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 자유 토론

  1. 수도원 한 형제에게서 편지를 받았습니다. 성무일도를 드리다보니 여러 전례 성가를 부르는데, 영 이상한 번역이 1990년 성가에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 문제제기를 바탕삼아 다음과 같은 글을 적어 두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탄툼 에르고"(Tantum ergo)는 오래된 라틴 성가 "팡게 링구아"(Pange lingua)의 마지막 두 절로, 혹은 성체 강복식 때에 따로 떼어 부르는 성가이다.

    성공회 1990년 성가:
    - 팡게 링구아: 97장, 98장
    - 탄툼 에르고: 97-98장의 5-6절, 99장, 100장, 616장 성체 강복식

    "팡게 링구아"는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1절)과 그분의 삶(2절), 그리고 성찬례 제정(3,4절)을 연결시키고, 이를 구속사적인 의미로 해석한다. 그리고 나머지 두 절(5-6절)은 이 구속 사건에 대한 우리의 찬양 응답이다. 성체 안에 깃든 주님의 실재(5절)에 대한 찬양과 우리의 이해,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삼위일체께 영광을 돌리는 것으로 마친다(6절).

    그러니 이 '팡게 링구아'와 '탄툼 에르고'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을 기억하고, 이에 감사하여 드리는 예배인 우리의 전례를 매우 명확하게 전달하고 있다.

    그런데 1990년 성가에서는 이 가사의 원문에 대한 이해에 의심이 갈만큼 대폭 수정되어 있다. 애초에 라틴어로 된 말인데다, 이후에 영어로 번역되고, 이것이 다시 우리말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어떤 오해나 혼동이 있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겠다. 그런데 문제가 거기 있지 않은 듯하다는 것이다.

    1970년 성가에는 이미 이 성가의 번역이 1990년 성가보다 훨씬 많은 곡조와 함께 등장하고 있기때문이다.

    성공회 1970년 성가:
    - 팡게 링구아: 184 A, B.
    - 탄툼 에르고: (184 A. B.) 184 C, D, E, F. G.

    1970년 성가가 라틴어 원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1990년 성가는 단어나 문장, 의미에서도 사뭇 다르다. 지나친 의역일까? 아니면 창조적 해석일까?

    "탄툼 에르고"의 삼위일체 영광송인 마지막 절(2절, 혹은 6절)의 번역을 비교하면 이렇다.

    1970년:
    전능하신 주 성부께 존귀를 드리오며
    성부로부터 좇아 나오신 성자께 찬송 돌려
    일체되신 성신에게 같이 찬미할지라.

    1990년:
    성부 성자 하느님께 영광 환호 드리네
    우리 구원하셨으며 내내 축복 받을 분
    살과 피가 하나되어 받으소서, 내 찬송.

    도저히 같은 원문을 번역했다고 할 수 없다. 1990년 성가를 펴낸 [성공회 음악 연구 위원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런 대답이 가능하다. '말꼬투리 몇개가 중요한가? 우리 말로 의역해서 자연스럽게 전달되면 그만이지. 번역은 또다른 창작이 아닌가?" 이렇게만 대답한다면 그럴 만도 하겠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성공회 음악 연구 위원회]는 1990년 성가 일러두기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 대한성공회의 선교 및 교회 일치의 기본 정신에 따라 기독교의 여러 형제 교회에서 애창되고 있는 가사들은 거의 수정없이 수용함으로써 형제 교회의 신앙 전통에 대한 존중을 표하였고, 기타 가사들은 그 원전을 섭렵하여 라틴어, 영어, 독어, 불어, 일어 등의 원문에서 직접 번역하였으며, 더 나아가 러시아어나 희랍어까지 손을 뻗어 중역에서 비롯된 잘못을 줄이려고 노력하였다.

    넓은 배려와 더불어, 실로 대단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가 1990년 성가인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여전히 이 "탄툼 에르고"의 번역을 보면 위의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첫째, 이미 다른 교단에서 번역했기 때문에 그것을 "거의 수정없이 수용"한 것인가? 그런데 사실 1970년 성공회 성가에 이 가사가 번역되어 있고, 그것도 원문에 가깝게 번역되어 있다. 오히려 천주교의 번역은 축약형에 의역이다. 내가 알고 있는 한, 개신교는 이 성가를 번역한 적이 없는 듯하다.

