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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The Study of Anglicanism-Anglican Pastoral Tradition « 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 번역 프로젝트 자료

번역 : The Study of Anglicanism-Anglican Pastoral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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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Cranmerian
    회원

    성공회의 목회적 전통
    O. C. Edwards Jr

    대다수 문제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목회적(사목적 pastoral) 전통에서 독특하게 성공회적인 방식을 발견하는 길은 공동기도서를 연구하는 것이다. 현재의 경우, 가장 적합한 문서는 성직서품 예식서(Ordinal)에서 나타난다(pp. 155-62 참조). 따라서 사제서품예식(1662)에서 권면의 말씀(권고문Exhortation)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는 여러분들이 고귀한 지위(Dignity)에, 그리고 막중한 직분과 책임에 부름받았다는 점을 기억하기를 권고합니다. 다시말한다면, 여러분들은 주님의 심부름꾼(전달자Messenger)이자 파수꾼(Watchmen), 그리고 청지기 (Stewards)가 되어, 주님의 가족들을 가르치고, 미리 경고하고, 양육하고, 돌보며, 흩어진 그리스도의 양들을, 그리고 이 사악한(naughty) 세상에 빠져있는 그리스도의 자녀들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원히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이러한 의무는 다음 단락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서술한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부여된 의무[직무]에 따라서, 여러분의 모든 능력들을 다할 때까지, 여러분의 책임으로 맡겨진 모든 것들을 하느님에 대한 신앙과 지식에 합당하도록,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하고 완전해지도록, 여러분 가운데 신앙의 오류 또는 사악한 생활이 차지할 자리가 없도록, 여러분의 노력과 관심과 주의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사목직을 수행하는 수단은 ‘거룩한 성서로부터 나온 교리와 권고’ 그리고 ‘성서에 합당한 생활’이다. 서품선언문(Ordination formula)은 ‘하느님의 교회에서 사제의 성직와 직무’를 ‘하느님의 말씀과 거룩한 성사들의 충실한 분배자[집행자]’로 묘사한다. 그러나 사제서품 예식에서 전도구교회 사목자의 모든 목회적 의무들이 언급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부제가 사제가 될 때에 사제는 계속해서 부제직을 수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제직의 직무들을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 두가지 예식들에서 전도구 사목자의 목회적인 직무에 관한 목록들을 찾을 수 있다.

    ‘여러분이 섬기도록 임명받는 교회에서 부제의 직분은 성무일과[매일기도]에서 사제를 보좌하며, 그리고 특히 그가 [감사]성찬례[성찬예배]를 집례할 때 성찬의 분배를 도우며, 교회에서 성서와 공식설교집을 낭독하고, 어린이들에게 교리교육서를 가르치고, 사제가 없을 경우 유아들을 세례하며, 주교의 허가를 받는 경우 설교한다. 그외에도, 허가를 받는 경우, 전도구교회의 병자들과 가난한 자들과 노약자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재산과 이름과 거주지를 관할사제에게 알려서, 그의 권면으로 그들이 전도구민들이나 다른 사람들의 도움[구호]을 받도록 한다.’

    성직서품예식에서 나열된 성직자의 직무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방법들은 많이 있다. 필자는 다른 글에서 현대 미국성공회 성직자들의 의무들을 열거하였다. 그것들은 전례의 집례, 설교, 복음전도와 선교활동, 교리교육과 그리스도교 교육, 전도구교회의 행정, 영성적 지도, 그리스도교의 사회행동, 도덕적 안내, 새로운 신자의 돌봄, 신학적 해설, 교회위원회의 지도, 전도구교회의 영성적 쇄신, 평신도 사목직의 활성화, 병자와 유족들 그리고 위기를 겪고 있는 가족들에 대한 사목, 사목적 상담, 교단의 직무들, 교회일치운동에의 참여, 그리고 지역사회 활동들을 포함한다. 그러나 보다 간결한 목록은 앤소니 러셀의 <The Clerical Profession>에서 잘 정리되었다. 즉, 공적인 예배의 인도자(주일예배), 공적인 예배의 인도자(사목적 예식들, surplice duties), 설교자, 성사의 집례자, 목회자(pastor), 교리교육자, 교회서기, 법과 질서의 집행자, 구휼품 분배자(almoner), 보건책임자 그리고 정치가. 러셀은 성직자의 직무들중 신학적인 임무보다는 하나의 전문직의 직무들에 대한 사회학적인 해설에 더욱 관심을 갖는다. 그가 나열한 범주들은 성공회 사목적 돌봄의 전통을 구성하는 활동들을 분석하는데 편리한 방법을 제공한다.

