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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성찬례의 공동 집전에 대한 질문 « 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 전례 Q & A

감사 성찬례의 공동 집전에 대한 질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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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ras
    회원

    안녕하세요?

    로마 가톨릭 교회는 두명 이상의 사제가 함께 감사 성찬례를 할때에는 함께 기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공회에서는 여러명의 사제가 함께 감사 성찬례를 할때 한 신부님만이 하시고 다른 신부님들은 가만히 계시는 것 같습니다. 제 짧은 소견으로는 동일한 감사 성찬례에 함께 자리한 사제들 모두 감사 성찬례를 봉헌하는 것이 신앙에 더 유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신부님의 고견을 기다립니다.

    2008년 6월 16일 #
  2. Cranmerian
    회원

    선생님은 지금 서울로 출장을 가셔서 바로 대답을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도 최근에 읽은 책(선생님의 권유로)에서 이 문제를 재미있게 읽어서 질문의 대답보다는 보다 자세한 이해를 위하여, 보다 다양하고 실질적인 공동집전 방식을 찾아보기 위하여 두 권의 책에서 소개된 내용을 전해드립니다. 서투른 전례용어에 대하여 양해를 구합니다.

    공동집전(concelebration)에 관하여 미국성공회의 기도서(1979년)는 감사성찬례의 양식에 앞서 <집전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지시문(rubric)에서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제들은 제대에 집전자와 함께 서서, 선물(성찬, gifts)의 축성, 빵의 뗌, 그리고 성찬의 배찬에 참여하는 것이 적절하다.’(미국성공회 기도서 P.322와 P.354)

    Marion J. Hatchett의 <Commentary on the American Prayer Book>(1995, 1980년에 처음 출판되었음) 중에서 공동집전에 대한 해설(pp. 313-4)을 번역하면,

    세번째 문단[공동집전의 규정]은 공동집전이라는 사례(practice)를 복원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초기 그리스도교회의 전례문서들은 이러한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즉 보좌사제들은 주 집전자의 손을 잡고 성탄식탁(부제가 준비)으로 올라와, 선물(gifts, 재물, 성찬)에 함께 손을 얹고, 빵을 함께 떼며, 배찬에 참여한다. 지역의 주교나 사제들은 방문하는 주교나 사제에게 교회의 일치(unity)의 상징으로 공동집전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주 집전자와 함께 성찬기도문을 제창하는[함께 낭독하는] 사례는 7세기에서야 기록으로 나타난다.

    공동집전의 사례는 동방교회에서는 지속되었지만, 서방교회에서는 일부 흔적만 남고 사라졌다. 이는 미사의 반복[사적인 미사]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성찬에 대한 신심(Eucharistic Piety)의 유행 때문이었다. 이로써 이제는 더이상 감사성찬례를 일치의 상징이자 교회와 사목직의 상징(icon)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성공회의 교회들에서는 최근 몇 십년 전에야 이러한 사례를 복원하였다. 방문성직자는 주 집전자와 같은 전례복을 입고, 제대에 서서, 예식문의 일부를 교대로 낭독하며, 아마도 빵의 뗌을 조력하고, 배찬에 참여함으로써 의식적으로 공동집전을 표현하였다. 때로는 성찬기도를 공유하기도 하였다. 즉 한 성직자는 제대의 다른 편에서 수르숨 꼬르다부터 삼성경까지 낭독하고, 또다른 성직자는 제대의 반대편에서 “축성기도문”을 낭독하였다. 그러나 최근의 성공회는 공동집전의 원리를 약화시키고 있다. 감사성찬례에 두, 세명의 성직자들이 참여할 때, 한 성직자가 모든 본문들을 낭독하며 사제에게 맡겨진 모든 역할들을 수행하고, 다른 성직자들은 역사적으로 사제의 역할이 아닌 역할-부제의 역할인 복음서낭독과 성찬식탁의 준비-을 수행한다. 1979년 기도서[미국]의 이 문단은 공동집전을 의식적으로(ceremonially) 수행하는 전통적인 방식들을 나열하고 있다. 공동집전 사제들은 주 집전자와 같은 전례복을 입고(?), 제대에서는 주 집전자 옆에 서서 주 집전자와 똑같은 행동(gesture)으로 함께 빵과 포도주에 손을 얹어 성찬의 축성에 참여한다. 지시문은 구체적으로 공동 집전자들이 함께 큰소리로 낭독하는 것을 지시하거나 제시하지 않지만, 이들은 성찬기도의 일부-삼성경이후나 청원문등-를 낭독할 수 있으며, 또는 모든 예식문을 또는 제정사부터 성령청원까지의 본문을 주 집전자와 함께 낭독할 수도 있다. 빵의 뗌에서는 먼저 주 집전자가 하나의 빵을 공동집전자의 수로 나눈 후에 공동집전자들과 함께 빵을 떼며, 성찬의 배찬에 공동으로 참여한다.

