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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토론 주제: The Study of Anglicanism-An Essay on Terminology http://liturgy.skhcafe.org/ A Korean Anglican Theology & Liturgy Forum en Sun, 25 Jun 2017 13:46:06 +0000 Cranmerian on "The Study of Anglicanism-An Essay on Terminology" http://liturgy.skhcafe.org/topic.php?id=1021#post-1906 월, 28 1월 2013 04:14:25 +0000 Cranmerian 1906@http://liturgy.skhcafe.org/ <p>Anglicanism, Ecclesia Anglicana, Anglican:용어에 대한 단평 </p> <p>J. Robert Wright</p> <p>성공회신앙(Anglicanism)에 대한 연구는 역사적으로 어느 시점에서 시작할 수 있고, 시작해야 하는가? 논리적으로 대답한다면, ‘Anglicanism’이라는 말이 하나의 사상으로 기록되어 존재하기 시작한 최초의 시점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 하지만 종종 씌여진 문자로 나타나기에 앞서 구술적으로 먼저 사용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그리고 보수적인 편집원칙들을 견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서, 옥스포드 영어사전(Oxford English Dictionary, 약어로 OED) 1933년판은 1846년 찰스 킹슬리(Charles Kingsley)에 의해서 ‘Anglicanism’이란 용어가 최초로 씌여졌다고 기록하였으며, 1972년 증보판에서는 이 시점을 1838년의 존 헨리 뉴먼으로 소급시켰다. 따라서 실질적인 의미, 즉 당대인들이 이 용어의 존재를 인식하였다는 의미에서 ‘Anglicanism’에 대한 연구는 겨우 19세기에서야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다수 사람들은 이 용어가 이보다는 더 넓고 깊은 의미를 나타내야 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Anglican Communion’이란 용어가 대서양의 양편에서 1851년에 처음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확실히 이 시점까지 형용사형인 ‘Anglican’이란 용어는 ‘잉글랜드의’ 또는 잉글랜드교회에 관련된’이라는 의미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교회론적으로 그리고 보다 넓은 의미로 ‘역사적으로 잉글랜드교회로부터 전해오는’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p> <p>과거의 Anglicanism이란 용어의 최초 사용은 뉴먼의 &lt;Apologia&gt;(1864)에 기록되었다. 즉, ‘성공회신앙은 잉글랜드교회가 옛날에 아타나시우스와 어거스틴이 신자들이었던 하나인 그리스도교회가 [...] 이 나라에서 계속된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또한 현대의 성공회 저술가들은, 이 단어의 사실적인 사용에 대해서는 아니라 하더라도, ‘Anglicanism’이란 개념에 대한 연대기적인 시각을 소급시키고 있다. 현대 성공회 신학자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존 맥코리(John Macquarrie) 교수는 ‘Anglicanism은 16세기에 시작될 때 스스로를 종파 또는 교파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으며, 1300여년 이전에 [켄터베리의] 성 어거스틴이 설립한 Ecclesia Anglicana를 단절없이 계속 유지하고 있다. 물론 오늘날 그리스도교의 이 교파는 잉글랜드의 경계를 넘어 널리 확산되고 있다’고 썼다(1970). 그리고 성공회의 신학방법론에 대한 주창자인 H. R. 맥아두(McAdoo) 주교는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1965).