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 번역 프로젝트 자료

  1. Cranmer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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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공회 도덕론
    Paul Elmen

    어떤 종류의 도덕이론과 도덕적 행동들이 독특하게 성공회적인가를 묻는 것은 모호한 대답을 유도하는 것이다. 즉, 응답자의 당파에 따라, 신학적 전제들에 따라, 그리고 당대의 편견들에 따라 여러가지 답변들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이론에 대하여 하나의 통일적인 성공회적인 도덕론은 없으며, 그 실제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또한, 도덕론(moralism)은 전통적으로 성공회신자들의 우선적인 관심사였으며, 사실 각 세기마다 성공회신자들은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모호한 의미를 적절하고 구체적인 결정이나 확고한 행동으로 전환시키는데 기여하였다. 후커가 그의 책 <잉글랜드교회의 치리제도의 원리들에 관하여>에서 말한 것처럼, 단지 ‘우리가 막연히 침묵으로 이러한 것들이 꿈같이 지나가도록 허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후손들은 알게 될 것’이라 하더라도, 이러한 기여들중 일부는 다시한번 설명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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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몇가지 공통적인 특징들은 발견될 수 있다. 비아 메디아의 목표는, 특별한 의미는 아니라도, 공교회적(초기교회적Catholic)이자 개혁적(Reformed)인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노력이다. 도덕신학(moral theology)에서 이것[비아 메디아]은 권위와 자유 사이의 중간지대를 요구하였다. 폴 엘머 모어(Paul Elmer More)는, 그의 글모음집 <Anglicanism>에서, 이러한 노력은 로마와 제네바의 주장들을 거부하는 것으로 정치적인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으며, 또는 존 돈(John Donne)이 인정한 것처럼, 어려움들을 회피하는 편리한 방식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모어의 설명이 보다 적합할 것이다. 즉, ‘비아 메디아의 목표는 우리의 사고를 넘어서는 자료들로부터 잉글랜드적인 기질에 내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 균형, 자제, 절제, 절도(measure)에 대한 사랑을 종교에 도입하고, 이를 “이성의 빛”에 근거시키는 것이다.’ 성공회적인 도덕론(Anglican morality)의 특징은 아우레아 메디오크리타스(aurea mediocritas), 즉 중용(Golden Mean)으로 너무 지나치지 않는 것이었다.

    또 하나의 주요한 주제는 시작부터 현재까지 성공회의 도덕논문들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이론(theoria)보다는 실천(응용praxis)을 강조한다. 폴 엘머 모어에 의하면, ‘만약 우리가 성공회신앙의 궁극적인 원리(ultimate law)를 표현하는 단일한 용어를 찾는다면, 나는 우리가 그 자체로 독특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 이 제목을 채택하는 것보다 나은 것을 찾을 수 없다. 즉, 나는 이를 “실용주의” (pragmatism)라고 부른다.’

    이론적인 통찰보다 실용적인 응용에 대한 선호는 물론 성공회의 창착물이 아니다. 이는 세계의 모든 종교들에서 다양한 강조들로 나타난다. 일신론(Monotheism)은 하나의 형이상학적인 이론으로 세상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의 생활방식이었다. 이것은 예언자들과 그 이후의 탈무드 현인들을 고무시켰던 중심사상이었다. 요한은 예수가 신적인[하느님의] 인식은 오직 행동의 시험후에야 가능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고 보고하였다. 즉,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려는 사람이면, 이것이 하느님으로부터 나온 가르침인지 또는 내 생각에서 나온 가르침인지를 알 것이다’(요한 7.17). 영국적 기질은 특별히 이러한 성서적 이상들을 기꺼이 수용하였으며, 일부 경험론자들은 더 나아가 모든 지식이 체험으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하였다. 과학자들이 왕립협회(Royal Society)를 위하여 선택한 구호는 눌리우스 인 베르바(Nullius in Verba, 참조; Horace, Epistles 1.1.14로 다른 사람의 말을 그대로 믿지말라는 뜻)였다.

    실용성에 대한 강조는 영국 문화사의 한 특징이 되었으며, 성공회적인 도덕론은 이것을 신앙적인 형태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pp. 191-3 참조). 14세기에 윌리엄 랭글런드(William Langland)의 <농부 피어스>(Piers Plowman)는 모든 인간들에 내재하는 선(미덕goodness)의 힘, 즉 구원을 받기 위하여 해야할 일들을 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을 지적하였다. 랭글런드는 심지어 밭을 일구는 쟁기질도 영성적인 중요성을 갖고 있다고 이해하였다. 중세시대의 특징인 봉건적-군주제적 세계의 신학적 통일성은 잉글랜드에서 부르조와 민주주의와 산업시대의 도래 때까지도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성직자들은 세속사회의 불의에 반대하여 도덕적으로 저항하는 것이 그리스도교 신학에 부적합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교 신학으로부터 직접 유래한다고 생각하였다. 라인홀드 니어버는 이를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제럴드 윈스턴리(Gerald Winstanley)-17세기 디거즈[밭갈이파]의 지도자-로부터 지난 몇십년 동안의 키어 하디(Keir Hardie), 로버트 스밀리(Robert Smillie), 아서 핸더슨(Arthur Henderson), 조지 랜즈베리(George Lansbury), 스테포드 크립스(Stafford Cripps), 애클랜드(Acland)에 이르기까지, 영국의 그리스도교-국가교회든 종파교회이든지-는 종교사회적 비판의식을 가진 예언자들을 배출하였다.’

