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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태그: 역사 http://liturgy.skhcafe.org/ A Korean Anglican Theology & Liturgy Forum en Mon, 22 Jan 2018 16:11:55 +0000 Cranmerian on "1917년 한국선교보고서 번역출판 "한국인의 신앙과 풍속"" 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707#post-1310 화, 27 12월 2011 09:33:23 +0000 Cranmerian 1310@http://liturgy.skhcafe.org/ <p>저도 이 포럼을 통해서 anglicanhistory.org에 있는 한국관련 글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곳의 글들을 읽어보면서 관련도서를 찾던중 &lt;대한성공회 백년사&gt;가 출판된 것을 알았고, 아마존에서 조마가 주교님이 쓰신 &lt;The Church in Corea&gt;의 복사본을 구입하여 읽어보면서, 초기 선교활동에 대해서 잘 정리되었다고 생각되 번역을 시도하였습니다. 번역을 하면서 앞으로 출판을 예상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저는 미국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직접 제기하거나 추진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언젠가 그런 날이 올 때를 대비해서라도 초역 정도를 하고, 이를 이 귀중한 포럼의 공간에 올려서 관심을 갖고 계신 분들을 찾고 있었습니다.</p> <p>앞에 소개하신 책이 출판된 것도 ‘한국번역문학원’의 재정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우리 성공회의 상황에서도 재정적인 지원이 없다면 출판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다고 마냥 교구나 관구에서 이런 일을 추진하기를 기다리는 것도 한이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제 생각입니다.</p> <p>새로운 한해를 맞이하면서, 바램이 있다면, 이곳 포럼에 자주 들르시는 분들이 중심이 되어 이러한 작업을 추진하는 모임을 만들면 어떨까요? 저도 부족한 번역이지만 그런 부분에 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p> <p>사명감과 열정을 가진 분들의 응답을 기다리겠습니다. </p> ochlos on "1917년 한국선교보고서 번역출판 "한국인의 신앙과 풍속"" 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707#post-1308 화, 20 12월 2011 14:40:50 +0000 ochlos 1308@http://liturgy.skhcafe.org/ <p>아.... 크랜머리안님께서 번역하셔서 포럼에 게재했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우연히 인터넷서점에서 검색을 하다가 '성공회 초기선교'에 대한 사진이 있는 책인 줄 알고 구입했었습니다. 막상 책이 와서 보니 한국선교보고서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이더군요. 크랜머리안님께서 어렵게 번역작업을 하셨을텐데, 누군가 소리소문 없이 책을 출판해버린 것이 되었네요. 서운하실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p> <p>책 제목이 "영국성공회 선교사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신앙과 풍속"이라고 된 것은 아마도 '한국문학번역원'이 16세기-20세기 중엽까지의 서양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이라는 주제로 총서를 번역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떻게 성공회선교사의 책을 번역하게 되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발간사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p> <p>"이 총서를 통해 소개되는 도서는 명지대-LG연암문고가 수집한 만여 점의 고서 및 문서, 사진 등에서 엄선되었습니다. 