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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The Study of Anglicanism-What is 'Anglicanism'? « 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 번역 프로젝트 자료

번역 : The Study of Anglicanism-What is 'Anglic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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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Cranmerian
    회원

    ‘성공회신앙’이란 무엇인가?
    Paul Avis

    성공회신앙(Anglicanism)이란 무엇인가? 성공회신앙은 세계성공회 공동체(Anglican Communion) 교회들의 신앙과 신앙활동(실제practice)와 정신(spirit)(또는 교리, 직제order와 예배)으로 구성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현상학적인 방식의 정의로는 엄격하고 비판적인 교회론의 요구들에 적합하지 않다. 우리는 이 무미건조하고 서술적인 정의에 의심의 해석학[해석학적인 의심]을 적용시켜 다음과 같이 질문할 필요가 있다. 즉, 세계성공회의 신앙과 실제와 정신이 단순히 역사의 우연한 사건들의 산물인가, 즉 편의라는 이유들로 우연히 발생하여 결과적으로 나타난 것들의 정당화[합리화]인가? 그리고 이 때문에 성공회신앙의 신앙과 실제와 정신은 미래에도 이와 똑같이 우발적이고 비이성적인 역사적인 조건들(forces)에 의해서 그 구성요소들로 분해될 운명인가? 아니면, 성공회신앙이란 어떠한 순수한 교회론적인 진리나 원리를 어느정도 영속적인 타당성을, 그리고 전체 그리스도교회에 공헌할 수 있는 어떠한 가치를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인가? 이 질문을 보다 분명하게 표현한다면, 성공회신앙은 단순히 부도덕한 앵글로-색슨 제국주의의 쇠퇴한 유산인가, 아니면 성공회신앙은 그리스도교의 본질, 즉 그리스도교의 복음에 근거하며 그 안에서 자신의 정당성을 찾을 수 있는가?

    성공회 교회론의 딜레마를 이러한 방식으로 질문하는 모호한 표현은 윌리엄 템플의 논평-잉글랜드만큼 추상적인 원리들을 가장 적게 주장하면서 종교개혁을 성취한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에서 가장 잘 지적되었다. 우리는 아마도 템플의 주장에 동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그리스도교 진리의 발전론적인 이해(하지만 이는 물론 개혁가들이 이해한 방식은 아니다)와, 개인적인 양심의 주장들에 대한 존중(이는 확실히 개혁가들에 의해서 어느정도 인정되었다)을 주장하는 교회의 입장에서 보면, 잉글랜드 종교개혁-적어도 헨리와 엘리자베스 치하에서-이 근본적으로 신학적인 운동이라기 보다는 정치적인 운동으로, 그리고 결과적으로 잉글랜드교회는 다른 교회들보다 교의적인 규정들에 덜 얽매이게 되었다는 것은 매우 감사해야할 일이다. 그러나 정치적, 사회적 그리고 문화적 상황이 단순히 한 교회에 계기를 제공하고 그 외적인 형태의 형성에 기여할 수 있다는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이러한 설명은 한 교회의 정의나 존재이유를 제공할 수 없다.

    1. ‘Anglican’ ‘Anglicanism’이란 용어

    ‘Catholic’과 ‘Protestant’라는 용어들처럼, ‘Anglican’과 ‘Anglicanism’ 이란 용어들도 과거의 신학적인 논쟁이 종종 ‘밀랍으로 만든 코’(nose of wax)-자신의 요구사항들에 맞게 임의로 만들 수 있는 것-라고 불렀던 것을 나타낸다. 확실히 성공회신앙의 개념은 서로 다른 자기 나름대로의 해석들과 정의들로 커다란 논쟁을 만든다. 그러나 이 용어들이 어원적으로 라틴어인 Anglicanus(English 잉글랜드인들이라는 뜻)에서 유래하였다는 점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 Ecclesia Anglorum(‘잉글랜드인들의 교회’)라는 표현은 7세기초 켄터베리의 어거스틴에게 보내는 교황 그레고리1세(Gregory the Great)의 편지들에서 사용되었다. Ecclesia Angliae(‘잉글랜드의 교회’)라는 표현운 11세기말과 12세기의 첫번째 10년에 안젤름에게서 발견된다. Ecclesia Anglicana라는 표현은 12세기 중반부터 일반적으로 사용되었으며(예를들면, 베킷의 편지와 솔즈베리의 존에서), ‘잉글랜드교회’(Church of England)라고 번역되었다. Anglicana ecclesia라는 표현은 대헌장(1215)에서 Quod Anglicana ecclesia libra sit(‘잉글랜드교회는 자유로울 것이다’[국왕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라는 진술문에서 나타난다.

    당시에 ‘잉글랜드의 교회’라는 표현은 민족주의적인 또는 심지어 애국주의적인 의미를 포함하지 않았다. 이 표현은 단순히 지리적인 의미(때때로 웨일즈 포함)로 잉글랜드에 위치한 서방교회의 관구들(참조; Anglicana provincial)을 언급하였다. 이와 비슷하게 Ecclesia Gallicana(갈리아[프랑스] 지방교회)는 프랑스에 있는 교회에 대한 지역주의적인(Gallican) 의미를 포함하지 않았다. 더구나 ecclesia Anglicana[잉글랜드의 교회]는 국왕의 통제로부터 보호받기 위하여 교황권에 의지하였으며, 국왕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를 추구함으로써 교황에 복종하게 되었다. 대헌장은 후대의 잉글랜드교회 프로테스탄트들이 애용하였던 해석과는 정반대로, 교황의 통제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국왕의 간섭으로부터 잉글랜드교회의 자유를 인정하였다.

    종교개혁때에 대헌장의 선례는 다시 언급되고 해석되어(사실상 반대방향으로) 외국의(즉, 교황의) 관할권으로부터의 독립에 대한 개혁된 잉글랜드교회의 주장들을 강조하였다. 즉, 과거에는, ‘다양한 여러가지 옛 인증된[정본] 역사서들과 연대기들’이 증언하였듯이, 잉글랜드의 교회는 초기교회 시대와 같은 자유와 독립을 누렸으나, 최근에 로마주교의 찬탈로 이를 박탈당하였다. 따라서 국왕수장권을 확언하는 1534년의 법률[국왕수장권법-역자]은 국왕(헨리8세)을 ‘Anglicana Ecclesia로 불렸던 잉글랜드교회의 유일한 지상의 수장(supreme head)’이라고 말하였다. 존 주얼(솔즈베리 주교)은 잉글랜드 종교개혁에 대한 그의 변증서에 <Apologia Ecclesia Anglicanae>라는 제목을 붙였다. 처음부터 모국어로 자신의 주장을 서술한 리처드 후커의 경우, 이 용어는 ‘잉글랜드교회’(Church of England)였다.

    ‘Anglican’이란 용어는 17세기 중반에 처음 사용되었지만, 18세기와 19세기에 이르러 이 용어는 국가적인 의미들을 포함하기 시작하였으며, 보다 구체적으로 독특한 신학적인 입장을 가르키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버크는 ‘Catholics, Anglicans or Calvinists’[천주교도나 잉글랜드교회 신자나 칼빈주의자들]라고, 머콜리는 Anglican[잉글랜드교회적인] 교리와 권징을, 그리고 글래드스톤은 Anglican[잉글랜드교회의] 성직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따라서 이를 토대로 사목적으로나 교회법적으로 켄터베리에 의존하는 식민지의 교회들도 ‘Anglican’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용어는 이 교회들이 잉글랜드의 모교회로부터 법적으로 독립한 이후에 나타나기 시작한 세계성공회 공동체(Anglican Communion)의 가족 교회들을 표현하는데 사용되었다.

