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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The Study of Anglicanism-The Ecumenical Future « 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 번역 프로젝트 자료

번역 : The Study of Anglicanism-The Ecumenical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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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Cranmerian
    회원

    교회일치운동의 미래
    Mary Tanner

    20세기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개관한다면, 우리는 이 시대가 에큐메니즘의 세기였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교파교회들의 통합이라는 면에서 남인도교회, 북인도교회와 파키스탄교회를 제외하고는 성공적인 징후들은 거의 없었지만, 교파교회간의 상호이해와 신앙생활속의 공동행동에 대한 의지는 놀라울 정도로 증진되었다. 교파교회들 사이의 관계에서 이처럼 커다란 변화들이 발생한 이 시기에는 또한 세계성공회 공동체 내에서 그리고 성공회의 자기이해에서도 커다란 변화들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변화들은 부분적으로 성공회가 에큐메니칼운동에 동참함으로써 발생하였다. 제12차 람베스회의[1988년]를 앞둔 바로 이 시점에서 우리는 다음의 질문들을 제기하기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즉, 교회일치운동의 미래에서 성공회 신자들인 우리는 어디에 있으며, 또한 우리는 어디로 향할 것인가? 아래의 글에서 필자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에큐메니칼운동의 발전과정에서 발생한 변화들중 일부를 살펴보고, 그 다음에 성공회와 교회일치운동의 미래에 대하여 평가하려고 한다.

    에큐메니칼운동의 발전과정

    스티븐 닐(Stephen Neill)은 19세기말과 20세기초의 교회일치운동(Ecumenical Movement)에 관하여 집필하면서 교파교회들의 노력보다는 개개인들과 공동의 목표를 위하여 결집된 단체들의 노력을 더 많이 강조하였다. 확실히 YMCA(1844년에 창립), 복음주의동맹(Evangelical Alliance, 1846) 그리고 기독학생연맹(Student Christian Federation)과 같은 단체들은 젊은 신앙인들에게 깊고 지속적인 우정을 형성시키고, 교회통합(unity)에 대한 공감된 비젼을 발전시키는 기회들을 제공하였다. 그러나 현대의 교회일치운동을 탄생시킨 것은 바로 1888년과 1900년에 개최되었던 선교단체들의 회의들과 최종적으로 1910년의 에딘버러 회의[선교대회]였다. 에딘버러 회의의 참석자들은 명예롭지 못한 교회분열이 그리스도교회의 선교에 중대한 장애가 되고 있다는 점, 즉 선교와 교회통합은 하나라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였다. 이 회의에서 찰스 브렌트(Charles Brent) 미국성공회 주교는 통합은 신앙에 대한 합의에 근거해야만 한다는 점을 누구보다도 분명하게 인식하였다. 그는 그리스도교회의 분열이유들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기 위하여 주교들과 교회지도자들과 신학자들을 소집할 것을 결심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의 폐허로 몇차례의 좌절을 겪은 후에야 교회일치운동의 신학적 기구가 설립되었으며, 첫번째 세계 신앙과 직제회의(World Faith and Order Conference)가 1927년 로잔(Lausanne)에서 개최되었다. 이 회의에서 정교회, 성공회 그리고 프로테스탄트교회들은 교회분열의 문제들을 직시하며 활동의제들을 선정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들중 일부는 60년후에 합의된 문서인 <세례, 성찬례 그리고 사목직>(Baptism, Eucharist and Ministry)으로 표현되었다. 로잔회의에 참석한 신학자들은 신앙에 대한 상통[일치]와 사목직에 관한 공통된[일치된] 교리의 수용없이는 진정한 통합이 불가능하다는 브렌트주교의 우려에 동의하였다. 한편 1920년 세계성공회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호소’(Appeal to all Christian People)의 토대를 형성하였던 람베스 4개조항의 4가지 요소들-성서, 초기교회 신경들의 증언, 세례와 성찬례 성사 그리고 사목직-은 로잔회의에서 의제들을 결정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로잔회의가 개최되기 2년전에 전쟁과 평화, 인종문제, 교육, 자본과 노동, 그리고 교회들이 직면한 사회질서의 문제들을 논의하기 위하여 또다른 초교파적인 모임이 소집되었다. 즉, 교회일치운동의 두번째 기구인 생활과 봉사 회의(Life and Work)가 탄생하였다. 10년후[1937] 이 두 운동-결과적으로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를 설립하게 위하여 통합되었다-은 대회를 개최하였다. 이때에 윌리엄 템플 주교는 신앙과 직제 회의의 의장을, 조지 벨 주교는 생활과 봉사(Life and Work) 회의의 의장을 맡았다. 이 회의들은 계속해서 교회일치운동을 괴롭히는 문제들-즉, 성서와 전통과의 관계, 성사들의 본질, 사도적 계승과 성사적 주교직, 교회의 본질-을 제기하였다. 많은 논쟁적인 문제들의 근저에는 서방교회의 지적인 접근과 논리, 그리고 동방교회의 성사적인 접근 사이의 긴장관계가 존재하였다. 그러나 매일 공유하였던 예배의 체험은 이 운동에 심오한 영향을 주었으며, 요크와 켄터베리 대주교가 결정한 성찬초대(eucharistic hospitality 타교파 신자와 성찬을 공유하려는 호의)의 확대는 다가올 통합에 대한 시식(미리 맛보기, 예견)이자, 지속된 분열에 따른 쓰라린 고통의 회상이었다.

    신앙과 직제, 생활과 봉사(Life and Work) 그리고 크리스천 에이드(Christian Aid)의 합병은 또다시 전쟁으로 황폐된 10년을 기다려야 했다. 세계교회협의회의 첫번째 총회는 1948년 암스테르담에서 개최되었다. 정교회, 성공회, 그리고 프로테스탄트교회들 100여개를 대표하는 대표자들이 협의회의 구성을 공식적으로 승인하는 결정을 내릴때에 또 한명의 성공회 대주교인 제프리 피셔(Geoffrey Fisher)가 의장을 맡았다. 성공회는 협의회의 창립에 이르는 역사에서 중요한 (Charles Headlam) 주교는 신앙과 직제와 생활과 봉사(Life and Work) 사이의 불가피한 긴장관계, 그리고 암스테르담에서 일어난 자본주의자-공산주의자의 대결에 협의회가 정치적으로 개입될 위험을 예언자적으로 경고하였다. 그는 또한 협의회의 설립이 교회통합의 목표로 그가 열정적으로 주장하였던 진정한 통합인 가톨릭 교회(Catholic Church; 단일한 조직의 교회)인지 아니면 연방제 모델(federal model)을 지시하는 것인지를 질문하였다. 1948년 협의회의 첫번째 총회는 에큐메니칼운동의 전환점이었다. 암스테르담에서 각 교파교회들은 통합을 위한 공동노력을 확약하였다. 성공회는 이 운동을 설립하고 방향을 제시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지면의 제한으로 여기서는 암스테르담총회부터 1983년 제6차 총회(벤쿠버)까지 세계교회협의회의 몇가지 핵심적인 변화들과 주요 의제들(agenda)을 살펴보려고 한다. 첫째로, 훨씬 많은 [나라별 교파]교회들이 협의회에 참여하였다. 벤쿠버총회에는 약 400개 이상의 교회들이 참여하였다. 특히 많은 정교회 교회들의 참여는 협의회의 활동과 영성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제2차 바티칸회의 이후 로마 가톨릭교회의 태도는 적대적 입장에서 동반자로 전환되었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공식 옵저버[참관인]들은 각 총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보다 중요한 것으로 신앙과 직제 위원회에는 정식회원으로 가입하여 협의회의 신학적인 성찰에 완전히 참여하였다. 협의회의 외관을 변화시킨 것은 초교파적인(ecumenical) 대표성뿐 만이 아니었다. 기존에 백인이자 서구인이며 주로 남성 중심이었던 협의회는 이제 세계의 각 지방에서 다양한 문화들을 대표하는 여성과 남성, 성직자와 평신도로 구성되었다.

