http://liturgy.skhcafe.org/ <p>* 역자 주: 아래에 번역하여 옮겨 놓은 자료는 루터교 세계 연맹(LWF)의 예배와 문화에 관한 나이로비 선언 전문입니다. 한국 루터교에서도 번역된 내용을 찾을 수 없기에 번역하여 옮겨 놓습니다. 공부를 위한 번역일 뿐이니 참조만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다른 곳에 허락 없이 옮길 수 없습니다.</p> <p>---</p> <p>나이로비 선언: 예배와 문화</p> <p>1996년 루터교 세계 연맹 </p> <p><strong>당면한 도전과 기회</strong></p> <p>이 선언은 1996년 1월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루터교 세계 연맹의 예배와 문화 연구를 위한 국제 협의회 3차 회의의 결과물이다. 이 연구 모임의 구성원들은 세계 다섯 개 대륙을 대표하여 지난 3년 동안 열정을 다해 함께 일했다.1993년 10월 스위스 카르티니에서 열린 첫번째 협의회에서는 그리스도교 예배와 문화의 관계에 대한 성서적, 역사적 근거에 초점을 맞추었고, 그 결과 “예배와 문화에 대한 카르티니 선언: 성서적, 역사적 근거들”(이 나이로비 선언은 이 카르티니 선언에 기대고 있으며, 이 선언이 다른 선언을 대치하는 것은 아니다.)을 내놓았다. 1994년 3월 홍콩에서 열린 2차 협의회는 세상의 문화와 그리스도교 전례, 교회 음악, 교회 건축과 예술의 관계에 관련하여 당면한 문제들과 질문들을 살폈다. 이 두 차례의 협의회에서 발표된 글들은 [예배와 문화의 대화] Worship and Culture in Dialogue 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1) 나이로비 협의회에서 발표된 글들과 선언은 [그리스도교 예배: 문화적 다양성 안에서 일치]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2) 1994-1995년에 걸쳐, 연구 모임은 지역 현장 조사를 실시하고, 그 조사에 대한 보고서를 준비했다. 나이로비에서는 이 연구 모임의 4차 과제를 출범시켰으며, 연구 세미나와 이 연구에서 나온 결과들을 실행에 옮기는 여러 방법들을 계속해서 살필 것이다. 연구 모임은 이 프로젝트가 세상을 향한 교회의 쇄신과 선교에 핵심적인 것이라 생각한다.</p> <p><strong>서론</strong></p> <p>1.1. 예배는 그리스도교 교회의 심장이며 그 박동이다. 예배 안에서 우리는 창조와 구원이라는 하느님의 은총이 넘치는 선물을 함께 축하하며, 하느님의 은총에 응답하여 살아갈 힘을 얻는다. 예배는 ‘말’뿐 아니라, 늘 행동과 관련되어 있다. 예배에 대해서 생각하다는 것은, 전례와 설교 뿐만 아니라, 음악과 예술과 건축에 대해서 생각하는 걸 의미한다. </p> <p>1.2. 그리스도교 예배가 늘 주어진 지역 문화 환경 속에서 거행된다는 현실은 예배와 세계의 많은 지역 문화들 간의 역동적 관계에 관심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p> <p>1.3. 그리스도교 예배는 적어도 네가지 방식으로 문화와 역동적으로 관계한다. 첫째, 예배는 초문화적(transcultural)이다. 즉 어느 곳 누구에게나 문화를 넘어선다. 둘째, 예배는 맥락적(contextual)이다. 즉 지역 상황(자연과 문화)에 따라 다양하다. 셋째, 예배는 문화 대안적(counter-cultural)이다. 즉 어떤 주어진 문화가 복음에 반할 때, 이에 도전한다. 넷째, 예배는 문화와 교차한다(cross-cultural). 이로써 서로 다른 지역 문화 간의 나눔을 가능하게 한다. 이 네가지 역동성에 있는 원칙을 아래와 같이 밝혀 도움이 되도록 한다. </p> <p><strong>예배는 초문화적이다.</strong></p> <p>2.1. 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그분을 통하여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은총을 알게 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모든 문화를 초월하며 넘어선다. 그분의 부활의 신비 안에 그리스도교 예배의 초문화적인 원천이 존재한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성사인 세례와 성찬례는 세상을 위해서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다. 많은 언어로 번역되는 하나의 성서가 있으며,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성서적 증언은 모든 세계에 선포되었다. 성찬례는 주일을 지키는 행동의 정점이자 그리스도교 예배의 근본적인 구조로서, 문화를 넘어서서 나누어야 한다: 그 구조는 신자들의 모임, 하느님 말씀의 선포, 교회와 세상을 위한 기도, 함께 나누는 성찬의 식사, 그리고 선교를 위해 세상으로 파송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과 부활, 성령을 보내시고, 그분 안에서 받은 우리의 세례라는 위대한 이야기는 교회력에 나타난 초문화적인 시간의 핵심적인 의미를 마련해 준다. 특히 사순절기/부활절기/성령강림절기가 중심이요, 넓게는 대림절기/성탄절기/공현절기가 그렇다. 주일 성찬례와 교회력의 구조를 표현하는 방법은 문화마다 다양하다. 그러나 그 근본적인 구조의 의미들은 전 세계에 걸쳐 공유해야 한다. 한 분이신 주님, 하나인 신앙, 하나인 세례, 하나인 성찬례인 까닭이다.</p> <p>2.2. 그리스도교 전례의 몇가지 특정한 요소들 역시 초문화적이다. 즉 성서 독서(물론 그 번역은 다양하지만), 에큐메니칼 신경, 주님의 기도,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물로 받는 세례가 그것이다. </p> <p>2.3. 지역 교회 공동체 예배 안에서 공유하는 핵심적인 전례 구조와 전례적 요소들은 시간과 공간과 문화와 고백을 아우르는 그리스도교 일치의 표현이다. (공동체로 모이는 것과, 공간과 방식은 다르나 다양한 지도력의 표현들의 공유도 마찬가지이다.) 개별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이러한 초문화적이며 교회 전체가 공유하는(ecumenical) 요소들이 지니는 명백한 중심성을 회복하는 일은 그리스도교의 일치에 대한 생각을 쇄신하며, 모든 교회에 진정한 맥락화(토착화)의 든든한 기반을 제공한다.</p> <p><strong>예배는 맥락적이다.</strong></p> <p>3.1. 우리가 예배하는 예수께서는 세계의 특정한 문화 속에서 탄생하셨다. 그분의 성육신 신비 안에 그리스도교 예배의 맥락화를 위한 모본과 요청이 들어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세계 안의 지역 문화들 안에 존재하실 수 있으며, 그 안에서 우리는 그분을 만날 수 있다. 주어진 문화의 가치와 형태는, 그것이 복음의 가치와 합치하는 한, 그리스도교 예배의 의미와 목적을 위해서 사용될 수 있다. 맥락화는 세상 속에서 행하는 교회 선교의 필수적인 임무이다. 이를 통하여 복음은 다양한 지역 문화 안에 좀더 깊이 뿌리를 내릴 수 있다.</p> <p>3.2. 맥락화를 위한 다양한 방법들 가운데, 역동적인 등가성(dynamic equivalence)은 특히 도움이 된다. 이는 그리스도교 예배의 내용들을 그와 동등한 의미와 가치와 기능을 지난 지역 문화의 어떤 요소들을 통해서 새롭게 표현하는 것이다. 역동적인 등가성은 단순한 번역을 넘어선다. 다시 말해 예배의 요소들과 지역 문화 양쪽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의미에 대한 이해에 관여하며, 예배의 의미와 행동이 지역 문화의 언어 안에서 새롭게 풀려(encode) 표현되는 것이다.</p> <p>3.3 역동적 등가성의 방법을 적용할 때, 다음과 같은 과정이 필요하다. 첫째, 전례적 구조(liturgical ordo: 기본적 형태)를 그 신학과 역사, 그 구성 요소들과 문화적 배경과 관련하여 살펴야 한다. 둘째, 그 의미에 대한 어떤 편견 없이 역동적 등가성에 적용될 수 있는 전례적 구조의 요소들을 정해야 한다. 셋째, 올바른 방법으로 복음과 전례적 구조를 표현하게 하는 이러한 문화적 구성 요소들에 대한 연구가 있어야 한다. 넷째, 이러한 변화를 통해서 사람들이 얻게 될 영적이며 사목적인 유익을 고려해야 한다.</p> <p>3.4. 지역 교회들은 또한 창조적인 동화(creative assimilation)의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 이는 전례적 구조의 핵심적인 의미를 풍요롭게 할 수 있도록 관련 문화 요소를 덧붙이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물과 말씀으로 씻는다”는 세례의 구조(ordo)는 흰색 옷을 입힌다는지 촛불을 주는 것과 같은 고대 신비 종교 입교 예식의 문화적 요소들을 덧붙이며 점차적으로 풍성해졌다. 역동적인 등가성과는 달리, 창조적 동화는 전례적 구조를 풍요롭게 한다. 다시 말해, 그 요소들을 문화적으로 새롭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문화의 새로운 요소를 덧붙여서 그리 하는 것이다.</p> <p>
