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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The Study of Anglicanism-Sociology of Anglicanism « 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 번역 프로젝트 자료

번역 : The Study of Anglicanism-Sociology of Anglic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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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Cranmerian
    회원

    .성공회신앙의 사회학
    W. S. F. Pickering,
    Revised by Peter Brierley and Grace Davie

    정체성과 조직의 문제들

    세계성공회 공동체(Anglican Communion) 또는 성공회신앙(Anglicanism)은 세계적인 현상으로 그 명칭이 의미하는 것처럼 하나의 권위있는 기구[중앙기구]에 의해서 통제되는 하나의 통합된 [교파]교회나 이를 구성하는 여러 [지방별] [교파]교회들이 아니라, 오히려 켄터베리교구와 상통관계에 있는 [지방별] [교파]교회들의 느슨한 연합체(loose federation)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구성하는 교회들은 그들이 잉글랜드교회(Church of England)로부터 유래하였으며, 그 교회와 거의 똑같은 그리스도교 교리들와 전례들(신앙활동들practices)을 보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사회적 실체로서의 세계성공회 공동체(Anglican Communion)는 켄터베리 대주교인 C. T. 롱리(Longley)가 전세계의 잉글랜드교회[성공회] 주교들을 한자리로 소집하였던 1867년부터 존재하기 시작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모임-이후에 람베스 [주교]회의로 명칭되었다-은 처음에 카나다의 주교들이 요청하였다. 이후의 회의들은 거의 매 10년마다 개최되었다. 이 회의들은 켄터베리 대주교의 초청으로 개최되며, 대주교는 거의 명목상의 대표자-동등한 동료들중 대표자(primus inter pares)-로 세계성공회의 통합점(결속점point of union)이라는 특별한 지위를 보유한다. 1968년에는 보다 항구적인 자문기구로 활동할 세계성공회 협의회 (Anglican Consultative Council)의 설립을 결의하였다.

    람베스 주교회의는 전세계적으로 퍼져있는 성공회 교회들의 성장을 나타내는 공식적인 확인이다. 그러나 이 회의들은 항상 협의기구였다. 이 회의는 세계성공회의 이름으로 [교회]법률들을 제정하지 않으며, 구속력있는 결정들을 내리지 않으며, 또한 권한을 행사하지 않는다. 엄격하게 말한다면, 잉글랜드교회(Church of England)를 의미하는 하지 않는 한, 고유한 성공회(the Anglican Church)라는 교파교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즉, 서로 다른 성공회[잉글랜드교회] 교회들이 세계의 여러 지방들에 존재할 뿐이며, 이 교회들은 독립된 교회로 다른 성공회 교회들-특히 영국성공회-로부터 직접적인 통제를 받지 않는다.

    세계성공회 공동체는 로마 가톨릭교회와는 크게 다르다. 신자의 숫자에서 훨씬 소수일뿐 아니라, 그 사회적 조직에서도 중앙집중화된 법제정기구(로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한 사람 즉, 교황이 권한을 행사하는 로마 가톨릭교회와는 크게 구별된다.

    세계성공회는 몇가지 요인들을 통해서 전세계로 확산되었다. 첫째로, 잉글랜드교회는 북아메리카, 서인도제도, 호주 등의 지방으로 이주한 교회신자들인 이민자들을 통해서 브리튼제도(British Isles)를 벗어나 해외로 확산되었다. 본국으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새로이 이주해옴에 따라 해외의 거류지들은 성장하였다. 두번째 매개체는 선교단체들이었다. 마찬가지로 이들 단체들도 잉글랜드에서 시작되었으며, 급속히 확장되었던 대영제국-특히 19세기에-의 경계안에 있는 비그리스도인들을 개종시키는데 적극적이었다. 가장 뚜렸한 사례들은 인도, 아프리카와 극동[동아시아]의 일부 지방이었다. 일부의 경우, 잉글랜드교회 출신 선교사들의 활동은 이민자 교회들에서 설립된 선교단체의 활동으로 보완되었다. 예를들면, 일본성공회는 잉글랜드교회 뿐만 아니라, 미국과 카나다 성공회의 선교사들에 의해서 설립되었다. 오늘날 세계성공회의 교회들 중에서 잉글랜드의 선교단체들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해외의 선교사들 6명중 한명은 이 단체들 출신이다. 세계 각지의 성공회 교회들의 성장에 기여한 또 하나의 요인은 이 교회들의 신자들의 자연적인 증가였다. 교회의 성장은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지 않은 개종을 통해서, 때로는 다른 종교 또는 다른 교파교회 신자들과의 결혼을 통해서 발생하였다. 미국성공회의 경우, 전체 신자들의 절반은 무종교에서 그리고 다른 교파교회들에서 전입한 신자들이었다.

    19세기 동안에 가장 크게 성장하였던 이민자 교회들은, 지리적인 원거리 때문이거나 신학적인 신념에 따른 문제 때문에(어느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상당한 정도의 독립을 부여받았다. 이런 점에서 성공회신앙은 국가단위의 독립된 [성공회]교회들이라는 개념을 지지함으로써 로마 가톨릭교회의 이상보다는 프로테스탄트교회의 이상을 지향하였다. 다양한 성공회 교회들은 영국성공회의 전반적인 교리와 기풍(특질ethos)을 보존하면서도, 그들 나름대로의 독립을 강화하고 독특한 신앙적 표현들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이는 토착화의 가능성을 허용하였지만, 이와동시에 많은 교회들은 사실상 이러한 가능성들을 활용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하여야 한다. 일부 성공회 교회들은 영국적인 것들만을 집착함으로써, 영국성공회와 영국 국가의 기풍들을 맹목적으로 추종하였다. 예를들면, 카나다 성공회(Anglican Church in Canada)는 항상 영국과의 유대관계를 자랑하였으며, 이 교회의 본래 명칭인 <카나다에 있는 영국성공회>(Church of England in Canada)도 1958년에야 변경되었으며, 그것도 6년간의 반대끝에 가능하였다. 호주의 경우도 이러한 명칭변경은 이보다 훨씬 늦은 1981년에 호주에 있는 영국성공회(Church of England in Australia)에서 호주성공회(Anglican Church of Australia)로 개칭하였다[이 점은 한국성공회도 마찬가지였다-역자]. 카나다 온타리오주의 성공회는 영국성공회가 경험하였던 국가의 간섭을 거부하였지만, 그외의 모든 것들은 그대로 보존하며 1851년에야 독자적인 교회회의(총회 관구의회, synod)를 설립하였다. 뉴질랜드의 성공회는 교회회의를 1857년에 설립하였다. 영국령 인도제국은 곧 인도에서 영국과의 특별한 관계를 의미하였다. 특히 영국 국민들만을 사목하는 인도의 국교회제도(Indian Ecclesiastical Establishment)라는 개념은 영국민만을 사목의 대상으로 삼았다. 인도의 성공회는 토착민 주교들을 임명하고 교회회의를 설립하는데 특히 지연되었다. 교회회의는 1930년에야 설립되었다.

