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ning: Creating default object from empty value in /home/skhcafe/liturgy/my-plugins/post-meta/post-meta.php on line 18

Warning: Creating default object from empty value in /home/skhcafe/liturgy/my-plugins/post-meta/post-meta.php on line 21

Warning: Creating default object from empty value in /home/skhcafe/liturgy/my-plugins/post-meta/post-meta.php on line 24

Warning: Creating default object from empty value in /home/skhcafe/liturgy/my-plugins/post-meta/post-meta.php on line 27

Warning: session_start(): Cannot send session cookie - headers already sent by (output started at /home/skhcafe/liturgy/my-plugins/post-meta/post-meta.php:18) in /home/skhcafe/liturgy/my-plugins/bb-topic-views.php on line 18

Warning: session_start(): Cannot send session cache limiter - headers already sent (output started at /home/skhcafe/liturgy/my-plugins/post-meta/post-meta.php:18) in /home/skhcafe/liturgy/my-plugins/bb-topic-views.php on line 18

Warning: Creating default object from empty value in /home/skhcafe/liturgy/bb-includes/functions.php on line 1513

Warning: Cannot modify header information - headers already sent by (output started at /home/skhcafe/liturgy/my-plugins/post-meta/post-meta.php:18) in /home/skhcafe/liturgy/my-templates/my_theme/rss2.php on line 1
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태그: 전례 http://liturgy.skhcafe.org/ A Korean Anglican Theology & Liturgy Forum en Mon, 22 Jan 2018 16:09:28 +0000 viamedia on "전례 여행 20 - 전례와 선교" 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710#post-1312 일, 15 1월 2012 14:25:48 +0000 viamedia 1312@http://liturgy.skhcafe.org/ <p>20. 세상의 종말 - 전례와 선교</p> <p>“다 이루었다.”</p> <p>예수께서 십자가 처형의 막바지에 숨을 거두시며 남기신 말씀이다. 다 이루는 일. 이것이 교회가 말하는 종말의 원래 뜻이다. 부족함 없이 모든 것이 채워지는 하느님의 시간이 종말이다. 그래서 교회는 예수께서 다 이루신 일의 행적을 되돌아 살피며 다시 기억하는 공동체이다. 교회는 오늘과 내일, 하느님께서 만드신 창조세계를 부족함 없이 완성하시려는 일에 참여하는 공동체이다. 교회는 전례 안에서 이 기억과 참여의 행동을 시작하고 몸으로 수련한 뒤 세계로 파송 받는 선교 공동체이다. 그러니 교회는 예수께서 이루신 종말을 전례와 선교 안에서 지금 살면서 하느님 나라를 향해 가는 순례 공동체이다.</p> <p>종말에 대한 뿌리 깊은 오해가 있다. 그 극단적 사례가 바로 시한부 종말론자들이다. 예수께서 다시 오실 날짜를 계산하여 그날을 믿고 준비하는 이들이다. 사회에 희망을 둘 수 없고, 교회에서 신뢰를 발견하지 못할 때마다, 그 실망한 이들을 꼬드겨 사익을 챙기는 못된 거짓 혹설이다. 이들은 교회 역사에 되풀이해서 등장했다. 물론 정해진 날짜에 아무런 일이 없어서 웃음거리가 되기 일쑤였다.</p> <p>그러나 여러 교회와 지도자가 잘못 가르쳐서 이런 불씨가 생겼다. 심판에 대한 공포로 종말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땅을 세속이라 경멸하고 하늘만 거룩한 것이라고 분리해서 가르친 탓이다. 게다가 세상과 사회에 대한 건전한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교회는 사람들의 절망감에 기름을 붓는다. 시한부 종말론자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이다. 그러니 그들만 나무랄 일이 아니다. 이런 잘못된 이해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반쯤은 그들과 다름없다.</p> <p>반면, 전례를 신앙생활의 중심으로 삼는 교회는 다르다. 우리는 성찬기도 안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가로질러 하느님의 시간을 완성하는 구원의 역사를 기억한다. 우리가 한목소리로 외치는 “신앙의 신비” 선포는 이 종말의 뜻을 바르게 세운다.</p> <p>“그리스도는 죽으셨고, 그리스도는 부활하셨고, 그리스도는 다시 오십니다.”</p> <p>하느님은 성육신하시어 우리와 살며 고통당하다 죽으셨다. 그러나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전례 공동체 안에 함께 하신다.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과 평화를 누리도록 우리를 초대하시고, 주님께서 친히 마련하신 그분의 잔칫상에 먹고 마시도록 한다. 종내에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이 모든 역사는 부족함 없이 거룩하게 완성될 것이다. 이 과정 모두가 하느님 나라의 도래요, 하느님 시간의 완성이요, 종말이라는 선포이다.</p> <p>종말은 교리가 아니며, 선포에 머물지도 않는다. 종말은 교회의 경험이다. 예수 안에서 펼쳐진 하느님의 구원 사건을 품은 교회가 그 완성인 하느님 나라를 향해 끝까지 걸어가는 순례 경험이다. 이 순례의 핵심은 반복해서 거행하는 성찬례이다.</p> <p>성찬례는 하느님 나라를 미리 맛보는 행동이요, 시간이요, 공간이다. 메시아가 베푸는 잔칫상이다. 잔칫상에 와서 우리는 차별 없이, 부족함 없이 와서 함께 부르게 먹으라고 초대를 받았다. 축성된 음식을 먹고 우리 자신이 축성되어 변화하라는 초대요, 경험이다.</p> <p>성찬례 안에서 우리는 여전히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대하고 희망한다. 이미 맛보고 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긴장감이 신앙인의 겸손함을 이끌고, 아직 부족한 현실을 견디며 변화를 꿈꾸고 희망하도록 돕는다.</p> <p>성찬례는 미리 맛본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도록 우리를 파송한다. 선교는 어떤 지적 교리나 도덕적 규율을 선전하거나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선교는 성찬례 안에서 우리가 경험한 삼위일체, 그 춤추는 친교의 삶을 우리 몸으로 이 세상에서 증언하는 일이다.</p> <p>그러니 전례와 걷는 신앙의 순례 여정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p> <p>‘종말의 시간이 전례를 통해서 우리 삶에 파고들어온다. 