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 번역 프로젝트 자료

  1. Cranmerian
    회원

    성공회의 영성

    A. M. Allchin

    I

    1869년 메튜 아놀드(Matthew Arnold)는 그의 책 <교양과 무질서>(Culture and Anarchy)의 서문을 토머스 윌슨[1663-1755] 주교의 책 <Maxims of Piety and Christianity>를 재발행할 것을 SPCK에 요청하는 호소로 시작하였다. 아놀드의 판단으로, 이 책은 ‘우리 나라와 민족이 신앙적인 저술을 통해서 할 수 있는 것들중 아마도 가장 최고의 사례’인 주교의 유명한 기도문집인 <Sacra Privata>[사적인 기도들, 공적인 예배에서의 기도와 반대되는 의미로 개별적인 기도-역자]보다 훨씬 더 가치있는 책이었다. 만약 윌슨이 1869년에도, 즉 16세기에서 18세기까지 성공회의 신학과 영성에 대한 고전적인 저서들을 활발하게 재발행하였던 40년간의 마지막 시기에 조금밖에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면, 오늘날에 그는 그때보다 훨씬 덜 알려진 인물임이 확실하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성공회적인 영성의 전 분야는 아직도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분야이며, 또한 많은 기본적인 저서들이 아직도 접근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18세기 소도와 맨(Sodor and Man)교구 주교의 저서들에서 19세기의 시인이자 문학비평가의 관심을 사로잡은 것은 무었이었는가? 왜 그는 부제로 An Essay in Political and Social Criticism(정치적 사회적 비평집)라고 명칭한 저서의 시작부분에서 신앙적인 질문들에 관한 사적인 생각들을 담은 책을 고집스럽게 언급하였는가? 그에 의하면, 너무나 자주 서로 분리되었던 영성적, 지성적, 인간적 특질들을 결합시키는 윌슨의 방식때문에 그들 찬양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윌슨은 ‘열정과 감격(unction)’을

    ‘직설적인 정직함과 평범한 분별력[양식]과 결합시킨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신앙은 열정과 감격으로 여전히 열광적이 될 수도 있으며, 정직과 분별력으로 신앙은 여전히 평범할 수도 있다 [...] 윌슨주교의 탁월함은 이 네가지 특질들의 균형에 있으며, 또한 이것들의 충만함과 완전함에 있다 [...] 그의 감격은 매우 완벽하며 그의 분별력과 매우 행복한 균형을 이루기 때문에, 그것은 부드러움과 뜨거운 자애[자비심]가 된다. 그의 분별력은 매우 완벽하며 그의 감격과 행복하게 결합되기 때문에, 그것은 절제[중용]와 통찰력이 된다.’

    여기에서 서로 다른 요소들 즉, 개인적이며 사회적, 활동적이며 명상적, 인간적이며 신적인 요소들이 조화롭게 뒤섞여 하나가 되는 원숙하고 완전한 하나의 품격(인격character)이 나타난다.

    아놀드의 소론을 읽어갈 때, 우리는 윌슨의 생애와 저서에서 아놀드의 감탄을 자아낸 다른 요소들도 발견한다. 먼저 아놀드에게 주교는 우리 서구사회의 전통중 소위 히브리적[유대교적인] 전통과 헬레니즘적인[그리스적인] 측면들의 결합을 구체화한 것으로 보였다. 즉, 의로움[하느님의 의]을 열렬하게 추구하면서도, 또한 천상적인[신성한] 아름다움을 명상하고, 모든 만물들에서 활동하는 하느님의 영광을 인식한다[깨닫는다]. 따라서 그는 19세기의 무절제한[난폭한] 개인주의에 꼭 필요한 개선책[구제수단]을 제공하였다. 그는 우리들에게 우리가 서로의 한 부분이라고 각성시킨다.

    ‘개인적인 완전성은 [아놀드에 의하면]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나머지 인간들이 완전하게 되지 않는한 불가능하다 [...] 그리고 이러한 효과에 대하여 윌슨 주교는 매우 인상적으로 말하였다. 즉, ‘우리가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그의 이익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이익 때문이다.’ 그리고 또다시 그는 ‘우리의 구원은 어느정도 다른 사람들의 구원에 의존한다’고 말한다.’

    그리스도인의 내적인 생활은 동료들과의 사회적 정치적 관계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놀드가 높이 평가하였던 것은 기도, 숙고, 그리고 명상의 내적인 생활의 중요성에 대한 윌슨의 살아있는 증언이었으며, 이는 조직화와 기계류에 대한 19세기의 집착에 대한 비판이었다. ‘이러한 기계류는 유익하다 하더라도 봉사하는 목적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종종 그 자체로 목적으로 이해되었다.

    이러한 전반적인 경향-지적한다면 20세기의 사상과 매우 비슷하게 들린다-을 배경으로, 아놀드는 교양(culture)에 대한 자신의 사상[생각]을 ‘완성, 즉 무엇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되는 것에서, 환경의 외적인 요소들이 아니라 정신과 영혼의 내적인 조건에서 성취되는 완전성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규정하였다. 이러한 이상은 윌슨의 문구가 아니라 아놀드의 문구에서 분명하게 진술되었다. 이 이상은 주교의 세계관(scheme of things)에서 확고한 토대였던 교리적 토대들로부터 의도적으로 단절되었다. 그러나 이는 그리스도교의 성결(성화 holiness)라는 보다 오래된 이상-즉 무엇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되는 것에 몰두하며, 그리고 발전과 성장을 위하여 인간적 마음과 정신의 잠재력을 중요시하는 목표, 이러한 목표의 완성-과 분명하게 관련되어 있다. 우리의 20세기에서도 많은 사람들은 인간생활의 명상적인 차원의 회복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아놀드는 이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19세기에서 이와 비슷한 필요와 비슷한 효과를 예견한 것으로 보인다.