    미국에서 발생한 변화는 정말로 영국의 지배로부터의 자유와 토착화의 가능성에 대한 모형을 제시하였다. 독립전쟁(1733-76)의 결과로, 성공회 신앙을 가진 미국 시민들은 영국성공회와 완전히 단절된 모임을 결성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적절하였다. 더구나 잉글랜드에 있는 교회당국자들은 미국에 있는 성공회 교회들의 직무를 켄터베리 대주교와 영국의회가 직접 통제할 근거들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미국에 있는 성공회 교회는 자치를 획득하였을 때, 다른 성공회 교회들에게 좋은 선례를 제공하였다. 적어도 다른 성공회 교회들이 자치를 추구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주자들은 새로운 식민지들을 개척하였을 때, 신앙적 목적들을 위하여 스스로 잉글랜드교회[영국성공회]의 관구 안에 위치하였다. 단지 시간과 역사적 환경의 결과로 그들은 점차적으로 모교회와의 연결관계를 단절하게 되었다.

    지방 성공회들에 부여된 자유는 특정한 경우들에 그들이 세계성공회를 떠나는 것을 의미하였다. 이는 인도, 파키스탄과 실론의 성공회의 경우로, 이 교회는 교회통합의 옹호자로서 여러 단계들을 거쳐 통합된 남인도교회(1947)와 북인도교회 (1970)의 일부가 되었다. 이러한 사례들은 허가받은 손실들이었다고 말할 수 있으며, 그 기간동안 통계를 비교하는데 유의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는 다른 사례들로 일부 성공회 교회들은 분파적인 교파 또는 종파(sect)를 조직하였다. 이러한 사례들은 두가지 종류로 구별된다. 먼저 백인들이 포함된 경우로, 지난 한세기 동안에 20만명의 성공회 신자들이 16개의 분파적인 단체들을 조직하였다. 이들보다 규모가 큰 단체들이 비백인계들 사이-특히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에서 이탈하였다. 베레트에 의하면, 390만명의 신자들이 850개의 분파적인 집단들을 조직하였다. 이외에도 세계성공회는 개인과 소집단들이 ‘무종교’로 이탈하거나 다른 교파교회로 전환함으로써 약화되었다(아래 참조).

    따라서 자치적인 교회들의 연합체인 세계성공회는 모든 신자들에게 구속력을 갖는 교리, 의례 그리고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권위있는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 각 [관구]교회들은 서로 다른 헌장에 따라 독자적인 방식을 스스로 책임지며 치리한다. 각 [관구]교회들을 서로 결속시키는 유일한 요인은 영국성공회와 깊이 관련된 전통에 대한 충성이다.

    모든 성공회 교회들은 성직의 가톨릭 개념(초기교회 개념Catholic concept)-즉, 역사적 주교직에 근거한 성직-을 수용하였다(pp. 333-47 참조). 사도적 계승이라는 주장은 영국성공회가 그 교직들[성직들]을 초기 그리스도교회로부터 물려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방식으로 정의된 주교제교회(Episcopalism)는 성공회 교회들을 신학적으로 다른 교파교회들로부터 구별시키며, 이러한 특징은 성공회신앙을 종교개혁 교회들 사이에서 독특한 교회로 만든다.

    인구통계학과 다른 고려사항들

    커다란 종교집단에 대하여 정확하면서도 의미있는 통계를 생산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 세계적인 성공회신앙의 경우, 최근까지 일부 나라들-특히 잉글랜드-에서 통계를 수집하는 일이 의미있는 업무로 인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반면에 일부 관구교회들-특히 카나다 성공회-은 이러한 작업을 진지하게 수행하였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일반적으로 의미를 갖는 신자의식, 신앙활동 그리고 믿음에 대한 통계적인 범주들을 만드는데서 흔히 발생한다. 데이빗 바레트(David B. Barrett)의 선구적인 작업은 일부 교구들과 관구들의 제한적인 도움에도 불구하고 세계성공회의 통계자료들로 가장 신뢰받는 것들중 하나이다.

    바레트에 의하면, 1980년 세계성공회의 세례신자의 수는 4,980만명이었다. 숫자상으로는 1900년의 3,060만명에서 1970년의 4,760만명으로 증가하였지만, 세계인구중 차지하는 비율은 1900년의 1.8퍼센트에서 1970년의 1.3퍼센트, 그리고 1980년의 1.1퍼센트로 감소하였다. 만약에 모호한 범주인 그리스도교 신자라고 고백하는 숫자-교회에 알려지지 않은 수를 포함하는-는 1970년에 거의 6천만으로 증가하며, 세계인구의 1.7퍼센트를 차지하였다.

    도표 1. 세계성공회. 지방별로 1995년을 기준으로 각 지방별 교회의 신자수에 대한 세계적인 통계.[여기서는 생략하였음. 책 409쪽 참조]

    1990년 [세계성공회의] 성인신자의 수는 1,006만명이었다. 따라서 전세계적으로 계산한다면 성공회는 아주 소규모의 종교집단이다. 확실히 성공회 교회들은 전세계의 160여개 국가들에 존재하지만, 선택된 신자수 범주에 의하면 잉글랜드가 전체 성공회신자들의 40퍼센트를 차지한다. 그외의 모든 나라들에서 성공회 교회들은 소수파이며,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10개의 관구교회들 또는 단체들에서 성공회 교회는 전체 인구의 1퍼센트 미만이다. 성공회 교회들의 3분의2는 제3세계에 위치하고 있으며, 교회들의 전체 숫자는 30개가 채 못된다.

    매년 새로운 교구들이 전세계적으로 설립되고 있다. 보다 많은 교구들의 설립은 신자수의 증가를 반영하기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주교의 행정단위를 축소시키려는 실용적인 정책의 확장으로 설립되기도 한다.

    전세계적인 조직으로서의 세계성공회는 숫자상으로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하더라도, 오늘날 19세기 대영제국의 팽창이후 전성기였던 1920년대와 30년대 보다는 그 영향력이 훨씬 떨어지고 있다. 대영제국의 해체이후 성공회신앙의 권위있는 영향력들은 상당히 약화되었다. 정말로 현대의 세계성공회에서 나타나는 긴장[문제]들중 상당수는 영연방(British Commonwealth)에 존재하는 긴장들과 비슷하게 보인다.

    서구 산업사회의 세속화에 직면하여 성공회 교회들의 신자수가 감소하고 있는 국가들은 영국, 미국, 카나다, 호주 그리고 뉴질랜드이다. 오늘날 신자수는 주로 아프리카 국가들과 파푸아 뉴기니에서 증가하고 있다. 추정치로 아프리카에서의 세례신자수는 1970년의 680만에서 1995년의 1,810만명으로 증가하였으며, 따라서 이 기간동안에 [세계성공회의] 전체 신자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5퍼센트에서 34퍼센트로 급증하였다.

