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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The Study of Anglicanism-Non Anglo-Saxon Anglicanism « 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 번역 프로젝트 자료

번역 : The Study of Anglicanism-Non Anglo-Saxon Anglic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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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Cranmerian
    회원

    비앵글로-색슨세계의 성공회신앙
    John S. Pobee

    세계 그리스도교계는 세계적인 공동체(world Communions), 즉 교파교회들의 가족들 [연합체, 조직]이라는 카테고리를 특징으로 한다. 또한 독립자치적인(autocephalous) 정교회들은 총대주교(Ecumenical Patriarch콘스탄티노플 대주교)를 의장(President)이자 영성적 수장(spiritual head)으로 하는 하나의 공동체(communion, 조직)를 구성하고 있다. 같은 범주의 다른 면으로, 세계개혁교회연맹(World Alliance of Reformed Churches)은 영성적 수장이 없는 가족[조직]이며, 세계루터교회연맹(Lutheran World Federation) 역시 영성적 수장을 두지 않는다. 정교회 ‘공동체’와 개혁교회 형태의 공동체 사이에 세계성공회 공동체(Anglican Communion)가 있다. 이는 성 어거스틴의 켄터베리 교구를 영성적 본원지로 삼는 교회들의 세계적인 가족들이며, 켄터베리 대주교를 동질성(정체성identification)의 초점[중심]으로 삼는다.

    성공회(Anglican)란 바로 이 명칭은 이 세계적인 공동체(Communion)가 그리스도교회, 즉 ‘하나이요 거룩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공교회’의 잉글랜드적인 표현 또는 형태(minting)로부터 유래하며, 이와동시에 종교개혁 전통에 속해 있다는 점을 나타낸다. 이 세계공동체(Communion)는 스스로를 시카고-람베스 4개조항-즉, 성서와 신경들과 성사들(특히 세례와 성찬례)와 역사적 주교직-에 헌신하는 교회로 정의하였다.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의 성공회 신학자인 재시 마라쉰(Jaci Maraschin)의 표현처럼, ‘성공회신앙은 전례적 혁명이었다.’ 즉, 토마스 크랜머의 공동기도서는 성공회신앙의 정체성과 온전성(순수성 integrity)의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므로 필자에게는 예배의 영역이 세계적인 교파교회(Communion)인 성공회신앙의 연속성들과 불연속성들을 판단하는 중요한 분야들중 하나로 보인다.

    성공회적 전통의 기원들에 대하여 또 한가지를 지적하여야 한다. 잉글랜드의 국왕 헨리8세(1509-47)는 1534년에 국왕수장권법을 공표하였으며, 이 법률은 왕국의 교회를 Anglicana Ecclesia 즉, 잉글랜드교회(English Church)로 명칭하였다. 바로 이 법률에 의해서 성공회신앙은 국민들의 교회, 즉 국민교회(Volkskirche)가 되었다. 이 국민교회(Volkskirche)가 잉글랜드를 벗어나 많은 다른 지방들로 확산됨에 따라, 국민교회(Volkskirche)라는 이 정체성은 확실히 재검토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아직도 많은 지방에서 성공회신앙이 마치 국가에 의해서 법으로 제정된 교회[국가교회]인 것처럼 행동하려는 유혹을 받는 것이 마찬가지로 사실이라 하더라도, 절대다수가 모슬림인 국가에서 전체 그리스도인들이 전인구의 2퍼센트밖에 안되는 감비아의 경우, 국민교회(Volkskirche)의 용어와 정신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연합왕국[영국] 밖에서 국민교회(Volkskirche)의 정신은 바람직하지도 않으며 실현가능하지도 않다.

    성공회신앙은 성공회 전통의 초기부터 적어도 20세기초까지 일관되게 거의 잉글랜드적이었다. 성공회신앙의 중심지들은 영국제도(특히 잉글랜드), 호주, 뉴질랜드, 카나다 그리고 미국이었다. 즉, 앵글로-색슨 세계와 그들의 해외 선교지들이었다. 하지만 성공회 교회들의 신자수는 앵글로-색슨 지방들에서 조차도 감소하고 있다. 비앵글로-색슨 세계에 있는 성공회 교회들은 대체로 선교사 교회(missionary church)였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 세계 그리스도교에 커다란 변화가 발생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그 무게중심은 북반구(the North)에서 남반구(the South)로 이동하였다. 남반구에서 그리스도교는 지금도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세계성공회 공동체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앵글로-색슨세계 밖에 있는 세계성공회의 관구들은 다음과 같다.