    1. 전통내의 변수들

    성공회의 목회적 전통을 분석하기 이전에, 먼저 주의하여야 하는 특정한 변수들을 살펴보아야 한다. 첫째로, 잉글랜드교회의 사목직은 항상 법으로 제정된 교회[국가교회]의 대리인의 사목직이었다는 점이다. 이 점은 세계성공회의 다른 관구교회들에 있는 성직자들의 활동과 항상 일치하는 것이 아니었다. 예를들면, 미국성공회에서 전도구교회 성직자는, 여러가지 면에서, 성공회의 그리스도교신앙을 실천하는 지역공동체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에 대한 영적 담당자(인도자chaplain)와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그들의 책임에 대한 이러한 개념은 잉글랜드교회 성직자들이 그들의 전도구(parish-우리나라의 동이나 리 개념처럼 행정적인 기본단위이다-역자)내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영성적이자 부분적으로 물질적인 복리를 담당하는 개념과는 매우 다르다. 또한 세계의 다른 지방들에 있는 성공회 성직자들은 미국의 문화보다 훨씬 더 근본적으로 다원화된 문화속에서 활동하고 있다. 예를들면, 나이제리아의 경우, 그리스도교회들의 범위에는 토착교회들까지 포함하며, 미국의 그리스도교보다 훨씬 더 다양하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전체는 또한 그곳에서 이보다 훨씬 큰 회교공동체 그리고 아프리카의 전통적인 종교에 대한 추종자들을 포함하는 뚜렸한 종교 다원주의속에 존재한다. 이는 곧 고전적인 형태의 성공회 사목직에서 실행되었던 사목직의 전반적인 형태가 매우 다양한 종교적 상황들을 포용하고 있는 문화들에 맞게 크게 변경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잉글랜드교회에서 최근까지 실행되었던 사목적 돌봄의 방식과 그외의 성공회교회들의 방식 사이의 차이점을 이해하려고 시도할 때에 반드시 고려해야 할 두번째 요인은 교직임명제도(system of patronage)이다. 종교개혁 시대에 잉글랜드교회의 전도구 교회들은 그들의 성직자에 대한 수입을 제공하는 규정[법률조항]을 포함하고 있었다[주로 전도구교회를 설립한 기관(수도원이나 교구)이나 지주들이 교직임명권을 보유하였다-역자]. 사제들을 전도구교회에 임명하여 그 수입을 받을 수 있도록 결정하는 권리는 거의 모든 경우에 [인근] 수도원의 수중에 있었다. 따라서 수도원이 해체되고 국왕이 그 재산들을 총신들에게 양도하였을 때, 이러한 교직임명권(right of presentation 교직추천권이라고 불렀다)도 하나의 재산권으로 같이 양도되었다. 따라서 지역의 대지주(squire 향사)와 같은 평신도들이 그 전도구교회에 사목할 사제를 지명할 권리를 부여받았다. 다른 전도구교회들은 주로 지역의 주교나 국왕이 교직임명권을 보유하였다.

    그러나 교직추천권은 성직록(benefice, 교직록) 또는 ‘교직비’(living), 즉 사제의 직무들을 수행하는 의무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 교회의] 수입을 받을 권리에 관한 것이었다[토지나 건물의 임대료 십일조세 등-역자]. 이는 곧 개념적으로나 실질적으로 급여가 직무와는 분리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수입을 받는 것과 직무를 수행하는 것 사이를 이렇게 구별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두가지 즉, 부재교직(absenteeism)와 교직겸임(pluralism)이라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즉, 교직록에 임명된 성직자는 종종 그를 대신하여 직무를 수행할 대리사목자(대리사제 curate)를 고용하고, 자신은 전도구교회 밖에서 자유롭게 생활하였다. 또한 일부 성직자들은 하나가 아닌 몇개의 전도구교회 교직들을 겸임하였으며, 그 교회들의 수입 모두를 수령하면서도 어느 한 교회에서도 직접 직무를 수행하지 않았다. 잉글랜드교회에서 이러한 관행의 정도와 이에 따른 영향은 다른 곳에서 자세히 논의되었기에 여기서 고려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사목적 돌봄의 성공회적인 전통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한가지 중요한 요인은 성직자의 배치와 급여에 대한 이러한 이상과는 동떨어진(less-than ideal) 제도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기억하여야 한다.

    이 글에서는 실제보다는 이상들, 즉 성공회 성직자들의 목회적 의무들이 실행된 방식보다는 인식된 방식에 관심한다는 점을 먼저 지적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이상은 좀처럼 완전하게 실행되지 않는다는 점과, 표준에 대한 단순한 진술은 이것이 항상 엄격하게 실행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한 후에 진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찰은 성공회의 목회적 전통에서 잉글랜드와 다른 지방 사이의 특징을 구별하는데 기억하여야 하는 세번째 요인에 해당한다. 즉, 앞에서 인용한 앤소니 러셀의 저서에서 논의된 역사적-사회적 발전이다. 그의 연구는 ‘현재에 체계화된 것과 같은 성직자의 역할은 18세기말과 19세기에서 발생한 변화과정으로부터 그리고 특히 전문직으로 변화하는 과정으로부터 유래하였다는 점을 입증하려는 시도’이다. 즉, 19세기에 성직자들은 당시에 출현하고 있던 전문직을 그들의 ‘모델이자 준거집단(reference group)’으로 선택하였다. 이 시기 이전에 성직자의 역할은 ‘젠트리 지위의 직업적인 부속물’의 역할이었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잉글랜드교회[성공회]의 목회적 전통의 변화과정[전개]을 사회적인 이유들에만 한정하여 이해하였다는 점, 그리고 여기에 포함된 신학적, 영성적, 자애적인 동기들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환원주의적[지나친 단순화]이지만, 러셀은 우리들에게 이러한 사회적 요인들이 교회의 생활에 항상 연관되어 있다는 점과 교회가 오로지 신앙적으로만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을 우리들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그러나 잉글랜드교회의 사목적 전통의 전개과정을 형성시킨 사회적 요인들은 세계성공회의 다른 관구들에서의 전개과정을 형성시킨 그것들과는 다르다.