    잉글랜드는 가장 심각한 쇠퇴를 겪고 있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여전히 성공회를 확고하게 지지하고 있으며, 여론조사들은 인구의 대다수가 영국성공회를 ‘유익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이 교회의 국교회적인 지위를 변화시키려는 확고한 의지는 없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다르게 나타난다. 평균적으로 매주일 전체 성인인구의 3퍼센트 미만이 잉글랜드의 성공회교회들에 출석하며, 이러한 수준은 부활주일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모교회인 영국성공회의 쇠퇴는 이 교회를 항상 존중하는 자매교회(daughter Churches)들에게 걱정과 자신감의 상실을 야기시켰다고 말하는 것은 아마도 너무 지나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이와 비슷한 쇠퇴는 세계의 다른 지방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예를들면, 토론토교구의 한 조사에서 성공회신자의 75퍼센트가 비활동적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잠재적인’[숨어있는] 신자로 평가되고 있었다. 또한 이들중 90퍼센트가 영국계라는 점을 지적하여야 한다.

    사회계층과 관련된 특징들은 세계성공회의 각 관구교회들마다 그리고 한 나라 또는 관구의 전도구교회들마다 매우 다르다. 인도, 중앙 아프리카와 남아프리카와 같은 지방들에서 신자들의 대다수는 경제적으로 혜택받지 못한 계층인 부랑자들과 빈곤한 흑인 아프리카인들이었다. 남아프리카에서 성공회 교회는 특히 흑인 아프리카인들 뿐만 아니라 인종차별제도로 고통받고 있는 자들과 혼혈인들 사이에서 활발하였다. 트레버 허들스톤(Trevor Huddleston)주교와 알렌 페이톤(Alan Paton)주교는 핍박받는 자들의 지도자였다. 그리고 데스몬드 투투(Desmond Tutu) 대주교는 백인 지배의 피해를 축소시키려는 흑인지도자들중 가장 유명하였다. 인도에서 영국계 인도인들(Anglo-Indian)은 성공회의 영향을 많이 받은 집단이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미국성공회는 일인당 수입을 기준으로 부유하고 출세지향적인 자들의 교회라고 지적받기도 한다.

    잉글랜드 성공회의 경우, 임금노동자 계층으로 분류할 수 있는 신자들의 수는 상대적으로 적으며, 중간이상의 계층과 귀족계층에서 강력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 교회의 주요 지지층은 중간이상의 임금노동자 계층, 중간이하의 중산계층들 그리고 전문직 종사자들로, 사회전반 보다는 교회에서 더 많은 숫자를 차지하고 있다.

    연령별로 보면, 각 관구별로 그리고 각 전도구교회별로 상당히 다르다. 바레트의 조사처럼, 제3세계의 성공회들은 주로 백인들 국가의 성공회들보다 훨씬 젊은 연령구조를 보인다. 특히 케냐는 매우 젊은 연령구조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주와 북미주의 성공회 교회들은 영국의 교회들보다 상대적으로 젊다. 그 이유는 부분적으로 교회가 위치한 사회의 젊은 연령구조를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생국가들’에서도 종종 교회들의 연령구조는 사회보다 더 노년층을 향하고 있다. 영국성공회는 안타깝게도 젊은층에 영향을 주는데 실패하였다. 아마도 예외적으로 영국성공회의 복음주의파들은 젊은 성인층들 사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확보하였다. 더구나 잉글랜드와 그외의 여러 지방들에서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훨씬 많으며, 여성대 남성의 비율은 종종 2:1을 나타내고 있다.

    독특성: 전통들의 결합

    세계성공회는 모교회인 잉글랜드교회[영국성공회]에 대한 철저한 이해없이는 교회론적으로나 사회학적으로 제대로 이해될 수 없다. 세계성공회내의 각 교회들은 많은 면들에서 잉글랜드교회를 철저하게 반영하면서도, 다른 면들에서는 이와 매우 다르다. 중요한 점은 세계성공회의 근원이 되었던 조직체를 먼저 이해하고 평가하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교회들의 일탈현상을 평가하기 전에, 이 교회들이 받은 영향을 먼저 이해하여야 하기 때문에 항상 잉글랜드교회에서 시작하여야 한다.

    그리스도교의 변천사에 익숙한 외부인들에게 세계성공회는 그리스도교 전통들의 놀라운 혼합, 즉 프랑스어의 멜랑쥬(mélange)-혼합물-와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특성은, 종종 자랑스럽게 포괄성(comprehensiveness)과 동일하게 간주되며, 16세기 이후로 서구 그리스도교의 두가지 주요 전통들-로마 가톨릭신앙과 프로테스탄트신앙-의 일부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 두가지 전통 (그리고 프로테스탄트신앙 내에서 특히 칼빈주의신앙)은 통일된[일관된] 신학적 체계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성공회신앙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 두가지 체계들의 혼합이자 여기에 그 이후에 나타난 자유주의적 요소들이 추가된 아말감[합금 혼합물]이 되었다. 이 때문에 성공회신자로 성장하지 않은 자들, 또는 비아메디아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이 이를 수용하기는 어렵게 보인다. 이러한 입장은 두 세계의 장점들, 즉 초기교회 형태의 예배와 교회성직뿐 아니라 어느정도 개인적인 해석을 허용하는 초기교회 신경들에 표현된 성서적 신앙을 포함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오늘날 많은 성공회신자들은 스스로를 단순히 프로테스탄트라고 인식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가톨릭이자 종교개혁적이라고(Catholic and Reformed) 이해하려 한다. 따라서 그들은 그리스도교계를 4가지 주요한 전통들-로마 가톨릭, 동방 정교회, 프로테스탄트 그리고 성공회-로 구성된 것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이 범주들의 마지막 항이 첫번째와 세번째의 혼합물이라는 점은 다른 전통에서 성장한 자들에게 모호함으로 보일 수 있지만, 성공회신자들은 그렇게 인식하지 않는다. 이러한 자기만족적인 논점(point)은 논리적으로 도출된 신앙적 체계의 확립이 아니라, 모호한 실용주의에 의존한다. 성공회는 프로테스탄트도 가톨릭도 아닌 자들을 결집시킨다. 그러므로 그들의 논리는 긍정보다는 부정적 성향이 강하다. 즉, ‘그것은 우리가 무엇이다고 말하기 보다는 우리는 무엇이 아니다를 말한다.’