    아래에서 설명하겠지만, 우리가 이 논점에서 시작한 것은, 메튜 아놀드가 성공회의 영성적 전통의 특징들중 일부를 매우 잘 식별하였기 때문만이 아니라, 훌륭한 성직자에 대하여 분명하게 불가지론적인 시인이자 문학 비평가로부터의 이러한 찬사는 지난 4세기 동안의 성공회 전통에서 시와 믿음, 문학과 종교[신앙] 사이에 존재하였던 밀접한 연결들을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물론 부분적으로 이러한 연결들은 성서에서 시작되었으며, 그리고 모든 종교개혁 전통들[교파교회들]의 기도와 신심에서 중심적인 자리를 차지한다. 잉글랜드의 경우, 윌리엄 틴들(William Tyndale)에서 시작된 성서번역은 흠정판(또는 제임스왕) 성서(1611)의 위업으로 완결되었다. 이 성서는 이후 3세기 동안에 거의 모든 영어권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독점적으로 사용되었다.

    성공회신앙 내에서 성서의 영향력은 성공회 전통을 형성하는데 적지 않게 중요한 두번째 책인 공동기도서의 감화력에 의해서 전달되고 강화되었다. 서로 다른 많은 요소들-즉, 일요일의 [감사]성찬례를 위한 본문들, 성무일과[매일기도]를 위한 본문들, 성직서품을 위한 예식들, 출생에서 매장까지 신자들과 함께 하는 비정기적인 예식들-한권의 책으로 결합시킨 것은 바로 크랜머의 특별한 재능이었다. 따라서 이 책은, 글을 읽을 줄 아는 신앙인의 손에서, 사적인 기도와 공적인 기도를 연결시키며, 성서를 예배에 사용되는 본문으로 안내하며, 그리고 인간생활의 사회적이자 개인적인 모든 영역을 포함하였다. 기도서는 그리스도인의 기도와 예배에 대한 균형적이고 포괄적인 비젼을 표현하였다. 기도서는 이를 사용하는 신자들에게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끼친 작품이었다. 예를들면, 1832년 나폴리에서 휴가중이던 청년 글래드스턴은 [자신도 모르게] 새로운 눈으로 기도서를 읽고 있다는 것을 깨닫았다.

    ‘기도서는 나에게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측면의 그리스도교를 제시하였다. 즉, 상징들의 매개역할, 은총의 통로들, 예수(머리 Head)로부터 교사들에 이르기까지 단절없이 내려오는 계보. 전반적으로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의 사상을 향상시키며, 새롭고 살아있는 방식을 통해서 거룩하신 하느님에 접근할 수 있는 웅장한 건축물이다.’

    바로 이 기도서에 교회를 시간[현세]과 영원의 공동체로 이해하는 비젼이 직설적이면서도 엄숙하며 기억하기 쉬운 산문들로 표현되었다. 그 속에서 개개인들은 하느님에 이르는 길을 발견한다.

    전례서에 함축되어 있는 문학과 신앙과의 이러한 [밀접한] 관계는 성공회 신자의 시와 산문의 전통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즉, 특별히 신학적인 시인들로 17세기의 존 던(John Donne), 조지 허버트(George Herbert)와 헨리 본(Henry Vaughan)으로부터 우리 시대의 T. S. 엘리어트(Eliot), W. H. 오든(Auden)과 R. S. 토머스(Thomas)를 꼽을 수 있다. 이는 이러한 전통에서 발견되는 매우 수준높은 산문들-신학, 설교, 또는 기도와 명상이든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외에도 17세기에서 후커, 앤드류스와 테일러 또는 트러헌(Traherne)을, 18세기에는 윌리엄 로(Law)를, 19세기의 코울리지와 존 헨리 뉴먼을, 그리고 우리 시대의 C. S. 루이스(Lewis)와 오스틴 패러(Austin Farrer)를 꼽을 수 있다. 이는 내용뿐 아니라 형식에서도 은총과 자연, 신앙과 문화, 신과 인간 사이의 연결에 대한 특별한 인식을 말하는 전통으로, 전반적으로 성공회 영성의 특징이었으며, 또한 영어권 세계의 지성사에 폭넓은 영향을 남겼다.

