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 번역 프로젝트 자료

  1. Cranmer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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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성찬례(Eucharist)
    Ronald Dowling

    오늘날 성공회 교회들은 매주일마다 감사성찬례를 거행하는 것이 일반화되었지만, 100년전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당시에는 감사성찬례를 중심예배(main service)로 지키는 교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었지만, 매주일 거행하는 교회들은 많지 않았다. 대다수 교회들의 주일 중심예배는 아침기도(Morning Office)였다. 감사성찬례를 거행하는 경우, 그 양식은 1662년 기도서의 양식이나 이를 개정한 양식을 사용하였다. 감사성찬례는 교회의 동쪽 끝에 있는 제대에서 거행하였으며, 사제는 이 예식의 거의 전과정 동안에 신자들을 등지고 또는 아마도 ‘북쪽 끝에’ 서서, 혼자서 거의 모든 성서독서와 기도문들을 낭독하였다. 그러나 이후 100년 동안에 커다란 변화가 발생하였다. 감사성찬례 양식의 본문들 뿐만아니라 이에 대한 신학까지도 변화하였다. 감사성찬례에서 평신도의 역할과 참여는 다시한번 고려의 대상이 되었으며, 예식의 집례자와 본문언어[어투, 표현]의 적합성 그리고 심지어 빵과 포도주에 대한 질문까지도 제기되었다. 감사성찬례의 본문들과 거행방식 (mode)은 변화하였으며, 이와 함께 그 역할도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형성시키고 성숙시키며 하나의 신앙공동체(communion)와 친교공동체(fellowship)로 통일[결집] 시키는 것으로 변화하였다.

    20세기 초반에 일부 성공회교회들-카나다(1922), 미국(1928), 아일랜드(1926), 스코틀랜드(1929) 그리고 남아프리카(1929)-이 감사성찬례 예식을 개정하려고 시도하였지만, 세계성공회 공동체내에서 이 예식의 개정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주로 중반 이후부터이다. 소위 서구 관구교회들이 이 운동을 시작하였지만, 사실은 이들보다 앞서 남인도와 남부 아프리카 교회들에서 먼저 기도서를 개정하였다. 오늘날에는 신생 관구교회들이 개정활동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예를들면, 아프리카의 여러 관구교회들은 감사성찬례 뿐만아니라 기도서 전체에 대한 새로운 개정기도서를 발표하고 있다. 남부 아프리카, 케냐, 우간다, 탄자니아 그리고 나이제리아 등이 이러한 운동에 동참하였다. 21세기초에는 두번째로 대규모 개정활동이 호주와 잉글랜드, 미국 등에서 진행되었으며, 카나다와 Aotearoa의 교회, 뉴질랜드, 폴리네시아 등에서는 일부 개정초안들을 발표하였다.

    1. 공통적인 접근(A Common Approach)

    이처럼 일부 관구에서는 1662년 기도서를 대폭 개정하여 확대하고, 심지어 일부 관구교회들에서는 완전히 사라지는 상황 때문에, 1988년 람베스회의에 참석한 주교들은 성공회를 하나로 결속시키는 전례적 표준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였다. 1995년 국제 성공회 전례협의회(International Anglican Liturgical Consultation, 약자로 IALC)의 감사성찬례에 대한 회의는 주교들의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논의한 후 발표한 성명서에서, 미래의 세계성공회 신자들은 성공회의 통일성을 동일한 전례본문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감사성찬례 거행에 대한 공통적인 접근(common approach)과, 본문(word)과 기도 그리고 성사 사이의 균형을 보장하는 감사성찬례의 구조(structure)에서 찾아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확실히 최근에 개정된 양식들 대다수에서 이러한 판단이 정확하였다고 입증되었다. 본문들은 서로 크게 달랐지만, 공통적인 점은 IALC문서의 제안 그대로 감사성찬례 전체예식의 기본구조를 다섯가지 순서(fivefold sequence)로 표현한다는 점이다. 즉,

    1.하느님의 백성들의 소집( Gathering of God’s People)
    2.말씀의 선포와 수용(Proclamation and Receiving the Word)
    3.신자들의 기도(Prayer of the People)
    4.주님의 식탁에의 모임(Gathering at the Lord’s Table, 식탁예식으로 성찬기도와 빵의 뗌, 배찬 포함)
    5.하느님의 백성들의 파송(Going Out as God’s People)

    많은 관구교회들의 예식은 이러한 구조속에서 다양한 변화를 허용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이 다섯가지 주요 구성요소들(units)을 위의 순서대로 유지하고 있다.

    1)하느님의 백성들의 소집

    소집양식은 일반적으로 삼위일체 하느님에의 청원(invocation)이나 인사 또는 두가지 모두, 찬양의 노래, 그리고 본기도(collect)를 포함하는 조그만 전례단위들의 모음이다. 많은 개정기도서들은 여기에 참회적인 본문(penitential material)을 포함하기도 한다. 호주(1978년과 1995년)와 카나다(1985), 남부 아프리카교회의 기도서들이 이에 해당한다. 잉글랜드(공동예배서 Common Worship, 2000)와 아일랜드(2004)의 최근 양식들은 참회본문을 이 소집부분에 두도록 규정한다. 다른 구성요소(element)들, 즉 성가, 성서구절(scripture sentence), 정심기도(‘Collect of Purity’참조), 십계명(‘Decalogue with New Testament Precept’참조), 첫째가는 계명(Summary of the Law) 그리고 자비송 등은 모두 선택적으로 사용하도록 허용한다.

    2)말씀의 선포와 응답

    이 부분의 구조는 모든 개정기도서에서 공통적으로 세가지 성서독서를 규정하며, 제1독서와 제2독서 사이에 시편독서를 배치하고 있다. 제1독서는 일반적으로 구약성서를, 제2독서는 신약성서를, 그 다음에 복음서를 낭독한다. 대다수 ‘서구’ (western) 관구교회들은 3년주기로 구성된 로마 가톨릭교회의 성서정과인 Ordo lectionum missae(1969년 첫발행)를 초교파적으로 개정한 Revised Common Lectionary(1992년)를 사용한다. 일부 아프리카 교회들은 잉글랜드의 <대안예식서> (1980)의 2년주기 성서정과를 사용한다. 복음서 독서후에는 설교를, 그 다음에는 일반적으로 신경을 낭송한다. 오늘날 많은 개정기도서들은 전통적인 니케야신경 뿐만아니라 사도신경의 사용도 허용한다.