    니이버는 그럴듯한 추측을 제공하였다. 즉, ‘또한 영국에서 연속적으로 나타난 그리스도교적인 기풍의 성격도 1688년 이후로 단절없는 사회적-정치적 역사 때문이었을 것이다.’ 니이버가 설명한 것은 에른스트 트뢸치(Ernst Troelsch)가 sect-type [비국교회(종파) 형태]에 대비하여 명칭한 church-type[국가교회형태]의 독특한 교회와 세계와의 관계이다. 후자[교회형태]에서 교회의 조직화된 구조는 공식적으로 사회의 정치적 권력과 관련되어 있으며, 따라서 ‘국가의 법으로 규정되어’(국가교회established) 있으며, 따라서 자유-교회들[비국교회들]의 눈에는 ‘현세적으로’ 보일 것이다.

    개념이 아닌 행동으로 스스로를 표현하였던 신학은 17세기 잉글랜드교회 [성공회]의 인기있는 주제였다. 이에 대한 사례는 거의 어디서나 찾을 수 있다. 존 스미스-케임브리지 플라톤주의자들중 하나-의 논평은 전형적일 것이다. 그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교회법들, 신앙조항들과 행동규범들을 명확히 설명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가 ‘이 세상을 의견들과 주장들로 채우고 풍부하게 만들기 보다는, 의견들과 인식들 그리고 모든 영성적인 이해들을 실현시키는 최고의 방법으로 진정한 신심과 하느님같은 순수함들로 가득채우는데 관심하였기 때문이다. 그의 주요한 목적은 신실한 생활(거룩한 삶Holy Life)을 증진시키는 것이었다.’ 조지 허버트의 ‘만병통치약’(Elixir)은 아마도 이론을 응용으로 전환시킨 17세기적 표현의 가장 대표적인 시적인 사례일 것이다.

    ‘나의 하느님이자 왕이시여, 나에게 가르쳐 주소서,
    모든 것들 속에서 당신을 볼 수 있도록,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어떤 것이든
    당신을 위하여 하는 일이 되도록[...]
    이러한 뜻을 가진 종은
    허드런 일들을 거룩한 일로 만들며,
    누가 방을 청소하든, 당신의 법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런저런 행동들을 훌륭한 것으로 만든다.’

    제레미 테일러의 <거룩한 삶>(The Rule and Exercise of Holy Living)(1650)은 이 시기의 그리스도교 도덕성에 대한 전형적인 성공회적인 신학적 진술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잉글랜드교회를 비밀집회로 만들고 사제의 공식적인 지도활동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던 공위시대는 테일러가 이 책을 집필하게된 직접적인 계기였을 것이다. 많은 국교회신자들은 퓨리탄신학을 조롱하였으며, 심지어 국왕시해자로까지 표현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현실주의(기회원인론 occasionalism)는 생활구조들에 대한 신학적 숙고라는 성공회적인 특징의 여러 측면들중 하나이다. <거룩한 삶>은 잉글랜드 종교개혁 이후부터 뚜렷하게 나타나고, 콜렛와 에라스무스 그리고 모어가 강조하였던 전통을 계승하였다. 즉, 도덕론은 교회의 관심의 전면에 두고, 교의는 그 뒷면에 보존한다.

    실천이 교리의 건전성을 결정짓는다는 주장은 특정한 위험들을 수반하였다. 예를들면, 제레미 테일러는 원죄교리에 적대적이었다. 왜냐하면 이 교리가 신학적으로 불건전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악한 생활을 정당화시키는데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펠라기우스주의 때문에 그는 잉글랜드의 주교직을 잃을 수도 있었다. 17세기의 윤리학자[도덕가]들은, 우리 시대에 에브린 워(Evelyn Waugh)의 소설 <다시 가본 브라이즈헤드>(Brideshead Revisited)에서 예증된 것처럼, 임종때의 참회를 허용하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리에 적대적이었다. 17세기의 신학자들은 마지막 순간의 용서에 대한 세바스티안의 신뢰는 십자가에 매달린 도둑의 사례에 지나치게 의존하였다고 말할 것이다. 이것은 죄인이 개혁된 생활을 실행할 필요성을 제거하였기 때문에 불완전한 참회를 의미하였다. 테일러는 부도덕성이 이단의 증거라고 확신하였다. 즉, '신앙은 교리의 교훈일 뿐 아니라, 예절과 거룩한 생활의 교훈이기 때문에, 신경의 조항들에 반대되는 것이나 나쁜 생활을 가르치는 것은 곧 이단이다.’

