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 설교 자료

  1. 부활 3주일 - 다해

    제 1독서: 사도 5:27b-32, 40b-41 RCL: 사도 9:1-6 (7-20)

    말씀을 선포했다는 죄목으로 사도들은 체포되어, 설교 중지 명령을 받는다. 그러나 그 뒤에 나오는 사도들의 대담한 저항은 순교의 상황에 직면하는 모든 교회에게 지속적으로 큰 감화를 미쳤다. 사도들은 이렇게 응답한다. “사람에게 (사람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보다 오히려 하느님께 복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동시에 사도들은 산헤드린에서 말씀을 전한다. 이로써 루가 기자는 초기 그리스도교 케리그마의 또다른 편린을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다.

    가장 돋보이는 장면은 “이중 증인”(double witness)에 관한 개념이다. 즉 사도들과 성령이다 (요한 15:26-28 참조). 성령과 사도적인 말씀, 두 가지 모두가 필요하다. 성령이 없이는, 그 전하는 말씀은 죽어버린 상투어에 불과하다. 더이상 당대의 상황에 대해 의미있게 이야기할 수 없다. 한편 말씀이 없이는, 성령은 통제 불가능한 광신주의에 빠지게 되어, 그리스도 사건에 관한 본래의 증언을 상실하게 된다.

    RCL 본문에 대한 해설은 성 바울로의 회심 축일 독서를 보라 (527-528쪽).

    제 2독서: 묵시 5:11-14

    이 장면은 하늘 위에서 벌어지는 전례(천상 전례)에 대한 요한의 환시이다. 이 점에서 교회가 땅 위에서 드리는 전례(지상 전례)는 이 천상 전례의 반영이다 (성찬기도 서문을 보라. 네 생물들과 원로들은 지상 교회 안에서 전례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리스도를 일컬어 “어린 양”이라 부른다. 즉 과월절 양이다. 이 전승은 1고린 5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것은 실제 초기 그리스도교 파스카 전례의 한 편린일까?

    복음: 요한 21:1-9

    이 이야기는 대체로 요한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요한 복음서에 덧붙인 부록이라는 견해가 일반적이지만, 초기 전승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다는 점이 매우 놀랍다. 이 이야기의 근원은 아마도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열 두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의 현현으로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식사라는 맥락에 배치되어 있다. 초기 어느 단계에선가 이 본래 이야기는 예수의 지상 사목 활동 속에서 일어난 엄청난 고기잡이 기적과 결합된 것이다 (루가 5장). 예수의 현현 이야기를 예수의 지상 생애에 되돌려 반영시킨 것이 그 고기잡이 기적 이야기라는 주장이 없지 않으나, 현 연구 동향에 따르면, 요한 21장은 지상에서 일어난 그 기적 이야기를 부활의 맥락에서 다시 조명한 것이다. 복음서 기자가 설명하고 있지 않긴 하지만, “153”이라는 상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숫자는 제자들이 선교 위임에 따라 시작한 교회의 선교 활동(선교사, 선교지)와 어떤 관련이 있는게 분명하다.

    15-19절에서 우리는 아주 초기 전승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또다른 이야기를 만난다. 그 초기 전승은 바로 예수께서 제자들 가운데 첫째인 베드로에게 나타나시어 그리스도의 양들을 돌보라고 당부하신 이야기이다 (마태 16:17-19과 루가 22:31-32 을 보라). 베드로의 순교에 대한 예언을 담은 마지막 문단이 이 초기 전승에 부가된 것이다 (신약성서학자들은 이를 사후 예언 형식 ex eventu 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베드로의 순교에 관한 가장 오랜된 전거이며, 신약성서에서도 유일한 언급이다.

    설교

    설교자는 제 1독서에 나타난 “이중 증인”에 관한 개념 (사도적인 말씀과 성령)을 선택할 수 있겠다. 카리스마적인 열광에 기울어져 있는 교회나, 다른 한편으로 영적으로 침체되어 있는 교회에서 도움이 될 수 있다.

    묵시록의 독서 본문은 교회의 전례가 영원한 천상 전례의 반영이라는 하나의 해석을 제공한다. 여기서 설교자는 성찬기도에 들어있는 친숙한 용어들을 사용하여 그것을 조명해 볼 수 있겠다.

    복음서 본문을 통해서 설교자는 교회의 보편적 선교 사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153 마리의 서로 다른 모든 종류의 물고기가 의미하는 바를 나눌 수 있겠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에 새롭게 들어오는 사람들을 “우리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구분하는 줄을 그을 수 있는 것일까?

    "Tradition is living faith of the dead, Traditionalism is dead faith of the living."
    2007년 4월 8일 #
  2. 관련 성가 선곡

    104장 면류관드리자
    (묵시록본문과 잘 어울리고, '천상전례의 반영'리나 점이나 곡이 전체적으로 우렁차고 장대하며, 4/4박자의 곡으로, 내용도 수직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 입당성가로 적당하다.)

    300장 선한 목자 내 주 예수
    (부활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음식을 먹이시는 모습은 제자들을 불러모으시던 때의 기억을 상기시키고 언제나 선한 목자가 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300장 2절의 가사 '맛난음식 먹이사 고이길러 주시오니 주님 감사합니다.' 부분이 음식을 직접하여 집어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곡의 길이로 보았을 때 층계성가로 적당하다.)

    120장 죽음의 권세 이기고
    (부활 후 해변에 나타난 복음의 기사를 그대로 담고 있는 성가이다. 곡조는 1728년 프랑스 노래이며, 노대영 주교님께서 가사를 붙인 것으로 판단된다. 3/4박자의 곡이며 분위기가 침착하다. 설교 후에 봉헌성가로 적당하다.)

    520장 예수는 나의 힘이요
    (예수님은 나의 '힘, 생명, 친구, 기쁨, 소망'이 되시니 아무 염려없으며, '그 명령을 준행하여 늘 충성'하는 것이 나의 기쁨이라는 고백과 확신에 찬 곡이다. 요한복음서는 예수님의 승천기사가 없다. 다만, '나를 따르라'는 말로 끝을 맺고 있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는 부활하시고 승리하신 예수님을 잘 드러내기 위해서 일 것이다. 설교와 성찬으로 힘을 얻고 이제 이 세상으로 파송되는 시점에 확신에 찬 파송성가로 적당하다. 다만, 3/4박자의 곡으로 자칫 느러질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하여야 한다. 당김음으로 되어 있는 만큼 늘어지지 않게 부점을 살려 약간 빠르게 부르면 좋을 것이다.)

    선곡을 해 보았습니다. 지적과 수정, 제안을 환영합니다. 평화~

    2007년 4월 18일 #
  3. 지난 주일에 추천해주신 성가 두곡을 이용했습니다. 주제에 아주 딱 들어맞는 선곡이었어요. 감사합니다. 오는 부활 4주일도 부탁드립니다. ㅎㅎ

    2007년 4월 2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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