    3)신자들의 기도

    이 부분은 거의 항상 대안기도문들-일부는 연도형식으로-을 허용한다. 많은 개정예식들은 구체적인 본문을 제시하지 않고 중재기도(intercession)의 주제 또는 분야들-세상, 교회, 지역사회, 어려움과 병환에 처한 자들, 성인들에 대한 감사 그리고 별세자들-만을 제시한다. 상당수의 경우 기도서의 다른 부분에 있는 연도와 기도문들을 참조하도록 제시한다. 기도후에는 죄의 고백과 용서를 배치하며, 거의 모든 개정서들은 그 다음에 평화의 인사를 배치한다.

    4)주님의 식탁에의 모임

    바로 이 부분은 세계성공회의 새로운 기도서들에서 구성(shape)과 내용 그리고 신학이라는 면에서 가장 다양한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그 차이점들은 아래서 논의하려는 성찬기도(eucharistic prayer) 또는 ‘대 감사기도’(Great Thanksgiving)에 집중된다. 1970년대의 첫번째 개정운동으로 성찬기도의 보다 완전한 구성(fuller shape)이 표준으로 형성되었다. 거의 모든 관구교회들은 다양한 대안적인 성찬기도문들을 제공하였으며, 대다수 대안기도문들은 내용을 크게 달리하면서도 전통적인 구성으로 복귀하였다.

    5)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세상으로 나아가기

    다섯가지 부분중에서 가장 짧은 단위로 배수한 성찬에 대한 감사기도(때때로 배수한 은총을 세상에서 실현할 수 있도록 요청하는 청원 포함), 축복(blessing) 그리고 ‘평화속에서 주를 사랑하고 섬기는’ 출발(파송dismissal)을 포함한다. 또한 성가와 같은 추가적인 요소를 넣을 수도 있다.

    2. 개정에 사용된 자료들

    1549년부터 1662년이후 까지의 감사성찬례 양식들에 대한 역사는 이 책의 앞부분에서 다루고 있다(Jeanes, ‘Cranmer’와 Spinks, ‘Elizabeth to Charles’ 참조). 1662년 기도서는 그 이후로 성공회의 감사성찬례 양식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으며, 20세기 초까지 성공회신앙(Anglicanism)에 주요한 영향력이었다. 말하자면 1662년 기도서예식의 ‘유형’(family)은 카나다, 호주, 잉글랜드, 뉴질랜드와 아프리카의 여러 관구교회들의 개정서에서 여전히 찾아볼 수 있다. 호주성공회 기도서(An Australian Praer Book, 1978)의 양식들중 하나는 1662년 기도서 양식을 전혀 개정하지 않고 단순히 언어만을 현대화하였다. 잉글랜드의 <대안예식서>(1980)와 아일랜드 성공회의 기도서(2004)는 이러한 전통을 확고히 지키는 양식을 포함하였다.

    표준적인(classical) 기도서[1662년기도서]의 축성기도(consecration prayer-성찬기도)의 구성은 1552년 기도서에 근거하였다. 1552년의 양식은 1549년의 축성경(canon-성찬기도)을 세분하여 다시 배치함으로써, 즉 그리스도의 대속적 (atoning) 죽음을 강조하는 기억(anamnesis, 아남네시스),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배수할 수 있도록 요청하는 간구(supplication), 그리고 제정사와 신자들의 아멘(Amen), 연이은 배찬이었다. 이러한 형태는 축성이란 의미 보다는 제정의 말씀(words of institution-제정사)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개정양식들은 제정의 말씀 앞에 성령에의 청원(epiclesis, 성령청원, 예피클레시스)을 복원하고, 제정의 말씀 뒤에 기억(anamnesis)과 봉헌기도(a form of oblation)를 배치한 후, 영성체의 은전들(benefits)에 대한 간구 (supplication)와 송영(doxology)으로 끝맺음으로써, 1549년 성찬기도의 구성으로 복귀하였다. 이러한 구성은 잉글랜드의 <대안예식서>와 <공동예배서>, 카나다의 <대안예식서>, 호주의 두 기도서(1978과 1995), <뉴질랜드 기도서>, 남부 아프리카의 <성공회기도서> 등에서 나타난다.

    성찬기도 양식의 두번째 ‘유형’(family)은 단명한 스코틀랜드 기도서(1637)에서 유래하였다(Hefling, ‘스코틀랜드’참조). 이 기도서 양식의 주요 특징은 성찬기도 양식에서 기억(anamnesis), 봉헌(oblation)과 간구(영성체의 은전을 위한 기도)를 제정사 이후에 두는 보다 전통적인 구성인 1549년 기도서의 형식으로 복귀하였다. 비서약파들(Nonjurors)의 영향력과 이들의 동방교회 전례에 대한 지식 때문에, 성령에의 청원(epiclesis)은 기억(anamnesis)를 따라 제정사 이후로 이동되었다. 이러한 구성은 1764년의 스코틀랜드 성찬예식서(Communion Office)의 기반이 되었으며, 사무엘 시베리(Samuel Seabury)를 통해서 새로이 독립한 미국성공회로 전파되었다. 1789년 최초의 미국성공회 기도서는 이를 약간 수정한 성찬기도를 채택하였다. 이러한 ‘유형’의 성찬기도는 미국, 스코틀랜드, 카나다 (<대안예식서>), 남부 아프리카, 서인도제도와 일부 가톨릭성향의 관구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두가지 유형 사이의 차이점은 1993년 IALC에서 성찬기도의 구성을 강조한 토머스 톨리(Thomas Talley)의 연설에서 매우 중요하게 지적되었다(Holeton, Revising the Eucharist참조). 역사적으로 모든 성찬기도는 감사(thanksgiving)와 간구(supplication)를 포함하였다. 이중 감사에서 간구로의 이동은 ‘감사’의 내용과 ‘간구’의 내용에 따라 전례적인 ‘유형’을 형성한다. 톨리(Talley)의 지적처럼, 감사와 찬양에서 간구로의 이동은 주로 성령에의 청원(Epiclesis)에서 나눠진다. 즉, 성령에 대한 청원이 기억(anamnesis)과 연결되느냐 아니냐에 따라 성찬기도의 두가지 ‘유형’에 서로 다른 구성을 나타낸다. 먼저 성령에의 청원(epiclesis)을 제정사 앞에 두면 1549년 모델이 되고, 성령청원(epiclesis)을 제정사 뒤에 배치하여 기억(anamnesis)과 연결시키면 ‘스코틀랜드’ 유형이 된다. 각각의 경우, 제정사는 매우 다른 의미를 나타낸다. 즉 성령청원(epiclesis)이 제정사 앞에 올 때, 제정의 말씀은 1662년 양식처럼 성령청원(epiclesis)이 전혀 없다하더도 축성의 역할을 갖게한다. 반면에 성령청원(epicelsis)이 제정사 후에 올 때, 제정사는 실제로 감사의 일부가 된다. 톨리는 첫번째 유형이 개정된 Roman Missal of Paul VI(1970)(epiclesis를 제정사 앞에 위치)와 매우 유사하다고 지적하였다. 즉 제정사 이후의 본문은 감사(즉anamnesis)로 되돌아간 다음에 간구를 계속한다. 특히 잉글랜드의 <대안예식서>와 <호주성공회 기도서>의 성찬기도들은 이러한 형식(pattern)을 추구한다. 감사와 간구 사이를 왕복하는 운동은 새로운 전통으로 다소 혼돈스럽다.