    우리시대에 이러한 밀접한 관계는 T. S. 엘리어트의 삶과 작품에서 가장 매혹적으로 발견된다. 만약 1867년 아놀드가 토머스 윌슨에 대한 부채[신세]를[[윌슨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는 인식을] 기록하고 싶었다면, 엘리어트는 1927년에 <For Lancelot Andrewes>이라는 조그만 책을 출판하면서 월슨보다 훨씬 더 유명한 주교로부터 받았다고 밝힌 영향은 얼마나 큰 것이었을까? 아놀드는 때때로 그 자신의 사상들을 표현하는 표지(peg)로 윌슨의 글에서 따온 인용문들을 사용하였다. 엘리어트는 엔드류스에 대한 소론에서 자신의 인생과 온전한 정신(sanity)에 커다란 영향을 준 사람에 관하여 쓰고 있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결국 이 책은 엘리어트가 공교회적인 신앙(Catholic faith)에 대한 자신의 충성을 발표하는 책이었다. 그는, 아놀드의 꿈처럼, 신앙을 대체할 수도 있는 독립적인 실재로서의 ‘교양’이 필요없었다. 그의 경우, 영성은 믿음에 근거해야 했으며, 기도는 교의의 지지를 필요하였다. 그리고 그가 보기에, 엔드류스에게 능력과 권위를 준 것은 바로 신앙과 기도, 신학과 체험, 감정과 사고의 독특한 혼합이었다. 엔드류스의 설교들에서 그는 설교문들이 해설하고 구현하려는 진리를 전달할 수 있게 만드는 교의적이자 열광적인(dogmatic-ecstatic) 특성을 발견하였다.

    ‘우리 시대의 모호한 전문에를 사용하는데 젖어있는 사람들에게, 모든 것에 대하여 하나의 어휘만을 사용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정확한 사상들로 표현할 때, [...] 신학의 언어가 [...] 핑계의 언어가 될 때[모든 것에 대하여 하나의 어휘만을 사용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정확한 사상들로 표현하고, [...] 신학의 언어가 [...] 핑계의 언어가 되고 있는 우리 시대의 모호한 전문어를 사용하는데 젖어있는 사람들에게], 엔드류스는 현학적이며 말뿐인 자로 보일 것이다. 오직 우리가 그의 산문에 빠져들어 그의 사상의 움직임을 따라갈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단어들에 대한 그의 검증이 동의의 환희로 종결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엔드류스는 하나의 단어를 선택하여, 우리가 결코 생각하지 못하였던 이 단어의 완전한 의미들을 얻을 때까지, 이 단어를 짜내고 짜내어 이 단어로부터 하나의 세계를 이끌어낸다.’

    성서의 다의적인 단어들은 풍부한 의미를 복원한다. 따라서 현학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상 커다란 집중력을 요구하며 그 자체로 기도와 연구와 명상의 오랜 훈련의 결과인 이러한 방법에 의해서, 앤드류스는 그의 주제 안으로 들어가 그 안으로부터 이를 확대할 수 있었다. 그는 그가 말하고 있는 것들을 이해하였던 자의 권위로 말할 수 있었다. 그는 두가지 통합과정을 통해서 이를 실행하였다. 첫째는 그 자신의 재능들, 생각, 감정과 의지를 동의와 경의[흠모 신뢰]라는 하나의 운동(태도movement)으로 통합시키는 것이며, 두번째는 그가 숙고하고 있는 주제와 자기 자신을 통합시키는 것이다.

    ‘앤드류스는 설교를 시작할 때,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주제에 완전히 몰입하여 다른 것들을 의식하지 못하며, 자신의 주제 속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그의 감성은 고조되며, 마침내 그가 보다 더 확고하게 파악하려고 노력하는 신비, 즉 ‘절대자와 독대하는 것’을 여러분은 알게될 것이다 [...] 앤드류스의 감성은 순수하게 명상적이다. 그것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며, 적절한 관조의 대상에 의해서 전적으로 야기된다. 그의 감성은 전적으로 그 대상에 의해서 억제되고 설명된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시대[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시인들중 한 분이 그가 참여하였던 전통을 대표하는 자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표현을 발견한다. 엘리어트와 앤드류스는 우리들에게 신학과 신비주의 둘다에 관한 것을 말할 수 있다. 필자는 이 두 단어를 함께 사용한다. 왜냐하면 이 단어들이 함께 사용될 때에만 앤드류스의 가르침과 그의 신심의 본질[성격]을, 그리고 그의 설교들 못지않게 <Preces Privatae>[사적인 기도문집]에 간직된 신앙에 대한 비젼을 올바르게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비주의’라는 단어는, 여러가지 차이들에도 불구하고, 항상 하느님과 인간, 성과 속 사이의 통합(unity) 또는 결합(union)을 의미한다. 그러나 앤드류스에게 이 통합은 동방종교들의 핵심인 정체성의 통합(unity of identity)이 아니라, 전체 그리스도교 전통이 말하는 상호내재(공재 상호교류co-inherence)과 상통(communion)의 통합이다. 최근에 니콜라스 로스키(Nicholas Lossky)는 렌슬럿 앤드류스의 설교에 관한 훌륭한 연구-이에 대한 중요한 부제는 <The Origins of the Mystical Theology of the Church of England>(잉글랜드교회의 신비주의 신학의 기원)였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영성적 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이 하느님과의 결합이라면, 우리는 랜슬럿 앤드류스의 신학이 신비주의 신학-이 용어의 의미를 정확하게 사용하는다는 조건에서-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신학의 전통적인 길들을 벗어난 것으로, 일부 사람들에게만 예외적인 체험으로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이와 반대로 이는 앤드류스가 모든 세례신자들에게 참여하도록 권고하였던 계시된 그리스도교 신비의 내면화에 관한 질문이다. 이 신학은 추상적인 고찰이 아니라 기도와 자기자신의 포기를 통해서 깊은 신앙 속에서 신비를 체험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신비적이다 [...] 앤드류스의 경우, 이것은 계시의 자료들-말하자면 성서적이며 초기교회 전통, 즉 그리스도교의 공교회성-에 충실할 때에만 가능한 것이 매우 분명하였다.’