    한국의 기도서는 어떤 규정을 지시하는지요. 구체적인 지시가 없다면 관례를 따르나요?
    오늘날 감사성찬례는 특정인이 주도하고 나머지는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한 모든 신자들이 함께 집례한다고 전례학자들은 설명합니다. 이런 점을 반영한다면 ‘집전’ 또는 ‘집전자’라는 용어도 다시한번 고려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요? 물론 용어보다는 의미가 더 중요하지만.

    전례사전(The New Westminster Dictionary of Liturgy and Worship)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초기교회에서는 이러한 사례(관례, 실례)들이 있었다고 보고하지만, 사적인 미사의 확대로 사라졌다.

    20세기의 전례운동은 이의 회복을 추진하여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1965년 이후로 이에 대한 양식을 제작하였다. 이들은 교회의 유기적인 계서적 조직, 성찬례의 통일성(unity, 단일성), 사목직의 집합적 성격을 강조하였다.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는 대성당 전례와 교구행사의 전례때에 이를 일반적으로 거행하고 있다. 방식은 말과 몸짓으로 표현된다. 즉 중요한 예식문을 공동으로 낭독하고, 그 외에는 서로 나누어 낭독한다. 성공회의 경우 미국성공회는 기도서(1979년)의 지시문에서 공동집전에 대하여 분명하게 밝히고 있지만, 영국성공회의 Common Worship에서는 ‘ceremonial’(의식상의, 형식적인)수준의 공동집전을 예시한다.

    또한 공동집전의 방식을 의식상의 방식과 성사적인(sacramental) 방식으로 나누기도 한다. 성사적인 방식의 경우는 성공회의 성직서품에서 후보자를 안수할 때 주 집전자 뿐만아니라 참여한 성직자들도 후보자의 머리에 함께 손을 얹어 안수에 참여하는 방식이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The Westminster Dictionary of Liturgy and Worship, pp. 124-26.

    2008년 6월 19일 #
  3. cras
    회원

    설명해주신 Crenmerian 님 감사드립니다.

    한가지 더 여쭙겠습니다.

    주님께 감사 성찬례를 봉헌한다는 것은 성찬례에 참여한 모든 신자들이 함께 드리는 것이란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 합니다. 하지만 신부님이 부재시, 감사 성찬례를 하지 않고 말씀의 전례와 같은 예식을 대체하는 것을 볼 때, 신부님의 역할이 성찬례를 봉헌하는 데 있어서 필수 요소라는 인상을 줍니다. 이와같이 신부님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면 성찬례를 봉헌하는 신부님에 대해서 직무적 집전자라 칭할 수 있고 이와 더불어 함께 성찬례를 드리는 신자들은 보편적 집전자라 칭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구분이라 생각됩니다.

    이야기가 좀 옆으로 비껴나간 듯 합니다.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공동 집전에 대한 부분은 관습과 신앙의 유익을 기준으로 선택할 수 있다고 이해한다면 될 것 같은데 혹시 부족하다면 보충 부탁드립니다.

    주님 안에서 로렌스

    2008년 6월 23일 #
  4. Cranmerian
    회원

    저는 평신도라 집전에 대해서는 사목중인 신부님들의 설명을 듣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공동집전은 한 전도구내에 여러 사목자들이 있는 경우와 특별히 방문하는 또는 초청받은 사제의 경우가
    다르리라 생각합니다. 전도구교회의 경우 관할사제에 따라서 서로 역할을 고정해서 집전하거나, 돌아가면서 다른 역할을 맡는 경우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위의 번역은 두번째 경우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cras님의 질문은 두 경우 모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두 경우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은 없는 알고 있기 때문에, 신부님들의 사례나 제안을 듣고 싶습니다.

    2008년 6월 2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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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amedia

    회원

    늦은 감이 있지만, 한번 끼어들까 합니다. 올라오는 이야기들이 늘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다른 분들이 감히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자기 고민은 너무 시시한게 하는 생각을 하는 모양입니다. ;-) 그런데 시시한 고민이 어디 있겠습니까.