    <사도전승>(Apostolic Tradition)이라는 문서는 19세기말에 ‘원자료’(source material)라는 지위를 확보하였다. 이 문서는 3세기초나 중반의 것으로 보통 로마의 히폴리투스(Hippolytus)가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서의 성찬기도의 구성은 세계성공회와 다른 교회들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사도전승’의 성찬기도문 참조). 성공회에서는 그레고리 딕스(Gregory Dix)의 유명한 저서인 <전례의 구성>(Shape of Liturgy)으로 인하여 유행하였다. 이 구조에 의하면, 감사부분은 교회의 ‘봉헌’(offering)에 대한 성령청원(invocation)에서 간구부분으로 이동한다. 이 문서는 성공회의 성찬기도들중 ‘스코틀랜드유형’를 지지하였다. <사도전승>의 기도문에 기초한 성찬기도문들은 다른 교파교회들 뿐만아니라 성공회의 기도서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사도전승>은 또한 간접적으로도 영향을 주었다. 남부 아프리카관구는 1989년 기도서에서 Missal of Paul VI의 성찬기도문들-사도전승에 기초하였다-중 하나를 채택하였다. 이는 제2차 바티칸회의가 전례분야에 대하여 로마 가톨릭교회 뿐만아니라 다른 교파교회들에까지 영향을 끼친 사례들중 하나이다(Baldovin, ‘전례운동’ 참조). 그 이후에 로마에서 출판된 다른 성찬기도문들(공인받지 못하였다)도 <공동예배서Common Worship>을 비롯한 다른 기도서들의 개정판에 포함되었다. Missal의 영문번역에 대하여 바티칸이 내린 최근의 지시사항들이 앞으로 초교파적인 합의(ecumenical agreements)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각 교파교회들 사이에 공식적인 전례협의체들이 구성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영어권 교회들에서 특히 활발하다. 영국(United kingdom), 북아메리카, 호주, 뉴질랜드, 아일랜드 그리고 남아프리카의 교파교회들은 모두 이러한 대화에 참여하고 있다. 1970년대에 영문 전례문에 대한 국제협의회 (International Consultation on English Texts, 약어로ICET)가 조직되어 현대어로 된 공동 영문 전례본문들-주로 감사성찬례 본문들-을 발표하였다(Prayers We Have in Common 참조). 당시에 개정된 성공회 기도서들은 대부분 주기도문, 자비송, 영광송, 삼성경, 즈가리아의 노래 그리고 하느님의 어린양에 대한 새로운 공동번역을 채택하였다. 1980년대 중반 이 협의회는 영어권 전례협의회(English Language Liturgical Consultation, ELLC)로 재구성되어, 이 전례본문들을 다시 번역하여 <Praying Together>(1988)으로 출판하였다. 이후에 개정된 많은 성공회기도서들은 이 공동 번역문들을 그대로 (또는 번안하여) 채택하였다.

    성공회의 전례양식에 끼친 또 하나의 영향은 세계교회협의회의 신앙과 직제 보고서(Faith and Order Report)인 <Baptism, Eucharist and Ministry>(소위 리마성명서)이었다. 이 보고서는 성찬기도의 구성 뿐만아니라 내용에도 영향을 주었다. 보고서는 집필자들이 중요하다고 믿었던 항목들을 제시하였다. 즉, 성부에 대한 감사, 제정사, 위대한 구속적 행동들에 대한 기억(anamnesis), 신앙공동체와 성찬에 대한 성령청원, 하느님에 대한 신자들의 바침[봉헌], 성인들과의 상통에 대한 언급, 주의 재림을 위한 기도, 그리고 신자들의 아멘(Amen). 전반적으로 이 항목들은 최근의 개정기도서들에 잘 반영되었다.

    각 교파교회들간의 자료들과 연구의 교류가 활발했던 것처럼, 성공회의 각 관구교회들 사이의 협의도 활발히 진행되었다. 1985년 잉글랜드, 카나다, 미국, 남아프리카, 호주 그리고 뉴질랜드 성공회를 대표하는 12명의 전례학자들은 어린이들의 영성체 허용문제를 협의하기 위하여 모임을 개최하였다. 이 작은 모임은 IALC로 발전하여 세계성공회협의회(Anglican Consultative Council) 산하의 공식적인 전례 협의기구(network)로 격상되어 30개 관구교회의 대표들이 참여하고 있다. 1993년 Untermarchtal의 준비회의와1995년의 더블린회의는 감사성찬례에 집중하여, 감사성찬례의 개정과 참여에 대한 권고안과 여러 연구모임들의 성명서들을 <Renewing the Anglican Eucharist>이란 책으로 출판하였다. 이들의 활동은 오늘날 세계성공회의 감사성찬례 개정활동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오늘날 각 관구교회들의 개정된 성찬기도문들 대다수는 이제 보다 완전한 구성을 유지한다. 일부 관구교회들은 ‘스코틀랜드’유형의 성찬기도문 뿐만아니라 공동기도서 전통(1549년의 구성으로 복귀한 경우도)의 성찬기도문들을 대안 기도문으로 채택하고 있다. 실제로 이는 1662년 양식처럼 제정사 직후에 영성체를 하는 것으로부터 커다란 변화를 촉진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넓은 구조 안에 다양한 차이를 나타내는 기도문들이 있으며, 또한 대다수의 관구들이 상당수의 대안적 성찬기도문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과 신학적인 의미라는 면에서 상당한 차이를 나타낸다.