    아프리카: 부룬디, 중앙 아프리카, 인도양, 케냐, 나이제리아, 르완다, 남아프리카, 수단, 탄자니아, 우간다, 서부 아프리카, 자이르 (12개 관구)
    아시아: 스리랑카, 한국, 미얀마, 필리핀, 동남아시아(South East Asia), 일본 (6개 관구)
    카리브해: 서인도제도 (1개 관구)
    라틴아메리카: 브라질, 남부아메리카(Southern Cone of America) (2개 관구)
    중동: 예루살렘과 중동 (1개 관구)
    오세아니아: 멜라네시아, 파푸아뉴기니 (2개 관구)

    여기에 완전한 상통관계를 맺고있는 남인도, 북인도,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쉬의 연합교회(United Churches)를, 그리고 준관구교회(Extra-Provincial)인 포르투갈의 루시타니아교회(Lusitanian Church of Portugal)와 스페인의 개혁주의 주교제교회(Spanish Reformed Episcopal Church)를 추가할 수 있다. 세계성공회의 37개 관구들 중에서 적어도 25개 관구는 비앵글로-색슨 세계에 있으며, 여기에 완전한 상통관계인 연합교회(United Churches)와 준관구교회를 추가할 수 있다.

    비앵글로-색슨세계 성공회신앙의 이러한 확산은 세계성공회가 앵글로-색슨 중심지들을 넘어서 다른 문화들을 포용하고 있다는 점을 나타낸다. 잉글랜드적인 것으로 시작된 이 교회는 오늘날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과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서로 다른 환경들과 문화들로 확산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다원성(pluralism)이 성공회 정체성, 특히 본래의 잉글랜드적인 기풍에 주는 중요성과 영향은 세계성공회 공동체의 주요한 의제이다. 그러나 다원성은 성공회신앙에 또다른 의미를 준다. 즉,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압도적인 다수가 지구의 남반구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월스(Walls)는 ‘중요성을 갖는 신학은 그리스도인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신학일 것이며, 이는 마치 상당수 그리스도인들 대부분이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그리고 아시아의 지역에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였다. 이들은 크게 성장하고 있는 교회들이다. 이러한 인구통계적인 사실(demographic fact신자수의 변화)이 세계성공회의 구조들에서 어떻게 반영되며, 이 새로운 시대에 성공회신앙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세계성공회[신앙]의 신학은 여전히 똑같을 것인가? 아니면 어떤 방향들로 변해야 하는가?

    각각의 관구들 내에서도 이러한 인종과 언어와 문화의 다원성을 나타내고 있다. 37째 관구인 동남아시아 성공회의 창립을 기념하며, <Anglican World>지는 ‘하나의 관구, 다수의 민족들’이란 제목으로 이를 증언하였다.

    ‘새로운 관구는 4개의 서로 매우 다른 교구들과 이보다 더 많은 중심지들을 하나로 결합시킨다. 쿠칭(Kuching)교구는 두나라 즉, 사라와크[Sarawak, 주도가 쿠칭이다]와 브루나이(Brunei Darussalam)로 구성되어 있다. 싱가포르교구는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그리고 싱가포르에 있는 성공회 교회들로 구성되어 있다. 서부 말레이지아와 사바 교구 또한 서로 다른 민족들과 언어들, 문화들을 하나로 결합시키고 있다.’

    다원성은 세계적인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국가적 차원은 아니더라도 관구의 차원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만약 필자가 감히 다른 환경[상황]들에서 사용하는 언어로 표현한다면, 세계성공회는 이제 더이상 잉글랜드인들의 교회가 아니라 하느님의 다양한 백성들의 교회(a rainbow of God)이다.

    잠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한가지 문제에 대하여 보다 자세하게 논의한다면, 지금까지 남반구의 교회들은 세계성공회의 가난한 나라들에 위치한다. 오늘날 이들 교구들중 일부는 부유한 ‘호랑이’[급성장하는] 국가들에 속한다.

    ‘동아시아에서 일본과 ‘일곱마리의 용 국가들’(태국, 말레이지아, 인도네시아, 홍콩, 싱가포르, 타이완, 그리고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 일본은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일본의 기적같은 경제적 성공은 거대한 미국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 미국은 일본과 심각한 무역역조[적자]를 체험하고 있다 [...].’