    성공회신앙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성공회의 핵심적 요소들에 충실한다고 주장하는 교회내부 당파들의 존재이다. 예를들면, 영국성공회내의 이러한 당파들은 교회에 대한 충성선언에도 불구하고 서로 간에 너무 분리되어 있다. 18세기와 19세기의 부흥운동들-복음주의 부흥운동과 고교파운동-은 결과적으로 국교회의 합법적 또는 반합법적인 요소들로 수용되었다(pp. 33-9 참조). 아마도 포괄성, 즉 극단들을 포용하면서도 이와 동시에 분열을 야기시키지 않으며 토론의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이 곧 성공회신앙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신앙은 프토테스탄트신앙과 로마 가톨릭신앙 사이를 잇는 교량역할을 하는 특별한 위치에 있다. 그러나 또한 이러한 덕목은 필요에 의해서 발생하였다고 주장할 수 있다. 왜 필요했는가? 독립적인 기관으로서의 잉글랜드교회는 처음부터 바람직하지 않은 운동의 지지자들을 배제시킬 수 있는 권한이 없었다. 따라서 자유주의자들, 복음주의자들과 앵글로-가톨릭들을 수용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모든 집단들-그리고 다른 집단들-은 이 교회의 신학적, 사목적, 그리고 영성적 생활에 크게 기여하였다.

    성공회신앙 내에서 이러한 당파들의 존재로 야기된 내적인 긴장들은 먼저 잉글랜에서 발생하였지만, 세계성공회의 다른 교회들에서는 잉글랜드만큼 격렬하지 않았으며, 잉글랜드에서는 여전히 그러하다. 여기에는 몇가지 이유들이 있다. 잉글랜드의 경우,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성향의 성직자들(churchmanship)이 사목하는 전도구 교회들이 서로 이웃하기 때문에 신자들이 그러한 차이들을 쉽게 알 수 있지만, 다른 [지방]교회들 또는 관구들의 경우 특정한 성향의 성직자들의 교구들과 전도구교회들은 지리적으로 분리되어 있다. 또하나의 이유로, 선교회별로 형성된 교회당파들은 그러한 선교회들-예를들면 Bible Churchmen’s Missionary Society(현재는 Crosslink)[복음주의] 또는 USPG(복음전도회, 고교회파)-을 설립하여 일반적으로 서로 완전히 분리된 지방들에서 활동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동일한 지방에서 경쟁하지 않았다. 이러한 합의는 19세기의 복음화운동이 직면하였던 거대한 과제를 생각하면 현명한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해외의 선교활동을 수행하였던 수도회들-성 요한 수도회(Society of St John the Evangelist)와 부활수도회(Community of the Resurrection)와 같은 단체들-도 이러한 신사협정을 수용하였다. 따라서 서로 다른 선교회들의 후원을 받으며 성장하며 성공회신앙으로 개종한 자들과 그 후계자들은 대부분의 경우 다른 형태의 성직자성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였다. 다만 이들이 다른 지방이나 잉글랜드를 방문하였을 때에야 이러한 차이들을 목격하였다.

    따라서 특정한 관구교회에서 성직자성향(churchmanship, 당파)의 문제는 지방에 따라 서로 다르다. 카나다 성공회처럼 많은 성공회 교회들은 잉글랜드에서 발생하였던 극단적인 형태의 성직자당파들을 전혀 겪지 않았다. 때때로 저교회파 (반드시 복음주의는 아니었다)의 영향으로 오히려 균형잡힌 입장들이 나타났으며, 극단적인 형태의 고교회파는 결코 폭넓은 지지를 얻지 못하였다. 카나다에서 이러한 극단적인 형태의 성직자당파가 전혀 나타날 수 없었던 이유는 대다수 전도구교회들이 전도구민으로 구성된 평신도 치리기구에 의해서 유지되었기 때문이었다. 미국과 같은 다른 관구교회들에서, 특정한 교구나 지역은 역사적 이유로 모두 앵글로-가톨릭 성향이지만, 다른 지역은 그렇지 않았다. 남아메리카와 중동지방의 경우, 최초의 선교사들의 영향에 따라 일반적으로 복음주의 또는 저교회파로 인정되었지만, 다른 지방인 서인도제도, 파퓨아, 한국, 일본 그리고 가나의 교회들은 다른 선교회들의 영향으로 대부분 앵글로-가톨릭(또는 고교회파)이다. 남아프리카의 경우, 앵글로-가톨릭 성향은 아프리카인들과 혼혈인들[유색인들]의 전도구교회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잉글랜드교회는 16세기와 17세기에 대륙의 교회들이 겪었던 급격한 변화들을 겪지 않았다. 이 교회는 교회직제의 중심으로 주교직을 보존하였지만, 잉글랜드의 주교들은 중세시대의 선배들과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그들의 신자들과 성직자들을 치리하는 위치에 처하였다. 즉, 잉글랜드교회에서 실행할 수 있는 교회법의 부재 그리고 전도구 사제들의 종신재직권(자유보유권freehold)-오늘날에서 존재한다-은 두가지를 의미하였다.

    첫째로, 이 두가지 요소의 놀라운 결합은 극단적인 당파들을 정착시켰다. 즉, 잉글랜드교회의 첫 시기에 극단들을 회피하며 그 이후에는 포괄성으로 진화되었던 이념적 입장, 그리고 매우 제한적인 이유에서만 성직록에서 제외 교직자의 종신재직권(이 권한은 매우 제한적인 이유로만 파기될 수 있었다), 이 두가지의 결합이었다. 이러한 결합은 특히 19세기 이후부터 촉진되어 급격하게 확산되는 신앙적 다양화를 낳았다.

    또다른 의미는 주교들의 역할에 관한 것이다. 주교들은 국가의 문제에 덜 개입하고 그들의 교구에 보다 더 관심을 가졌을 때, 그들의 행정적 권한들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그들의 교구를 책임져야 했지만, 그들은 점증하는 세속주의를 차단시키기 위하여 전도구교회 사목자들을 전근시키거나, 또는 신앙적 극단주의나 사목적 무능으로 전도구 사목자를 해임시킬 수 없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잉글랜드 밖에 있는 다른나라들의 주교들은 보다 권위적이며 ‘옛날의’[중세교회의-역자] 주교들처럼 기능할 수 있었다. 예를들면, 그들은 종신재직권이 없는 성직자들을 확고하게 통제할 수 있었다. 더구나 주교들은 종종 교회회의(synod, 교구의회)의 권위를 보유하였기 때문에 교회법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물론 이로부터 제한도 받았지만.
    세계적인 종교현상으로서의 성공회신앙은 한가지 중대한 결점을 드러낸다. 이 모음집의 다른 기고자는 이를 ‘앵글로-색슨 포로’(Anglo-Saxon Captivity)라고 명칭하였다. 영어를 제1의 국제어로 사용함으로써, 해외로 자주 여행하는 교회지도자들은 세계성공회가 마치 전세계의 문화들을 대표한다고 착각하는 위험에 빠진다. 사실상 14개의 관구교회들과 기구들이 영어가 아닌 직함을 사용한다. 모든 성공회교회들은 예배와 설교에서 자국어를 사용하며, 1978년 람베스회의의 진행과정은 모두 프랑스어와 일어와 스페인어로 동시에 통역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회신자들의 약 90퍼센트는 영어를 공식적인 언어로 사용하는 나라들에 살고 있다. 그리고 토착화에 대한 권고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관구교회들이 영국성공회에서만 사용하는 독특한 교회론적인[교회의 기구와 직제에 대한] 용어들-다른 교파교회들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을 그대로 채택함으로써 이러한 제한적인 국제주의를 더욱 심화시켰다. 이들중에는 총사제(archdeacon), 시골교무구(rural deanery), 교회위원(church warden), 관할사제(rector)(vicar는 그리 흔하지 않다), 부주교(suffragan bishop), 주교원(House of bishops)(House of Parliament를 따른 명칭)이라는 용어들과 지에프에스(여성신자회Girl’s Friendly Society), 어머니회(Mother’s Union), 예배조력자모임(Guild of the Servants of the Sanctuary)과 같은 단체들을 꼽을 수 있다. 또한 성직자들의 복장도 영국적인 형태를 따르고 있다.