    이러한 차이는 일부 관구들의 경우처럼 ‘감사성찬례지침’ 또는 ‘개괄적인 양식’ (directory Eucharist or outline order)을 부여한데서 특히 잘 나타난다. 완전히 규정된 본문들 대신에 ‘제목들’(headings)-일반적으로 앞에서 설명한 다섯가지 -만을 규정하고 각 본문들은 신앙공동체에서 직접 작성하도록 허용한다. 이러한 방식의 사례들로는 미국, 남부 아프리카, 호주 그리고 Aotearoa의 기도서들에서 나타나며, 뉴질랜드와 폴리네시아는 규정된 성찬기도외의 다른 본문들을 특정한 공동체에서 작성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동예배서>처럼 다양한 기도문들을 허용하는 이러한 폭넓은 다양성을 고려할 때, 형식과 내용의 다양한 차이와 변화는 거의 끝이 없다. 이는 성찬례신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3. 기도서들과 성찬례신학

    일부 신학자들은 성사신학을 체계적으로[조직신학적으로] 전개할지라도, 성공회의 성찬례신학은 공식적으로 규정된 전례양식들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일부 관구교회들은 항상 1662년 양식을 근본적인(foundational) 양식으로 포함할 것이다.) 대다수 관구교회들은 공식적인 신학위원회와 협의하여 새로운 양식들을 제정하고 있다. 이러한 협의관계는 복잡하고 때로는 매우 어렵다. 전례양식들은 신학을 기도문으로 표현하는 것은 아니지만, 신학은 본문의 전개(development)에 영향을 주고 있다. 성찬례신학의 식별문제 또한 본문 이상을 고려해야 한다. 즉 본문과 관련된 다른 측면들인 본문을 집행하는 방식, 상징의 사용문제, 그리고William Crockett의 ‘역동적 통일성’(dynamic unity) 안에서 이 모든 것들이 함께 작용하는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통일성의 신학적인 측면들로는 축성, 희생, 현존, 기억(anamnesis), 성령의 역할에 대한 인식을 들 수 있으며, 공교롭게도 종종 이들은 오히려 불화(disunity)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1662년 기도서는 단일본문으로 매우 좁은 범위의 해석만을 허용한다. 하지만 오늘날은 그렇지 않다. 특정한 교회나 관구의 성찬례신학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그 교회의 모든 성찬기도 본문들을 검토해야 한다. 이제 성찬례신학의 범위는 종종 매우 폭넓다. 대다수 관구들은 신자들의 신학적인 ‘특색’(color)에 관계없이 다양한 대안적인 성찬기도문들을 사용하기를 기대하지만, 일부 집단들은 특정한 양식들만을 선호하여 사용하고, 또 다른 집단들은 다른 양식들만을 사용한다. 이러한 기도문들이 성서독서와 선물들 (gifts)에 대한 기도들(규정된 본문), 그리고 다양한 영성체후 기도문들과 함께 사용될 때, 신학적인 해석은 정말로 매우 다양해진다. 이러한 신학적인 다양성은 일부 신자들에게는 고통이 되고 일부에게는 해방감을 준다.

    지난 한세기 동안에 성찬례신학의 다양한 측면에 대하여 많은 신학적인 토론과 논쟁이 진행되었다. 이들중 가장 중요한 논쟁은 성찬례 행동(eucharistic action) 에서 성령의 역할이었다. 보다 가톨릭성향(catholic-minded)의 교회들-필리핀, 카나다, 서인도제도, 남아프리카, 미국-은 빵과 포도주의 선물들과 신자들에 대한 성령청원을 선호한다.

    은혜로우신 하느님, 비오니 이 선물들(gifts)위에 성령을 내리시어,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새 언약의 성사가 되게 하소서
    (카나다, BAS; 미국1979년기도서-한글번역 p. 238)

    …당신의 생명주시는 성령을 이 성찬례에 부어 주시어
    이 감사의 양식을 변화시켜,
    이 빵과 포도주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소서
    (1999년 필리핀기도서)

    다른 교회들은 빵과 포도주와 성찬참여자들 사이를 분명하게 구별한다.

    생명을 주시는 성령이여,
    지금 우리에게 오소서;
    이 빵과 포도주가 우리에게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소서 (2004년 아일랜드 기도서)

    한편 다른 교회들은 덜 구체적이다.

    …당신의 성령을 우리와 이 축제[예배]에 보내시어
    이 식탁에서 먹고 마시는 모든 신자들을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강화시켜서
    세상에서 당신을 섬기게 하소서
    (호주기도서, 1995)

    케냐의 <현대기도서>(Our Modern Service)처럼 일부 교회들은 성령에 대한 청원이 전혀 없지만,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

    앞의 세가지 사례는 모두 성찬기도의 후반부에 있는 기억(anamnesis) 이후에 배치되어 있다. 일부 성찬기도문들에는 두차례 또는 분할된 성령청원(epiclesis)-즉 제정사 이전에 빵과 포도주에 대하여, 그리고 기억(anamnesis)이후 신자들에 대하여-을 두고 있다. <공동예배서>(잉글랜드, 2000)는 이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주여, 당신은 참으로 거룩하시며, 모든 거룩함의 원천입니다.
    당신의 성령의 능력으로 이 거룩함을 허락하시고,
    또한 당신의 거룩한 의지를 주시어,
    이 빵과 포도주의 선물( gift)이 우리에게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소서.
    그리스도께서 잡히시던 날 밤....
    ....
    당신의 백성들에게 성령을 보내시어
    여기에 있는 하나의 빵과 한 잔의 포도주를 나누는 모든 이들이
    당신의 나라에서 하나가 되게 하소서
    그러므로 우리는 [이름]와 모든 성인들과 함께
    당신께 영원한 찬양과 영광을 드립니다....
    모든 사례들을 조사하면, 각 관구교회들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들이 존재하며, 또한 한 관구내의 대안 기도문들 사이에서도 매우 다양하다.

    성령의 역할과 성령청원(epiclesis)보다 더 논쟁적인 주제는 성찬례의 희생적 차원(sacrificial dimension)의 문제이다. 희생에 대한 인식[notion, 관념, 개념]은 전례본문 자체의 개정 뿐만아니라 성사신학에 대한 저술에 속한다. 희생적 형상(비유,imagery)의 사용은 Didache(1세기말)와 순교자 저스틴의 저서들 (C.150)과 같은 최초의 문서들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사도전승>의 경우, 희생이라는 개념은 성찬기도문 자체에서 나타난다. 감사의 희생은 빵과 포도주의 선물들과 연결되어 있다. 즉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며, 당신께서 우리를 당신앞에 설 수 있는 가치있는 사람으로 그리고 당신께 헌신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기 때문에, 이에 감사드리며 당신께 빵과 포도주를 바칩니다.’1000년경에 이르러 그리스도의 수난과 성찬례의 선물은 너무 밀접하게 결합되었기 때문에, 대중의 신앙에서 그리스도의 희생은 각각의 미사때마다 다시한번 거행되었다(offered, 실현되었다). 종교개혁가들은 이러한 사상을 강력히 반대하였으며, 그 이후 발행된 잉글랜드 기도서의 성찬기도들은 희생 또는 바침(봉헌offering)과 선물(gift)과의 연관성을 나타내는 모든 문구들을 삭제하였다. ‘찬양과 감사의 희생’을 바친다는 사상은 영성체 직후에 드리는 기도문들중 하나인 대안기도문-이를 일반적으로 봉헌기도(Prayer of Oblation)라고 한다-에서만 소개되었다. 지난 50년동안 성찬의 전례를 개정하면서 가톨릭성향과 복음주의성향의 성공회신자들은 이 문제에 대하여 논쟁하였다. 이 기간에 개정된 대다수 기도문들은 이러한 다양성을 반영하고 있다. 스코틀랜드유형의 양식들은 하느님에게 선물을 바치는 것을 선호한다.