    프랑스어 형태인 anglicanisme는 1817년 라므네(Lamennais)가 아마도 gallicanisme와 비슷한 의미로 사용하였다. ‘Anglicanism’이란 용어는 1838년에 뉴먼에 의해서 사용되었으며, 당시에 그는 잉글랜드교회 신앙의 국가적인 측면들에는 찬성하지 않았다. 소책자운동가들의 급진파들은 온건한 고교회파 성직자들을 ‘mere Anglicans’(순전한 국교회신자들)이라고 정죄[비난]하였다. 그들에게 ‘Anglican’이란 말은 경멸적인 용어였다. 최초의 람베스회의는 1867년에 ‘Anglican Communion’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이 용어는 1851년에 처음 사용되었다).

    그러나, 교회론적인 개념으로서의 Anglicanism은 이후 세대의 관심사가 되었다. 즉, 국가와의 결속관계들이 약화되고, 신앙적인 표현의 다원성이 심각하게 나타나고, 그리고 신앙적 믿음과 실제의 사회적, 정치적 측면들이 신학자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하였을 때에야 나타났다. 그 때에서야 세계성공회의 다양한 교회들의 공통적인 믿음과 생활을 가톨릭신앙(Catholicism), 자본주의(capitalism), 마르크스주의 (Marxism) 등등과 비슷하게 하나의 이데올로기(여기서 이 용어는 반드시 경멸적인 의미일 필요는 없다)로 평가할 수 있는 상황에 도달하였다.

    성공회의 정체성과 완전성(순수성integrity)에 관한 현재의 관심은 계몽주의와 마르크스주의와 같은 개념적이자 사회적 구조들에 적용되었던 이념적인 비판의 방법론들에 의해서 알려진 신학적인 분석을 전반적으로는 그리스도교에, 그리고 특별하게는 Anglicanism(성공회신앙)에 적용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러한 비판[비평]의 피할수 없는 부정적인 영향들은 그리스도교회 전반을 통해서, 그리고 교회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학의 모든 분야들에서 감지되고 있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불쾌한 영향들을 피하기를 기대한다면, Anglicanism에 관한 연구는 엄격한 신학적인 검사가 오늘날의 시대풍조가 되고있는 교회론이라는 신학분야로부터 분리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Anglicanism은 어떠한 객관적인 신학적 평가나 비판을 받지않고 완전히 자유로이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개인들과 집단들은 그리스도교회의 존재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person)과 운명에 근거시키려는 신학적 원리들에 제한받지 않고, 직접적인 정치적 조작에 의해서 그들만의 목적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사리사욕, 권력과 위신, 그리고 변하지 않은 심리적 환상들에 대한 뻔뻔스러운 만족을 적나라하게 추구하는 것을 목격할 것이다. 이것은 정말로 경멸적인 의미에서 명백히 이념적일 것이며, 그러면 우리가 처음에 제기한 질문-성공회신앙이 단순히 특정한 집단들의 이익을 표현하고 보호하는 것인가, 아니면 성공회신앙은 순수한 신학적 원리의 구체적 표현인가-에 대한 대답은 매우 분명해질 것이다. 비판은 때때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하더라도, 필자는 이런 경우에 대다수 성공회신자들은 그들의 교회가 비판적인 교회론의 엄격한 검사를 회피하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2. Anglican Apologetic(성공회 호교론)

    성공회신자들이 수세기동안 그들의 교회를 위하여 옹호하였던 주장들은 말할 필요도 없이 영원한 추상적 진리들의 분야에서 표현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당시의 도전이나 위협-즉, 로마, 또는 퓨리탄들, 또는 근대의 과학, 또는 에큐메니즘, 또는 여성해방운동, 또는 현대사회의 만성적인 다원주의-에 대한 응답으로 표현되었다. 이러한 도전들이나 위협들에 대응하며, 성공회신자들은 이에 적합한 것으로 보였던 성공회적인 종합(Anglican synthesis)의 다양한 측면들을 추출하였다.

    16과 17세기에 잉글랜드교회 신자들은 교회분열주의(schism)라는 비난을 반박하며 종교개혁 이전의 교회와의 연속성을 옹호하였으며, 그러면서도 교황권의 주장들을 거부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잉글랜드교회의 공교회성(catholicity)을, 즉 공교회적인(catholic) 신앙과 직제(성직제도order)의 핵심적인 부분에 결함이 없는 교회라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개혁이 충분하게 실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잉글랜드교회는 진정한(true) 교회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급진적인 프로테스탄트들과 논쟁하여야 했다. 이처럼 내부적인 도전에 대응하여 위트기프트와 후커와 같은 호교론자들(apologists)은 잉글랜드교회가 그리스도교계의 가장 잘 개혁된 교회들과 동등하게 완전히 개혁된 특징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싸움들에서 논쟁의 무기들은 성서학과 역사학의 지식들이었다-후커의 경우는 [자연]법의 제1원리들에 대한 이해였다. (이것은 성공회의 학문적 연구가 편향적으로 이용되지 않았다거나 증거가 왜곡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잉글랜드교회는 르네상스의 새로운 인문주의적 학문과 17세기의 학문적 결실들에 의존하였다. 그러므로 건전한 학문에의 호소는 이미 성공회 호교론(Anglican apologetic)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더구나 이러한 호소는 특정한 철학적이자 윤리적인 정신의 영향을 크게 받았기 때문에, 주장의 온건함, 제기하는 주장들에 대한 조심성, 실용주의와 가능한 것들에 대한 분명한 인식, 철학적 개연론, 그리고 인간적 숙고의 한계들에 대한 인식을 특징으로 하였다. 후커, 로크 그리고 버틀러에 의해서, 이러한 온건하지만 결코 보편적이지 않은 특질들을 특징으로 하는 주장들은 우리가 생각하고 싶어하듯 단순히 무력한 문서적인 의사표시가 아니라, 잉글랜드교회 안팎의 적들에 대항하여 성공회적인 입장을 성공적으로 옹호하였던 파괴력을 가진 종합적인 주장들이었다.

    19세기 후반기에 성공회의 사상은 근대적인 세계관의 결과들-성서비평학, 진화론과 내재론적인 철학-과 씨름하기(충격이 없지 않았지만) 시작하였다. 건전한 학문에의 호소는 1889년 찰스 고어가 편집한 심포지엄[평론집]인 <Lux Mundi>[룩스 문디]-세상의 빛]에서 새로운 국면으로 돌입하였다. 기고자들-옥스퍼드 대학교의 앵글로-가톨릭 성직자들-의 목표는 그리스도교 신경을 현대의 과학적, 역사적, 비판적 지식의 성장 그리고 현대의 정치학과 윤리학의 문제들과 올바른 관계를 갖도록 노력함으로써 ‘곤궁에 빠진[새로운 학문에 도전받고 있는] 신앙을 구조하려는 것’이었다.