    메튜 아놀드가 토마스 윌슨에 대한 찬사에서 우리들에게 절제(moderation)와 온전성(wholeness)에 대한 성공회적인 갈망, 즉 이 세상의 것들과 다음 세상의 것들 사이의 올바른[공평한] 균형에 대한 열망에 관심을 갖게 하였다면, 엘리어트는 앤드류스에 대한 그의 평가에서17세기 주교의 가르침에 나타나며 그 이후로 성공회 영성에서 완전히 결여된 적이 전혀 없었던 심오한 신비적 요소를 우리들에게 깨닫게 하였다. 이것이 종종 간과되었던 성공회적인 신심의 한 차원이다. 이 주제에 관한 표준적인 저서들중 일부는 이에 대하여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나 18세기의 찰스 웨슬리나 윌리엄 로, 그리고 19세기의 퓨지, 벤슨 또는 웨스트코트의 저서들을 깊이 살펴본다면, 이 주제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 시대에는 아마도 에벌린 언더힐, 찰스 윌리엄스와 마이클 램지의 저서들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주제는 정말로 토마스 윌슨의 분별력과 솔직함에서 완전히 결여된 것이 아니었다. 그의 금언들 중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목적은 신성에 참여함으로써 인간적 본성을 완성시키는 것이다’를 발견한다.

    지난 10년에서 15년 동안에 잉글랜드 그리스도교의 발전과정에서 14세기 신비주의자들의 영향을 인정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이제 우리들은 아마도 우리의 유산에서, 즉 조지 폭스와 윌리엄 블레이크와 같은 위대하면서도 상대적으로 고립된 인물들 뿐만 아니라, 앤드류스처럼 교회의 통일성과 보편성(공교회성 catholicity)에 깊은 관심을 갖고 신앙생활의 본류의 중심에서 살아온 인물들의 삶에서 계속된 흘러온 신비적 신앙을 인정할 때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 자신들의 자화상과 정체성에 대한 커다란 변화를 포함할 것이다.

    우리는 앞에서 두명의 저명한 시인이자 비평가의 저서를 살펴보았다. 그들의 저서들은 영어학과 영문학을 공부하는 곳마다 연구되고 있다. 우리는 앞에서 성공회의 두 주교에 대한 평가들을 살펴보았으며, 그들의 저서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며, 심지어 성공회의 신학연구 중심지들에서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우리는 앞에서 성공회 영성의 전통에 대한 핵심적인 특징들중 하나를 발견하였다. 20세기에서 성공회 영성은 신학부보다는 영문학부에서 훨씬 더 집중적으로 연구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영국과 미국뿐 아니라, 카나다와 호주, 일본과 같이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도 사실이다. 성공회적인 영성의 신학적인 토대들을 이해하려는 기본적인 연구서들중 두가지는 프랑스에 있는 대학교들의 영문학부에서 씌여졌다. 하나는 우리가 이미 언급한 니콜라스 로스키의 <Lancelot Andrewes, The Preacher, The Origins of the Mystical Theology of the Church of England>(Oxford 1991)이며, 다른 하나는 곧 살펴보려는 올리버 로여(Oliver Loyer)의 <L’Anglicanisme de Richard Hooker>(Lille/Paris 1979)이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영국의 문학과 문명사회를 공부하는 학생들을 성공회의 영성과 신학-특히 17세기 시인들의 저서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에 관심을 갖도록 매료시키는 것이 무엇인가를 질문하여야 한다. 이러한 전통에서 기도와 신심을 신학적 숙고와 학식과 결합시키도록 만드는 무언가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여기에는 인간적 상상력을 촉진시키는 무엇이 있다. 이들은 종종 성서뿐 아니라 초기교부들과 중세 스콜라신학자들의 그리스도교 전통을 깊이있게 공부한 저술가들이다. 내친김에 우리는 위대한 예술적인 작품들을 낳은 성공회전통의 이러한 역량은 음악의 분야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말할 수 있다. 종교개혁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잉글랜드의 대성당들을 중심으로 전례음악의 전통은 지속되었으며, 이를 넘어서 널리 확산되었다. 이러한 전통의 창조력은 잉글랜드에서 세속적 음악이 거의 중단되였던 18과 19세기의 기간 동안에 지속적으로 번창하였다는 사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성공회의 기도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예술작품들의 창작을 촉진시키는 이러한 지속적인 역량의 뿌리는 무었인가[역량은 어디서 유래하는가]?

    물론 이러한 문화적 현상에 관련된 많은 요인들이 있지만, 그러나 그 중심에서 우리는 종교개혁 이후 가장 위대한 성공회 신학자인 리처드 후커의 커다란 영향력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후커는 인문주의자(humanist)다. 그는 인간을 희생시키고 하느님을 높이 받들며 이성보다는 계시의 우월성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경향으로 빠진 칼빈주의 형태의 비판들을 반대하며, 인간 이성과 시민법(civil law, 로마법), 국가들의 역사적 경험, 교회들의 전통 등의 권리들을 옹호하였다. 로여(Loyer)의 지적처럼, 그는 후커의 사상에 대한 예리하고 상세한 연구에서 여러가지 서로 다른 차원들에서 결합(conjunction)과 참여(participation)이라는 범주들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상가이다.