    미 래

    성공회신앙의 특징은 종종 그리스도교 전통들의 혼합-즉, 포괄성-에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밀과] 가라지의 비유에 대한 살아있는 증언으로 볼 수도 있다. 즉, 믿음과 실제(신앙활동practice)의 문제에서 폭넓은 다양성을 허용한다. 즉, 다양한 요소들이 나란히 성장하며, 최종적인 판단은 인간의 한계[범주]를 초월하는 누군가 (Someone하느님)에게 맡긴다. 세계성공회는 또한 초기 그리스도교회[원시교회] 내에서 존재하였던 다양성들과 갈등들을 반영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성공회 교회들은 열렬하면서도 책임적인 신앙인들의 영성적인 고향으로 남아있으면서도, 회의론자들과 혼동하는 자들의 피난처들이며, 불신자들과 거만한 자들과 의심하는 자들을 위한 토론장이다. 보다 조직적인(institutional) 용어로 표현한다면, 성공회신앙은 옛신앙, 전통적인 신앙, 가톨릭 신앙을 보존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러한 주장들은 불가피하게 역사에 호소한다. 즉, 모든 것을 과거에 발생한 것들-그리스도교의 시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과거-에 의존한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성공회신앙은 스스로 변화하고 개혁하려고 한다. 오늘날의 전례서들은 크랜머의 전례서로부터 광범위하게 변화하였다. 대다수 관구교회들은 교회회의에 의해서 치리되며, 교회생활의 모든 분야에 평신도들이 깊이 참여하고 있다.

    1990년대 잉글랜드교회에서 한가지 중요한 사건은 여성의 성직서품이었다. 1978년 여성을 과거의 여성 종신부제직(deaconess)이 아닌 [3가지 성직의 하나인] 부제직에 서품을 허용하는 법률을 제정하였다. 1992년 여성을 사제로 서품하는 법안에 대한 역사적인 표결은 근소한 차이로 간신히 통과되었다. 첫번째 여성사제 서품은 1994년에 거행되었다. 다음해까지 10,459명의 사제들 중에서 783명이 여성으로 전체의 7.5퍼센트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일부는 이러한 행동을 부정하고 교회를 떠났다. 이 문제로 약300명의 성직자와 15,000명의 평신도들이 교회를 이탈하였다. 이중 절반의 성직자들은 로마 가톨릭교회로 귀의하였으며, 9명은 안티옥교구의 이그나티우스4세 주교의 관할권으로 들어가 안티옥 정교회 교무구(Anthiochian Orthodox Deanery)를 형성하였다. 일부 성직자들은 성직을 떠났으며, 약 천명의 평신도들은 다른 성공회교파에 가입하였다. 이중 가장 커다란 집단은 Anglican Catholic Church로, 1992년에 시작하여 5년후 27개 교회와 650명의 신자를 형성하였다.

    그러나 성공회신앙의 강점들은 약점들을 감추고 있다. 즉, 성공회신앙에서 나타나는 무기력함은 일부 신자들에게 이 교회를 버리고 다른 교파교회를 선택하는 충분한 이유이다. 특히 과거에는 이것이 커다란 문제였으며, 오늘날에서도 이는 사실이다. 몇가지 사례들에서 고교회파 성향의 신자들은 로마 가톨릭이나 정교회로 떠난다. 반면에 복음주의 신자들의 출구(exit) 또는 부분적인 출구는 비교파적인 새로운 교회(New Church)들이다. 다른 교파교회로 이전하는 것은 소위 성공회신앙의 무기력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해결책은 아니다. 연속성을 갖는 [성공회] 교회들(Continuing Churches)이 설립될 수도 있으며, 확실히 미국과 카나다의 경우
    Anglican Catholic Church, American Episcopal Church, United Episcopal Church, Anglican Rite Jurisdiction of the Americas, 그리고 Anglican Catholic Church of Canada가 바로 그런 교회들이다. 이들 집단들의 신자수는 모두 합쳐 약5-6만명으로 추산된다. 이 집단들은 전세계의 성공회 앵글로-가톨릭 단체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잠정적인 교회들은 그 크기와 정신에서 정말로 종파(sect)가 되고 있다. 그리고 세계성공회의 보다 큰 교회들이 현재의 교리와 실제(신앙활동practice)에 만족하지 못하는 집단들의 이탈로 약화된다면, 그러한 교회들도 사실상 종파가 될 것이며, 또는 그들이 이미 종파적인 특성들을 보유하였다면, 이들은 그것을 더욱 강화시킬 것이다.

    성공회신앙은 그리스도교의 독특한 구성요소로서 생존할 운명인가[반드시 생존할 것인가]? 이 문제는 두가지 응답을 요청한다. 첫째는 성공회신앙의 교리, 실제들과 정서(ethos, 기풍)가 지역적 차이들에도 불구하고 교회개혁, 전례적 변화, 은사주의적 열정, 교회일치운동의 영향, 그리고 많은 젊은이들 사이에 나타나는 교파적인 성향의 약화-심지어 교파의 종식까지-에 대한 기대에도 불구하고 지속될 것인가에 대답할 것을 요구한다. 정말로 신자석에 앉아있는 성공회교인들이 성공회신앙의 독특한 특성들을 유지하기를 어느정도로 원하는가를 묻는 것이다. 이 문제는 자세한 연구를 필요로하며 여기서 다룰 수는 없다. 두번째 응답은 성공회신앙의 구체적인 사회적 표현으로, 세계성공회의 존재에 집중한다. 즉, 세계성공회 공동체는 존속할 것인가? 이를 예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어느 경우든 사회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미래학이 그들의 임무의 일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다가올 몇해안에 세계성공회에 대한 질문은 과거 어느때보다도 더 긴급한 질문이 될 것이다.