    비판자들은 성공회 신자들 중에서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이처럼 교리보다 도덕론의 선호하는 것이, 벨라르민(Bellarmine)의 주장처럼, ‘그리스도의 이름을 깨물게 되는’ 매우 불행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비난은 곧 그러한 급진적인 내재론이 18세기의 이신론을 낳았으며, 20세기에는 세속주의를 낳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세한 도덕론의 혜택들 또한 분명하였다. 결의론(casuistry)은 가장 중요한 것이 되었으며, 올바른 생활, 특히 건전한 사회적 행동의 필수성은 복음을 살아있게 만드는 효과를 주었다. 교의의 역할이 줄어들 때에, 관용[신앙의 자유]은 보다 보편적인 것이 되었다. 어쨌든 성공회신앙은 독특한 도덕적 형태 즉, 일종의 건전한 황홀경으로, 이성적인 남성들과 여성들이 ‘신실하고, 의로우며, 건전한 생활’(공동기도서)을 실현할 수 있는 방식을 발전시켰다. 성육신, 즉 말씀이 육신이 된다는 요점에 대한 인식은 금욕주의와 도덕론 사이의 결합[연합]을 요구하였다. 그럼으로써 모델을 법률적인 형태에서 사목적인 형태로 전환시키고, 또한 평신도 소명의 확산과 설교를 활성화시키는데 기여하였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신앙을 단순히 고백하는 것보다 이를 실행하여야 한다는 권고는 즉각적으로 보완적인 지침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공식문구들에서 빠진 부분은 바로 그리스도교적인 생활의 구성요소들에 대한 해설[설명]과 그러한 목표들이 성취되었는지를 측정하는 일종의 기준들이다. 결국 신실한 행동의 특징은 무었이었는가? 플라톤을 따라서, 어떠한 특이성이 하느님의 거룩한 의지를 적절하게 반영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질문들로부터 중세시대는 연역적이며, 이성적이며, 아리스토텔레스-토마스 아퀴나스적인 도덕신학이라는 학문[과학]을 발전시켰다. H. R. 맥아두(McAdoo)가 그의 주요한 해설서인 <The Structure of Caroline Moral Theology>(1949)에서 지적한 것처럼, 17세기[Caroline]의 도덕적 원리는 로마 가톨릭의 선례들로부터 유래하면서도 혁신적이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잉글랜드 학자들이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즉 피조된 자연의 유효성과 자연법들을 부인하지 않으면서 이와동시에 하느님의 은총의 현존을 인식하는 것-을 제공하였다. 아퀴나스의 폭넚은 포용에서 창조의 질서는 즐겁게 구원의 질서와 결합된다. 형상인(形相因formal cause형식적 원인)은 인간, 즉 이성적 동물로 스스로를 하느님에 의해서 규정되었고 완성과 완전을 향하는 행진에서 자신의 적합한 자리를 찾기를 기대하는 우주적 질서의 일부임을 발견한다. 문학세계는 이러한 기본적인 인간론을 반영하였다. 세익스피어의 희곡들은 부인할 경우 혼란과 죽음이라는 커다란 대가를 반드시 치러야 하는 하나의 우주적 질서라는 가설에 의존한다. 만약 이러한 본질적인 연결관계에 도전한다면, <트로일루스와 크레시다의 비극>(Tragedy of Troilus and Cressida)에서 율리시스가 말한 것처럼,

    ‘힘은 우둔함의 주인이어야 하며,
    그리고 무례한 아들은 그 아버지를 때려 죽일 것이다.’

    혼란에 반대하는 신비스런 체재(stay) 즉, 질서(절대적 질서Order)는 인간의 발명품이 아니라, 하느님의 계획으로 이해되었다. 리처드 후커, 제레미 테일러, 로버트 샌더슨과 조지프 홀의 도덕신학을 자세히 연구할 때에 나타나는 사소한 차이들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인식은 17세기의 주요한 주제였다. 질서내에서 한 인간의 정확한 지위에 관한 질문은 대답되지 않았다. 이미 알려진 계서조직 (계급조직 hierarchy)의 부재에서, 그리고 권위있는 교회당국으로부터 보상과 처벌의 지원을 받는 발전된 결의론이 없는 상태에서, 우주적 질서(synderisis)를 구체적 경우들에 적용(syneidesis)시키는 방식은 볼확실하였으며, 따라서 성공회 학자들은 할 수 없이 도덕적 결정들의 도구로 양심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성공회 학자들이 쓴 세가지 중요한 저서들은 이 문제를 다루었다. 즉, 샌더슨의 <De Obligatione Conscentiae>(1660), 테일러의 <Ductor Cubitantium>(1660), 그리고 케네스 커크(Kenneth Kirk)의 <Conscience and Its Problems>(1927).
    17세기는 결의론과 도덕철학적 숙고(metaethical reflection)에서 생산적이었으며, 또한 성직자들이 정치적 구조들에 깊이 참여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한 시기였다. 리처드 벤크로프트(Richard Bancroft)-런던주교-는 서적의 출판을 허가하고, 선동적인 서적의 반입을 차단하기 위하여 항구를 감시하며, 네델란드와의 조약을 협상하는 대표단을 이끌었다. 윌리엄 적스턴(William Juxton)-런던주교-은 국가의 재정을 담당하였다. 윌리엄 로드는 켄터베리 대주교였지만, 또한 옥스퍼드대학교의 총장이자 추밀원, 교회특별법원[고등종교법원]과 성실청의 위원이었다. 따라서 세속적 활동과 신앙적 활동을 분리시키는 경계선이 불분명하였다.

    18세기는 그리스도교 신학과 생활양식을 결정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이성에 깊이 관심하였다. 리처드 후커 이후로 성공회 학자들은 고지식한 성서[숭배]주의에 도전하였으며, 또한 하느님의 진리는 계시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아퀴나스의 주장처럼 법의 근본적인 본질에 의해서도 인간에게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법은 자연적인 이성에 의해서 파악될 수도 있다. 조지프 버틀러(1692-1752) 주교는 도덕적 책임이 이성적인 우주의 근본적인 특징이라는 점을 입증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신론자가 아니었으며, 또한 하느님의 법과 관련이 없는 이성의 사용을 확신하지 않았다. 1718년에서 1726년 사이에 솔즈베리에 있는 롤스 채플(Rolls Chapel)[문서보관소 교회]에서 행한 설교들에서[그는 이 교회의 전속설교자였다], 그리고 그의 책 <계시종교와 자연종교의 유비>(Analogy of Religion)(1736)에 첨부된 중요한 논문인 ‘선의 본질에 관하여’(On the Nature of Virtue)에서, 그는 자연과 초자연, 육체와 정신, 이기심과 이타심의 법칙들이 서로에게 양극단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이라고 주장하였다. 하느님에 의해서 창조된 인간본성에 있는 가장 중요하며 자명한 것은 행동의 도덕성을 판단하는 근거들을 제공하였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그 안에 정의의 규칙을 갖고 있다. 그러나 필요한 것은 단지 그가 솔직하게 이를 따르는 것이다.’