    따라서 16세기의 논쟁 동안에 성서와 전통, 은총과 자연, 기도와 예배의 내적인 요소들과 외적인 요소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앙과 종교 사이를 분리시키는 주장들은 후커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거부되었다. 그는 항상 이 두가지의 결합을 추구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것에 대하여 매우 높이 평가하였으며, 또한 인간적 지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이것들은 정말로 인간적 행위들[활동들]이지만, 하느님으로부터 감화받고 격려받은 인간의 행위들이다. 결국에 후커의 인문주의는 매우 특별한 형태의 인문주의, 즉 신중심적인 인문주의(theocentric humanism)이다. C. S. 루이스의 표현처럼, ‘어떠한 모형 우주들도 그의 그것보다 더 많이 신성으로 가득차있지(누군가는 흠뻑 젖어있다고 말할 것이다) 않을 것이다. “하느님에게 속한 모든 것들은”, (오직 죄만 빼고), “그들 안에 하느님이 있으며 그리고 마찬가지로 그분 안에 그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들의 본질과 하느님의 그것은 전적으로 다르다”하느님은 말할 필요도 없이 초월적이지만, 또한 말할 필요도 없이 내재적이다.’

    우리는 또한 <잉글랜드교회의 치리제도의 원칙들에 관하여>중 상당부분이 기도와 예배에 대한 국교회의 전통을 옹호하는데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이에 대한 옹호에서 후커는 항상 특정한 논쟁점들-예를들면 신성한 시간들과 장소들에 관한 논쟁들-에 대하여 그것들 뒤에 숨어있는 신학적인 원리들을 추적하였다. 공동기도서에 대한 그의 옹호론에는 인간적 본성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포함되어 있었다. 즉, 인간의 본성은 개인적이자 사회적이며, 내적으로 뿐만 아니라 외적으로도 표현될 필요가 있다. 후커에게 기도의 깊은 뿌리들은 인간의 바로 그 본성에서 발견된다. 즉, 우리는 그 목적이 하느님 그 자신인 피조물로, 우리 자신들을 넘어서 하느님에게로 귀속되기를 갈망하는 피조물들이다. 로여의 주장에 의하면, 제5권에서 후커는 예배에서 설교와 교리의 요소들을 기도와 성사의 요소들과 결합시켜 이것들을 신의 주도와 인간의 응답이라는 단일한 운동[태도]으로 통합시킨다.

    ‘신의 참여와 현존-즉 하느님과 인간의 상호관계-에 관한 위대한 본문들은 당연히 교리와 기도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본문들을 완성시킨다. [감사]성찬례의 신비에서 말씀의 신비와 [성찬]기도의 신비를 [길게] 연장시키는 내적인 논리는 독자들에게 분명하게 입증된다. 사상의 진행과정은 성찬성사를 전례적인 거행[찬양]의 완결로, 성육신의 신학으로, 그리고 말씀과 [성찬]기도의 신학의 완성으로 만든다.’

    따라서 하느님이 성자의 성육신에서 우리의 본성을 취한 것, 우리를 그리스도의 지체로 만드는 말씀의 설교와 성사들의 거행을 통해서 그의 본성을 전가시키는 (부여하는imparting) 행동은 결과적으로 우리의 인간성을 하느님에게로 복귀시키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전 존재가 열망하는 복귀이다. 이렇게 밀접하게 연결된 주제들에 대한 후커의 연구로부터 17세기에 그리스도교 기도와 예배의 성찬례적인 성격에 대한 풍부하고 다양한 명상들이 나타났으며, 여기에는 코진, 브레빈트(Brevint), 테일러와 톤다이크 등이 기여하였다.

    후커는 이러한 예배활동에 몰입된 자는 오직 마음이나 또는 지성과 의지만이 아니라, 몸과 오감들이 각각 자기 역할을 하는 하나의 운동에서 모두 하나로 결합된 온전한(whole) 인간이라고 주장하였다. 이것이 음악을 칭찬하는 그의 유명한 문구의 논점이었다. 이 문구는 가장 감동적이고 정교한 그의 문체를 보여주는 한 사례 이상이다. 그의 글에서 자주 나타나는 것처럼, 플라톤주의적인 주제들과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주제들은 예배에서 뿐만아니라 모든 인간생활에서 음악의 위치를 찬양하는 같은 단락에서 서로 융합되었다.

    ‘다른 예술들 이상으로 이것은[음악은] 명상적인 이성과 지각적인 인식을 통합시키는 재능을 갖고 있다. 이것은 조화와 균형으로, 신적인 완성을 만드는 영혼의 최상위 부분에 말을 걸며 신적인 완성을 환기시킨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것은 인간의 열등한 재능들에게 말을 걸며 그것들의 능력을 이용한다.’

    음악은 지각들과 감성들을 자극함으로써 정신(영spirit)의 정점(height)을 자극한다. 따라서 음악에는 우리의 영성적 존재의 가장 안쪽에 있는 비밀들에 도달하기 위하여 몸을 굽혀 우리의 육체적 본성에 도달하려는 성사들과 비슷하다.