    둘째로, 협의회의 공동체가 확대됨에 따라, 회원들은 새로운 관심사들을 의제로 제시하였다. 과거에 생활과 봉사(Life and Work) 운동의 관심사던 실용적인 의제들은 때때로 신앙과 직제운동의 지적이고 학술적인 활동과 상반되는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긴장감은 신앙과 직제 위원회(Faith and Order Commission) 내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났다. 그러나 위원회는 인종차별주의(racism), 장애자(the handicapped), 남성과 여성, 그리고 최근에는 교회론과 윤리에 관한 독자적인 프로그램들에서 이 두가지 분야 의제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주려고 노력하였다. 신앙의 일치를 위한 탐구노력-브렌트 주교와 헤들램 주교가 교회의 가시적인 통합에 필수적인 요소로 분명하게 지적하였던 문제-은 완전히 포기되지 않았다. 그러나 교회의 통합은 이론적인 합의나 교회조직들의 결합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생활을 스스로 끊임없이 쇄신하는 [신앙]공동체에서 표현되는 통합의 생활에 관한 것이다. 초기의 운동은 통합과 선교를 하나로 이해하였지만, 1970년대의 변화들은 통합과 쇄신(renewal)을 강조하였다. 신앙과 직제 위원회는 아직도 ‘교회의 통합과 인간공동체의 쇄신’(The Unity of the Church and the Renewal of the Human Community)이라는 현재의 자체 프로그램에서 통합과 쇄신의 신학적인 토대를 구체화하려고 분투하고 있다. 이 작업[신앙의 합의에 대한 연구]은 위원회의 자체 의제들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과 전체 협의회 활동의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극히 중요하다.

    세번째 변화는 활동의 형태와 방법에서 나타났다. 즉, 협의회의 활동을 회원 교회들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속에 정착시키려고 시도하였다. 이제 의제들은 세계의 각 지방교회들을 위하여 준비할 뿐만 아니라, 각 진술문들과 보고서들은 회원교회들과 지역교회들에 의해서 ‘승인’받는다. 이러한 다변적인[다차원적인 multilateral] 활동은 이제 더이상 중앙에 있는 소수의 지도자들의 엄격한 통제를 받을 수 없지만, 오히려 보다 폭넓은 공동체들이 이를 공유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변화는 아직도 초보적인 단계에 있지만, 이는 교회론적으로 교회를 하느님의 전체 백성들이며, 해석의 공동체, 신앙의 공동체 그리고 생활의 공동체로 이해하려는 시도임을 증언한다.

    네번째 변화는 각 총회들의 선언문들에서 나타난 것처럼 통합의 목표에 대한 비젼을 발전시키고 심화시켰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가장 중요한 공헌은 신앙과 직제 위원회에서 성사들과 사목직에 관한 논의, 그리고 현재에 진행중인 사도적 신앙에 대한 공동고백 그리고 의사결정과 교도권(teaching)의 권위있는 구조에 대한 활동이다.
    마지막 변화는 이 모든 것들이 점점 늘어나는 공유된 예배생활에 의해서 실행되는 방식이다. 다른 [교파교회들의] 영성들의 풍부함[훌륭함]을 점차적으로 발견하게 된 것은 벤쿠버총회에서 결실을 맺었다. 이 총회에서는 가시적으로 통합된 교회에서 매우 풍부하고 다양한 영성들을 보존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인정하였다. 더구나 벤쿠버총회에서 켄터베리 대주교가 루터교회 여성사목자(minister)와 남인도교회의 사제(presbyter)의 보좌를 받으며 리마전례서(Lima Liturgy)에 따라 집례한 [성찬]예배는 성찬의 공유(Eucharistic sharing)라는 중요한 의미를 상징하였으며, 또한 공유하는 성사적 생활을 미리 맛보는 것이었다.

    20세기에는 그리스도교회의 가시적인 통합을 추구하는 다각적인 탐색들이 확대됨에 따라, 둘 또는 그 이상의 당사자들 사이의 관계로 확대되었다. 성공회와 로마 가톨릭교회 사이의 양자대화들중 가장 오래된 말린대화(Malines Conversations)는 1921년에 시작되었다. 대화의 목표는 성공회와 로마 가톨릭교회의 재통합-‘흡수가 아니라 통합’-이 가능할 수 있는가, 있다면 어떤 조건으로 가능한가를 찾아보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대화들은 1928년 교황 피우스 11세에 의해서 중단되었다. 1931년의 본협약(Bonn Agreement)은 성공회와 구 가톨릭교회(Old Catholics)와의 상호교류(완전교류intercommunion) 관계를 확립하였다. 이와 비슷한 협약(concordat)은 일부 성공회 관구교회들과 필리핀 독립교회(Philippine Independent Church) 사이에서도 체결되었다. 이외에도 루터교회인 스웨덴교회(국교회 Church of Sweden)와 핀란드교회(Church of Finland), 그리고 영국성공회 사이에서도 상호교류라는 밀접한 관계를 추가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커다란 진전은 인도 아대륙에서 성취되었다. 1947년에 설립된 남인도교회(Church of South India)는 처음으로 주교제 교회들과 비주교제 교회들이 주교제 교회로 통합된 사례였다. 이 통합은 성공회, 감리교회 그리고 개혁교회 (Reformed Church) 전통들이 결합하여 독립적인 지방 단위의 교회가 되었다. 통합후 35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1982년을 말함] 세계성공회와의 관계는 분명하게 확립되지 않고 있다. 1985년 영국성공회의 전국총회(General Synod)는 남인도교회와의 완전상통(full communion)을 선언하기를 거부하였다. 그 이유는 부분적으로 이 교회안에 아직도 주교의 서품을 받지않은 성직자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며, 또한 한편으로 1947년 이후부터 발전된 완전한 상통이란 개념이 [영국성공회에서] 이제는 의사결정과 가르침[교도권]에 대한 권위있는 보편적인 구조들을 공유하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었다. 남인도교회는 주교제 사목직들과 비주교제 사목직들을 통합시켰다는 점, 서로 다른 교파적 전통들을 하나로 결합시킬 수 있는 지방문화에 기초한 자치적인 지방교회를 발전시켰다는 점, 그리고 보다 최근에 그리스도교회의 지방적 표현들을 교회의 보편적인 표현들에 가장 잘 연결시킬 수 있는 조직들(organs)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례가 되었다. 남인도교회는 또한 이후 1970년에 설립된 북인도교회(Church of North India)와 파카스탄교회(Church of Pakistan)에 선례를 제공하였다. 그러나 인도 아대륙에서 성공회를 포함한 통합계획들의 성공은 세계의 다른 지방들로 확산되지 못하였다. 잉글랜드에서는 성공회와 감리교회의 통합계획 [1972]과 그이후 협약제안(Covenant Proposals)이 실패하였으며, 또한 남아프리카, 탄자니아, 뉴질랜드, 미국 등지에서의 계획들도 실패하였다.