    우리가 성공회의 사목적 전통의 각 요소들을 검토하기 이전에, 영국성공회의 사목적 전통이 전개된 역사적 상황의 또다른 측면을 주목하여야 한다. 즉, 이 요인은 잉글랜드 뿐만아니라 성공회신앙이 확산된 다른 나라들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것은 바로 19세기에 발생한 것으로 전도구교회 사목직의 농촌중심적인 환경에서 도시중심적인 환경으로의 변화이다. 사목직을 실행하는 사회적 조건들의 이러한 변화는 사목적 전통을 새로운 상황에 적응시키는 조정작업을 요구하였다.

    우리가 반드시 고려하여야 하는 마지막 상황적 측면은 성공회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나타나는 사목적 전통의 세계화[국제화]이다. 이 요인은 첫번째 변수인 국교제도의 논의에서 부수적으로 관심을 가졌지만, 국교제도에서 국교제도의 해체로 이동하는 변화보다는 성공회신앙을 다른 나라들에 이식할 때에 더 많은 변화들이 나타났다. 이 논점은, 비유를 바꿔서 말한다면, 번역과정[이전과정]에서 잃어버리거나 변화된 것을 찾으려는 것이다.

    2. 근본적인 특징

    이러한 요인들을 고려한다면, 이제 성공회의 사목적 전통에 대한 정말로 가장 독특한 것을 규명할 수 있다. 즉, 성공회의 사목직은 공동기도서로부터 그 형태를 부여받았다. 로저 로이드(Roger Lloyd)의 표현대로,

    ‘세계성공회의 모든 교회들의 공통적인 특성은 기도서이며, 무엇보다도 기도서는 그들을 하나로 결합시킨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로 이 기도서에서 성공회신앙의 핵심을 발견한다. 그리고 기도서는 성공회신자들이 수세기 동안 이를 이해하고 오늘날까지 실행하고 있는 사목활동에 관한 지침서이다.’

    이 말은 기도서가 우리들에게 우리의 공동체적인 예배의 형식들을 제공한다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물론 ‘한 권의 책으로부터 기도하는 것’이 성공회예배의 가장 독특한 특징들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즉, 요점은 기도서는 우리의 전례를 공급하는 것 이상으로 성공회 교회의 생활 전체를 규정하고, 따라서 이 모든 측면들에서 사목직의 형태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예를들면, 1662년 기도서는 기본적인 정규전례인 아침과 저녁기도, 연도 그리고 감사성찬례 예식을 제공한 후에, 그리스도인들의 생애의 모든 ‘중요한 순간들’을 포함하는 보살핌의 예식들을 소개한다. 즉, 출생때[신생아]의 세례예식, 어린이들의 교리교육, 성년으로 책임적인 생활을 준비하는 자들을 위한 견진례, 그들만의 가정을 시작하는 혼인예식, 중병을 앓고 있는 자들에 대한 병자방문예식, 그리고 별세자의 장례[상장]예식. 이러한 예식들 다음에는 산모의 출산감사예식, 참회예식(commination against sinners), 시편, 바다에서 사용하는[항해중에 사용하는] 기도예식, 평신도를 서품사목직으로 인도하는 성직서품예식서, 국왕의 왕위계승[즉위]일을 기념하는 예식, 그리고 신학적 논쟁점들에 대한 [잉글랜드]교회의 입장을 진술한 39개 신앙조항을 수록하였다.