    이 모든 것들은 지나치게 엘리트주의적인 전통이라는 비판 즉, 학식있는 시인들의 전통이자, 귀족적인 신심의 전통이며, 대성당음악의 전통이라고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이러한 주장에는 부인하기 어려운 진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진실을 전부 말하는 것은 확실히 아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신앙과 기도의 전통은 하느님이 모든 피조물들에서 발견될 수 있다는 점을 확언하기 때문이다. [감사]성찬례의 성사는 보편적으로 적용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온 세상은 우리들에게 하느님의 현존을 알리는 전달수단으로 의도되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전통 안에는 만물의 성사적 특질에 대한 자각이 있다. 17세기에 토머스 트러헌(Thomas Traherne)만이 이 주제를 매우 훌륭하게 발전시켰다. 그는 크레던힐 교회의 관할사제로 신학적인 진지함을 거의 인정받지 못했던 저술가였다.

    18세기에 찰스 웨슬리의 ‘성찬례 성가들’(Hymns on the Lord’s Supper)의 한 구절은 성찬례가 보편적인 중요성을 갖는다는 확신을 분명하게 입증하였다.

    Return and with thy people sit
    Lord of the sacramental feast,
    And satiate us with heavenly meat
    And make the world thy happy guest.
    [성사적 잔치의 주님,
    돌아와 당신의 백성들과 함께 앉으소서.
    또한 우리들에게 천상의 음식으로 채우시고
    이 세상을 당신의 행복한 손님이 되게 하소서]

    그리스도가 그의 백성들 가운데 현존하는 것은 곧 온 나라의 백성들을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초대하는 것이다. 이러한 확신은 19세기에 그리스도교 사회주의운동에서 F. D. 모리스와 그 후계자들의 설교에서 새로운 형태로 나타났다. 그들에게 성사는 모든 인간적인 나눔의 증표이자 상징이었다.

    그러나 아마도 성공회 전통에서 더욱 더 중요한 것은 만물이 우리들에서 성사, 즉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만남장소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다. 17세기에 조지 허버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All may of thee partake
    Nothing can be so mean
    That with this tincture ‘For thy sake’
    Will not grow bright and clean.
    [모든 사람들이 당신께 참여하도록 허락받는다.
    어떤 것도 하찮은 것이 될 수 없다.
    이 작은 것으로도 당신을 위한다면
    빛나고 순수해질 것이다]

    따라서 가장 비천한 일상적인 활동들이 신적인 활동이 될 수도 있다. 2세기후 똑같은 사상은 존 키블에 의해서 훨씬 더 친밀한 시구로 표현되었다

    The trivial round, the common task
    Will furnish all we ought to ask,
    Room to deny ourselves, a road
    To bring us daily nearer God.
    [하찮은 일상, 일상적인 일도
    우리 모두에게 우리 자신을 부인하는 자리를,
    매일매일 하느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는 길을 제공한다]

    이러한 역설적인 방식으로 존 키블-뉴먼은 그를 옥스퍼드운동의 진정한 최초의 창시자라고 평하였다-은 그가 성공회 전통의 오랜 문학적 문화[분위기]에 가장 깊이 빠져들었던 것으로 보이는 바로 그 순간에 만물들과 모든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인식을 증언하였다. 키블은 옥스퍼드대학교의 시문학 교수였으며, 관례에 따라 라틴어로 강의하였으며, 그리고 1814년 이 강의를 라틴어로 출판하였다. 영어 번역서는 1911년에서야 출판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 강의들을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들중 가장 유명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유명한 시인중 하나인 윌리엄 워즈워드에게 헌정하였다. 이 헌정사에 표현된 용어들은 이 글의 상황에서 주의깊은 관심을 요구한다.

    ‘윌리엄 워즈워드에게/ 전정한 철학자이며 감화을 받은 시인/전능하신 하느님의 특별한 은사와 소명으로/그가 인간에 대하여 또는 자연에 대하여 노래할 때/인간의 마음을 거룩한 것들로 승화시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며/또한 가난하고 단순한 것들의/대의를 옹호하는 것을 잊지 않았으며/또한 위험한 시기에서도 성장하여/가장 감미로운 시이자/ 고결하고 거룩한 진리의/으뜸가는 사목자가 되며 [...]’

    여기서 그리스도인 사제는 그리스도인 시인에게 찬사를 보내며, 그들의 소명들이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인정하였다. 여기서 특별히 그는 우리의 마음과 지성을 당시의 사물들을 통해서 영원한 것으로 고양시키는 시인의 재능을 찬양하며, 가난하고 단순한 자들의 주장을 옹호하는 그의 소명을 인정하였다. 옥스퍼드운동은 매우 학구적인 환경에서 시작되었다. 이것은 정신과 영성(mind and spirit)의 운동이었다. 그러나 곧 이 운동은 남성과 여성들을 다른 동료 인간들에게 봉사하기 위하여 19세기 잉글랜드의 빈민가로, 그리고 미국의 새로운 서부 변경지대로 파송하는 결과를 낳았다. 왜냐하면 토머스 윌슨의 가르침처럼, 각자의 구원은 모든 인간들의 구원과 결합되어 있으며, 또한 ‘우리의 삶은 곧 우리 형제들과 공유하는 삶이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루이 부이에(Louis Bouyer)는 뉴먼에 대한 연구에서 다음과 같이 논평하였다.

