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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태그: 에큐메니칼 http://liturgy.skhcafe.org/ A Korean Anglican Theology & Liturgy Forum en Tue, 23 Jan 2018 08:14:41 +0000 viamedia on "번역: 나이로비 선언 - 예배와 문화" 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557#post-985 일, 04 10월 2009 06:23:45 +0000 viamedia 985@http://liturgy.skhcafe.org/ <p>* 역자 주: 아래에 번역하여 옮겨 놓은 자료는 루터교 세계 연맹(LWF)의 예배와 문화에 관한 나이로비 선언 전문입니다. 한국 루터교에서도 번역된 내용을 찾을 수 없기에 번역하여 옮겨 놓습니다. 공부를 위한 번역일 뿐이니 참조만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다른 곳에 허락 없이 옮길 수 없습니다.</p> <p>---</p> <p>나이로비 선언: 예배와 문화</p> <p>1996년 루터교 세계 연맹 </p> <p><strong>당면한 도전과 기회</strong></p> <p>이 선언은 1996년 1월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루터교 세계 연맹의 예배와 문화 연구를 위한 국제 협의회 3차 회의의 결과물이다. 이 연구 모임의 구성원들은 세계 다섯 개 대륙을 대표하여 지난 3년 동안 열정을 다해 함께 일했다.1993년 10월 스위스 카르티니에서 열린 첫번째 협의회에서는 그리스도교 예배와 문화의 관계에 대한 성서적, 역사적 근거에 초점을 맞추었고, 그 결과 “예배와 문화에 대한 카르티니 선언: 성서적, 역사적 근거들”(이 나이로비 선언은 이 카르티니 선언에 기대고 있으며, 이 선언이 다른 선언을 대치하는 것은 아니다.)을 내놓았다. 1994년 3월 홍콩에서 열린 2차 협의회는 세상의 문화와 그리스도교 전례, 교회 음악, 교회 건축과 예술의 관계에 관련하여 당면한 문제들과 질문들을 살폈다. 이 두 차례의 협의회에서 발표된 글들은 [예배와 문화의 대화] Worship and Culture in Dialogue 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1) 나이로비 협의회에서 발표된 글들과 선언은 [그리스도교 예배: 문화적 다양성 안에서 일치]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2) 1994-1995년에 걸쳐, 연구 모임은 지역 현장 조사를 실시하고, 그 조사에 대한 보고서를 준비했다. 나이로비에서는 이 연구 모임의 4차 과제를 출범시켰으며, 연구 세미나와 이 연구에서 나온 결과들을 실행에 옮기는 여러 방법들을 계속해서 살필 것이다. 연구 모임은 이 프로젝트가 세상을 향한 교회의 쇄신과 선교에 핵심적인 것이라 생각한다.</p> <p><strong>서론</strong></p> <p>1.1. 예배는 그리스도교 교회의 심장이며 그 박동이다. 예배 안에서 우리는 창조와 구원이라는 하느님의 은총이 넘치는 선물을 함께 축하하며, 하느님의 은총에 응답하여 살아갈 힘을 얻는다. 예배는 ‘말’뿐 아니라, 늘 행동과 관련되어 있다. 예배에 대해서 생각하다는 것은, 전례와 설교 뿐만 아니라, 음악과 예술과 건축에 대해서 생각하는 걸 의미한다. </p> <p>1.2. 그리스도교 예배가 늘 주어진 지역 문화 환경 속에서 거행된다는 현실은 예배와 세계의 많은 지역 문화들 간의 역동적 관계에 관심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p> <p>1.3. 그리스도교 예배는 적어도 네가지 방식으로 문화와 역동적으로 관계한다. 첫째, 예배는 초문화적(transcultural)이다. 즉 어느 곳 누구에게나 문화를 넘어선다. 둘째, 예배는 맥락적(contextual)이다. 즉 지역 상황(자연과 문화)에 따라 다양하다. 셋째, 예배는 문화 대안적(counter-cultural)이다. 즉 어떤 주어진 문화가 복음에 반할 때, 이에 도전한다. 넷째, 예배는 문화와 교차한다(cross-cultural). 이로써 서로 다른 지역 문화 간의 나눔을 가능하게 한다. 이 네가지 역동성에 있는 원칙을 아래와 같이 밝혀 도움이 되도록 한다. </p> <p><strong>예배는 초문화적이다.</strong></p> <p>2.1. 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그분을 통하여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은총을 알게 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모든 문화를 초월하며 넘어선다. 그분의 부활의 신비 안에 그리스도교 예배의 초문화적인 원천이 존재한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성사인 세례와 성찬례는 세상을 위해서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다. 많은 언어로 번역되는 하나의 성서가 있으며,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성서적 증언은 모든 세계에 선포되었다. 성찬례는 주일을 지키는 행동의 정점이자 그리스도교 예배의 근본적인 구조로서, 문화를 넘어서서 나누어야 한다: 그 구조는 신자들의 모임, 하느님 말씀의 선포, 교회와 세상을 위한 기도, 함께 나누는 성찬의 식사, 그리고 선교를 위해 세상으로 파송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과 부활, 성령을 보내시고, 그분 안에서 받은 우리의 세례라는 위대한 이야기는 교회력에 나타난 초문화적인 시간의 핵심적인 의미를 마련해 준다. 특히 사순절기/부활절기/성령강림절기가 중심이요, 넓게는 대림절기/성탄절기/공현절기가 그렇다. 주일 성찬례와 교회력의 구조를 표현하는 방법은 문화마다 다양하다. 그러나 그 근본적인 구조의 의미들은 전 세계에 걸쳐 공유해야 한다. 한 분이신 주님, 하나인 신앙, 하나인 세례, 하나인 성찬례인 까닭이다.</p> <p>2.2. 그리스도교 전례의 몇가지 특정한 요소들 역시 초문화적이다. 즉 성서 독서(물론 그 번역은 다양하지만), 에큐메니칼 신경, 주님의 기도,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물로 받는 세례가 그것이다. </p> <p>2.3. 지역 교회 공동체 예배 안에서 공유하는 핵심적인 전례 구조와 전례적 요소들은 시간과 공간과 문화와 고백을 아우르는 그리스도교 일치의 표현이다. (공동체로 모이는 것과, 공간과 방식은 다르나 다양한 지도력의 표현들의 공유도 마찬가지이다.) 개별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이러한 초문화적이며 교회 전체가 공유하는(ecumenical) 요소들이 지니는 명백한 중심성을 회복하는 일은 그리스도교의 일치에 대한 생각을 쇄신하며, 모든 교회에 진정한 맥락화(토착화)의 든든한 기반을 제공한다.</p> <p><strong>예배는 맥락적이다.</strong></p> <p>3.1. 우리가 예배하는 예수께서는 세계의 특정한 문화 속에서 탄생하셨다. 그분의 성육신 신비 안에 그리스도교 예배의 맥락화를 위한 모본과 요청이 들어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세계 안의 지역 문화들 안에 존재하실 수 있으며, 그 안에서 우리는 그분을 만날 수 있다. 주어진 문화의 가치와 형태는, 그것이 복음의 가치와 합치하는 한, 그리스도교 예배의 의미와 목적을 위해서 사용될 수 있다. 맥락화는 세상 속에서 행하는 교회 선교의 필수적인 임무이다. 이를 통하여 복음은 다양한 지역 문화 안에 좀더 깊이 뿌리를 내릴 수 있다.</p> <p>3.2. 맥락화를 위한 다양한 방법들 가운데, 역동적인 등가성(dynamic equivalence)은 특히 도움이 된다. 이는 그리스도교 예배의 내용들을 그와 동등한 의미와 가치와 기능을 지난 지역 문화의 어떤 요소들을 통해서 새롭게 표현하는 것이다. 역동적인 등가성은 단순한 번역을 넘어선다. 다시 말해 예배의 요소들과 지역 문화 양쪽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의미에 대한 이해에 관여하며, 예배의 의미와 행동이 지역 문화의 언어 안에서 새롭게 풀려(encode) 표현되는 것이다.</p> <p>3.3 역동적 등가성의 방법을 적용할 때, 다음과 같은 과정이 필요하다. 첫째, 전례적 구조(liturgical ordo: 기본적 형태)를 그 신학과 역사, 그 구성 요소들과 문화적 배경과 관련하여 살펴야 한다. 둘째, 그 의미에 대한 어떤 편견 없이 역동적 등가성에 적용될 수 있는 전례적 구조의 요소들을 정해야 한다. 셋째, 올바른 방법으로 복음과 전례적 구조를 표현하게 하는 이러한 문화적 구성 요소들에 대한 연구가 있어야 한다. 넷째, 이러한 변화를 통해서 사람들이 얻게 될 영적이며 사목적인 유익을 고려해야 한다.</p> <p>3.4. 지역 교회들은 또한 창조적인 동화(creative assimilation)의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 이는 전례적 구조의 핵심적인 의미를 풍요롭게 할 수 있도록 관련 문화 요소를 덧붙이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물과 말씀으로 씻는다”는 세례의 구조(ordo)는 흰색 옷을 입힌다는지 촛불을 주는 것과 같은 고대 신비 종교 입교 예식의 문화적 요소들을 덧붙이며 점차적으로 풍성해졌다. 역동적인 등가성과는 달리, 창조적 동화는 전례적 구조를 풍요롭게 한다. 다시 말해, 그 요소들을 문화적으로 새롭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문화의 새로운 요소를 덧붙여서 그리 하는 것이다.</p> <p>