    만약 동아시아의 교회들이 이러한 국가적인 경제발전으로부터 혜택을 받는다면, 그때에 이들 교회들중 일부는 세계성공회의 생활과 영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 이 때문에 세계성공회의 현직 사무총장(Secretary General)인 존 피터슨(John L. Peterson, Canon)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세계성공회는 이 새로운 관구(동남아시아 관구)가 특별히 위기상황에 처해 있는 세계의 동료 성공회신자들에게 줄 수 있는 강력한 지원을 기대한다. 남부 아시아의 자원들은 풍부하기 때문에 강력한 그리스도교적인 증언을 필요로하는 세계성공회의 덜 부유한 지역에 커다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본인은 이 새로운 연합체를 충심으로 환영한다.’

    비앵글로-색슨세계 성공회신앙의 출현이라는 이 새로운 상황은, 부분적으로 신자의 숫자에서 성공회신앙의 무게중심이 변화하기 때문에, 그리고 부분적으로 여기에 관련된 국가들중 일부의 경제적 영향력 때문에, 세계성공회 공동체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지위를 남용하려는 유혹뿐 아니라 보다 정확하게 앞에서 지적한 이유 때문에, 세계성공회는 어떠한 영성이 세계성공회 공동체의 생활을 하나로 결속시킬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필자가 러시아 정교회의 신학자인 니콜라이 베르자예프(Nicolai Berdyaev)의 유명한 말을 인용한다면, 나에게 빵의 문제는 물질적인 문제이지만, 나의 이웃들, 정말로 모든 사람들에게 빵의 문제는 영성적이며 신앙적인 문제이다. 즉, 한 관구의 물질적인 영향력이 세계성공회에서 그 지위를 결정하는가? 똑같은 이유로, 필자는 또한 세계성공회에 서로를 통합시키는 요소로서 공동체, 몸[그리스도의 몸]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미지들을 하나로 결합시키도록 요구하며, 그리고 이 세가지의 결합이 나타내는 바를 정착시키도록 요구할 것이다.

    세계성공회의 앵글로-색슨 포로[속박]
    (The Anglo-Saxon Captivity of Ecclesia Anglicana)

    이 책의 1988년판에 포함된 글에서 필자는 이러한 포로[상태]를 너무 과장하였다. 앵글로-색슨 포로의 목록들은 잉글랜드의 문화적 특징들을 포함하는 공동기도서의 완고한 사용, 리듬과 표현방식의 외래성에도 불구하고 잉글랜드의 찬송가[성가]인 <Hymns Ancient and Modern>과 <English Hymnal>의 사용, 준국가교회적인 성향(관점quasi-Establishment mentality), 그리고 외래적인(즉, 잉글랜드적인) 문화와 사회조직을 그대로 반영하는 교회구조들의 보존을 포함한다. 예를들면, 이러한 구조들은 아프리카와 카리브해에서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

    성공회와 관련은 있지만 성공회의 공식적인 기구들이 아닌 선교단체들-예를들면 SPG, CMS, UMCA 등-은 비앵글로-색슨 세계에서 선교사업을 개시하는 위대한 활동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아프리카인들에 의해서 온정적 간섭주의 (paternalism)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오늘날 비앵글로-색슨 세계에 있는 교회들은 선교적 소명을 직접 수행하기 위하여 자신들의 지방에 대한 선교사들이 되고 있다. 물론 해외의 지원자들도 환영한다. 이런 점에서 아프리카적 특성을 살린 전도사들(the catechist원주민 교리교사)은 아프리카 그리스도교의 알려지지 않은 영웅들이다.

    앵글로-색슨 포로의 경우, 이들중 일부는 비앵글로-색슨세계 교회들이 유익하고 존중할 가치가 있다는 이유들로, 일부는 부주의한 생각으로 직접 도입되었다. 존중할 가치가 있다는 측면에는 전통에 대한 충성[전통수호]의 문제가 있다. 전통에 대한 충성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비앵글로-색슨세계의 교회들이 앵글로-색슨세계 관구들에 의해서 주조되고 형성된 전통을 완고하게 추종하는 것을 의미하는가? 아프리카인들이 그들의 주교를 ‘주교 각하’(My Lord bishop)라고 부르는 것은 합리적인가? 시골과 소도시의 경계가 영국과는 전혀 다른 아프리카의 상황에서 전도구 조직은 적합한가?