3.5. 맥락화 과정 속에서 그리스도교와 지역 문화의 근본적인 가치와 의미들을 공히 존중해야 한다. </p> <p>3.6. 역동적 등가성과 창조적 동화의 중요한 잣대 가운데 하나는 사목적인 필요에 따라 진행되는 이러한 변화 과정을 격려하면서, 동시에 보편 교회의 예배 전통과 일치를 유지하기 위하여 바른 전례 전통을 보전하는 일이다. 문화의 측면에서, 모든 것이 그리스도교 예배와 통합될 수는 없으며, 오로지 전례적 구조에 본질적으로 들어맞는 것에만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지역 문화에서 가져온 요소들은 항상 비판과 정화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성서적 유형론을 이용할 수 있다. </p> <p><strong>예배는 문화 대안적이다.</strong></p> <p>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과 모든 문화를 변화시키러 오셨으며, 세상에 순응할 것이 아니라, 세상과 함께 변화하도록 우리를 부르신다(로마 12:2).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아가는 그분의 신비 안에 변화의 모본이 있으니, 그리스도교 예배의 문화 대안적인 본질의 모본이기도 하다. 세상의 모든 문화 속에 있는 여러 요소들은 복음의 가치에 반하는 비인간화의 죄성을 지니고 있다. 복음의 관점에서 이런 요소들에 대한 비판이 필요하고 변화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교 신앙과 예배의 맥락화는 그 어느 문화에 처해 있든지, 모든 형태의 억압과 사회적 불의에 대한 도전에 필히 관여한다.</p> <p>4.2. 이러한 맥락화는 또한 더 넓은 인간성을 희생하며 자신 혹은 특정 계층을 우상화하는 문화 형태, 혹은 지구와 그 안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보살핌을 희생하여 부를 얻는데 중점을 두는 문화 형태에 대한 변화에 관여한다. 그리스도교 예배의 이러한 문화 대안적인 도구들은 기존의 지배적인 문화 유형과 의도적으로 다른 태도를 취하는 신중한 행동과 그 회복을 포함할 수도 있다. 이러한 행동의 모본들은 그리스도교 역사 속에서 회복된 생각과 다른 문화에서 얻은 지혜에서 솟아나기도 한다.</p> <p><strong>예배는 문화와 교차한다.</strong></p> <p>5.1.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한 구원자로 오셨다. 그분은 지상의 문화에 담긴 보화들을 하느님의 도성에 초대하신다. 세례라는 관점에서 하나인 교회가 존재한다. 그리고 세례에 신실하게 응답하여 살아가는 한 방법은 교회의 일치를 좀더 깊이 선언하는 일이다. 문화의 장벽을 넘어 성가와 예술, 예배의 다른 요소들을 나누는 일은 전체 교회를 풍요롭게 하고, 전체 교회의 친교를 강화시킨다. 이러한 나눔은 문화 교차적일 뿐만 아니라, 에큐메니칼한 것일 수 있다. 교회의 일치와 하나인 세례에 대한 증언이기 때문이다. 문화를 교차하여 나누는 일은 모든 교회에서 가능하며, 특히 다문화 교회 공동체에 필요하다.</p> <p>5.2. 다른 문화에서 나온 음악, 예술, 건축, 몸 동작과 행동들을 이용할 때는 세계 어느 교회에서든 사려깊은 이해와 존중이 필요하다. 이 때 그 맥락화의 기준(위의 3.5와 3.6)을 적용해야 한다.</p> <p><strong>교회에 대한 도전</strong></p> <p>6.1 우리는 루터교 세계 연맹 회원 교회들이 그리스도교 예배의 초문화적, 맥락적, 문화 대안적, 문화 교차적 특성에 관하여 좀더 노력을 기울이기를 요청한다. 우리는 회원 교회들이 세례의 중심성과 설교를 통한 성서, 그리고 매주일 주님의 만찬 거행 - 그리스도교 예배의 가장 중요한 초문화적 요소이자 그리스도교 일치의 표지들 - 을 모든 교회의 생활과 선교의 강력한 중심으로, 그리고 맥락화의 진정한 기반으로 회복하기를 요청한다. 우리는 모든 교회들이 전례와 언어와 몸 동작과 행동, 성가와 다른 음악, 그리고 악기, 그리스도교 예배를 위한 예술과 건축 등에서 그 지역적, 맥락적 요소들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기를 요청한다. 그리하여 그 예배는 지역 문화에 좀더 바르게 뿌리내리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 교회들이 이제 그들 안에 있는, 그리고 그 사목 활동의 협력자들과 그 수혜자들 안에 있는 상황과 맥락을 깨닫도록 하는 선교적인 노력을 기울이길 요청한다. 우리는 모든 회원 교회들이 예배의 초문화적인 본질과 문화 교차적인 나눔의 가능성에 깊이 주목하기를 요청한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교회들이 말씀과 성사를 집전하는 사목자들을 훈련시키고 서품하는 일에 노력하기를 요청한다. 개별 지역 공동체는 은총의 도구를 매일 받아야 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p> <p>6.2. 우리는 루터교 세계 연맹이 계획적이며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여, 개발 국가에 온 사람들이 예배와 교회 음악, 교회 건축을 연구할 수 있도록 돕는 장학금을 마련하기를 요청하며, 최종적으로 해당 지역 출신 교수진들에 의해서 그 교회들이 신학적인 훈련을 발전키는 목적을 달성하기를 바란다. </p> <p>6.3. 나아가, 우리는 루터교 세계 연맹이 새천년에 대비하여 예배와 문화에 관한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기를 요청한다. 이러한 임무들은 단기간에 이뤄지지 않으며, 지속적인 깊은 연구와 사목적인 격려에 대한 요청이 필요하다. 1992년에 시작되어 지난 1997년 루터교 세계 연맹 회의에서 계속된 [예배와 문화 연구] 모임은 의미있고 중요한 시작이다. 그러나 그 임무는 끊임없는 노력이 요구된다. 이 임무를 우선하는 일은 세계의 복음화에 핵심적인 일이다. </p> <p>번역: 주낙현 신부<br /> 원문: <a href="http://www.elca.org/Growing-In-Faith/Worship/Learning-Center/LWF-Nairobi-Statement.aspx" rel="nofollow">http://www.elca.org/Growing-In-Faith/Worship/Learning-Center/LWF-Nairobi-Statement.aspx</a><br /> 일시: 2009년 10월 2일<br /> 교정: </p> Cranmerian on "번역 : 입교례 예식들" 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166#post-412 일, 01 3월 2009 15:35:35 +0000 Cranmerian 412@http://liturgy.skhcafe.org/ <p>입교례 양식들<br /> Ruth A. Meyers</p> <p> 오늘날 세계성공회 교회들의 입교례 양식(rites of initiation)들은 매우 다양하다. 일부 관구에서는 16-7세기의 개혁된 형태들(절차들patterns)을 물려받은 그대로 사용하며, 그 외의 관구들은 20세기에 대대적으로 개정하였다. 16세기의 잉글랜드 개혁가들은 중세기 서방교회들의 양식(rite)을 매우 간소화하였지만, 입교례 형태(절차pattern)는 그대로 유지하였다. 중세말까지 입교례는 일반적으로 유아(신생아)때에 세례를, 일반적으로 분별할 수 있는 나이(7-8세)에 견진례를 실시하며 영성체의 허용으로 완결되었다. 여기에 개혁가들은 견진례 바로 직전에 교리교육(instruction)을 추가하였다. 첫 기도서에서 견진례 양식은 ‘어린이를 위한 교리문답’(catechism for children) 으로 시작하였으며, 어린이들은 견진례 이전에 이 교리문답에 대한 대답이외에 사도신경과 주기도문, 십계명에 대하여 교육받아야 했다. 견진례 양식 끝에 있는 지시문-‘견진례 지시문’이라고도 한다-은 ‘견진례를 받기 이전까지 누구도 성찬례(holy communion)에 참여할 수 없다’고 규정하였다. </p> <p>1662년 기도서는 몇가지 중요한 변화를 도입하였다. 16-7세기 동안에 성년의 세례를 실행하는 교파들(traditions)[유아세례 거부자들]의 출현으로 때때로 성인들에 대한 세례양식이 필요하였으며, 또한 식민정책으로 다른 대륙들에서 노예와 원주민들에 대한 세례양식이 필요하였다. 이 때문에 신생아에 대한 세례양식을 개조하여‘성년후보자’(Riper Years)에 대한 세례양식을 1662년 기도서에 추가하였다. 20세기에 이르러서야 성공회 관구들은 신생아나 성인에 관계없이 사용하는 단일한 세례양식을 도입하기 시작하였다.</p> <p>1662년 기도서는 견진후보자들이 세례때에 대부모들이 대신 서약한 약속을 확언 (ratification)하는 것을 새로이 강조하였다. 개정된 견진례 양식에서 주교는 후보자에게 세례때에 [대부모들이] 그들의 이름으로 약속한 서약(vow)을 갱신(renew)할 것인지, 즉 ‘너의 이름으로 한 서약을 그대로 인정하고 확언 하는지’를 질문하였다. 이 양식은 계속해서 성령의 7가지 은사로 확고한 신앙을 요청하는 기도후에, 주교가 후보자를 안수하였다. 성공회는 견진례를 두가지 행동으로 이해하였다. 즉, 하느님이 후보자들에게 그들의 세례서약을 완성한 것으로 확언하는 것과, 후보자가 세례때에 자신의 이름으로 약속한 세례서약을 확언하는 것이었다. </p> <p>견진례에는 또 하나의 목적이 있었다. 즉, 견진례는 영성체[성찬참여]를 허가하는 예식(admission to communion)이었다. 1662년 기도서는 견진례 지시문에서 ‘견진을 받을 준비가 된 자들’에게 영성체를 허용한다고 기존의 규정을 완화하였다. 이는 후보자들이 쉽게 주교를 만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었다. 그러나 견진례 이전에 교육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성공회 교회들은 이 교육을 영성체[성찬참여]의 전제조건으로 이해하였다. </p> <p>20세기의 변화들</p> <p>19세기말에 시작하여 20세기 내내 성공회 신학자들은 세례와 관련하여 견진례의 의미에 대하여 논쟁하였다. 이 예식들에서 성령의 은사의 본질은 무엇인가? 즉, 세례 또는 견진례에서, 아니면 두 경우 모두에서 성령을 부여받는가? A. M. 메이슨(Mason)과 그레고리 딕스(Gregory Dix)와 같은 학자들은 세례는 원죄(sin)의 정화만을 완성하기 때문에, 견진례에서 받는 성령의 내재하는 은사 없이는 미완성이라고 주장하였다. 한편 제프리 램프(Geoffrey Lampe)를 비롯한 일부 학자들은 똑같은 성서와 초대교회 문서들을 인용하며, 세례의 물안에서 성령의 내재하는 현존을 완전하게 부여받는다고 반박하였다. </p> <p>세례와 견진례의 의미와 사용례(practice)는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의 삶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20세기초 성공회 학자들은 견진례를 ‘평신도의 성직서품’ (ordination of laity), 즉 신자들에게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목활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는 것으로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성령의 활동에 대한 논쟁이 지속됨에 따라, 일부 학자들은 세례를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완전한 참여를 보장하는 기본조건이기 때문에, 세상에서의 사목직[세상사목직]에 대한 성사는 견진례가 아니라 세례라고 주장하였다. </p> <p>일일생활에서 구현되는 활력있는 신앙적 헌신-세례 또는 견진례에서 부여받는다-은 점차적으로 성공회 관구교회들-국가교회든 여러 교파중 하나든-의 중요한 괸심사가 되었다. 