    20세기에 성공회 호교론은 이제 막 태동하기 시작한 교회일치운동에 응답하기 시작하였으며, 그리고 성공회신앙(Anglicanism)에서 공교회적(catholic), 개혁적(reformed) 그리고 학문적 요소들의 결합이 성공회를 그리스도교 통합[일치]의 한 전형[모형](paradigm)으로 기여할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주장들이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앵글로-가톨릭파 문서인 <Catholicity>(1947)는, 다른 전통들[교파교회들]에서는 이미 파괴되어버린 살아있는 원리들을 하나로 결합시키는데 성공한 성공회신앙(Anglicanism)이 ‘잉글랜드교회가 [...] 그리스도교계의 어느 [교파]교회들보다도 더 넓은 활동영역에 대한 종합의 학교[터전]가 될 수 있는 길’을 제공한다고 제안하였다. 즉, 성공회신앙은 온전한 상태의 그리스도교 전통에 대한 특별한 증언을 보존하였다고 주장되었다. ‘성공회신학의 역사는 분열보다는 종합을 지향하는 구성능력(power of construction)을 보여준다.’

    성공회신앙이 그리스도교 전통들 사이에서 종합을 촉진시키는 독특한 선물[은사]을 보유하였다는 주장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이는 일반적으로 성공회 교회들의 내부적인 체험으로 뒷받침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회 내부에서 나타나는 성직자성향(churchmanship) 전통, 소위 교회내부의 당파들(ecclesiastical parties)-과거에는 고교회파와 저교회파와 광교회파로, 오늘날에는 가톨릭파와 복음주의파와 자유주의파로-은 각 당파의 교직후원조직과 신학대학들 그리고 신문과 잡지들을 통해서 그들의 편견[주장]들을 강화시킴으로써 대체로 각각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양극성은 약화되고 있다는 증표들이 나타나고 있지만, 최근까지 내부적인 일치운동(ecumenism)은 최소한에 그치고 있다. 타협은 나타날 수 있지만, 종합은 아니다.

    종합은 어떻게 성취되는가? 종합은 분명히 신학적인 작업-즉, 연구와 대화와 재구성-을 통해서 성취될 수 있다. 또는 종합은 분파들을 조화시키고 옛 갈등들을 치유하는데 도움이 되는 지도력과 예배와 영성과 선교의 분야에서 새로운 상징들이 나타남으로써 소리없이 성취될 수도 있다. 교회의 상징적인 생활에 관한 한, 우리는 대체로 전례서의 집필자들에 달려있다. 즉, 그들이 상징성(symbolism)의 역동적인 성격을 그 자체로[스스로] 양육되고 형성되고 쇄신될 수 있는 완전한 살아있는 전통으로 인식하는 정도에 달려있다. 신성시되는 상징들에 대한 보다 커다란 존경심, 그리고 진실한 독창성의 육성은 신앙공동체의 상징적인 생활의 묵시적인 차원에서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종합과 완성을 성취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그러나 그때까지 우리가 신학적 탐구와 인식을 강화시키기 위하여 실행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이 있다. 이념적으로 의심스럽고 비평적으로 일관성이 없는 신학들은 비판과 교육에 의해서 불신될 수 있다-물론 완전하게 추방시킬 수는 없지만. 이런 방식을 통해서 적어도 성공회의 소명(Anglican vocation)의 한 측면인 새로운 지식에의 개방성을 실현하는데 방해가 되는 신학적인 장애물들은 제거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여성해방운동(feminist movement)-종교개혁이나 계몽주의 만큼이나 중대한 혁명이다-은 성공회적 완전성(순수성 integrity)에 대한 가장 최근의 도전을 제기한다. 또다시 우리들에게 신론과 그리스도론과 교회론을 포함하는 사실상 그리스도교 교리의 모든 측면들의 근저에 깔려있는 성별 정체성(gender identity)에 대한 우리의 가설들을 재평가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바로 세속적 지식-이 경우에는 심리학과 사회학과 인체생물학의 결과들-이다. 신학은, 관련된 비신학적인 학문들과 교류함으로써, 인간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일치될 수 있다. 그러나 또다시 우리는 성별 정체성의 분야에 대한 우리의 인식속에 널리 퍼져있는 잠재의식적인 전형적 심상들과 이미지들에 대한 통제권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여야 한다. 바로 이러한 인정받지 못하고 재구성되지 않은 심리학적 금기들(inhibitions)이 종종 당대의 지식과 통찰과 대화하면서 성공회의 사상을 진전시키는데 가장 완고한 장애물들로 나타난다. 부적절한 명시적 신학들은 종종 너무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에 심리적-사회적 요인들의 합리화와 정당화라는 그것들의 진정한 지위는 쉽게 판명되기 때문에, 다루기가 보다 쉽다. 여성해방운동에 의해서 제기된 질문들은 건전한 학문에 대한 성공회신앙의 호소-즉 성공회신앙이 진리의 모든 원천들에 의존하며 그 지적인 공교회성(catholicity)을 이해하는 성공회신앙의 방법론-에 대한 가장 최근의 도전이다.

    3. 성공회의 자기인식(self-definition)

    성공회신앙의 본질(핵심essence)에 대한 한가지 접근방법은 수세기를 통해서 규정된 여러가지 공식발표문들(formulations)을 조사하는 것이다. 물론 이 공식발표문들이 만들어진 특별한 상황들과 그 대상들을 당연히 고려하여야 한다. 성공회의 자기인식[자아규정] 주장들(exercises)은 넓은 의미에서 두가지 범주들로 구분된다. 즉, 성공회적인 종합의 중요한[필수적인] 구성요소들-성서, 전통, 이성 등등-에 중심을 두는 주장들, 그리고 성공회적인 방식에 대하여 독특한 방법론, 기풍[정서, ethos] 또는 적용방식(praxis)을 강조하는 주장들. 먼저 첫번째 범주에 속하는 발표들은 16과 17세기의 성공회신앙의 형성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잉글랜드 종교개혁과 옥스퍼드운동의 시기 사이에는 모든 개혁가들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성서의 최고권위, 이신칭의[신앙의인화], 교회의 치리형태(government)에서 평신도의 합법적인 역할(국왕과 의회에서 구체화된다), 그리고 특정한 국가단위와 지방단위의 정체성을 표방하는 개혁된 교회로서 성공회신앙의 정체성에 대한 공감대가 존재하였다. 성공회의 자아규정의 두번째 범주에 속하는 주장들-표현하기 어려운 기풍[정서]에 대한 호소-은 옥스퍼드운동 이후의 시기에 속한다. 왜냐하면 급진적인 소책자운동가들은 전통의 권위를 주장함으로써(‘교회는 가르치고, 성서는 입증한다’), 이신칭의의 법적인(외래적인forensic) 교리를 내재적인(infused) 성서적 은총에 의한 의인화와 절충시킴으로써, 교회의 치리형태(government)를 성직자 중심으로 변경시킴으로써(clericalizing), 그리고 교회와 이제 세속화된 국가 사이의 협력관계를 거부함으로써, 앞서 형성된 공감대에 성공적으로 도전하였다. 소책자운동가들에 따르면, 잉글랜드교회의 주장들과 권위와 온전성(순수성integrity)은 복음을 설교하는 역동적인 사건(루터)이나 국가의 인준(국가교회주의적 프로테스타트 입장)으로부터 유래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주교직의 계승을 통한 잉글랜드교회의 사도적 토대로부터 유래하였다.