    이러한 목록을 배경으로 러셀에서 인용한 사목적 돌봄(pastoral care)의 형태들에 대한 목록을 이해하여야 한다. 즉, 공적인 예배의 인도자(주일예배), 공적인 예배의 인도자(사목적 예식들), 설교자, 성사들의 집례자, 목회자, 교리교육자, 교회서기, 법과 질서의 집행자, 구휼품 분배자, 교사, 보건책임자 그리고 정치가. 이 직무들중 첫6개는 기도서에서 요구된 것이 틀림없다. 나머지 6가지중 일부는 쉽게 설명할 수 있다. 교회서기의 직무는 세례와 혼인, 장례와 같은 예식들을 기록하는 직무에서 나온다. 자선품 관리자에 대한 규정은 부제를 임명하는 예식에서 나온다. 물론 이 직무는 신약성서에서 그리스도인들의 기본적인 활동으로 분명하게 규정되지는 않았다. 영적인 돌봄을 필요로 하는 병자에 대한 위문은 당연히 그들의 육체적인 돌봄에서도 표현된다. 또한 주님의 사례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 복음주의 성직자들이 학교를 운영하는 이유들중 하나는 가난한 어린이들에게 성서를 읽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교육도 교리교육의 연장으로 볼 수 있다. 즉위기념일 예배양식-이와 함께 찰스 1세 순교기념일, 찰스2세의 생일과 국왕즉위일, 그리고 ‘교황파음모’[화약음모사건]사건에 대한 기념식과 함께(빅토리아 여왕때까지)-은 민간정부, 따라서 법과 질서에 대한 교회의 개입을 나타낸다. 오직 정치가의 활동은 기도서의 목록으로부터 인정받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오늘날 많은 성직자들은 고통받는 자들을 돌본다는 그들의 서품서약이 이러한 정치적 활동을 요구한다고 느낀다. 그러므로 세계성공회에서 사목적 돌봄에 대한 완전한 비젼은 공동기도서에 의해서 형성된다.

    아마도 한권의 책으로 신자들의 생활을 형성시키는 다른 교파공동체는 없을 것이다. 물론 많은 복음주의 집단들은 철저하게 성서에 근거한다고 주장하지만, 성서는 너무 넓고 다양하기 때문에 모든 교회들이 그 주장을 독점적으로 문서화할 수 없다. 비전례적인 교파교회들과 심지어 일부 전례적인 교파교회들 사이에서도, 예배의 형식들이 차지하는 분량이 너무 적어 찬송가집의 권말부록으로 인쇄되고 있다. 반면에 로마 가톨릭교회는 그들의 전례적인 자료들을 수록하는데 여러 권의 책이 필요하다. 그리고 성공회신자들의 경우, 기도서는 공동체적인 예배의 양식들 이상의 것을 포함한다. 왜냐하면 기도서는 하나의 그리스도교 공동체로서 우리 생활의 모든 측면들을 형성시킨다. 이러한 상황은 C. S. 루이스가 <순전한 그리스도교>(Mere Christianity)에 자신의 신앙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하여 추가한 <Tristram Shandy>(트리스트람 샌디)의 인용구에서 잘 표현되었다.

    즉, ‘필자가 전에도 말한 것처럼, [나 자신의 믿음들에는] 비밀이 없다. 토비아저씨의 말을 빌린다면, “그것들은 공동기도서에 씌여져 있다.”’

    3. 기도서 세계관의 사목직

    이 글의 첫 단락에서 인용하였던 것처럼, 성직서품 예식서는 우주와 그 안에 있는 인간의 위치에 대한 이해를 포함하고 있다.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함으로써, 인간은 하느님과 관계를 맺고, 하느님이 이 세상과 저 세상에서 인간들을 위하여 준비한 축복을 누릴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인간생활의 목적은 이러한 관계를 맺는 것이다. 즉, 유일한 실질적인 선은 그렇게 하는 것이고, 최종적인 악행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다. 성직자들은 신자들이 그러한 관계를 맺고 이를 유지하도록 도와주기 위하여 존재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인간활동 전체에 극히 중요하다. 바로 이 점이 그들의 직책과 책무를 ‘막중한’ 것으로 만든다. 심부름꾼[전언자] (messenger)으로서 그들은 남녀신자들에게 이러한 상황, 즉 하느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들을 위해 준비한 것을 알린다. 그들은 이 메세지를 듣고 수용한 자들을 보호하는 파수꾼이다. 그리고 그들은 하느님에 속한 것을 돌보는 청지기이다. 그들은 그들의 양떼[신자]들을 가르치고, 견책하고, 양육하며, 부양하여야 한다. 여기에는 두가지 가정이 포함되어 있다. 즉, (1) 성직자는 신자들을 개인적이자 공동체적으로 돌볼 책임을 갖는다, 그리고 (2) 그들의 과업[임무]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결과가 보장된 것도 아니다. 세상은 ‘사악한’ 것이지만, 영원한 구원은 극히 중대한 문제이다.

    따라서 성직자의 의무는 그들의 책임하에 있는 신자들을 성숙한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인도하여, 전체 신앙공동체에서 누구도 ‘신앙의 오류나 사악한 생활’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목직을 실행하는 기술은 초서의 <Poor Parson>(가난한 사목자)의 시대 이후로 변하지 않았다.

    Christes lore and his apostles twelve
    He taught, but first he folwed it himselve.
    [주 그리그도와 그의 12 제자
    그는 가르친다, 그러나 먼저 그는 스스로 실천한다.]