    17세기와 18세기에는 합리적인 신앙의 방향으로 커다란 진전이 있었으나, 일부는 성공회신앙을 너무 세속적이라고, 즉 그 자체의 형식적인 이론의 희생자라고 판단하였다. 성공회신앙은 교리적 확신, 감성적 열정과 개인적 구원의 분야에서 종파주의자들[비국교도]을 따라갈 수 없었다. 일부는 국교회가 옛 권위를 되찾을 필요가 있으며, 또한 만약 윌버포스가 말한 ‘꼭 필요한[생기넘치는] 그리스도교’에 의해서 세상이 다시한번 뒤흔들린다면, 세상은 확실히 상식에 호소함으로써 지금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고 생각하였다. 19세기에 발생한 두가지 형태의 수정주의적인 분위기는 복음주의 부흥운동과 옥스퍼드운동이었다.

    복음주의가 표방하였던 지속적인 초자연주의, 내적인 감정과 개인적인 성결(holiness)에 대한 관심, 그리고 다음 세상에서의 개인구원이라는 목표는 새로운 세기의 사회적 해악들을 치유하는데 아무런 해결능력들을 약속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며, 심지어는 이러한 해악들이 존재하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산업혁명이후 도시들에서는 여러가지 고통이 뒤따랐으며, 결의론이나 개심[회심]은 사회개혁을 보장하지 못하였다. 다행히도 이전시대의 방법론으로 잔존하던 생활구조들에 대한 성공회의 관심은 여전히 강력하였으며, 심지어 종파적인[비국교도] 집단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복음주의운동의 잡지인 <크리스천 옵저버>(The Christian Observer)와 케임브리지의 복음주의자들은 개심[회심]이 정말로 사랑을 의미하지만 사랑은 지식을 겸비하고, 이 지식은 행동으로 전환된다는 점을 매우 명확하게 표현하였다. 즉, 신학은 14세기의 데보티오 모데르나(Devotio moderna 근대적 신심), 공동생활 형제회(Brothers of the Common Life)와 똑같이 새로운 사회적 관심을 야기시켰다. 이와 매우 비슷하게 유대교의 하시디즘도 토라에 대한 지나친 이성주의에 반발하여 설립되어, 18세기에 공동체적인 활동들의 한 변형으로 출현하였다. 토마스 스콧의 <Commentary on the Bible>(1792)-클래펌파의 가장 중요한 참고도서였다-는 초기 복음주의운동이 사회적 의무들을 무시하지 않았다는 충분한 증거이다. 계몽주의(Enlightenment)에 대한 반대자들인 이들로부터 공교육의 실시와 노예무역에 대한 공격이 연속적으로 제기되었다. 사랑에 대한 공동체적인 의무[책임]보다는 성결(holiness)에 대한 개인적 윤리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교도소를 개혁하고 공장법을 지지하고 새로운 도시빈민가의 희생자들이 겪는 충격을 완화시킬 목적으로 자선단체들을 조직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복음주의자들이었다.

    옥스퍼드운동은 그 나름의 심각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지만, 처음에는 국교회의 권위와 의례의 복원에 더욱 관심하였다. 처음에는 전례의 기능이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신자들을 세상속으로 파송한다는 인식이 거의 없었다. 키블은 ‘가난한 자는 금식에 능숙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지속적인 금식행위들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만족스럽게 배고픔을 참을 수 있으며, 이는 다른 사람들이 본받아야 할 덕목이다’고 말할 때, 그는 후커의 ‘실용적인 분별력’을 칭찬하였다. 그러나 제2세대 소책자운동가들은 이전과는 다른 부류로, 오로지 의례가 자선사업을 강화시키기 때문에 의례에만 관심을 가졌다. 홀본(Holborn)에 있는 성올번스 교회의 A. H. 메코노치(Mackonochie) 신부는 1866년 키블의 장례식에 런던 동부에서 사목하는 찰스 로더(Charles Lowder)[성십자가 수도회 창립멤버]와 함께 참석하였다. 역사학자인 처치(R. W. Church)는, 또다른 제1세대 소책자 운동가인 존 코프랜드(John Copeland)에게 쓴 편지에서, 젊은이들이 선량한 사람들로 보였지만 그를 험악하게 쳐다보았다고 말하였다.

    교회의 권위에 대한 소책자운동가들의 주장과 같은 시기에, 새로운 목소리들은 국교회의 독점적인 지위들에 도전하였으며, 그리고 재산과 부와 국교회와의 관계에 대한 난처한 질문들을 제기하였다. 실제로 그리스도교 사회주의자들은 초기 소책자운동가들 보다는 오히려 메닝(Manning) 추기경에 더 가까운 새로운 종류의 실용주의자들이었다. J. M. 러드로우(Ludlow)는 19세기초에 가난한 자들의 잔인한 곤경을 직접 체험하였으며, 그는 사회가 복원되는 것이 아니라 개조되어야 한다고 확신하였다. 그의 동료인 F. D. 모리스(Maurice)는 러드로우 보다는 덜 급진적이었지만, 그 또한 성공회 전통으로부터 똑같은 불안정한 요소들을 선택하였으며, 그리스도교 원리들에 기초한 사회개혁을 요구하였다. 그는 생산자 협동조합(Producers’ Co-operatives)과 노동자대학(Working Men’s College)을 설립하였다.