    이외에도 이러한 포로는 비효율을 조장하였다. 잉글랜드문화의 잔재들은 정치적으로 독립된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환경에서 부적절한 전시[상징]물이 됨으로써 비앵글로-색슨세계 교회들에게 골치거리가 되고 있다. 이 때문에 가나에서 성공회전통은 ‘아반 무 마솔’로 불렸으며, 직역하면 ‘성에 사는 사람들의 종교’로 식민지 정부에 가장 가까운 종교였다. 북대서양 포로의 이러한 비효율성을 지적한 외국인 주교인 존 오퓨 애글리온비(John Orfew Aglionby)는 1925년 1월14일 아크라[가나의 수도]의 교구의회에서 ‘신자들이 아직도 그들의 교회가 정부의 기금들로부터 지원받는 정부의 교회라고 믿는 한(실제로 그렇게 믿었다), 그들은 당연히 떨어질 것을 기대하며 뒷짐을 지고 서서 그들의 입을 벌리고 있는데 만족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비앵글로-색슨세계 성공회신자들이 교회의 주인이 되는 ‘프로젝트’(project)가 긴급한 의제이다.

    아프리카 성공회신앙의 운동

    오늘날 앵글로-색슨세계의 포로로부터 벗어나려는 활발한 노력들의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첫째 징후는 아프리카-성공회신앙 운동(Afro-Anglicanism movement)의 출현이다. 이를 위한 첫번째 모임은 1985년 서인도제도의 바베이도스(Barbados)에서 ‘아프리카 성공회신앙: 현재의 쟁점들, 미래의 과제들’이란 주제로 개최되었다. 두번째 모임은 남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에서 ‘아프리카 성공회신앙: 복음전도 십년(Decade of Evangelism)의 정체성, 성실성 그리고 그 영향’이란 주제로 개최되었다. 이 회의는, 제12차 람베스회의 직전에 미국성공회의 흑인 사목국(Black Ministries)을 통해서, ‘아프리카 성공회의 고유한 시각에서 교회의 나아갈 방향에 관한 관심사들을 표현하는’ 아프리카 성공회 주교들의 협의회를 지원하였다. 당시 켄터베리 대주교였던 조지 케리(George Carey)는 케이프타운 주교회의에 보낸 메시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번 회의는 그러한 발전(즉, ‘우리가 향유하는 놀라운 다양성과, 우리를 하나로 결속시키는 서로간의 사랑이라는 근원적인 정신’)을 나타내는 중요한 증표이다. 세계성공회 내에서 아프리카 전통에 대한 점증하는 관심은 과거 30년의 가장 뚜렷하고 놀라운 증표들중 하나이다. 여러분이 이 시기에 우리의 공통적인 뿌리를 찬양하고, 본인의 희망이지만, 토론과 결의문으로 서로와 우리들을 자극하기 위하여 세계 각지에서 이렇게 함께 모였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인 일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회의들에 영국계뿐 아니라 비앵글로-색슨세계 교회들의 대표자들이 선별적으로 초대되었다는 점을 덧붙인다. 케이프타운 회의에서 굿리지 주교(서인도 관구)는 아프리카 성공회신앙을 추구하는 틀로 역사적 유산에 대한 숙고(즉, 과거의 보존보다는 이를 통한 창조를 강조한다), 전례의 본질,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존중, 선교의 중요성, 신학적 성숙을 위한 탐구, 그리고 복음전도의 책임을 지적하였다.

    남반구 성공회 교회회의(Anglican Encounter in the South)

    두번째는 남반구 성공회 교회회의(Anglican Encounter in the South)이다. 이 회의는 1995년 케냐에서 처음으로 개최되었으며, 두번째 회의는 1997년2월에 개최되었다. 이 회의는, 또한 비앵글로-색슨 교회들이 세계성공회 공동체에서 그들의 공통적인 유산과 자리와 역할을 함께 규명하기 위하여, 성공회 남반구 관구들 사이에 지속적인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지역 전례서들에 대한 탐구