이 교회들은 20세기 동안에 그리스도교국가(Christendom)의 붕괴를 체험하였다. 즉, 많은 국민들은 세례를 받았지만 견진례를 받지 않거나, 견진을 받는 즉시 교회를 떠났다. 이 때문에 성공회 교회들은 교회생활에 보다 적극적인 참여를 인도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입교예식들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p> <p>이러한 모색은 전례연구의 발전으로 보다 구체화되었다. 초대교회의 문서들이 발견되고 번역됨에 따라, 전례학자들은 그리스도교 입교례의 역사적 전개과정에 대하여 보다 분명하게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그리스도교의 탄생부터 초기 몇세기 동안에 입교례는 단일한 양식으로 존재하였다. 즉, 물의 집행의식[시세식] (administration of water)-일반적으로 완전 침례와 이때의 신앙고백으로 구성-은 핵심적인 의식행동(ritual act)이었다. 이 예식에는 세례전이나 그 직후 또는 두 경우 모두의 도유의식(기름바름anointing), 십자성호 긋기, 그리고 머리에 손을 얹는 행동[안수]이 포함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시기와 지방에 따라 달리하였다. 이러한 입교례 행동들 직후에 새로이 세례를 받은 자들은 예배공동체에 합류하여 중보기도, 평화의 인사 그리고 성찬의 전례에 참여하였다. 교회가 확장되고 주교들이 이제는 더이상 모든 입교예식에 참여할 수 없게 됨에 따라, 견진례라는 분리된 양식이 중세기 서방교회에서 점차적으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양식이 분명해짐에 따라 신학적 의미를 추가하였다. 중세 신학자들은 견진례를 은총의 증가, 즉 영성적 전쟁을 준비할 수 있도록 신자들을 강화시키며 이들에게 신앙적 성숙을 부여하는 것으로 설명하였다. </p> <p>이러한 새로운 역사적인 이해를 통해서 성공회 교회들은 성인들의 경우 세례와 견진례, 영성체의 허용을 모두 포함하는 입교례 예식을 동시에 시행하는 것을 고려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접근방법은 미국성공회의 상설 전례위원회에서 발간한 &lt;Prayer Book Studies 1&gt;(1950)과, 영국성공회 켄터베리와 요크 관구의 합동위원회에서 잉글랜드교회의 세례와 견진례 그리고 첫 영성체에 대한 보고서인 &lt;Baptism and Confirmation To-day&gt;(1950)에서 제안되었다. 1958년 람베스회의의 한 위원회는 기도서들을 연구한 후, 성인후보자들의 세례를 견진례와 첫 영성체와 결합시킬 것을 권고하였다. 따라서 ‘이 세가지 단계들은 하나의 입교례과정으로 볼 수 있다.’ 또한 1962년 카나다기도서는 성인후보자들에 대한 세례와 견진례를 같은 예배에서[동시에] 실시하는 양식-의무적인 사항은 아니었다-을 수록하였다. </p> <p>성인후보자들의 입교례에 대한 공감(consensus)이 확산됨에 따라, 유아때에 세례받은 자들에 대한 완전한 입교례의 의미와 관행(practice)에 대하여 다양한 의견들이 제기되었다. 즉 성령은 유아세례와 이후의 견진례에서 어떻게 유효한가(operative)? 유아세례자들이 성숙한 신앙인으로 성장하여 적극적인 신앙생활을 지속할 수 있도록 어떻게 권장할 것인가?</p> <p>1968년 람베스회의</p> <p>1968년 람베스회의는 평신도 사목직(lay ministry)을 위임하고 지원하는 시각에서 그리스도교 입교례의 문제를 채택하였다. 회의는 평신도의 사목직을 위임하는 형식이 없다는 점을 고려하여, 각 관구들에 세례와 견진례의 신학을 조사하고 실험하도록 요청하였다. 람베스회의 보고서(section II: The Renewal of the Church in Ministry)는 두가지 대안을 제시하였다. 첫째로, 성찬례의 허가와 견진례를 분리시키고, 유아세례자는 ‘적절한 년령’이 되면 교리교육후에 성찬례의 참여를 허용한다. 견진례는 이들이 ‘사회에서 신앙인으로서의 책임’을 수행하고자 할 때까지 연기한다. 두번째 대안은 유아세례와 견진례를 동시에 실시한 후, 어린나이(early age)에 이르면 ‘적절한 교육’후에 영성체를 허용한다. 주교의 인준(commission)은 나중에 실시한다. 첫번째 대안은 견진례를 종교개혁의 시각인 세례서약의 확언으로 이해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두번째 대안은 견진례를 세례의 구성요소로 이해하며, 이는 초대교회에서 단일한 세례양식을 사용한 것과 유사하다. 두가지 대안은 모두 종교개혁의 요구사항인 영성체허가 이전의 교리교육을 요구한다. </p> <p>세계성공회의 각 관구들은 람베스회의의 결의안에 대하여 여러가지 방식으로 응답하였다. 미국성공회의 1979년 기도서와 카나다의 &lt;대안예식서&gt;(1985)는 새로이 세례를 받은 자들이 세례때에 성찬에 참여하는 것을 분명하게 허용하였다. 1970년에 도입된 뉴질랜드의 ‘대안예식’은 어린이들[유아세례자]이 8살때에 교육을 받은 후 성찬에 참여하도록 허가하였다. 일부 관구들은 이를 각 교구에 위임하였으며, 일부는 이 문제를 연구중이며 그외 나머지는 전혀 행동하지 않고 있다. </p> <p>세계 성공회 전례협의회</p> <p>세계성공회 협의회(ACC)는 1984년 회의에서 각 관구교회들에 어린이의 영성체허용 문제를 검토하도록 권고하였으며, 1985년에 개최된 세계성공회 전례협의회(IALC)의 첫 모임은 이 문제를 연구하여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협의회의 권고사항들은 세례가 완전한 성사적 입교례이기 때문에 모든 세례신자들에게 성찬을 허용해야 한다고 강조하였으며, 더 나아가 견진례는 성찬을 허가하는 예식이 아니며 또한 완전한 교회신자가 되는데 필수조건이 아니라고 명시하였다. 6년후[1991] 제4차 협의회는 첫 회의의 결과를 재확인하면서 ‘그리스도교 입교례의 원리들’ (Principles of Christian Initiation)에 관한 권고사항을 발표하였다. 이 문서는 세례예식의 전례본문은 교회의 신앙생활을 넘어서, 세례서약의 갱신의 핵심인 세상속에서의 하느님의 선교활동을 지적해야 한다고 확언하면서 시작한다. 세례예식은 성인에게나 유아에게나 동일하다. 즉 반복할 수 없는 완전한 성사적 입교례이며, 성찬례의 참여를 인도한다. 그러므로, 견진례와 이와 유사한 확언예식들(rites of affirmation)은 신앙의 갱신을 강조하는 것이지, 세례를 완결시킨다거나 세례신자에게 성찬참여를 허가하는 예식이 아니다. 권고사항은 세례직전의 준비와 형식으로서의 세례후보자 교육과정(catechumenate)-교회마다 다르지만-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또한 세례공식문(formula)과 신앙고백때에 하느님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표현할 것을 강조하였다. </p> <p>이러한 권고사항들은 회의에 참석한 관구 대표자들과 전례학자들 사이의 확고한 공감을 나타낸다. 이들은 한세기동안 지속된 성령의 활동에 대한 논쟁을 종식시키고, 세례는 성령의 은사를 부여한다는데 동의하였다. 더구나 이들은 물의 중심성을 재확인하면서, 물의 집행[시세식]이외에 안수나 십자성호긋기를 통해서 성령을 부여한다는 인상을 회피하려고 노력하였다. 이 회의에 의하면, 견진례는 사목적 예식으로, 유아세례자들이 성숙하였을 때 스스로 약속하도록 허용하는 예식이다. 더구나 협의회는 똑같은 예식-성령의 확고한 은사를 청원하는 기도와 안수-을 세례서약의 재확언이 필요한 다른 사목적 예식들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고 제시하였다.</p> <p>일부 관구들은 1991년 전례협의회 회의 이전에 기도서를 개정하였지만, 상당수는 그 이후에 개정하였다. 1991년 이전에 도입된 예식들의 특징들은 이미 협의회의 권고사항들을 예견하였다. 당연하게도 이 예식들과 협의회는 현대의 전례학 연구성과와 20세기의 전례운동으로부터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1991년 이후에 개정된 기도서들은 협의회의 권고사항들을 상당히 반영하였으며, 새로운 양식들을 소개하는 문서들은 개정위원회의 주요 자료로 협의회를 언급하였다. </p> <p>현대 성공회 입교례 양식들의 특징들</p> <p>1) 세례후보자들</p> <p>지난 30년동안 개정된 대다수 기도서들은 단 하나의 세례양식만을 규정하고 있다. 미국성공회는 이미 1928년 기도서에서 유아와 성인후보자들이 같은 예배에서 동시에 세례를 받을 때 사용할 수 있도록 기존의 양식을 단순화시킨 단일양식을 제정하였다. 20세기말의 개정자들은 단일한 세례양식의 신학적인 중요성을 보다 잘 인식하였다. 예를들면, 말레이지아의 &lt;개정 세례예식서&gt;의 머리말은 ‘유아와 성인후보자들을 위한 여러가지 세례양식들은 신학적으로 혼돈을 초래하여, 마치 세가지 다른 세례가 있는 것처럼 제시한다’고 설명하였다.</p> <p>예외적으로 탄자니아와 서인도제도, 파푸아 뉴기니, 웨일즈는 단일한 양식을 도입하지 않고 있다. 웨일즈는 1984년 기도서와 1991년의 &lt;대안예식&gt;에서 17세기에 제정된 유아와 성인후보자의 세례양식을 보존하고 있지만, 앞으로 연령에 관계없는 새로운 단일한 입교례 양식을 제정하려고 한다.</p> <p>유아와 어린 아이들은 질문에 직접[말로써] 대답할 수 없기 때문에, 유아와 성인 후보자들의 양식을 따로이 제정한 기도서들 뿐만아니라 단일한 양식을 지정한 기도서들은 이들을 대신하여 부모와 대부모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이들의 생활을 양육하고 후원할 것인지를 묻는 질문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질문들은 일반적으로 후보자의 추천[천거]이후에 시행된다. 하지만 전통적인 기도서들의 유아세례 양식들은 대부모들에 대한 권고문으로 마감하면서, 이들에게 유아를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인도하고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들을 배우는 것을 감독하도록 지시하였다. 탄자니아 기도서는 마감하는 권고문을 보존하였지만, 아이의 후원하는 것을 묻는 질문들을 포함하지 않았다. </p> <p>현대의 대다수 양식들은 부모와 대부모에 대한 질문들 직후에, 유아 후보자의 부모와 대부모, 그리고 성인후보자에게 동시에 포기[거부]와 신앙확언을 질문한다. 16-7세기 기도서들은 대부모에게 이와 비슷한 질문들을 ‘이 아이의 이름으로’(in the name of this child) 응답하도록 요구하며, 응답은 1인칭인 ‘나는 포기한다’와 ‘나는 믿는다’로 대답하였다. 