3.5. 맥락화 과정 속에서 그리스도교와 지역 문화의 근본적인 가치와 의미들을 공히 존중해야 한다. </p> <p>3.6. 역동적 등가성과 창조적 동화의 중요한 잣대 가운데 하나는 사목적인 필요에 따라 진행되는 이러한 변화 과정을 격려하면서, 동시에 보편 교회의 예배 전통과 일치를 유지하기 위하여 바른 전례 전통을 보전하는 일이다. 문화의 측면에서, 모든 것이 그리스도교 예배와 통합될 수는 없으며, 오로지 전례적 구조에 본질적으로 들어맞는 것에만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지역 문화에서 가져온 요소들은 항상 비판과 정화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성서적 유형론을 이용할 수 있다. </p> <p><strong>예배는 문화 대안적이다.</strong></p> <p>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과 모든 문화를 변화시키러 오셨으며, 세상에 순응할 것이 아니라, 세상과 함께 변화하도록 우리를 부르신다(로마 12:2).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아가는 그분의 신비 안에 변화의 모본이 있으니, 그리스도교 예배의 문화 대안적인 본질의 모본이기도 하다. 세상의 모든 문화 속에 있는 여러 요소들은 복음의 가치에 반하는 비인간화의 죄성을 지니고 있다. 복음의 관점에서 이런 요소들에 대한 비판이 필요하고 변화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교 신앙과 예배의 맥락화는 그 어느 문화에 처해 있든지, 모든 형태의 억압과 사회적 불의에 대한 도전에 필히 관여한다.</p> <p>4.2. 이러한 맥락화는 또한 더 넓은 인간성을 희생하며 자신 혹은 특정 계층을 우상화하는 문화 형태, 혹은 지구와 그 안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보살핌을 희생하여 부를 얻는데 중점을 두는 문화 형태에 대한 변화에 관여한다. 그리스도교 예배의 이러한 문화 대안적인 도구들은 기존의 지배적인 문화 유형과 의도적으로 다른 태도를 취하는 신중한 행동과 그 회복을 포함할 수도 있다. 이러한 행동의 모본들은 그리스도교 역사 속에서 회복된 생각과 다른 문화에서 얻은 지혜에서 솟아나기도 한다.</p> <p><strong>예배는 문화와 교차한다.</strong></p> <p>5.1.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한 구원자로 오셨다. 그분은 지상의 문화에 담긴 보화들을 하느님의 도성에 초대하신다. 세례라는 관점에서 하나인 교회가 존재한다. 그리고 세례에 신실하게 응답하여 살아가는 한 방법은 교회의 일치를 좀더 깊이 선언하는 일이다. 문화의 장벽을 넘어 성가와 예술, 예배의 다른 요소들을 나누는 일은 전체 교회를 풍요롭게 하고, 전체 교회의 친교를 강화시킨다. 이러한 나눔은 문화 교차적일 뿐만 아니라, 에큐메니칼한 것일 수 있다. 교회의 일치와 하나인 세례에 대한 증언이기 때문이다. 문화를 교차하여 나누는 일은 모든 교회에서 가능하며, 특히 다문화 교회 공동체에 필요하다.</p> <p>5.2. 다른 문화에서 나온 음악, 예술, 건축, 몸 동작과 행동들을 이용할 때는 세계 어느 교회에서든 사려깊은 이해와 존중이 필요하다. 이 때 그 맥락화의 기준(위의 3.5와 3.6)을 적용해야 한다.</p> <p><strong>교회에 대한 도전</strong></p> <p>6.1 우리는 루터교 세계 연맹 회원 교회들이 그리스도교 예배의 초문화적, 맥락적, 문화 대안적, 문화 교차적 특성에 관하여 좀더 노력을 기울이기를 요청한다. 우리는 회원 교회들이 세례의 중심성과 설교를 통한 성서, 그리고 매주일 주님의 만찬 거행 - 그리스도교 예배의 가장 중요한 초문화적 요소이자 그리스도교 일치의 표지들 - 을 모든 교회의 생활과 선교의 강력한 중심으로, 그리고 맥락화의 진정한 기반으로 회복하기를 요청한다. 우리는 모든 교회들이 전례와 언어와 몸 동작과 행동, 성가와 다른 음악, 그리고 악기, 그리스도교 예배를 위한 예술과 건축 등에서 그 지역적, 맥락적 요소들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기를 요청한다. 그리하여 그 예배는 지역 문화에 좀더 바르게 뿌리내리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 교회들이 이제 그들 안에 있는, 그리고 그 사목 활동의 협력자들과 그 수혜자들 안에 있는 상황과 맥락을 깨닫도록 하는 선교적인 노력을 기울이길 요청한다. 우리는 모든 회원 교회들이 예배의 초문화적인 본질과 문화 교차적인 나눔의 가능성에 깊이 주목하기를 요청한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교회들이 말씀과 성사를 집전하는 사목자들을 훈련시키고 서품하는 일에 노력하기를 요청한다. 개별 지역 공동체는 은총의 도구를 매일 받아야 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p> <p>6.2. 우리는 루터교 세계 연맹이 계획적이며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여, 개발 국가에 온 사람들이 예배와 교회 음악, 교회 건축을 연구할 수 있도록 돕는 장학금을 마련하기를 요청하며, 최종적으로 해당 지역 출신 교수진들에 의해서 그 교회들이 신학적인 훈련을 발전키는 목적을 달성하기를 바란다. </p> <p>6.3. 나아가, 우리는 루터교 세계 연맹이 새천년에 대비하여 예배와 문화에 관한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기를 요청한다. 이러한 임무들은 단기간에 이뤄지지 않으며, 지속적인 깊은 연구와 사목적인 격려에 대한 요청이 필요하다. 1992년에 시작되어 지난 1997년 루터교 세계 연맹 회의에서 계속된 [예배와 문화 연구] 모임은 의미있고 중요한 시작이다. 그러나 그 임무는 끊임없는 노력이 요구된다. 이 임무를 우선하는 일은 세계의 복음화에 핵심적인 일이다. </p> <p>번역: 주낙현 신부<br /> 원문: <a href="http://www.elca.org/Growing-In-Faith/Worship/Learning-Center/LWF-Nairobi-Statement.aspx" rel="nofollow">http://www.elca.org/Growing-In-Faith/Worship/Learning-Center/LWF-Nairobi-Statement.aspx</a><br /> 일시: 2009년 10월 2일<br /> 교정: </p> viamedia on "번역: 성공회의 선교와 복음화 이해" 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511#post-937 목, 10 9월 2009 12:44:09 +0000 viamedia 937@http://liturgy.skhcafe.org/ <p>세계 성공회 신학 교육 위원회(TEAC)에서 발행하는 소책자 가운데 하나인 '성공회의 선교와 복음화 이해'(An Anglican Understanding of Mission and Evangelism)의 전문 번역입니다. 선교와 복음화에 대한 자의적 해석과 잘못된 이해을 바로 잡고, 성공회 전통 안에서 우리가 부여받은 선교의 사명과 그 공헌을 되새겨 그 신학적인 원칙과 성공회 전통 안에서 되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p> <p>조금 급히 번역한 것이니 여러분들이 지적해 주십시오. 교정과 교열을 통해서 단행본으로 출간하겠습니다.</p> <p>+++++++++++++++</p> <p><strong>성공회의 선교와 복음화 이해<br /> An Anglican Understanding of Mission and Evangelism</strong></p> <p>마이클 도우 주교(Bishop Michael Doe)</p> <p>번역: 주낙현 신부</p> <p>차례</p> <p>1. 하느님의 선교<br /> 2. 예수 그리스도의 중심성<br /> 3. 통전적 선교<br /> 4. 선교에 대한 이해에는 성서와 전통과 이성이 필요하다.<br /> 5. 신학의 다양성<br /> 6. 교회 선교의 역할<br /> 7. 성육신의 선교<br /> 8. 문화적 감수성<br /> 9. 진리를 향한 열림과 우리 자신의 불완전을 받아들이는 일<br /> 10. 지도력과 공동체<br /> 11. 성공회 전체를 통한 행동과 상호 지원<br /> 12. 에큐메니칼<br /> 결론</p> <p>선교는 그 방법과 목적에서 본질적으로 에큐메니칼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주 특별히 성공회적인 요소들을 외따로 부각시키는 일은 쉽지도 않을 뿐더러 바람직한 일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 역사 안에서 그리고 오늘날 등장하고 있는 것들을 통하여 성공회 전통은 몇가지 독특한 강조점을 갖고 있으니, 이 글에서 나는 그 열 두 가지 강조점을 기술하였다. 이 내용은 몇가지 한계를 동반한다. 선교회의 총무를 맡아 일한 탓에 세계 성공회 여러 곳의 살펴 볼 기회가 있었지만, 내 생각은 어쩔 수 없이 브리티시 지역과 영국 성공회를 배경으로 나온 것이다. 성공회 전통이 세계 여러 곳에서 서로 다른 처지에서 발전하고 있기에, 선교와 복음화에 대한 다른 시각도 있을 것이다. </p> <p><strong>1. 하느님의 선교 Missio Dei</strong></p> <p><em>성공회 신자들은 모든 선교의 근원과 목표가 하느님의 본질과 그분의 일에 근거한다고 믿는다.</em></p> <p>선교는 하느님의 일(the work of God - Missio Dei)이다. 곧 창조의 사건으로부터 그리스도께서 으뜸이 되시는 그 성취의 사건에 이르기까지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일이다. “선교는 그리스도인들이 예수께서 펼치신 해방의 선교와, 하느님의 사랑에 관한 복음에 참여하는 것으로, 이 선교와 복음이 육화된 공동체 안에서 세상을 위하여 이를 증언하는 것이다.”</p> <p>성공회 신자들은 또한 하느님의 일로부터 하느님의 본질에 이르기까기 우리를 좀더 깊은 이해로 이끄는 이들에게 마음을 열어 감사한다. 곧 거룩한 삼위일체의 핵심에서 일어나는 주고 받음과 오고 감의 교류 속에서, 하느님 본질이 드러내는 그 공동체적 사귐의 표현으로 선교를 바라보도록 하기 때문이다.</p> <p>1998년 람베스 회의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모든 선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께서 보이신 행동과 자기 계시에서 나온다... 선교와 복음화를 향한 우리의 소명은 우리에게 계시된 하느님의 본질에 근거한다.”</p> <p><strong>2. 예수 그리스도의 중심성</strong></p> <p><em>성공회 신자들은 모든 선교가 예수 그리스도에 중심을 두고 있다고 믿는다.</em></p> <p>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목격하며, 하느님께서 어떻게 당신의 세상을 구원하셨고, 우리를 불러 이 사건에 응답하게 하시고 당신의 일에 참여하도록 하시는 지를 깨닫는다. 우리의 응답은 그리스도인의 수를 늘리기 위한, 혹은 세상을 바꾸기 위한 교회 프로그램이라기 보다는,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 안에 이끌려 들어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이는 성령의 활동 속에서 우리에게 방향을 제공하며,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열정을 가져다 준다. </p> <p>“성공회 신자로서,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는 복음화와 사랑의 봉사와, 예언자적인 증언을 통하여 세상에서 펼치시는 하느님의 선교에 참여하도록 부름을 받는다”(TEAC, 세계 성공회 신학 교육 협의회).</p> <p><strong>3. 통전적 선교</strong></p> <p><em>성공회 신자들은 선교가 통전적, 곧 “통합적”이라고 믿는다.</em></p> <p>이 말은 1984년과 1990년 세계 성공회 협의회에서 합의한 선교의 다섯 가지 지표에 요약되어 있다. 선교는, </p> <p>- 하느님 나라에 대한 복된 소식을 선포하는 일이다.<br /> - 새로운 신자들을 가르치고, 세례 주고, 키워 내는 일이다.<br /> - 사랑의 봉사를 통하여 인간의 필요에 응답하는 일이다.<br /> - 사회의 불의한 구조를 변화시키도록 노력하는 일이다.<br /> - 창조 질서를 온전히 보존하고, 지구 생명을 지탱하고 새롭게 하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p> <p>그렇다면 여기에 어떤 순서가 있는가? 