    그러나 보다 희망적인 모습은 신학적인 대화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국제적인 차원에서의 양자대화들은 제2차 바티칸회의이후 로마 가톨릭교회의 통합의지의 표현으로 확대되었다. 1980년대 중반에 4가지 양자대화의 문서들이 공식적인 응답을 받기 위하여 세계성공회에 제출되었다. 즉, 성공회-루터교회, 성공회-정교회, 성공회-개혁주의교회 그리고 성공회-로마 가톨릭교회 사이의 대화들은 당사자들 간의 구체적인 분열원인과 관련된 의제들을 추구하면서도 특별히 세례와 성찬례와 사목직의 성사적인 의제에 대한 이해에서 괄목할만할 의견접근을 성취하였다. 이러한 대화들은 다자간 대화를 통하여 수렴된 문서인 <세례, 성찬례 그리고 사목직>에 기초할 뿐만 아니라, 각 교파교회들의 활동을 고려함으로써 성취되었다. 일부 대화들은 다른 대화들보다 훨씬 더 진전된 합의에 도달하였다. 성공회-로마 가톨릭교회의 대화는 성찬례와 사목직에 관한 활동에서 ‘실질적인 합의’를, 그리고 권위와 수좌권(primacy)에 대한 이해에서 상당한 의견접근에 도달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무엇보다도 성공회-개혁주의교회 사이의 대화는 그리스도교회의 통합(unity)을 선교와 종말론적인 완성이라는 시각과 결합시켰으며, 또한 이처럼 넓은 시각안에서 교회들을 지속적으로 분열시키고 있는 신앙과 직제(성직order)의 분야들을 이해하려고 특히 노력하였다. 성공회-정교회와의 대화는 그리스도교회의 내적인 실재(inner reality)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켰다. 이러한 대화의 문건들은 거의 동시에 출판됨으로써 이들이 서로 경쟁적인 일치운동들이 아니라, 각각의 대화가 신앙의 일치에 반드시 근거해야 하는 그리스도교회의 가시적인 통합에 대한 전반적인 탐구에 속해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성공회가 참여하고 있는 교회일치운동의 그림[상황]은 지역차원에서 점점 확산되고 있는 중요한 일치활동들을 언급하지 않고는 완성될 수 없다. 지방별[국가별] 교회협의회들과 지역별 협의회들은 각 교파교회들에게 서로를 이해하고, 과거의 분열들과 증오의 기억들을 화해시키고, 그리고 룬트원칙(Lund Principle)에 입각하여 공동활동이 불가능한 분야만을 [각 교회가] 독자적으로 활동하도록 권장하였다. 1946년에 제정된 <그리스도교회 일치를 위한 기도주간>(Week of Prayer for Christian Unity)은 이 운동을 기도속에 정착시키는데 기여하였다. 세계의 일부지방들, 특히 뉴질랜드와 잉글랜드와 웨일즈에서 성공회 교회들은 다른 교파교회들과 함께 지역 에큐메니칼 프로젝트들(Local Ecumenical Projects, LEP)에서 교회건물들과 예배와 [교회]생활을 공유하며 공동사목의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성공회와 루터교회는 신앙에 대한 구체적 합의와 나눔의 생활에 대한 헌신을 확인하는 ‘잠정적인 성찬나눔’(interim eucharistic sharing)을 합의하였다. 국제적인 대화들의 신학적인 의견접근들-특히 리마문서-은 신앙생활의 공유를 진전시킬 수 있는 교리적인 토대를 제시하는 ‘강령’(charter)이 되었다. 지역차원에서 밀접한 관계들의 경우, 일부 지역에서는 로마 가톨릭교회까지도 포함하였다. 예를들면, 잉글랜드에서 성공회, 로마 가톨릭교회 그리고 자유교회들(Free Churches, 프로테스탄트 비국교회들) 사이의 지역별 협약들(local covenants)은 생활과 증언의 나눔에 대한 공식적인 헌신을 약속하였다. 또하나의 희망적인 표징은 주교의 감독 차원에서 나눔의 확대로, 세상에 대한 공동증거를 위한 기회들을 제공하였다. 그리고 각 신앙인들이 ‘교파간 결혼’(mixed marriage)을 통해서 분열들을 직시하고 극복하는 것은 교회일치의 진전을 나타내는 중요한 증표이다.

    서로 다른 교파교회 신앙인들 사이의 관계가 이처럼 향상되는 것과는 반대로, 여전히 냉혹한 분열과 양극화를 겪고 있는 지방들도 있다. 북아일랜드에서 로마 가톨릭교회 신앙인들과 프로테스탄트 신앙인들 사이의 분열이 바로 이러한 대표적인 사례이며, 심지어 교회일치운동이 상당히 진전된 잉글랜드에서도 성공회-로마 가톨릭교회 국제위원회(ARCIC)의 활동을 격렬하게 항의[반대]하는 소수 신앙인들의 목소리들은 종교개혁 시대로 되돌아가는 옛 사고방식들에 대한 집착과 완고한 입장들을 극복하기 위해서 더욱 확고한 신념이 필요하다는 점을 증언하고 있다.

    교회일치운동의 미래

    따라서 1980년대 중반 에큐메니칼운동의 모습은 복합적이다. 에큐메니칼운동 전체를 구성하는 다자간과 양자간 대화들, 일치를 위한 지방별 논의들, 그리고 다앙한 지역단위의 활동들을 하나로 결집시키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복합적인 배경속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 적절하다. 즉, 교회일치운동이 나아갈 방향들은 무엇인가? 성공회가 다른 교파교회들과 함께 헌신할 수 있는 통합[일치]의 비젼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러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취해야 하는 다음 단계들은 무엇인가?

    세계교회협의회는 모든 교회들이 가시적인 통합[일치]이라는 목표에 관심갖기를 바란다. 웁살라총회(1968)는 이러한 목표를 ‘협의체적인 공동체’(conciliar fellowship)[협의회적인 친교]로 표현하였다. 이는 각 지방별로 통합된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로 결합시키는 외적인 구조들을 언급하는 것일 뿐 아니라, 각각의 주어진 상황에서 [통합된] 교회에 의해서 표현되는 특질(quality)을 말한다. 이러한 특질은 삼위일체 하느님의 생활과 자신을 내어주는 성육신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모델-그 이상인 원천으로-로 삼는다. 나이로비총회(1975)는 적어도 ‘협의체적인 공동체’(conciliar fellowship)의 세가지 기본적인 표징들-즉, 사도적 신앙에 대한 공감, 세례와 성찬례 그리고 사목직에 대한 상호인정, 그리고 공동의 논의와 의사결정에 대한 협의체적인 모임(conciliar gatherings)-을 인정하였다. 나이로비총회의 선언문(Nairobi Statement)은 ‘협의체적인 공동체’ (conciliar fellowship)가 현재에 존재하는 어떤 실체[단체]-특히 WCC-를 암시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신앙과 직제위원회 신학자들도 ‘협의체적인 공동체’(conciliar fellowship)가 조직간의 통합에 대한 대안이 아니라는 점을 반복적으로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개념은 아직 널리 수용되지 못하고 있다. 보다 최근에 개최된 벤쿠버총회(1983)는 그리스도교회의 이 세가지 ‘표징들’ (marks)을 강조하면서도, 또한 교회가 세상을 변혁시킬 수 있는 예언자적인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다시 강조하였다. 교회는 생활속에서 스스로 쇄신될 때에야 비로소 그러한 표징이 될 수 있다.

    다자간 대화에서 나타나는 목표는 신앙과 직제 위원회의 활동을 통해서 보다 더욱 발전되고 있다. 리마문서(Lima Text)는 두번째 표징인 그리스도교회의 성사적인 생활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켰다. 가장 최근의 프로그램인 ‘Towards a Common Expression of the Apostolic Faith Today’(사도적 신앙에 대한 공동표현을 향하여)는, 서로 다른 문화적 상황들에서 신앙을 확실하게 표현할 때, 말과 생활로 사도적인 신앙에 대한 공유된 고백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시작하였다. 준비작업은 권위있는 의사결정과 가르침[교도권]의 공통적인 구조들에 대한 예비적인 논의부터 시작하였다. 그리스도교회의 이러한 기본적인 ‘표징들’ 또는 특징들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다자간 대화의 활동은 단일한 사목직으로부터 봉사받으며, 그리고 의사결정 구조들에 의해서 하나로 결집되어, 일치[통합]속에서 생활하며 공통적인 신앙을 고백하고, 성찬례 안에서 나눔을 체험하는 [통합된] 그리스도교회의 모습을 구체화할 것이다. 성공회는 자신의 체험으로부터 그러한 성찰에 기여할 것이며, 마찬가지로 보다 넓은 공동체로부터 새로운 통찰력들을 얻을 것이다.