    아버지 하느님, 우리는 이 찬양과 감사의 희생에서 우리의 구원을 기념하는 이 예식을 거행하며,
    당신의 죽음과 부활과 강림을 기억하며 이 선물들을 바칩니다
    (1979년의 미국기도서)

    다른 양식들은 주로 ‘이 빵과 이 잔과 함께’와 같은 구절을 사용함으로써, 빵과 포도주와 그리스도의 희생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회피한다.

    아버지, 우리는 이 빵과 이 잔과 함께,
    우리 주님이 명령하신대로 거행합니다.
    우리는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성취하신 구원을 찬양하며,
    십자가에서 단 한번으로 성취하신 완전한 희생을 선포하며,
    주님의 위대한 부활과 영광스런 승천을…
    (호주의 기도서와 대안예식서 그리고 2004년의 아일랜드기도서)

    그러므로, 아버지, 이 빵과 이 잔과 함께
    우리는 우리를 해방시키기 위하여 주님이 죽으신
    십자가를 찬양합니다.
    (공동예배서)

    또한 빵과 포도주를 희생과 연관시키는 언급을 전혀 하지않는 기도문들도 있다.

    이러한 두가지 입장들의 차이를 연결시키려는 노력이 상당히 진행되었으며, 어느정도 성공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명확한 성공회적인 입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문들과 과제들이 남아있다. 이중 특히 중요한 질문은 성찬기도의 여러 순간들을 희생적인 개념들과 동일시 할 수 있는가 또는 그렇게 해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그 대신에 성찬기도와 행동 전체를 희생적으로 이해해야 하는가?

    또한 이와 똑같은 종류의 질문은 축성이라는 신학적 전례적 주제에 적용될 수 있다. 축성이 어떻게 성취[완성]되는가(how consecration is effected)는 오랫동안 성공회내에서 논의와 토론과 논쟁의 대상이었다. 현대의 대다수 전례학자들과 신학자들은 중세말기처럼 ‘축성의 순간’에 대하여 논쟁하지 않는다. 물론 1662년 기도서는 그러한 입장을 채택하였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현대의 학자들은 성찬기도 전체를 통해서 축성이 성취된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축성은 제정사나 성령청원(epiclesis)과 연결된 것이 아니라, 성찬기도 전체와 연계되어 있다. 그러나 문제는 축성한 빵이나 포도주가 부족하여‘추가축성’을 해야할 때 발생한다. 이러한 경우에 사용하는 기도문을 준비한 기도서들 대다수(전부는 아니다)는 제정의 말씀의 반복을 규정함으로써, 바로 이 본문이 축성을 완성하는 것으로 의미한다. 이는 특히 성공회의 관례로, 다른 전례적인 교파교회들에서는 이러한 조항이 없다.

    성공회에서 또 하나의 쟁점은 성찬례 내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에 관한 문제이다. 그리스도의 구원행동[행위actions]에 대한 기념은 단순한 정신적인 활동(mental exercise) 이상이다. 빵과 포도주를 들어 축복하고 나누는 행동은 곧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대한 참여를 의미한다(고린도전서10:16참조). 이 이상의 해석에 대해서는 성공회는 침묵하여 왔다. 신자들은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심으로써 하느님의 은총에 참여하고 이를 받는다. 이는 정적인 표현이 아니라 역동적인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4. 누구의 감사성찬례인가?

    6세기 이전까지 감사성찬례는 분명히 세례받은 전 신자공동체의 축제였다. 세례받은 모든 신자들은 적극적인 역할을 하였다. 성직자는 감사성찬례의 모든 행동을 전부 다 수행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감사성찬례는 주교나 사제의 것이 아니라 전 신앙공동체의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중세 초기부터 성직자들은 점차적으로 이전에 평신도들이 수행했던 역할들을 하나씩 접수하기 시작하였다. 종교개혁 직전에 이르러 전례는 완전히 성직자의 몫이었다.

    16-7세기 동안 잉글랜드 기도서들은 성찬례신학의 많은 측면들을 개혁하였다. 언어는 라틴어에서 지방어인 영어로, 평신도에게 잔을 복원하였으며, 잉글랜드 교회는 평신도들에게 영성체를 보다 자주 참여하도록 규정하며 제한적이었지만 응답문들과 기도문들의 낭송에 참여하도록 권고하였다. 또한 신학적인 동기에서 본문들을 개정하여, 찬양과 감사의 희생 이외의 다른 희생과 성찬의 봉헌(바침, offering)과 같은 이해들을 완전히 삭제하였다. 이에 따라 교회 내부도 다시 배치되어, 이제 성찬식탁을 본당으로 이동시켰으며, 많은 의례들(ceremonial)을 제거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가지는 변하지 않았다. 즉 사제의 역할은 수백년 동안 유지되온 그대로 보존되었다. 다시말하면, 감사성찬례는 여전히 매우 성직자 중심(clericalized)이었다. 바로 이 점에서 교회는 전반적으로 당시 사회의 문화적 본질을 그대로 반영하였다. 서구문화는 여전히 봉건적이었다. 교회 또한 계서적인(hierarchical) 구조로 구성되어 성직자들이 지배하였으며, 교회의 성찬기도양식은 이러한 조직구조를 반영하였다. 양식의 고정된 본문들은 주로 주교들이 개정하였으며, 모든 감사성찬례의 거행은 주교나 사제들이 완전히 지배하였다. 평신도들은 적극적인 역할을 거의 할 수 없었다. 기도문들과 성서독서들은 모두 성직자들이 종종 ‘영성체를 원하는 모든 신자들을 대신하여’낭독하였다. 신자들은 가끔식 지시문에서만 언급될 뿐이었다.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세례신학(baptismal theology)과 세례예식(baptismal practice)에 대한 활발한 연구의 성과는 교회생활에서 세례의 위치에 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많은 교회들에서 이 성사는 다시한번 중심이 되었으며, 당일의 중심예배에서 이를 거행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교회론에도 영향을 주어, 성직자중심의 교회모델에서 모든 세례받은 신자들의 공동체에 기반한 교회모델로 전환하였다. 이 모델에서 집례자는 주교나 사제가 아닌 바로 전 교회공동체이다. 성찬례는 교회에 속한 것이지, 교회의 어느 한 신자-성직자나 평신도-에게 속한 것이 아니다. 한 교회공동체 내에서 평신도들은 전체 공동체를 대표하여 다양한 역할들을 수행한다. 즉, 환영자[안내자]와 봉사자[복사, server], 음악담당자 뿐만아니라 성서독서자, 중재기도 인도자, 성찬조력자 그리고 병자에 대한 성찬전달자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추세는 성찬례에 대한 IALC의 더블린 성명서에서 분명하게 확인되었다. 이에 따르면, ‘서품받은 자들의 전례적 역할들은 사목적 책임에서 나오는 것이다. 전례적 역할과 사목적 관리(pastoral oversight)를 분리하는 것은 곧 전례의 집례권(liturgical presidency)을 고립된 의례적 기능으로 축소시킬 우려가 있다.’