    공동집전에 관한 질문에 대해서 이미 Cranmerian 님이 상세히, 특히 (미국) 성공회의 태도를 잘 설명해 주셨습니다. 특별히 Hatchett 의 설명을 옮겨 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간단한 설명과 개인적인 다음 순서에 따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1. 공동집전 - 서방 교회와 동방 교회의 경우

    위에 Hatchett 의 설명처럼, 동방 교회와는 달리 서방 교회에서는 이른바 공동 집전이 일찍부터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분명히 그럴 만한 여러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이유 (어떤 점에서 그 결과) 가운데 하나는 전례(특히 성찬례) 자체의 어떤 공동체성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성찬례 집전이 사제의 중요한 직무 가운데 하나인 것과 연결되어 있고, 또 전례에 대한 서방 교회의 성찬례 신학이 희생과 축성된 재료들에게 집중된 탓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신학은 사제의 영성을 이러한 희생제의적인 성찬례 이해에 귀속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 실행 방식은 사제가 신자들 없이도 개인 미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최소한 공동체적이어야 할 미사가 사제 개인의 미사로 전락하게 된 것입니다.

    2. 천주교에서 공동 집전이 다시 고개를 든 이유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검토한 계기는 역시,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입니다. 여기서 성찬례가 하느님의 백성들이 함께 드리는 전례적 행동인 것을 회복하려 합니다. 그런 점에서 사제의 사적인 미사가 그 주된 개혁 대상이었습니다.

    사적인 미사를 넘어서기 위해 두 가지 일이 연관되어 진행되었습니다.

    하나는 공동집전이 분열되기 이전의 고대 교회의 관습이었음을 부각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교회의 전례는 동방 교회들이 많이 가지고 있으니, 그것을 모델로 삼아 다시 회복시키자는 생각이었습니다.

    또다른 하나는 사적인 미사가 아닌 공동집전을 통해서, 미사가 원래 공동체적인 것이라는 것을 했다는 것입니다. 미사의 본연은 사제 개인이 드리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인 행사인 것을, 성찬례 집전의 핵심인 사제들이 공동집전 하는 것을 통해서 분명히 보여주자는 것이었습니다.

    3. 공동집전의 원래 의미는 무엇일까?

    이 밖에도 다른 의견과 의미들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교회의 일치를 드러내는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런 예들은 동방 교회들 여러 곳에서 확인됩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공동집전의 방식에도 여러가지가 있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즉 공동집전을 하되, 공동축성은 하지 않는다든지, 아니면 그것도 같이 한다든지, 또 성찬기도를 나눠서 한다거나, 아니면 제대에만 함께 모이거나, 동작만을 같이 한다는지, 또 참석한 성직자(주교 혹은 지역 고위 성직자)에 따라서 공동집전의 형태도 다양하게 변화되었습니다. 현재 천주교처럼 명백한 지침을 주어서 특정한 형태를 요구하는 것과는 달랐다는 말입니다.

    여러 연구들의 생각을 종합해 보면, 공동집전의 본래 뜻도 여러가지이겠으나, 무엇보다도 공동체 행사인 전례를 통해서, 그 전례 행사가 일어나는 곳에 방문한 사람들에게 보이는 환대의 표시였던게 더 중요했다고도 합니다. 물론 주교 방문시는 교회의 일치와 연대감을 드러내는 뜻도 있었던 것이죠.

    4. 성공회의 경우는?

    서방 교회의 전통 가운데 있는 성공회도 천주교의 생각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아예 성공회에는 사적 미사가 일반적이지 않았으니, 공동집전 자체를 강력하게 회복시키려는 노력도 그리 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다만 교회의 사목적인 필요나 경우에 따라서 (주교의 방문이랄지, 다른 지역 사제의 방문, 혹은 다른 교회에 함께 드리는 예배나, 특별한 형태의 연합 행사) 등에서 공동 집전을 도입하기도 하고, 그러지 않기도 했습니다. 동방 교회들이 가졌던 다양성이 성공회 안에도 있는 것이지요.

    위에 예시한대로, 미국 성공회에서는 공동집전의 의미와 행동에 대해서 잘 설명하고 있고, 필요한 경우 권장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천주교와 같은 형태는 아닌 것 같다는 것이 제 견해이고 제 경험이기도 합니다.

    한국 성공회의 경우는 주교 방문, 혹은 연합 미사 등과 같은 일이 아니면 공동집전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있다해도 성직자의 개인적인 견해에 따라서 그 적용 방식이 천차만별입니다. 영국쪽 성공회-가톨릭 계열 선교사들 영향 탓일까요?