    한편으로 세계성공회의 미래는 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다. 앞에서 설명하였듯이 전반적인 성장추세는 지속될 것이며, 세계의 한 부분에서의 성장은 다른 부분에서의 손실을 만회할 것이다. 성공회신앙의 전반적인 상태는 세속화의 확대-특히 서구사회에 뚜렷하게 나타나지만 이에 영향을 받는 모든 사회들에서도 나타난다-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려있다. 확대되는 풍요로움은 종종 신앙적 믿음과 실제[신앙활동]의 적이 된다. 일부는 성공회신앙의 포용성과 소위 무기력함이 보편화되는 세속화의 진행물결을 막을 수 있을지를 의심한다.

    또하나의 요소는 직접적으로 통일성을 유지하면서도 확대되는 다양성의 범위에 대한 문제로, 이로 인하여 나타나는 내부적인 긴장과 불만의 문제이다. 관용이 허용되는 분명한 한계들이 존재하는가? 사회학자들 사이에는 단 하나의 요소-믿음, 실제[신앙활동] 또는 문화-만이 교회와 같은 한 사회적 실체의 통합에 필수조건이라고 공감하지 않는다. 통합이란 그 자체로 단일적인 개념이 아니며, 가변성과 다양성에 개방되어 있다. 복음과 그리스도교회의 문제들이 위기에 부딪쳤을 때, ‘살아있고 살아있게 만드는 것’보다 더 결정적인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러나 신자의식의 경계들을 보다 명확하게 규정하려는 새로운 법률을 만들려는 어떠한 시도도 역사적 성공회신앙의 중요한 특징을 위반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성공회신앙의 딜레마가 있다.

    1998년판의 추가

    최근의 통계
    Peter Brieley

    앞의 글에서 피커링[저자]이 인용한 통계들중 일부는 대부분 데이비드 바레트가 편집하고 제작한 출판물들에 의존하였다. 바레트 박사는 1982년에 출판된 그의 방대한 <World Christian Encyclopedia>의 추가내용으로 매년 <International Bulletin of Missionary>의 1월호에 도표들과 함께 최신통계를 발표하며, 1999년에 또다시 옥스퍼드 출판사를 통해서 세권으로 구성된 개정판 <Encyclopedia>를 출판하였다.

    그러나 또 하나의 책, 패트랙 존스톤의 자료들을 이용한 <World Churches Handbook> 또는 WCH가 1997년에 출판되었다. 이 책 또한 세계 그리스도교를 개관하고 있으며, 1995년에 세계인구중 그리스도인의 비율을 바레트 박사보다 적은 28퍼센트로 추산한다. 그 이유는 세가지로, WCH는 바레트박사가 포함시켰던 ‘소규모(marginal)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여호와의 증인, 몰몬교 등)을 제외시켰으며, 러시아정교회의 신자수를 낮게 추산하고, 그리고 은사주의운동 신자들의 수를 1980년만큼 1990년대에 크게 성장하였다고 가정하지 않았다.

    이외에도 세계 그리스도교에 대한 통계의 두 자료들은 중요한 차이점을 나타내고 있다. 바레트 박사의 통계는 세계인구에서 그리스도인의 비율을 증가하는 것으로 예측하였지만, WCH는 약간 감소하는 것, 즉 2010년까지 27퍼센트로 추산하였다.

    피커링 박사는 1980년 세계성공회의 세례신자수를 바레트박사의 추산인 4,980만명으로 인용하였지만, WCH는 이보다 약간 많은 5,030만명으로 추산하였다. WCH의 통계에 의하면, 1990년까지 세계성공회의 신자수는 세계인구의 1.1퍼센트이며, 1990년에는 1.0퍼센트로 추산하였다.

    이러한 점진적인 감소는 두가지 요소들을 반영한다. 첫째로, 일반적으로 세계인구는 그리스도인(성공회 신자들 다른 교파교회 신자들)의 수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즉, 1995년에서 2000년 사이에 약 53,000명이 매일 그리스도인이 되지만, 세계인구는 매일 24만명씩 증가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매일 증가분의 22퍼센트를 차지하지만, 1985-90년의 기간에는 27퍼센트였다.

    둘째로, 성공회는 다른 교파교회들만큼 빨리 증가하지 않는다. 따라서 1980-2010년 사이에 성공회신자들은 전세계적으로 약9백만명이 증가하는 것으로 추산되며, 이는 30년간 18퍼센트, 또는 년간 0.54퍼센트가 증가하는 것이다.

    성공회신자수의 감소는 부분적으로 전세계적인 그리스도인의 감소현상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로 다른 교파교회들이 유행하기 때문이다. 가장 빨리 성장하는 세 집단들은 토착교회들(주로 대다수가 아프리카에 위치한다), 오순절교회들 (Pentecostal churches), 그리고 이보다 작은 나자렛교회(Church of the Nazarene), 형제교회(Christian Brethren), 제7안식일 예수 재림교회(Seventh-day Adventist Churches), 복음자유교회(Evangelical Free Churches), 구세군(Salvation Army), 그리스도의 교회(Church of Christ), 그리스도의 제자회(Disciples of Christ), 회중교회(Congregational Churches), 선교교회(missionary churches) 등과 같은 소규모 교파교회들이다.

    이 세가지 집단들은 소규모 회중들[지역교회 신자들](성공회의 660명에 비해 평균적으로 240명), 비형식성, 그러나 아마도 지역교회의 차원에서 매우 권위적인 구조를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이 집단들의 성장은 올바로 이해되어야 한다. 1995년에 이 집단들은 전부 합쳐 세계 그리스도교 인구의 18퍼센트를 차지하였다-성공회는 3퍼센트.

    1960년의 상황은 아주 달랐다. 성공회는 당시에 4번째로 큰 교파교회였으나, 1995년에는 7번째였다.

    1990년대에 세계성공회는 매일 900명씩 증가하였으나, 이는 그리스도교의 전체성장의 2퍼센트가 채 못되었다.

    세계성공회는 1980-90년에 그 이전의 10년보다 덜 성장하였으며, 그 이후로도 비슷할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기간동안 그리스도교계의 숫자는 가장 크게 증가하였으며, 이는 기본적으로 교파교회들간의 경쟁이 1980년대에 매우 치열하였음을 의미한다. 가장 빠른 성장은 비기관적인[조직을 갖추지 않은] 교회들(non-institutional Churches)이었다. 다른 말로 설명한다면, 1980년대에 특히 은사주의운동 교회들의 성장은 성공회교회에 가입할 수도 있는 자들이 대신에 다른 교파교회들에 가입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의 성공회교회들이 이러한 현상으로부터 얼마나 깨닫았으며, 또한 1990년대에 가입할 새로운 신자들의 요구들을 충족시킬수 있도록 그들의 문화를 어느정도 조정하였는가?