    이 권고문의 마지막 문장은 집례자의 문제를 제기한다. 성공회의 전통은 항상 정식으로 서품받은 주교나 사제만이 집례자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규칙은 두가지 신학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첫째는 서품의 대상에 대한 문제이고, 둘째는 서품이 성찬례 집례권를 위한 선행[필요]조건인가 라는 문제이다. 여성을 사제와 주교로 서품하는 문제는 세계성공회 내에서 커다란 분열을 야기시켰다. 일부 관구교회들에서는 이제 여성들이 사제와 주교로 봉사하고 있다. 일부 다른 관구들은 여성의 사제직을 허용하지만, 주교서품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의하고 있으며, 여성주교를 반대하는 사제들에게 남성 주교로의 이전을 허용하는 계획들을 고려하고 있다. 이 문제에는 신학적 교회론적인 주장들 뿐만아니라 문화적인 규범 (norms)이라는 문제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전반적으로, 오늘날 여성의 집례권은 확산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논쟁은 완전히 끝나지 않고 있다.

    반면에 지난 몇 십년 동안 부제와 평신도의 감사성찬례 집례에 대한 토론이 확산되고 있다. 일부 지방에서 이러한 문제는 사제의 부족 또는 외딴 지역에서의 사목 등의 문제 때문에 제기되었다. 다른 지방교회들의 경우, 평신도들이 말씀(성서독서와 설교)을 주재한다면, 이들에게 성사의 주재를 허용함으로써 이러한 사목직에 대한 균형을 찾는 것이 적절하다는 확신에 따른 것이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논쟁에 개입할 여유가 없다. 그러나, 알아야 할 점으로 대다수 성공회의 입장(과 교회법)은 많은 초교파적인 합의와 계약들처럼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확고히 반대한다 할지라도, 이러한 활동과 논쟁은 지속될 것이다.

    5. 성공회의 다른 문제들

    1)포용성(포괄성,inclusion)

    1995년 IALC의 회의에서 발표한 성찬례에 대한 성명서의 원칙들과 권고문들에 따르면, ‘세례받은 자들은 년령, 인종, 성별, 경제적 지위나 정신적 능력과 같은 이유로 성찬공동체의 참여를 제한받을 수 없다.’이 회의에 참석한 각 대표자들은 특히 년령의 문제를 주로 토의하였다. 그러나 협의회는 성찬례의 참여를 위한 유일한 전제조건은 세례라고 확언하였다. 이에 따라 견진례는 더이상 성찬례 참여의 전제조건으로 이해될 수 없으며, 또한 년령이 성찬례의 완전한 참여를 거부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 이 문제는 최근에 개정된 기도서들에서도 제기되었으며, 일부 관구들-스코틀랜드 처럼-은 어린이들의 영성체를 권장하는 공식문서들을 발행하고 있다.

    오늘날 많은 관구교회들은 어린이들이 견진례를 받기 이전에도 성찬에 참여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러한 관구들 대다수는 허용년령을 5살에서 7살 사이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점차 많은 관구들에서 년령에 관계없이 세례때부터 영성체를 허용하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Meyer, ‘입교례’ 참조). 이러한 관구들에서는 세례받은 모든 신자들, 즉 유아와 어린이 그리고 성인들이 성찬참여자들이다. 결과적으로 어린이들은 성찬공동체에 완전히 참여하면서 성장한다. 하지만 성찬허용과 관련한 신앙교육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하더라도, 많은 관구들은 교육을 항상 진행되는 지속적인 과정이며, 또한 경험이 성장에 중심적이며 영향력있는 역할을 한다는 점을 이해하게 되었다.

    성찬의 나눔은 또한 교회일치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많은 관구교회들은 ‘성찬의 개방’(open altar) 정책(policy)을 실천하고 있다. 즉 다른 교파신자들이 감사성찬례에 출석하였을 때, 이들의 성찬참여를 권장하는 것이다. 대부분 계절적인 축제일과 견진, 세례와 장례 때의 경우로 지역단위의 활동이다. 공식적인 차원에서 감사성찬례에 대한 분명한 초교파적인 합의를 지향하는 운동이 증가하고 있다. 오늘날 많은 성공회 관구들은 루터교회와 공식적인 협약(합의)을 맺고 있다. 이러한 사례로 잉글랜드교회와 일부 스칸디나비아 루터교회들와 맺은 포르부합의(Porvoo agreement)를 꼽을 수 있다. 카나다와 미국의 성공회도 이와 유사한 합의를 맺고 있다. 이러한 합의들은 먼저 성찬의 교류(intercommunion)부터 시작하였지만, 이제 성직(ministries)에 대한 상호인정으로 확대되고 있다. 한편 다른 관구들은 다른 프로테스탄트 교회들과의 합의로, 특별한 상황-외딴 시골지역의 경우처럼-에서 성찬의 교류를 허용한다. 이러한 공식적, 비공식적인 교류는 점차 증가하는 추세이다.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아직 로마 가톨릭교회를 포함하지 않는다. 물론 지역단위에서 비공식적으로 성찬을 공유하는 경우는 자주 있다. 이러한 경우 성찬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로 어려움이 나타난다. 성공회는 성찬을 통합을 촉진시키는 수단으로 인식하나, 로마 가톨릭교회의 공식적인 교리는 성찬의 공유를 이미 성취된 통합의 표현(sign)으로 인식한다.

    2)번안, 토착화 그리고 문화화(Adaptation, Ingenization, and Inculcation)

    성공회신앙에서 감사성찬례에 대하여 설명할 때 토착화와 문화화의 문제를 빠뜨릴 수 없다(Douglas, ‘문화화’참조). 1993년 카나마이(kanamai, 케냐)회의는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매우 중요하다. 감사성찬례에 대한 이 회의의 성명서에 의하면, ‘감사성찬례 예식을 작성할 때 각 관구는 이 예식에 영향을 줄 수 있는(또는 이에 반영될 수 있는) 각 나라나 지방의 문화적인 관행[관습, practices]을 면밀히 조사해야 한다. 성찬기도 양식들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관구교회들은 규명된 문화적 관행을 전례에서 확언할 수 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Gitari, Anglical Liturgical Inculturation in Africa). 이 성명서는 또한 적합한 상징들과 건축물, 장식, 음악, 전례복(vesture)에 대한 문제도 제기하였다.