    앞으로 몇해안에 양자간의 대화로부터 나타날 비젼은 다자간 대화활동의 배경에서 고려될 필요가 있다. 성공회-개혁주의(Reformed) 교회들 사이의 대화는 세계교회협의회의 비젼을 가장 근접하게 표현하였다. 이 대화는 교회의 보편적인 측면을 지역차원에서 나타나는 통합의 표현과 결합시켰다. 대화의 목표는 화해된[일치된, reconciled] 지역공동체들을 형성하는 것으로, 각 공동체는 ‘교회’로 인정받는다. 즉, ‘이러한 공동체들은 각각의 지역에서 사목적 성직, 성찬의 친교, 사목적 돌봄, 그리고 선교적인 책임을 완전하게 표현하며, 또한 상호상통과 협력을 통해서 지방별, 국가별 그리고 심지어 국제적인 차원에서 증거한다.’ 선교와 하느님의 종말론적인 목적이라는 상황안에서 가장 인상적인 종합적인 교회론적 비젼을 제공하면서도, 성공회는 개혁주의교회들과의 공감을 심화시키기를 희망하는 여러가지 논점들을 제시한다. 즉, 성찬례와 희생의 이해, 사목직의 개인적(personal 인물중심의) 동료적(collegial협의체적 동등한) 공동체적인 측면들 사이의 관계, 인물중심의(personal) 관할권의 행사, 그리고 통합[일치]와 연속성을 나타내는 보편적인 인물중심의 초점(universal personal focus).

    성공회와 루터교회는 특별히 가까운 관계들 유지하였다. 따라서 1980년대에 이러한 관계가 양자대화의 결과들에서 어떻게 발전될 것인가를 고찰하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명확한 목표는 ‘완전한 상통’(완전상통full communion)을 성취하는 것이었다. ‘완전한 상통’이란 서로 상대방의 성사들을 수용[인정]하며, 한 교파교회의 주교들은 다른 교파교회의 주교들의 축성에 참여하며, 서품받은 사목자는 요청을 받을때 다른 교파교회의 회중들[지역교회]에서 전례적인 직무를 수행하며, 그리고 정기적인 협의기구들을 설립하는 것이다. 또한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상호의존적인’ 특징과, ‘신앙고백적인 차이들의 인정[정당성]과 이를 보존할 필요성을 인정하는 ‘화해된[일치된] 다양성’을 강조하였다. 하지만 성공회가 루터교회와 함께 에큐메니칼 친교[초교파적인 통합]라는 보다 넓은 상황속으로 나아갈 때, 이러한 결정이 ‘협의체적인 공동체’(conciliar fellowship)와 양립될 수 있는 목표의 방향을 지향하는 것인가는 다음단계의 대화에서 평가될 것이다. 그러나 언뜻보기에는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상호의존적인’ 특징에 대한 강조는 예를들면 1940년대에 WCC를 창립할 때에 찰스 헤들램 주교가 표명하였던 조직간의 통합(organic union)이라는 비젼보다는 약화된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1977년 성공회-정교회의 대화는 통합[일치]의 목표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의 그리스도교회로 통합하는 것’(the union of all Chrstians in one Church)으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성공회는 [...] 우리의 분열들을 그리스도교회 안에서 이해하지만 [...] 정교회 신자들은 정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분리되지 않았으며 또한 분리될 수도 없는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믿는다’는 진술문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로잔회의 이후로 일치에 대한 토의들을 통해서 제기되었던 교회론적인 차이로 되돌아간다. 이러한 근본적인 차이의 해결은 미래에 달려있다. 아마도 한 정교회 신학자의 제시처럼, 리마문서의 성사적 의제들에 대한 공감들을 수용할 때, 일부 함축적인 의미들은 외견상 갈등을 나타내는 교회론들을 화해시킬 때에야 인식될 것이다. 이것이 미래에 가능한 돌파구가 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정교회와 대화하는 성공회는 거룩하고 분열되지 않은 삼위일체의 [신앙]생활에 근거한 그리스도교회의 내적인 실재에 대한 이해를 계속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가장 진전된 대화인 성공회-로마 가톨릭교회간의 대화(ARCIC)는 ‘완전한 가시적인 일치[통합]’ 즉, ‘우리 두 공동체들의 완전한 조직간의 일치[통합]’를 향하여 활동할 의도로 시작하였다. 이 대화를 뒷받침하는 그리스도교회의 개념은 코이노니아(koinonia) 즉, 상통(communion)이었다. 즉, 성찬례는 코이노니아의 유효한[실효적인] 증표(sign)이며, 주교직(episcope)은 그 봉사자[종]이며, 그리고 수좌권(primacy)은 그 초점이다. 코이노니아는 목표이자 과정이다. 이 대화로부터 나타난 가장 환영받는 것들중 하나는 통합된 교회에서 통합과 바람직한 다양성의 의미에 관한 것이다. 통합은 지역을 초월하여 인물들(persons)과 구조들에 집중되어야 한다. 종의 표상인 주교들의 동등성(협동collegiality)과는 결코 분리되지 않는 하나의 세계적인 수좌직(universal primate)을 둔 그리스도교회는 보다 많은, 즉 적지않은, 다양성을 인정하며 보존할 수 있어야 한다. 루터교회의 대화에서 나타난 것처럼 이 대화에서도 일부 모호함이 존재한다. 성공회 교회에 고유한 신심과 [전례적] 사용례(usage)의 정당성과 유산(전통patrimony)을 약화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교황 요한 바울로6세의 확약[보증]의 인용은 거대한 기구에 의한 ‘흡수’(swallowed up)에 대한 일부의 두려움을 완화시키면서도, 재통합된 교회에서 성공회적인 전례와 교회법을 기본적으로 보존할 수 있는 성공회의 권리 또는 관할권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이는 일부 사람들에게 기존의 교파적인 충성심들보다는 다양한 지역의 역사, 문화적 상황 그리고 즉각적인 선교적 과제에 의해서 형성된 지역단위와 지방단위의 교회들을 하나로 결합시킨다는 시각과는 다른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ARCIC Ⅱ의 활동은 두 교파교회가 헌신하고 있는 목표인 코이노니아에 대한 이해를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레슬리 뉴비긴(Leslie Newbigin) 주교는 ‘통합을 추구하려는 성실한 의도는 영구적으로 하나의 특정한 형태의 통합에 집착하지 않으려는 의도와 양립될 수 없다’고 말하였다. 앞으로 양자간 대화들과 다자간 대화들에서 다룰 작업은 성사적 의제에서 형성되는 뚜렷한 의견접근들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나 아마도 향후 몇년간 가장 중요한 공헌은, 이미 성취된 의견접근들을 이용하여 하나로 통합된 교회에 대한 비젼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목표는 단지 잠정적일 수 있다. 왜냐하면 교회일치운동이 진전됨에 따라 새로운 것들이 파악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젼의 구체화는 교회일치운동에 새로운 추진력[활력]을 제공할 것이며, 마찬가지로 통합에 대한 의지와 기대가 없다면 운동은 아무 것도 성취할 수 없을 것이다. 비젼은 또한 각 지역에서 추진하는 활동들과 통합계획들을 보다 넓은 상황에서 설정할 수 있게 지원할 수 있으며, 따라서 그리스도교회의 지역적 측면들과 세계적 측면들 사이의 적절한 관계를 확실하게 만들 것이다.