    또는, 성직서품 예식서에서 말하는 것처럼, ‘성서에서 유래한 교리와 권면’과 ‘이에 합당한 생활’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세계관은 기도서 전반에 깔려있다. 예를들면, 인간생활의 목적에 대한 기도서의 이해는 교리교육서[신앙의 개요]에서 주의 기도[주기도문]에서 기도의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해설에서 잘 나타난다. 즉,

    ‘나는 모든 자애를 베푸시는 우리 주 하느님 거룩한 성부께서 우리들에게, 그리고 모든 백성들에게 그 분의 은총을 내리시어, 우리들이 우리의 의무로써 그분을 예배하고, 섬기고, 복종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나는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우리의 영혼과 육체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보내주시고, 우리들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우리들의 죄를 용서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그분께서 모든 죄와 사악함으로부터, 우리의 영적인 적들로부터, 그리고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우리들을 보호하시도록 기도합니다. 나는 그분께서 자비와 자애로 이 모든 것을 베푸실 것으로 믿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멘-그렇게 믿습니다-이라고 말한다.’ [1662년 기도서 교리교육서에서-역자]

    성직자들은 교회(Church개별교회가 아니라 전체교회)에 의해서 임명되고, 하느님에 의해서 이 모든 기도들을 전달하는 통로가 되도록 권한을 부여받은 자들이다. 이것이 바로 사목직에 대한 기도서의 이해이다.

    이러한 이해의 의미들중 일부는 앞에서 언급하였던 로저 로이드(Roger Lloyd)의 글에서 자세히 설명되었다. 그는 ‘기도서에서 성공회 사목직의 전 범위를 결정하고 그리고 보편적인 그리스도교회(Church Universal)의 몇가지 사목직들 사이에서 성공회의 독특한 특징을 주는 5가지 원리’를 찾아내었다.

    1. 교회에서 행동하는 것과 교회밖의 생활 사이에 어떠한 장벽도 허용하는 것을 거부할 것.
    2. 공동기도서의 명칭이 나타내는 것처럼, 기도서는 확고하고 근본적으로 공동체적이다.
    3. [...] 기도서는 전 회중들이 전도구교회의 사목적이며 복음전도활동의 기본단위로 생각한다.
    4. 이와동시에 기도서는 예배자의 책임을 매우 높이 평가한다는 의미에서 매우 개인적(personal)이다.
    5. [...] 사제와 평신도의 사목적 책임은 무제한적이다. 그들은 하느님 앞에서 단순히 교회의 예배에 참여하는 자들만이 아니라, 전도구에 있는 모든 영혼[신자]들에 대한 책임을 맡고 있다.

    이러한 이해의 근본적인 요소들은 최근에 진행된 기도서의 개정작업에 그대로 유지되었다. 물론 메리언 헤치트(Marion Hatchett)가 미국성공회의 1979년 기도서의 성직서품예식에 관하여 말한 것은 영국성공회의 <대안예식서>(Alternative Service Book, 1980)에 대해서도 그대로 해당된다. 즉, ‘옛 양식은 교육, 설교 그리고 사목적 역할들을 강조하였다. 개정된 양식은 사제의 전례적이자 성사적인 역할들, 그리고 교회회의들에서 사제의 역할을 강조한다.’ 그는 또한 옛 양식들의 권고문이 기본적으로 부처의 논문인 <De ordinatione legitima>[적법한 서품에 관하여] 의 번역이며, 이 책은 평신도를 ‘수동적이며 무기력한 집단’으로 이해한다고 지적하였다. 이 후자의 해석[이해]은 적어도 기도서에 나타난 사목직의 이해에 관한 한, 로이드가 동의하지 않는 이해가 분명하다. 어쨋든 사목직의 본질에 관한 성공회적인 이해는 공동기도서에서 유래하며, 그 사목직의 구체적 형태[내용]는 기도서 전체에 의해서 규정된다는 점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목직에 대한 이러한 이해에 관한 또하나의 논점은 성직서품 예식서의 서문에서 서술하였듯이, 기도서는 종교개혁의 시기에 어떠한 새로운 것이 제정되었다는 가정을 포함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즉, 연속성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매우 확고하였기 때문에, 미국성공회는 1804년에 ‘성직을 준비하는’ 신자들이 공부하여야 하는 성직준비과정(Course of Ecclesiastical Studies)을 작성할 때, 사목적 돌봄에 관한 교과서로 길버트 버니트(Gilbert Burnet)의 <Discourse of the Pastoral Care>, 토머스 윌슨(Thomas Wison)의 <Parochialia> 그리고 성 존 크리스스톰의 <Christian Priesthood>을 포함하였다. 이러한 인식이 얼마나 널리 공유되었는가는 윌슨의 책 서문에서 그의 성직자들이 이미 사목적 돌봄에 관한 매우 훌륭한 책 두권-즉 그레고리 대제의 <Pastoral Care>와 조지 허버트의 <Country Parson>-을 보유하고 있다고 언급한 사실에서 입증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도서에서 채택된 이러한 성공회적인 세계관에서 사목적 돌봄의 목적에 대한 이해는 사제가 신자공동체의 양육에 깊이 관계하여야 하며, 개개인들은 공동체 안에서 신실하게(in holiness) 성장할 수 있으며 또한 그리스도가 만들어 놓은 이세상과 저세상에서의 구원을 향유할 수 있다. 다시 말한다면, 성공회의 목회적 사목직(사목적 성직, pastoral ministry)의 목적은 하느님의 백성들의 성화(sanctification)이다. 그러므로 사목적 돌봄에 관한 이 장은 이 책에서 성화에 집중하는 부분에 배치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

    4. 사목적 돌봄의 구성요소들

    이제 남은 지면에서 러셀이 제시한 사목적 돌봄의 영역들 각각에 대하여 살펴보자.