어떤 이들은 첫번째 지표가 다른 지표들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곧 그 선포의 방식이 다를지라도 하느님 나라의 관점에서 남을 보살피는 일과 정의를 위한 행동과 창조 질서를 보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이들은 순서와 관계 없이 선택하여 결합시키는 방법을 선호하기도 한다. 특별히 복음화에 좀 더 초점을 맞춘다든지, 사회 정치적 참여에 대해 강조하는 경우이다. 또한 하느님 백성의 삶과 예배를 통하여 새로운 지표를 추가하려는 노력도 있다. 하느님의 선교 안에서 교회의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으로 우리를 이끄려는 것이다.</p> <p>대부분의 성공회 신자들은 이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선교는 어떤 그리스도교 자선 단체들이 제안하는 것과 같이 “내 이웃을 사랑하라”는 일로만 축소될 수 없다. 다른 한편으로, 세상 속에서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의 핵심에서 사회적인 보살핌, 정의를 위한 행동, 창조 질서를 위한 보살핌을 더이상 등한시 할 수 없다.</p> <p><strong>4. 선교에 대한 이해에는 성서와 전통과 이성이 필요하다.</strong></p> <p><em>성공회 신자들은 성서가 결정적이지만, 전통과 이성도 필요하다고 믿는다.</em></p> <p>성공회 신자들은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성서에서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다른 사안들과 마찬가지로 선교에 대해서 생각할 때도, 성서는 원칙과 기준을 마련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우리는 성서의 무오성을 믿지 않는다. 성서는 명령적(imperative)이라기 보다는 암시적(indicative)이다. “전통과 이성 또한 성공회 신자들이 신학 ‘하는’ 방법의 핵심적인 면모이다.”</p> <p>후커(Hooker)의 유명한 세 다리의 의자는 성서와 전통과 이성으로 이뤄진다. 여기에는 이 관계를 결정하는 어떤 중앙집권적인 교도권(magisterium)이 없다. 결정을 내리는 권위가 없다는 이유로, 뉴먼(Newman)은 그 자신이 이전에 교리의 적절한 ‘발전’으로 보았던 것을 저버리고 교회를 떠났다.</p> <p>1998년 버지니아 보고서는 이렇게 말한다. “성공회 신자들은 성서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당신의 일을 교회 안에서 소통하시어, 사람들이 이해와 신앙으로 응답하시게 하는 매개(medium)로써, 최고의 권위라고 천명”하며, 또한 “17세기 이래, 성공회는 성서를 ‘전통’과 ‘이성’의 빛에서 이해하고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견지했다.”</p> <p>윌리암 로드(William Laud) 대주교는 좀더 전투적인 표현을 써가며, “무오한 교회를 믿는 교황주의자들과 무오한 성서를 믿는 청교도들”을 거부했다.</p> <p><strong>5. 신학적 다양성</strong></p> <p><em>성공회 신자들은 신학적 다양성이 선교에 대한 이해를 더욱 창의롭게 한다고 믿는다.</em></p> <p>2005년 IASCOME(선교와 복음화를 위한 성공회 상임 위원회)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공회 신자로서 우리는, 사도적인 진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 예배에 표현된 바와 같이 모든 것들의 최종적인 일치에 대한 희망 안에서, 공통성과 차이가 함께 유지”되며, 이 둘은 선교 안에서 공동체로 사귀기(communion) 위한 계약에 다다르게 된다고 믿는다. 이 계약은 바로, 서로 다른 상황 속에서 우리 신앙의 원천이요, 감화(inspiration)인 예수를 깨달아, “다른 이들의 삶과 상황 속에서 일하시는 그리스도의 현존을 바라보고, 깨닫고, 배우며 향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차이와 불일치를 살피게 하여 서로에게서 오는 비판과 도전에 응답하여 기꺼이 변화하도록 이끌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우리 자신과 세상을 위해 주신 하느님의 화해라는 약속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p> <p>마찬가지로, 2008년 성공회 신학-교리 위원회는 이렇게 말한다. “공동체적인 사귐(Communion)은 초월적인 것이니, 차이들 - 단순히 차이들만을 강요하는 확신의 연결 고리 - 를 변화시킬 수 있다. 공동체적 사귐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서로 다른 문화와 세계관의 사람들을 바르게 포용하고 이를 축하하는 것이며, 그리스도교의 진리에 대한 신선한 향유를 가능케 한다.”</p> <p><strong>6. 교회 선교의 역할</strong></p> <p><em>성공회 신자들은 교회가 선교와 그 수행의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믿는다.</em></p> <p>교회 - 그리고 우리에게는 성공회 신자가 되라는 부르심 - 는 자의적인 행동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께서 이루신 일과 여전히 하시는 일에 참여하는 것이다. 버지니아 보고서에 따르면, “교회는 하느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공동체적 사귐 안에 참여하는 공동체적인 사귐이기 때문에, 종말론적 현실과 중요성을 갖고 있다. 교회는 역사 안에서 하느님의 최종적인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대림 사건(Advent)이다.”</p> <p>교회의 삶과 예배가 “선교의 표지”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들도 있다. 분명히 말하건대, 교회됨을 ‘유지’하는 일은 선교에서 분리될 수 없다. 이는 특별히 교회의 성사적 삶의 참 뜻이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선교는 하느님 백성의 삼위일체 신앙을 형성시키고, 이들을 사목과 선교의 삶을 위해 힘을 부여하는 전례 안에서 거행되고 선포된다. 이는 거룩한 세례와 성찬례의 참 뜻이니, 세례를 받아 주님의 식탁에 참여하는 것은 교회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하나이요, 계속되는 선교에 투신하는 것이다.”</p> <p><strong>7. 성육신의 선교</strong></p> <p><em>성공회 신자들은 선교가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뿌리한다고 믿는다.</em></p> <p>성공회는 유럽의 그리스도계가 여전히 강력할 때, 영국의 국가 교회로서 시작됐으며, 그것이 가져온 모든 타협들과 함께 적잖이 부와 권세를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영국 성공회는 또한 국민 교회의 설립을 통하여 국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사목구(parish) 체제를 통하여 지역 공동체를 섬기는 - 이로써 단순히 예배처가 아닌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로 변화시켰다 - 길을 보여 주었다. </p> <p>성공회가 서로 다른 문화적 정치적 상황에 뿌리를 내리면서, 이 전통은 여러 다른 방법으로 표현되어야 했다. 때로는 공식적으로나 좀더 비공식적으로 ‘국교회’ 형태를 유지하기도 했고, 때로는 국민적인 공동체 생활에 관여하는 여러 교회들 가운데 하나가 되기도 했다. 때로 성공회는 소수자로서 존재하고, 독재 정권, 혹은 다른 지배적인 종교의 박해를 상황에 있기도 하다.</p> <p>오늘날, 여러 다른 방법으로, 성육신 사건에 대한 성공회의 선교는 사회적 보살핌, 의료와 교육 기관, 공동체 개발, 평화와 정의를 위한 행동을 통하여 증언하고 있다. 이는 성공회가 그리스도를 세상 속에서 발견하며, 그분과 같은 섬김으로써 그리스도를 따르려 하기 때문이다. TEAC 보고서가 말하는 대로,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으로, 하느님의 평화와 정의와 화해시키는 사랑을 실천하면서, 우리는 모든 선한 사람들과 협력한다. 우리는 세속화, 가난, 고삐풀린 탐욕, 폭력, 종교 박해, 환경 훼손, 그리고 HIV/에이즈 등이 가져다 주는 가공할 도전을 인식하고 있다. 이에 응답하여, 우리는 파괴적인 정치적 종교적 이데올로기에 예언자적인 비판을 가하고, 교육과 의료 혜택, 화해에 드러나는 인간의 복지를 위한 보살핌의 유산을 건설한다. </p> <p><strong>8. 문화적 감수성</strong></p> <p><em>성공회 신자들은 선교가 그 문화적 맥락을 깊이 고려한다고 믿는다.</em></p> <p>(영국에 처음으로 선교사를 보냈던) 그레고리 교황의 원래 지시는 이랬다. “(캔터베리의) 어거스틴에게 전하시오. 어떤 경우에라도 (토착) 신전들을 파괴해서는 안되고, 그 신전들 안에 있는 우상을 척결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그 모든 외적인 기쁨을 빼앗기지 않는다면, 안에 있는 것들을 훨씬 쉽게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강요하거나 이식하기보다는 함께 할 수 있는 길을 찾으면서 마련한, 이와 같은 지역 문화에 대한 존중은 성공회 선교를 가장 잘 드러내는 표지이다. </p> <p>그러나 TEAC 에서 지적하는 바와 같이, 때로 우리 문화 - 유럽, 아프리카, 또는 그 무엇이든 - 는 우리의 진정한 소명을 보지 못하게 할 수 있다. “성공회 신자로서, 우리는 하느님의 선교 속에서 누리는 공동의 삶과 그에 대한 투신이 여러가지 결함과 실패로 얼룩져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곧 식민지 유산의 부정적인 측면들과 권력과 특권을 자신 만을 위해 잘못 사용한 일들, 평신도와 여성들의 공헌에 대한 평가 절하, 자원의 불공평한 분배,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과 억눌린 사람들의 경험에 눈감았던 사실 등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새로운 겸손함을 가지고 주님을 따르고자 하며, 이로써 우리는 구원의 복음을 말과 행동으로 자유롭고 기쁘게 전파할 수 있다. </p> <p>오늘날 세계 성공회의 많은 지역에서, 이는 다원주의 문화에 대한 대응을 포함한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의 전통을 다시 되새길 수 있다. 종교 간 대화를 위한 네트워크에서 내놓은 최근 보고서는 이렇게 말한다. “성공회는 종교개혁 이후에 나타난 세계의 그리스도교적 다원주의에 대해서 독특한 방법으로 응답했다. 그리고 이러한 유산은 우리 시대의 종교적 다원주의에 대응하는데 특별한 재능을 제공한다.”</p> <p><strong>9. 