    ‘새로운 운동의 가장 강력하면서도, 또한 가장 존경스런 매력은 동시적으로 성결(holiness)을 열망하고 이를 창조하였던 한 그리스도교에 대한 사례들을 촉진시키고 배가시키는 것이었다. 이러한 성화를 위하여 그러한 열성적이며 효과적인 지원을 얻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종교가 추상적으로가 아니라, 즉각적이며 실재적으로 만들어 놓은 요구들이었다.[이것이 바로 이 종교가 추상적으로가 아니라 즉각적으로 주장한 요구들이었으며, 그리고 이를 얻기 위하여 그러한 성사적이자 유효한 지원을 얻었던 요구들이다]’

    지적 뿐만 아니라 감성적, 명상적 뿐만 아니라 활동적인 모든 인간적인 재능들은 이 운동에 참여하였다.

    이 소론에서 우리는 성공회의 영성적 전통의 핵심적인 특징들중 일부, 특히 온전성과 균형에 대한 추구, 모든 인간적인 생활에 대한 관심에서 이를 외적으로 확장하면서도 이와 동시에 인간적 생활의 중심에서 하느님의 현존의 신비의 심오함[높이와 깊이를]을 탐구하기 위하여 내면으로 향하려는 욕구를 관찰하였다. 우리는 1590년부터 1690년 사이의 한 세기만이 아니라, 그 이후로 다양한 방식으로 영성과 문학 사이의 연결이 얼마나 밀접하였는지를 살펴보았다. 수세기에 걸쳐서 신심안내서들, 성서와 기도서에 관한 주석들, 설교집과 명상집들, 시와 산문집들에 반영되었던 기도와 명상의 내적인 생활과 전례와 세상에 대한 봉사의 외적인 생활을 동시에 실현하는 관습들이 있었다. 우리 시대에서도 마찬가지로, 특히 지난 30년동안에 숙고적인(reflective, 사려깊은) 영성과 영성적 신학의 전통은 새로이 번창하였다. 우리는 앨런 에클스톤(Alan Ecclestone), W. H. 벤스톤(Vanstone), 모니카 퍼롱(Monica Furlong), 케네스 리치(Kenneth Leech)와 로완 윌리엄스(Rowan Williams)와 같은 다양한 저술가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서 언급되지 않았다. 영성 저술가들 전체, 즉 17세기의 케임브리지 플라톤주의자들, 18세기의 복음주의자들과 감리주의자들(Methodists) 19세기 후기 앵글로-가톨릭신앙의 발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19세기의 문학과 신앙의 역사에서 코울리지의 중심적 위치에 대해서는 겨우 암시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날에도 성공회신자들이 거의 인식하지 못하였던 전통의 계승자들이라는 사실을 겨우 살펴보기 시작하였다. 여기서 기억의 회복이 필요하며, 이는 정체성의 회복을 허용할 것이다. 우리는 구약과 신약 성서에서 남녀 신앙인들의 삶에서 만이 아니라, 그 이후 그리스도교회의 역사에서도 하느님의 현존과 권능에 대한 기억(anamnesis)을 만들 필요가 있다. 우리 자신의 과거로부터 나온 목소리들은 오늘날 우리가 반드시 들을 수 있어야 하는 말들로 우리에게 말한다. 우리는 T. S. 엘리어트의 신앙적 믿음의 발전과정에서 랜슬럿 앤드류스의 영향을 살펴보았다. 사이먼 와일(Simone Weil)의 영성적 여정에서 중대한 순간을 결정지었던 것은 바로 조지 허버트의 글 몇줄이었다는 점은 매우 놀라운 사실이다. 이러한 본문들은 다른 사람들도 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여기서 오늘날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주교들에 대하여 말하였다. 이제 또 한분의 주교로 이 글을 결론지으려 한다. 그는 에드워드 레이놀즈(Edward Reynolds)로 1660년에서 1676년까지 노리치 주교를 지냈다. 아마도 공화정시기 동안에 그가 당시의 장로제 체제에 여러가지 이유들로 순응하였기 때문에, 그는 거의 전적으로 무시되었다. 모든 성공회신자들은 그에게 감사의 빚을 지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1662년 기도서에서 가장 사랑을 받았던 두 기도문들-일반 감사기도(General thanksgiving)와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위한 기도(Prayer for All Sorts and Conditions of Men)-fmf 집필하였기 때문이다. (이 기도문들은 새로운 전례서들의 제작과정에서 다소 수정되었다.) 60년전 P. E. 모어(More)와 F. L. 크로스(Cross)는 그들의 모음집인 <Anglicanism>에 그의 저서들중 4편의 발췌문을 수록하였다. 이 글들로부터 우리들은 그의 문체의 아름다움, 그의 통찰력의 깊이, 그의 학식의 범위, 그리고 그의 지성의 명료성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의 설교들이나 보다 형식을 갖춘 논문들-예를들면 <The Passions and Faculties of the Soul of Man>-을 숙독할 때에 이러한 특성들은 보다 분명하게 나타난다.

    성사들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말할 수 있는 이러한 사람의 활동은 단순히 역사적인 관심거리가 아니다.