    4.1 공직인 예배의 인도자(주일의무들)
    이것은 사제의 가장 특징적인 활동들중 하나가 분명하다. 아이작 윌튼(Isaac Wilton)은 조지 허버트의 활동을 세상에 널리 알렸다. 허버트는 성무일과의 공적인 예배를 ‘그의 전도구민 대다수와 이웃의 많은 젠트리[지주]들이 매일 두차례씩 참여하도록 만들었으며’ 또한 야외에서 일하는 농부들에게도 감동을 주어 ‘허버트신부의 성무일과[기도시간]를 알리는 종소리를 들을 때마다 쟁기를 멈추고 그와 함께 하느님께 기도드렸다.’ 모든 성직자들이 이처럼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는 없었겠지만, 러셀이 입증한대로 18세기의 가장 저조하였던 시기에서도 주일의무는 일반적으로 수행되었다. 물론 ‘부관’이라고 불렸던 대리사목자(curate)가 소도시에 거주하면서 매주일 이웃한 여러 교회들을 급히 순회하면서 예배를 인도하였다.

    대다수의 교회들은 일요일 오전에 아침기도, 연도[대연도], 말씀의 예배(Antecommunion감사성찬례 예식중 성찬예식을 생략한 예배)와 설교를, 그리고 오후에는 저녁기도(설교를 포함하기도 한다)를 거행하였다. 앞에서 헤치트의 인용에서 암시되었듯이, 옥스퍼드운동이후 성사들을 더욱 강조하는 경향때문에 [감사]성찬례는 가장 일반적인 주일예배가 되었다. 1887년 켄터베리관구의 성직자회의 하원[사제원]은 교리교육서의 증보판을 작성하였으나, 상원[주교원]의 인준을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 문서는 1928년 미국성공회의 기도서에서 신앙의 개요 제2부(Second Office of Instruction)에 포함되었다. 여기서 신자들은 ‘나의 필수적인 의무는 그리스도를 따르며, 그의 교회에서 매주일 하느님을 예배하는 것이며, 또한 하느님나라의 확산을 위하여 일하고 기도하며 기부하는 것이다’고 말한다. 주일예배에 참여하는 것이 평신도에게 매우 중요한 것처럼, 주일예배를 인도하는 것도 성직자의 의무들중 매우 중요한 것임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4.2 공적인 예배의 인도자(사목적 예식들, surplice duties)
    러셀은 이 항목에 대하여 성직자들이 집례하는 통과의례(rites de passage)-산모의 출산감사예식, 혼인예식과 상장예식 등-을 언급하였다(p. 76). 세례예식은 그가 ‘성사의 집례자’에서 취급하기 때문에 여기에 포함되지 않으며, 견진예식에 대한 준비는 교리교육자에서 논의한다. 따라서 여기에서 성사의 수에 대한 질문을 제기할 수 있으나, 어떠한 분석도 임의적인 이해를 수반하지 않을 수 없다. 사목적 예식(surplice duties)은 미국성공회의 일부 성직자들이 이에 대한 ‘예식수임료’ (stole fee)를 받았다고 말하였던 활동들이다. 러셀에 의하면, 18세기의 거주 성직자들도 일요일의 아침예배와 오후예배 사이에 가능한 많은 사목적 예식들을 거행하는 것을 선호하였다. 이러한 예식들은 앞에서 언급한 ‘인생의 “모든 중대한 순간들”에 처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돌봄에 관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예식들은 성공회신앙과 사목직에 대한 성공회이해의 특징인 창조적, 성육신적, 성사적 이해를 반영한다.

    4.3 설교자
    앞에서 설명한 기도서 세계관은 지식-신학적 지식 포함-에 대한 선험적인 (가설적인prepositional) 이해를 포함한다. 이것은 인간이 이세상과 저세상 모두에서 완성된 삶을 갖기 위하여 반드시 이해하고, 믿고, 행동해야 하는 ‘진리들’-성서에 계시된 진리-이 있다고 가정한다. 설교는 이러한 진리들을 전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들중 하나이며, 따라서 일반적으로 공적인 예배를 인도하는 것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된 의무이자 동등한 의무로 인식된다. 이 때문에 조지 허버트는 ‘시골의 사목자는 끊임없이 설교하며, 설교대는 그의 기쁨이자 권좌이다’고 말할 수 있었다(The Country Parson, ch. ⅶ). 길버트 버니트는 그의 책 <Discourse Of the Pastoral Care>(ch. ⅸ)에서 오늘날의 성직자들에게도 유익할 수 있는 설교에 관한 충고를 제공한다. 물론 그는 틸롯슨 대주교의 설교들을 매우 칭찬하였지만, 브리로드(Briloth) 대주교는 그의 설교들이 성공회적인 설교의 해악인 도덕주의에 집중하였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1864년 존 헨리 브런트(John Henry Brunt)가 <Directorium Pastorale>을 출판할 때에 이르러, 복음주의와 가톨릭 부흥운동들[각성운동들]로부터 성장한 당파적인 정신은 설교에 대한 이해에도 영향을 주었다. 따라서 <소책자89호>의 저자는 ‘우리는 설교를 선을 행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경시하지 않는다. 설교는 허약하고 번민하는 상태에서 필수적일 수 있다. 그러나 줄잡아 말하더라도, 설교는 성서가 결코 추천한 적이 없는 도구[성사의 도구-역자]이다’고 말한 것을 인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복음주의 대변자는 그 반대의 효과를 내도록 인용하였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존 헨리 뉴먼은 잉글랜드교회가 낳은 가장 훌륭한 설교자들중 하나로 인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성직자들은 일반적으로 옥스퍼드운동 이후부터 그들의 설교의무를 덜 강조하였다는 점을 반드시 인정하여야 한다. 이러한 현상은 곧 변화하기를 기대한다!