진리를 향한 열림과 우리 자신의 불완전을 받아들이는 일</strong></p> <p><em>성공회 신자들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를 선교 안에서 지속적으로 성장시킨다.</em> </p> <p>윌리암 로드 대주교는 “더 나은 징표에 대한 잠재성”이라 말한 바 있거니와, 그의 20세기 계승자인 마이클 램지 대주교는 이렇게 단언했다. 성공회 신앙은 “어떤 체계나 고백이 아니라, 방법이요, 활용이요, 방향”이다. 그러므로 “성공회의 가장 위대한 특징은 그 불완전성(에 대한 인정)이며, 그 사고에서 긴장과 고민을 놓지 않는다. 서툴고 정돈되지 않아서, 오히려 능란한 논리를 혼란케 한다. 이 교회가 파송된 것은 그 자체를 ‘가장 좋은 형태의 그리스도교’로 칭송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부서진 불완전성으로 보편 교회(the universal Church) - 이 안에서 모두가 죽었다 - 를 드러내려는 것이다. </p> <p>이는 우리가 다른 신앙 전통들에 관여하는 태도로서, 일찌기 1897년 람베스 회의에서 시작하여 최근의 TEAC 선언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문제들을 바라보는 노력이었다. “다른 신앙 전통의 공동체들과 우리가 맺는 관계와 대화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라는 증언과 평화에 대한 갈망, 그리고 상호 존중과 이해를 결합시킨다.</p> <p><strong>10. 지도력과 공동체</strong></p> <p><em>성공회 신자들은 선교가 주교의 지도력 아래서 모든 세례받은 이들이 가진 책임이라고 믿는다.</em></p> <p>선교는 교회의 임의적 행동이 아니요, 그저 내키는 대로 선택할 사안이 아니다. 오히려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데 핵심적인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1821년 미국에서 성공회가 설립되었을 때, 스스로를 “내지 및 해외 선교회”(Domestic &#38; Foreign Missionary Society)라고 했던 것이다. 1922년 영국 성공회 교리 위원회는 보편 교회를 “선교적 형제애의 끝없는 확장”이라 기술했다. 단순히 신자들이 모인 지역 공동체가 아니라는 말이다.</p> <p>“하느님께서 교회에 맡기신 화해의 선교와 사목은 세례 안에서 모든 하느님의 백성(laos)에게 주어졌다”고 버지니아 보고서는 말한다. 많은 관구 교회가 만든 새로운 전례들은 견진례로 이어지는 위임에서 이 점을 강조한다. 또한 서품 예식에서 주교의 최우선적인 역할과 책임은 선교 안에서 지도자가 되는 것이다.</p> <p>1998년 람베스 회의는 이렇게 말했다. “세계 성공회의 모든 주교와 교구, 그리고 교회의 최우선적인 임무는, 예배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복음을 모든 이들에게 선포함을 통하여, 그리고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하느님 나라와 하느님의 정의를 말과 행동으로 증언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느님의 사랑을 안에서 나누고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제 모두 선교 교구들이다!”</p> <p><strong>11. 성공회 전체를 통한 행동과 상호 지원</strong></p> <p><em>성공회 신자들은 선교가 세계 성공회 전체 안에서 나눠야 할 행동이라고 믿는다.</em></p> <p>IACOME 보고서가 되새겨 주는 바와 같이, “세계 성공회는 세계 선교를 위한 비전 안에서 성장했다.” TEAC 역시 지적하기를 “우리는 하느님의 화해시키며 생명을 주는 선교를 세계 성공회 전체 안에서 과거와 현재에 걸쳐 남녀노소의 창조적이며, 값지고 신실한 증언과 사목을 통하여 거행하고 있다.”</p> <p>과거에 선교는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향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이제 모든 처소에서 하느님께서 불러 쓰시는 각 교회들의 선교적 응답은 인력과 생각과 재력의 교류를 통하여 만들어내는 새로운 상호 지원의 틀을 필요로 한다. 선교회는 이제 그 역할이 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IASCOME 보고서의 말대로, “세계 성공회가 독립적인 교회들의 세계적인 가족으로 계속 발전하면서, 우리는 각각 지역과 지방, 국제적인 수준에서 선교를 위한 도전과 기회를 껴안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선교 협력을 위한 성공회의 독특한 기회를 제공하면서 우리의 신앙과 선교 유산을 소중히 여긴다.”</p> <p>이는 우리가 나누는 세계 성공회가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믿음을 돈독히 한다. 이 공동체는 우리의 호불호에 따라 만들어지거나 분열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그러움과 서로에 대한 책임 안에서 드러나야 할 선물이다.</p> <p><strong>12. 에큐메니칼</strong></p> <p><em>성공회 선교는 더 넓은 에큐메니칼 협력 안에서 서로 주고 받아야 한다.</em> </p> <p>성공회가 그 독특한 선교적 사명을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하느님께서 부르신 모든 백성 - 보편 교회 - 의 한 부분일 뿐이기에, 세상 안에서 펼쳐지는 하느님의 행동에 참여해야 한다. 1867년 첫 람베스 회의는 “우리의 선교 활동 안에서 더 큰 일치를 유지”하기를 촉구했다.</p> <p>성공회 계약 문서 (세인트 앤드루 문서)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공동 선교는 이 계약 너머에 있는 다른 교회들과 전통들과 함께 나누는 선교이다. 우리는 전체 복음의 삶을 발견하는 기회들과 세계에 퍼진 교회와 화해와 선교의 나눔을 위한 기회들을 포용할 것이다. 모든 성도들과 함께 우리는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는 구원의 사랑을 좀더 온전하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p> <p><strong>결론</strong></p> <p>이 작은 책자는 성공회 전통이 선교와 복음화를 이해하는데 가져다 주는 특별한 강조와 공헌을 기술하려는 노력이었다. 이는 보존되어야 할 전통이며, 동시에 우리는 그 적용을 늘 점검해야 한다. 16-17세기의 청교도들에서 시작하여 18-19세기의 여러 부흥 운동들을 거쳐, 우리 시대의 은사적 소비주의 교회에 이르기까지, 사람 수를 늘리는 일을 우선적인 사명으로 삼았던 소위 ‘거듭난’ 신자들의 교회들이 이러한 유산을 대치하려고도 했다. 그와 나란한 시도들이 다른 편에도 있었다. 소위 가톨릭파들은 선교보다는 유지에 급급하여 성육신을 성사지상주의로 축소시키려 했다. 자유주의파들이 교회의 선교를 그저 쉽게 세속 문화나 다종교 문화에 맞추려는 유혹에 굴복한 적도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p> <p>어느 경향을 갖든 모든 성공회 신자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지속적으로 도전을 받아야 한다. 그분에게서 모든 선교가 흘러나와 끝나기 때문이다. 성공회 전통은 그 본질에서 지역 문화와 관계한다. 그러므로 여러 다른 모양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자에서 기술하려고 한, 선교에 대한 성공회의 독창적인 접근 방법은 오늘날 하느님께서 교회를 어디로 부르시는가에 대한 우리의 에큐메니칼한 이해에 큰 공헌을 제공한다. 2008년 람베스 회의에 모인 주교들이 모인 것은 이러한 유산을 보존하고, 이 유산으로 우리의 미래를 만드는 책임을 지려는 것이었다. </p> <p>20090910:rev.2 각주 삽입(출간용),누락부분 보충<br /> 20090909:rev.1 본문 번역</p> <p>* 원문-후주, 번역-각주: 어떤 것이 나은가?<br /> * 원문 출처(주) 표기 방법: 기준(Chicago style)을 세워 고칠 것인가? </p> viamedia on "번역: 전례 운동과 그 성과" 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126#post-344 목, 09 10월 2008 13:15:43 +0000 viamedia 344@http://liturgy.skhcafe.org/ <p>전례 운동과 그 성과</p> <p>존 F. 발도빈 S.J.</p> <p>차례</p> <p>전례 운동의 뿌리들<br /> 20세기 천주교 전례 운동<br /> 성공회의 흐름<br />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 헌장<br /> 제 2차 바티칸 공의의 이후 천주교의 전례 개혁<br /> 주일 성찬례를 위한 성서정과<br /> 성찬기도<br /> 성인 신자의 그리스도교 입교<br /> 전례 언어<br /> 전례 운동, 교회 일치, 그리고 미래</p> <p>고인이 된 감리교 전례학자 제임스 화이트(James White)는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예배를 가르치면 되는데 굳이 에큐메니즘(교회 일치 운동)을 가르칠 필요가 있는가?”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이라면 이런 말이 나오리라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이 안에 천주교까지를 포함시킨다면 말이다). 1960년대 중반에 이르러 많은 변화가 있었으며, 천주교 안에서 일어난 전례 쇄신은 세계 성공회의 전례 개혁에 넓고도 깊은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이 두 전통이 서로 주고 받은 영향은 바티칸 2차 공의회 훨씬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글은 다양한 공동 기도서들의 개정과 전례 운동의 관계를 추적한다. 이는 시기 상으로 19세기를 근간으로 하여, 20세기에 들어 꽃피운 성과를 다룰 것이며, ‘원 자료로 돌아가자’는 구호로 대표되는 교부학의 부흥과, 공의회가 최근 성공회 전례 개혁에 미친 영향들을 살필 것이다. 그 결과는, 앞서 화이트가 지적한 대로, 전례에 대한 이해는 그리스도인들이 화해를 향해 가는 기나긴 길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p> <p>전례 운동의 뿌리들</p> <p>대부분의 지적 운동이나 교회 운동의 경우처럼, 전례 운동도 단일한 운동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엄격히 말해서 전례 운동은 어떤 조직 운동도 아니었던게 분명하다. 물론 결국에 여러 단체들과 연구회를 만들기는 했지만 말이다. 게다가 전례 운동이 정확하게 언제 시작했는지 말하기도 어렵다. 역사에는 항상 교회의 예배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이를 설명하려는 학자들이나 사목자들이 있었다. 