한국문학번역원은 2005년 전문가들로 도서선정위원회를 구성하고 많은 논의를 거쳐 상호 이해에 기여할 서양 고서들을 선별하였으며..."</p> <p>'외부의 시선을 포용함으로써 상호 이해와 소통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도록'하겠다는 방향이 이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왜 성공회 쪽에서 번역자를 찾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공회 쪽에서 번역을 하면 아무래도 서구인의 시각을 좀 부드럽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것인지도 모르죠. 사견입니다. 옮긴이는 주석들과 '옮긴이의 말'을 통해 성공회 신자와 교회에 세심한 배려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p> <p>크랜머리안님, 한국성공회에서 자신들의 초기선교사역사 연구를 위해 번역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동감합니다. 부디 재능 있는 분들께서 그 작업을 해 주셨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입니다. 한국성공회 초기교회사 참고자료가 이재정 신부님의 "대한성공회 백년사"가 한글자료로서는 거의 유일하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저는 번역작업에 직접 참여하기에는 불가능하지만, 책을 번역하고 출판하려 한다면, 필요한 후원인을 모집하는데 미약하게나마 참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p> Cranmerian on "1917년 한국선교보고서 번역출판 "한국인의 신앙과 풍속"" 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707#post-1307 화, 20 12월 2011 08:41:41 +0000 Cranmerian 1307@http://liturgy.skhcafe.org/ <p>이 책에 대한 번역은 지난 5월부터 9월까지 포럼에 게재하였는데 다른 출판사에서 번역,출판할 줄은 몰랐네요. 저는 anglicanhistory.org/asia/kr의 문서를 읽었기 때문에 각 장의 저자를 확인할 수 없었고, 다만 각 분야를 직접 담당하였던 선교사들이 집필하였을 것이라고만 추측하고 있었습니다. </p> <p>이 책과 자매책이라고 말씀하신 트폴로프 주교의 &lt;The Church in Corea&gt;은 이보다 앞서 지난해(2010년) 9월말부터 올해 4월까지 나누에 포럼에 게재하였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Corea에 대한 저자의 소개를 담은 제1장은 선교의 역사와는 직접 관련이 없어서 번역은 했습니다만 여기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영인본(팩스밀리 복사본?)으로 판매되는 책을 번역하였습니다. 오히려 이 책의 1장이 ‘선교사가 본 1900년대초의 한국’이라는 표현에 잘 맞을 것 같습니다. </p> <p>출판된 이 책은 ‘선교사들의 선교활동 이야기’라는 제목이 더 어울릴 것 같고, 한국성공회의 초기 선교역사를 보여주는 귀중한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책과 트롤로프 주교의 책 이외에, 코프주교의 전기-이 책의 서문은 번역하여 포럼에 게재되어 있습니다-와 트롤로프 주교의 전기(주교의 누이가 쓴 책)가 있습니다. 코프주교의 전기는 앞의 웹사이트에 있지만, 트롤로프 주교의 전기는 없습니다. 저도 지금 찾아보고 있습니다. 책은 Constance Trollope, &lt;Mark Napier Trollope&gt;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p> <p>저는 한국성공회의 초기교회사 분야에 관심있는 회원들과 함께 공부하는 공동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p> ochlos on "1917년 한국선교보고서 번역출판 "한국인의 신앙과 풍속"" 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707#post-1306 금, 16 12월 2011 14:12:22 +0000 ochlos 1306@http://liturgy.skhcafe.org/ <p><a><img src="http://bimage.interpark.com/goods_image/2/4/6/9/208272469s.jpg" /></a></p> <p>살림출판사에서 "그들이 본 우리"라는 주제로 서양인이 그들의 나라에 소개한 한국관련 서적을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19번째 책이 "영국성공회 선교사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신앙과 풍속, 2011, 세실 허지스 외, 안교성 옮김, The English Mission in Corea : Its Faith and Practice, 1917, Bishop Corfe" 입니다.