    4.4 성사의 집례자
    아마도 공적인 예배의 인도자에 대한 논의에서 이 역할을 충분히 말하였다고 생각되지만, 19세기중반 이전까지 성사들[특히 성찬례]을 자주 거행하지 않았다는 점은 성사에 대한 낮은 존경심[이해, 평가]을 나타낸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허버트가 [감사]성찬례에 대하여 말한 것을 읽어본다면, 이러한 인상이 얼마나 커다란 오해였는가를 알 수 있다.

    ‘성사들을 집행하고 있는 시골사목자는 이 거룩한 것들에 어떠한 동작이 어떠한 동작이 또는 어떠한 태도가 합당한 것인지 어찌할 바를 모른다. 특히 영성체 때에 하느님을 받는 것 뿐만아니라, 나누고 집행할 때에 그는 커다란 혼동에 빠진다. 이에 대한 어떠한 쟁점도 찾지 못하고, 오직 은총의 권좌에 자신을 내던지며 말한다. 주님 당신은 이렇게 행할 것을 명령하였을 때 당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었으며, 그러므로 당신은 당신이 명령하신 일을 완성시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곧 잔치이시자, 잔치로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ch. xxⅱ)’

    4.5 교리교육자
    앞에서 언급한 신앙적 지식의 선험적 이해는 곧 교리교육서(Catechism)를 가르치는 일을 크게 강조하게 만들었다. 다른 많은 점들과 마찬가지로 이 점에서도 허버트는 높은 표준을 제시하였다. 그는 그의 모든 전도구민들이 교리교육에 출석하여, 교리교육서의 구절을 암기할 뿐만 아니라 이해하는데 노력할 것을 요구하였다(chap. xxi). 그러나 리처드 박스터(Richard Baxter)는 잉글랜드교회를 떠난 후에도, 초교파적인 협동을 확보할 노력으로 시간별 예약제도를 활용하여 전도구의 모든 가정들에 대하여 그리스도교 신앙에 관한 지식을 심사하는 프로그램인 <The Reformed Pastor>을 집필하였다. 피터 해먼드(Peter C. Hammond)의 <The Parson and the Victorian Church>에 의하면, 견진예식은 가톨릭 부흥운동에서야 널리 확산되기 시작하였으며, 교통수단의 발달로 활발하게 거행되었다는 전한다.

    4.6 목회자(Pastor)
    사목적 돌봄에 대한 성공회적인 태도들과 다른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의 그것 사이의 차이점을 찾아볼 수 있는 방법들중 하나는 이 주제를 연구하는 역사가들이 사목적 돌봄을 개인들, 특히 위기를 겪고있는 개인들에 대한 사목으로 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존 맥닐(John T. McNeill)의 경우, 사목적 돌봄은 ‘동물적 생활의 필요조건을 넘어서는 문제들에 당면한 자들을 양육하고[격려하고] 치료하는 조치’이다. 클렙쉬(Clebsch)와 재클(Jackle)의 경우, 그것은 ‘그리스도인 대표자들에 의해서, 궁국적인[근본적인] 의미들과 관심들에서 혼돈을 겪고있는 자들을 치유하고, 양육하고[격려하며], 안내하고, 그리고 화해[조정]시키도록 돕는 행동들이다.’ 미국에서 사목적 돌봄의 역사를 쓰면서, 브룩스 홀리필드(E. Brooks Holifield)는 그의 관심사를 ‘조언을 구하는 전도구교회 신자들과 (성직자와의) 사적인 [의견]교환’으로 한정하였다. 이는 곧 앞에서 논의한 성직자의 의무들 모두가 앞의 역사가들이 사용한 정의들에서 사목적 돌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성공회신앙은 사목적 돌봄의 본질을 매우 폭넓게 이해하여 왔으며, 또한 개개인들의 영적, 심리학적, 그리고 육체적 안녕에 대한 관심이 우리의 전통에서 결코 부족한 적이 없었다. 이러한 사목적 돌봄은 일반적으로 여러 교과서들의 ‘방문예식’(가정방문Visitation)이라는 항목에서 논의되었다. 이러한 방문예식은 종종 방문하는 가족들의 영성적 건강을 확인하고, 가족 구성원들이 보다 더 높은 차원으로 나아가도록 권고하는 것을 분명한 목적으로 하였다.