현대의 대다수 양식들도 마찬가지로 부모와 대부모들이 유아를 대신하여(on behalf of) 응답하도록 요청한다. 일부는 이를 지시문에서 규정하지만, 일부 양식의 경우 사제가 심문(시험,interrogation)에 앞서 간단하게 이를 지적한다. 최근의 양식들중 두 경우-케냐의 &lt;현대예식서&gt;와 아일랜드의 기도서(2004)-는 부모와 대부모에게 아이를 대신하여 대답할 것인지를 먼저 묻는다. </p> <p> 최근 몇십년동안 성공회 교회들은 부모와 대부모들이 유아를 대신하여 또는 유아의 이름으로 응답하는 것이 합당한 지를 제기하였다. &lt;뉴질랜드 기도서&gt;의 세례양식은 부모와 대부모가 자녀의 이름으로 응답하는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즉 추천후에 성인후보자는 ‘저는 하느님의 부름을 받고 세례를 받고자 합니다’라고 대답하지만, 부모와 대부모들은 ‘우리는 하느님의 부름을 받고 세례를 요청합니다’[필자의 밑줄]라고 진술한다. 부모와 대부모는 성인후보자들과 함께 악령을 거부한다고 진술하지만, 이 양식에서 이들이 유아후보자를 대신하여 그렇게 한다는 표현은 어디에도 있지 않다. 신앙고백을 요구하는 질문에 대해서도 성인후보자와 부모, 대부모들은 모두 ‘저는 성심으로 그리스도를 믿겠습니다’으로 대답하며, 부모와 대부모들은 계속해서 ‘또한 이 아이를 그렇게 돌보겠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이와 비슷하게 스코틀랜드 성공회의 1998년 세례양식의 지시문에 따르면, 집례자는 보증인들이 아이의 이름으로 말한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지적하지 않고, 곧바로 ‘후보자, 또는 유아세례의 경우 보증인’에게 직접 묻도록 요구한다. 세례의 부름을 받았는지를 묻는 질문에, 성인후보자는 ‘저는 하느님의 부름을 듣고 수용하며, 세례를 요청합니다’라고 대답하고, 유아의 보증인들은 ‘우리는 우리와 이 아이에 대한 하느님의 부름을 듣고 수용하며, 세례를 요청합니다’라고 대답한다. </p> <p>현대의 다른 양식들은 부모와 대부모에게 아이를 대신할 뿐만아니라, 자신들을 위하여 대답하도록 요구한다. 웨일즈의 1991년 양식은 부모와 대부모들이 먼저 세례서약을 갱신한 후에, 아이를 대신하여 세례서약의 질문들에 대답한다. 남부 아프리카와 서인도제도의 양식들에서도 사제는 부모와 대부모에게 아이 뿐만아니라 자신들을 위하여 대답한다고 설명한다. 영국성공회도 1980년의 &lt;대안예식서&gt;에서 이와 유사한 예식을 채택하였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부모들의 서약이 아이들을 대신한다는 점을 약화시킨다고 반대하였으며, 일부는 많은 부모들이 유아세례 때에 신앙의 초기단계에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들에게 준비되지 않은 서약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하였다. 결국 &lt;공동예배&gt;의 준비단계에서 부모들이 자신들을 위하여 대답한다는 기대를 삭제하였다. 아일랜드 성공회의 2004년 기도서는 부모들에게 악령의 거부와 그리스도에의 의탁을 질문하고, 후반부(세례서약직전)에 이들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믿고 수용하는지를 질문함으로써, 부모들의 신앙을 다루었다. </p> <p>2)세례와 견진례와의 관계 </p> <p>오늘날의 세례신학은 세례예식이 완전한 입교례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의 첫 세기들 동안에 입교례는 성찬례로 완결되는 단일한 양식을 통해서 실행되었다는 새로운 이해 때문이다. 1979년 미국 기도서는 이 점을 분명히 하였다. 즉 ‘세례는 물과 성령으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입문하는 완전한 입교례이다.’ 이와 비슷한 진술문들은 카나다의 &lt;대안예식서&gt;와 필리핀의 기도서(1999), 멜라네시아의 세례예식(2001)등 다른 관구들의 전례자료들과 해설서에서도 나타난다. </p> <p>세례의 완전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미국의 세례양식(1979)은 중세와 개혁된 잉글랜드교회의 견진례 양식의 하나였던 성령의 7가지 은사를 부여하는 기도(이사야2:11에 나오는 은사들에 근거)[여기서는 간단히 은사기도라고 번역한다]를 포함하고 있다. 이 세례양식에서 시세식(administration of water)과 은사기도 직후에 주교나 사제는 후보자의 머리에 손을 얹고 [필요할 경우 성유를 사용하여] 이마에 십자성호를 그으며(‘consignation’), ‘당신은 세례에서 성령의 보증을 받고 영원히 그리스도의 자녀가 되었다. 아멘’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전례적 행동은 다양하게 해석되었다. 먼저 별개의 성사적 행동으로, 즉 중세교회의 견진례의 내용을 세례의 본래적 상황으로 복원한 것으로 해석되거나, 또는 세례의 신학적 심오함(richness)을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설명적인(상징적인, 추가적인) 예식(explanatory rite)으로 해석되었다. </p> <p>단 3개의 관구만이 미국성공회가 주도하는 이러한 입교례 이해를 채택하였다. 카나다의 &lt;대안예식서&gt;와 이를 따르는 멜라네시아의 세례양식은 은사기도와 전례행동[십자성호긋기]의 순서를 바꾸고(이는 미국기도서의 지시문에서 허용한 선택항목이다), 이를 ‘세례’라는 제목 아래에 시세식과 함께 포함시켰다. 이러한 순서(시세식, 십자성호긋기, 은사기도)와 공식문(formula)인 ‘나는 너를 십자가로 보증한다’(‘성령의 보증을 받고’가 아닌)는 십자성호긋기를 성령의 은사를 부여하는 별개의 성사적 행동이라기 보다는 설명적인 예식임을 제시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필리핀 기도서의 십자성호긋기는 보다 쉽게 별개의 성사적 행동으로 해석된다. 이 양식에서 시세식 후에 흰색 옷이나 촛불 또는 두가지를 모두 수여하는 행동들은 설명적인 예식으로 보인다. 그 다음에 성령의 7가지 은사를 부여하는 기도와 십자성호긋기를 한다. 성유를 사용하는 십자성호긋기와 공식문은 1979년 미국기도서를 따른다.</p> <p>십자성호긋기를 별개의 성사적 행동으로 이해한다 하더라도, 세례예식에서 이를 은사기도와 함께 포함시킴으로써 통합된 입교례 양식을 창작하였다. 그러나 미국기도서는 견진례에 대한 지시문에서 ‘성년에 세례를 받은 자들은 주교의 안수를 받지 않았다면, 주교 앞에서 그들의 신앙과 세례서약에의 헌신을 공개적으로 확언하고 안수를 받기를 바란다’고 진술함으로써 세례예식의 충분성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이 지시문은 기도서를 인준하는 관구의회(General Convention)에서 11시간의 논란끝에[마지막 순간에] 추가되었으며, 주교의 안수 없이는 세례를 완전한 입교례가 아님을 제시한다. 또한 필리핀 기도서도 (다른 관구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양식의 표현을 채택하였다. 반면에 카나다 기도서에는 이러한 지시문이 없으며, 견진례 ‘세례에 응답하는 방식’의 하나로 설명하며, 이에 대한 참여를 기대한다는 진술을 추가하지 않았다. 이는 실제적으로 세례를 하나의 완전한 입교례로 제시하는 것이다. 멜라네시아의 경우는 교회법에서 성찬참여 이전에 견진례를 요구하기 때문에, 세례[시세식]직후에 세례대(font)에서 견진례의 안수를 세례예식에 추가하였다. </p> <p>다른 관구들의 기도서들은 견진례에 성령의 7가지 은사를 부여하는 기도로 보존하며(예외적으로 브라질교회는 이 기도문을 삭제하였다), 어린이 뿐만아니라 성인들에게도 견진례를 의무화한다. 성인 입교자들의 경우, 대다수 기도서들은 세례와 견진례 그리고 성찬참여를 단일한 양식으로 권고하거나 요구한다. 견진례를 요구하는 것은 곧 세례를 완전한 입교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p> <p>3)성찬참여의 허가(admission to communion) </p> <p>점차 많은 관구들은 세례신자들에게 견진례 이전에 성찬참여를 허용하고 있다. 영국성공회의 경우, &lt;공동예배&gt;의 견진례 지시문에 규정된 ‘준비하고 희망하는’ (ready and desirous) 조항에 근거하여 전도구교회의 사제들이 세례받은 자들을 세례때부터 성찬참여를 허용할 수 있다고 제시하고 있다. 다른 관구들은 이 지시문을 완전히 삭제하였다. 카나다의 &lt;대안예식서&gt;는 성공회의 역사적 기도서들 로부터 완전히 이탈하여, 유아와 성인후보자들의 세례와 성찬참여를 단일한 양식으로 집례하며, 견진례의 필요성을 삭제하였다. </p> <p>견진례 지시문을 삭제하고 성인세례자들의 성찬참여를 허용한다 할지라도, 대다수 관구들은 어린이의 성찬참여를 허용하기 이전에 실시하는 교육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미국의 경우, 1970년의 전국총회는 견진례 이전에 어린이들의 성찬참여를 허가하였지만, 주교원은 1971년 어린이들의 성찬참여 이전에 성사의 의미를 교육시킬 것을 권고하였다. 하지만 이에 대한 사례는 너무 다양하다. 일부 성직자들은 어린이들이 성찬에 대한 체험이 없을 경우 이를 전혀 기억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후 15년동안 점차적으로 나이어린 아이들까지 성찬에 참여하였으며, 1988년 주교원은 유아세례자들도 세례때부터 성찬에 참여하는 것을 인정하였지만, 이후에 받을 교육의 필수성은 유지하였다. </p> <p>다른 관구들도 견진례 이전의 성찬허용을 검토할 때, 이와 비슷한 과정을 체험하였다. 일부는 관구나 의회 차원에서 결정하였지만, 일부는 각 교구의 주교들이 지침서를 발표하거나 각 전도구교회의 관할사제가 이러한 변화를 도입하기도 하였다. 현대의 기도서들 대다수는 유아를 포함한 모든 세례신자들이 세례때부터 성찬참여를 허용받는다고 적시하지 않는다. 소수의 예외중 하나인 뉴질랜드는 1990년 입교례에 대한 지침서(guidelines)에서 사목현장에 따른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나이에 관계없이 세례때부터 성찬을 허용하였다. 