</p> <p>선교초기 순회선교를 하던 때의 모습과 미가엘신학교의 일상, 여성선교, 일본인선교, 의료선교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습니다. 세실 허지스 선교사가 1,2장을 기록하였는데 다소 서구우월주의적 입장에서 관망하고 있다는 점이 조금 아쉽지만 당시 이런 시각이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인선교에 대해서 기록한 부분을 보면 선교사들이 한국인의 대일감정이나 일본의 식민지정책에 대해서 별 고려가 없다는 점 역시 아쉽습니다. 그러나 여성선교와 의료선교에 관해 기술한 부분에서는 그들의 열정과 관심을 엿볼 수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p> <p>옮긴 분이 장신대 교수님인데, 아마도 선교초기 기록들 중에서 비교적 소개되지 않은 책들이 성공회 관련한 것이라는 점을 알고 발굴 번역 출판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성공회로서는 아주 귀중한 자료가 될텐데 이런 책이 번역되었다는 것도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서 글을 적었습니다.</p> <p>책을 읽어보면, 코프 주교님이 머리글을 쓰셨는데, 머리글에 보면 트롤로프 주교님이 저술한 "한국의 교회"라는 논문이 이 책과 자매편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 연구 논문이 번역되었는지 궁금합니다.</p> <p>책 내용 중 재미있는 부분을 소개합니다.</p> <p>'언젠가 무당이 자기 뜻과는 달리 교회에 호의를 베푼 적도 있다. 어떤 가족이 세례명이 요한인 부친이 죽자 배교를 하고 말았다. 그런데 가족 중에 한 명이 병들자 멀리서 용한 무당을 불렀다. 무당이 황홀 상태에 빠져 말하길 "나는 요한의 영인데, 너희들이 신앙을 버리고 나를 위하여 기도를 도무지 하지 않기 때문에 편히 쉴 수가 없구나. 즉시 회개하라"고 했다. 그래서 지체 없이 귀신을 섬기는 제구들과 위패를 내던지고 묻거나 태웠고, 아내는 참회자로 교회에 돌아오고 아들들은 다시 세례준비자(망세자)가 되었다.(p.37-38)</p> <p><a><img src="http://bimage.interpark.com/goods_image/2/4/6/9/208272469s.jpg" /></a> </p> viamedia on "전례 여행 7 - 종교개혁의 빛과 그늘" 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656#post-1172 토, 21 5월 2011 09:04:27 +0000 viamedia 1172@http://liturgy.skhcafe.org/ <p>주낙현 신부와 함께 하는 전례 여행 </p> <p>7. 종교개혁의 빛과 그늘 </p> <p>“목욕물을 버리려다 그 안의 아기까지 버려서는 안 된다.” 이 속담은 16세기 서방 교회 종교개혁의 횃불을 든 마르틴 루터가 사용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교회의 오랜 전통을 무시하고 급진적인 개혁을 주장하던 이들을 비판하려고 쓴 말이다. 그런데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둔 지금, 어떤 이들은 이 속담을 루터와 종교개혁 자체를 비웃는 말로 사용하기도 한다. 종교개혁이라는 사건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빛과 그늘을 남겼을까?</p> <p>12세기 이후 여러 신앙 쇄신 운동은 16세기에 이르러 극적인 전환을 맞았다. 종교개혁은 이 과정에서, 하나이던 서방 교회가 천주교와 여러 개신교로 분열된 사건이다. 천주교에서 개신교가 갈라져 나왔다고들 말한다. 정확한 말이 아니다. 공식적으로 하나였던 서방 교회가 천주교와 다른 여러 교회로 분열된 것이다. 이 분열을 치르면서 교회는 자기 개혁을 단행했다. 개신교의 종교개혁은 신앙의 본질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이끌었다. 