    M. B. 레키트(Reckitt)에 의하면, ‘모리스의 능력은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특별한 이해나 지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느님이 이미 주었던 대답들을 심오하게 인식하는데서 유래하였다.’ 찰스 킹슬리(Charles Kingsley)와 닐(E. Vansittart Neale)과 같은 열성파들은 모리스의 지도를 따르며, 각자의 방식대로 쇄신된 그리스도교-강력한 그리스도교라고 부를 수 있다-를 정의하였다. 다양한 성향의 성직자 집단들이 이러한 쇄신운동에 참여하였다. 앵글로-가톨릭인 찰스 고어는 사회적 정의는 복음에 외래적으로 추가된 것이 아니라, 복음의 본질적인 요소라고 분명하게 생각하였다. 1896년 국교회 전국대회(Church Congress)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그는 그리스도교 정신이 인간의 생활에 관심하고 영향을 주는 모든 것들에 직접 관계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성육신의 핵심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공교회신앙(Catholicism)을 신앙적 용어로 형제애(brotherhood)로 정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1924년 버밍햄에서 정치와 경제와 시민의식에 관한 회의(Conference on Politics, Economy, and Citizenship)(COPEC)가 개최되었다. 이 회의는 자문위원회 (Collegium)라는 활동적인 초교파적인 집단이 후원하였으며, 요크 대주교인 윌리엄 템플이 의장을 맡았다. 외국의 대표자들을 포함하여 1,500명의 대표자들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에 공식적으로 관심을 표명하였다. COPEC은 복음의 사회적 관련성[적합성]을 주장하였으며,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문제들을 그리스도교의 입장에서 자세히 검토하였다. 이 회의는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었지만, 보다 중요한 공헌은 새로운 교회일치운동에 대한 기여였다.

    20년후인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때에 COPEC의 비젼들을 회복시킬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윌리엄 템플에 의하면, ‘젊은 세대들은 COPEC에 관하여 들은 적이 거의 없었다. 더구나 이 회의의 논의내용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하였다. 그들은 러드로우, 모리스, 킹슬리, 웨스트코트, 고어, 스콧 홀랜드의 이름들과 연관된 그리스도교의 사회적 가르침 전통을 알지 못하였다.’ 멜번회의의 의도는 또한 윤리적 결정들에 대한 신학적 전거-즉 자연적 질서에서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하느님의 의도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갖자는 것이었다. 템플에 의하면, ‘우리의 관심사는 사회의 다양한 기능들-재정적, 생산적, 분배적, 문화적, 영성적-이 본래적으로 서로 올바른 관계를 갖는다는 측면에서 현 사회의 전체적인 질서를 검토하기 보다는 구체적인 해악들에 대한 그리스도교적인 치유책을 찾는 것이었다.’ 이 모든 문제들이 하나의 목적, 즉 하느님의 나라를 가장 잘 섬길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하여 제기되었다.

    멜번회의에서의 어려움은 정치적인 문제들이 기본적으로 신학적인 문제라는 주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떠한 정치적인 방식들이 다가오는 하느님의 나라에 가장 잘 봉사할 수 있는가의 문제에서 제기되었다. 모든 참가자들은 사회에서 보다 정의로운 질서라는 목표에는 동의하였지만, 이러한 질서를 확립하는 근본적인 수단이 문제였다. 멜번회의에는 T. S. 엘리어트(Eliot)와 같은 보수주의자들, 처치 타임즈(Church Times)의 편집장인 시드니 다크(Sidney Dark)와 같은 열렬한 사회주의자들, 그리고 리처드 에클랜드(Richard Acland)와 같은 공동소유권 주장자들이 참여하였다. 에클랜드는 새로운 표어를 만들었다. 즉, ‘우리나라의 주요 자원들에 대한 개인적인 소유욕은 정말로 우리가 지상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장애물이다.’

    템플은 회의에서 모아진 멜번선언문(Malvern Manifesto)에 대한 모든 대표자들의 승인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불참자들이 있었으며, T. S. 엘리어트와 알렉 비들러(Alec Vidler)와 같은 이들은 나중에 이를 부인하였다. 템플은 그가 ‘응접실 전술’(parlor trick)이라고 불렀던 것-즉 1937년 J. H. 올담(Oldham)에 의해서 처음 사용된 ‘중립적 원칙’(middle axioms)-을 사용하였다. 올담은 이를 ‘언제나 구속력을 갖는 것이 아니라 잠정적인 정의들로 [...], 복음의 윤리적 요구들에 따른 순수하게 일반적인 진술문들과 구체적인 상황들에서 만들어지는 결정들 사이의’ 타협으로 정의하였다. 템플은 에클랜드의 사적소유권을 ‘정말로 장애물이다’를 ‘그러한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로 변경하였다. 그는 일부 선의의 그리스도인들을 불쾌하게 만들 수 있는 구체적인 결정, 그리고 토마스 아퀴나스의 근본적인 자연법 사이에서 쉽지않은 중간입장을 찾았다. 즉, 선은 추구되어야 하며, 악은 회피되어야 한다. 국교회는 기도서의 문구나 사제직의 성별과 같은 문제들에 에너지를 소모함으로써, 여전히 전형적인 고립으로 후퇴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멜번회의이후 교회는 다행스럽게도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국교회는 역사적 관심사에 교회의 의사를 표현하였던 확고한 성서적 신앙을 가진 뿌리깊은 성공회적인 전통을 잊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멜번회의이후 템플의 결론은 전보다 더 확고한 것으로 보인다.

    ‘국교회는 그리스도교의 핵심원리들을 발표하고 현 사회질서가 그리스도교 핵심원리들과 충돌하고 있는 부분을 지적하여야 한다. 그때에 이 문제들은 그리스도인 시민들에게 전달되어야 하며, 그들은 시민적인 역량으로 기존질서를 원칙들에 더 가깝게 일치하도록 재구성하는 과제를 수행한다.’

