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 번역 프로젝트 자료

  1. Cranmer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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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인도교회의 유산
    Colin Buchanan

    남인도교회(Church of South India, CSI)는 1947년 세가지 교파교회들의 통합으로 설립되었다. 즉 성공회와 감리교, 그리고 남인도 연합교회(장로교회와 조합교회의 연합체). CSI는 1919년부터 시작하여 28년간의 협상을 통해서, 결국 통합전에 헌장을 작성하고 통합후에 전례적인 형태 즉, 예배와 성사들에 관한 쟁점들과 그, 본문들을 작성하기로 결정하였다. 이 교회는 성공회와 비주교제교회, 전례적인 교회와 비전례적인 교회간의 통합을 나타내는 첫번째 사례가 되었으며, 또한 각 교회들의 물려받은 전통들에 대한 개정이 불가피하였다.

    헌장의 구성요소들

    1932년까지 헌장의 형태에 대한 협상은 대체로 결론지었으며, 전례에 관한 중요한 문서는 ‘서약’(Pledge)이었다. 서약의 핵심은 이 문장이었다. 즉, ‘신자 공동체가 익숙하지 않거나, 양심상 반대하는 예배나 의례들 그리고 사목직을 신자공동체에 강요할 수 없다.’이는 비전례적인 신자공동체에 전례적인 형태를 강요할 수 없으며, 마찬가지로 주교제 신자공동체에 주교에 의한 서품을 받지않은 성직자를 승인하도록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이러한 보호조항을 통해서 서로 다른 신자공동체들이 과거에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것들을 환영할 수 있기를 희망하였다. 서약의 이 문구는 참여한 교회들의 신뢰를 획득하는데 중요하였다.
    헌장의 제2장은 ‘교회의 통치원칙들’(Governing Principles of the Church) 이란 제목으로, 제12항에 ‘남인도교회의 예배’를 규정하였다. 이 항목은 서약 (Pledge)을 재확인하면서 제10장(‘교회의 예배’)을 지적하며, 서품예식과 축성예식에 관한 규정들, 그리고 다른 예식들-특히 세례예식, 감사성찬례와 결혼예식-의 필수요소들을 준수한다면, ‘모든 사목자와 신자공동체는 그들의 공적인 예배의 형태를 스스로 결정할 자유를 갖는다’고 진술하였다. 제10장은 주로 감사성찬례에 관심하였다. 먼저 세례예식의 경우 세례 공식문과 신경의 사용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간단히 언급한 후에, 제2항에서 모든 교회들-세 교파교회들-이 성찬의 전례에서 지켜야하는 9가지 필수요소들을 적시하였다. 이들은 ‘하느님의 영광과 자애에 대한 감사, 그리스도의 출생, 생애, 죽음, 부활 그리고 승천을 통한 구원활동, 그 다음에 성사의 제정에 대한 그리스도의 언급(제정사 포함), 그리고 이 성사에서 주께서 우리에게 주려는 성찬의 허용을 청원하는 기도와 함께 빵과 포도주에 대한 성별’을 포함하였다. 이 항목은 수르숨 꼬르다와 삼성경으로 시작하는 것을 제시한다.

    아마도 남인도 밖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본문에서 표현된 상당수는 후에 세계성공회 교회들에서 표준이 되었지만, 참여한 다른 교파교회들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다.

    공식적인 통합

    남인도교회의 창립예배는 1947년9월27일 마드라스에서 거행되었다. 예배의 제1부에서 참여한 교회들은 헌장을 공식적으로 승인하며 실질적인 통합을 수립한 후, 현직의 주교들과 사제들(presbyters)을 통합교회의 성직자로 임명하였다. 제2부는 잉글랜드 성공회 기도서(1928년 기도서를 직접 언급하였다)에 거의 전부를 의존한 남인도교회의 ‘첫 새로운 주교들을 축성하는 형식들’과 성찬례 본문(1662년 양식의 순서와 거의 일치하는 개요만을 제시)이었다. 처음부터(그리고 지금도) CSI 전례의 독특한 특징은 주교축성 후보자의 안수에 사제들이 참여하는 것이었다. 순서지에는 또한 사제서품예식(항상 ‘presbyter’라는 용어만을 사용 하였다)도 포함였는데, 1662/1928년 기도서 양식과 거의 동일하였지만, 주교축성 예식처럼 앞으로 사용할 예정이었다.