전례를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고, 다시 하느님 나라는 전례, 특히 성찬례를 통해서 우리 안에 들어온다. 전례가 끝나고 우리는 이 종말의 하느님 나라를 가지고 세상 속에 나아간다. 성찬례는 하느님 나라의 성사이다.’</p> <p>(성공회 신문 2012년 1월 14일치 6면)</p> <p>사례: 지난 1년 동안 “주낙현 신부와 함께 하는 전례 여행”을 사랑하고 격려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여러가지 부족한 점이 많은데도, 많은 분의 관심과 격려로 힘을 얻어 마칠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좋은 지면을 허락해 주신 성공회 신문사와 관계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주낙현 신부 합장. </p> viamedia on "전례 여행 19 - 전례와 사회" 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708#post-1309 금, 23 12월 2011 07:00:22 +0000 viamedia 1309@http://liturgy.skhcafe.org/ <p>주낙현 신부와 함께 하는 전례 여행</p> <p>19. 성찬례의 인간 - 전례와 사회</p> <p>교회와 사회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그리스도교의 여러 교파는 이 질문에 다양하게 답하고 행동했다. 교회는 세속 사회에 전혀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드높은가 하면, 예수님께서 정치와 종교 권력을 저항하고 비판하다 희생당하신 분이므로 사회에 대한 예언자의 목소리를 내는 일은 당연히 교회의 사명이라는 주장도 그에 못지않다. 교회의 사회 참여를 둘러싼 논란은 그 줄다리기가 팽팽하다. 이 일로 교회 안에서는 분란이 일기도 한다.</p> <p>그렇다면 전례 전통에 충실한 성공회는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까? 성공회는 그 질문을 좀 다르게 던진다. 교회의 중심 행동인 전례는 사회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다시 말해, 전례 안에서 선포되는 말씀, 그리고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거룩하게 변하는 사건, 함께 모여서 그 축성된 몸을 먹고 나누는 우리는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는가? 성공회 신자는 전례의 사건 속에서 이런 질문에 답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책임 있는 행동을 살피려 한다.</p> <p>‘말씀’이란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그리스도이시다. 성서는 ‘말씀이신 하느님-그리스도’께서 일으키신 사건을 우리에게 되새겨주는 그릇이다. 적어도 전례 전통의 교회에서는 ‘말씀의 전례’에서 읽는 성서 독서를 성직자나 신자 개인의 호불호나 멋대로 선택하지 않는다. 세계 여러 교회가 함께 연구하여 지정한 정과표를 따른다. 좋든 싫든 성서에 드러난 말씀을 그대로 듣겠다는 뜻이다. 나를 비판하고 호통치는 대로 받아들이겠다는 말이다. 그 말씀이 사회를 향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이를 피하고서는 말씀을 듣는 신앙인이라 말하기 어렵다.</p> <p>모든 전례의 목적은 변화이다. 특히 성찬례는 그 변화를 가장 잘 드러낸다. 전례 참여의 중요한 행동 가운데 하나는 우리 삶의 모든 것들을 제대 앞으로 가져오는 일이다. 우리의 땀과 수고, 우리의 잘못과 상처, 우리의 기쁨과 슬픔, 결국 세계 전체를 제대 앞으로 가져온다. 하느님께서 이 모든 것을 변화시켜 주시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 거룩한 변화가 일어나는 사건 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래서 빵과 포도주는 세계 전체를 상징한다. 성찬례 안에서 하느님은 이 세계 전체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거룩하게 변화시키신다. 이것이 축성이다. 이 변화의 사건을 믿지 않고는 신앙인이라고 말하기 어렵다.</p> <p>영성체는 세계 전체가 제대 위에 바쳐져서 거룩하게 변화된 것을 나누어 먹는 행동이다. 우리는 그 변화의 결과를 ‘그리스도의 몸’이라 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몸’이 우리 안에 들어가 우리 몸과 영의 에너지와 피가 되어 우리 몸을 돌아다닌다. 새로운 몸과 피를 받았으니 우리 자신도 변한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우리 몸을 돌도록 허락하지 않으면 우리 몸은 거부반응을 일으켜 몸이 굳고 더는 살아갈 수 없다. 게다가 하나인 ‘그리스도의 몸’을 여럿이 나누어 먹었으니, 교회를 떠나 우리가 들어가 살아가는 세계와 사회도 우리를 통해서 변화와 나눔의 은총이 일어나야만 한다. 이 변화된 그리스도의 몸에 비추어 우리 삶과 우리 사회에 변화가 일어나지도 않고, 우리 자신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살아간다면? 이는 우리가 진정으로 ‘영성체’하지 않았다는 말이다.</p> <p>적어도 성공회 전통은 우리가 전례 안에서 변화를 경험하는 만큼, 사회도 그렇게 변할 수 있으며, 변해야 한다는 희망을 고수했다. </p> <p>“그리스도인은 전례를 통해서 ‘경제적인 인간’(homo economicus)이나 ‘소비적인 인간’(homo consumericus)이기를 포기한다. 대신 ‘성찬례의 인간’ 즉 ‘나눔의 인간’(homo eucharisticus)으로 변화된다.” 지난 세기 최고의 전례학자 그레고리 딕스(Gregory Dix) 수사 신부의 말이다.</p> <p>이것이 전례를 통해서 경험하는 거룩한 변화의 진정한 뜻이며, 전례가 비추는 사회의 비전이다.</p> <p>“거룩한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을 예배하려 한다면, 우리는 이제 자신의 성막을 나와, 우리 안에 신비하게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이 세상의 거리로 걸어나가야 한다. 그리고 도시와 마을 사람들 안에서 같은 예수님을 찾아야 한다. 빈민촌에 머무시는 예수님에 대한 측은지심이 없이는 우리는 성막에 있는 예수님을 예배하노라 할 수 없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죽기까지 자신을 바쳤던 선교사 프랭크 웨스턴 주교의 외침이다.</p> <p>이런 고민과 전통을 돌아보며, 우리는 우선 교회와 전례와 사회의 관계에 대해서 좀 더 세밀하고 신실하게 물어야 한다. 전례 안에서 읽고 듣는 예언자적인 말씀이 불편하더라도 귀와 마음을 열어 그 도전을 받아들이는가? 사적인 고민뿐만 아니라 사회와 세계의 갈등과 아픔을 제대 위에 봉헌하는가? 하느님께서 그 세속적인 것들을 축성하여 우리에게 거룩한 몸으로 나누어 주실 때, 거리낌 없이 우리 살과 피로 먹고 마시는가? 그리하여 우리 교회와 자신도 그 몸을 모시고 세상 밖에 나가 세계와 사회도 그리스도의 몸이 되도록 실천하는가? </p> <p>(성공회 신문, 2011년 12월 24일자) </p> viamedia on "전례 여행 16 - 전례와 성령" 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703#post-1272 수, 09 11월 2011 16:18:09 +0000 viamedia 1272@http://liturgy.skhcafe.org/ <p>주낙현 신부와 함께 하는 전례 여행</p> <p>16. “우리에게 내리시는 영” - 전례와 성령</p> <p>지난 20세기는 성령 운동의 시대라 할 만큼 성령의 활동에 대한 체험이 세계 교회 곳곳에서 남달랐다. 