천주교의 대응 개혁은 허물어진 기존 교회의 권위와 교리 체제를 정비했다. 이렇게 나뉘어 따로 개혁한 교회들은 이후에 다양한 신학과 지역과 세속 권력이 얽히면서 지금 같은 여러 교단들로 발전했다.</p> <p>종교개혁의 빛은 중세 교회의 어둠과 비교된다. 한마디로 중세 서방 교회는 힘을 멋대로 부리는 권력이었다. 권력은 이권과 얽혀 늘 부패를 낳았다. 이 교회 권력은 신자들의 신앙과 일상생활을 잘 돌보지 않았다. 오히려 획일적으로 통제했다. 학교의 신학은 세련된 성과를 내기도 했지만 현란한 자기만족에 빠지기도 했다. 그동안 신자들은 교회 조직과 신학을 멀리했다. 대신에 자신의 처지를 위안하는 신앙심을 찾아다녔다. 때로 뛰어난 영성의 대가가 등장하여 이들을 돕기도 했지만, 교회의 가르침과 학교의 신학을 멋대로 조립한 기이한 신심 행위에 빠져드는 일이 잦았다.</p> <p>개신교 종교개혁은 신앙의 근본에 대한 고민에서 빛났다. 그것은 ‘성서’에 근거하여 ‘신앙’과 ‘은총’으로 얻는 구원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교회의 전통 이전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최우선이다. 인간은 선한 행동 이전에 신앙으로 구원받는다. 그 구원은 하느님의 은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p> <p>이런 주장은 새롭지 않다. 초대 교부들의 성서 읽기와 그 신학에 기대어 개혁자들이 신앙의 근본을 재발견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제시한 탓이다. 개혁자들은 ‘말씀’을 강조하며, 그에 따라 ‘성사’를 설명하고 ‘영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에 중점을 뒀다. 이때 ‘영적’이라는 말은 하느님이 주시는 구원의 깊이를 충분히 이해하고 성사 안에서 체험한다는 뜻이다. 자국어 성서 번역과 간소한 자국어 예배 개혁 등을 통해서 이런 이해와 체험을 도우려 했다.</p> <p>한편, 천주교의 대응 개혁은 보기에 따라 개혁이라는 말이 무색했다. 로마 교회의 권위자들은 교리와 교권 체제가 분명하지 않아서 혼란이 일어났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중세 스콜라 신학의 교리를 이해하기 쉽도록 대중적인 교리 체계를 정비하여 강화했다. 교회의 위계와 치리 방식도 더욱 관료화했다. 이 개혁으로 천주교는 내부 결속을 다질 수 있었다.</p> <p>그러나 이 두 개혁에도 그늘이 있었다. 당시에 발전된 지성적 사고와 논리로 신앙을 지나치게 설명하려다 보니, 그동안 교회 안팎에서 신자들이 삶 속에서 스스로 경험하고 누리던 신앙 양식과 전례 전통을 대체로 무시했다. 신앙과 전통은 복잡한 삶의 과정이 쌓여 만들어진다. 삶의 다양한 결들이 겹쳐 있다. 얼핏 비천하고 미신적으로 보이는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고는 이런 결들을 느끼기 어렵다. </p> <p>그런 탓이었을까? 개신교 개혁자들의 설명은 얼마 후 딱딱한 교리가 되었다. 말씀을 성서로 동일시하고, 성사는 형식으로 치부하며, ‘영적’이라는 말의 뜻도 좁아졌다. 천주교는 단순하게 정리한 교리로 교회와 전례를 더욱 통제했다. 전례 행동은 분열된 교회 사이의 교리 논쟁 소재로 전락했다. 분열된 교회들이 교리로 경쟁하면 서로 정죄하는 일을 피할 수 없다. 교회사학자 디어메드 맥컬로흐는 이렇게 지적한다. </p> <p>“종교개혁은 간단히 말해서 두 세기에 걸친 전쟁이라 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 16세기에는 평화기가 10년이 채 안 됐고, 17세기 중반까지 고작 2-3년이었다. 종교개혁은 이미 자라나던 국가라는 권력 기계를 각각 개신교와 천주교의 옷을 입혀 그 성장을 촉진했다. 그 결과 개신교와 천주교는 이어진 전쟁 속에서 엄청난 피를 뿌렸고,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다.”</p> <p>종교개혁의 훌륭한 성과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시각도 필요하다는 뜻이다. 목욕물과 아기를 함께 버리지 않으려면 더 신중해야 한다. 성공회의 개혁은 대륙의 개혁에 비해 약 20년 늦었다. 이 시차는 성공회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p> <p>(성공회 신문, 2011년 5월 21일) </p> viamedia on "전례 여행 6 - 전례와 역사: 전통과 정통 사이에서" 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649#post-1165 금, 06 5월 2011 15:34:43 +0000 viamedia 1165@http://liturgy.skhcafe.org/ <p>주낙현 신부와 함께 하는 전례 여행</p> <p>6. 