이와는 달리 1991년 웨일즈 주교들이 발표한 지침서는 유아세례자들을 7살때부터 교육후에 성찬을 허용하는 시험계획을 허용하였다. 남부 아프리카와 영국, 케냐 등 몇몇 관구들은 세례받은 어린이들을 견진례 이전에 성찬을 허용하는 전례양식을 만들었으며, 일부 교구와 전도구들도 이를 시도하였다.</p> <p>이 모든 사례들에서 나타나듯이, 성공회의 입교례 양식들과 실례는 신학적인 모순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17세기 견진례 지시문은 견진례를 ‘준비하고 희망하는’자들에게 성찬참여를 허용함으로써, 역사적 기도서들의 입교례 순서- 세례와 견진례 그리고 성찬참여-를 바꿀 가능성을 만들었지만, 대다수 관구들의 표준적인 형식(normative pattern)은 성찬참여를 입교례의 완결로 유지하였다. 오늘날 이 순서는 많은 관구들에서 재조정되고 있다. 이는 곧 견진례를 교회로의 입교을 위한 성사가 아니라는 점을 제시한다. 그러나 카나다를 제외한 관구들의 양식 본문들은 세례와 관련하여 견진례의 의미에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견진례를 권고하거나(미국, 브라질, 필리핀) 요구하고 있다. </p> <p>4)견진례와 다른 재확언 양식들 </p> <p>현대의 대다수 개정기도서들은 견진례를 세례의 상황[범주]속에 위치시켰다. 많은 기도서들은 견진례를 분리하여 집례할 때도 후보자의 신앙고백문을 동일하게 사용하고 있다. 미국성공회는 1979년 기도서에서 새로운 접근방법을 도입하여, 견진례 양식에 성공회로의 전입예식(환영의식reception into Anglican Communion)과 세례서약의 재확언 예식(reaffirmation)-두 예식 모두 주교가 집례-을 추가하였다. 이 추가 예식들은 신앙생활에서 자신의 세례신앙을 공식적이자 공개적으로 재확언을 요구하는 상황들-심오한 또는 새로운 신앙체험, 즉 ‘성령의 세례’나 신앙공동체로의 복귀 등-을 고려한 것이다. 후보자들은 구체적으로 견진례, 전입예식 또는 세례서약의 재확언으로 다르게 추천되며, 주교는 각 경우에 따라 다른 공식문(formula)을 사용한다. 하지만 그외의 본문들-후보자의 검사, 세례서약, 후보자를 위한 기도와 식탁의 전례-은 동일하다. 카나다, 뉴질랜드, 브라질, 호주, 서인도제도, 멜라네시아, 영국, 필리핀, 아일랜드 등은 이와 비슷한 양식들을 채택하였다. 1998년 스코틀랜드는 ‘세례신앙의 확언과 주교의 안수례’(Liturgy of Laying-on of Hands in Affirmation of Baptism)를 도입하였다. 이 예식은 성령의 7가지 은사를 부여하는 전통적인 기도를 포함하였지만, 견진례라는 용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p> <p>성공회로의 전입예식(reception)의 문제는 더욱 복잡하다. 적어도 19세기 이후로 성공회는 일반적으로 역사적 주교직을 보존하는 교파교회에서 견진을 받은 신자들에게 견진례를 요구하지 않았지만, 추가적인 교리교육을 받고 견진을 받은 루터교 신자들을 포함한 다른 교파교회들에서 온 성찬참여 세례교우들에게 견진례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주교의 견진을 받았는지를 판별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운 문제가 되었다. 동방정교회의 경우, 사제는 주교가 축복한 성유를 사용하여 성유의식을 집례함에도 불구하고, 성공회는 이 세례의 성유의식을 견진례와 동등한 것으로 인정하였다. 천주교의 경우, 주교에 의한 견진례가 표준예식이었지만, 제2차 바티칸회의의 개혁이후 부활전야에 세례를 받는 성인입교자들의 견진례를 사제에게 위임하였다. 성공회의 각 관구들이 루터교회들과 완전한 상통관계(full communion)를 맺음에 따라, 주교가 아닌 사제의 견진을 받은 루터교 신자들을 받아들일 때에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영국의 &lt;공동예배&gt;의 해설서는 이러한 미묘한 문제를 인정하지만, ‘주교에 의한 견진’을 판단하는 문제를 해결하기를 거부한다. 대신에 이 책은 주교의 견진례를 요구하는 교회법을 언급하며, 전입예식(rite of reception)을 ‘주교의 견진례를 받은 자들’을 위한 예식이라고 진술한다. </p> <p>현대의 성공회 예식들은 전입문제를 여러가지 방식으로 접근한다. 일부는 교회법으로 이 예식의 모호함을 분명하게 규정하거나, 예식상의 표현을 제한한다. 미국, 카나다, 브라질, 멜라네시아, 필리핀의 기도서들은 전입예식의 대상을 구체적으로 서술하지 않는다. 미국의 경우, 이 예식의 사용사례(practice)는 교구별로 다르며 기도서의 채택때부터 변화하였다. 즉 현재의 교회법은 다른 교파교회에서 성년으로 공개적인 신앙확언을 한 자들을 견진례가 아닌 주교의 안수로 수용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브라질의 경우, 주교는 ‘친교의 악수’ (갈라디아2:9)를 한다. &lt;호주기도서&gt;는 다른 교파교회에서 ‘완전한 입교례’를 받은 신자들을 주교가 집례하는 친교의 악수를 포함한 전입예식에서 성찬신자로 수용한다. 영국과 서인도제도, 남부 아프리카 등은 다른 교파교회에서 주교의 견진례를 받은 전입신자들을 위하여 친교의 악수를 포함한 예식을 규정하지만, 이외의 신자들에게는 견진례를 요구한다. 서인도제도의 기도서는 역사적 주교직을 유지하는 다른 교파교회에서 견진례를 받은 전입신자들을 위한 예식(주교의 친교의 악수 포함) 뿐만아니라, 다른 공식문(formula, 1979년 미국기도서와 동일)을 규정하였다. </p> <p>다른 교파교회들의 성찬참여 신자들에게 주교의 견진례를 계속해서 요구하는 것-교회법 또는 기도서의 규정으로-은 곧 세례를 그리스도교의 완전한 입교례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다른 전통의 교회들-동방이든 서방이든-보다도 성공회는 안수를 포함한 성사적 예식에서 주교와의 전례적인 접촉을 높이 평가하며, 이를 그리스도교 입교례의 필수적인 요소로 인식하고 있다.</p> <p>5)집례자는? </p> <p>최근에 개정된 대다수 기도서들은 주교의 견진례를 사제에게 위임하고 있지 않다. 유일한 예외는 웨일즈의 1991년 예식의 일부를 사제에게 위임하였지만, 이를 실제로 활용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몇몇 관구들은 사제가 집례할 수 있는 재확언 예식들을 제정하였다. 케냐성공회는 사제가 집례하며 친교의 악수를 포함한 ‘Admitting Christians from Other churches’예식을 제정하였다. 이 예식의 후보자들은 견진을 받지 않은 신자들로 먼저 성찬에 참여하며, 이후에 주교의 견진례를 준비한다. 잉글랜드의 전입예식은 사제가 집례하나, 후보자들은 이미 ‘주교의 견진’을 받은 자이어야 한다. </p> <p>미국의 1979년기도서는 봉사지원자를 위한 기도양식(Form of Commitment to Christian Service)을 제정하였다. 이 예식은 본래 견진례를 대체하는 예식으로 도입되었으며, 후보자는 의향서(statement of intention) 또는 일련의 질문과 답변서를 준비하며, 여기에는 세례약속의 재확언을 포함되어야 한다. 후보자들은 감사성찬례 중에 앞에 나아가 ‘공약서’(Act of Commitment)를 낭독하며, 사제는 이들을 위한 기도를 인도한 후 평화의 인사로 예배를 계속한다. 카나다의 &lt;대안예식서&gt;는 미국기도서의 상당부분을 채택하였으나, 이 예식을 채택하지 않았다. 반면에 필리핀 기도서는 이 예식을 채택하였다. 웨일즈성공회는 견진례의 ‘대안예식’으로 미국보다는 훨씬 간소한 봉사지원자를 위한 기도양식을 채택하였다. 이 예식에서 후보자들은 감사성찬례중 평화의 인사 직전에 신자들 앞으로 나와 사제의 기도(a single prayer)를 받는다. </p> <p>미국, 필리핀, 웨일즈의 양식들은 주교만이 집례하는 견진례와 재확언례와는 분명하게 구별되는 봉사지원자 양식(rite of renewed commitment)을 사제에게 집례하도록 허용하지만, 다른 관구들은 사제에게 견진례와 거의 동일한 재확언예식을 집례하도록 허용한다. 남부 아프리카관구의 &lt;성공회기도서&gt;는 ‘사제 또는 사제의 교육을 받고 인준을 받은자’가 집례하는 세례서약의 갱신의식(Renewal of Baptismal Promise)을 제정하였다. 이 예식은 적절한 교육을 받은 후보자들에게 공적인 예배중에 실시하며, 견진례 예식에서 사용하는 똑같은 세례서약-세례양식의 거부와 약속에 기초-의 갱신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안수와 같은 의식적인 행동은 없고, 다만 집례자는 후보자를 위하여 간단한 기도를 한 후, ‘모든 그리스도인을 위한 기도문’이나 ‘교회의 증거활동을 위한 기도문’-견진례를 마감하는 선택용 기도문들-을 낭독한다. 서인도제도의 기도서(1995)도 이와 비슷한 예식을 채택하였으나, 유일한 차이점은 거부와 약속을 서인도제도 기도서의 ‘세례서약’의 본문으로 대체한 것 뿐이었다. 영국성공회의 &lt;공동예배서&gt;는 견진례에 상응하는 ‘세례신앙의 확언’을 포함한다. 이 예식은 남부 아프리카와 서인도제도의 그것들과는 대조적으로 주교 또는 사제가 집례한다. </p> <p>사제가 집례할 수 있는 환영예식과 재확언예식의 도입은 곧 이러한 예식들이 신앙생활의 지속적인 반복에 속하는 사목적 예식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주교에 의한 견진례만을 고집하는 것은 오히려 이러한 예식들을 지나치게 강조할 수 있다. 일부 기도서들은 이러한 난점을 극복하게 위하여, 주교를 세례 뿐만아니라 세례와 견진례를 단일양식으로 결합시킨 시험예식의 집례자로 규정한다. &lt;호주기도서&gt; (1978)와 미국기도서(1979)를 시작으로 많은 관구들은 주교를 세례의 집례자로 규정하고 있다-미국, 카나다, 브라질,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호주(1979년에는 성인세례때만; 1995년 기도서에서는 세례와 견진례를 동시에 시행할 때만 주교가 집례한다), 서인도제도(성인입교례에만), 스코틀랜드(주교가 세례를 집례하는 것을 권장하나, 세례와 확언의 결합예식은 없다), 필리핀, 잉글랜드, 멜라네시아, 파퓨아 뉴기니. 미국과 카나다, 필리핀의 기도서들은 세례는 주교가 참석할 때 특히 적합하다고 진술함으로써, 주교를 다른 방식으로 세례의 주 집례자임을 강조하였다. </p> <p>그러나, 실제적으로 세례를 가장 자주 집례하는 자는 주교가 아닌 사제이다. 남부 아프리카 예식의 지시문은 ‘주교는 직무상 해당 교구에서 세례의 집례자이다. 