    개인에 따라 강조점과 단서조항들이 달랐다 하더라도 그들이 넓은 의미에서 잉글랜드교회의 프로테스탄트적인 성격을 지지하였고, 교회의 모든 당파적인 성직자들이 서명하였던 기존의 공감대는 효과적으로 해체되었다. 이제 성공회신앙에서 프로테스탄트적 요소들은 고교회파 전통의 교회론적인 강조로부터 그리고 광교회파 전통의 관용성으로부터 분리되어 복음주의자들의 특별한 전유물이 되었다. 따라서 성공회 자아규정에 관한 한, 모호한 공감대, 즉 분명하기 보다는 묵시적으로 단지 기풍[정서]과 접근방법의 문제로 친교공동체의 회원들 사이의 성문화되지 않은 이해에만 호소할 수 있을 것이다.

    성공회신앙의 독특성을 이러한 방식으로 규정하는 것은 확실히 부득이한 방식이다. 공통적인 기풍[정서]에 존재하는 묵시적인 공감이라는 인식은 [국]교회내에서 교리적 일치의 몰락을 인정하는 결과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것은 실천(praxis)의 영역에 존재하는 묵시적인 공감의 개념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말하는 것은 성공회신앙의 가상적인 영원한 본질이 아니라 개념적인 구성-즉 역사의 사실들에 대한 실질적인 적응-이라는 점을 보다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다.

    4. 성공회적인 종합

    이제 성공회의 자아규정에 대한 몇가지 증언들을 설명하기에 앞서, 먼저 성공회적인 종합의 세가지 구성에 관하여 살펴보자. 제임스1세(그의 불미스러운 개인적인 명성에 대해서가 아니라)는 그 자신의[당시의] 성공회신앙(Jacobean Anglicanism)에 대하여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1609년에 ‘짐은 세가지 신경들, 즉 사도신경과 니케아신경과 아타나시오신경을 믿는 공교회적(catholic) 그리스도인이며 [...] 그리고 짐은 이것들을 만든 고대의[초기교회의] 교부들과 공의회들이 이해하였던 것과 똑같은 의미에서 이것들을 믿으며 [...] 짐은 첫 4차례의 공의회들을 공교회(catholic)이자 정통신앙(orthodox)으로 존경하고 인정하며 [...] 성서에 관한 한 짐이 이를 믿는다는 것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고 선언하였다. 제임스가 성서를 제일 마지막에 언급한 것은 성서가 가장 덜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성서 최고의 권위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었다. 39개 신앙조항은 이미 ‘성서는 구원에 필수적인 모든 것들을 포함하고 있다’고 확언하였다(제6조). 근본적인 진리와 이차적인 진리, 즉 구원에 필수적인 것들과 부차적인 것들-제2차 바티칸회의에서는 진리들의 등급(계서조직hierarchy of truths)이라고 표현하였다-에 대한 인식은 신앙조항에서 함축적으로 표현되었다. 신경들은 ‘그것들[신경들]은 성서의 가장 확실한 보증들에 의해서 입증될 수 있다’(신앙조항 제8항)는 사실로부터 권위를 갖는 것으로 인정받는다. 성서와 전통 사이의 이와같은 불균형은 잉글랜드교회의 교회법에서도 표현되었다. 즉, ‘잉글랜드교회의 교리는 성서에 근거하며, 또한 앞서 말한 성서에 일치하는 초기교회의 교부들과 공의회들의 가르침들에 근거한다’(Canon A5). 성서와 전통에 대한 이러한 결합-성서에 압도적인 지위를 부여한다-은 성공회신앙의 개혁된 가톨릭신앙(reformed Catholicism)을 나타낸다.

    19세기에 성공회적인 종합의 기본구조[범위]를 확대시켜 성서학 연구와 과학적 발견들과 내재적인 세계관을 수용하였을 때, 개혁된 가톨릭신앙은 ‘자유주의적인 가톨릭신앙’(liberal Catholicism)으로 변형되었다-그리고 찰스 고어(1853-1932)는 이러한 변화에 대한 중요한 주창자였다. 어쨋든 찰스 고어는 성공회적인 신학적 방법론에서 성서적 요소를 약화시킬 생각은 없었다. 그는 ‘성공회 교회의 특징은 처음부터 공교회적인 교회(Church catholic)의 구조와 주요 공식문들에 대한 확고한 보존과 ‘종교개혁의 중심적인 신앙적 주제인 “성서로의 복귀”를 결합시킨 것이었다’고 썼다. 그러므로 고어에 의하면, 성공회신앙은 성서적 가톨릭신앙(scriptural catholicism), 즉 ‘성서를 교회에서 지배적인 권위를 갖는 최고의 자리에 위치시키는 가톨릭신앙’을 증언한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에 학식[학문learning]의 부흥은 성공회적인 종합에 세번째 요소-학문적 연구에의 호소-를 소개하였다.

    ‘종교개혁시대에 잉글랜드교회가 가톨릭신앙의 초기교회적인 구조를 거부하지 않았으며, 또한 새롭고 더욱 자유로운 운동도 거부하지 않았던 것은 바로 성공회 교회의 자랑거리[영광]이다. 이 교회는 초기교회의 구조-신경들, 교회법, 성직의 계서조직, 성사들-를 그대로 보존하면서도, 새로운 학문과 성서에 대한 새로운 호소와 역사적 비평주의의 자유와 사적인 판단의 의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찰스 고어는 1889년 공적인 생활을 시작할 때에 성공회 가톨릭신앙의 개혁적 특징 뿐만 아니라 자유주의적 특징도 확언하였다. 즉, ‘성서적이며 성서의 전체를 상징하며, 이성적이며 모든 순수한 탐구의 빛을 추구할 수 있으며,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문제들과 요구들을 자유롭게 다루는 [...] 가톨릭신앙(Catholicism)’이다. 고어는 그의 영향력이 가장 컸던 1914년 옥스퍼드의 주교로서 이러한 입장을 다시 강조하였다. 즉, 종교개혁 이후로 성공회신앙은 성서를 ‘교의적인 필수조건의 유일한 최종적인 판단기준’으로 삼는 ‘자유주의적 또는 성서적 가톨릭신앙’을 대표하였다. 고어가 그 이상으로의 발전-특히 비주교제 교회들과의 상통관계, Lux Mundi(1889)를 넘어서는 비판적인 입장들, 그리고 인준받지 않은 전례적인 창착들을 금지시키기 위하여-을 저지하기 위하여 이러한 종합을 동결시키려고 시도하였던 특히 자기만족적이며 독단적인 방식은 여기서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러나 가톨릭, 프로테스탄트 그리고 학문적인 요소들 세가지에 호소하였다는 점에서 고어는 고전적인 성공회적인 자아규정의 대표자이다.