    미국에서 그리스도교 사회주의는 윌리엄 템플과 같은 카리스마적인 지도자가 없었으며, 오히려 보다 격렬한 반대에 직면하였다. 그러나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확고한 자본주의에 도전하는 용감한 사제들이 있었다. 19세기말 뉴욕시의 그레이스교회(Grace Church)에서 헨리 코드만 포터(Henry Codman Potter)는 가능한 많은 신자들의 요구들-물리적, 사회적, 지적 또는 영성적 요구들-에 봉사하기 시작하였다. 그 외에도 조지 하지스(George C. Hodges)(갈보리교회Calvary Church, 이후에 ETS 학장이 됨), 필로 스프레이그(Philo W. Sprague), 윌리엄 블리스(William D. P. Bliss), 프레드릭 헌팅턴(Frederic Dan Huntington), 헨리 내쉬(Henry S. Nash), 윌리엄 스칼리트(William Scarlett) 그리고 생명의 책(Book of Life)에 기록된 사람들이 있었다. 라인홀드 니이버는 산업사회의 불의에 대한 신학의 적합성[관련성]에 대한 그의 관심이 미시건 주교인 찰스 윌리엄스(Charles D. Williams)의 가르침과 사례에서 첫 자극을 받았다고 말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사회복음운동(Social Gospel movement)에 대한 주요한 자극은 성공회 밖에서 와싱턴 글래든(Washington Gladden)과 월터 로전부쉬(Walter Roschenbusch)와 같은 이들로부터 유래하였다.
    물론 국교회에서의 사회운동은 기득권의 혜택을 입는 자들로부터, 그리고 보다 복잡한 인식론적인 근거들을 사용하는 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D. N. 먼비(Munby)는 구체적인 현실에 대한 자세한 고려를 결여하는 사회주의자들-그는 이들을 ‘완고한 플라톤주의자’라고 불렀다-에 대하여 주의를 환기시켰다. 아마도 신앙적 지성은 항상 복합적인 사회경제적 문제들에 대한 선험적인[연역적인] 해답들을 공급하려는 유혹을 받아왔다. 먼비에 의하면, ‘그리스도교의 예언자적인 증언은 실패하였다. 왜냐하면 그것은 잘못된 정보를 받고 있으며, 독단적이며, 그리고 신학적 단정함[격식]이 이론적 지식에 대한 충분한 대체물이라고 너무나 쉽게 가정하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이유는 아마도 공상적 사회개량주의에 대한 국교회의 선호, 즉 일상생활의 실제적인 조건들에 의해서 도전받지 않는 지성의 가상된 전능성에 대한 의존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 찰스 킹슬리에게 세상에 물의 아이들(water babies, 킹슬리의 어린이 동화)같은 것은 없다고 말하였을 때, 킹슬리는 ‘당신이 어떻게 아느냐? 만약 당신이 찾아보기 위하여 그곳에 있었는데 볼 수 없었다면, 그것으로 그곳에는 없다고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고 대답하였다.

    1960년대 동안에, 성공회의 윤리사상에서 새로운 발전은 서구세계의 관심을 끌었다. 즉, 상황윤리였다. 이에 대한 초기의 옹호자들중 일부는 성공회 학자들이었다. 상황윤리는 거룩한 삶(holy living)을 강조하였던 17세기 성공회 학자들의 주장에 대한 현대적 해설이었다. 물론 보다 오래된 뿌리, 즉 성서적 형태들의 복원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새로운 도덕론은 사랑을 권고하는 것처럼 실질적인 것이 아니라 방법론적인 문제이며, 따라서 계획적으로 힘들게 입증되는 윈리의 모호함[모호한 원리들]을 포함시켰다. 철학적 실존주의자들로부터 단서를 얻은 상황윤리학자들은 그리스도교 역사의 대부분에서 그리스도교 도덕론의 전통은 보증되지 않은 율법주의[법률만능주의]에 의해서 크게 왜곡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즉, 각각의 상황은 독특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행위자(agent)는 단 하나의 변하지 않는 법, 즉 사랑의 법만을 참고할 뿐이었다.

    새로운 방법론의 비판자들뿐만 아니라 지지자들은 때때로 스스로 창작적이며 심지어 급진적이라고 말하였지만, 이 운동은 거룩한 삶과 비아 메디아와 같은 전통적인 성공회 주제들에 크게 의존하였다. 조셉 플리처(Joseph Fletcher)는 ‘주의하여야 할 사항은 상황윤리가 도덕법(moral law)와 윤리적 임시처방(ethical extemporism) 사이의 중간에 있다는 것이다’고 말하였다. 비록 이 논점은 일부 격분한 보수주의자들에 의해서 오해받았지만, 새로운 방법론은 한편으로 권위적인 율법주의로부터,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도덕률 폐기론적인 자유로부터 벗어나, ‘너무 지나치지 않는 것’이라는 이미 입증된 지혜를 보존하려는 의도였다.

    잉글랜드에서는 신약성서 학자로 당대의 ‘삶의 자리’(Sitz in Leben) 이론에 가장 정통한 존 로빈슨 주교가 새로운 윤리학자들을 선도하였다. 그의 유명한 책 <신에게 솔직히>(1963)는 하느님으로부터 현대성(modernity)에 대한 진리를 숨기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얄궂게도 이것은 ‘초자연주의자’적인 사고방식에 대한 포기를 의미하였다. [로빈슨] 주교가 성공회의 루터역을 담당하는 새로운 종교개혁에서, 교리는 16세기에서와 같은 역할을 하지 않으며, 오히려 주도적인 역할을 실천에 양보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이유는 시대가 변하였다는 것이며, 또한 ‘오늘날 대다수 교리적 질문들은 이전의 종교개혁과 비교하면 먼저 도덕적인 질문들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사회적 적합성[관련성]을 추구하는 배경은 복음을 현대세계에서 알기쉽게 전달하려는 관심이었다.

    1960년대에 영국에서 새로운 종교개혁을 지지하는 또 하나의 강력한 목소리는 더글러스 라임즈(Douglas Rhymes)로부터 나왔다. 로빈슨처럼, 그는 열렬한 내재론자였다. 그의 경우, 기도란 먼저 ‘밖에 있는’ 하느님에게 말을 거는 것을 포함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런 종류가 아닌 것으로 판명된다. 기도는 정말로 ‘일상생활에서 우리들의 모든 행동들을 내부로부터 밝게 비추는 그리스도안에 있는 것(inChristness)’이다. 라임즈는 기도실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주방기구들 사이에서 부엌일에 몰두하면서 하느님과 대화하는 성공회의 로렌스 수사임을 자처한다. ‘만약 당신이 내게 “그러나 이건 기도가 아니고,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다”고 말한다면, 나는 “거기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생활을 기도로 만드는 것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의식적으로 자극받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다.’