그러나 견진례가 없을 경우, 주교로부터 사목적 책무를 위임받은 사제가 세례의 일반적인 집례자이다’라고 진술한다. 이러한 서술은 다른 기도서들에서도 나타난다. 실제로 주교가 자주 세례를 집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주교를 세례의 집례자로 규정하는 것은 곧 주교의 성직을 재구성한다. 즉 주교의 전례적 역할을 입교과정과 예식들의 한 부분으로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주교를 그리스도교 입교례 전체를 집례하는 주 사목자로 규정함으로써, 신앙셍활에서 세례의 중요성을 새로이 강조하고, 주교의 역할은 중심적인 사목자이자 교사임을 분명하게 밝힌다.</p> <p>6)세례의 준비과정</p> <p>종교개혁시대의 기도서들은 모든 왕국민이 그리스도인이었던 사회를 반영하였다. 따라서 1549년과 52년의 기도서들은 부모와 대부모에 대한 준비교육을 따로이 규정하지 않았다. 즉 부모는 단순히 전날밤이나 다음날 아침의 예배직전에 사제에게 통고하여야 했다. 그러나 현대의 상황은 매우 다르다. 그리스도교가 국가의 종교이거나 주류종교인 나라에서도 이제 무차별적인 세례는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신앙공동체와 거의 관련이 없는 부모들이 자녀의 세례를 요청할 경우, 어린이들이 그리스도교 신앙속에서 성장하기 어렵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현대의 대다수 양식들은 지시문이나 해설서에서 유아세례 후보자의 부모와 대부모들에 대한 교육을 요구하고 있다. 일부 관구들은 더 나아가 교회법으로 요구사항들을 규정하고 있다. 케냐의 &lt;현대예식서&gt;의 세례양식은 이러한 준비과정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관심을 표현한다. 즉 후보자의 추천후에, 집례자(부모들의 교육담당자가 아닌 경우)는 세례교사에게 ‘이제 아이들을 대신하여 세례서약을 할 부모와 대부모들을 충분히 교육시켰습니까?’라고 질문한다. 몇몇 다른 관구들은 유아의 탄생과 세례때에 부모들을 환영하고 지원하는 예식을 채택하였거나 개발중이다. </p> <p>성인 후보자들의 경우, 기도서들(1662년에 처음 도입)은 항상 교육과 준비과정을 인정하였으며, 일부 관구들은 교회법으로 추가적인 요구사항들을 규정하였다. 비그리스도교 지방의 교회들은 교리문답 교사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세례후보자로 등록하는 형식[예식,form]들을 개발하였다. 대다수 개정 기도서들은 세례후보자 예식(catechumenal rite)을 제정하지 않았지만, 일부 관구들은 추가예식서(supplementary books)에서 후보자 등록예식(rites for admission to the catechumenate)을 제정하였다. 예외적으로 일본의 1990년 기도서는 ‘필수적인 신앙수용’(fundamental acceptance of faith)을 포함하고 있다. 이 예식은 주일의 감사성찬례중에 보증인들이 후보자들을 추천한 후, 후보자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고 신앙을 실천할 것을 약속한다. 이 때에 회중들은 기도와 후원을 약속하고, 집례자는 기도하며 각 후보자의 이마에 십자성호-초기교회에서 후보자 등록을 표시하는 예식-를 긋는다. </p> <p>영국성공회는 초기교회의 후보자 등록예식의 일부인 십자성호긋기를 다른 방식으로 채택하였다. &lt;공동예배&gt;의 세례양식은 십자성호긋기를 ‘결단식’ (Decision)후에 배치하였다. 결단식은 포기에 대한 세가지 질문과 그리스도에의 충성을 묻는 세가지 질문으로 구성되었다. 해설서의 설명에 따르면, 이는 ‘결단식을 신앙적 준비과정의 정점으로 인식하도록 허용한다.’이 때에 또 하나의 초기교회 예식인 순수한 올리브유를 사용하는 성유식을 포함할 수도 있다. 탄자니아의 경우, 유아세례양식은 이와 비슷한 십자성호긋기를 시세식 직전에 배치하였다. 이 양식에서 십자성호긋기와 성유식은 후보자의 시험[검사]후에 구마의식(exorcism)과 함께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성인세례의 경우, 탄자니아 양식은 시세식후에 십자성호긋기만을 포함하였다. </p> <p>7)공개적인 세례예식의 거행 </p> <p>현대의 개정기도서들은 주일의 중심예배때에 세례예식을 거행하도록 요구함으로써 세례의 중요성(중심성)을 강조하며, 또한 대다수 기도서들은 감사성찬례중에 거행할 것을 권장한다. 스코틀랜드와 카나다의 기도서는 성찬의 전례로 세례예식을 마감하는 방식외의 대안을 전혀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세례와 감사성찬례의 연관성을 더욱 강조한다. 이러한 연관성은 서인도제도와 파푸아 뉴기니의 성인후보자 입교례(세례와 견진례, 성찬례 포함) 예식에서도 나타난다. 다른 기도서들은 감사성찬례 이외의 대안을 허용한다. 일부는 간단한 마감예식을, 일부는 전통적인 기도서들의 경우처럼 아침 또는 저녁기도의 제2독서후에 거행할 것을 규정한다. </p> <p>몇몇 관구들-미국, 카나다, 브라질, 멜라네시아, 필리핀-의 예식들은 세례를 주일의 중심예배인 감사성찬례 동안에 거행하도록 요구할 뿐만아니라, 보다 구체적으로 세례를 부활전야, 성령강림일, 제성일(또는 그 다음 주일), 그리고 우리 주의 세례일(공현후 첫주일)에 거행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축일들을 세례거행일로 규정하는 것은 세례거행의 중요성을 역사적으로 세례와 관련된 사건들(제성일 제외)에 집중시키며, 신자들[회중들]에게 이 축일들의 내용과 세례와의 연관성을 체험케하려는 것이다. 감사성찬례 안에서의 세례거행은 매 주일의 성찬례 거행이라는 20세기 전례운동의 강조점을 반영하는 것이다. 더구나 모든 세례신자들에게 성찬을 허용하는 교회들에서 성찬례 거행은 그리스도의 몸에의 완전한 참여를 상징하는 성찬참여로 입교례를 극적으로 완결한다.</p> <p>세례를 전 회중들 앞에서 공적으로 거행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세례의 신앙공동체적인 측면을 새로이 강조하는 것이다. &lt;호주기도서&gt;에서는 이를 ‘세례는 그리스도교의 새로운 신자를 환영하고, 모든 세례신자들에게 그들의 세례서약을 갱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신앙공동체의 행사이다’라고 지적하였다. 현대의 세례예식들은 전통적인 예식들의 침묵과는 대조적으로 회중들의 참여를 여러가지 방식으로 의례화하고 있다. 예를들면, 집례자의 질문에 회중들은 그들의 신앙생활 속에서 후보자들을 지원할 것을 약속한다. 1979년 미국기도서는 이러한 질문을 후보자의 추천과 시험의 마지막에 배치하며, 카나다와 일본, 호주, 탄자니아, 멜라네시아, 필리핀, 아일랜드의 예식들도 이 질문을 이와 비슷한 위치에 배열하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영국성공회의 예식은 후보자의 추천이후 거부와 충성의 질문들 이전에 배치하고 있다. &lt;뉴질랜드 기도서&gt;는 세례받은 어린이들을 양육할 것을 표현하는 집례자의 진술문과 회중들의 기도문을 포함하지만, 성인 후보자들에 대한 지원약속을 표현하는 본문은 없다. 현대의 대다수 예식들은 또한 회중들에게 그들의 신앙을 확언하도록 요청한다. 1962년 카나다 기도서와 &lt;호주기도서&gt;(1978) 는 전 회중들에게 사도신경의 암송에 동참하도록 요구한다. 다른 관구들은 이후의 개정에서 이를 수정한 형식을 채택하였다. 1979년 미국기도서는 사도신경의 심문형식과, 곧이어 신앙생활의 다양한 측면들을 반영한 다섯가지 질문들을 포함한 ‘세례언약식’을 도입하였다(미국성공회의 세례언약식 참조). 전 회중들은 후보자들과 보증인들과 함께 이 언약식에 있는 질문들에 응답한다. 마찬가지로 카나다(1985), 브라질, 스코틀랜드, 멜라네시아, 필리핀의 예식들은 신앙인의 책임에 대한 질문들과 심문형식의 신경(interrogatory creed)에 회중들이 응답하도록 요구한다. 뉴질랜드와 아일랜드, 영국의 예식들에는 추가적인 질문들 없이 심문형식의 신경만을 회중들에게 묻는다. </p> <p>이와는 달리 남부 아프리카, 웨일즈와 호주(1995)의 예식들은 심문형식의 신경을 유아후보자의 대부모와 부모, 그리고 성인후보자들에게만 요구한다. 이 때에 회중들은 ‘이는 우리의 신앙입니다…’라는 진술문으로 그들의 신앙을 확언한다. 이 진술문은 오늘날의 천주교의 어린이 세례양식에서 사용하는 회중들의 신앙확언과 비슷하다. 서인도제도의 기도서에서 회중들은 심문형식의 신경과 ‘이는 우리의 신앙입니다…’라는 진술문 모두에 참여한다. </p> <p>새로운 세례신자들을 환영하는 예식에서도 회중들의 참여를 의례화한다. &lt;호주기도서&gt;(1978)와 미국기도서(1979)가 회중들의 환영진술문을 도입한 이후, 이후에 개정된 거의 모든 기도서들은 이를 채택하였다. 이에 대한 형식은 대체로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1978년 호주기도서의 예식의 경우, 집례자가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당신의 교회로 부르셨습니다’라고 선언하면, 회중들은 ‘그러므로 우리는 여러분을 그리스도의 몸의 동료신자로, 천상의 성부의 자녀로, 우리와 함께 하느님의 나라의 상속자로 환영합니다’라고 응답한다. 미국 예식의 본문은 권고문이다. 즉,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고, 그분의 부활을 선포하며, 우리와 함께 그분의 영원한 사제직을 나눕시다[참여합시다].’ 두가지 형식들은 성공회의 전통적인 세례예식들의 마감기도에 나오는 이미지들과 문구들에 의존하고 있다. </p> <p>일부 예식들의 경우, 회중들은 십자성호긋기 의식(성유식consignation)에 대한 의례적인 응답(ritual response)으로 점화된 양초를 증정한다거나, 흰색의 세례옷을 입히거나, 또는 두가지 모두를 하기도 한다. 아마도 이에 대한 최초의 본문은 점화된 양초의 증정에 대한 회중들의 응답으로 마태복음5장16절을 사용한다. 1978년의 호주예식은 양초의 증정을 선택사항으로 규정하였지만, 본문은 필수였다. 이후에 개정된 많은 예식들은 회중들의 응답으로 다른 의례적 행동들을 추가하였다. 회중들의 환호(acclamations)와 기도에 대한 응답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므로 1979년 미국예식의 시작은 에페소서4장4-5절에 근거한 두가지 계응을 포함한다. 