    성공회적인 종합에 대한 이러한 개념은 1930년의 람베스회의에 제출된 보고서에서 인정받았다. (윌리엄 템플이 초안하였던) 이 문서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보편적인 그리스도교회에 대한 우리의 특별한 성격 그리고, 우리가 믿는 것처럼 우리의 독특한 공헌은 우리가 역사적 상황으로 인하여 우리의 신앙공동체 안에서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인 신앙과 성직을, 복음적인[개혁적인] 교회들이 증언하고 있는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에의 직접적인 접근, 그리고 지적인 탐구의 자유(이에 따라 그리스도교의 계시와 발전하는 지식과의 상호 의존관계가 지속적으로 달성된다)를 결합시킬 수 있었다는 사실로부터 나온다.’

    성공회 호교론자들은 최근까지 똑같은 주장을 반복하였다. 1965년 마이클 램지 대주교는 로마 가톨릭신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책을 집필하면서, 성공회적인 종합에서 자유주의적 구성요소를 약화시켰지만 개혁적 가톨릭신앙을 강조하였다. 램지는 ‘우리 교회는 두가지 측면들을 갖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한편으로 우리는 고대시대의 교회[초기교회]로부터 가톨릭전통과 연속성를 보유한 교회라고 주장하며, 우리의 가톨릭전통과 연속성은 거룩한 성사[성체성사]에서 그리스도의 실재적 현존에 대한 믿음, 그리고 사제의 용서선언 권능을 포함하는 주교직과 사제직의 성직을 포함한다. 우리는 남성과 여성들을 위한 수도공동체들과 같은 가톨릭 그리스도교계에 속하는 여러가지 기관들을 보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램지 대주교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 성공회의 전통은 마찬가지로 또다른 측면을 갖고 있다. 우리는 종교개혁을 거치며, 종교개혁에서 유래한 많은 체험들-예를들면 성서의 개방-을 높이 평가하는 교회이다. 즉, 성서의 권위, 성령의 활동을 통한 개인적 확신과 개심을 매우 중요시한다.’

    필자는 이 시점에서 먼저 이에 대한 몇가지 평가를 말하고 싶다. 성공회신앙을 가톨릭, 프로테스탄트 그리고 자유주의적 요소들의 종합으로 표현하는 것은 옳지만, 우리를 충분하게 만족시키지는 못한다. 이는 성공회신앙의 독특한 특징을 나타내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종교개혁 교회들과의 양자대화를 통해서 성공회는 이 교회들도 [동서로] 분열되기 이전의 그리스도교회 그리고 교부시대의 그리스도교의 고전적인 교리들에 호소한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였다. 종교개혁 교회들 역시 건전한 학식[학문]이나 영적인 자유에 대하여 부족함이 없다. 더구나 제2차 바티칸회의에서 시작된 로마 가톨릭교회의 내부적인 개혁과정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주장들에 대한 성공회의 반대를 완전히 무력화시키지는 못하였지만, 성공회 옹호론의 전통적인 반로마 가톨릭 입장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진전되고 있다. 성공회-로마 가톨릭교회 국제위원회(ARCIC)가 교리의 분야에서 성취한 공통적인 근거는 비판의 여지가 남아있고 바티칸의 완전한 승인을 얻지 못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으로 성공회 정체성을 로마교회로부터 구별시키는데 기여하였던 성공회 호교론의 여러가지 측면들을 더욱 약화시킨다.

    모든 당파들에 속한 성공회 성직자들(churchmanship)은 성공회의 신앙이 가톨릭이자 개혁적이며 이와동시에 지적인 탐구에 개방적[호의적]이라는 인식에 동의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이러한 약속으로부터 이끌어내는 결과는 서로 다르다. 일부는 이러한 세가지 호소가 여성을 성직에 서품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다른 일부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해석한다. 일부는 루터교회들과 완전한 상통관계(intercommunion)를 갖는데 아무런 신학적인 장애가 없다고 해석하며, 다른 일부는 그러한 결론을 따를 수 없다고 해석한다. 일부는 성공회 내에서 교리적인 급진주의자들에 대하여 관용적인 입장을 채택할 수 있다고 해석하며, 다른 일부는 이를 배신행위라고 해석한다. 이러한 자기모순적인 상황은 우리들에게 성공회신앙의 독특성이 구성요소들-성공회신앙에만 유일하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혼합의 성격(nature of mixture)에 있는 것이 아닌가를 질문하게 만든다.

    5. 성공회신앙의 핵심(essence)

    그렇다면 결국 성공회신앙은 하나의 기풍[정서 ethos], 하나의 접근방법, 하나의 마음가짐[삶의 태도]인가? 만약 우리가 지금까지 설명하였던 성공회적인 종합의 ‘정적인’ 이해(static view)가 비아 메디아-타협과 상호간의 양보에 기초하여 여러가지 요소들 사이의 균형을 찾으려는 행동-에 대한 시도를 대표하는 것이라면, 성공회적인 종합에 대한 보다 신비적인 이해(mystic view)는 성공회신앙을 서로 반대되는 것들을 화해시키고 갈등들을 초월하려는 시도로 이해된다. 만약에 첫번째 이해[정적인 이해]가 ‘균형, 자제, 온건, 절제(measure)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라면(P. E. More), 두번째 이해[신비적 이해]는 비젼, 열정 그리고 모험에 호소한다. 전자는 성향상 보수적이며, 후자는 진보적이다. 전자는 변호적이고, 후자는 창의적이다.
    마이클 램지가 쓴 것처럼, 성공회신앙은 하나의 체계나 신앙고백이 아니라, 하나의 방법론, 하나의 사용법 그리고 하나의 방향[경향]’이다. 복음, 공교회(Catholic Church) 그리고 건전한 학문에 호소한다 하더라도, 이것들은 말 그대로 서로 나란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반응하며 서로를 변형시켜 새로운 결합[배합]들을 발생시켜 창조적으로 혼합된다. 램지의 <The Gospel and the Catholic Church>는 이를 성취하기 위한 시도로 유명하다. 램지와 비들러(Vidler)는F. D. 모리스의 사상에서 이러한 접근방법을 발견하였다. 모리스는 서로 경쟁하는 체계들의 근거들 밑을 파헤쳐 그러한 체계들을 조직화시키면서도 왜곡시키는 살아있는 원리들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모리스의 경우, ‘신적인 질서’와의 만남으로 태어난 이러한 원리들은 궁극적으로 서로 양립될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따라서 비들러 역시 성공회신앙의 독특성은 신학적인 체계가 아니라 소명(vocation)이라고 주장한다.

    ‘성공회신학은 상반된 체계들의 화해를 추구하고 그것들을 독점적인 체계들로 인정하기를 거부하면서도, 각각의 체계가 주장하는 원리가 그리스도교 진리의 전체 궤도 내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며, 결국에는 그 궤도 내에 있을 때에만 보존된다는 점을 보여주려고 할 때에 성공회신앙의 독특성에 일치하며, 또는 [...] 상반된 것들과 긴장관계에 있으면서도 정말로 서로 보완적인 원리들이 될 때에야 성공회신앙의 독특성에 충실한다.’