몹수에스티아의 데오도르(Theodore of Mopsuestia, 4세기), 메츠의 아말라(Amalar of Metz, 9세기), 그리고 멘데의 두란두스(Durandus of Mende, 13세기) 등이 그들이다. 근대 전례 운동의 뿌리들은 르네상스와 16세기 종교 개혁의 기반이 되었던 초기 자료들에 대한 관심에서 찾을 수 있다. 근대의 역사 비평 방법이 아직 발전되기 전이었지만, 트렌트 공의회 마저도 고대 전례들에 근거하여 전례를 개혁하려고 했다. 16세기 종교개혁가들 역시 전례의 성서적인 근간뿐만 아니라, 교부들의 권위로 돌아가고자 했다. </p> <p>그러나 근대 전례 운동은 고대와 중세의 전례들에 대한 자료집과 연구들과 더불어 18세기에 시작되었다. 이는 근대 성서 비평이 발전되던 때와 같다. 여기서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할 이들은 프랑스 베네딕도 수사들(무우루스 수사들, Maurists)인데, 특별히 장 마비용 (Jean Mabillon)과 그의 제자였던 에드몽 마르텐(Edmond Martène)이다. 또 다른 초기 전례 편집자는 루디비코 무라토리(Ludivico Muratori)였다. 자크 고아(Jaques Goar), 유세비우 레노도(Eusebius Renaudot), 그리고 지우세페 아세마니(Giuseppe Assemani)는 17세기와 18세기에 동방 전례를 모아 편집했던 이들이다. 고대 전례들, 특별히 성 야고보의 예루살렘 전례, [사도 전승] 8권의 시리아 전례는 18세기 성공회 전례학자들인 하몬 레스랜지(Hamon L’Estrange)와 에드몬드 스티븐스(Edmond Stephens) 같은 이들이 연구했다. 이러한 전례들은 영국 성공회 내의 충성 거부자들(Nonjurors)의 연구서에 많이 드러나는데, [고대 전례들에 대한 연구](1720)을 쓴 토마스 베레트(Thomas Brett)가 대표적이다. 얀센주의자들의 피스토이아 회의(1796)에서 마련된 개혁은 그리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여기서는 로마 전례력을 과감히 단순화하고, 교회마다 하나의 제대 만을 둘 것과 미사 거행 수를 급격히 줄이는 등의 개혁을 단행했다.</p> <p>20세기 전례 운동의 직접적인 뿌리들은 교부 시대와 중세 시대에 대한 관심에 괄목할 말한 관심이 일어난 19세기에서 찾을 수 있다. 1830년대와 1840년에 에드워드 부버리 퓨지(Edward Bouverie Pusey), 존 헨리 뉴먼(John Henry Newman), 그리고 옥스포드 운동(the Oxford Movement)의 여러 사람들이 교부학의 회복을 대표한다면, 존 메이슨 닐(John Mason Neale), 벤자민 웹(Benjamin Webb), 그리고 이들과 함께 캠브리지 운동(the Cambridge Movement)에 참여했던 이들은 중세적 이상을 옹호했다. (이 부분은 이 책의 다른 부분에서 자세히 다룬다. 화이트, “건축” pp.111-114를 보라.) 바로 같은 시기에, 튜빙엔 학파의 천주교 신학자들은 당시 교조화되어가던 스콜라주의에 반대하여 교부들의 신학 방법을 회복하는데 주력하기 시작했다. 19세기 말은 매우 중요한 자료들이 발견된 시기이기도 했다. 4세기의 에게리아(Egeria)의 여행기, 예루살렘 교회에서 쓰던 5세기 아르메니안 성서정과, 그리고 히폴리투스를 저자로 언급하는 [사도 전승] 등이다. 이러한 자료들은 교단의 벽을 넘어서서 전례에 대한 공감을 발전시키는데 극히 중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성공회 학자들은 또한 교부 시대와 중세 시대의 전례 자료들을 회복하는데 주요한 영향을 끼쳤는데, 브라이트만(F.E.Brightman, Liturgies: Eastern and Western, 1896), 프레레(W.H. Frere, The Use of Sarum, 1898-1901), 앳칠리(Cuthbert Atchley, Ordo Romanus Primus, 1905), 그리고 레그(J. Wickham Legg, The Sarum Missal, 1916) 등이 그들이다. </p> <p>아마도 19세기 당시 전례 운동의 가장 중요한 전조는 1837년 프로스페 게랑제(Prosper Guéranger)를 통해 프랑스에서 이뤄진 베네딕도 수도회 정신과 그레고리안 성가의 부활이라고 하겠다. 게랑제는 여전히 논란거리이긴 하다. 그가 모본으로 삼은 것이 중세였던데다, 그가 옹호했던 교황지상주의는 프랑스 교회에 남아 있던 네오-고울(neo-Galican) 요소들과 마찰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그는 전례 자료들과, 특별히 교회력에 대한 연구에서 거의 혼자서 일하다 시피 했다. 결국, 독일 베네딕도 수도회 마우르스회의 하나였던 마리아 라흐(Maria Laach)가 20세기 전례 운동의 핵심이 되었다.</p> <p>20세기 천주교 전례 운동</p> <p>이로 보건데, 현대 전례 운동의 뿌리들이 매우 복잡하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교부학의 부흥, 그리고 성서에 대한 역사 비평 방법의 발전과 더불어, 19세기 북유럽을 특징지었던 산업 사회에 대한 환상이 깨지기 시작했다. 그 누구보다도 영국의 성공회-가톨릭 의례주의자들(ritualists)이 가장 불만을 드러냈다. 대표적인 예는 19세기 말 홀번 지역 세인트 알반(St. Alban’s, Holborn) 교회의 스탠튼 신부(Father A.H. Stanton), 포츠머츠 지역의 돌링 신부(Father Robert Dolling)였다. 이 선구자들은 예배의 공동체적인 성격은 비인간화화는 사회에 대한 비판과 곧바로 이어져야 한다고 이해했다. 그런 점에서 전례 회복에 대한 자극이 대체로 북유럽에서 일어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열매를 맺게 되는 이 전례 운동에 공헌한 세 가지 주요 흐름이 있다. 그것은 벨기에의 전례 운동,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전례 운동, 그리고 교황의 어떤 선도적인 노력이었다. </p> <p>근대 전레 운동에 대한 그 어떤 평가도 랑베르 보뒤엥(Lambert Beauduin)을 언급하지 않고서는 이뤄질 수 없다. 그는 벨기에의 한 교구 사제로, 1905년 루벵의 몽 세자(Mont César) 베네딕도회 수사가 되었다. 20세기 전례 운동의 핵심어가 된 ‘예배 공동체 참여자들의 온전하고, 의식적이며, 적극적인 참여’라는 말은 보뒤엥이 처음으로 가장 중요하게 언급했던 것이다. 그 이전의 전례 운동이 역사적 자료에 집중했다면, 20세기 전례 운동 역시 이 경향을 이어 가면서도 전례를 참여로 이해하게 되었다. 이러한 확신은 기도서 개혁을 이끈 이들에게도 중심적인 것이 되었다. 성공회-가톨릭 의례주의자들처럼, 보뒤엥과 같은 천주교의 선구자들도 전례와 사회의 밀접한 관계를 강조했다. 즉 전례를 통해 봉헌된 세상이 하느님께서 보고자 하시는 세상의 모습이라면, “전례적 세상”은 비인간화하는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보뒤엥이 진행했던 계획 가운데 하나는 번역된 미사를 가지고 사람들과 함께 쉬운 말로 매달 미사를 드리는 것이었고, 일반 신자들을 위해서 쉬운 글을 써서 알리는 것이었다. 화이트의 시각에서 언급해야 할 중요한 점이 있는데, 보뒤엥 역시 교회 일치 운동에 헌신했다는 점이다. 그는 벨기에 아메-쉬-뮤스(지금의 쉬베통)에 천주교-정교회 연합 수도원을 설립했다.</p> <p>근대 전례 운동에 대한 또 다른 주요 공헌은 마리아 라흐(Maria Laach) 뷔론 수도원에게 있었다. 이 수도원의 일데폰스 헤어베겐 수도원장(Abbot Ildephons Herwegen)은 1931년 전례와 수도 생활 연구회를 세웠다. 마리아 라흐는 전례 활동에 관한 많은 학문적 연구를 내는 중심지가 되었고, 신학자 오도 카젤(Odo Casel)을 배출했다. 카젤의 저서는 그리스도의 삶에 들어있는 신비들(mysteries)이 전례를 거행하는 지금 전례 안에 드러나야 한다(mysterienlehre)고 주장했다. 이것은 후대 전례 신학자들뿐만 아니라, 특별히 바티칸 2차 공의회 전례 헌장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오스트리아 어거스틴 수도회의 피우스 파르쉬(Pius Parsch)는 바티칸 2차 공의회 이전 시기에 전례적 참여를 증진시켰던 또 다른 중요한 사람이었으며, 같은 영향을 끼친 뮌헨의 신학자 로마노 과르디니(Romano Guardini)는 1920년대와 1930년대 대학 청년 미사를 시작했다.</p> <p>천주교 안에서 전례 역사 연구 역시 20세기에 진전을 이뤘다. 어떤 점에서 이 과정은 역설적이기도 했다. 교리 신학과 사변 신학은 20세기 시작에 있었던 근대주의의 위기, 혹은 그 이후부터 의문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언어학적 연구와 역사적 연구에 더 힘을 쏟았다. 예를 들어 요세프 융만(Josef Jungmann)의 [로마 양식 미사](Missarum Sollemnia: The Mass of the Roman Rite, 1949)는 바티칸 2차 공의회를 통해서 고무된 전례 개혁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그는 원래 교리 교육 신학자였다가 전례로 관심을 바꾼 경우였다. 교리 신학은 너무나 위험한 것이라 판단했던 것이다. 미셸 앙드리외(Michel Andrieu)는 로마 ‘오디네스’ (ordines: 중세의 전례 지침서)를, 히에로니무스 엥버딩(Hierominus Engberding)은 고대의 집전 사제용 전례서(sacrametaries)를 각각 편집해냈다.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프랑스 파리에는 전례 연구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인 고등 전례 연구소(the Institut Supérieur de Liturgie)가 사목 전례 센터(Centre Pastorale Liturgique)와 연합하여 개소했다. </p> <p>이후 천주교뿐만 아니라 교파를 초월한 전례 연구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사람은 독일 평신도 전례 문헌학자이자 역사가인 안톤 바움스타크(Anton Baumstark)였다. 바움스타크의 저작, 특별히 여러 말로 번역된 [전례 비교 연구](Comparative Liturgy, 1939)는 전례 역사에 대한 비교학적 방법을 기술한 것으로, 학자들이 자기 교단 전통의 역사에만 매몰된 연구 영역을 넘어서는데 도움을 주었고, 예배 역사의 좀더 넓은 흐름과 함께, 전례 발전의 많은 법칙들을 발견하도록 했다. 무엇보다도, 바움스타크는 전례의 진화가 ‘최초의 다양성에서 후기의 획일성으로, 그리고 소박하고 단순하고 짧은 것에서 복잡하고 장황한 것으로’ 진행되었다고 주장했고, 그에 대한 근거를 들었다. 그는 또한 전례의 진화에 작동하는 두 가지 법칙을 소개했다. 그 하나는 유기적 발전의 법칙, 다시 말해 정원의 잡초처럼 최초 전례들에 후대에 추가된 부분들이 초기의 요소들을 억누르게 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조금은 역설적인데) 가장 최초의 요소들은 가장 거룩한 축일들에 남아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바움스타크의 제자들 가운데는 바티칸 2차 공의회 이후 생겨난 전례에 대한 초교파적인 공감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역사학자들이 있었다. 