</p> <p>‘성공회신앙(Anglicanism)은 신학적인 체계가 아니며, 그리고 어느 특정한 저자의 저술을 이 신앙[그것의] 근본적인 부분으로 또는 이 신앙[그것]의 자기표현의 형태나 내용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 성공회신앙(Anglicanism)에서 공식적인 신학의 부재는 이 신앙의 본질적인 성격에 속하는 의도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성공회신앙은 항상 첫 5세기 동안의 분열되지 않았던 그리스도교회의 가르침과 실제(신앙활동practice)을 표준으로 존중하기 때문이었다.’ </p> <p>먼저 이처럼 ‘공식적인 신학’의 거부는 OED가 내린 성공회신앙의 정의인 ‘보편적인 그리스도교회(Catholic Church)의 순수한 상속자인 개혁된 잉글랜드교회(그리고 이와 상통하는 다른 교회들)의 교리와 권징을 따른다’는 설명과 상충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상 OED의 정의는 오늘날 널리 주장되는 것과 일치한다. 예를들면, 맥코리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p> <p>‘성공회신앙은 그 자체로 특별한 교리들을 갖고 있지 않으며, 단순히 그리스도교회의 보편적인 가르침을 따른다고 주장한다. 잉글랜드 종교개혁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주장에 대한 강력한 지지를 찾아 볼 수 있다. 잉글랜드에서는 루터나 칼빈처럼 지역교회에 자신의 신학적인 특징들을 각인시킬 수 있는 유일한 주도인물이 없었다. 잉글랜드 종교개혁의 의식적인 목표는 첫 5세기 동안의 분열되지 않았던 그리스도교회로 가능한한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p> <p>그리고 고 스테판 닐 주교는 그의 베스트셀러인 &lt;성공회신앙&gt;(Anglicanism, 1958)에서 더 나아가 ‘특별한 성공회적인 교리들은 없으며, 특별한 성공회적인 신학도 없다 [...]. 그러므로 엄격한 의미에서 성공회적인 신앙도 없다’고 주장하였다. 보다 공식적인 수준으로 1930년 람베스회의의 ‘세계성공회’ (Anglican Communion)에 대한 보고서는 이 회의의 결의안(Resolution) 48에서 다음과 같이 권고하였다. 이 결의안은 언뜻보면 성공회적인 교리에 관하여 근본적으로 새롭고 독특한 것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신앙을 근본적으로 맥코리와 맥아두 그리고 닐과 같은 방식으로 정의하였다. </p> <p>‘우리는 ‘성공회적인’(Anglican)이란 용어가 더 이상 본래적인 의미로 사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싶다. 대헌장에 나오는 ‘Ecclesia Anglicana’ (잉글랜드의 교회)라는 구절은 순수하게 지역적인 의미를 내포하였다. 오늘날 이 용어는 교회론적이며 교리적인 의미를 말하며, 세계성공회(Anglican Communion)는 인종적으로 잉글랜드와 관계있는 자들 뿐만 아니라, 잉글랜드교회가 항상 표방하는 교리들과 이상들에 근거한 신앙을 가진 자들을 포함한다.<br /> 이러한 교리들은 무엇인가? 우리는 보편적 신앙(Catholic faith)을 온전하게 그대로 보존한다. 즉, 성서에 포함되고, 사도신경과 니케아신경에서 진술되고, 여러지방에서 지역적으로 채택한 공동기도서에서 발표된 것처럼 복음의 성사들과 초기교회(Primitive Church)의 예식들에서 표현되며, 그리고 역사적인 세가지 사목직에 의해서 보호되는, 그리스도의 진리를 말한다.’</p> <p>1948년 람베스회의의 ‘세계성공회’(Anglican Communion)에 대한 보고서는 똑같은 주제를 반복하였다. 즉, ‘잉글랜드의 개혁가들은 새로운 교회를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그 교회는 1215년 대헌장에서 표현하였던 것처럼 바로 그 Ecclesia Anglicana인 잉글랜드교회였다. 이러한 이유로 세계성공회는 종파가 아니며, 보편적 교회(Church Catholic)의 진정한 일부이다.’ </p> <p>따라서 우리는 임시로 성공회신앙에 대한 연구를 이 용어가 처음 사용된 1838년 무렵보다 더 이른 시기에 시작하여야 한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질문은 이보다 얼마나 앞선 시기인가? 오늘날과는 상황이 다르지만, 리처드 후커의 질문으로 ‘우리의 교회[잉글랜드교회]는 어디에 숨어있었는가, 마틴 루터가 출생하기전 수백년 동안에 이 지상의 어느 동굴에서 잠자고 있었는가?’(Ecclesiastical Polity Ⅲ.i.10). 