    H. R. 맥아두(McAdoo)는 17세기 성공회신앙에 대한 중요한 연구서에서, 그러한 화해시키는 방법론을 찾았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성공회의 신학적인 방법론의 전반적인 특징’이라고 보았던 ‘살아있는 긴장의 양극성[대립] 또는 특질’에 관심을 집중함으로써, (Lux Mundi를 출판한 ‘Holy Party’와 함께) 17세기 신학자들(Caroline divines)을 성공회신학의 가장 진정한[확실한] 대표자들로 지지하였다. 그는 후커부터 시작된 이러한 접근방법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본질적으로 타협이나 지적인 방편[수단]이 아니라 하나의 사상적 특질이자, 일반적으로 서로 배타적으로 보이는 요소들이 사실은 상호 보완적으로 이해되는 접근법인 비아 메디아에 대한 인식이 표면밑에 존재하였다. 이것들은 타협이라는 줄다리기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들이 서로를 빛으로 밝혀주고 풍부하게 만드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에 살아있는 긴장속에서 보존되었다.’

    성서와 전통, 계시와 인간이성, ‘신경에 근거한 정통신앙과 비본질적 요소들에 대한 자유, 초기교회에 대한 호소와 새로운 지식의 환영, 그리스도교회의 역사적 연속성과 국가단위의 교회들(national churches)’-이 모든 것들은 하나로 결합되어 성공회신학의 독특한 정신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해석은 17세기에 발생하였던 잉글랜드교회의 내부적인 투쟁과 신학적 논박들을 다소 이상화시키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은 맥아두의 이론이 주는 매력을 약화시키지 못한다.

    이와 비슷한 내용이 1930년 람베스회의에서 주장되었다. 이 회의의 한 위원회는 교리들을 구체화시키지 않고 ‘잉글랜드교회[영국성공회]가 [...] 항상 대표하였던 이상들(전형, ideals)’을 설명하였다. 이러한 이상들은 독특한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그리스도교회의 이상들이다. 이들중 가장 중요한 것들은 개방된 성서[성서의 개방], 목회적 사제직(pastoral priesthood), 공동체적인 예배(common worship), 이러한 예배와 일치하는 행동강령(standard of conduct) 그리고 진리에 대한 두려움없는 사랑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것들에 대한 수식어들이다.

    성서는 개방되어 있다. 즉, 누구나 접근할 수 있고 제한받지 않으며, 교회당국에 의해서 성서의 해석을 통제, 감시와 제한을 받지 않는다. 성공회의 공식문서들에서 성서에 부여한 최고의 지위는 단순히 겉치레[입에 발린 말]가 아니라, 종교개혁 이후로 성공회의 평신도들이 성서를 지역어로 읽고 연구하여 그들 나름의 확신에 도달하여 이를 표현하는데(16과 17세의 정치적인 한계 내에서) 누렸던 자유와 일치한다.

    성공회의 사제직은 목회적인(pastoral) 사제직이다. 즉, 하느님의 백성들인 평신도들의 영성적 특권들을 제한하는데 기여하는 성권계급(사제계급, sacerdotal caste)이 아니며, 또한 믿음과 실제(신앙생활practice)에 관하여 법을 제정하고 이의 실천을 감시하는 책무를 맡은 지시적이고, 서기와 율법교사와 재판관같은 성직이 아니다. 이는 하나의 사제직-즉, 권위적, 성서적, 심지어 중재자적인 기능들을 갖고 있다(이러한 기능들은 그리스도의 사제직으로 세례를 받은 하느님의 백성들이 갖는 사제적 성격을 구체화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이지만, 진정한 목회자(true pastor)로서 우리의 인간적 조건들에서 관대함과 인간적 필요들에 대한 관심, 경청하는 자세, 공동의식를 포함하는 사제직이다.

    예배는 공동체적이다(common). 말하자면, 예배는 전례적으로 자격이 없는 평신도들을 위하여 대리자적인(vicarious) 사제직에 의해서 수행되는 것이 아니라, (스티븐 사익스의 표현을 사용하면) 포괄적인 참여가 생명인 그리스도교회의 전체 사제적인 몸[모든 신자들]이 공유하는 것이다. 더구나 전도구교회라는 제도 아래서 예배는 자기선택적인(self-selecting) 엘리트들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이미 세속적인 목적을 위하여 존재하는 한 지역공동체의 공동체적인 기도이다. 성공회의 공동예배의 성격은 항상 모든 종파적인(sectarian) 경향들을 거부한다.

    마지막으로, 진리에 대한 성공회신앙의 사랑은 두려움을 모른다. 진리와 양심적인 증언에 대한 학문적인 탐구는 성공회신앙에서 보호를 받는다. 필자는 성공회의 포용성에 대한 스티븐 사익스의 비판적 관점에서 성공회신앙의 핵심에 대하여 이러한 특정한 태도(어조, note)를 인용하고 있는 아이러니를 잘 알고있다. 사익스에 의하면, 성공회의 포용성은 진리에 대한 두려움없는 사랑이 아니라, 쇠퇴하는 교회를 보존하려고 시도하는 나태한 정신들을 위한 탈출구로 무제한적인 포용성에 호소함으로써 신학적인 쟁점들을 고의적으로 위장하려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필자는 성공회신앙이 학문적인 진실성(integrity)을 높이 평가하며, 성공회신앙의 경계 내에서 폭넓은 신학적 입장들의 활성화를 허용하였다는 주장하는 것은 변명이라고 생각한다.

    성공회의 이상은 확실히 고귀한 것이지만, 앞으로 완전하게 성취되어야 한다. 이것은 신앙의 영역에서 권위의 역할에 대한 특별한 입장에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성서, 전통 그리고 이성에 호소하지만, 우리가 살고있는 현대의 다원적인 상황이라는 알려진 맥락(context)에서 그렇다. 결과적으로 이 세가지 원천들 또는 범주들은 서로에 대하여 제한하는 견제와 균형으로서 봉사하기 위하여, 서로를 제한하고 상대화시키기 위하여, 그리고 교회의 문화적 이념적인 상황과 대화하면서 창조적인 사고를 생산하기 위하여, 역동적인 방식으로 결합된다. 그 결과는 권위에 대한 약화된[부드러운] 인식-일부는 무력화되었고 말할 것이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조건에 매우 적합한 권위이다.

    성공회신앙의 독특성에 대한 질문은 정당하고 필수적인 질문이지만, 우리가 갖는 최고의 관심사가 될 수는 없다. 정체성의 문제는 교회를 포함해서 개인들과 기관들 모두를 괴롭히는 질문이지만, 이에 집착하는 것은 신경증일 것이다. 정체성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완전성(integrity)의 자연스런 결과물이다. 스티븐 사익스는 정체성 없이는 완전성이 없다고 주장하였지만, 필자는 그 반대방향을 선호한다. 즉, 독특한 정체성은 반드시 완전성을 보증하지 않는다. 정체성은 모든 모호한 수단들-홍보활동 기업들에 의해서 인간의 의식을 조작하는 것을 포함하여-에 의해서 조작될 수 있지만, 완전성에 도달하는데는 지름길이 없다. 완전성과 정체성을 추구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성공회신앙은 존재한다. 그것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변수들은 그것들 사이의 타협들과 함께 이미 정해져 있다. 우리는 이것들에 대하여 걱정하지 말아야 한다. 성공회신앙의 소명(vocation)은 관례대로 이러한 변수들 안에서 정보와 통찰의 모든 정당한 원천들에 호소하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며, 또한 인간의 구원(redemption)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다. 50여년전에 마이클 램지는 이렇게 말하였다.