전례와 역사: 전통과 정통 사이에서</p> <p>첫 역사의 경험과 방향이 변치 않고 계속 이어지기가 쉽지 않다. 사람살이는 늘 이견과 갈등의 연속인 탓이다. 이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종종 힘끼리 대결하고 승패가 엇갈린다. 승자의 원칙이 지배하면 다른 의견과 고민은 쉽사리 묻힌다. 그러다가 처음에 품었던 꿈과 실천은 멀리 사라지는 일이 잦다. 특히 권력과 이권이 관여하면 초심은 왜곡된다. 이런 역사 흐름의 대강을 살피면 오늘의 문제를 바라보는 일에 도움이 된다.</p> <p>그리스도교 역사 첫 5세기 동안은 저마다 자신이 진리를 움켜쥐고 있다는 주장이 부딪히면서 이단 논쟁 등이 있었다. 교회는 혼란 속에서 분열되는 사람들을 추스르려고 좀 더 분명한 가르침을 정해야 했다. 공식적인 성서를 정하고 교리를 정비했다. 그리고 여기에 ‘정통’(orthodox)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어떤 면에서는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p> <p>교회의 삶과 생명인 전례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그런데 이런 흐름이 계속되면서 ‘기도의 법은 신앙의 법’이라는 교회의 ‘전통’(tradition)도 위기를 맞았다. 기도와 전례를 통한 신앙 형성이라는 길이 약해지고, 정통 교리가 신앙생활을 결정짓는 힘이 된 것이다. 5세기 이후에 일어난 변화이다.</p> <p>역설적이게도, 이런 일은 ‘일치’라는 이름 아래서 진행되었다. 일치는 제자들에게 하나가 되리라 당부하신 예수님 고별사의 핵심 주제였다(요한 17장). 그러나 진정한 일치의 근본인 사랑이 희미해지고 조직과 특권을 위한 일치가 앞서면서 그 본뜻에서 멀어졌다. 급기야 일치를 빌미삼아 통제가 자리 잡았다. 성서마저도 그 정통을 옹호하는 일에 이용되곤 했다. 주장을 먼저 세워놓고 성서의 구절을 선택하여 그 주장의 증거 구절(proof-text)로 삼았다. 이런 과정에서 전례는 그 본래 넓은 뜻을 잃고 교회 조직의 언어와 행동을 획일화하는 도구로 전락하기 일쑤였다. 이후 교회의 풍요롭고 다양한 ‘전통’은 7세기를 거쳐 12세기에 이르는 동안 획일적인 ‘정통’의 힘 때문에 협소한 ‘관습’으로 전락했다. </p> <p>정통을 지킨다는 명분은 교회에 더 나쁜 영향을 미쳤다. 교회가 세속 권력과 함께 가기로 다짐한 시기와 맞물린다. 정통 논쟁과 연결된 교회 정치권력의 대결 때문에 그리스도교는 서방교회와 동방교회로 크게 분열되었다(1054년). </p> <p>서방 교회는 서유럽을 중심으로 정착했다. 종교개혁 이후로 천주교, 성공회, 기타 개신교로 다시 분열되었지만 모두 서방교회 유산을 나누고 있다. 서방 교회는 교리화된 전례를 통해서 강력한 교회의 통일성을 추구했다. 출생과 함께 자동으로 그리스도인이 되고 신앙고백과 그 실천을 잃어버린 교회에서, 신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없어진 전례는 이제 구경거리가 되었다. ‘미사를 본다’는 말도 여기서 나왔다. </p> <p>한편, 동방 교회는 훨씬 복잡하게 당시 소아시아와 동유럽 등지로 퍼져 나갔다. 동방교회는 정착한 지역에 따라 전례가 다양하게 발전했지만, 그 역시 정통 교리에 눌려서 점차 변하지도 않고 변할 수도 없는 과거의 유물로 화석화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다만, 그 화석이 다양하고 풍요로워서 전례 역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되었고, 근대에 이르러서는 전례 개혁의 중요한 자료가 되기는 했다. </p> <p>공동체의 다양한 전례 경험과 공동체 신앙을 상실한 이런 획일화에는 당연히 저항이 일어났다. 12세기에는 초대 교회 전통을 회복하려는 여러 신앙 운동들이 솟아났다. 그러나 이미 굳어져서 권력의 도구가 된 전례가 많았던 탓인지, 대체로 전례를 배척하려는 운동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신앙 회복 운동은 개인적 영성주의라는 특성에 쏠렸다. 사적인 미사, 개인 기도, 성모 신심, 성인 기도 등과 같이 개인적인 신심 강화를 위한 사적인 전례 관습에 집중했다. 이런 개인주의적 영성 운동으로는 초대 교회 전통의 공동체적 전례와 교회의 삶을 회복하기 어려웠다. 