    세번째는 성공회 예배의 정신에 충실하면서도, 지역의 분위기와 기풍[정서]를 섬세하게 표현하는 지역 전례서들에 대한 탐구이다. 1996년11월 아프리카에서 예배의 쇄신을 탐구하는 전아프리카(All African) 회의가 개최되어, 비앵글로-색슨적인 표현, 리듬과 상징들, 노래 그리고 음악을 사용함으로써 지역민중들의 정서를 반영하는 전례와 예배를 찾는 방법들을 논의하였다. 필자의 입장에서 이것은 아마도 성공회신앙을 비앵글로-색슨세계 상황에 문화화시키는데 가장 중요한 측면이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비앵글로-색슨세계 신자들은 영어와 그 표현방식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며, 또한 의례(예식ritual)는 신앙의 기본적 요소들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 말의 의미는, 비앵글로-색슨세계 성공회신앙의 실현가능성은 크랜머의 기도서 등에 완고하게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특정한 지역의 민중들을 쇄신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예배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성공회 정체성에 대한 탐구의 지도원리-공교회성(Catholicity)

    [비앵글로 색슨세계 성공회신앙의] 형태(construct)를 위한 세가지 지도원리들이 있다. 첫번째 표준은 그 신앙이 반드시 공교회적(Catholic초기교회적)이어야 한다. 즉, 공교회성은 시카고-람베스 4개조항의 언어처럼 성서, 신경들, 성사들, 그리고 사목직으로 규정된다. 그러나 이것들은 해석을 필요로 하며, 해석을 통해서 우리는 세계성공회의 다양한 역사적 상황들과 대화하며 4개조항의 본래적인 의도를 보존하려고 노력한다. 1930년 인도, 버마 그리고 실론의 [연합]교회의 헌장중 20항(Declaration 20)은 이를 잘 진술하였다. 즉, ‘개별적인 교회로부터 공교회적인 그리스도교(Catholic Christianity)를 물려받은 잉글랜드교회가 이에 잉글랜드적인 특성을 추가하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관구의 [성공회]교회도 그러한 공통적인 신앙과 생활에 민족적인 특성을 반영하기를 열망한다.’

    그러나, 1995년 가을에 개최된 전아프리카 신학교육 협의회(All African Consultation on Ecumenical Theological Education)에서 초안한 공교회성(Catholicity)에 관한 다음의 논평은 아프리카인들과 다른 비앵글로-색슨 성공회 신자들에 의해서 채택될 수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공교회성(Catholicity)은 특히 보편적인 교회에 속한 것일뿐 아니라, 모든 백성들과 문화들에 존재하는 공통적인 인간성을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공교회성(Catholicity)은 또한 범교파적인 조직으로 일치를 추구하는 것이 단일성(uniformity)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와 전통과 경험의 다양한 차이들 대한 존중과 격려를 의미한다는 점을 확인한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비앵글로-색슨들은 기존의 잉글랜드교회적인 공교회성(Catholicity)을 반복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오히려 그들에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기에 [잉글랜드교회의 공교회성] 내용과 구체적 모양을 추가하고, 그들의 상황에 대한 공교회성의 의미와 중요성을 재발견하는 것이다.

    지도원리-프로테스탄트신앙

    둘째로, 그러한 신앙은 반드시 프로테스탄트적이어야 한다. 성공회신앙은 종교개혁운동의 일원으로, 백성들에게 구원을 찾게 만들 수 있는 생명의 메세지로 믿었던 성서에 근거하고 성서에 의해서 양육된 신앙으로의 복귀를 추구하였다. 그러나 성공회는 ‘개연적인 이성’(probable reason)이라는 성공회적인 원리에 충실하면서도, 성서에 대한 문자적인 해석을 채택할 수 없다. 오히려 진지한 신자들은 성서의 본문과 상황에 대한 비판적인 해석에 몰두한다. 더구나 비앵글로-색슨 성공회 신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정말로 희망의 복음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성서를 이해하는 그들 나름대로의 해석학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제에 대하여 필자는 감히 비앵글로-색슨 지방들을 위한 해석학 연구를 초교파적으로 추구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필자는 선교와 교회일치운동이 반드시 우리 지방들에서의 성서연구에 대한 보편적인 시각이 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지방들에서 종교적, 종족적인 다원성은 초교파적인 시각과 방법론을 요구한다. 비판적인 학문연구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상황에 대한 적합성[타당성]이 더욱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성서는 지역어로 연구되어야 한다. 아프리카에서 공동체적인 인식론과 존재론뿐 아니라, 신앙적 영성적 인식론과 존재론도 반드시 성서와의 대화에 의해서 형성되고, 육성되며, 비판되어야 한다.

    지도원리-주교제 치리형태

    세째로, 아프리카 성공회신앙은 반드시 주교제여야 한다. 성공회신앙은 지역교회의 일체성의 촛점으로 그리고 친교와 일치의 초점으로 주교직을 확언한다.