    ‘성공회 교회는 복음과 교회와 건건한 학문에 대한 매우 균형잡힌 증언으로 역사에서 한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정당화되지만, 그것의 보다 커다란 정당화는 그 자신의 역사를 통해서 한 부분이었다는 점을 지적하는데 있다. 성공회의 자격들은 그 중심[soul]에 긴장과 노고[진통]을 겪고 있는 그 불완전성이다. 그것은 서투르고, 난잡하며, 그것은 단정함과 논리적임을 거부한다. 왜냐하면 이 교회는 ‘그리스도교회의 최고 형태’라고 자랑하도록 보내진 것이 아니라, 교회의 부서진 모습(brokenness) 그 자체를 통해서 모든 사람들이 죽음을 바쳤던 보편적인 그리스도교회를 가리키도록 보내졌다.’

    6. 성공회신앙의 소명

    성공회신앙은 초기 그리스도교회에 근거하며, 또한 사도들로부터 내려오는 신앙과 직제(order), 예배와 증언과의 연속성을 갖는 공교회적인 신앙(catholic faith)을 열망[지향]한다. 개혁가들은 고대시대[초기]의 브리튼교회(British Church), 즉 597년 켄터베리의 성 어거스틴의 선교보다 훨씬 이전에 존재하였던 자치적인 교회에 호소하였다. 예를들면, 엘리자베스 치하의 파커 대주교는 잉글랜드의 주교직이 아리마테아[아리마대]의 요셉(Joseph of Arimathea)의 방문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주얼은 잉글랜드교회가 가톨릭 교회(Catholic Church)로부터 이탈한 것이 아니라, 로마의 오류들로부터 이탈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휘트기프트는 ‘우리는 우리가 유익하다고 발견한 것들을 보존하고, 사악하다고 발견한 것들을 거부하거나 개혁하였기’ 때문에, 잉글랜드교회는 ‘변형된 것’이 아니라 ‘개혁된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이후의 세대에서 찰스 고어는 성공회신앙이 ‘로마없는[로마에 복종하지 않는] 가톨릭신앙’(Catholicism without Rome)을 제공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가베트(Garbett)는 ‘당연히 잉글랜드교회는 로마교회에의 복종으로부터 해방된, 이 나라[잉글랜드]에 있는 가톨릭교회(catholic Church)다’고 확언하였다.

    성공회신앙의 공교회성(catholicity)은 중세시대의 추가물들을 제거한 초기교회의 형태들을 사용하는 예배와의 연속성, 그리고 브리튼(Britain)에서 먼 옛날에 시작된 전도구들과 전도구교회들에서 실천되었던 사목적 돌봄(pastoral care)과의 연속성에 근거한다. 성공회의 공교회성(Catholicity)은 또한 역사적으로 계승된 세가지 성직인 주교, 사제, 그리고 부제의 보존에 근거한다. 무엇보다도 성공회신앙의 공교회적 특성(catholic character)은 성서와, 그리스도론과 삼위일체론의 교의들을 결정하였던 분열되기 이전의 그리스도교회의 신경들과 공의회들(교회법적으로 첫 4개의 공의회들)을 충실히 따른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더 나아가 성공회신앙의 공교회성은 성공회가 신앙의 논쟁적인 문제들에 대한 [전체] 그리스도교회(그리고 특정지방의 교회)의 판결권한을 인정하였다는 사실에 의해서 증명된다. 성공회신앙은 공의회에 소집된 [전체] 그리스도교회의 권위에 호소함으로써 스스로 가톨릭신앙의 제왕적인(군주제적인monarchical) 전통[교황중심의 전통]에 반대되는 공의회전통(conciliar tradition)에 속해 있음을 입증한다.

    성공회신앙은 개혁된 신앙을 열망한다. 성공회신앙의 근본적인 개혁적 성격은 무엇보다도 성서에 부여하는 지위에서 입증된다. 즉, 성서는 그리스도교회의 진리에 관한 모든 다른 원천들[자료들]을 평가하는 기준이다. 개혁가들은 바로 이 성서의 기준에 따라 중세 가톨릭신앙의 여러 측면들-즉, 교황의 전세계적인 관할권, 사제직의 성권적 직위(sacerdotal office), 미사의 속죄적 희생제의(propitiatory sacrifice), 평신도에 대한 포도주 배찬의 금지, 성서의 본질을 파괴시키는 화체론, 외래어로된 전례서, 강제적인 성직자 독신제도, 의무적인 고백성사, 연옥론과 공덕[공로]의 보고(treasure of merits), 성인들에 대한 제의[숭배]와 그들의 중재자적인 역할, 수도생활과 비교하여 평신도 소명의 격하-을 거부하였다. 이와 비슷하게 개혁가들은 세속통치자(magistrate)-즉 구약성서의 신실한 국왕(godly prince)-가 세속적 통치 뿐만 아니라 신앙적 통치에서도 최고통치자(supreme governor)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주장하였던 것도 (그들의 성서이해에 따라) 바로 이 성서의 권위에 따른 것이었다. 그들은 법적 의인론[칭의론]의 교리에 대한 근거로 (명백하게) 성서에 호소하였으며, 더구나 이 교리를 (루터의 표현대로) 교회를 세우거나 멸망시키는 표준으로 주장하였다.

    성공회신앙은 이성적 신앙을 열망한다. 학자들의 탐구를 환영하는 성공회의 전통은 종교개혁 이전부터 존재하였다. 엄격한 통치조직으로부터 핍박받은 많은 학자들이 잉글랜드교회로 피신하였다. 성공회신앙은 다른 교회들과는 달리 교회의 믿음들과 주장들에 대한 비판을 허용하였다. 더구나 교회의 구성원들 사이의 의견충돌에 놀랄정도로 관용적이었다. 만약 외적인 형태들이 존중된다면(그리고 이것들이 단순한 속임수로 멸시되지 않는다면, 왜냐하면 이것들은 성공회의 가장 근본적인 확신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만족하였다. 영성적 자유에 대한 원칙은 성공회의 역사에서 권력투쟁들을 통해서 점차적으로 형성되었다. 성공회신앙은 분명하게 성서연구(prophesying 성서에 대한 토론)의 자유에 헌신한다. 칼 포퍼의 주장처럼, 만약 합리성이 이성적 비판에 대한 개방에 있다면, 성공회신앙은 정정당당하게 이성적 신앙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완드(Wand) 주교는 ‘지지자이자 비판자의 입장에서 성공회신앙의 세가지 가장 분명한 특징들은 관용(tolerance), 절제(constraint) 그리고 학문이다’고 주장하였다. 필자는 그가 신앙, 희망 그리고 자선이라고 말하였다면 더더욱 기뻐하였겠지만, 완드의 세가지는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가베트는 잉글랜드교회를 ‘세계에서 가장 관대한(liberal-minded) 교회’라고 부르며, ‘아마도 우리는 이 교회를 모든 교회들 중에서 가장 자비로운(관대한charitable) 교회라고 말할 수 있다’고 추가하였다. 그리스도교의 미덕들중 가장 훌륭한 것이 자비이기 때문에, 이러한 표현이 훨씬 좋게 들린다.