오히려 정통 교리와 획일적인 체제를 갖춘 교회와 이런 개인주의적 영성은 여러모로 갈등하면서도 서로 용인했다.</p> <p>다양한 전통이 획일적인 정통에 눌려 관습이 되면 그 부작용이 크다. 신앙 공동체의 다양한 경험과 그 경험에 바탕을 둔 신앙고백의 삶은 힘을 잃는다. 이 신앙 공동체의 삶을 구성하고 보존하는 전례도 거추장스러운 관습으로 치부한다. 그나마 남은 전례는 공동체를 잃고 개인의 신심을 강화하는 일에만 봉사한다. 전례는 공식적인 면에서는 획일화를 추구하는 권력에 이용되고, 사적인 면에서는 개인주의적 영성을 위한 피난처로 쓰인다. 이 극단적인 두 흐름과 갈등은 역사에서 중세를 지나 16세기 종교개혁에 이르러 어떤 해결책을 마련해야 했다. 과연 종교개혁은 이 역사의 어둠에 빛을 주었을까?</p> <p>(성공회 신문, 2011년 5월 7일) </p> viamedia on "번역: 성공회 전례서 연대기" 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121#post-336 목, 02 10월 2008 13:09:11 +0000 viamedia 336@http://liturgy.skhcafe.org/ <p>현재 번역 프로젝트로 진행 중인 Oxford Guide to The Book of Common Prayer: A Worldwide Survey 에 있는 [성공회 전례 연대기]를 올립니다. 성공회의 전례서 형성 과정과 현황을 빨리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p> <p>(파일 첨부: 이 게시판 특성 상 글 편집에 문제가 있어서, 원문 번역 편집대로 pdf 파일로 첨부합니다. 내용은 같습니다.) </p> <p>성공회 전례 연대기</p> <p>1535 카버데일 성서 (최초의 영어 번역 성서) 출간</p> <p>1544 영어 총도문(Litany, 연도문) 출간</p> <p>1547 헨리 8세 사망<br /> 에드워드 6세 즉위<br /> 첫번째 ‘강론집’ (Book of Homilies) 출간</p> <p>1548 3월 “성찬 예식” (The Order of Communion)</p> <p>1549 1월 21일 첫번째 “통일령” (Act of Uniformity)<br /> 3월 7일 첫번째 [공동 기도서] (The Book of Common Prayer)</p> <p>1550 첫번째 “영어 성직 서품 예식”<br /> “음악에 맞춘 공동 기도서” - 존 메버크 (John Merbercke)</p> <p>1551 기도서 첫 라틴어 번역</p> <p>1552 두번째 [공동 기도서], 그리고 두번째 “통일령”<br /> 42개 신앙 조항 공포</p> <p>1553 에드워드 6세 사망<br /> 메리 1세 즉위<br /> 1552년 통일령 폐기<br /> 기도서 첫 프랑스어 번역</p> <p>1556 토마스 크랜머 이단죄로 화형</p> <p>1558 메리 1세 사망<br /> 엘리자베스 1세 즉위</p> <p>1559 수장령으로 엘리자베스 1세를 ‘최고 치리자’로 선포<br /> 세번째 [공동 기도서], 그리고 세번째 “통일령”</p> <p>1561 기도서 전례력 개정</p> <p>1563 주교 회의 “39개조 신앙 조항” 발표</p> <p>1567 기도서 첫 웨일즈어 번역</p> <p>1571 두번째 “강론집”<br /> 청교도의 첫 “의회를 향한 권고”</p> <p>1603 엘리자베스 1세 사망<br /> 제임스 1세 즉위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br /> 교회 개혁을 촉구하는 청교도 천인 서명 청원</p> <p>1604 햄튼 궁 회의 (Hampton Court Conference)<br /> 네번째 [공동 기도서]<br /> 영어 성서 개정을 위한 위원회 지명</p> <p>1608 기도서 첫 아일랜드어 번역</p> <p>1611 흠정역 성서 (King James)</p> <p>1625 제임스 1세 사망<br /> 챨스 1세 즉위</p> <p>1633 윌리암 로드 (William Laud), 캔터베리 대주교로 지명</p> <p>1637 스코틀랜드: 공동 기도서 (‘로드’ 전례)</p> <p>1638 기도서에 반대하는 스코틀랜드 국민 서약</p> <p>1642 시민 전쟁 발발</p> <p>1645 기도서 폐지령, 웨스트민스터 (예배) 규례 제정</p> <p>1649 찰스 1세의 재판 및 처형<br /> 영국, 영영방(Commonwealth)가 됨</p> <p>1660 의회, 찰스 2세 소환<br /> 브레다 선언<br /> 군주제 및 주교제 회복</p> <p>1661 4월-6월 기도서 개정을 위한 사보이 회의<br /> 12월20일 주교 회의, 기도서 개정안 수용</p> <p>1662 다섯번 째 [공동 기도서] 및 네번째 