    통합의 비젼을 발전시킬 미래의 활동에서 성공회는 오늘날 나타나고 있는 독특한 자기이해로부터 특별한 공헌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일치운동의 부흥을 목격한 20세기는 또한 세계성공회 공동체내에서도 커다란 변화들을 드러낸 시기였으며, 아마도 지난 몇년 사이에 가장 중요한 변화는 세계성공회를 결집시키는 요소들에 대한 발견일 것이다. 지난 세차례 람베스회의의 보고서들 중에서 성공회의 정체성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려는 시도를 일치와 쇄신(unity and renewal)에 관한 분과보고서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종종 다른 교파교회들과의 대화에서도 이러한 자기인식이 분명하게 표현되었다. 예를들면, 사도적 계승에 관한 에큐메니칼 논의들을 통해서 성공회는 이를 [물리적인] 접촉에 의한 계승이라는 좁은 시각을 벗어나 오히려 주교들의 계승으로 상징되는 사도적인 가르침과 선교에 대한 충실성에 집중하게 되었다. 1920년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 보내는 호소’(Appeal to All Christian People)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된 람베스 4개조항의 4가지 원칙들은 초기 에큐메니칼 의제들을 발전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인정받는다. 오늘날 성공회는 이러한 원칙들이 성공회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하느님의 선물들을 표현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하느님이 전체 그리스도교회에게 보다 완전하게 통합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선물이라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따라서 4개조항은 ‘하느님이 주신 비젼과 하느님이 요구하는 비젼’을 모두 표현하고 있다. 다른 교파교회들과의 대화에서 성공회는 이러한 원칙들을 말과 생활 모두에서 보다 완전하게 구현하는 방법들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세계성공회 공동체가 교회일치운동에 기여할 수 있는 다른 측면들도 있다. 세계성공회 공동체는 성서와 전통과 이성이 특별하게 상호연관되는 신학적인 방법론에 의해서 그리고 또한 독특한 신심(piety)에 의해서 하나로 결속된다. 후자는 이제 더 이상 좁은 의미인 공동기도서에 따른 예배로 이해되지 않는다. 1978년 람베스회의는 [관구]교회의 규정된(ordered) 예배가 세계성공회의 특유한 기본원리에서 차지하는 중심적인 위치를 강조하였다. 이러한 예배는 ‘처음부터 성공회를 특징지었던 다양성을 만들며 또한 제한한다.’ 거의 모든 관구교회에서 개정된 새로운 형태의 전례는 기본적인 윤곽에서 서로 닮았으며, 세계성공회 공동체의 통일성-단일성이 아니라-을 입증한다. 이는 아마도 보편적인 그리스도교회의 적합한 표징이 될 수 있는 정당한 다양성을 지적할 수도 있다. 1985년 영국성공회의 전국총회(General Synod)에서 켄터베리 대주교는 성공회를 결속시키는 것들을 설명할 때에 4개조항의 4가지 원칙들 외에도 성공회 예배의 공통적인 신심을 추가하였다. 이 4개조항은 일종의 교회론적인 대조표(check-list)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4개조항-역자]은 그리스도의 몸의 공동생활에 대한 표현이다. 우리는 신경을 암송할 때에 하느님의 복음을 공유한다. 우리는 세례와 성찬례를 거행할 때에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을 공유한다 [...] 이러한 공동생활을 갖는다는 것은 상통(communion)이 의미하는 바이다. 이는 교파적이며 신앙고백적인 헌장[조직]들보다 심오한 것이다. 이것은 인간들이 하느님께 참여하고 인간들 서로에게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공회신앙의 정체성은 규정된(ordered) 사목직에 의해서 집행되고 성사적인 생활에서 형성되고 유지된 신앙과의 상통에 있다. 세계성공회가 잉글랜드교회의 세계적인 확산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세계의 다양한 인종과 문화 그리고 사회적 조건들을 하나로 결집시킬 수 있는 25개 자치관구들의 공동체(fellowship)로 인식됨에 따라, 또하나의 중요한 측면이 발전되고 있다. 인물들[주교나 대주교-역자](persons)과 구조들[교구나 관구의회나 세계협의회-역자]로 표현되는 ‘사랑의 결속[유대관계]’(bonds of affection)은 세계성공회의 내적인 통합을 유지시키고 양육시키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주교들의 동등성(협동collegiality)은 1886년 이후로 람베스회의들에서 초점이 되었다. 1954년 세계성공회 협의회(ACC)가 구성되어 모든 관구들의 성직자와 평신도를 하나로 결집시켰으며, 성공회 교회들 사이의 연대를 촉진시켰다. 또한 보다 최근에는 관구장회의와 세계성공회 교리위원회(Inter-Anglican Doctrinal Commission)가 설립되었다. 이러한 다양한 협의구조들은 세계의 다양한 지방들의 관심사들을 경청하고 이러한 관심사들을 다른 지방들로 확산시킬 수 있는 광장을 제공한다. 이 기구들은 또한 각 관구교회들이 공통적인 결정들을 내리는데 도움을 준다. 켄터베리 대주교는 ‘한 가정의 장남’으로 ‘교회들을 양육하고 치리하는’역할을 맡은 세계성공회의 선임(수좌senior) 주교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발전은 성공회-로마 가톨릭교회와의 대화에서 말하는 보편적인 수좌권(universal primacy)이 어떤 의미에선 이미 성공회의 경험중 일부임을 의미한다.

    인물들과 구조들로 표현되는 이러한 ‘사랑의 결속들’은 교회의 지역별 그리고 지방별 표현들을 결집시키고 세계적인 차원에서 이를 구체화시키는 교회통합에 대한 에큐메니칼 비젼에 성공회가 기여할 수 있는 한 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들이 나타났던 것처럼, 새로운 어려운 문제들도 나타났다. 즉, 이러한 다양성을 가진 공동체(communion)에서 모든 목소리들을 경청하고 순수한 해석공동체를 탄생시킬 수 있다고 보증할 수 있는가? 하나의 교회공동체(communion)의 감독권(oversight)에서 주교직(episcopal voice)의 적절한 위치와 역할은 무엇인가? 평신도들은 권위있는 의사결정과 교리결정에서 적절한 자리를 어디서 그리고 어떻게 찾을 수 있는가? 감독권을 여전히 남성들이 점유하고 있는 교회의 구조들에서 여성의 목소리는 어떻게 반영될 수 있는가? 자치적인 관구들이 적절하게 결정할 수 있는 신앙과 직제의 영역은 무엇이며, 그리고 전체 교회공동체 또는 진정한 에큐메니칼 공의회의 공동정신이 출현하기를 기다리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지역교회들이 협의회들의 결정들을 수용하는 과정은 어떤 위치에 둘 것인가? 과거에 이 마지막 질문은 성찬의 공유에 대한 논쟁들, 그리고 한 관구가 다른 관구들의 인식[판단]과 반대로 결정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쟁들에 집중하였다. 현재까지, 통합와 합법적인 다양성에 대한 질문은 여성의 사제직과 주교직 서품의 문제에 집중되고 있다. 이 문제는 단순히 성직의 문제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본질과 존재, 하느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여성과 남성의 본질과 존재, 그리고 교회의 본질에 관한 믿음의 문제이다. 이 문제는 세계성공회의 내적인 통합에 영향을 주고 있다. 한 관구의 사제들이 다른 관구에서 [사제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성공회 교회들 사이의 상통관계는 손상받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을 수 있는가? 성공회 교회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는 그들 자체의 내적인 통일성에 영향을 줄 것이다. 즉, 이미 여성에게 성직을 서품하는 다른 교파교회들이 자신들의 결정에 대한 확언을 기대하기 때문에, 이 문제는 교회일치운동에도 커다란 영향을 줄 것이다. 확실히 세계성공회는 이 문제로 시험받고 있다.