    많은 개정기도서들은 다른 언어로 번역하여 따로이 출판하였지만, Aotearoa와 뉴질랜드, 폴리네시아의 현기도서는 한 권에 세가지 언어-영어와 마오리어, 폴리네시아의 일부 언어-를 동시에 사용한다. 똑같은 본문을 세가지 언어로 나란히 인쇄하여 종종 한 예배에서 영어와 마오리어를 교대로 사용하기도 한다(Te Paa, ‘Te Rawiri’와 Booth, ‘뉴질랜드’참조).

    3)Reservation of the Sacrament and Extented communion (성찬의 보존과 연장 영성체)

    20세기초에 제기되었던 주요 전례논쟁들중 하나는 ‘성찬의 보존’-축성된 성찬(빵과 포도주)을 나중에 병자나 임종자에게 집행할 목적으로 따로이 보관하는 행위-에 대한 문제였다. 앵글로-가톨릭들은 이러한 사례(practice)를 보편적 (catholic) 그리스도교의 본질적인 표징으로 인식하여 로마 가톨릭교회의 형식을 채택함으로써, 성공회 교회내에도 성합(tabernacle)과 성물안치소(aumbry)가 등장 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동안에 영성체는 종종 참호안에서 보존된 성찬으로 배찬되었다. 전쟁기간 동안에 실용적으로 어쩔 수 없이 사용되었던 사례는 평화시에도 대중화되어, 잉글랜드성공회의 제안기도서(Proposed Book,1927/28)에서 병자와 임종자를 위하여 성찬의 보존을 허용하였다. 하지만 이 기도서는 의회의 승인을 받는데 실패하였지만, 이 기도서의 예식들은 잉글랜드의 여러 교구들에서 허용되었다. 이중 하나가 성찬의 보존이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부에 전개된 기도서 개정활동 이전까지 보존된 성찬에 의한 영성체를 위한 전례적 본문들을 공식적으로 규정한 교회들은 거의 없었다. 그 이후부터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스코틀랜드형식’의 성찬기도문을 따르는 관구들은 이러한 사례에 대하여 분명하게 규정하였다. 즉 미국, 카나다, 남부 아프리카, 서인도제도, 스코틀랜드, 뉴질랜드의 기도서는 이에 대한 지시문과 기도본문들을 규정하였다. 때때로 이에 대한 자료들은 성찬기도문 내에, 또는 병자방문 예식과 관련하여 수록하였다. 반면에 잉글랜드 기도서 전통을 따르는 관구들은 일반적으로 보존된 성찬을 이용한 영성체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대신에 이들은 잉글랜드, 아일랜드, 호주와 일부 아프리카 관구들처럼, 병자와 임종자들을 위한 약식 성찬례 양식을 규정하고 있다.

    최근 몇십년 동안에 보존된 성찬으로부터의 영성체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연장영성체’(extended communion)에 대한 인식은 각 신학적 주장들 사이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이러한 관행(practice)은 통상적으로 집행자 (minister, 평신도나 서품받은 자)가 당일의 성찬례에서 축성된 빵과 포도주를 영성체 직후 또는 예배 직후에 실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경우 영성체는 가능한 한 공동체의 성찬례거행 직후에 시행되어야 한다. 따라서 축성된 성찬의 보존은 필요하지 않다. 물론 많은 교회들은 여전히 비상시를 대비하여 축성된 성찬을 보관하고 있다. 일부 관구들은 ‘연장영성체’(extended communion)를 위한 본문들을 규정하기 시작하고 있다. 미국성공회는 사목예식서(Book of Occasional Services, 2003)에서 교회밖의 신자를 위하여 성찬을 집행하는 자들을 위한 ‘dismissal’(파송예식)을 영성체후 기도 직후에 신설하였다.

    이 회중의 이름으로 나는 여러분[당신]에게 이 거룩한 성찬을 보내니,
    우리와 함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나눌 신자들에게 가시오.
    우리는 모두 하나의 빵과 하나의 잔을 나누기 때문에,
    모두 하나의 몸입니다.

    일부 성공회 전도구교회들은 다른 성찬 신심의식들(eucharistic devotions)-성체강복(Benediction), 축성된 성체의 순행(Processions of the Blessed Sacrament) 등-을 도입하고 있지만, 이는 결코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다. 많은 개별 교구들은 이러한 의식을 승인하고 있지만, 관구단위에서 공식적으로 승인된 경우는 없다.

    4)빵과 포도주

    1552년 이후 성공회의 기도서들은 빵과 포도주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일상적으로 먹는 것으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 중에서 품질이 가장 좋고 순수한 밀로된 빵’과 발효된 포도주를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성공회신앙이 아프리카와 일부 아시아 지방으로 전파될 때, 이러한 규정에 대한 문제가 발생하였다. 일부 회교도국가들의 경우, 발효된 포도주의 생산이나 수입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다른 나라들의 경우, 밀로 만든 빵을 쉽게 구하기 어렵다. 더구나 일부 지방에서는 밀로된 빵과 포도주에 대한 문화적 타당성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카나마이 성명서는 이러한 문화적 문제점들을 제기하며, 각 관구들이 이 문제들을 논의할 때 성서적 증언과 함께 문화적 상황[환경, context]도 고려할 것을 요청한다. 일부 관구들은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여 대용물을 허용하였으며, 2002년 세계성공회협의회(ACC)에서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6,7개 관구들은 밀로된 빵과 발효된 포도주의 대용물을 공식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대용물은 과일주에서부터 코카콜라까지 다양하며, 일부는 밀로된 빵 대신에 쌀로 만든 빵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들중 일부 관구들에서 이를 위한 허용권은 거의 사용되지 않았으며, 일부에서는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건강상의 이유로 발효된 포도주나 일상용인 밀빵을 먹을 수 없는 신자들이 있다. 이들은 대체로 알콜중독이나 밀에 대한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사람들이다. 이는 전례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목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알콜중독자들의 경우 발효되지 않은 포도주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무알콜 포도주를 사용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이러한 신자들이 있을 경우, 이러한 대용물들을 모든 참여자들에게도 사용할 것인가는 사목적 차원에서 신앙공동체의 결정을 맡겨야 하는 어려운 문제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점은 상징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이해이다. 일부 신자들은 성찬의 포도주는 피의 상징으로 항상 붉은색이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상징의 실제 의미는 포도주를 마신다는데 있기 때문에, 그 색깔과는 관계가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취할 수 있는 발효된 포도주여야만 하는가라는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5)공동의 잔(Common Cup)