카나다와 호주, 멜라네시아, 필리핀의 기도서들은 이 본문을 채텍하여 예식의 초반부터 세례에 대한 집중을 유도한다. 몇몇 기도서들은 후보자들을 위한 중보기도(intercession)에 대한 회중들의 응답을 포함한다. 일부는 물에 대한 기도 본문에 회중들의 환호를 포함한다. 이 모든 응답들은 세례예식에서 회중들의 참여를 강조하는데 사용되며, 또한 신앙인들에게 자신들의 세례를 기억하게 하며, 묵시적으로나마 세례언약을 갱신하도록 돕는다.</p> <p>8)상징들 </p> <p>현대의 대다수 예식들은 상징들을 풍부하게 사용함으로써 세례의 권능(power)을 강조한다. 성공회 기도서들은 세례의 행동으로 항상 ‘침례’(dipping)나 물을 뿌리는(pouring) 시세식를 요구하여 왔지만, 일부 관구에서는 관례적으로 후보자의 머리에 소량의 물을 떨어뜨리는 시세식을 이용하였다. 최근의 예식들은 침수 (immersion)나 물뿌림(pouring)을 지시하며, 해설서들은 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예를들어 카나다 예식의 서문에 의하면,</p> <p>물의 상징적 측면들은 최소한이 아닌 최대한으로 강조되야 한다. 대다수 회중들이 시세식을 보고 들을 수 있도록 충분한 양의 물을 준비하여야 한다. 침수의 행동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장례 그리고 부활 안에서 세례에 참여한다는 점을 생생하게 표현할 것이다.</p> <p>오늘날의 모든 성공회의 예식들은 물에 대한 감사기도 또는 축복기도를 통해서 물의 상징성을 강화하고 있다. 물은 구원의 역사에서 발생한 중요한 사건들인 창조와 홍수, 출애급, 예수의 세례와 죽음과 부활을 기억하게 한다.(‘물에 대한 감사기도, 호주기도서’ 참조)</p> <p>현대의 예식들은 풍부한 양의 물 이외에 다른 상징들인 기름과 빛, 세례옷 등을 사용한다. 이것들은 초기교회의 세례예식들에서 사용되었지만 종교개혁때에 잉글랜드교회 예식에서 삭제되었다. 미국의 예식은 시세식이후 십자성호긋기 때에 성유의 사용(전통적으로 올리브유에 소량의 발삼이나 다른 방향제를 섞는다)을 선택사항으로 도입하였으며, 대다수 다른 관구들-잉글랜드, 카나다, 브라질, 호주, 멜라네시아, 케냐 등-도 이를 채택하였다. 스코틀랜드와 필리핀의 예식은 이를 의무사항으로 규정한다. 호주기도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p> <p>기름(성유)의 선택적인 사용(optional use)은 초기교회의 세례예식을 복원하는 것이다. 이는 풍부한 성서적 이미지인 왕들의 기름부음 (사무엘상16장), 왕적인 사제직(베드로전서2장), 성인들의 징표(seal계시록7장)을 환기시키며, 전통적으로 성령과 관련시킨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인 ‘그리스도’의 이름과 관련시킴으로써, 우리는 각각의 세례가 예수의 세례와 연결된다는 점을 다시 기억한다.</p> <p>대다수 기도서들은 초기교회의 전통에 따라 주교가 축복한 성유를 사용하도록 규정한다. 카나다 기도서는 ‘주교예식들’ 항목에 기름의 축복예식을 포함하며, 남부 아프리카의 기도서는 세족목요일(Maundy Thursday)에 성유축복 감사성찬례 예식을 거행하도록 규정한다.</p> <p>성유식의 공식문(formula)는 주로 두가지 형식으로 구분된다. 일부 예식의 본문은 분명하게 성령적이며, 미국의 예식본문은 ‘당신은 세례에서 성령의 날인 (징표seal)을 받으며, 그리스도의 자녀로 영원한 표징(mark)을 받는다’라고 말한다. 다른 예식들은 뉴질랜드 예식처럼 ‘우리는 그리스도의 징표(sign)인 십자가로 표징(sign)한다’로 그리스도만을 언급한다.</p> <p>성유식은 본래 세례예식의 하나였지만, 중세시대에서는 견진례에서도 이를 사용하였다. 19세기초 부터 앵글로-가톨릭 주교들은 견진례에서 성유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오늘날 남부 아프리카와 탄자니아, 파퓨아 뉴기니, 서인도제도의 기도서들은 이를 허용하나, 세례에서의 사용을 요구하지 않는다. 브라질과 멜라네시아는 세례와 견진례 모두에서 이의 사용을 허용한다. 영국성공회의 &lt;공동예배서&gt; 또한 이를 허용하지만, 세례 직후에 견진례를 실시할 경우에는 세례에서 사용하지 않는다. 일본과 아일랜드는 세례나 견진례에서 성유의 사용을 허용하지 않는다. </p> <p>현대 성공회의 예식들은 성유 이외에 새로운 세례자에게 점화된 양초의 증정이나 세례옷 입히기를 선택사항으로 사용한다. 세례옷은 시세식을 침례로 할 경우에 실용적인 필수품이었으며, 4세기경에 이러한 행동에 신학적인 의미를 부여하였다 (갈라디아서3:26; 계시록7:13-4). 양초는 특히 부활초로부터 점화하여, 세례의 부활적 차원을 강조한다. &lt;공동예배&gt;는 이러한 행동을 기존의 시세식 직후가 아닌 예식의 마지막인 파송(dismissal) 직전에 배치하여, 새로이 세례받은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빛을 밝히며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하였다. 아일랜드는 이 본문을 채택하였으나 점화된 양초의 증정을 요구하지 않았다. </p> <p>9)세례의 윤리적 의미</p> <p>상징의 풍부한 사용과 회중들의 참여속에 공적으로 거행하는 것은 세례에 대한 현대적 이해의 중요한 두가지 특징들이다. 또한 세례의 윤리적 측면에 대한 새로운 관심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1662년 기도서는 심문형식의 신경이후에 단 한가지의 질문인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한 의지[뜻]와 계명들을 성실히 준수하며, 항상 그렇게 살아가겠습니까?’만을 묻는다. 현대의 대다수 예식들은 이와 비슷한 확약을 여러가지 방식으로 표현한다. 1979년의 미국기도서는 ‘세례언약식’이라는 제목으로 심문형식의 신경 이후에 전 회중들에게 묻는 다섯가지 질문-사도들의 가르침과 친교(fellowship)를 따를 것인가, 악을 꾸준히 거부할 것인가, 그리스도의 기쁜소식을 선포할 것인가, 모든 사람들을 그리스도처럼 섬기겠는가, 정의와 평화를 위하여 노력하겠는가-을 규정하였다. 이 언약식의 형식 일부는 다른 양식들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카나다의 &lt;대안예식서&gt;도 이와 똑같은 본문을 수록하였으며, 필리핀 기도서는 여기에 꾸준한 성서공부에 대한 질문을 추가하였다. 브라질과 파퓨아 뉴기니, 스코틀랜드 예식은 이들중 일부만을 채택하였다. 스코틀랜드의 경우, 심문형식의 신경과 분리하여 ‘그리스도인 생활에 대한 확약’(Commitment to Christian Life)이란 제목을 사용한다. &lt;공동예배&gt;는 시세식이후에 ‘위임’ (Commission)이란 제목으로 미국 예식의 질문들을 지정하였다(마지막 질문에 다른 낱말을 사용하며, 후보자가 스스로 대답할 수 있는 경우에만 사용). 유아나 어린이 세례후보자들의 경우, 부모와 대부모들에 대한 권고문을 사용하며, 이해할 수 있는 어린이들에게는 보다 단순화된 본문-‘여러분은 하느님의 모든 자녀들과 함께 예수님의 길을 공부하며, 하느님과 친교하며 신자들을 사랑하며,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봉사하며 성장하여야 한다’-을 사용한다. </p> <p>이처럼 확대된 형식과는 대조적으로 남부 아프리카와 일본, 탄자니아, 호주, 파퓨아 뉴기니의 예식은 전통적인 성공회 예식들처럼 단 한가지의 질문만을 사용하며, 서인도제도와 웨일즈, 아일랜드의 예식은 신앙생활에 대한 후보자들의 의향을 전혀 질문하지 않는다. 뉴질랜드 예식 또한 신앙생활에 대한 분명한 확약을 결여하고 있다. 더구나 이 예식에서는 심문형식의 신경을 시세식이 한참 지난뒤인 예식의 마지막에 실시한다. 대신에 시세식은 세가지 질문-세례의 의향, 악령의 거부, 그리스도에 대한 신뢰-직후에 실시한다. 이 예식의 개정자들은 신앙고백이 하느님의 은총에 대한 응답이라는 전후관계를 나타내기 위하여 ‘활동중심’보다는 ‘신앙중심’의 예식을 의도하였으며, 이는 시세식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신앙생활에 대한 확약’(Commitment to Christian Service)은 확언과 갱신의 부분에서 나타난다. 여기서 &lt;뉴질랜드기도서&gt;는 미국 예식에서 따온 다섯가지 질문들 또는 세례후보자들이 작성한 진술문을 선택사항으로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p> <p>결론</p> <p>오늘날의 각 성공회 예식들에 분명하게 나타나는 세례신학의 갱신(renewal)은 신앙생활의 모든 측면들에서 세례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나타낸다. 세례는 이제 더이상 출생직후에 육체적 탄생을 알리는 사회적[사교적] 예식이 아니다(이러한 기대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세례는 신앙공동체로 입문하는 예식이며, 세례에서의 확약은 신앙생활의 모든 것들을 특징짓는다. 성공회는 신앙생활에서 세례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세례예식에 주교의 직접적인 참여를 권장하기 시작하였다. 세례에서 고백하는 신앙은 성찬례에의 정기적인 참여를 통해서 양육되다. 성찬례는 이제 견진신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세례신자들을 위한 영성적인 양식[음식]으로 이해된다. </p> <p>현대의 대다수 기도서들은 견진례를 성숙한 신앙을 고백하고 주교로부터 안수를 받는 예식으로 주장 또는 기대한다. 바로 이런 점에서 기도서들은 세례를 완전한 입교례로 이해하는 인식과 갈등한다. 성공회는 또한 신앙고백을 신앙인의 인생여정의 중요한 고비마다 다시 거행할 수 있다고 이해한다. 이 때문에 많은 관구들은 재확언예식(rite of reaffirmation)을 추가로 제정하고 있다. </p> <p>성공회는 견진례를 신앙생활의 중요한 확약순간이라는 점을 유지하면서도, 점차적으로 세례를 이러한 확약의 중심이라고 이해한다. 세례예식들은 신앙생활의 필수사항들을 여러가지 방식으로 설명한다. 즉, 유아후보자들의 부모와 대부모 그리고 성인후보자들에게 또는 전체회중들에게 묻는 질문들, 후보자들을 위한 중보기도, 촛불이나 세례옷의 증정때의 진술문, 회중들의 환영문. 