    20세기 후반 그리고 21세기에 예상되는 세계성공회의 성장은 거의 전적으로 아프리카 대륙에서의 거대한 팽창 때문이다.

    성공회신앙은 오순절교회들(Pentecostals, 세번째로 큰 교파)이 강력한 북아메리카에서, 마찬가지로 오순절교회들(두번째로 큰 교파)이 활발한 남아메리카에서, 그리고 비기관적인 교회들(두번째로 큰 교파)이 활발한 아시아에서 감소하고 있다. 이것은 이 대륙들에서 비기관적인 그리스도교가 특히 매력적이라는 의미이지만, 성공회신앙은 여전히 독특한 공헌을 할 것이다!

    성공회 교회들은 남아메리카와 아시아에서 매우 빨리 성장하였지만, 그 숫자는 상대적으로 소수이다. 성공회는 오세아니아[대양주]에서 느리지만 커다란 숫자로 성장하여 왔다. 북아메리카와 유럽의 성공회는 감소하고 있으며, 북아메리카가 유럽보다 빠른 속도로 감소하였다.

    피커링 박사가 이 글을 발표한 이후에 <UK Christian Handbook>의 몇가지 개정판본들이 출판되었다. 이 책들은 성공회 선교단체들에 대한 통계를 제공한다. 해외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단체들 중에서 영국국교회 선교[협]회(Church Mission Society)는 최대 규모로 1997년에 287명이 해외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었으며, 그 다음에 USPG가 163명, 그리고 Crosslinks(기존의 BCMS)가 105명이었다. 이외의 세 단체들이 50명에서 100명 사이의 선교사들을 파견하였다. 즉, 남아메리카 선교회(South American Missionary Society)가 75명, Intercontinental Church society가 71명, 그리고 Missions to seamen이 54명. 성공회 단체들로 해외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자들은 1997년의 모두 906명으로, 1980년보다 2배로 늘어났다.

    성공회 선교사들은 1997년에 대다수가 탄자니아에서 활동하였으며(전체적으로 75명), 그 다음으로 우간다로 73명, 그리고 이스라엘에서 34명이 활동하였다.

    성공회는 기관적인[공식조직의] 교회로서 직면하는 문제들을 직시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변화를 추구할 때에 나타나는 각 분야들에서의 반대를 직시하려고 한다. 이에 대한 한 사례는 최근에 영국성공회에서 실시된 여성의 사제서품 허용이다. 또다른 사례로는 전세계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의제들을 람베스회의의 의제들로 고정시키려는 시도를 거부한 것이다. 지도자들은 권위의 문제를 씨름하고 있으며, 전례서에 대한 추가사항들과 변화들을 환영하고 있다. 또한 세계성공회는 전세계적인 부채와 빈곤의 문제를 직시하며, 여러지방에서 인종적인 통합을 추구한다. 이 모든 것들은 ‘성공’(success)-신학적인 용어로 성공이란 무엇인가?-을 보증하지 않지만, 이는 3천년대(Thirty Millennium)의 문제들과 씨름하고 있는 성공회의 의지를[모습을] 보여준다.

    몇가지 사회학적인 고찰들[숙고들]
    Grace Davie

    이 책의 첫판[1988년]이 출판된 이후로 여성의 성직서품은 영국성공회 뿐만 아니라, 세계성공회의 거의 모든 관구들에서 현실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또는 일련의 변화들)은 교회 안팎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기쁨을 주었다. 그들은 성공회의 대다수를 구성하는 자들로, 성공회신앙이 당연히 서구사회의 변화들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응답하였다고 느꼈다. 사회학적으로 이러한 변화는 흥미롭다. 왜냐하면 이것은 분명히 교회가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 변화에 반응을 나타낸 사례이기 때문이다. 근대 서구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전후시대에 급격하게 발전하지 않았다면, 교회들-그중 성공회도 포함-은 이 분야에 대한 논의를 제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즉, 의제를 제기한 곳은 교회가 아니라 바로 사회였다.

    그러나 정확하게 바로 이 점[의제를 사회가 제지했다는 점] 때문에 성공회내의 일부는 여성의 성직서품을 거부하였다. 교회는 현대사회의 변동들이 아니라, 신앙과 성직[직제 order]에 관한 자신의 전통에 의존하여야 하며, 필요할 경우 교회는 사회를 모방할 것이 아니라 저항하여야 한다. 이에 대한 반대들중 두번째 경우는 특히 장기적인 교회일치의 목표들에서 볼 때, 로마 가톨릭교회와 정교회와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이러한 본질적인 변화를 추진할 수 있는 성공회신앙의 권리를 질문한다. 결과적으로 서로 다른 단체적 형태로 나타난 서로 다른 입장들이 완강하게 주장됨으로써, 피커링의 정의처럼 캔터베리 교구와 상통하는 모든 교회들을 통합시키는 성공회신앙의 기본적인 토대를 때때로 (심각하게) 훼손시킨다. 이 교회들중 일부는 캔터베리는 고사하고 다른 교회들과 거의 상통하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은 세계성공회의 일부 관구들에서 점점 많은 수의 여성들이 주교직에 축성됨으로써 더욱 악화될 수 있는 상황에 놓여있다.

    미래는 예측하기 어렵다. 이러한 크기의 변화는 커다란 지속적인 반대가 없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반대가 한, 두 세대(신앙적 변화를 측정하는데 걸리는 자연적인 시간의 단위이다)를 넘어 지속될지는 지켜봐야할 일이다. 여성의 사제서품에 대한 반대의 감소로 볼때 교회의 분열은 발생하지 않겠지만, 단기적인 소수 분리집단들은 생겨날 것이다. 이들이 각각 전체로서의 교회를 약화시키기 때문에, 이에따른 전체적인 영향은 파괴적일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경우들보다 더 크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내에는, 특히 성공회신앙처럼 신앙적 표현이 폭넓은 교회내에는 현재의 의사결정에 반대하는 자들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여성의 사제서품은 예외적인 문제로 볼 수는 없다.

    성공회신앙의 상황에서 두번째 변화는 다소 다른 형태를 나타낸다. 즉, 정치적인 관계들에서 현대세계의 변화된 성격에 관한 문제이다. 다음의 사례는 성공회신앙의 본질을 특히 잘 나타낸다. 1945년 유럽은 한 세기동안 두차례의 자기파괴행동을 종결하였다. 개별적인 국가들이 파괴된 사회를 재건하는데 몰두하였기 때문에, 유럽의 통합이라는 사상은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 그러나 아주 놀랍게도 유럽공동체 (European Community)의 씨앗들은 석탄과 철강협정(Coal and Steel Agreement)의 형태로 발아하기 시작하였다. 이 협정은 전쟁무기들을 국제적인 차원은 아니더라도 범국가적인 통제에 두어야 한다는 원칙을 구현하였다. 그때(50년대 중반) 이후로 유럽은 보다 큰 공통적인 정체성을 향하여 과감하게(항상 꾸준하지는 않았지만) 전진하였다.