베르나르 보트(Bernard Botte), 주앙 마테오스(Juan Mateos), 로버트 태프트(Robert Taft), 그리고 가브리엘 윙클러(Gabriel Winkler) 등이 그들이다.</p> <p>교황의 지지가 없었더라면 전례 운동이 그렇게 성공하지 못했으리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비오 10세가 1905년, 그레고리안 성가의 회복을 촉구하고, 좀더 잦은 성찬례와 영성체를 권장한 것을 시작으로, 전례 운동은 천주교 내 고위권의 지지를 받았다. 전례에서 신자들의 적극적 참여라는 원칙은 그리스도교의 정신에 ‘가장 중요하고 절대로 필요한’ 원천으로서, 바티칸 2차 공의회 전례 헌장 (14항)이 지지한 원칙 가운데 하나인데, 실제로는 비오 10세가 그레고리안 성가의 회복을 촉구하면서 한 말을 변형시킨 것이다.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교황 비오 12세는 전례에 관한 교령 [하느님의 중재자](Mediator Dei, 1947)로 전례 운동을 계속 지지하며, 영성체 전의 금식 규정 완화, 히브리어에 기반한 새로운 라틴어 시편집의 승인(1945), 특정한 예절에 관하여 지역어 사용의 허용(미사와 성무일도는 허용되지 않았지만), 그리고 부활 밤 전례(1953)와 성주간(1956) 예절을 회복하도록 했다.</p> <p>성공회의 흐름</p> <p>20세기의 첫 장은 전례 정신을 붙들어 온 성공회에도 매우 활발한 시기였다. 그 중요한 기구 가운데 하나는 핸리 브래드쇼 회(The Henry Bradshaw Society)로, 1890년에 설립되어 전례 문서들을 출판하기 시작했으며,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더 많은 영향을 끼친 곳은 알퀸 클럽(the Alcuin Club)인데, 1897년에 설립되어 영국에서 기도서 개정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고, 천주교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 기구가 펴낸 출판물 가운데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것은 휘태커(E.C. Whitaker), 피셔(J.D.C. Fisher), 그리고 피터 재거(Peter Jagger)가 펴낸 그리스도교 입교(Christian Initiation)에 관한 책들이었다. 커트버트 애칠리(Cuthbert Atchley)의 ‘에피클레시스’(epiclesis)에 관한 저작과, 이후 분 포터(Boone Porter)의 서방 교회의 서품 기도문 연구, 그리고 케네스 스티븐슨(Kenneth Stevenson)의 혼배 축복에 관한 연구도 중요한 성과였다. 마지막으로 버나드 위건(Bernard Wigan)과 콜린 부캐넌(Colin Buchanan)이 영어로 된 성공회 전례들을 모아 펴낸 것도 언급해야 한다. 이것은 학자들과 전례 개혁가들 모두에게 도움을 주었다.</p> <p>기도서의 개혁과 쇄신에서 가장 중요한 공헌 가운데 하나는, 성찬례가 교회의 예배 생활에 가장 핵심적인 활동이요, 그 중심이라는 생각이었다. 이 공헌은 1930년대 거룩한 선교회(the Society of Sacred Mission) 소속 사제였던 가브리엘 허버트(Gabriel Herbert)가 마련한 것이었다. 허버트는 스칸디나비아 전례 운동(특별히 Yngve Brilioth의 [가톨릭적이고 복음적인 성찬례 신앙과 실천] Eucharistic Faith: Catholic and Evangelical - 허버트가 번역했다)과 마리아 라아치의 수사들로 대변되던 유럽 천주교 전례 운동에서 강한 영향을 받았다. 허버트의 [전례와 사회](Liturgy and Society, 1935)는 20세기 성공회 전례 개혁에 관한 저작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p> <p>현대 성공회 전례 운동은 또한 북미 지역에도 뿌리를 두었다. 이는 뉴헤이븐 버클리 신학교의 윌리엄 팔머 라드(William Palmer Ladd)를 시점으로 한다. 라드는 미국 성공회 신자들에게 헤르베겐 수도원장과 오도 카젤을 소개했다. 그의 가장 영향력있는 제자 가운데 하나였던 매시 세퍼드(Massey H. Shepherd)도 거의 같은 영향을 끼쳤다. 세퍼드는 자기 선생을 만나기 전에 이미 독일 천주교 전례학자들을 공부했었다. 세퍼드는 오랜 동안 미국 캠브리지 성공회 신학교(the Episcopal Theological School)와 버클리 성공회 신학교(the Church Divinity School of Pacific) 전례학 교수로 가르쳤다. 그는 사무엘 웨스트(Samuel West), 존 패터슨(John Patterson), 그리고 존 키니(John Keene)와 함께 1946년 “전례와 선교를 위한 교회 연합”(Associated Parishes for Liturgy and Mission)을 설립했다. 아직까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교회 연합”의 첫번째 목적은 주일 아침 성찬례의 중심성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영국에서도 비슷한 운동이 있었는데, 1949년 “교회와 신자들”(Parish and People)이 같은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p> <p>“교회 연합”의 구성원들, 특별히 세퍼드는 1979년 미국 성공회 기도서를 준비하는 일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천주교에서 일어난 새신자 교육에 대한 회복은 “교회 연합”에도 영향을 주어서 미국 성공회 내에서 같은 쇄신을 일으키게 했다. 그러나 바티칸 2차 공의회 이전에 이미 성공회는 전례의 참여적인 본질에 대한 전망과 더불어 전례 연구의 성과를 공유하고 있었다. 세퍼드는 전례 운동이 초교파적으로 섞여 진행되는 것에 대해 언급하면서, “학자들의 공동체가 자기 교단 전통에만 충실하려는 태도를 초월했다”고 말한 바 있다. 1959년 바티칸 2차 공의회가 시작되기 전에 쓴 한 글에서, 세퍼드는 전례 운동이 비공식적으로만 진행되는 점을 지적했다. ‘규정할 수는 없는, 자유롭게 생각을 교환하고 개인적인 친분”을 통해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처지이며, “이것은 교회의 담을 넘어서 서로 참여하는 것과는 상관 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런 상황은 바티칸 2차 공의회과 공의회 이후의 천주교 전례 쇄신과 더불어 바뀌었다. </p> <p>바티칸 2차 공의회로 넘어가기 전에, “의문의 여지 없이, 성공회 뿐만 아니라, 성공회 밖에도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한 사람”(Paul Bradshaw, “Gregory Dix” in Irvine, 11)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바로 성공회 베네딕도회 내쉬돔 수도원의 그레고리 딕스(Gregory Dix, 1901-1952)이다. 그는 특별히 견진 성사와 초기 그리스도교의 사목직에 대한 연구 분야에 중요한 공헌을 했다. 그는 또한 로마의 히폴리투스가 썼다고 잘못 알려진 [사도 전승]의 한 중요한 판본을 펴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남긴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이 있는 저작은 1945년에 나온 [전례의 형태](The Shape of the Liturgy)이다. 딕스는 크랜머 대주교의 전례 개혁, 특히 1552년 기도서에 대한 신랄한 비판자이기도 했다. 그는 이 기도서 이면에는 즈빙글리의 신학이 자리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성찬례의 식사 행위가 유월절 만찬에 기반하지 않고, 오히려 유대인들이 친교 식사인 ‘차부라’(chabûrah)에 근거한다고 주장했다. 딕스는 또한 말씀의 전례가 차지하는 시간의 길이가 성찬의 전례에 결합되었다고 주장했다.</p> <p>그의 저작들은 단순히 암기할 만한 문장들뿐만 아니라, 여러 이론들로도 채워져 있다. 전례력의 발전에 대한 그의 이론이 그 예인데, 이에 대한 응답으로 많은 책들과 논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p> <p>딕스는 거의 혼자서 “아나포라”(anaphora)라는 초기 성찬 기도를 끝까지 연구해 냈다. 그는 성찬례의 핵심적인 질문은 기도의 본문과는 관계가 없으며, 오히려 보편적인 형태, 즉 ‘하나인 네가지 행동’(사중 행동, four-action) 형태와 관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 네가지 행동은 초기 교회가 공관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마지막 만찬에 드러나는 일곱가지 행동에서 뽑아 적용시킨 것이다. 성찬례는 근본적으로 (빵과 잔을) 들어(봉헌), 축복하고 (성찬 기도), 떼어(쪼갬), 주는 것(나눔-영성체)이다. 이 형태를 재조정하거나 (1662년 기도서와 같이), 혹은 거기서 어느 부분을 생략하는 전통들은 교회의 보편적 전통을 배신하는 것이다. 이 주장의 개별적인 부분들에 대해서 의문이 있지만(봉헌의 본질과 중심성과 같은), 딕스의 사중 행동 형태가 이후의 성찬의 전례에 대한 모든 전례 개혁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에는 동의할 것이다. 예를 들어, 호주 성공회 기도서(A Prayer Book for Australia, 1995)의 성찬례 1 양식과 영국 성공회 [공동 예배] (Common Worship, 2000)의 2 양식을 보면 그 형태는 분명하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교황 바오로 6세의 미사에서도 이러한 사중 행동 형태를 찾아 볼 수 있는데, 이 역시 딕스가 마련한 공감에 그 기원을 둔다고 할 수 있겠다(부캐넌, “변화” pp.233-234를 보라.)</p> <p>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 헌장</p> <p>천주교에서는 지난 수백년 동안의 학문적 연구, 적어도 반세기 동안에 진행된 사목 전례와 전례 신학의 참여적인 면에 대한 성찰이 그 절정을 맞이한 것은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였다. 이 글에서는 굳이 자세히 다루지는 않겠지만, 공의회가 보여준 교회 일치에 대한 열린 태도때문에 다른 교회 전통들은 공의회의 결과물들을 좀더 쉽게 향유할 수 있었다. 사실 공의회는 교회 일치에 관한 교령을 내놓았고, 다른 교단 전통에서 온 많은 에큐메니칼 참관인들이 공의회 내 여러 회의들에 초대를 받았으며, 교회 일치 성성이 바티칸에 설치되어, 이런 협력 관계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매시 세퍼드 같은 선구자들도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 것이다.