    일반적으로 기도서의 지시문에서 암시하는 것처럼, 성찬례에서 참여자들은 하나의 잔을 공유하는 것이 성공회의 관례이다. 그러나 때때로 하나의 잔을 공유하는 것은 건강상 위험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일부 교회들에서는 intinction의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즉 빵을 포도주에 적시어 배찬하는 것. 때로는 이를 위하여 두 개의 잔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례는 지난 20년 동안 AIDS의 확산에 대한 염려에서 발생하였다. 물론 이러한 감염 가능성에 대한 과학적 연구들은 아직도 불확실하다. 그러나 그 결과로 하나의 잔으로 마시는 대신에 여러 개의 잔을 사용함으로써 참여자[배수자]들을 분리시키게 되었으며, 일부는 일인용 잔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건강상의 문제만이 고려의 대상이 되는 유일한 문제는 아니다. 하나의 잔을 다함께 공유하는 것은 16세기 잉글랜드교회의 성찬례 개혁의 근본적인 측면이었으며, 그 이후로 성공회 기도서들마다 이러한 관행을 규정하였다. 성찬에 참여한 모든 신자들이 하나의 잔을 사용하는 상징적 가치는 매우 중요하다. 성찬례는 신성한 음식을 나누는 것이다. 때때로 성찬참여자들은 잘게 나눌 수 있는 한 덩어리의 빵을 공유하지만, 공동의 잔을 사용하지 못할 때 이러한 의미는 상실된다. 여러 개의 잔을 사용하는 것은 성찬례의 핵심이자 의미인 통일성(unity)-하느님의 백성들과 그리스도와의 통일성, 그리고 백성들사이의 통일성-의 상징을 파괴하는 것이다.

    6)Sectional interests (당파적 이해집단들)

    20세말과 21세초의 전례학자들이 제기하는 또 하나의 논쟁점은 전례본문들에 대한 편향적인(sectional) 이해집단들의 영향이다. 예를들면, 속죄론(atonement)을 그리스도의 ‘형벌적 대속론’(penal substitution)으로만 이해하여 성찬기도문들에 이러한 상징(metaphor)만을 사용할 것을 주장하는 성공회신자들이 있다. 또한 언어적 표현의 논쟁점으로 인간과 하느님, 또는 두가지 모두를 ‘포괄적인’ (inclusive) 언어로 표현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어느정도 까지 가능한가 라는 문제가 있다. 이외에도 ‘지방어’의 문제와 성별의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쟁점들을 주장하는 집단들은 종종 이들의 입장과 일치하는 전례본문들을 작성하려고 한다. 특정한 성찬기도문은 교회의 의회를 통해서 규정될 수 있다. 하지만 이념적으로 표현된 전례본문들-때때로 교의적으로 표현된다-은 곧 도태되며 한정된 기간에만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관구교회내의 일부교회들은 특정한 신학적인 입장을 나타내는 전례본문들을 만들고 있다. 예를들면, 호주의 시드니교구는 1552년 기도서에 기초하여 현대영어로 표현한 성찬예식서(여러 예식들중에서)를 발행하였다. 이 예식서는 교구의 전례위원회에서 사용을 목적으로 발행하였으며, 주교나 관구의회의 공식적인 승인을 받지 못하였지만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성공회는 전례서에서 교리적 입장의 표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공인받지 않은 양식의 사용은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다. 더구나 현대의 과학기술은 이러한 본문들을 보다 쉽고 빠르게 출판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긴급한 문제가 될 것이다.

    7)전자자료들

    컴퓨터와 전자출판기기의 발달로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이 시대의 중요성은 15세기에 발생한 인쇄술의 발명으로 최초로 전례서의 단일화가 실현되었던 시대와 비교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컴퓨터는 이와는 반대현상을 일으키는 수단을 제공한다. 오늘날 전례형식은 임의로 변경, 재생산될 수 있다. 편집권은 이제 교회의 정규의회나 출판사가 아닌 컴퓨터 관리자에게로 이전되고 있다(Kraus, ‘Technology’와 Morris, ‘Cyberspace’참조). 그 결과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과거에도 지역별 사용례(전례local usage)은 전도구교회의 ‘미사예문’ (Mass Booklets)으로 나타났으며, <The English Missal>과 같은 책은 당시에도 널리 유통되었다. 그러나 컴퓨터의 워드프로세싱의 경우, 전례지도자는 공인된(또는 공인받지 않은) 전례 본문들을 손쉽게 편집하여 잘 정리된 예배의식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이 앞으로 성공회의 전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성공회는 한때 동일한 본문과 지시문을 공유하였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예배의 본문들은 관구마다 다르며, 한 전도구교회내에서도 다른 본문들을 사용하고 있다. 오늘날 지역별 사용례는 너무나 쉽게 정립, 해체될 수 있기 때문에, 매주일의 감사성찬례도 주일마다 내용과 형식을 달리할 수 있다. 성공회 전례의 통일성에 관하여 일부 학자들은 이를 커다란 가능성(기회)으로 생각하지만, 일부는 커다란 위험으로 인식한다.

    6. 결론

    지난 세기 동안에 감사성찬례의 거행은 활성화되었다. 세계성공회의 대다수 관구교회들은 감사성찬례에 대한 매우 폭넓은 이해를 반영하는 새로운 양식들을 사용하고 있다. 이제 똑같은 기도서 안에서도 단 하나의 고정된 본문만 규정하지 않는다. 각각의 감사성찬례 양식안에서도 예배에 필요한 여러가지 자료들과 함께 대안적인 어법들과 순서들 그리고 대안적인 성찬기도문들이 있다. 이제는 더이상 남성사제가 성소의 동쪽끝에 서서 거의 혼자서 예배를 주도하지 않는다. 이와는 달리 사제와 신자들은 성찬식탁에 함께 모인다. 감사성찬례를 거행하는 언어는 영어일수도 아닐 수도 있다. 평신도들은 성서독서를 낭독하고, 기도를 인도하며, 성찬의 분배를 돕는다. 이제 사제는 여성일 수도 있으며, 대다수 교회들에서 세례받은 모든 신자들-유아와 어린이들까지 포함-이 성찬에 참여한다.

    이러한 변화는 초대교회의 전례본문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초교파적인 자료교환과 각 성공회들간의 교류를 통해서 가능하였다. 성공회 예배의 폭넓은 전통에 대한 갱신(renewal)과 확장(enrichment), 그리고 특별히 감사성찬례의 거행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 1970년대와 80년대에 개정되었던 기도서들은 다시 개정되고 있다. 이제 가장 유용한 개정방법은 기존의 본문들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대안적인 본문들을 추가하는 것이다. 이는 곧 새롭게하기(갱신,renewal)로, 세계성공회 교회들은 빵을 뗌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찬양하며, 신앙을 깊고 풍부하게 만들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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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evenson, Kenneth. Do This. Norwich: Canterbury Press, 2002.

    2008년 12월 2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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