    역설적으로 20세기의 마지막 몇년동안은 세계성공회를 결속시켰던 것에 대한 이해를 발전시키고 있으며, 이는 교회일치운동에 대한 성공회의 가장 중요한 공헌이 될 것이다. 즉, 세계성공회를 하나로 묶는 ‘사랑의 결속’을 포용하기 위하여 람베스 4개조항을 확장시킴으로써, 성공회는 벤쿠버총회가 그리스도교회의 가시적인 통합에 필수적이라고 결정하였던 교회의 세번째 ‘표징’에 대한 이해를 발전시킬 것이다.

    지금까지 성공회가 미래의 교회일치운동에 기여할 수 있는 공헌들을 강조하였다. 마찬가지로 교회일치운동은 오늘날 각 교파교회들의 생활속에서 실천되야할 변화들을 요구한다. 세계교회협의회는 리마문서에 있는 ‘여러 시대들을 통해서 내려온 그리스도교회의 신앙’(faith of the Church through the ages)을 승인하는 교파교회들에게 신앙에 대한 이러한 합의에 근거하여 그들의 생활에서 추구하여야할 적절한 변화들은 무엇이며, 또한 다른 교파교회들과의 관계에서 추구하여야할 적절한 변화들이 무엇인가를 고려하도록 요청하였다. 신학적인 대화들에서 형성된 신학적 의견접근들에 대한 확언을 토대로 교회의 생활을 변화시킴으로써, 성공회 교회들은 교회일치운동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의지를 다시한번 과시할 것이다. 예를들면, 리마문서는 성공회 교회들에게 외견상으로 무차별적인 세례정책을 재검토하도록 요구하며, 거대한 교구들의 존속과 부주교를 두는 비정상적 관행을 가진 주교제의 실행방식을 검토하도록 요구하며, 성직의 세번째 직책[부제직]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안들을 고려하도록 요구하며, 그리고 성공회내의 앵글로-가톨릭파와 복음주의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외견상 상반되는 사제직 이해를 화해시키도록 요구한다. 이러한 여러가지 문제들 밑에는 성공회 교회들에게 성서와 전통 그리고 이성의 적절한 관계에 기초한 신학적인 방법론을 재확언하라는 도전이 있다. 이러한 신학적인 방법론은 역동적인 전통의 위치를 이해하고 성공회 공식발표문들(formularies)을 엄격한 신앙고백적인 선언문으로 격상시키려는 유혹을 거부한다. 성공회 교회들은 교회의 생활에서 이러한 문제들을 다룸으로써 교회일치운동의 합의들을 말로만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며, 또한 그리스도교회의 통합을 위하여 그들 자신의 생활에서 값비싼 변화를 치를 준비가 되었음을 보여줄 수 있다.

    다른 교파교회들과의 관계들에서 가까운 미래에 실천할 수 있는 몇가지 단계들이 있다. 이미 미국의 성공회와 루터교 사이의 양자대화의 토대로 먼저 잠정적인 성찬공유(eucharistic sharing)를 합의하였다. 다음 단계는 세계 각지의 성공회와 루터교회 사이에 이와 유사한 합의를 성취하는 것이다. 영국성공회는 현재에 에큐메니칼 문서들에 표현된 신학적인 의견수렴[합의]들을 토대로 다른 교파교회들과의 관계를 법적으로 더욱 밀접하게 만들기 위하여 새로운 에큐메니칼 교회법률들을 고려하고 있다. 이제는 아마도 지역별 지방별 차원에서 [주교의] 감독권 공유의 확대, 공식적으로 승인받은 에큐메니칼 프로젝트와 지역별 협약들(covenants)의 확립, 그리고 룬트원칙-이미 공유하고 있는 것에 대한 독자적인 행동금지-에 따라 생활하려는 확고한 결정 등을 고려하기에 적절한 시기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성공회-로마 가톨릭교회와의 관계는 1988년에 <최종보고서>(Final Report)에 대한 양 교회의 공식적인 응답이 나온 후에 특별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두 교회들은 먼저 문서들의 중요한 합의들과 공감에 기초하여 실행할 수 있는 향후의 ‘구체적인 단계들’이 무엇인가를 고려하도록 요구받았다. 이러한 진전들이 확언된다면, 두가지 특별한 쟁점들을 다룰 필요가 있다. 즉, 이러한 합의에 적합한 성찬공유(Eucharistic sharing)의 정도[범위], 그리고 로마 가톨릭교회가 미래의 성공회 서품들을 인정할 가능성. 1985년7월 요하네스 빌레탄츠(Johannes Willebtands) 추기경이 ARCIC Ⅱ 의장에게 보낸 서신은 이 두번째 분야에 대한 앞으로의 진전을 약속하였다.

    이 짧은 글에서 교회일치운동의 부흥과 이 운동에 대한 성공회의 참여를 올바르게 평가하기란 쉽지 않다. 교회일치운동은 서로 다른 차원들에서 많은 당사자들 사이의 관계들-단일한 교파교회들의 신자들 사이의 관계, 지역별 지방별과 세계적 차원에서 교파교회들 사이의 때때로 양자간 또는 다자간 관계들-을 포함하는 복합적인 운동이다. 의제는 현대 세계의 공통적인 문제들에 대한 공동대처와 공동으로 예배하는 방식에 대한 모색뿐 아니라 신학적인 대화도 포함하고 있다. 확실히 성공회 교회들은 이 운동의 시작부터 중요한 역할을 그리고 종종 지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종종 듣는 비판-성공회는 참여를 완전히 약속하였지만 이를 다 성취하지 못하였다-은 평가하기 쉽지 않다. 남인도와 북인도의 교회들처럼 더 많은 연합교회들을 성취하지 못한 분명한 실패-특히 1980년대에-는 여러가지 사례들에서 성공회가 이러한 과정의 중요한 최종단계에서 철수한 결과였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에 일시적이며 잠정적인 실패로 입증될 수도 있으며, 또한 결국 서로를 확고하게 수용하는데 필수적인 신앙에 대한 실질적이고 희생적인 합의를 보증하고 도출하려는 시도로 입증될 수도 있다. 만약 우리가 파괴되고 분열된 세계를 상대로 그러한 공동의 신앙과 희망과 사랑을 확신있게 공표하려면, 우리는 서로가 말과 생활에서 동일한 신앙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여야 한다. 이러한 자애로운 판결이 옳다면, 성공회 교회들은 앞으로 교회일치운동에 대한 보다 확고하고 헌신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생활에 근거하며, 말과 생활에서 사도적인 신앙에 대한 공동고백, 공유된 성사들과 사목직, 그리고 사랑의 결속에 초점을 두는 그리스도교회의 가시적인 통합에 대한 모색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의무의 핵심적인 부분이지 선택적인 사항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하나여야 한다는 것은 바로 예수의 기도에 대한 우리의 의무(fidelity)이다.

    그리스도교회의 가시적인 일치를 모색하면서, 성공회의 자기이해와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노력은 교회일치운동의 진전을 방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서는 안된다. 문화적 다양성이 주는 모든 선물들과 풍부함들을 보유한 세계성공회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확고한 인식은 그 자체로 진정한 보편적인 그리스도교회의 일원이 되는 최고의 준비여야 한다. 성공회 교회들은 다른 전통[교파]들에 보존된 풍부함들을 수용할 준비를 갖출 뿐만 아니라, 전체 그리스도교에 기여할 수 있는 그들의 독특한 것들을 보존하면서도 보다 풍부하고 나은 하느님의 선물들을 위하여 낡은 것들을 버릴 준비를 함으로써 균형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교회에는 항상 다양성이 있을 것이지만, 교파적 전통들이 미래의 통합된 그리스도교회에서 통합된 풍부한 다양성들에서 어떠한 역할을 할 것인가는 여전히 연구되어야 하는 문제이다. 적어도 일부 성공회 교회들은 ‘성공회신앙(Anglicanism)이 하나의 신앙고백선언(confession)[따라서 꼭 지켜야하는 교파적 표준-역자]이 아니며, 또한 반드시 성공회신앙에만 관심할 필요는 없다’고 믿으려 한다.