    이 정체성내에 신앙적 요소는 매우 중요하였다. 특히 영국에서는 이에 대하여 다소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특히 잉글랜드에서 처음부터 ‘로마와의 단절’-국가의 업무에 대한 외국의 권위의 간섭에 대하여 신학적 거부뿐 아니라 분명한 정치적인 거부도 포함하였다-로 시작된 잉글랜드의 국가교회는 유럽의 이상들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격려자가 될 수는 없어 보였다. 적어도 소수파인 로마 가톨릭교회 또는 개혁주의교회는 앞장설 수 있을 것이다. 이들 두 집단은 성공회신앙과는 달리 유럽대륙의 주요한 신앙전통들에 속해있다.

    장기적이자 광범위한 식민지역사의 결실이었던 세계성공회 공동체의 성격은 이러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잉글랜드교회는 약400년전에 로마와 단절하였다. 이러한 상황의 한 결과는 다른 방향에서 성공회신앙의 확장이었다. 즉, 선교사들은 상선을 따라나섰으며, 이 둘은 다양한 상업적 동기들에 서로 영향을 주었다. 결국에 나타난 것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세계성공회였으며, 20세기말에 중요한 세계적인 집단으로 그 강조점들에서 유럽적이라고[유럽 중심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세계성공회가 급변하는 세계에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는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다. 이에 대한 가장 부정적인 대답으로는, 세계성공회의 모교회가 유럽으로부터 잉글랜드(영국은 아니더라도)의 고립주의를 유지시키는 영적인 영향력이 될 수도 있다. 보다 긍정적인 대답으로는, 영국성공회가 유럽의 당사자들에서 전 세계적인 연결고리를 제의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이러한 잠재력은 ‘유럽고립주의’ (fortress Europe)의 사상을 회피하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특히 매력적이다. 유럽의 모든 교회들은 이런 점에서 중요한 기여를 제공할 수 있지만, 이는 세계성공회가 이미 입증된 능력과 특별한 열의로 공유할 수 있는 역할이다.

    마지막 논점은 또다시 현대세계의 변화하는 특성에 관련된 문제로, 보다 구체적으로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며 종교와 근대성(modernity)과의 복합적인 관계의 문제이다. 다른 방식으로 설명한다면, 사회학적 사고는 세속화이론을 점점 믿지 않으며, 점차적으로 현재에 대한 일방적인[불공평한] 이해로 인식한다. 이러한 회의론을 이해하는 중요한 논점은 세속화이론이 유럽의 틀안에서 발전하였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더구나, 유럽의 신앙적인 발전중 특정한 단계들의 경우, 그러한 논점[주장]과 자료들 사이에 설득력있게 일치한다. 유럽의 경제적, 정치적 생활이 향상됨에 따라, 신앙은 분명하게 공적인 중요성을 상실하기 시작하였으며, 신앙적인 열망들은 여전히 존재하였지만 점차적으로 사적인 분야로 밀려났다.

    그러나 점차적으로 자료보다는 이론이 의제를 지배하기 시작하였다. ‘적합성’[일치]은 경험적으로 확립된 것이 아니라 이론적으로 필수적인 공리가 되었다. 이로써 유럽의 신앙적인 생활은 전세계적인 종교성의 원형[표준]이 되었다. 즉, 오늘 유럽에서 발생하는 일들은 미래에 그 이외의 지방들에서 발생할 것이다. 세속화는 근대화의 필수적인 한 부분이며, 세계가 근대화될 때에 자동적으로 세속화된다. 그러나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똑같은 이론적인 틀 내에서 미국에서 나타난 매우 다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대답은 미국의 예외를 이해하는데 집중하였다. 즉, 미국은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고, 활발한 종교성과 발전된 근대화의 성공적인 공생을 설명할 수 있는 미국사회의 특이성들을 해명하는데 집중하였다. 지금까지는 괜찮았다. 세속화이론은 현대세계에서 일탈현상들이 발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러나, 누구도 이러한 주장을 계속해서 따라가지 않았다. 예를들면, 피터 버거(Peter Berger)와 데이비드 마틴(David Martin)은 논점의 순서가 바뀌었다고 제시하였다. 즉, 예외는 당연히 존재하지만, 그 예외는 미국이 아니라 바로 유럽이다. 버거의 주장에 따르면, 비서구적인 세계는 ‘그 어느때보다도 가장 강렬한 신앙적인 사회’가 되었으며, 또한 미국도 모든 전통적인 범주들에서 계속적으로 강렬한 신앙적 국가로 남아있다. 그러면 상대주의가 세속화를 낳았다는 주장은 어떻게 되는가? 미국에서 이러한 현상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나타난 것은 종교기관들의 건강하고 경쟁적인 시장이었다. 이 기관들중 일부는 다른 기관들보다 활발하게 성장하였다. 역설적으로 20세기말에 보다 많은 숫자의 신앙적인 추종자들을 끌어들인 집단은 바로 보다 보수적인 신앙집단들이었다. 즉, 점증하는 불확실성의 문화들에서 번창한 것은 바로 가장 성공적으로 타협에 저항한 집단들이며, 그렇게 보인다.

    그러면 이러한 이해는 성공회신앙의 문제를 어떻게 설명하는가? 유럽적인 형태들에서 성공회신앙은 어느 정도의 문화적 믿음을 유지하였다 하더라도, 정말로 신앙적 활동의 쇠퇴라는 부정적인 영향들에 직면하였을 것이다. 또한 똑같은 현상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유럽적인 형태를 채택하고 있는 영어권 나라들[영연방들]-카나다, 호주 그리고 뉴질랜드-에서도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그밖의 나라들(그리고 특히 미국)에서 성공회신앙의 가장 그럴듯한 경쟁자들은 무관심이나 전반적인 세속성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보수적인 종교들일 것이다.

    예를들면, 미국인들은 종교적이기를 중단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그들은 보다 보수적인 형태의 종교집단들로 전환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미국성공회는 자유주의적인 프로테스탄트신앙의 다른 형태들처럼 그 반대의 고통을 겪고 있다. 영어권 세계 밖의 경우, 대안적인 집단들은 근대화와의 관계에서 비슷한 압력을 받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다른 형태들이 아니라 다른 종교적 공동체들이 될 수도 있다. 간단히 말하면, 자유주의적인 형태의 종교보다는 보수적인 형태의 종교가 현대세계에서 번창하고 있다.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는 이 때에, 이는 성공회신앙이 21세기에서도 스스로 생존하려면, 이러한 세계적인 상황에서 반드시 자기 자리를 찾아야 한다. 또한 이러한 상황은 이 책의 첫판이 출판된[1988년] 이후 크게 변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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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11월 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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