    둘째, "원전을 섭렵하여 라틴어... 원문에서 직접 번역"해서 "중역에서 비롯된 잘못을 줄이려고 노력"한 결과가, 1990년 번역이라면, 이는 한참 잘못된 것이다. 이를 정말로 번역했다면, 이는 라틴어가 아니라 영어에서부터 헤깔렸음직하다. 다른 의역을 고사하고 "살과 피가 하나되어 받으소서, 내 찬송"이라는 말이 어떻게 가능한가? 게다가 이 마지막 절은 전통적인 삼위일체 영광송(Trinitarian Doxology)이다. 어떻게 이 평범한 구절을 오역할 수 있는가?

    셋째, 어떻게 삼위일체 영광송이 뻔한 이 구절에서 "성신"(성령)이 빠지게 되었을까? 신학적 무지인가? 사실 그 구절이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 1970년의 자연스럽고 정확한 번역을 두고 이 번역을 택해서 활자화했을까?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런 식의 지나친 의역은 '팡게 링구아'에서도 보인다는 것이다. 1970년 성가와 1990년 성가의 가사가 사뭇 다르다. 1990년 번역은 어떤 신학적 해석을 가미한 것으로 들리는 반면, 1970년 성가가 훨씬 원문에 가깝고 분명하다.

    의역을 나무라는 말이 아니다. 의역의 목적은 원문의 뜻을 좀더 잘 전달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번안이 아니다. 혹시 번안을 했다면 번안을 했다고 밝혀야 한다. "원문에서 직접 번역했고... 중역의 잘못을 줄이려고 노력했다"는 말이 허언이 되어서는 안된다. 게다가 이미 잘 번역된 1970년 가사가 있는 마당에, 그 까닭을 궁금해 할 수 밖에 없다.

    도대체 1990년 성가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참고로 "탄툼 에르고"만 언어별로 비교하면...

    라틴어 원문

    Tantum ergo Sacramentum
    Veneremur cernui:
    Et antiquum documentum
    Novo cedat ritui:
    Praestet fides supplementum
    Sensuum defectui.

    Genitori, Genitoque
    Laus et jubilatio,
    Salus, honor, virtus quoque
    Sit et benedictio:
    Procedenti ab utroque
    Compar sit laudatio.
    Amen.

    영어 번역문

    Down in adoration falling,
    Lo! the sacred Host we hail,
    Lo! o'er ancient forms departing
    Newer rites of grace prevail;
    Faith for all defects supplying,
    Where the feeble senses fail.

    To the everlasting Father,
    And the Son Who reigns on high
    With the Holy Spirit proceeding
    Forth from each eternally,
    Be salvation, honor blessing,
    Might and endless majesty.
    Amen.

    영어 직역문

    Let us, with heads bowed
    Venerate so great a Sacrament,
    And let the old practice yield
    To the new rite;
    Let faith provide a supplement
    For the failure of the senses.

    To the Begetter and the Begotten,
    Be praise and jubilation,
    Salvation, honour, virtue also,
    And blessing too,
    And let equal praise be to Him,
    Who proceeds from Both.
    Amen.

    1970년 성가

    비길데 없는 성사를 경배하옵나이다.
    구약제사 다 지나고 신약성사 가운데
    눈으로 못보는 예수 계신 줄 아나이다.

    전능하신 주 성부께 존귀를 돌리오며
    성부로 좇아 나오신 성자께 찬송 돌려
    일체되신 성신에게 같이 찬미할지라.
    아멘.

    1990년 성가

    지존하신 성체 앞에 경배드리나이다.
    오랜 계약 이뤄지고 새 언약을 주셨네
    감겨있는 마음의 눈 크게 뜨게 하시네

    성부 성자 하느님께 영광 환호 드리네
    우리 구원하셨으며 내내 축복 받을 분
    살과 피가 하나되어 받으소서. 내 찬송
    아멘.

    "Tradition is living faith of the dead, Traditionalism is dead faith of the living."
    2009년 1월 26일 #
  2. kdhhdo
    회원

    참고하시라고 천주교 성가집에서 번역을 빌려옵니다.

    가톨릭성가 192. 지존하신 성체

    1) 지존하신 성체 앞에 꿇어 경배 드리세 묵은 계약 완성하는 새 계약을 이뤘네 오묘하온 성체신비 믿음으로 알리라

    2) 영원하신 성부성자 위로자신 성령께 구원 받은 환희로써 영광 찬미드리세 무한하신 권능권세 영원무궁 하리라 아멘

    2009년 10월 16일 #
  3. khdhdo 님 / 고맙습니다. 글을 쓸 때 천주교의 해당 성가를 살폈습니다만, 인용하지는 않았습니다. 보는 분들이 참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2009년 10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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