    에큐메니즘[교회일치]이라는 의제 조차도 소위 1980년대의 ‘확대된 에큐메니즘’- 즉, 그리스도교인들와 다른 종교를 가진 자들 사이의 관계-에 비하면 편협하게 보인다. 우리가 배운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대화원칙들,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한 후에야 응답하는 것들, 서로 모색해 나가는 것, 각자 전달할 무엇인가를 갖고 있다고 믿는 것, 그리고 어느 한 사람이나 체계가 전체 진리의 보고[저장소]가 아니라는 점은 다른 신앙들과의 대화에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종교간의 대화라는 폭넓은 틀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파교회들의 가시적인 통합을 모색하는 필수적이고 적합한 상황이다. 서로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다른 종교인들과의 대화에 참여할 때, 그들은 그들이 공유하고 세상과의 나눔을 명령받은 복음에서 새로운 것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에큐메니즘과 종교간의 대화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개방성의 특징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전통의 ‘특성들’을 보존하려는 노력을 보여주는 자들만이 현대세계를 널리 퍼저있는 위협적이며 맹목적인 완고한 근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1988년부터 1955년까지-교회일치운동의 겨울인가 봄인가?

    1988년 람베스회의는 이전의 회의들처럼 에큐메니즘을 주요 의제로 선정하였다. 이 회의는 지역단위의 협력들-뉴질랜드의 지역교회간의 협력운동(co-operating parishes), 카나다의 공동사목운동(Shared Ministries) 그리고 잉글랜드의 지역교회 협력운동(Local Ecumenical Partnerships)-을 격려하였으며, 또한 각 성공회 교회들이 지역단위의 교회협의회들에 보다 완전하게 참여하고, 그리고 미국의 교회통합협의회(Consultation on Church Union, COCU)와 웨일즈의 협약운동(Covenanting Proposal)과 같은 지방단위의 통합계획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권장하였다. 관구교회들의 응답들을 근거로, 람베스회의의 주교들은 다자간 대화의 문서인 <세례, 성찬례 그리고 사목직>을 환영하며, 다른 교파교회들과의 관계를 진전시키는데 이 문서의 중요성을 지적하고, 이 문서의 통찰력들을 [교회]생활에서 계속적으로 수용하도록 요청하였다. 또다시 람베스 주교들은 관구들의 응답들을 근거로 ARCIC의 <최종보고서>(Final Report)에 긍정적으로 응답하며, 성찬례와 사목직에 관한 문서는 ‘성공회신앙과 본질적으로 일치하며’우리 교회들의 화해를 향한 다음 단계들을 위한 확고한 토대가 될 것이라고 승인하였다. 권위에 관한 ARCIC의 문서는 이에 관한 지속적인 활동의 방향과 의제를 위한 토대로 인정받았다. 정교회(Orthodox), 동방정교회(Oriental Orthodox), 루터교회들 그리고 개혁주의교회들과의 지속적인 대화를 권고하는 결의안들(Resolutions)을 통과시키고, 또한 구가톨릭교회(Old Catholics)와 감리교회들 그리고 침례교회들과의 새로운 대화를 요청하는 결의안들도 통과시켰다. 이 모든 활동들은 람베스 주교들이 다방면의 일치활동과 모든 차원에서의 일치활동을 계속해서 지지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람베스회의에서 논의한 한가지 문제는 통합의 문제-성공회내의 통합과 성공회가 다른 교파교회들과 추진하는 통합-와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 여성의 주교직 축성에 관한 문제였다. 참석한 주교들 대다수는 각 관구교회들이 여성의 주교직 축성에 관하여 ‘관련된 원칙들을 수용한다는 표시와 관계없이’ 다른 관구의 결정을 존중하며, 최상의 상통관계를 유지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는 다양성을 가진 통합된 [교회]생활에 대한 성공회의 헌신을 입증하면서도, 보편적인 그리스도교회의 사목직에 관한 문제는 성공회 교회들과 더 나아가 보다 넓은 그리스도교 공동체들 사이에서 공개적인 수용과정에 맡기는 것이었다. 이러한 결정은 교회일치운동의 다른 당사자들에게도 영향을 주는 것이었다. 여성에게 성직을 서품하는 교파교회들은 이 결정을 환영하였지만, 로마 가톨릭교회와 정교회들은 이를 가시적인 통합에 대한 장애로 인식하였다.

    람베스회의[1988]이후의 기간동안 교회일치운동에 대한 1970년대의 도취감은 감소되었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ARCIC의 <최종보고서>에 대한 로마 가톨릭교회의 응답은 문서의 상당부분을 환영하면서도 성찬례와 사목직에 관한 문서들이 ‘로마 가톨릭교회의 신앙과 본질적으로 일치한다’고 발표함으로써 람베스 주교들에 동의하지 않았다. 또한 많은 문제들에 대하여 보다 확실한 설명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요청으로 마침내 ARCIC Ⅱ는 <해설서>(추가적인 해명Clarifications)를 발표하였다. 바티칸은 이 문서에 만족하였지만, 일부 성공회 교회들은 1988년에 승인하였던 본래의 공감을 불신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문서의 [수용]과정-해설요청과 <해설서>의 발표-은 합의된 진술문들을 새로운 언어로 공식화시키는 에큐메니칼 방법론에 대하여, 그리고 서로 다른 의사결정 구조들을 가진 교파교회들의 응답/수용과정에 대하여 커다란 논쟁을 야기시켰다. 각 교파교회들이 지난 30년동안에 체험한 과정들은 새로운 [수용]과정이었으며, 현존하는 지침이 없다면 혼동을 일으키는 것은 당연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여러 지방에서 성공회와 로마 가톨릭교회와의 관계들은 몇차례의 좌절에도 불구하고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신학적인 대화의 작업은 계속되었으며, 중요한 교회론적인 문서인 <Church as Communion>이 출판된 후에, 통합된 [신앙]생활은 공동의 도덕적인 입장을 포함한다는 점을 인정한 <Life in Christ, Morals, Communion and the Church>를 발표하였다. 많은 교회일치운동의 문서들처럼, 이 문서의 배경에는 권위에 관한 문제가 있었다. 통합된 그리스도교회에서 신앙이나 직제[성직] 또는 도덕률들의 문제들에 대한 결정들은 어떻게 내려지는가? 교도권(magisterium)의 역할은 무엇인가? 하느님의 전 백성들은 그리스도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정신을 식별하고 수용하는데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이 분야에 대한 ARCIC Ⅱ의 작업은 1998년에 개최되는 람베스회의에 중요한 기여를 할 것이다.