    그렇다고 꼭 나무랄 일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5. 우리 사목 현실에서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럼 공동집전은 늘 바람직한가?

    꼭 그렇지 않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공동집전의 회복이 기본적으로 사제들의 영성 문제와도 관련되어 있고, 이것을 다시 전례 행사의 공동체적인 의미를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연결시키는 점에서 여전히 문제가 있다는 평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찬례 자체가 이를 집전하는 사제들에게만 집중되어서, 공동집전을 한다하더라도 사제 중심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천주교에서 편만한 공동집전은 오용되어서, 사제들끼리만 미사를 드리고, 신자들은 자리에서 구경하는 꼴이 되어, 또다시 사제와 신자들의 구분을 낳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비판입니다. 저 역시 이 문제를 오랫동안 고민했고, 이런 점에서 매우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성직 서품식과 같은 특별한 경우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6. 다시 의미로... 전례는 공동체의 행사

    cras 님의 두번째 글은 여러 의미를 담고 있다고 봅니다. 이른바 제도적 성직과 직무 수행으로서, 즉 공동체를 대표하고, 이를 비추는 사람으로서 집전자인 사제의 전례 거행이 있다면, 역시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든 백성에게 주신 사제직을 수행하는 모든 신자들의 전례 거행이 있기때문입니다. 말씀하신 '현실적 구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모든 전례의 주체는 하느님이시고, 그 전례에 참여하는 사람은 그 공동체의 모든 신자들입니다. 이 점에서, 위에서 지적한 대로, 공동집전이 자칫 사제들만의 잔치로 느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제 선생님 가운데 한분은 현행 미국 기도서의 '집전자'에 대한 표기인 celebrant 가 적절하지 않다고 합니다. 모두가 celebrant (전례 거행자, 축하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집전자는 그 전례를 이끄는 Presider 인 것이 바른 표현이겠다는 것입니다.

    7. 꼬리를 무는 문제 - 전례의 독점

    우리에게는 변화시켜야 할 것이 공동집전의 문제보다는,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의 유기적인 결합이라고 봅니다. 이미 이에 관해서는 제가 쓴 글([말씀과 성사])이 있으니 참조하실 수 있으라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 전례의 현실 속에서 한가지 변화를 주었으면 하는 것은, 설교자와 집전자의 관계입니다. 대부분의 교회는 한 예배에서 설교자와 집전자가 같은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사제가 있더라도 그는 그냥 성찬의 전례시에만 공동집전자로 참여하거나, 대체로는 영성체를 도와주는 일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지 말고, 사제가 둘이 있어서, 한 전례를 같이 거행하게 된다면, 한 분은 설교자로, 다른 한 분은 집전자로 일을 나누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그것은 전례가 여러 사람에 의해서 함께 만들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도 될 것입니다(당연히 독서자나, 기도를 이끄는 사람들고 교인 전체를 대표하는 전례 봉사자들입니다.) 허락이 된다면 이를 잘 이용해서, 설교와 집전을 독점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좀더 많은 이야기를 들으려고, 얼기설기 적었습니다. 의견을 더 교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Tradition is living faith of the dead, Traditionalism is dead faith of the living."
    2008년 10월 24일 #
  6. cras
    회원

    주신부님의 보충 설명에 감사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후로 수많은 시간이 지났고 이를 통해 각기 다양한 시대와 문화 속에서 지역 교회의 전통이 형성되어 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 시킬 수 있었습니다. 서방 교회 그것도 한 지역교회의 구성원으로 보고 배운 저의 지식이 너무도 단편적이고 편협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주어진 환경의 한계이라는 핑계로 스스로 우물 안 개구리임을 바라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궁금한 부분에 대한 깨우침의 기쁨 보다 제 자신의 모습을 성찰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신부님과 cranmerian님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모른다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앞에 솔직할 때 그 무지는 빛으로 채워질 것이다"
    스스로 이렇게 되뇌어 봅니다.

    제가 처음에 제기한 공동집전에 대한 부분은 신부님께서 말씀해 주신 감사 성찬례 전체에 대한 부분이라기 보다 성찬식에 해당하는 부분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부정확한 질문으로 인해 답변에 어려움이 있으셨을 것 같이 죄송한 마음 전합니다.