    감사성찬례 양식

    CSI총회(General Synod)는 1948년초에 레슬리 브라운(Leslie Brown)을 위원장으로 하는 전례위원회를 구성하였으며, 그 첫 작업으로 다음 총회 (1950년 1월)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감사성찬례 양식의 작성을 요청하였다. 이제 서로 다른 전통의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양식은 창립예배 양식들과는 달리 성공회의 전통에 보다 유연하여야만 했다. 물론 위원회는 다양한 회원들로 구성되었지만, 착상을 위하여 주로 두가지 외부자료들을 사용하였다. 첫번째 자료는 인디아[인도]의 정교회 전통에서 사용해온 성 제임스의 전례(Liturgy of St James)였다. 이 전례서를 사용할 때, 위원회는 1920년에 J.C. 윈슬로우(Winslow)와 E.C. 래티클리프(Ratcliff) 등이 펴낸 ‘봄베이 전례서’(Bombay Liturgy)란 저서에서 많은 선례들을 찾을 수 있었다. 두번째 자료는 그레고리 딕스의 <전례의 구성>(The Shape of Liturgy, 1945년에 출판)이었다. 이는 딕스의 원리들이 처음으로 전례서 작성에 사용된 경우였다(물론 T.S. 가레트[Garrett]는 ‘우리는 그의 책을 비판적으로 수용하였다’고 말하였지만). 총회는 위원회의 결과를 환영하며, 이를 ‘특별한 경우[행사때]에 선택용이자 실험적으로 사용’하도록 승인하였다. 그리고 책으로 출판되었을 때, 본문들은 남인도교회내에서 널리 확산되었을 뿐만아니라 세계적인 관심사가 되었다.

    CSI전례서의 중요한 독특한 특징들은 다음과 같다.
    (a) 집례자(presbyter)는 회중들과 마주 보고 집례할 것을 권고하였다
    (b) 세가지 성서독서-구약성서, 서신 그리고 복음-을 규정하였다
    (c) 중보기도(intercession, 신자들의 기도)는 비전례적인 전통의 교회들처럼 즉석기도로 할 수 있었다
    (d) 회중들의 ‘평화의 인사’(peace)가 종교개혁이후의 전례서에서 처음으로 포함되었다. 이와함께 인사를 나누는 방식(앞줄에서 뒷줄로 지나가면서)을 지시하고, 양식에서 이를 순교자 저스틴의 사례처럼 성찬의 전례 직전에 배치하였다
    (e) 전례의 구성은 딕스를 따라 성찬의 전례를 다음의 순서로 배열하였다-식탁의 준비, 감사기도, 빵의 뗌, 그리고 배찬(하지만 지시문에서 ‘봉헌례’ [offertory]를 앞의 헌금수집과 이를 성찬식탁에 올려놓는 것으로 한정하였다)
    (f) 성찬기도를 ‘감사기도’(the Thanksgiving)이라고 명칭하였으며, ‘축성기도’ 라는 용어-성공회의 일반적인 용어였다-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g) 흥미로운 시도로 전 회중들이 함께 낭독하는 감사기도 시작문을 부분적으로 옛 스페인 지방교회(Mozarabic)의 자료들에 의존하여 작성하였다. 즉, ‘선한 대제사장이신 주여, 당신의 제자들에게 오셨듯이 우리에게 오소서, 우리에게 오셔서 빵과 포도주의 나눔[뗌]에 당신께서 우리와 함께하소서. 살아계시고 통치하시는…’(‘From “the Breaking of the Bread”, Liturgy of the Church of South India’ 참조)
    (h) 감사기도 안에 있는 회중들의 응답들은 인도의 시리아 정교회 전통예식을 따라, 제정사 다음에 (오 주여, 우리가 당신의 죽음을 기억하며, 당신의 부활을 고백하고, 당신의 다시오심을 기다리나이다…) 그리고 아남네시스 다음에 (오 우리 주 하느님, 우리는 당신께 감사들며, 찬양하며, 영광을 돌리나이다) 배치하였다
    (i) 아남네시스는 이 예식의 핵심이 하느님께 빵과 포도주를 바치는 것(offering) 이라는 암시를 모두 삭제함으로써 새로운 시대를 개막하였다. 대신에 이를 단순하게 ‘우리는 당신을 기억하며 이를 행합니다’라고 진술함으로써 주님의 명령에 응답하는 것으로 진술하였다

    전례위원회는 이후 수년동안 이 양식에 대한 작업을 계속하였다. 먼저 남인도 지방의 네가지 주요 언어-타밀어(Tamil), Telegu, 말라바어(Malayalam), 그리고Canarese-로 이 본문들을 번역한 후에 이를 약간 개정하여 1954년판으로 발행하였으며, 마지막으로 절기별 본문을 추가하여 1963년의 <공동예배서>(Book of Common Worship)에 포함시켰다.