    1988년 람베스회의 이후로 가장 중요한 진전은 성공회-루터교회의 관계들에서 나타났다. 여러 지방들에서의 진전을 기대하는 람베스 주교들의 격려로 미국성공회는 1988년의 <Agreement on Interim Eucharistic Hospitality>를 토대로 이제 두 교파교회들을 ‘완전한 상통’-문서의 표현대로-으로 나아가는 <Concordat of Agreement>[일치협약]를 체결하였다. 협약(Concordat)은 사목직의 일치(reconciliation)로 앞으로 양 교파교회의 주교들의 축성을 성공회와 루터교회의 주교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도록 규정하였다. 이로써 루터교회는 역사적인 주교직의 계승이라는 증표(sign)를 갖게될 것이다. 이와 동시에 성공회는 일정기간동안 주교에 의한 서품에 대한 요구를 유예할 것이며, 이로써 역사적 계승을 받은 주교들로부터 서품을 받지않은 루터교회 사목자들의 진정성을 상징하였다. 완전상통이라는 새로운 관계는 두 교파교회가 각각의 구조와 조직을 유지하면서도 보다 밀접한 관계로 생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진전이 미국에서 진행되는 동안에, 잉글랜드 지방에서도 괄목할만한 진전이 있었다. 1991년 마이센협약(Meissen Agreement)은 독일 지방의 루터교회와 개혁주의교회 그리고 연합교회(United Church)로 구성된 독일 복음교회(Evangelical Church of Germany)와 영국성공회를 밀접한 친교관계로 만들었다. 이 협약으로 이 교회들은 유럽에서 통합을 추구하기 위하여 교회의 생활과 선교의 상당부분을 최대한 공유하기로 약속하였다. 마이센 공동선언(Meissen Common Statement)은 가시적인 통합이라는 목표에 대한 합의, 신앙에 대한 폭넓은 합의, 그리고 차이점들-특히 주교직과 사도성 그리고 계승의 분야에서-에 대한 솔직한 인정을 기초로 하였다. 영국-웨일즈포함-과 아일랜드의 성공회 그리고 북해와 발트해의 루터교회들 사이에 맺은 포르보 공동선언(Porvoo Common Statement)은 통합의 목표에 대한 유사한 합의와 신앙에 대한 명확한 합의에 기초하였다. 그러나 이 공동선언은 사도성과 계승의 문제에 대해서도 완전한 합의에 도달하였으며, 참가한 교회들이 공동의 신앙, 공동의 성사적 생활, 역사적 계승으로 단일하게 일치된(reconciled) 사목직을 가진 가시적인 통합을 형성하며, 협의체적인 생활의 결속[기구]들(bonds of conciliar life)을 구성하였다. 이 모든 합의들은 유럽이라는 상황에서 공동의 선교를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 성공회, 루터교회, 그리고 개혁주의교회 사이의 이러한 세가지 협약은 20세기의 교회일치운동에서 중요한 발전이었다. 물론 성공회와 루터교회 사이에는 다른 지방-카나다, 탄자니아와 호주-에서도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였다. 공식적인 협약들은 1970년대와 80년대초에 체결된 양자간, 다자간 문서들에 주로 의존하였다. 그들은 이 문서들이 도서관에 보관되는 것이 아니라, 신학적인 대화의 결실로 생활속에서 변화된 관계들의 토대로 사용된다는 점을 재확인하였다. 미국의 <Concordat of Agreement>, 유럽의 마이센과 포르보 협약들은 북인도교회, 남인도교회, 파키스탄교회를 포함하는 통합교회들(United/Uniting Churches)의 목록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였다. 성공회 교회들은 계속해서 통합의 대화들-미국의 COCU 제안들과 남아프리카의 대화들-에 당사자로 참여하고 있다.

    성공회는 전방위적으로 교회일치운동에 헌신하는 가운데 동방정교회(Eastern Orthodox Church)와의 중요한 대화는 1988년 람베스회의 이후 교회론의 주제로 계속해서 논의하고 있다. 동양정교회(Oriental Orthodox)와의 대화 그리고 개혁주의교회와의 대화는 국제기구 차원의 위원회들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새로이 시작된 중요한 대화인 감리교회와의 국제기구 차원의 대화는 <Sharing in the Apostolic Communion>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이처럼 많은 대화들 속에서 교회일치운동의 겨울을 말하기는 어렵다. 세계의 여러 지방들에서 진행되는 대화는 지역단위에서 예배와 증거활동과 선교에서 더욱 밀접한 관계로 발전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지방들의 그리스도인들은 고립주의에서 벗어나 서로를 이해하려는 시도조차도 하지 않으며, 또한 밀접한 통합[일치]의 필요성조차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교회일치운동의 의제들중 가장 어려운 질문 하나는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다. 즉, 우리는 어떤 종류의 통합을 추구하고 있는가?

    미국과 유럽에 있는 성공회 교회들와 루터교회들 사이의 협약들은 첫눈에 서로 다른 모델의 통합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자[미국]는 적어도 가까운 미래까지 분명한 교파적인 특성을 계속 유지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즉, 루터교회는 독특한 교리와 이신칭의론의 비판적인 기능을 계속해서 증거할 것이다. 반면에 포르보협약에서 성공회는 단일한 생활과 증언, 완전한 가시적인 통합의 생활을 나타내는 통합모델을 선호한다.

    가시적인 통합이라는 목표의 문제는 다시한번 세계교회협의회 총회의 의제가 되었다. 1991년 캔버라에서 개최된 제6차 총회는 캔버라선언 <The Church as koinonia: gift and calling>을 공식적으로 채택하였다. 코이노니아-상통, 친교, 참여 등 여러가지로 번역된다-라는 주제는 그리스도교회 생활의 기본적인 요소로 이해되었다. 그리스도교회의 생활은 거룩한 삼위일체 하느님의 생활과의 상통을 토대로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하느님의 일치[통합]의 선물을 이 세상에서 봉사와 선교를 위하여 신앙과 성사들과 사목직과 협의체적인 가시적인 공동생활로 나타내도록 부름받았다. 캔버라선언은 가시적인 통합이 단일성(uniformity)이 아니라 풍부한 다양성을 의미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즉, ‘신학적인 전통들과 다양한 문화적 또는 역사적 상황들에 근거한 다양성들은 상통의 본질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총회에서 제기된 가장 심각한 도전들중 하나는 다양성에 대한 한계들이 존재하는가를 말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하여 매우 분명하지만 절제된 선언이 나타났다. 즉, ‘예를들면 하느님이며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공동고백-즉, 성서에 선포되었고 사도공동체에서 설교된 인간의 구원과 최종적인 운명-이 어제와 오늘 그리고 영원히 똑같을 수 없다고 말한다면, 다양성은 불법적[변칙적]이다.’ 다양성의 한계들에 대한 질문은 교회일치운동의 의제에서 가장 긴급한 질문들중 하나이다.

    캔버라선언은 정의, 평화 그리고 창조[피조물]의 보존을 위한 투쟁들의 자리를 그리스도교회 통합의 표징으로 언급하였다. ARCIC의 문서들처럼, 여기서도 그리스도교회의 통합을 윤리적인 공동체로 이해하는 것으로 새로이 강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과거에 있었던 신앙과 직제운동과 생활과 봉사(Life and Work)운동 사이의 분열이 연결되고 있다. 캔버라총회이후 세계교회협의회는 정의, 평화 그리고 창조의 보존을 위한 투쟁이 ‘코이노니아를 형성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데 열중하였다. 협의회의 활동은 그리스도교회의 통합이 도덕적 공동체의 통합을 반영하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교회통합의 비젼 그리고 증거와 봉사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소명을 이렇게 연결시키는 것은 아마도 선교의 모델이 통합의 모델을 요구한다는 점을 보여주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신앙과 직제에 관한 제5차 세계회의-30년만의 첫번째 세계회의-는 자신들의 질문인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일치운동의 마지막 세기에 다다른 교회일치운동에서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하여 ‘신앙과 생활 그리고 증거의 코이노니아를 향하여’(Towards koinonia in faith, life and witness)라고 대답하였다. 회의제목은 그 자체로 교회일치운동이 여전히 전진하고 있다는 선언이었다. 그리고 그 목표는 신앙, 성사적 생활 그리고 증거의 공동체 (communion)라는 선언이었다. 회

    2012년 11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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