1930년과 1948년의 람베스회의들뿐 아니라 맥코리와 맥아두가 주장하였던 연속성은 성공회신앙의 요점들을 19세기 이전으로, 더 나아가 종교개혁 이전으로, 적어도 6세기에 켄터베리 교구를 설립한 시기까지, 더 나아가 역사적으로 교부시대[초기교회시대]까지그리고 교리적으로 신약성서 시대까지로 소급하여 이해하는 것으로 인식하여야 한다. 물론 최근 몇년동안에 초기교회 시대의 브리톤[영국섬]에서 고고학적인 증거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실체스터의 바실리카 건물(Silchester basilica), 힌톤-성마리아(Hinton-St Mary)의 모자이크, 셉톤 멜리트의 십자가, 워일즈비와 이크링햄의 납으로 만든 세례조, 워터와 밀든홀의 은으로 만든 귀중품들, ‘주기도문’을 새긴 사각 글자판 등은 2, 3, 4세기들에 영국섬의 그리스도교의 역사적인 기원들을 폭넓게 암시한다. 그러나 우리는 앞에서 언급한 권위자들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성공회신앙이 이러한 초기시대의 교회들과도 근본적으로 연속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동의할 수 있겠는가? 아니면 아마도 일부 변화가 있었으며, 대다수는 잉글랜드의 종교개혁때에 있었으며, 따라서 당시와 오늘날 성공회의 권위자들이 요점들이라고 인정하는 일부 새로운 교리들 또는 강조점이 있었기 때문에, 현대의 해설가들은 ‘성공회신앙’의 개념을 추적하는데 1838년을 넘어 16세기까지 되돌아 가지만 그 이상은 아니지 않은가? 일부의 주장처럼, 사실상 성공회신앙의 독특성은 오직 16세기에 시작되었다는 것이 정말로 사실인가? 보다 구체적으로 종교개혁의 시대에 ‘잉글랜드교회’(Church of England)는 잉글랜드에 있던 교회(Church in England)를 대체하였는가? </p> <p>한가지 중요한 견해는 훌륭한 역사가인 A. G. 디킨스(Dickens) 교수의 입장으로, 그는 1964년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p> <p>‘중세기의 일반적인 용어인 Ecclesia Anglicana는 종교개혁이후 로마교회와의 동등성을 주장하는 독립적인 국가단위의 교회(national Church)를 의미하는 ‘잉글랜드교회’(Church of England)를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중세기의 잉글랜드교회는 어떠한 실질적인 제한조건이 있었더라도 교황청의 신앙적인 지배권과 관할권을 인정하였으며, 이 교회의 법원들은 교황의 교령들과 세계적인 교회회의[공의회]들의 교회법들에 근거한 법률들을 집행하였다. 오직 주변적인 문제들, 예를들면 십일조세와 유언장의 검증과 같은 문제들에 대하여 이 법은 잉글랜드의 국가적인 관습을 반영하여 수정되었다.’ </p> <p>디킨스 교수의 입장은 그대로 수용되지는 않았지만, 공식적인 잉글랜드/성공회적인 입장에 대한 가장 날카로운 대비는 영국성공회 전국총회(Church Assembly, 1957)를 위하여 편집된 핼즈베리의 &lt;잉글랜드의 법률들&gt;(Laws of England)중 &lt;교회법&gt;(Ecclesiastical Law)이란 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p> <p>‘법적으로 잉글랜드교회(Church of England)는 [...] 잉글랜드인들이 597년에서 686년 사이에 점차적으로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면서 잉글랜드에 설립된 거룩한 공교회이자 사도적인 교회의 지체(branch)이며 [...]. 일반적으로 인정된 법적인 교리는 잉글랜드교회가 색슨시대에 설립된 최초의 교회들부터 내려오는 연속성을 가진 교회이며 [...]. 헨리8세의 치하에서 교황의 관할권을 배제하는 법률들을 통과시켰을 때, 잉글랜드교회는 이미 존재하고 있던 상태의 교회로 인식되었으며, 그리고 그리스도의 교회의 회중들과 달리할 의도가 없었으며, 다만 잉글랜드에 대한 교황의 권위는 권리침해로 인식되었다.’ </p> <p>이러한 이해들과는 대조적으로, 19세기말에 발생한 중세말기 잉글랜드에서 교황의 교회법의 지위에 대한 스터브스-메이틀랜드 논쟁이 되풀이되는 것을 알고있다. 이 고전적인 논쟁을 이 짧은 글에서 다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와 관련된 현대의 연구들로부터 오늘날 성공회신앙의 연구를 얼마나 빠른 시점부터 할 수 있는가의 질문과 관련된 몇가지 사항을 관찰할 수 있다. 