이 체험은 성령쇄신 운동, 은사(카리스마) 운동, 오순절 운동 등으로도 불린다. 이 체험은 신앙인의 뜨거운 내적인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신앙은 교리와 관습을 머리와 이성으로 이해하는데 머물지 않는다. 신앙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과 용서의 은총을 가슴과 몸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이런 각성과 주장이 널리 힘을 얻었다. 교회의 기존 관습과 구조에 변화를 일으켰고, 급속한 양적인 성장도 이끌었다. </p> <p>성부 하느님의 높으신 위엄과 성자 예수님의 고통스러운 희생을 너무 강조했던 탓일까? 교회의 신학과 관습은 너무 무겁고 복잡하여 자신에게 닥친 신앙적 갈증을 풀어주지 못한다고들 느꼈다. 이런 와중에 마음의 상처를 감싸는 위로, 감정을 격하게 흔드는 힘을 체험한 이들은 그것이 성령 하느님의 활동이라고 증언했다. 이는 과연 그동안 교회 생활과 신학에서 잊혀진 성령 하느님을 재발견하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p> <p>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 운동들은 지금 몇 가지 질문과 씨름하고 있다. 성령 하느님 체험이 개인의 감정에 머문 나머지 공동체에는 무관심하지 않는가?(개인주의) 몇몇 특별한 은사만 강조하다가 다른 다양한 은사들은 무시하지 않는가?(은사의 차별) 지금의 강렬한 체험에만 의지하면서, 전례 안에서 일어나는 성령의 변화를 오해하지 않는가?(전통과 전례의 약화).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 사건이 현재의 성령 체험과 무관한 것이 되지 않는가?(예수와 성령의 분리) </p> <p>루가복음서가 전하는 예수님의 삶은 하느님의 영에 이끌린 삶이다. 예수님은 '영'으로 잉태했고, ‘영’에 이끌려 광야에 나가셨고, ‘영’의 내림을 받아 복음을 선포하셨으며, 십자가 위에서 그 ‘영’을 하느님께 되돌려 드리셨다. 마침내 그 ‘영의 몸’으로 부활하셨다. “주님의 영(프뉴마)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며,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루가 4:18) 이 ‘프뉴마’가 바로 예수의 삶 속에 녹아든 성령 하느님이시다.</p> <p>교회의 전례 속에서 우리는 그 ‘영’에 이끌려 사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한다. 더불어, 그 ‘영’이 예배 공동체로 모인 우리 모두에게 내리기를 청원한다. 예수 기억(아남네시스)과 성령 청원(에피클레시스)이 성찬기도의 핵심이다. 이 둘이 함께하지 않으면 성찬기도는 불완전하고, 이 둘을 우리 의식과 몸과 행동에 새기지 않으면 예배는 완전해질 수 없다. </p> <p>그렇다면, 완전한 예배 속에서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물과 사람을 거룩하게 변화시키는 일이다. 그래서 성찬기도 전체는 축성기도이다. 이 축성은 이중으로 일어난다.</p> <p>첫째, 성령께서는 빵과 포도주와 같은 세속적인 사물을 거룩하게 하신다. 우리가 창조 세계에서 땀 흘리고 수고하여 만들고 거둬들인 것을 거룩하게 하신다. 이로써 에덴동산의 타락 이후 저주와 징벌이었던 우리의 노동은 이제 거룩한 것이 된다. 우리가 봉헌한 하찮은 빵과 포도주는 이제 고귀한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어 우리 생명을 살린다. 이 거룩한 변화는 이제 세상의 그 어떤 작은 사물도, 생명도, 생활도 고귀한 것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과 희망을 품게 한다. </p> <p>둘째, 성령께서는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일치하게 하신다. 하느님께서는 일찍이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당부하셨다(레위 11:44-45; 1베드 1:16). 우리 힘만으로 그리할 수 없으니 성령께 우리를 거룩하게 해달라고 청원한다. 그러므로 축성기도는 봉헌한 예물만이 아니라, 예배에 참여한 우리가 모두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이 되도록 바치는 기도이다. 이때 거룩한 몸의 표지는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인 ‘우리’이다. 그래서 이 축성기도는 그리스도의 한 몸과 한 피를 나누는 하느님 백성의 일치를 위한 청원 기도이다. 그러니 그리스도의 몸으로 거룩하게 된 공동체 안에는 차별이 없다. 오직 기도를 통한 연대만이 있다.</p> <p>성령은 바람처럼 마음대로 분다. 그 자유로운 성령을 우리 손아귀에 붙잡아 두고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지난 세기에 성령의 바람은 교회의 굳은 관습과 짓누르는 권위주의를 무너뜨리고 신앙의 활력을 교회에 불어넣었다. 그러나 지금, 같은 성령의 바람은 예수님의 삶을 이끄신 복음과 해방과 자유의 영을 우리 몸 안에 되살리라고 촉구한다. 세상의 질서와 세속적인 것을 업신여기지 말라고, 오히려 그 거룩한 가능성을 발견하라고, 우리 등을 떠민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로 분열된 우리의 신앙과 삶을 그리스도의 몸인 공동체로 변화시키라고 부른다.</p> <p>전례는 성령이 이끄시는 그 거룩한 변화의 체험 현장이다.</p> <p>(성공회 신문 2011년 11월 12일자 6면) </p> viamedia on "전례 여행 15 - 전례의 기억과 시간" 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702#post-1271 목, 20 10월 2011 14:07:49 +0000 viamedia 1271@http://liturgy.skhcafe.org/ <p>주낙현 신부와 함께 하는 전례 여행</p> <p>15. “나를 기억하라” - 전례의 기억과 시간</p> <p><strong>“나를 기억하여 이 일을 행하라.”</strong></p> <p>그리스도교는 기억 위에 세워진 종교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교회 역사 속에서 계속 펼쳐지는 신앙인들의 삶과 증언을 기억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역사가 종내에 완성되리라는 하느님의 약속을 기억한다. 이 역사의 기억을 망각하고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다. 전례와 전례력은 이 기억을 우리 온몸으로 보존하고 축하하며 우리 일상 생활에서 훈련하는 장치이다.</p> <p>전례를 통한 기억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한 기억이다. 교회는 이 전례적 기억을 성서 희랍어를 따라 ‘아남네시스’라 부른다. 성찬기도는 이 특징을 아주 잘 보여준다. 성찬기도는 하느님을 향한 감사 기도인데, 이 감사는 기억에서 나온다. 하느님께서 과거에 베푸셨고, 현재도 베푸시고, 미래에도 베푸실 사랑과 은총의 구원 행동에 대한 기억이다. 성찬기도는 그 기억의 세 차원을 이렇게 아우른다.</p> <p><strong>과거 기억</strong>: 이 기억의 핵심은 하느님의 창조 사건과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이다. 하느님은 우리를 ‘보시기에 참 좋은 것’으로 창조하셨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하고 하느님과 이웃에게 죄를 범했다. 때마다 하느님께서는 구원을 베푸셨지만, 인간은 배신을 계속했다. 