    그러나 주교제도에 대한 공교회적인(Catholic) 강조는 앵글로-색슨 교회들의 치장들(형식들trappings)로부터 해방될 필요가 있다. 주교제도의 개념과 실제[집행방식]는 앵글로-색슨의 문화들과 동화되었다. 그러므로, 비앵글로-색슨 상황에서 신학적으로, 사회학적으로, 경험적으로 그리고 실질적으로 에피스코페(episcope)를 수행하는 것의 의미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에피스코페와 관련된 구조들은 반드시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온전성(wholeness)을 제공하는 사목직들의 온전성이라는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방법론-비아 메디아

    공교회성(Catholicity), 프로테스탄트신앙 그리고 주교제의 전통적인 성공회적인 표준들을 고집하면서도, 필자는 또한 비앵글로-색슨세계 교회들에 의한 특별한 해석이 필요하다는 점을 계속해서 주장하였다. 이는 비아 메디아에 대한 집착이라는 성공회적인 특징이 요구하는 바이다. 이 표준의 개략적 내용들은 (a)경계들을 엄격하게 규정하기를 거부함으로써 실현되는 영성적 자유, (b)모든 구성원들을 서로 수용하려는 의지, 그리고 (c)지나치게 강요하지 않는 규정과 타당성을 포함한다. 어쨋든 이론상으로 이것은 신성한 혼돈속에서 상대적으로 어느 정도의 다양성을 허용하고, 교회의 모든 신자들을 인정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양성이 성공회신앙의 필수적인 요소들을 약화시키지 않는다. 비아 메디아는 성공회 신자들에게 제한적인 해석을 배제시키고, 세계성공회를 자유로운 결합과 토론과 상호존중이 있는 한 가족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또한 그것은 신생 교회들이 앵글로-색슨의 포로로부터 벗어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여야 한다. 이는 비앵글로-색슨의 기풍[정서]와 사용례와 일치하는 신학과 예배를 만들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한다.

    교회일치적인 책임

    세계성공회의 소명은 기본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성공회 신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이라는 면에서 세계성공회를 본다면, 누구나 성공회 신자가 된다는 것이 특별한 장점이 없다고 말할 것이다. 성공회 신자가 된다는 것은 단지 하느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중간지점일 뿐이다. 게다가 교파주의에 빠지는 것은 모든 만물을 그리스도안의 하느님과 화해시키는 하느님의 대리인으로서의 그리스도교회의 신뢰성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예를들면, 종족들과 인종들과 성별의 구분들로 신음하는 아프리카에서 교파주의는 하느님의 인간가족들을 형성하는데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다. 그러므로 신학과 역사적 상황들을 고려할 때, 에큐메니칼 활동은 긴급한 과제이다.

    불행하게도 비앵글로-색슨 교회들은 그들의 유럽교회들의 경험들을 너무 잘 배웠기 때문에, 반드시 구조적인 화해[일치]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예를들면, 가나에서 성공회 교회들은 처음에 교회연합(Church Union) 협상에 엄청난 노력을 쏟았지만, 결국 1973-4년에 협상에서 철수한 것은 바로 당시 성공회 아크라교구였다. 문제의 일부는 교파의 거만함에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모교회와의 상통관계가 단절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필자는 당시 교회연합을 위한 협상에서 성공회 대표들중 하나였다. 한 총사제는 필자에게 ‘당신은 협상까지 하고 심지어 연합계획까지 생각하는 켄터베리파요?’라고 말하였다. 그는 켄터베리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아프리카 성공회는 감히 움직이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세계성공회의 기존 교회들은 그들의 교회일치적인 소명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필자는 20세기에 들어와 교회일치운동의 위대한 지도자들중 일부가 성공회 신자들-윌리엄 템플, 마이클 램지, 제프리 피셔 대주교들 등등-이었다는 사실에 커다란 격려를 받았다. 필자는 현대의 교회일치운동에 대한 그들의 헌신으로부터 이러한 헌신이 성공회신앙에 대한 헌신과 불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성공회신앙을 잠정적인 위치로 이해한다는 것을 배웠다. 게다가 비아 메디아의 모델은 논리적으로 에큐메니즘, 즉 일치속의 다양성으로 안내한다.