</p> <p>전례 헌장의 많은 내용들은 종교개혁이 마련해 준 통찰과 그 실천들을 인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개신교와 성공회에서 흘러나온 영향이 천주교에 미친 것이며, 그 반대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자국어 도입과 사용(36항), 성서를 전례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보고, 성서의 많은 부분을 사용하도록 한 것(24항, 51항), 주님의 날인 일요일의 중심성을 강조한 것(106항), 설교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35항, 53항) 등이다. 자국어의 도입은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여러 다른 교회 전통들 안에서 서로 전례 이론으로 영향을 미치고, 협력하여 실천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분명히 말하지만, 전례 헌장 자체는 전례 전체가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리라는 생각까지는 갖지 않았다 (36:1항을 보라). 그러나 공의회가 끝난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명확해진 것은, 모든 전례 양식들을 번역하는 것만이 전례 헌장의 제안을 실행하는 옳은 방법이라는 것이었다. </p> <p>전레 헌장은 전례를 신자들의 공동 행위로 이해하는 사람들을 지지하는 역할을 했다. 헌장의 서문은 비오 10세의 전례에 대한 표현(1905)을 반영하고 있다. 전례는 그리스도교 정신의 필수적인 원천이며, 이는 모든 세례받은 그리스도의 참여에 기초할 때 더욱 강력해진다는 것이었다. “교회는 모든 신자가 전례 거행에 의식적이고 적극적이고 완전한 참여를 하도록 인도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한 참여는 전례 자체의 본질에서 요구되는 것이다. ‘선택된 민족, 왕의 사제, 거룩한 겨레, 하느님의 소유가 된 백성’인 그리스도인은 세례의 힘으로 그 참여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전례 헌장, 14항, 참조 30항). 전례 헌장은 또한 신학적 논쟁이 되었던 오도 카젤의 신비 신학적 접근 방법을 지지했다. 로마 미사의 한 기도를 인용함으로써, 전례는 “우리를 향한 구원 사업이 실제로 현재 일어”나게 하는 것이라고 했던 것이다. 이 기도는 카젤이 대(大) 레오 교황의 승천일 설교에서 가져와 자주 인용하던 내용, 즉 “구원자에게 보였던 것이 성사들(sacraments)에 건너 오게 되었다”는 말을 반영하고 있다. 이 신비 신학을 통해서, 성찬례의 기억과 희생과 같이, 교회 전통들 사이에서 난감한 문제로 남아 있는 상황이 진전을 맞게 되었다.</p> <p>전례 헌장에 들어있는 많은 다른 내용들이 이후에도 계속 언급되었다. 그 내용들은 전례 개혁과 쇄신의 일반적 상황에 더불어 현대 성공회 전례서들의 여러 부분에 영향을 끼쳤다. 첫째로, 이 문헌은 전례 예식들의 공적이고 공동체적인 본질을 강조한다. 전례 예식들은 사적인 기능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 속한 것이다. 그러므로 전례 지침(rubrics)에는 사람들의 참여, 즉 종교개혁 이후의 천주교 전례에서 일어난 변화들을 담도록 했다. 둘째로, 전례 헌장에는 토착화에 관한 장이 있다(37-40항). 이는 분명 성공회의 여러 교회에 영향을 끼쳤다. 예를 들어 뉴질랜드와 호주의 경우인데, 이 두 교회는 최근 개정된 기도서에서 전례의 토착화 측면을 깊숙히 통합시켰다. 마지막으로, 전례 헌장은 16세기 종교개혁의 전례 계획을 지지하는 한편, 전례 언어에 대한 변화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이 부분은 아래에 좀더 길게 설명하겠다. 전례 헌장에 있는 다음과 같은 말은, 토마스 크랜머 캔터베리 대주교가 썼을 법한 글이다. “예식은 고귀한 단순성으로 빛나야 하고, 간단 명료하여야 하고, 쓸데없는 반복을 삼가야 하며, 신자들의 이해력에 맞추어 전체적으로 많은 설명이 필요 없게 하여야 한다”(34항).</p> <p>제 2차 바티칸 공의의 이후 천주교의 전례 개혁</p> <p>16세기 말 트렌트 공의회의 교부들이 전례 개혁의 상세한 작업들을 특정 위원회들이 해야 할 일로 남겨 둔 것처럼, 바티칸 2차 공의회 이후에도 역시 실제 전례 개혁 작업들은 바티칸 행정부(the Roman Curia)의 일로 남게 되었다. 천주교의 모든 전례, 즉 성찬례를 비롯하여, 성당 봉헌, 구마(exorcism) 의식에 이르기까지 모두 검토하여 손질을 했다. 이 일을 위해서 바티칸 행정부는 수 많은 역사, 신학, 사목 전문가들의 도움을 요청했다. 이 과정은 전례 헌장 실행 위원회(Consilium ad exsequendam Constitutionem de sacra liturgia)가 관장했다. 이 위원회는 이후 예부 성성이 되었고, 다시 거룩한 전례와 성사 훈육 성성(짧게 ‘전례 성성’)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여기서 특별히 흥미로운 것은 교황 바오로 6세가 천주교 밖의 여러 학자들을 초대하여 이 위원회의 모임에 참여하도록 했다는 사실이다. 영국 성공회 전례 위원회 위원장이었던 로날드 재스퍼(Ronald Jasper), 미국 성공회 개정 기도서를 축조한 주요 인물인 매시 세퍼드(Massey Shepherd)가 성공회 대표자로 참여했다. 그리하여 20세기 말 가장 중요한 성공회 전례 개혁자인 이 두 사람은 천주교의 전례 개혁의 진행 상황을 깊숙히 알게 되었다. 한편 영국 및 웨일즈 천주교 주교회의 전례 위원회도 성공회 대표를 초대하고 있다.</p> <p>적어도 네 개 분야에서 천주교의 전례 개혁이 세계 성공회 여러 교회들의 전례 개혁과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는 점이 확인된다. 즉 주일 성찬례를 위한 성서정과, 성찬 기도, 성인 신자의 그리스도교 입교, 그리고 전례 언어 분야이다. </p> <p>주일 성찬례를 위한 성서정과</p> <p>로마 교회 성서정과 체제는 7세기 혹은 8세기 이후 근본적으로 거의 같은 형태로 유지되었다. 그 체제는 네 개의 주요 전례 절기 - 대림절기, 성탄절기, 사순절기, 부활절기 - 에 기반하며, 공현절 이후와 성령강림절 이후의 주일로 이뤄진다(정확한 주일의 수는 부활주일의 날짜에 따라 정해진다). 구약 성서 본문은 거의 없었다. 주일에는 서신서 본문(복음서 이외의 신약성서에서 뽑은 본문)과 복음 본문이 마련되었다. 16세기 공동 기도서는 로마 전례력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사계재(Ember Days)와 사순절기 전의 칠순절기(Septuagesima), 그리고 특별히 서신서를 포함한 많은 독서 본문을 보태서 완성했다. 전례 헌장이 신자들을 위해 하느님의 말씀을 좀더 ‘풍요롭게 나누도록’ 요구했으므로, 성서정과의 개정은 분명한 일이었다. </p> <p>천주교 전례학자 부그니니(Annibale Bugnini)는 성서정과 개정을 “전례 개혁 전체에서 가장 어려운 작업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작업의 결과는 그리스도 중심 원칙에 따른 3년 주기 정과였다. 복음서를 그 중심으로 삼아서, 당일 복음서 본문에 상응하는 구약성서 구절을 선택했다. 제 2독서는 복음서 이외의 신약성서에 선택했는데, 독립적인 계속 독서(적어도 사순절기 이전과 성령강림절 이후)를 따랐다. 3년 주기는 공관복음서 (가해: 마태오, 나해: 마르코, 다해: 루가)에 근거한 것이었고, 요한 복음서의 본문들은 주요 절기(특별히 사순절기와 부활절기)에 배치했다. 요한 6장은 가장 짧은 마르코 복음서가 배치된 나해에 성령강림절 이후 다섯 주일에 걸쳐서 읽도록 했다. 사도행전은 부활절기 동안 제 1독서로 읽도록 했다. </p> <p>영국 성공회는 이 새로운 로마 정과를 받아들이는데 더뎠다. 1960년 대 말, 영국 성공회는 연합 전례 위원회가 내놓은 제안에 근거하여 2년 주기 성서 정과를 공인했다. 이것이 1980년 [대안 예식서]의 성서정과가 되었다. 1980년대 내내 로마 성서정과를 받아들이자는 주장이 일었다. (주간 매일 성찬례 정과는 이미 [대안 예식서] Alternative Service Book 에 채택되었다.) 결국 북미 지역 초교파 공동 본문 협의회(The Consultation on Common Texts)의 작업이었던 개정 [공동 성서 정과](the Revised Common Lectionary) 채택 제안이 나왔다. 이 성서정과는 천주교의 3년 주기 정과를 그 기본으로 받아들이면서 두 가지 매우 중요한 변화를 주었다. 첫째로, 이 성서정과는 주님의 변모 축일(the Transfiguration)의 복음 본문을 사순절기 직전 주일에 배치했다(천주교 정과에는 사순 2주일에 들어있다.). 둘째, 이 성서정과는 성령강림 후 주일(지금은 연중 주일로 부른다)부터는 구약성서 이야기에 대한 계속 독서를 제공하여, 복음 독서와 독립적으로 읽게 했다. 그래서 교회는 “계속 독서”를 읽을 것인지, 당일 복음과 주제로 연결된 “관련 독서”(구약)를 읽을 것인지 선택하도록 했다.</p> <p>1979년 미국 성공회 공동 기도서는 약간의 수정을 거쳐서 로마 성서정과 형태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이후 미국 성공회는 [공동 성서정과]의 사용을 허용했다. 캐나다의 [대안 예식서](Book of Alternative Services, 1985)와 가장 최근의 호주 성공회 기도서는 공동 성서정과를 따른다.</p> <p>세밀한 부분에서 차이가 있긴 하지만, 세계 성공회의 개정 전례서들은 천주교에서 개정된 성서정과에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주일 성찬례 성서 독서의 급격한 개정은 천주교의 개혁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미첼, ‘전례력’ pp 478-480 참조.)</p> <p>성찬 기도</p> <p>천주교의 전례 쇄신에서 일어난 또 다른 중요한 부분은 성찬 기도에 관한 것이다. 로마 축성 기도(canon)는 약 1500여년 동안 로마 미사의 유일한 성찬 기도였다. 16세기 종교개혁가들은 이 기도를 폐기했다. 그 안에 있는 희생제의적 용어와 의미 때문이었다. 한편 루터교나 성공회는 그 서문과 ‘거룩하시다’(sactus)를 보존했다. 1549년 공동 기도서가 로마 축성 기도와 비슷한 성찬 기도를 갖고 있었으나 오래 살아남지 못했다. 한쪽에서는 개혁파 부처(Bucer)가, 다른 한편에서는 보수파 가디너(Gardiner)가 반대하고 나섰고, 1552년 기도서에서 대폭 수정되었기 때문이다 (진스, “크랜머” 참조). 역사적 연구 성과에 따르면, 동방 교회들이나, 서방의 비-로마 교회들(갈리칸과 모자라빅)은 하나 이상의 성찬 기도를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로마 축성 기도 역시 한스 큉(Hans Küng)과 같은 신학자들의 비판 대상이 되었다. 큉은 이 기도가 현대 기도로는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전례 헌장 실행 위원회는 로마 축성 기도 개혁을 위한 수 많은 제안들을을 검토했으나, 결국 교황 바오로 6세는 약간의 편집을 거쳐서 이를 유지하고, 새로운 성찬 기도를 몇 개 더 만들어 사용하자고 결론을 내렸다. 