마침내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몸소 인간이 되시어, 우리가 사는 사회, 정치, 경제 환경 속에서 함께 사셨다. 그러나 그 삶의 방식때문에 정치와 종교 지도자들에게 억압을 당하셨고 십자가 위에서 죽임을 당하셨다. 우리는 이 고난의 상황과 죽음의 사건을 기억한다.</p> <p><strong>현재 기억</strong>: 예수의 부활은 죽음을 되풀이하는 과거의 악순환을 끊고 새로운 시간을 여는 사건이다. 신앙인은 죽음을 이기신 예수의 부활을 ‘지금 여기서’ 기억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예수 부활 이후, 역사는 부활의 현재형이다. 부활은 모든 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길을 마련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사시며 보여주셨던 사목과 선교, 그의 자기 포기와 희생은 이제 고난과 죽음의 십자가를 넘어서 부활의 생명과 몸을 이룬다. 그 부활을 사는 것이 우리가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방법이다.</p> <p><strong>미래 기억</strong>: 우리 신앙에서 기다림과 기억은 같은 말이다. 성찬기도는 일치와 정의와 평화와 사랑으로 가득찬 시간의 완성을 기억한다. 종말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며, 심판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이 모든 것을 거룩하게 채우는 사건이다. 먼저 떠나간 이들과 지금 살아가는 우리들이 모두 모이는 시간이다. 세상이 만든 분열과 분리의 벽을 무너뜨리고, 다같이 하느님의 잔치에 참여하는 시간이 바로 종말이다. 삼위일체 하느님께 드리는 성찬기도의 마지막 영광송은 우리 삶을 그 삼위일체의 사랑과 친교처럼 만들겠다는 다짐이다.</p> <p>그러나 시간은 기억의 적이다. 시간은 망각을 부추기고, 사람들은 그 망각에 기대어 잘못을 숨기기도 한다. 시간의 망각을 막으려는 기억 장치가 바로 전례력(교회력)이다. 망각하는 세상의 시간을 잊을 수 없는 거룩한 시간으로 재배치한 새로운 달력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걸으신 삶의 행적에 우리 자신의 삶을 얹혀 놓는다. 예수님을 닮고자 한다면 그분이 가신 길과 세월을 그대로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다.</p> <p>전례력에 따라 전례에 참여하면서 우리의 기억은 두뇌의 작동에 머물지 않고 우리 몸과 일상 생활을 수련하도록 이끈다. 계획이 잘 짜여진 운동으로 ‘몸짱’을 만들 듯이, 전례력에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만들기’를 한다. 이런 뜻을 깊이 헤아리지 않으면 전례력과 전례는 거추장스러운 전통의 찌꺼기가 되고 만다. 이런저런 체력단련 도구를 사다가만 놓고, 그 작동법도 모르고 계획대로 실제 운동도 하지 않으면서 그 도구만 나무라는 꼴이다. </p> <p>이 모든 기억은 우리에게 위험할 수도 있다. 예수님께서 고난과 죽음의 길을 걸으셨으니, 그 길을 기억하고 따르는 일은 위험할 수 밖에 없다. 하느님의 정의로운 창조 세계를 회복하시려고 스스로 한없이 낮추신 그리스도의 포기와 희생, 고난과 죽음을 누군가 선포하면, 우리가 바라는 편안한 삶을 위협하는 소리로 듣기도 한다. </p> <p>이 모든 기억은 다른 어떤 이들에게도 위험한 말로 들린다. 그 기억은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하다가 스러져간 한 청년의 삶을 되새기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일을 덮고 싶은 가해자들에게는 그 사건을 기억에 되살리는 일은 위험하다. 그래서인지 그 가해자들은 종종 그 기억의 장치를 고장내고는 쓸모없다고 단언한다.</p> <p>예수님에 대한 기억은 ‘위험한 기억’이다. 예수님께서 걸으셨던 복음의 가치에 따라 우리 자신에게 도전하고, 우리의 변화를 요구하고, 우리의 책임있는 행동을 촉구하기 때문이다. 그 기억의 장치와 궤도인 전례와 전례력 안에서, 우리는 이 위험한 도전에 몸과 마음을 열어야 한다. 온몸을 통해서 기억한다는 것은 그 위험을 온몸으로 산다는 것이다. </p> <p><strong>“나를 기억하여 이 일을 행하라.”</strong></p> <p>(성공회 신문 10월 22일, 6면) </p> viamedia on "전례 여행 8 - 성공회 종교개혁: 전례를 통한 개혁" 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661#post-1178 금, 10 6월 2011 14:34:23 +0000 viamedia 1178@http://liturgy.skhcafe.org/ <p>주낙현 신부와 함께 하는 전례 여행</p> <p>8. 성공회 종교개혁 - 전례를 통한 개혁</p> <p>16세기 개신교 종교개혁을 거쳐서 등장한 교회를 개신교라 부른다. 그 대표적인 세 개의 교회가 루터교, 개혁교회(장로교), 성공회이다. 현대 수백 개의 개신교단은 대체로 이 세 개의 교단에 기원을 둔다. 그러나 16-17세기에 쓰던 ‘개신교’라는 말과 20-21세기에 쓰는 ‘개신교’라는 말에는 그 공통점만큼이나 차이점도 많다. 수백 년을 두고 저마다 다른 처지에서 발전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또 그 첫 세 개의 개신교도 서로 같지 않았다. 이점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오해가 생기고 종종 억지주장도 나온다.</p> <p>개신교 종교개혁은 신학과 예배를 새롭게 하여 교회의 신앙생활을 개혁하려는 운동이었다. 그러나 그 무게 중심은 달랐다. 루터교와 개혁교회는 탁월한 두 지도자 ‘개인의 신학’에 기대고 발전했다. 루터교는 마르틴 루터의 신학을, 개혁교회는 장 칼뱅의 신학을 표준으로 삼았다. 다른 탁월한 동료 개혁자들도 있었지만, 이 두 거인의 그늘에 가리곤 했다. 이들에게 예배 개혁의 잣대는 그 신학적 주장을 얼마나 잘 반영하느냐는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루터교의 예배 개혁은 점진적이었고, 개혁교회의 개혁은 급진적이었다. 이 두 사례는 2-30여 년 늦게야 종교개혁 대열에 동참한 성공회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고, 지금도 그 그림자가 짙다.</p> <p>로마 교회 지배에서 영국 교회를 독립시킨 영국 왕 헨리 8세는 신학과 예배에서 중세 교회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는 루터의 종교개혁을 비판하는 글을 써서 로마 교회로부터 ‘신앙의 수호자’라는 호칭까지 받았다. 영국 교회를 독립시켜 자신을 교회의 수장이라고 불렀지만, 1547년 죽는 순간까지 중세 신학과 예배를 버리지 않았다. 그 생전에는 종교개혁의 핵심인 신학과 예배의 개혁이 거의 없었다. 헨리 8세의 교회 독립을 성공회의 시작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이다. </p> <p>영국 교회에서 신학과 예배의 본격적인 개혁은 캔터베리 대주교 토마스 크랜머의 몫이었다. 그는 독일에서 루터의 신학을 공부했고, 개혁교회의 영향을 받은 동료의 조언을 얻어 예배를 개혁했다. 크랜머 대주교의 개혁 방법은 신학 논문 발표가 아니라 예배문 개정이었다. 1548년에 첫 자국어(영어) 성찬례문이 나왔고, 이듬해인 1549년 마침내 성공회의 가장 중요한 전통이 되는 ‘공동 기도서’가 처음으로 나왔다. 이 첫 기도서는 중세 교회의 여러 전통을 보존하면서도 종교개혁 신학의 중요한 점을 반영했다. 3년 후 나온 1552년 기도서는 종교개혁 신학을 좀 더 반영하기도 했다. 영국을 천주교로 되돌린 메리 여왕 때문에 이런 노력이 잠시 멈추기도 했지만, 엘리자베스 1세 치하에서 성공회의 독특한 신학과 예배의 기풍이 자리를 잡았다. 