    종교개혁이후 모든 시기에서 사목적 돌봄에 대한 지속적인 특징은 최근에 매우 유행하였던 일종의 영적인 지도에 대한 관심이었다. 성화에 대한 관심은 결코 부족한 적이 없었다. 이러한 관심에 대한 특별한 사례는 사적인 고백[사적인 고해예식, private confession]의 시행이었다. 이에 대한 분명한 조항은 모든 기도서들에서 제공되었다. 그리고 때때로 이의 사용을 반대하는 성공회신자들도 있었지만, 교회는 이의 실행을 분명하게 허가하였다. 한편으로 사제가 발표하는 용서선언(absolution)이 탄원형식(precatory)인가, 아니면 선언 또는 명령형식 (declarative or authoritative)인가에 대한 논쟁이 있었으며, 그리고 신학자들 사이에는 이러한 예식이 일반적인 사용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예외적인 경우에만 사용하는지를 논쟁하였다. 그러나 사적인 고백의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하였다. 정말로, 맥닐은 ‘어떠한 다른 교파교회도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 영혼의 치유에 이보다 더 큰 관심을 쏟지 못하였다’고 말한다(P. 246)

    특히 미국에서 현대심리학의 발전은 사목적 돌봄을 사목적 상담으로 축소시키는 것을 허용하였다. 이러한 사례는 미국에서의 사목적 돌봄의 역사에 관한 홀리필드의 책의 부제인 ‘구원에서 자기실현[완성]으로’에서 잘 나타난다. 이러한 심리학주의 (psychologism)는 미국문화의 특징이 되었기 때문에, 필립 리프(Philip Rieff)는 심리학이 미국의 ‘공통적인 믿음의 단일체계’로 신학을 대체하였다고 제시하였다. 따라서 때때로 사목적 상담(pastoral counseling)과 심리요법(psychotherapy) 사이의 차이를 구별하기가 어렵게 되었으며, 이러한 상담을 수행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성직자들의 자격능력이 관심사가 되었다. 이는 심리학적인 통찰이 사목적 돌봄에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어쨌든 미국성공회의 성직자들은 다른 교파교회들만큼 사목적 돌봄에 대한 이러한 환원주의적인 접근을 선호하지 않았다.

    4.7 사무장, 법과 질서의 집행자, 구휼품 관리자, 보건책임자 그리고 정치가
    러셀은 성직자의 역할에서 성직서품 예식서에서 인준된 ‘특권적인’[의무적인] 요소들과 전통적인 사회에서 이러한 역할에 추가된 보조적인 요소들을 분명하게 구분하였다(p. 38). 이 단락의 부제로 열거된 요소들 대부분은 특권적인[의무적인] 요소들이 아니며, 이러한 논의에서 생략할 수 있다. 여기서는 단지 두가지 논점만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첫째로, 앞에서 설명하였던 자선품 관리자의 활동은 부제의 의무들중 특권적 요소이며, 그리스도교 사목직-평신도든 성직자든-의 개념에 본질적인 요소이다. 둘째로, 세계성공회가 확산되는 곳마다 성직자들은 학교를 지속적으로 설립하였다는 점이다. 종종 제3세계에서 교회학교들은 가장 쉽게 이용되는 학교이다. 또한 미국성공회에서 전도구교회 부설학교들의 대중적 인기는 곧 교육이 성공회 사목직에 추가된 것 이상임을 즉, 교육은 사목활동의 본질에 속한 것임을 제시한다.

    5. 결 론

    클렙쉬(Clebsch)와 재클(Jackle)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현대사회가 크게 의존하는 전문직들-의학, 사회사업, 교육, 법, 정신의학, 등등-중에서 사목직 또는 사제직은 이중에서 가장 덜 전문화된 직종이지만, 결코 가장 적게 도움을 주는 직종은 아니다. 전도구 사목자는 [...]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반적인 활동가들 중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부류이다.’(p. xv)

    그들[두 학자]은 사목적 돌봄을 위기를 겪고 있는 개개인들에 대한 사목으로 한정시키는 제한적인 시각으로부터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성공회 전통이 사목적 돌봄을 얼마나 포괄적으로 이해하는가를 고찰한다면, 우리는 성공회전통이 이를 매우 영광스런 소명으로 기대하고 있음을 실감할 것이다. 미래에 이러한 사목직을 실현하는 방식들에 대해서는 현재의 판단을 넘어서는 일이지만, 기본적인 형태에서 사목적 돌봄에 대한 이러한 전통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성공회교회의 무기력을 보게 될 것이며, 하느님의 백성들의 성화에 대한 성공회의 공헌을 절실하게 그리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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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10월 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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