이 때문에 로마 예식에는 세 개의 새로운 성찬 기도가 만들어졌다. 이 가운데 두 개는 고대 성찬 기도를 근간으로 했다([사도 전승]과 알렉산드리아의 성 바실 아나포라). 이후에도 아홉 개의 성찬 기도가 더 만들어졌다. 두 개는 화해와 일치를 위해, 세 개는 어린이들과 함께 하는 미사를 위해, 그리고 나머지는 특별한 의향을 위해 새로 마련되었다. </p> <p>성찬 기도의 수를 늘린 천주교의 결정은 근대 전례 역사에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이러한 변화는 딕스(Dix)의 통찰을 인정한 것이었다. 즉 오직 ‘하나’의 (혹은 원래의) 성찬 기도를 찾는 것은 쓸모없는 일이며, 전례의 형태와 구조가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다른 교회들도 곧장 이런 천주교의 변화를 따른다. 1979년 미국 성공회 기도서에는 다섯 개의 성찬 기도가 있다. 두 개는 고대 성찬 기도를 근간으로 하는데, 천주교의 것보다 훨씬 원형에 가깝다. 성찬기도 B는 [사도 전승]의 아나포라를 개작한 것이며 (“거룩하시다”를 넣어서), 성찬기도 D는 알렉산드리 바질 전례에 좀더 충실한 것이다(여기에는 한번의 성령 청원 기도 epiclesis 가 있으며, 성찬 제정사 뒤에 나온다). 1995년 호주 성공회 기도서 역시 다섯 개의 성찬 기도가 있는데, 1662년 기도서의 성찬 기도도 포함하고 있다. 영국의 [공동 예배]는 총 12개의 기도가 있다. 놀라운 사실은 제 1 형식 현대 언어 기도 가운데 하나(성찬기도 G)가 천주교 국제 전례 영어 위원회(Roman Catholic International Commission on English in Liturgy: ICEL)가 제안했다가 바티칸이 거절한 바 있는 기도와 거의 비슷하다는 점이다(416쪽 참조). 현대 성공회 기도서들은 또 성찬 기도 안에 신자들이 참여하는 신앙의 신비 선포 부분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리스도는 죽으셨고, 그리스도는 부활하셨고, 그리스도는 다시 오십니다”), 이는 천주교 전례 개혁의 성과였다. 게다가, 굳이 성찬 기도의 한 부분은 아니지만, 봉헌물을 두고 축복 기도를 하는 내용도 선택적으로나마 [공동 예배]에 채택되어 있다. </p> <p>이렇게 비슷한 점들이 많지만, 여전히 다른 점들이 존재한다. 성찬 제정사 이후의 봉헌 기도의 형식과 말에 이견이 존재한다. 미국과 캐나다의 기도서들은 빵과 잔, 혹은 봉헌물의 봉헌이라는 용어와 의미를 채택하지만, 영국과 호주의 기도서들은 다음과 같은 에두른 표현을 쓴다. “이 빵과 잔으로 세상의 죄를 위해 마련하신 주님의 단 한번 완전하고 충분한 희생 제사를 거행하나이다”(호주 기도서).</p> <p>성인 신자의 그리스도교 입교</p> <p>의심할 여지 없이, 공의회 이후의 개혁이 이룬 주요 성과 가운데 하나는 [성인 신자 입교 예식](Rite of Christian Initiation of Adult, 1972)이다. 전례 헌장이 명한 대로, “여러 단계로 나뉘어 있는 어른들의 세례 준비기를 복구시켜, 지역 직권자의 판단에 따라 사용하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64항, 참조 66항). 원래는 선교 지역 국가에서 사용하려는 목적이었으나, 금새 여러 곳에서, 특별히 미국에서 대중화되었다. 세례를 위한 새신자 교육은 잘 구성된 여러 예식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몇몇 동안에 걸쳐 지속될 교육 과정과 더불어 그 절정에 이르러 매년 부활 밤 전례에서 세례와 견진례과 첫 성찬례를 함께 드리는 것으로 기획되어 있다. 현대 성공회 전례 개혁은 부활 밤 전례에서 세례 서약 갱신과 더불어, 세례(그리고 견진례)와 성찬례를 거행하도록 하고 있다 (메이어스, “입교” 참조). 이렇게 확장된 성인 새신자의 입교 과정은 교부학의 부흥, 특별히 [사도 전승]의 발견과 깊은 관련이 있다. </p> <p>미국 성공회 안에서 이러한 새신자 세례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대체로 [전례와 선교를 위한 교회 연합]의 노력때문이었다. 미국 성공회 [사목 예식서](the Book of Occasional Services)에 있는 “거룩한 세례를 위한 성인 신자의 준비” 부분에는 그 영향이 분명히 드러난다. 영국 성공회의 [공동 예배]도 이제 새신자 세례 교육을 위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p> <p>전례 언어</p> <p>바티칸 2차 공의회의 전례 헌장이 천주교 전례에서 자국어 사용을 승인한 이후, 언어는 종교개혁 이후의 개신교 뿐만 아니라 모든 서방 교회들에게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다. 공의회 두 번째 일정이 진행되던 1963년에 국제 전례 영어 위원회(ICEL)가 구성되었다. 처음에는 10개국 천주교 주교 회의(호주, 캐나다, 영국-웨일즈, 인도, 아일랜드, 뉴질랜드, 파키스탄, 스코틀랜드, 남아프리카, 미국)가 만들었다가, 1967년에 필리핀이 참여했다. ICEL은 천주교 뿐만 아니라, 전체 영어권 그리스도교계에서 전례의 개혁과 쇄신에 큰 힘을 발휘했다. </p> <p>얼마 지나지 않아 영어권 초교파 모임들이 공동 전례 본문 작업을 시작했다. 이 가운데는 북미 공동 본문 협의회(the Consultation on Common Texts: CCT, 1960년대 설립)과 브리티시 전례 연합 모임(the British Joint Liturgical Group: JLG, 1963년 설립, 이후 천주교 가입)이 있었다. JLG와 CCT는 1968년에 국제 영어 전례 본문 협의회(the International Consultation on English Texts: ICET)를 구성했다. 이 모임은 1970년 [함께 나누는 기도 모음](Prayers We Have in Common)을 출간했고, 1975년에 개정판을 냈으며, 1988년의 제 3판은 [함께 드리는 기도](Praying Together)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여기에 소개된 번역들, 예를 들어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그리고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도다” 등은 아직까지 많은 영어권 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다, ICET를 이어서 1985년에 설립된 것이 전례 영어 위원회(the English Language Liturgical Consultation: ELLC)이다. ELLC는 근대 전례 운동에서 초교파적인 협력의 성과를 명백히 드러내는 일례이다. 여기에 참여하는 기구들은 아일랜드 전례학자 연합, 호주 전례 협의회, CCT, ICEL, JLG, 그리고 뉴질랜드 연합 전례 모임 등이다. ICEL만이 천주교 모임이고, 나머지는 모두 초교파 모임이다.</p> <p>경건하고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이해가 쉬운 현대 언어를 찾으려는 노력은 모든 교회들에게 두려운 작업이기도 하다. 이는 현대 성공회 전례의 개정 작업에 대한 반대를 불러일으키는 주요 요인이기도 하다 (부캐넌, “보존” pp. 264-267 참조). 그러나 초교파적인 공감 속에서 발전되는 희망의 징조들이 있다. 2003년 영국에서는 3년 주기 성서정과에 상응하여 성서 본문에 기초한 주제 기도(collects) 모음집이 출간되었다. [여는 기도](Opening Prayers)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이 주제 기도 모음집은 원래 ICEL이 시도했다가, 바티칸이 거절한 바 있었다. 그러나 결국에 영어권 그리스도교계가 받아들였다. 현대 기술력이 발전된 상황 속에서 이와 비슷한 초교파적인 노력이 뒤이어 나타나지 않는다면 오히려 놀라운 일이 될 것이다. </p> <p>전례 운동, 교회 일치, 그리고 미래</p> <p>이 시점에서 분명한 것은, 제임스 화이트가 1980년 교회 일치 운동이 전례에 대한 연구와 교육, 그리고 이에 대한 증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한 말은 옳았다는 점이다. 전례에서 무엇이 중요한가, 특별히 예배에 대한 의식적이고 적극적인 참여의 가치에 대한 초교파적인 공감은 지난 세기를 넘어서 여전히 발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언급한 화이트의 글은 원래, 모든 교회 안에서 전례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고, 서로 다른 교단의 학자들의 연구를 함께 나누기 위해 1975년에 구성된 [북미 전례학회](the North American Academy of Liturgy) 모임에서 발표된 것이다. 결국 이 조직은 종교 간 대화를 촉진하게 되어, 유대교 학자들도 대화에 참여하게 되었다. </p> <p>세계 교회 협의회(the World Council of Churches)의 신앙과 직제 위원회(the Faith and Order Commission)는 [세례, 성찬례, 사목직](Baptism, Eucharist and Ministry, Lima, 1982)를 펴내면서 전례에 대한 초교파적인 대화를 격려했다. 1983년에 시작된 세계 성공회 전례 협의회(the International Anglican Liturgical Consultation)은 2년 마다 열려서 세계 성공회 내의 관심 주제들을 다룬다. 이 모임은 정기적으로 다른 교파들과도 협력하고 그 성과를 나누는데, 대체로 1960년대 중반에 설립된 또다른 초교파적인 국제 조직인 [전례학회](Societas Liturgica)와 일정을 맞춰 회의를 갖는다. 이 모임은 2년 마다 모이면서 교회 전통들 안에서 상호 관심 주제를 논의한다. 최근 모임에서는 전례 신학, 전례 음악, 삶의 주기와 전례, 그리고 성인과 천사들에 대한 전례적 공경 등에 대해 다뤘다. </p> <p>말할 필요도 없이, 지난 100년 동안 전례 운동과 초교파적인 연합 활동은 전례와 성사에 관련하여 교회들 사이에서 완전한 공감을 만들어 내지는 못했다. 영국 성공회 안에서 벌어졌던 희생과 봉헌이라는 말을 두고 벌어진 논쟁만 봐도 그렇다. 게다가 위에 언급한 리마 문서에 대해서는 이에 대한 공식적인 응답 만도 책 여섯 권 분량이었다. 한편, 근대 전례 운동은 교회의 삶 속에서 전례를 진작시키려는 사람들 사이에 중요한 공감대를 만들어 냈다. 이에 관해서는 존 펜윅(John Fenwick)과 브라이언 스핑스(Bryan Spinks)가 20세기 전례 운동의 역사를 소개하면서 열거한 여덟 가지 영역에 잘 요약되어 있다(Fenwik and Spinks, 5-9). 그것을 여기에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공동체(사회와 교회 모두)를 위한 노력, 적극적 참여, 초대 교회를 모본으로 삼아 회복하는 일, 성서에 대한 재평가, 성찬례의 재발견, 자국어에 대한 강조, 다른 그리스도교 전통에 대한 재발견, 사회적 참여와 선포에 대한 강조. 이러한 요소들은 지난 20세기 초부터 시작된 성공회 기도서 개정의 특징이 되었으며, 미래에도 계속될 약속이기도 하다. </p> <p>09X08-NHJ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