그 결정판은 1662년 ‘공동기도서’였다. 이 역사는 성공회 종교개혁의 몇가지 특징을 잘 드러낸다. </p> <p>첫째, 신학 논쟁보다는 전례를 통한 개혁이다. 신학적 정밀함에 무게를 둔 대륙의 개혁과는 달리, 성공회 개혁자들은 신학적 논쟁을 하느님을 예배하는 일보다 먼저 내세우지 않았다. 실제로는 전례의 언어와 행동 안에서 오히려 신학적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다. </p> <p>둘째, 전례를 통한 일치이다. 신학적 논쟁의 결과는 교회의 일치보다는 교회의 분열이기 일쑤였다. 그러나 ‘공동 기도서’는 예배와 전례 안에서 모든 신자가 하나임을 경험하는 도구였다. 기도서는 공동체의 일치를 위한 언어와 논리의 토대였으며, 아울러 개인의 신앙생활과 경건생활을 위한 길잡이였다.</p> <p>셋째, 공동의 예배 신학이 바로 교회의 신학이다. 종교개혁의 몇몇 유산은 루터주의, 칼뱅주의처럼 탁월한 신학자의 이름을 따서 불린다. 이에 비해 성공회는 공동기도서를 함께 사용하는 집단의 이름으로 불린다. 성공회 신학과 전통을 뜻하는 ‘앵글리카니즘’을 현대말로 푼다면, ‘공동체에 속한 이들이 함께 예배하며 경험한 신학과 전통’이라고 할 수 있다. </p> <p>의식했든 안 했든, 성공했든 못 했든, 성공회 종교개혁은 유럽 대륙의 종교개혁과는 다른 기풍을 만들었고, 그 다름으로 그리스도교 전통의 풍요로움에 이바지했다. 그 기반은 ‘공동체의 경험’이었다. 공동기도서는 여러 개인의 다양한 경험을 공동 예배를 통해서 공동체의 경험과 신학으로 안내하는 방법이다. 이에 반해, 특정 신학자의 신학은 그 ‘개인’의 신학이 지배하도록 버려두거나, 신학자들만이 독점적으로 소유한 신학을 부추기기 쉽다. 중요한 것은 ‘신학’의 회복이 아닐는지 모른다. 정말 중요한 것은 ‘교회 공동체’의 회복이다. 성공회 종교개혁 유산에도 불구하고 이 깨달음을 얻기까지 300여 년의 시행착오가 더 필요했다. 이 회복을 위한 근대 전례 운동은 19세기에 들어서야 움트기 시작한다.</p> <p>(성공회 신문 6월 11일) </p> viamedia on "전례 여행 7 - 종교개혁의 빛과 그늘" 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656#post-1172 토, 21 5월 2011 09:04:27 +0000 viamedia 1172@http://liturgy.skhcafe.org/ <p>주낙현 신부와 함께 하는 전례 여행 </p> <p>7. 종교개혁의 빛과 그늘 </p> <p>“목욕물을 버리려다 그 안의 아기까지 버려서는 안 된다.” 이 속담은 16세기 서방 교회 종교개혁의 횃불을 든 마르틴 루터가 사용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교회의 오랜 전통을 무시하고 급진적인 개혁을 주장하던 이들을 비판하려고 쓴 말이다. 그런데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둔 지금, 어떤 이들은 이 속담을 루터와 종교개혁 자체를 비웃는 말로 사용하기도 한다. 종교개혁이라는 사건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빛과 그늘을 남겼을까?</p> <p>12세기 이후 여러 신앙 쇄신 운동은 16세기에 이르러 극적인 전환을 맞았다. 종교개혁은 이 과정에서, 하나이던 서방 교회가 천주교와 여러 개신교로 분열된 사건이다. 천주교에서 개신교가 갈라져 나왔다고들 말한다. 정확한 말이 아니다. 공식적으로 하나였던 서방 교회가 천주교와 다른 여러 교회로 분열된 것이다. 이 분열을 치르면서 교회는 자기 개혁을 단행했다. 개신교의 종교개혁은 신앙의 본질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이끌었다. 천주교의 대응 개혁은 허물어진 기존 교회의 권위와 교리 체제를 정비했다. 이렇게 나뉘어 따로 개혁한 교회들은 이후에 다양한 신학과 지역과 세속 권력이 얽히면서 지금 같은 여러 교단들로 발전했다.</p> <p>종교개혁의 빛은 중세 교회의 어둠과 비교된다. 한마디로 중세 서방 교회는 힘을 멋대로 부리는 권력이었다. 권력은 이권과 얽혀 늘 부패를 낳았다. 이 교회 권력은 신자들의 신앙과 일상생활을 잘 돌보지 않았다. 오히려 획일적으로 통제했다. 학교의 신학은 세련된 성과를 내기도 했지만 현란한 자기만족에 빠지기도 했다. 그동안 신자들은 교회 조직과 신학을 멀리했다. 대신에 자신의 처지를 위안하는 신앙심을 찾아다녔다. 때로 뛰어난 영성의 대가가 등장하여 이들을 돕기도 했지만, 교회의 가르침과 학교의 신학을 멋대로 조립한 기이한 신심 행위에 빠져드는 일이 잦았다.</p> <p>개신교 종교개혁은 신앙의 근본에 대한 고민에서 빛났다. 그것은 ‘성서’에 근거하여 ‘신앙’과 ‘은총’으로 얻는 구원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교회의 전통 이전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최우선이다. 인간은 선한 행동 이전에 신앙으로 구원받는다. 그 구원은 하느님의 은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p> <p>이런 주장은 새롭지 않다. 초대 교부들의 성서 읽기와 그 신학에 기대어 개혁자들이 신앙의 근본을 재발견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제시한 탓이다. 개혁자들은 ‘말씀’을 강조하며, 그에 따라 ‘성사’를 설명하고 ‘영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에 중점을 뒀다. 이때 ‘영적’이라는 말은 하느님이 주시는 구원의 깊이를 충분히 이해하고 성사 안에서 체험한다는 뜻이다. 자국어 성서 번역과 간소한 자국어 예배 개혁 등을 통해서 이런 이해와 체험을 도우려 했다.</p> <p>한편, 천주교의 대응 개혁은 보기에 따라 개혁이라는 말이 무색했다. 로마 교회의 권위자들은 교리와 교권 체제가 분명하지 않아서 혼란이 일어났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중세 스콜라 신학의 교리를 이해하기 쉽도록 대중적인 교리 체계를 정비하여 강화했다. 교회의 위계와 치리 방식도 더욱 관료화했다. 이 개혁으로 천주교는 내부 결속을 다질 수 있었다.</p> <p>그러나 이 두 개혁에도 그늘이 있었다. 당시에 발전된 지성적 사고와 논리로 신앙을 지나치게 설명하려다 보니, 그동안 교회 안팎에서 신자들이 삶 속에서 스스로 경험하고 누리던 신앙 양식과 전례 전통을 대체로 무시했다. 신앙과 전통은 복잡한 삶의 과정이 쌓여 만들어진다. 삶의 다양한 결들이 겹쳐 있다. 얼핏 비천하고 미신적으로 보이는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고는 이런 결들을 느끼기 어렵다. </p> <p>그런 탓이었을까? 개신교 개혁자들의 설명은 얼마 후 딱딱한 교리가 되었다. 말씀을 성서로 동일시하고, 성사는 형식으로 치부하며, ‘영적’이라는 말의 뜻도 좁아졌다. 천주교는 단순하게 정리한 교리로 교회와 전례를 더욱 통제했다. 전례 행동은 분열된 교회 사이의 교리 논쟁 소재로 전락했다. 분열된 교회들이 교리로 경쟁하면 서로 정죄하는 일을 피할 수 없다. 교회사학자 디어메드 맥컬로흐는 이렇게 지적한다. </p> <p>“종교개혁은 간단히 말해서 두 세기에 걸친 전쟁이라 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 16세기에는 평화기가 10년이 채 안 됐고, 17세기 중반까지 고작 2-3년이었다. 종교개혁은 이미 자라나던 국가라는 권력 기계를 각각 개신교와 천주교의 옷을 입혀 그 성장을 촉진했다. 그 결과 개신교와 천주교는 이어진 전쟁 속에서 엄청난 피를 뿌렸고,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다.”</p> <p>종교개혁의 훌륭한 성과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시각도 필요하다는 뜻이다. 