통일령</p> <p>1665 아일랜드: 1662년 공동 기도서에 대한 부가 사항 출간</p> <p>1685 찰스 2세 사망<br /> 제임스 2세 즉위</p> <p>1688 11월 4일 오렌지의 윌리암 영국 도착</p> <p>1689 윌리암 2세와 매리 2세가 공동 통치자로 왕에 즉위<br /> 기도서 개정 시도 실패 (‘Liturgy of Comprehension’)<br /> 장로교, 스코틀랜드 국교화<br /> 영국과 스코틀랜드에서 충성 거부자(non-jurors) 등장</p> <p>1764 스코틀랜드: 스코틀랜드 성찬 예식 인정 (“Received Text”)</p> <p>1784 사무엘 시버리, 최초의 미국 주교, 스코틀랜드 애버딘에서 축성</p> <p>1789 미국: 첫번째 미국 공동 기도서</p> <p>1867 첫번째 람베스 회의</p> <p>1871 아일랜드 성공회의 비국교화</p> <p>1872 “예배 간소화 칙령”로 1662년 통일령 수정</p> <p>1874 영국, 공공 예배 규례령</p> <p>1878 아일랜드: 공동 기도서</p> <p>1879 일본: 성공회 도문(聖公會 禱文)</p> <p>1881 스페인: ‘스페인 교회의 거룩한 전례’ 발행<br /> (1662년 기도서의 번역과 모자라빅 전례의 혼합)</p> <p>1892 미국: 공공 기도서 (1789 기도서의 개정)</p> <p>1894 멕시코: ‘예수의 성공회 임시 기도서’</p> <p>1906 영국, 교회 치리를 위한 왕립 위원회 보고서로 기도서 개정 착수</p> <p>1912 스코틀랜드: 공동 기도서</p> <p>1920 영국 성공회의 웨일스 교구 독립 - 웨일즈 성공회 출범</p> <p>1922 캐나다: 공동 기도서 (최종 공인)</p> <p>1926 아일랜드: 공동 기도서 (1878 기도서의 개정)</p> <p>1927 영국: 1662 공동 기도서 개정안, 하원에서 부결</p> <p>1928 영국: 1662 공동 기도서 개정안 두번째로 부결<br /> 미국: 공동 기도서 (1892 기도서의 개정)</p> <p>1929 스코틀랜드: 공동 기도서 (1912 기도서의 개정)<br /> 남아프리카: 대안 성찬례 식문 (최종 공인)</p> <p>1931 성찬례 ‘임시 양식’ 제안</p> <p>1938 멜라네시아: 멜라네시아 교구 사용 공동 기도서</p> <p>1945 그레고리 딕스, [전례의 형성] (The Shape of Liturgy) 출간</p> <p>1950 남인도 교회 전례</p> <p>1954 남아프리카: 공동 기도서 (“남아프리카 기도서”)</p> <p>1957 홍콩: 공도서 (公禱書, 중국어)</p> <p>1959 인도: 공동 기도서 (인도-파키스탄-버마-실론 지역 교회)</p> <p>1960 일본: 공동 기도서 (일본어)</p> <p>1962 캐나다: 공동 기도서 (1922 기도서의 개정)</p> <p>1963 제 2차 비티칸 공의회, 전례 헌장 발표</p> <p>1964 아프리카 전례</p> <p>1965 한국: 공도문 (한국어)<br /> 멜라네시아: 쉬운 영어 공동 기도서 - 이후 확대 개정되어 “멜라네시아 영어 기도서”</p> <p>1966 동아프리카 연합 전례</p> <p>1969 국제 영어 전례 본문 협의회 (ICET) 구성</p> <p>1974 영국 성공회 (예배와 교리) 지침으로 대안 예식서 작성 시작</p> <p>1978 호주: 호주 기도서 (An Australian Prayer Book)</p> <p>1979 미국: 공동 기도서</p> <p>1980 영국: 대안 예식서 (ASB)</p> <p>1984 웨일즈: 공동 기도서</p> <p>1985 캐나다: 대안 예식서(BAS)<br /> 전례 영어 위원회 (ELLC) 구성<br /> 세계 성공회 전례 위원회 (IALC) 첫 회의</p> <p>1989 뉴질랜드: 뉴질랜드 기도서<br /> 남 아프리카: 성공회 기도서</p> <p>1990 일본: 성공회 기도서 (일본어)</p> <p>1991 파푸아 뉴기니: 성공회 기도서 (“백주년 기도서”)</p> <p>1992 개정 공동 성서정과 (RCL)</p> <p>1995 호주: 호주 기도서 (A Prayer Book for Australia)</p> <p>1996 나이지리아: 공동 기도서<br /> 웨스트 인디: 공동 기도서</p> <p>1998 콩고: 공동 기도서 (스와힐리어)</p> <p>1999 필리핀: 공동 기도서</p> <p>2000 영국: [공동 예배: 영국 성공회 예식과 기도들]</p> <p>2001 미얀마: 성찬 예식문</p> <p>2002 케냐: [현대 예배] (Our Modern Services)</p> <p>2004 아일랜드: 공동 기도서<br /> 한국: 성공회 기도서 (한국어)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