    선교적 책임

    교회일치에의 책임은 선교와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다. 아프리카 교회들이 선교활동을 직접 실행하였던 이 복음전도의 십년(Decade of Evangelism)[1990년대] 동안에, 선교명령의 목표는 하나의 교파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백성들을 하느님의 한 식구로 초대하는 것이라고 말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교가 남반구의 나라들에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기쁜 일이다. 그러나 1977년 탐 튜마의 지적은 아직까지도 유효하다. 즉,

    ‘아프리카에 있는 교회들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러한 성장은 준비되고 체계화된 선교정책-교회는 아직 이러한 기구를 준비하지 못했다-에 의해서가 아니라 일반적인 상황에 의해서 조장되고 촉진되었다. 회교가 아프리카에서 꾸준히 영향력을 확대시키며, 그곳의 교회들에게 가장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선교활동의 체계적인 정책을 발전시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비앵글로-색슨 세계에서 성공회의 선교적인 소명을 수행하여야 할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정확하게 말한다면, 이러한 소명은 매우 다원적인 상황들에서 수행되고 있기 때문에, 에큐메니즘이 선교를 위한 시각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현대의 에큐메니칼 과제의 구성요소들은 교회의 일치(unity), 선교 그리고 모든 민중들의 공통적인 인간적 존엄성을 위한 공동투쟁을 포함한다. 세계교회협의회 사무총장인 콘라드 라이저(Konrad Raiser)는 예큐메니칼 과제들을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교회일치운동은 모든 교회의 신자들이 ‘하느님의 현존의 빛이 우리의 어두운 세상을 밝게 비추어 변혁시키는’ 장소들을 찾아가는 운동이다. 그들은 그들에게 비춰진 빛을 반사하는 것이다. 암흑의 장소에서는 꺼져가는 조그만 빛조차도 희망의 원천이다. [...] 본인에게 교회일치운동은 근본적으로 사람들이 신뢰 속에서 서로를 발견하고 그러한 신뢰 속에서 서로에게 헌신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세상에서 매우 드문 일이다.’

    세계성공회의 새로운 모델에 대한 공동탐구

    1)한 공동체(communion)
    우리는 우리들 스스로를 하나의 공동체(communion)로 정의한다. 그러나 세계성공회의 신자분포[실태]는 앵글로-색슨이 주도하였을 때에 만들어진 공동체의 옛 모델이 이제는 더이상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각 부분들이 다른 부분들에서 ‘하나이요, 거룩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공교회’의 진정한 표현을 인식할 수 있는 공동체의식을 심화시킴으로써, 서로 다른 부분들이 예수가 그리스도이자 주님이라는 선포에 함께 참여하고, 선교와 인간적 봉사활동에 협력하며, 성사들을 공유할 수 있는가? 따라서 우리는 하나의 공동체로 결합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필요로 한다.

    여기에 대하여 필자는 두가지를 제안한다. 첫째로, 일반적인 사회학적인 원칙들에 따르면, 하나의 공동체사회(community)는 공동체의 통일성, 단결, 영속성, 연속성과 완전성을 나타내는 동질의식의 초점(focus of identification)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 필자는 우리의 동질의식의 초점을 성공회가 시작하였던 켄터베리에 두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확신한다. 1933년 ACC의 케이프타운 회의에 대한 한 발표에서 필자는 ‘성 어거스틴 [선교사]의 교구는 [...] 통일성, 단결, 연속성, 그리고 완전성에 대한 우리의 노력의 상징이 될 수 있다. 어느 경우든, 세계성공회와 같은 공동체는 동료들중 선임자(primus inter pares)와 같은 동질의식의 초점에 의해서 더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제안하였다. 동남아시아 관구의 창립예배 때에, 켄터베리 대주교는 취임하는 관구장에서 ‘테이주교, 나는 당신에게 우리들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공유하는 사목직의 증표인 관구장 십자가를 드립니다. 그분의 사랑이 당신에게 감화을 주고, 그분의 수난이 당신에게 본보기가 되며, 그리고 그분의 겸손함이 당신에게 이 지방에 있는 그분의 교회들의 대표 목자로서 당신의 권위가 되기를 기도드립니다’고 말하였다. 각 관구장은 해당 관구에서 동질의식의 초점이며, 보다 넓은 사회에 대하여 해당 관구의 얼굴이다. 따라서 모델은 공유하는 사목직이다.