목욕물과 아기를 함께 버리지 않으려면 더 신중해야 한다. 성공회의 개혁은 대륙의 개혁에 비해 약 20년 늦었다. 이 시차는 성공회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p> <p>(성공회 신문, 2011년 5월 21일) </p> viamedia on "전례 여행 6 - 전례와 역사: 전통과 정통 사이에서" 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649#post-1165 금, 06 5월 2011 15:34:43 +0000 viamedia 1165@http://liturgy.skhcafe.org/ <p>주낙현 신부와 함께 하는 전례 여행</p> <p>6. 전례와 역사: 전통과 정통 사이에서</p> <p>첫 역사의 경험과 방향이 변치 않고 계속 이어지기가 쉽지 않다. 사람살이는 늘 이견과 갈등의 연속인 탓이다. 이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종종 힘끼리 대결하고 승패가 엇갈린다. 승자의 원칙이 지배하면 다른 의견과 고민은 쉽사리 묻힌다. 그러다가 처음에 품었던 꿈과 실천은 멀리 사라지는 일이 잦다. 특히 권력과 이권이 관여하면 초심은 왜곡된다. 이런 역사 흐름의 대강을 살피면 오늘의 문제를 바라보는 일에 도움이 된다.</p> <p>그리스도교 역사 첫 5세기 동안은 저마다 자신이 진리를 움켜쥐고 있다는 주장이 부딪히면서 이단 논쟁 등이 있었다. 교회는 혼란 속에서 분열되는 사람들을 추스르려고 좀 더 분명한 가르침을 정해야 했다. 공식적인 성서를 정하고 교리를 정비했다. 그리고 여기에 ‘정통’(orthodox)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어떤 면에서는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p> <p>교회의 삶과 생명인 전례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그런데 이런 흐름이 계속되면서 ‘기도의 법은 신앙의 법’이라는 교회의 ‘전통’(tradition)도 위기를 맞았다. 기도와 전례를 통한 신앙 형성이라는 길이 약해지고, 정통 교리가 신앙생활을 결정짓는 힘이 된 것이다. 5세기 이후에 일어난 변화이다.</p> <p>역설적이게도, 이런 일은 ‘일치’라는 이름 아래서 진행되었다. 일치는 제자들에게 하나가 되리라 당부하신 예수님 고별사의 핵심 주제였다(요한 17장). 그러나 진정한 일치의 근본인 사랑이 희미해지고 조직과 특권을 위한 일치가 앞서면서 그 본뜻에서 멀어졌다. 급기야 일치를 빌미삼아 통제가 자리 잡았다. 성서마저도 그 정통을 옹호하는 일에 이용되곤 했다. 주장을 먼저 세워놓고 성서의 구절을 선택하여 그 주장의 증거 구절(proof-text)로 삼았다. 이런 과정에서 전례는 그 본래 넓은 뜻을 잃고 교회 조직의 언어와 행동을 획일화하는 도구로 전락하기 일쑤였다. 이후 교회의 풍요롭고 다양한 ‘전통’은 7세기를 거쳐 12세기에 이르는 동안 획일적인 ‘정통’의 힘 때문에 협소한 ‘관습’으로 전락했다. </p> <p>정통을 지킨다는 명분은 교회에 더 나쁜 영향을 미쳤다. 교회가 세속 권력과 함께 가기로 다짐한 시기와 맞물린다. 정통 논쟁과 연결된 교회 정치권력의 대결 때문에 그리스도교는 서방교회와 동방교회로 크게 분열되었다(1054년). </p> <p>서방 교회는 서유럽을 중심으로 정착했다. 종교개혁 이후로 천주교, 성공회, 기타 개신교로 다시 분열되었지만 모두 서방교회 유산을 나누고 있다. 서방 교회는 교리화된 전례를 통해서 강력한 교회의 통일성을 추구했다. 출생과 함께 자동으로 그리스도인이 되고 신앙고백과 그 실천을 잃어버린 교회에서, 신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없어진 전례는 이제 구경거리가 되었다. ‘미사를 본다’는 말도 여기서 나왔다. </p> <p>한편, 동방 교회는 훨씬 복잡하게 당시 소아시아와 동유럽 등지로 퍼져 나갔다. 동방교회는 정착한 지역에 따라 전례가 다양하게 발전했지만, 그 역시 정통 교리에 눌려서 점차 변하지도 않고 변할 수도 없는 과거의 유물로 화석화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다만, 그 화석이 다양하고 풍요로워서 전례 역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되었고, 근대에 이르러서는 전례 개혁의 중요한 자료가 되기는 했다. </p> <p>공동체의 다양한 전례 경험과 공동체 신앙을 상실한 이런 획일화에는 당연히 저항이 일어났다. 12세기에는 초대 교회 전통을 회복하려는 여러 신앙 운동들이 솟아났다. 그러나 이미 굳어져서 권력의 도구가 된 전례가 많았던 탓인지, 대체로 전례를 배척하려는 운동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신앙 회복 운동은 개인적 영성주의라는 특성에 쏠렸다. 사적인 미사, 개인 기도, 성모 신심, 성인 기도 등과 같이 개인적인 신심 강화를 위한 사적인 전례 관습에 집중했다. 이런 개인주의적 영성 운동으로는 초대 교회 전통의 공동체적 전례와 교회의 삶을 회복하기 어려웠다. 오히려 정통 교리와 획일적인 체제를 갖춘 교회와 이런 개인주의적 영성은 여러모로 갈등하면서도 서로 용인했다.</p> <p>다양한 전통이 획일적인 정통에 눌려 관습이 되면 그 부작용이 크다. 신앙 공동체의 다양한 경험과 그 경험에 바탕을 둔 신앙고백의 삶은 힘을 잃는다. 이 신앙 공동체의 삶을 구성하고 보존하는 전례도 거추장스러운 관습으로 치부한다. 그나마 남은 전례는 공동체를 잃고 개인의 신심을 강화하는 일에만 봉사한다. 전례는 공식적인 면에서는 획일화를 추구하는 권력에 이용되고, 사적인 면에서는 개인주의적 영성을 위한 피난처로 쓰인다. 이 극단적인 두 흐름과 갈등은 역사에서 중세를 지나 16세기 종교개혁에 이르러 어떤 해결책을 마련해야 했다. 과연 종교개혁은 이 역사의 어둠에 빛을 주었을까?</p> <p>(성공회 신문, 2011년 5월 7일) </p> viamedia on "전례 여행 5 - "기도의 법은 신앙의 법"" 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647#post-1163 금, 22 4월 2011 05:41:38 +0000 viamedia 1163@http://liturgy.skhcafe.org/ <p>주낙현 신부와 함께 하는 전례 여행 5</p> <p>“기도의 법은 신앙의 법” - 그리스도인의 정체성</p> <p>전례를 신앙과 신학의 꽃이라고들 한다. 전례가 열어주는 신앙의 생동감 있는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일 것이다. 그러나 전례는 꽃이기 전에 이미 그 뿌리이다. 성서와 교리가 있기 전에 예배가 있었다. 다시 말해 성서가 교회의 공식적인 경전으로 정착하기 전, 교리가 체계를 갖추기 전에, 신자들이 함께 모여서 예배하는 공동체가 있었다. 성서는 이 예배 공동체가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이라는 사건을 어떻게 기억하면서 살았는지를 증언한다. 성서는 예배 공동체의 신앙고백이자 기록이다. 교리와 신학은 이 예배 공동체의 신앙 경험을 성찰하여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전달하려는 노력이다. 이 예배 공동체의 경험이 그리스도교 신앙과 그 삶의 바탕이다.</p> <p>이 예배 공동체의 시작과 삶에 대해 성 루가는 루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이렇게 전한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축복하시고,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 그들은 엎드려 예수께 경배하고 기쁨에 넘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날마다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지냈다”(루가 24:52). 