    미국에서 Episcopal Divinity School의 교수인 조셉 플리처는 상황윤리의 초기 예언자였다. 그는 이를 정말로 전통적이라고 생각하였으며, 새로운 방법론으로 맞이하는 적대감에 놀랐다. 이것은 분명하게 성서적이 아니었는가? 성 바울로는 ‘율법(Torah)의 교훈들을 아가페라는 살아있는 원리-아가페는 이성과 제휴하여 실행하는 선의이다-로 대체하였다.’ 물론 전통적인 교의에 대한 항복은 없었다. 그에 의하면, ‘나는 우리가 의미있게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죄는 원죄가 아니라 개인적인 죄라고 믿는다’면서, 그리고 또한 ‘나는 속죄론(atonement)의 어떤 객관적인 이론에서도 생존능력을 찾아볼 수가 없다.’ 교회의 ‘불필요한 무거운 짐들’인 적용할 수 없는 교리에 대한 이와 비슷한 인식들은 격동의 1960년대에 노먼 피틴저(Norman Pittenger)와 제임스 파이크(James Pike)와 같은 다른 상황윤리학자들에 의해서 표현되었다.

    상황윤리(situation or contextual ethics)는 성공회의 역사에서 오랫동안 지속되지는 못하였지만, 지속적인 영향력을 남겼다는 점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주류 성공회신앙은 단순히 일부 권위가 진리라고 선언하였다는 이유로 그것을 진리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는 경고(reminder)에 적극적으로 응답하였다. 이념들[규범들]은 반드시 살아있는 용광로에서 시험되어야 한다. 오직 사랑의 원리만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라는 신약성서의 주제에 관한 귀중한 통찰들이 제공되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또한 항상 안전채택론자(tutiorist)[의심이 가는 경우 도덕적으로 보다 안전한 것을 선택한다]가 아니었던 성공회 학자들에까지도 잠시 생각하도록 만드는 몇가지 요소들이 었었다. 여기에는 방법론적으로 자율을 지향하는 경향-즉 규범이 없는 현대세계에 거의 필요없는 메세지-이 있었다. 그리고 또한 과거의 도덕적 지침들에 대하여 단순히 친절한 관심만을 표명하고, 의무론적인 요인들에는 전혀 관심하지 않으며, 또한 그러한 급진적인 자유에 대한 대가로 미래에 끼칠 결과들에 대해서도 전혀 관심하지 않는 자기만족적인 것으로도 보였다. 만약 누군가가 결점을 지적하려 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리스도교 사회주의의 운명을 지적하였던 것과 정확하게 반대되는 오류였을 것이다. 즉, 사회주의자들은 휼륭한 이념들[규범들]로 무장하였지만, 그들은 그들의 취약한 이념이 생존하여야 할 구체적인 세계의 구조를 깨닫지[인식하지] 못하였다. 실존주의자들은 생활구조들을 정확하게 인식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들이 사회에 착근시키려고 제안하였던 교리적인 원리들에 무관심하였다.

    다기오는 21세기에, 도덕적 명확성과 확고함은 세속화시대에 그리스도교적인 생활을 정착시키는 어려운 과업에 보다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그것들은 그것들의 고전적인 강점들을 찾아 소중히 간직하고, 과거의 활동들을 약화시켰던 약점들을 찾아 제거해야 할 것이다. 그것의 강점은 확실히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교의적 원리들(dogmatic formulas)을 해설하기 보다는 역사적 현재와 대결하는 전통이었다. 그것의 약점은 아마도 역사적 현재에 대한 결정을 시도하는 자유를 제한하는 역사적인 그리스도교 법률(code)을 확립하는데 실패한 것이었다. 강점과 약점은 모두 이상적인 가능성들에 대하여 공리적으로 강조하는 그리소도교 윤리학(Christian Ethics)으로부터 벗어나, 대신에 도덕신학(Moral Theology)을 포용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 도덕신학은 이 순간의 구체적 결정을 강조하고 그리스도교적인 원리과 구체적인 문제를 서로 관련시키려고 노력한다. 우리의 희망은 바로 이러한 전통적인 동시대성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때때로 결의론은, 예수회의 논리(Jesuitry, 궤변)에 대한 파스칼의 비난들과 같은 열기는 아니라 하더라도, 평판이 나빠졌다고 말할 수 있다. 결의론은 하느님의 은총의 역할을 위협하는 것으로, 지나치게 복잡하며, 부정직하며[앞뒤가 다르며], 또는 심지어 지적으로 부정하다고 비난받았다. 가톨릭(Catholic) 도덕신학에 대한 표준적인 비판은 금욕주의와 영성의 극단적 분리를 야기시켰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론을 응용(praxis)과의 연관성을 유지시켰으며, 실천적인 신학(practical theology)의 현재적인 형태에 유익한 것으로 입증되었다. 결의론은 그리스도교적인 생활을 성취하는데 위험스럽지만 유망한 도구-즉, 개인적인 양심의 안내로 기여할 뿐만 아니라, 보다 커다란 사회적 전략들을 확립시키는 도구-로 인정되어야 한다.