    앞에서 필자는 세계성공회가 우리의 공동체 모델을 형성하는데 가장 필수적인 요소들로서 공동체, 몸 그리고 가족의 이미지들을 이해하여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성서에서 사용되는 ‘Communion’(공동체)이란 단어는 본래적이며 주요한 의미로 참여(participation)를 뜻한다. 즉, 각 당사자들이 참여하며 공동체사회의 사업에 이해관계를 갖는다고 스스로 인식하는 공동체를 말한다. 이러한 공동체에는 서로 다른 역할들과 기능들은 있어도 이방인이나 구경꾼은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필자는 또한 세계성공회의 증표로서 상호의존(mutuality)을 강조하고 싶다. 가나의 아칸족(Akan of Ghana) 사이에는 ‘왼손은 오른손을 닦아주고 오른손은 왼손을 닦아준다’는 속담이 있다. 이것이 바로 세계성공회의 앵글로-색슨 교회들과 비앵글로-색슨 교회들 사이에 존재하여야 하는 상호의존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과제는 이러한 참여와 상호의존을 실질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2) 한 몸
    또 다른 이미지는 몸의 이미지이다. 물론 몸은 그리스도교회의 이미지들중 하나이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서 감히 이 이미지를 세계성공회 공동체에 사용하려고 한다. 이 이미지는 통일성 속의 다양성, 즉 세계성공회의 공동의 안녕을 만들어내는 서로 다른 선물들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이미지는 세계성공회의 공동운명, 즉 한 부분이 고통을 받으면, 다른 부분도 고통을 받는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남아프리카 공회국에서 인종격리 이념에 반대하여 치열하고도 위험한 투쟁을 벌였던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가 세계성공회를 인종격리정책에 반대하는 그리스도교적인 증거의 편으로 결집시키는 강력한 상징이 되었던 이유이다. 대주교 로버트 런시는 1985년 성탄절 메시지에서 이를 자세히 설명하였다. 즉, ‘우리는 세계성공회에서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다른 모든 지체들이 고통을 받는다는 점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공동의 선을 증진시키는 방법들에 우리들의 공감을 표현하려고 한다.’ 우리는 ‘몸’의 이미지를 세계성공회에 적용시키는 것이 현장에서 어떻게 표현될 것인가를 보다 자세히 연구할 필요가 있다.

    3) 한 가족
    필자는 스스로를 핵가족이 아닌 확대가족(extended family)으로 정의하는 민족인 아프리카인이다. 다른 글에서 필자는 이러한 인식론을 cognastus sum, ergo sum 즉, ‘다른 사람들과 관련될 때에, 나는 존재한다’로 설명하였다. 세계성공회 안에 있는 모든 신자들, 즉 세계성공회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에 공통적으로 충성하며 켄터베리교구와 상통하는 ‘모든 부류와 조건들에 처한 사람들’은 공동체의 언어로 하나의 가족, 즉 확대가족이다. 여기에 하나만 추가한다면, 아프리카의 상황에서 이 가족은 살아있는 사람들, 별세자들(아프리카에서는 이들을 ‘살아있는 별세자’라고 한다)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사람들로 구성된다. 우리들 즉, 현대의 비앵글로-색슨세계 성공회신자들은 우리보다 앞서 떠난 모든 성공회신자들 즉, 토마스 크랜머, 윌리엄 템플, 마이클 램지, 우간다 순교자인 J. 루움(Luwum), 최초의 아프리카 성공회 사제인 필립 콰쿠, 버나드 마세키(Bernard Maseki)와 관계를 맺고 있다. 즉, 우리 모두는 하나의 가족에 속해 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우리는 보다 넓은 가족들인 믿음의 모든 식구들에 속해 있다.

    마지막 한가지 논점. 성서적 신앙을 특징짓는 것들중 하나는 초월적인 것에 대한 헌신이자 종말론에 대한 헌신이다. 우리 비앵글로-색슨 성공회 신자들은 우리의 현재 존재의 한시성[일시성]을 가진 가족에 속해 있으며, 그리고 하느님의 모든 피조물에서 그리고 특별히 우리의 비앵글로-색슨들의 상황들에서 하느님의 나라의 초월적이자 종말론적인 실현을 기대하고 있다. 우리는 하느님의 궁극적인 목적들의 실현을 기다리며 종말론적인 기대속에 살고 있는 백성들이다. 우리의 고통과 고난은 하느님의 목적들의 완성을 기대하며 종말론적인 희망 속에서 우리의 삶을 더욱 강화시킨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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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12월 1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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