복음서의 마지막 증언은 사도행전에 기록된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으로 이어지면서 교회의 새로운 역사가 펼쳐진다. 이들의 모임은 “세례”로 그리스도인이 되어,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서로 도와주며, 음식을 나누어 먹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이들은 재산을 함께 나누며 하느님을 찬양하였기에 그 구원의 공동체는 날로 커갔다(사도 2:41-47). 이처럼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찬미와 기도인 예배로 시작되었다. 그 모임의 행동이 예배의 구조를 이루었다. 신자들이 모여서 가르침을 듣고, 기도와 찬미 속에서 음식을 나눔으로써, 구원을 향한 선교의 공동체를 꿈꾸며 실천했다.</p> <p>교회는 ‘전례’(레이투르기아)라는 말로 교회의 예배 생활을 표현했다. 우리말 ‘전례’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레이투르기아’라는 말의 본뜻은 ‘함께 이룬 공동체의 의무’이다. 신앙 공동체의 의무인 이 전례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전례의 행동과 의미를 일상생활의 근거로 삼고 살아간다. 교회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공동체의 기억과 축하의 행위인 전례 안에서 경험한 하느님의 구원 사건을 체계화하여 신조를 마련했다. 또 그 기억을 바르게 담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서 성서의 정경을 정했다. 그래서 초대 교부들은 전례야말로 ‘교회의 생명’ 또는 ‘교회가 살아 움직이는 근본적인 방법’이라고 했다. 교리와 성서는 이 전례 안에 자리 잡을 때라야 그 뜻이 바르게 드러난다. 그것이 교부들의 생각이었다.</p> <p>리옹의 교부 성 이레네우스(2세기)는 개인적인 영적 지혜를 구원의 방편으로 삼았던 영지주의자들을 반대했다. 이들은 개인과 공동체, 영적 지혜와 일상의 경험, 영과 육, 그리고 성과 속을 철저히 구분했다. 그래서 이들은 성찬례 안에 모인 그리스도인들이 떡과 잔을 나누는 것을 두고 ‘세상의 썩어질 물질을 먹는 헛된 짓’이라고 멸시했다. 대신 자신들이 수련하여 얻은 영적 지식이 영원한 것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이레네우스 성인은 성찬례 안에서 육과 영의 결합, 즉 땅과 하늘이 만나는 신비가 이루어지는 ‘성체’의 사건은 썩어 없어지지 않으며, 이야말로 부활에 대한 희망의 사건이라고 했다. 이 만남과 변화의 신비를 경험하고 실천하는 시간과 공간이 바로 성찬례이며, 이 성찬례 신비의 경험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논리와 선언을 세운다는 것이다(&lt;이단 반박 5장&gt;).</p> <p>교회는 후에 이 생각을 “기도의 법은 신앙의 법”(lex orandi, lex credendi)이라는 표현으로 정리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나누는 전례(기도) 경험이 신앙의 선언과 주장의 기초라는 것이다. 전례는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 사건을 신앙인 공동체가 함께 기억하고 그 사건을 ‘지금 여기’에서 계속 경험하는 사건이다. 이는 그리스도에 관한 증언(성서)과 교회의 가르침(교리)은 전례 속에서라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p> <p>기도(전례)의 법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초기 그리스도인이 누리려던 삶과 희망처럼, 교회는 세상 속에서 구원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전례는 교회가 가르치고 믿는 신앙의 내용인 그리스도의 구원 사건을 일상의 삶 속에서 실천하는 틀이다. 공동체 안에서 누리는 기억과 찬미와 감사와 나눔은 이제 신앙인이 따를 삶의 법(lex vivendi)이다. 공동체의 기도인 전례에 근거한 신앙의 이해와 삶의 실천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다.</p> <p>(성공회 신문, 2011년 4월 23일) </p> viamedia on "전례 여행 4 - 한국 성공회의 위치 - 전례 전통과 도전" 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646#post-1162 금, 08 4월 2011 23:40:55 +0000 viamedia 1162@http://liturgy.skhcafe.org/ <p>주낙현 신부와 함께 하는 전례 여행 4</p> <p>한국 성공회의 위치 - 전례 전통과 도전</p> <p>여행을 하려면 우리가 어디있는지를 정확히 가늠해야 한다. 자신의 위치를 알아야 동서남북 어디를 향해서라도 한걸음을 뗄 수 있다. 교회와 신앙이 방황하는 까닭은 종종 자기 위치잡기가 어긋난 탓이다. 성공회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도 이런 위치잡기와 관련돼 있다. 우리의 위치는 어디인가? </p> <p>성공회를 통상 전례 전통의 교회, 혹은 전례적 교회라 한다. 전례를 교회의 사목과 신자들의 신앙 형성에 가장 중요한 행동 양식이라 이해하고 실천하는 신앙 전통이라는 말이다. 물론 성공회 안에는 다양한 신앙적 흐름이 있고 전례에 대한 시각도 저마다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적어도 한국 성공회는 그 초기 선교 역사 이래, 전례에 대한 강조가 다른 교단과 비교하여 남달랐다고 할 수 있다. 지난 120여 년 동안 이 땅의 성공회는 성찬례를 중심으로 한 전례를 교회 신앙 생활의 핵심으로 여겼다. 그런데 지난 몇 십 년 동안 한국 성공회는 교회 안팎으로 여러가지 도전과 영향에 직면했다. </p> <p>첫째, 1960년대 말 이후에 펼쳐진 교회 일치 대화에서 성공회는 다른 전통의 형제 자매 교회들과 교류하며 신앙의 사고와 생활 방식을 넓혀갔다. 천주교와 대화가 깊어졌고, 개신교 여러 교회와 교류도 넓어졌다. 그런데 이런 교회 일치 대화는 성공회의 정체성과 그 존재 목적에 대한 여러 물음을 제기했다. 문을 닫아 걸고 내려온 것만 지키면 혼란의 여지가 없지만, 발전할 가능성도 없다. 배우고 살펴야 할 것이 많아졌다.</p> <p>둘째, 1970년대 말과 80년 대에는 한국 사회 민주화라는 격랑 한복판에서 새로운 신학적인 반성을 받아들였다. 특히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교회 전통에서 자라난 사람들이 성공회에 들어와서 우리 교회를 한층 풍요롭게 했다. 그 가운데 당시 급성장하던 여러 개신교의 영향이 두드러졌다. 이러한 교류가 넓어지면서 신자들과 성직자, 신앙 형태에서 그전보다 훨씬 더 개신교적인 사고 방식이 성공회 안에 자연스럽게 자리잡게 되었다. </p> <p>셋째. 1980년 이후 한국 성공회 안에서는 다양한 신앙 쇄신 운동이 일어났다. 이 흐름은 교회의 활력에 큰 힘을 주었다. 한국 교회 급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던 ‘뜨거운 신앙 감정’에 대한 열망이,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했던 그간 한국 성공회의 모습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교회의 생활과 사목, 그리고 예배 형태도 그전과 사뭇 달라지고 다양한 활동들이 생겨났다. 이런 활동은 그간의 신앙 활동 관행과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다.</p> <p>넷째, 위 시기 전체는 한국 성공회가 세계 성공회와 점차 교류를 넓혀나간 시기이기도 하다. 