    어쨌든, 도덕신학(Moral Theology)은 그리스도교적인 행위[품행]에 관한 고전적인[17세기] 성공회의 태도였다. 조지프 홀, 제레미 테일러 그리고 허버트 샌더슨이 주도한 17세기의 도덕론자들은 사례연구에 집중하였다. 이는 아마도 [성공회] 성직자의 지도에 대한 법적인 금지 때문이었다. 그러나 영국적인 지성은 경험주의에 편향되었으며, 미국의 지성은 실용주의에 편향되었다. 성공회의 결의론에 대한 공식적인 변증[주장]은 제임스 스키너(James Skinner)의 <Synopsis of Mind and Ascetical Theology>(1870)에서 시작한다. F. D. 모리스는 케임브리지대학 강의에서 옛 제목인 “결의론과 도덕신학’을 복원시켰다. 이것은 그의 책 <The Conscience: Lectures on Casuistry>(제3판, 1883)의 부제였다. 모리스는 특별히 그리스도교 신심에 대한 구체적인 응용에 관심하였지만, 이에 적용되는 그리스도교 원리들에 대해서는 모호하였다. 선도적인 옥스퍼드의 결의론자는 옥스퍼드주교인 케네스 커크(Kenneth E. Kirk)였다. 그는 그의 중요한 저서들중 하나를 <Conscience and its Problems: An Introduction to Casuistry>(1927)로 명칭하였다. 일반적으로 신중하였던 주교는 열렬한 결의론자였기 때문에, 그는 남편에 불성실한 아내가 특정한 상황에서 이에 대하여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p. 210). 아마도 아내의 배신을 전해들은 남편은 그녀 애인을 살해할 수도 있으며, 또한 옥스퍼드 주교는 성서가 간통에 대하여 말한 것을 잊고있는 것일 수도 이다.

    요구되는 것은 새롭고, 보다 잘 옹호할 수 있는 결의론이다. 그리스도교의 규칙(rule)인 우주적 질서(synderesis)는 가장 유능한 전문적인 연구를 요구한다. 권위들을 식별[확인]하는 것은 매우 복합적인 조정을 요구한다. 즉, 성서, 전통, 교회법과 세속법, 자연법, 교회의 교도권. 규칙을 확인하는 것은 세심한 고찰과 연구를 요구한다. 이것은 물론 단순히 정신적인 활동이 아니다. 양심(Conscientia) 즉, 규칙의 응용은 규칙이 적용될 상황에 대한 자세한 연구를, 지지세력과 반대세력에 대한 평가를, 그리고 사회적 권력구조를 변경시킬 수법들을 자세히 연구할 것을 요구한다. 바로 이런 점에서 평신도 전문가들이 성직자들에게 귀중한 도움이 될 수 있다. 성직자들은 아마도 적합한 규칙을 식별하는데 더욱 능숙할 수 있다.

    세련된 결의론의 한 사례는 사랑과 같은 단일한 덕목으로 안내하는 도덕적 방법으로서 그 우수성을 입증할 수도 있다. 확립된[제정된] 성서적 규칙은 십계명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살인하지 못한다’(출애굽기20.13). 여기서 살인하다(죽이다, kill)는 닭의 머리를 자르는 행동에서 적을 살해하는 행동까지 넓은 범위로 사용되는 동사이다. 이 규칙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현대의 독자들이 이를 받아들이는 인식 뿐만아니라 문구의 본래적인 의도에 대한 연구를 요구한다. 만약에 하나의 전형적인 사례가 인정될 수 있다면, 이는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다. 즉, 아이들로 가득찬 학교운동장으로 무차별 총격을 가하는 행위는 성서에 의해서 금지된 요소들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소위 ‘어려운[성가신] 사건들’은 범례적인 사례의 기준에 따라 각 사건들을 심사함으로써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범례적인 사례와의 유사성은 그리스도교적인 양심에 의한 거부를 지지할 것이다. 이러한 정밀한 심사는 낙태, 사형[극형], 안락사, 전쟁 또는 자살과 같은 ‘어려운 사건들’을 밝혀줄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세속적인 사회에 살고 있으며, 이러한 사회에서 궁극적인 질문은 이제 더이상 하느님의 의지가 어떻게 충족될 수 있는가에 있지 않다고 종종 말한다. 하느님은 죽지 않았다 하더라도, 릴케의 울부짖음-‘O thou lost God! Thou infinite trace!’[사라진 신이며, 영원한 흔적]-처럼 애매하다. 우리는 성공회 학자들이 2세기전에 시작한 연구, 즉 경험의 온전성과 피조된 전 우주의 안녕을 포함하는 궁극적인 존재의 진리에 대한 탐구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 관심의 영역은 빈곤과 같은 국내적인 위기들 뿐만아니라, 전쟁과 같은 국제적인 위기들을 포함하여야 한다. 여기에는 교회내의 보수주의자들과 하비 콕스가 ‘새로운 세대’(New Breed 새로운 유형)이라고 명칭한 집단 사이에 자유로운 토론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의 다양한 위기들을 사회봉사라는 주제로 해결하려는 옛 세대(유형 old breed)을 위한 공간도 있어야 하며, 또한 구조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정치적인 주제를 선호하는 새로운 유형을 위한 공간[가능성]도 있어야 한다.

    물론 수동적이기를 거부하면서도 실질적으로 하느님의 말씀이 생활방식에 침투하여 이를 변형시키는 실질적인 도구가 되는 것에 주력하는 교회는 세상에서 자신을 잃고 단순히 사회개혁의 대행자가 될 위험에 빠진다. 그러나 대안적인 위험은 이보다 더 무서운 것이다. 즉, 제의적인 고립, 자기만족과 시대착오적인 제의적인 고립이라는 역할에 만족하는 교회는 세상에 의해서 날고 교의적인 집단으로 무시당하였다. 이러한 망각에 대한 치유책은 확실히 성공회 학자들이 처음부터 인식하였고, 지금도 널리 인식되고 있는 바로 그 평범한 초월성이다. 우리는 지구에 살고있는 하느님의 피조물들의 전 존재에 대한 우리 주님의 주장들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그 주장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새로이 배워야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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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emple, W., Christianity and Social Order. Penguin Books, Harmondsworth, 1942.

    2012년 9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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