    신부님의 답글을 읽으며 제 생각을 다시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전례의 독점과 직무적 사제직

    전례의 독점에 대한 문제는 사실상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상 전례의 독점을 피하기 위해서는 성직제도 곧 주교, 사제, 부제의 성직자들이 존재해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제가 없는 감사 성찬례의 집전이 불가능한 것이 바로 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전례 독점의 문제는 주교제 교회들이 보다 깊은 신학적 성찰이 필요한 부분이라 여겨집니다. 다시말해 전례의 의미인 공동체의 공식적인 예배행위라는 부분에 촛점을 맞추어서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주 신부님께서 전례의 독점을 피하기 위한 노력으로 공동집전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다시말해 감사 성찬례가 사제들만의 잔치가 되지 않도록 해야한다고 하셨습니다. 제 짧은 제 소견으로도 이는 전적으로 전례정신에 부합하는 말씀이라 여겨집니다.

    그러나 사제들 역시 교회의 구성원(하느님의 백성)이며 엄밀히 말하면 사제 이전에 신자라고 생각합니다. 은총의 모든 원천은 성사를 집행하는 성직자가 아니라 하느님이신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고 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감사 성찬례에 참례하는 믿는 신자들에 대한 정의는 참여의 방식(성직자로서 혹은 평신도로서, 또는 성사 집전자로서 혹은 성사 수여자로서-적절한 표현은 아니라 생각하지만 의미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 과는 상관이 없는 하느님의 백성이라 이해해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사제들만으로 감사 성찬례를 거행하는 것이 겟토화된 특권층의 전유물로 전락할 수 있겠지만 제 개인적으로 성직의 수락과 서품은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닌 교회를 위한 것이라는 관점에서 사제들 스스로 자신을 특화 시키는 위험이 과연 얼마나 존재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제가 과대평가 한것은 아닐것이라 생각합니다. ^^;) 오히려 성직자들만의 감사 성찬례를 금하고 감사 성찬례를 성직자와 평신도가 있을 때에만 봉헌 할 수 있다고 한정 짓게 된다면(신학적으로는 이것이 온전한 의미의 감사 성찬례가 되겠지만-지역교회의 주교와 함께 전도구 주임 신부와 신자들)또다른 신자의 형태인 사제들의 영성적 측면을 너무 소홀히 하는 또다른 실수를 범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어떠한 것도 금지되거나 제한 되지 않았다는 것은 알지만 역할의 구별은 있으되 은총은 구분되어 차등 지급 되지 않는다는 전제 속에서 조금 더 넓게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라 여겨졌습니다.

    이렇게 쓰다 보니 결국 사제의 영성이라는 부분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 것 같습니다. 결국 사제의 정체성과 연결된 것 같다고 여겨집니다. 사제가 그리스도를 위해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인 교회(건물이 아닌 믿는 이들의 공동체)를 위해 존재한다고 할 때, 사제는 빵과 포도주를 살과 피로 변화 시키는 마술사도 특권을 가진 특별한 사람도 아닌 그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이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어떠한 것으로 드러나게 해주는 수단적이고 도구적인 존재이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과 동료 사제들을 통해 전해지는 하느님의 은총을 체험하고 살아야하는 신앙인이어야 한다는 점은 이미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사제 역시 불완전한 인간이며 사제 역시 구원을 필요로한 상처입은 치유자라는 어떤 신학자의 말이 떠오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공동집전(그 형태가 다양하고 여러가지일 수 있다고 봅니다. 또한 현재처럼 집전 사제 이외의 사제가 부제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 역시 한 형태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성찬식에는 함께 적어도 축성부분을 행하는 것이 보다 더 공동체적인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게 제 생각이었습니다.)의 위험성보다 유익함이 더 많지 않나 하는 제 짧은 소견입니다.

    제가 잘못 이해하거나 생각한 것이 있다면 지적해 주시고 깨우쳐 주십시요.

    2008년 11월 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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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amedia

    회원

    cras 님, 매우 세심하고 깊은 통찰을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신 말씀에 전반적으로 동의합니다. 오해의 여지가 있지 않을까 염려하여, 몇마디 그저 덧붙입니다.

    우선, 제 글에서 마지막에 덧붙인 이야기는 cras 님이 이상하게 물으신 탓이 아니라, 좀더 확대된 논의를 위해서 제가 보탠 것입니다. 질문하신 의도를 잘 알고 있습니다.

    전례의 독점과 사제직에 대해 하신 말씀에서 제가 별로 이견을 내야 할 내용을 찾을 수 없습니다. 구구절절 옳은 말씀입니다. 다만 오해의 여지를 피하기 위해 덧붙이면 이렇습니다.