    ‘이는 하느님의 자비외에 다른 것들에서는 거의 모순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자비는 너무나 깊어서 어떠한 생각도 이를 헤아릴 수 없으며, 너무나 명료해서 한 눈으로 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며 [...] 하느님의 자비는 너무나 겸손하여, 우리가 우리의 이해력으로 하느님의 신비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느님은 자신을 낮추어 이 신비들을 우리의 감각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이다.’

    그는 창조와 구속의 활동에서도 마찬가지로 드러나는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느님의 모든 활동들의 전체는 세상과 교회이다. 세상은 그것의 아름다움과 질서정연함 때문에 코스모스(kosmos)라고 불린다.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은 주께서 볼때에 매우 유익한 것이었다. 그러나 주님은 보다 풍부한 영광을 물려주기 위하여 교회를 선택하셨다 [...] 이 세상에서 우리는 그분의 위대함의 발자취들을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에서 그분의 신성함[거룩함]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는 모든 다른 인간적 사랑들이 그 의미와 방향을 찾을 수 있는 살아있는 중심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말할 수 있는 자이다. 즉,

    ‘이러한 열정의 모든 규칙적인 운동들에서 원동력 또는 주동인(first mover)은 하느님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근거로 하는 하느님의 사랑이다. 하느님의 무한한 자애에 대한 이해에 심취한 영혼은 하느님의 영광과 현존에의 연합과 참여를 열렬히 열망하고, 이에 대하여 소위 ‘부름을 받는다.’ 스스로 하느님께 헌신하며 (왜냐하면 사랑에 의해서 인간은 그가 사랑하는 것에 헌신하기 때문이다), 모든 행동들과 애정들을 하느님의 의지에 일치시키며 [...] 그러므로 하느님의 사랑과 두려움을 말하는 현명한 사람은 우리들에게 그것은 totum hominis, 인간 전체[전인]라고 말한다 [...] 하느님 없이 또는 하느님을 초월하여 어떤 피조물을 사랑하는 것은 쿠피디타스(cupiditas) 즉, 모든 죄의 ‘formale’[형태, 형식]인 욕망[탐욕]이다. 우리는 이것 때문에 하느님을 버리고 다른 것들로 눈을 돌린다. 그러나 하느님 아래서 그것들의 올바른 질서속에, 그리고 하느님의 경우, 그것들의 올바른 목적에 이르기까지 피조물들을 사랑하는 것(왜냐하면 하느님은 스스로 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카리타스(caritas) 즉, 진정하고도 규칙적인 사랑이다.’

    인간이 하느님을 사랑하고 알게될 가능성, 즉 하느님의 영광과 현존에 참여하여 하나로 연합될 수 있는 인간의 능력[가능성]을 확언함으로써, 그리고 이러한 가능성은 인간의 마음과 지성의 열렬한 갈망의 진정한 궁극적 완성이라는 점을 확언함으로써, 성공회의 영성전통은 보편적으로 그리스도교적인 것이 아닌 어떤 것을 주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레이놀즈는 많은 다른 상황들에서 지적하는 논점인 즉, 창조된 모든 것들은 하느님 안에서 그리고 하느님을 위하여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에는, 이러한 특별한 방식의 기도와 신앙-즉 피조된 질서의 모든 다양성들을 하나로 모아 하느님 나라의 통일성으로 결집시키려는 소망-을 특유하게 강조한다.

    ‘그리고 서로 분리된 것들을 하나로 모으고 결합시키는 것은 (성크리소스톰의 말처럼) 사랑의 놀라움[경이]이다. 그 안에는 지상의 교회의 상통의 신비(mystery of communion)가 있으며, 널리 퍼져있는 신자들 모두와 함께 그리고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고 이미 승리하여 천국에 있는 다른 신자들과 함께 나눈다.’

    참고문헌

    Allchin, A. M., ‘Holiness in the Anglican Tradition’, in M. Chavchavadze (ed.), Man’s Concern with Holiness, Hodder and Stoughton, London, 1970, pp. 37-58.

    Bouyer, L., Orthodox Spirituality and Protestant and Anglican Spirituality. Burns and Oates, Tunbridge Wells, 1966.

    Lossky, N., Lancelot Andrewes, The Preacher (1558-1626); The Origin of the Mystical Theology of the Church of England. OUP 1991.

    Loyer, O., L’Anglicanisme de Richard Hooker. Université de Lille 1979.

    McAdoo, H. R., Anglican Heritage: Theology and Spirituality. Canterbury Press 1991.

    Martz, L. L., The Poetry of Mediation: A Study in English Religious Literature of the Seventeenth Century. Yale University Press, New Haven CT, 1954.

    Moorman, J. R. H., The Anglican Spiritual Tradition. DLT, London, 1983.

    Prickett, S., Romanticism and Religion: The Tradition of Coleridge and Wordsworth in the Victorian Church. CUP 1976.

    Stevenson, K., Covenant of Grace Renewed: A Vision of the Eucharist in the Seventeenth Century. DLT, London, 1994.

    Stranks, C. J., Anglican Devotion: Studies in the Spiritual Life of the Church of England between the Reformation and the Oxford Movement. SCM, London, 1961.

    Thornton, M., English Spirituality: An Outline of Ascetical Theology according to the English Pastoral Tradition. SPCK, London, 1963.

    2012년 9월 2일 #

이 토론 주제에 대한 RSS 피드

답글

글을 올리려면 로그인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