첫째로, 오늘날에 분명하게 확립된 사실로 중세기의 일반적인 표현이었던 ecclesia Anglicana(대헌장에 나오는 ‘quod Anglicana ecclesia libera sit’구절처럼 문자적으로 ‘잉글랜드인들의 교회’ [English church]라는 의미)는 일반적으로 중세말기의 잉글랜드인들에 의해서 ‘잉글랜드교회’(Church of England)로 번역되었다. 또한 라틴어로는 1290년부터 ‘ecclesia de regno Angliae’로, 프랑스어로는 1341년부터 ‘eglise Dengleterre’로, 그리고 영어로는 14세기말부터 ‘chirche of Engelond’로 사용되었다. 둘째로, ecclesia Anglicana라는 표현은 1173년 교황 알렉산더 3세에 의해서(‘잉글랜드에 설립된 대주교들, 주교, 그리고 다른 주교들과 모든 성직자들과 백성들’), 그리고 1195년에 허버트 월터 대주교에 의해서 (‘하느님께서 잉글랜드에 세우신 서방교회의 한 부분’) 똑같은 정의로 사용된 용어였다. 세째로 ecclesia Anglicana는 또한 바로 이 당시에[12세기] 잉글랜드뿐 아니라 웨일즈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네째로 ecclesia anglicana에 상응하는 다른 교회들이 있다는 점은 (많은 사람들 중에서) 1434년 헨리 치첼(Henry Chichele) 대주교에 의해서 인정되었다. 즉, 그는 잉글랜드교회를 옛날에 ‘다른 교회들보다 뛰어난’교회였다고 말하였다. 다섯째로, ecclesia anglicana라는 표현은 (때때로 잘못 알려진 것과는 달리, 즉 1215년 대헌장이 아니라) 12세기 중반에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 이때에 이 표현은 기존의 표현들로 성 안셀름의 편지들에서 나타난 ecclesia Angliae(‘잉글랜드교회’), 그리고 12세기초 에드머(Eadmer)의 &lt;Historia Novorum&gt;에서 또는 이보다 앞서 비드(Venerable Bede)의 &lt;Ecclesiastical History&gt;에서 사용되었던 ecclesia Anglorum을 대체하였다. 여섯째로, 라틴어 형용사형인 Anglicanus는 9세기말에 처음 기록된 명사형인 ‘Angle-land’에서 유래한 것으로 중세기에 ‘잉글랜드의’ (English)를 분명하게 의미하였다. 교회에 관한 경우 이 용어는 지리적인 언급을 나타냈으며, 어떤 교리적인 제한 또는 특이성을 의미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옥스퍼드 영어사전으로 되돌아오면, 라틴어로 Anglicanus로 번역되는 ‘Anglican’이라는 형용사에 대한 가장 오래된[최초의] 의미는 정확히 같은 의미 즉, ‘교회론적으로 잉글랜드의, 또는 잉글랜드에 특유한’을 의미하였다. 그리고 두번째 의미는 단지 ‘개혁된 잉글랜드교회, 그리고 이 교회와 상통하는 다른 교회들에 관한’이라고 정의하였다. 이러한 표현에는 특별한 교리적인 정의를 포함하지 않지만, 이 용어의 지리적인 언급[의미]은 또한 오늘날 세계성공회를 구성하는 신자들의 다문화적이며 다인종적인 다양성과 모순되지 않는다.</p> <p>‘성공회신앙’이라는 용어는 19세기 이전에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았지만, 여러가지 번역들에서 나타나는 ‘Anglican’(잉글랜드의)와 ‘Church of England’(잉글랜드교회)라는 용어들은 중세기부터 근대까지 계속적으로 그리고 일관되게 비교리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공회신앙’에 대한 연구를 어느 시점에서 시작해야 하는가? 확실히 1838년은 아니다. 만약 이 용어가 좁은 의미나 규범적인 의미가 아니라 설명적으로 사용된다면, 성공회신앙은 궁극적으로는 개념적으로/교리적으로 신약성서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며, 역사적으로/ 지리적으로는 ‘잉글랜드의’(Anglican) 교회역사의 ‘초기시대’로 성 알반[알바누스]의 순교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그녀와 백성들이 ‘어떤 새롭고 낮설은 신앙들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시고, 원시교회와 공교회(Catholic Church)가 승인하고, 그리고 대다수 초기 교부들이 승인한 바로 그 신앙을 따른다’고 말하였다.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