따라서 이 예식들이 주일이나 최고축일에 풍부한 상징들을 사용하는 중심예배인 감사성찬례에서 거행될 때, 후보자들과 전체 회중들에게 세례의 권능과, 하느님의 선교에 동참하는데 세례가 갖는 중요성을 분명하게 알려준다. </p> <p>참고문헌</p> <p>Buchanan, Colin. Anglican Confirmation. Grove Liturgical Studies 48. Bramcote, Nottingham :Grove Books, 1986.</p> <p>Buchanan, Colin, ed. Nurturing children in Communion: Essays from the Boston Consultation. Grove Liturgical Studies 44. Bramcote, Nottingham: grove Books, 1985.</p> <p>Buchanan, Colin, and Michael Vasey. New Initiation Rites: A Commentary on Initiation Services Authorized as Alternative Services in the Church of England from Easter 1998. Grove Worship Series 145. Cambridge: Grove Books, 1998.</p> <p>Eastman, A. Theodore. The Baptized community. Revised edition. Harrisburg, Penn.: Morehuouse Publishing, 1991. </p> <p>Fisher, J.D.C. Christian Initiation: Baptism in the Medieval West. Alcuin Club Collections 47. London: SPCK, 1965. Reprint edition: Chicago/Mundelen, Ill.: Hillenbrand Books, 2004.</p> <p>_____. Confirmation Then and Now. Alcuin club Collections 60. London: SPCK, 1978.<br /> Holeton, David R., ed. Growing in Newness of Life: Christian Initiation in Anglicanism Today. Toronto: Anglican Book Centre, 1993.</p> <p>Johnson, Maxwell E. The Rite of Christian Initiation: Their Evolution and Interpretation. Collegville, Minn.: Liturgical Press, 1999.</p> <p>The Lambeth Conference 1958: The Encyclical Letter from the Bishops together with Resolutions and Reports. SPCK and Seabury Press, 1958.</p> <p>The Lambeth conference 1968: Resolutions and Reports. SPCK and Seabury Press, 1968.<br /> Meyers, Ruth A., ed. Children at the Table: A collection of Essays on Children and the Eucharist. New York: Church Hymnal Corporation, 1995.</p> <p>Meyers, ruth A. Continuing the Reformation: Re-Visioning Baptism in the Episcopal Church. New York: Church Publishing, 1997.</p> <p>Meyers, Gilly. Using Common Worship: Initiation. London: Church House Publishing, 2000.<br /> On the Way: Towards an Integrated Approach to Christian Initiation. London: Church House Publishing, 1995.</p> <p>Stevick, Daniel B. Baptismal Moments: Baptismal Meanings. New York: church Hymnal Corporation, 1987.</p> <p>Turner, Timothy J. Welcoming the Baptized – Anglical Hospitality within the Ecumenical Enterprise. Joint Liturgical Studies 34. Cambridge: Grove Books, 1996.</p> <p>Whitaker, E. C. Documents of the Baptismal Liturgy. 3rd edition, ed. Maxwell E. Johnson. Alcuin Club Collections 79. London: SPCK, 2003. </p> ochlos on "연중 26주일 - 다해" 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60#post-171 목, 27 9월 2007 17:12:52 +0000 ochlos 171@http://liturgy.skhcafe.org/ <p>입당성가 367장 주 야훼 하느님<br /> 히브리 노래는 단조로 어두운 느낌을 주면서도 장엄하거나 경쾌한 것이 특징이다. 음의 진행이 가사의 내용처럼 수직적이고 상승하는 느낌을 주는 곡으로 입당성가로 적당하다.</p> <p>층계성가 513장 주님의 본을 따라<br /> WCC(세계교회협의회) 서울대회(일명 JPIC-정의평화창조질서의보전 대회라고 불림) 에서 채택된 곡이다. 형제와 이웃을 위해 마음을 열고 나눔의 삶을 살자고 노래하고 있다.</p> <p>봉헌성가 510장 저 북방 얼음산과<br /> 원곡에는 그린란드 얼음산, 인도의 산호섬, 아프리카의 금모래 등을 언급하며 선교에 대한 비전과 참여를 촉구하는 곡이다. '온 몸과 재산들여 복음전하자'라는 가사가 복음을 위한 그리스도인의 헌신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p> <p>파송성가 473장 만민의 어진 아버지<br /> J.G.Whittier 휘티어는 19세기 중엽 미국의 시인이다. 퀘이커 교도의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남북전쟁 이전부터 열렬한 노예해방논지를 펴는 등 평화와 인권을 사랑한 시인이다.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 나타나는 주제를 잘 담고 있는 곡이다. 곡조도 4박자의 곡으로 흥겨우면서도 낮게 깔리는 부분에서 감동을 주는 곡이다.</p> <p>ps. 글 올리기를 눌렀는데 그만... 로그인 시간이 너무 오래된 모양인지 그대로 로그아웃되고 썼던 글을 날아가 버렸습니다. ㅠㅠ 두번째 글을 쓰니 짧아지네요. ^^; 앞으로는 글 올리기 전에 꼭 저장을 해야겠습니다. </p> viamedia on "연중 26주일 - 다해" 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60#post-167 수, 26 9월 2007 04:26:21 +0000 viamedia 167@http://liturgy.skhcafe.org/ <p>연중 26주일</p> <p>제 1독서: 아모 6:1a, 4-7</p> <p>지난 주 구약성서 본문이 사회의 불의에 관한 문제를 다루었다면, 오늘 본문은 개인적인 사치를 물리치라고 말한다. 이 내용은 오늘 복음의 "부자와 라자로" 비유 이야기에 잘 맞는다.</p> <p>제 2독서: 1디모 6:11-16 RCL:1디모 6:6-19</p> <p>디모테오전서 6장에서 뽑은 이 본문은 성직 서품(안수)에 관한 권고로 해석되었다(E.케제만). 이 권고의 말씀 속에서 성직 후보자는 세례를 받을 때 했던 신앙 고백을 되새긴다. 성직자는 이 신앙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야 하다. 이것은 성직 서품과 세례 사이에 놓은 중요한 관계를 제시한다. 성직 서품이란, 세례의 소명을 누군가를 위해 펼치려고 취하게 되는 형식이다. "십계명"도 실제로 이런 성직 서품의 권고였을 것이다 (모세가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세우며 전하는 권고를 보라: 민수 27:19-21). 이 구약성서의 유형은 이후 유대교 회당과 초대 교회(히폴리투스의 [사도전승]에 있는 서품식 내용을 보라)에 성직 서품의 한 모본이 되었다. </p> <p>RCL 전반부에 6-10절을 더하고, 17-19절을 후반부에 덧붙였다. 이 구절들은 사목자들이 신자들에게 부의 위험성들을 경고하도록 한다. 10절은 돈을 좋아하는 것 자체가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돈을 좋아하다 보면 이를 둘러싸고 악한 것들이 이런 저런 모양으로 드러나게 된다는 뜻이다.</p> <p>복음: 루가 16:19-31</p> <p>부자와 라자로 비유의 첫부분은 아주 잘 알려진 이야기로, 저승에 가서는 모든 위치가 뒤바뀐다는 것이다. 이 구절로만 보면 도덕적인 훈계로 끝나고 만다. 그러나 복음의 비유 이야기는 마지막 부분에서 우리를 놀라게 하곤 한다. 부자와 아브라함의 대화가 그것이다. 바로 여기에 오늘 비유의 핵심 주제가 놓여 있다. 부자는 라자로를 통해서 아직 살아있는 자신의 다섯 형제들에게 특별한 경고를 전해줄 수 있게 해달라고 청원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대답은 이미 이들이 성서의 말씀을 갖고 있으며 그것으로 족하다는 것이다. 성서의 말씀을 통해서도 움직이지 않을 사람은 부활과 같은 기적으로도 마음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주님께서 비유 이야기를 하신 핵심이였으리라.</p> <p>부정직한 청지기 비유 뒤에 재산의 올바른 사용에 대한 담화를 전달한 뒤에 오늘 비유 이야기가 나온다. 이로써 루가 기자(그리고 성서정과의 편집자들)는 오늘 비유 첫부분을 조심스럽게 다룰 것을 제안한다. 저승에서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위치가 뒤바뀌는 운명에만 집중해서는 안된다. 자칫 잘 알려진 비유때문에 아브라함의 품 안에서 노니는 저승 교리를 만들어서는 안된다.</p> <p>설교</p> <p>특별한 상황(성직 서품식을 갖는 교구의 경우)에서는 제 2독서의 말씀이 제시하는 바대로 성직 서품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세대를 넘어서 계속 이어져오는 사도적 전통은 사도적 계승 안에 있는 주교가 손을 얹어 안수하는 상직적 행위를 통해서 잘 드러나고 있다. 구약성서와 복음서 본문을 갖고서는 부의 책임있는 사용이라는 지난 주일의 주제를 계속할 수 있겠다.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