    건전한 학문에 제공하였던 폭넓은 관용과 규제완화는 개인적인 자유라는 계몽주의적 이상 그리고 양심의 최고성에 따른 결과물이 아니었다. 관용과 규제완화를 16세기에서 찾는다면 시대착오적일 것이다. 이것들은 튜더왕조의 통치술에 따른 냉정한 타협물들의 한 표현이다(헨슬리 헨슨의 유명한 표현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온건정책처럼 보였다. 이 정책은 교회당국[교권]의 월권행위를 약화시키는 모습으로 보였기 때문에, 영성적 자유의 원리로 재해석될 수 있었을 것이다. 엘리자베스가 신하들의 마음과 정신을 들여다보는 것을 거부하였던 것은 바로 정치적인 편의추구라는 이유들 때문이었지만, 이러한 정책은 결과적으로 신앙적 묵인이라는 원리를 표현한 것으로 신학적인 정당성을 획득하게 되었다. 따라서 정치적 조작이라는 현실(reality)이 영성적 자유라는 수사적 표현으로 전환될 수 있었다. 왜 안되는가[그래도 괜찮지 않은가]? 비코(Vico)와 프로이드가 우리들에게 가르쳐준대로, 우리의 최고의 열망들중 일부는 다소 교훈적이지 않은 세속적, 육체적 욕구들에서 역사적으로 또는 진화론적으로 기원[유래]하였다.

    잉글랜드 종교개혁에서 건전한 학문의 역할에 대하여 다소 장비빛같은 크레이톤의 평가에 반대하며 헨슨이 지적한 것처럼, 17세기말까지 이러한 과정으로부터 나타난 것은 전반적으로 건전한 학문에 대한 호소뿐 아니라, 특정한 경우 비판의 기능에 대한 수용이었다-즉, ‘거룩한 문서들을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그리고 독립적인 연구를 통해서 초기 그리스도교시대의 진정한 판단을 입증함으로써, 건전한 학문을 현재의 전통을 개정하는데 적합한 것으로 솔직하게 수용하는 것이다.’ 학문에 대한 주장들은 비판의 권리를 의미하며, 이는 영성적 자유의 원리에 의존하였다.

    정의상의 결함, 실용주의, 혼동과 불일치, 실패한 운동과 재구성되지 않은 편견에 대한 호의, 무관심과 무능력에도 불구하고, 성공회신앙은 ‘예수 안에 있는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영혼에 대한 개인적인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구조들을 옹호하는 목적을 가진 편향적인 교회당국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진리에 대한 두려움없는 추구에 적합한 장소와 환경을 제공한다. 헨슨의 표현처럼,

    ‘잉글랜드교회의 교리적 불일치는 의심의 여지없이 혼란스럽고, 실제로 당황스러우며 그리고 종종 수치스럽다 하더라도, 무원칙에 대한 안이한 묵종이나 진리에 대한 부끄러운 무관심 보다는 훨씬 존경스러운 것들에 근거한다. 이것은 사려깊고 책임적인 잉글랜드 성직자들이 [세속]당국의 난폭한 권한이 신앙적 의견의 영역으로 끼어드는 것을 싫어하였다는 점을 나타낸다. 진리에 대한 무관심이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고 옹호하는 조건들에 대한 보다 정당한 인식 때문에, 그들은 지금 그리스도교회의 모든 분야에서 긴급히게 부딪치고 있는 문제-즉, 신경들에서 표현되었고 이론적으로 변경할 수 없으며 시간적으로는 신성불가침하였던 신학적 전통들과 크게 증가된 인간 지식 사이를 조화시키는 방법-의 해결책을 발견하려는 개인적인 노력들을 회피하지 않았다.’

    성공회신앙은 역사적으로 권위의 문제에 대하여 독특한 접근방법을 고집하였다. 권위에 대한 성공회신앙의 원자료들은, 다방면으로 분산되어 있다 하더라도, 서로를 제한시키면서도 서로를 밝혀준다. 현대의 지성적 상황에서 이것은 교의의 성급한 공표, 절대자에 대한 독단적인 해설, 그리고 교권의 고압적인 행사를 금지시키기 때문에 유익한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이 현대 그리스도교의 딜레마들에 좌절당한 우리들 모두에게 일시적인 만족감을 줄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들은 우리의 자매교회들에서처럼 우리의 무거운 짐으로 입증될 것이다. 따라서 성공회신앙의 소명은, 교회당국의 검열권에 대한 두려움없이 스스로 동료들의 비판을 받음으로써, 개개인들이 자신들의 이해에 따라서 진리를 증언할 수 있는 영성적 자유의 환경을 창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의 절대필요한 조건은 교회의 예배생활과 기본적인 세례신앙의 고백 (그리고 성직자의 경우 주교에 대한 교회법적인 복종)에 대한 지속적인 참여이다. 이러한 규율(규칙discipline)은 난폭한 개인주의를 약화시키는데 도움을 주며, 개별 사상가들이 그들을 양육시켰던 전통에 남아있음을 확신시킨다. 여기서 필자는 확실히 한가지를 더 추가하고 싶다. 즉, 성공회의 영성적 자유에 대한 찬양은 반드시 성공회의 신학적인 유산에 대한 보다 강력하고 존중하는 태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야 하며, 그럼으로써 우리는 오늘의 우리를 만든 원천들과 보다 확실하게 협력하는 것을 배우게 되며, 또한 우리가 이것들을 가볍게 여기거나 멸시할 수 있는 환상에 빠지지 않게 한다.

    이러한 해석에 따르면, 성공회신앙의 독특한 정체성은 전례나 영성 또는 치리제도(polity)의 측면보다는 신학적 방법론의 영역에서, 그리고 이를 알려주는 권위에 대한 이해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성공회신앙의 이러한 신학적인 정체성이 마치 ‘전문적인’ 신학자들만이 성공회신자로서 완전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엘리트주의적으로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말자. 분별있는 그리스도인들 모두-성직자든 평신도든-는 신학활동(doing theology)에, 즉 하느님에 관한 것들에 대한 숙고-전례와 사적인 기도, 성서의 독서와 연구에서-에, 또는 전도구교회나 교구의회의 차원에서 교회의 치리에 참여하는 일에, 또는 생활의 세속적인 문제들을 다루거나 이것들의 보다 창조적인 기쁨을 누리는 일에, 지속적으로 참여한다. 우리가 내리는 모든 결정들 그리고 우리가 만드는 모든 우선순위는 좋든 나쁘든 성공회의 신학적인 방법론을 예증한다. 성공회신앙에서 우리들은 반드시 이것들이 우리들을 강요하도록 만들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우리가 이것들의 형성과정에 개입한다. 우리는 성공회신자로서 지적으로 특권을 부여받았다. 우리의 신학적인 전통은 고귀한 전통이다. 우리의 신학적인 원천들은 방대하지는 않다 하더라도, 적어도 충분하다. 만약 우리가 현재에 그리스도교 진리를 엄격하고 체계적으로 파악하는데 실패하였다고 질책받는 것이 당연하다면, 그것은 우리의 전통으로부터의 이탈을, 쇠퇴를, 그리고 우리가 반드시 치유하여야 하는 과제임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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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1월 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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