그동안 영국의 특정 선교회의 영향과 일제 식민지의 조건때문에 경험의 폭이 좁았던 교회는 세계 성공회와 교류하면서 성공회 전통과 신학의 폭을 넓혀가게 되었다. 다양한 사회 문화적 상황의 세계 성공회를 목격하면서 같은 전통 안에서 누리는 신앙과 신학의 다양성에서 해방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 성공회가 성공회의 넓고 깊은 전통에 잇대어 좀 더 깊이 배우고 훈련해야 한다는 과제를 남겼다.</p> <p>다섯째, 이 시기는 우리 교회의 기도서 개정과 전례 개혁에 대한 활발한 논의와 겹친다. 그동안 우리는 적어도 네 개의 기도서 개정안을 검토하고 실험했다. 1990년에는 새 성가를 편찬했고, 마침내 2004년에는 1965년 기도서를 완전히 대체하는 새 기도서를 펴냈다. 지난 30여 년 동안 교회가 예배에 대한 자료를 갖추는 일에 힘을 기울인 결과였다. </p> <p>이러한 다양한 변화와 교류의 확대, 그리고 다양한 신앙 경험은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했던 사안들에 여러 도전과 질문을 던진다. 그 하나는 전례 중심 교회라는 오래된 이해에 대한 의심이다. 이런 도전과 더불어 전례에 대한 우리 이해는 더욱 깊어졌는가, 아니면 혼란만 가중되었는가? 전례는 신앙 형성과 교육의 바탕이었는가, 아니면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 1부 행사였는가? 전례는 선교를 지향하는 것이었는가, 아니면 선교의 걸림돌이었는가? 어쩌다가 우리는 이런 양자택일식 질문을 하게 되었는가?</p> <p>우리 교회가 직면한 도전은 교회의 전례 자체가 겪은 역사와 여러모로 겹친다. 지난 궤적을 돌아보면서 얻은 것과 잃은 것, 단절해야 할 것과 연속되어야 할 것을 식별해야 우리 갈 길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역사 속에서 많은 그리스도인이 고민했던 전례의 문제와 성과를 살피고 배우는 동안에 우리의 문제가 좀 더 선명해지고 그 해결의 윤곽도 드러날 것이다. </p> viamedia on "전례 여행 3 - 전례, 구원과 선교의 잔치" 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644#post-1160 토, 26 3월 2011 14:28:28 +0000 viamedia 1160@http://liturgy.skhcafe.org/ <p>주낙현 신부와 함께하는 전례 여행 3</p> <p>전례 - 구원과 선교의 잔치</p> <p>‘전례’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 ‘자유 없는 형식’ ‘순서에 따라 지정된 어떤 행동’ ‘답답할 정도로 엄숙한 것’ ‘별 생각 없이 반복하는 습관.’ 이런 인상이 떠오른다고 한다. 한편, ‘잘 조직되고 체계적인 것’ ‘장엄하고 신비를 느끼는 체험’ ‘개인이 아닌 공동체의 소중함을 확인하는 시간’ ‘그리스도를 몸에 모시는 감격’이라는 생각도 엇갈린다. 이참에 전례(여기서는 ‘예배’와 같은 말이다)의 본뜻을 구원과 신앙 공동체와 관련하여 넓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p> <p>우리는 미켈란젤로가 1513년에 바티칸 시스틴 성당 천장에 그린 &lt;천지창조&gt;를 잘 알고 있다. <a href="http://en.wikipedia.org/wiki/File:Creation-of-adam.PNG" rel="nofollow">http://en.wikipedia.org/wiki/File:Creation-of-adam.PNG</a> 이 그림에 빗대어, 전례학자 로버트 태프트 신부는 전례를 이렇게 설명한다. </p> <p>“전례란 하느님의 손끝과 인간의 손끝 사이에 놓인 틈새를 채우는 일이다. 이 그림에서 하느님은 창조자로서 우리를 구원하시려 손을 펼쳐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분이다. 구원의 역사는 우리의 손을 들어(혹은 손들기를 거부하기도 하지만), 이 다가오는 선물을 끊임없이 받으며 감사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것이 바로 전례가 아니겠는가? 전례 사건 안에서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서 일어나는 구원의 역사가 계속된다. 전례는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일어나는 구원의 관계이기에, 우리의 전례는 이 구원의 만남을 위한 특권이 되어 이 관계를 몸으로 드러내고 표현한다.” </p> <p>이 전례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교회는 하느님의 선물로 주어진 이 구원에 감사하고 축하하는 전례의 공동체이다. 구원의 사건을 전례 안에서 온 몸과 온 마음으로 충분히 경험한 교회는 그 구원의 신비를 세상 속에서 실천한다. 이로써 우리는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새로 얻은 생명을 살아간다. 이것이 전례 안에서 우리가 모두 그리스도의 몸을 모시고 작은 그리스도로 부름 받아 변화되는 신비의 본뜻이다.</p> <p>이 점이 바로 전례를 거행하는 교회가 바라보는 전망이며 목적이다. 사실, 우리는 이미 매주일, 또는 매일 참여하는 전례 안에서 이 구원의 사건을 경험하고 있다. 겸손한 이들은 감당할 수 없이 큰 체험 안에서 그저 감사할 뿐 애써 풀이하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삶 자체이기 때문이다. 신비 체험의 극치는 말을 잃는 것이다. 말이 필요 없는 경지이다. </p> <p>그 경지를 머물러 즐기면 좋으련만, 신앙인은 전례 공동체 안에서 나눈 구원의 체험을 이웃과 나누라는 파송 명령을 받는다. “나가서 주님의 복음을 전합시다.” 선교 명령이다. ‘미사’라는 말은 원래 ‘이것으로 다 끝났으니 흩어지십시오’(ite missa est)라는 파송 선언에서 나왔다고 한다. 모인 공동체가 흩어지는 사명(missa-mission)인 선교는 우리 각자가 삶으로 펼쳐야 할 새로운 전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로써 우리는 거룩한 것과 세속적인 것 사이에 놓인 틈새를 채우는 새로운 선교의 잔치를 마련한다. 이런 점에서 선교는 전례 이후에 우리가 세상 속에서 삶으로 펼쳐야 할 또 다른 전례이다. 여기서 우리는 모두 선교라는 전례의 공동 집전자이다.</p> <p>선교라는 새로운 전례의 공동 집전자로서 우리가 밖에 있는 이웃들과 복음과 전례의 신앙 체험을 나누려면 준비가 필요하다. 먼저 나뭇가지와 같은 개인의 생생한 체험을 교회의 전통이라는 줄기에서 이해하고, 이를 설명하는 개념과 내용을 익혀서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는 이야기로 정리해야 한다. 자기 혼자만의 생각이나 남에게서 빌려 온 이야기로는 이웃을 설득하기 어렵다. 우리 체험과 전통에 근거한 이야기와 내용을 마련해서 제공해야 한다. 이것이 계속되어야 할 신앙 교육과 전례 교육의 방향이다. 이런 배움과 정리에 뒤따르는 이득은 신자 자신에게도 크다. 이 과정에서 우리 자신의 신앙 체험에 대한 감각도 더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너무나 당연하여 무뎌진 듯한 감각과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서라도 이 배움을 되풀이해야 한다.</p> <p>구원의 역사를 ‘지금 여기’에서 경험하고 축하하며 이웃과 나누는 잔치인 전례. 이 전례를 신앙과 예배 생활, 그리고 선교의 중심으로 삼는 교회를 ‘전례 전통의 교회’ 혹은 ‘전례적 교회’라고 한다. 세계 성공회 안에는 여전히 여러 의견이 있지만, 적어도 한국 성공회는 이 전통을 중시했다. 다음 회에는 이 전통이 처한 도전을 살펴보기로 한다.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