    공동집전과 관련해서 성직자들이 공동체 전체의 전례라는 상을 훼손시키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논란의 여지가 있겠습니다만, 저 역시 성직자는 하나의 도구(means) 혹은 매개체 (media)로서 성사적(sacramental)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녀)가 하느님의 백성 가운데 일원인 것을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다만 특정한 소명(모든 백성은 저마다의 소명이 있습니다)을 통해 이를 그 소명을 충실히 수행하는 사람이고, 군림할 직분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이 교회의 지도자로서 가진 권위를 무시해도 좋다는 말은 아닙니다. 성직자는 안수 혹은 서품을 통해서 공동체에서 지도자로, 그리고 공동체를 위한 성사 집행자(수여자는 아니라고 봅니다. 은총을 주시는 주체는 늘 하느님이시니까요)입니다.

    사제 혼자 드리는 미사의 문제는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것은 사제 개인의 영성 생활을 위해서 그 공동체성이 훼손되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사제들 여럿이 함께 성찬례를 거행한다면 그 역시 공동체의 전례입니다. 다만, 여기서 참여자들이 사제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집전자이거나, 공동집전을 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사제가 개인의 영성 생활을 위해서 혼자서 성찬례를 드리는 것은 물론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겠으나, 제가 보기에 영성적인 훈련으로도 썩 좋지 않다고 봅니다. 공동체 전체의 행사가 본질은 그 의미가 현격하게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사제 개인의 영성 생활을 위해서라면 성찬례를 영적 독서의 내용으로 삼아 깊이 묵상하며 독서하면 충분하리라 생각합니다. 굳이 사제 혼자서 드리는 성찬례를 통해서라야 어떤 영적 훈련과 성장을 이야기한다면, 그(녀)는 사제직의 참 뜻을 다시 돌이켜 봐야 하리라 봅니다.

    마지막으로, 공동 집전의 유익에 대해서 말씀하시 부분에 대해서 저도 공감합니다. 저도 그것을 반대하거나 금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맥락을 살피고 그 뜻을 깊이 새겨서 어떤 오용과 오해가 생겨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깊은 고민으로 발전시켜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2008년 11월 4일 #
  8. cras
    회원

    대단할 것 없는 제 글을 읽어주시고 생각을 정리하도록 도와주시는 신부님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신부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저 역시 혼자 드리는 감사 성찬례는 전례 정신에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행위가 사제 개인의 영성에 도움이 된다고도 여겨지지 않습니다. 자칫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직무(charisma-오히려 직무라는 말보다 은사라고 표현 해야 될것 같아 병기했습니다)를 부여 받은 사제 본연의 존재 의미가 개인의 기복적인 신앙으로 빠질 위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성사 집전자로서 사제와 다른 어떤 사람이 함께 할때에(최소한 신앙적 연대를 가진 복수의 사람들이 함께 할때에) 합당한 감사 성찬례 봉헌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성무일도와 같은 시간전례는 그 성격상 홀로 기도하는 경우에도 공적인 전례로 간주 될 수 있겠으나 교회의 공식적인 예배인 전례는 언제나 신자 공동체와 함께 할때에야 그 본연의 의미가 있기 때문임은 신부님께서 설명해주신 부분을 통해서 더욱 명확해 진 것 같습니다.

    앞서 신부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성사의 집행자이면서도 수혜자인 성직자의 전례적 위치는 여러 각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논의 될 주제인 듯 합니다. 최초의 단순한 질문이 여기까지 발전되어 오면서 공동집전(concelebration)이란 전례 행위 속에서 많은 의미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다는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어떠한 규정이나 틀을 만든다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겠지만 하나의 모델로서 제시될 수 있다면 신부님께서 말씀하신 전례의 독점을 피하고 사제 개인 영성을 위한 감사 성찬례의 사적 소유화도 배척하면서 적절한 방식의 일치와 공동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미 앞서 cranmerian님께서 미국의 성공회 1979년 공도문을 통해 좋은 모델을 주셨기에 이에 대한 검토를 한다면 감사 성찬례가 보다 풍요로워 질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결국 이러한 작업이 성직자의 전례적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잣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성직자의 전례적 위치에 대해 참고가 될 만한 책이나 신학자에 대해 정보를 주시면 부족한 실력과 시간이지만 조금 공부해 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안에서 로렌스

    2008년 11월 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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