    인과관계를 규명하기는 어렵지만, CSI의 감사성찬례 양식의 원리들이 성공회 예배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였다. 레슬리 브라운 조차도 이 전례서로 인하여 로마 가톨릭교회가 제정사 다음에 신자들의 환호응답을 배치하고 평화의 인사를 복원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브라운의 개인적인 영향력은 강력하였다. 그는 1952년에 우간다주교가 되었으며, 1958년 람베스회의에서 전례개정 소위원회의 간사 (secretary)로 임명되었다. 람베스회의의 권고사항에는 CSI양식의 특징들 다수가 포함되었지만, 흥미롭게도 평화의 인사는 언급되지 않았다. 1958년이후 이러한 여러가지 요소들이 세계성공회의 각 관구교회들의 개정기도서에 정착하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였다. 특히 레슬리는 <아프리카 전례서>(Liturgy for Africa, 1964)의 주 집필자가 되기도 하였다. 이 전례서는 람베스회의의 권고사항들중 극히 일부만을 수용하였으며, 아프리카의 관구교회들에서는 널리 사용되지 않았지만 그 본문들은 각 관구에 널리 통용되어 새로운 출발점이 되었다.

    성직서품예식

    남인도교회의 초기 성직서품 양식들은 주로 1662년 기도서 양식에 크게 의존하였지만, 1950년대에 전례위원회는 새로운 양식을 집필하여 1958년 총회에서 승인을 받았다. 이 양식들은 즉시 사용되기 시작하여 1963년의 <공동예배서>에 포함되었다.

    1662년 기도서의 서품양식에서는 주교가 집례하며, 무엇보다도 권위의 양도(handing on)에 관심하였다. 즉, 서품은 기도없이 안수에 의해서 집행된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남인도교회의 새로운 서품양식들의 핵심은 중요한 서품기도(great ordination prayer)로, 안수행동을 위한 배경(framework)과 분위기 (accompaniment)를 제공하였다. 이러한 중대한 변화과정에서 ‘너의 권위를 받아라’ (Take thou authority)에 대한 강조는 기도로 전환되었을 뿐만아니라, ‘당신의 용서로 그들의 죄가 용서될 것이다’(whose sins you forgive they are forgiven) 라는 책임부여(charge)는 본문에서 사라졌다. 이 책임부여는 중세기의 서품양식에서 보조적인 역할이었지만, 크랜머의 양식에서는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이제 개정된 서품양식에서는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었다. 이 때문에 심각한 오해를 불러 일으켰다.

    이러한 중대한 변화는 또한 1958년 람베스회의에서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이때에 1950년대의 CSI 전례위원회에 참여한 주교들이 직접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 이후 이 서품양식은 1965-68년에 잉글랜드의 성공회와 감리교의 통합계획의 일환으로 설립된 성공회-감리교 통합위원회에서 두 교회에서 공동으로 사용할 서품양식으로 검토되었다. 이 통합계획은 실패하였지만, CSI양식에 기초한 서품양식은 널리 수용되었다. 이 양식으로부터 잉글랜드성공회는 ‘Series 3’의 서품양식을 준비하였으며, 이후에 <대안예식서>(1980)에 포함하였다. 현재에는 약간 수정되어 사용되고 있다.

    기타 전례예식들

    전례위원회는 1948년부터 1962년까지 세례, 견진례, 결혼례 그리고 장례 예식등 많은 다른 예식들에 대한 제정작업을 수행하였다. 이 양식들은 먼저 영문으로 작성된 후에 4가지 주요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그 후 1963년 예배서에 통합되었다. 1962-64년 동안에 전례위원회는 각 예식들의 부록(supplement)에 대한 작업을 수행하였으며, 1963년 총회에서 이를 승인 받은 후 <공동예배서: 부록 1>으로 출판하였다.

    1968년 이후 전세계의 영어권 교회들은 전례에서 하느님을 ‘thee’나 ‘thou’ 대신에 ‘you’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남인도교회의 모든 예식들은 전반적으로 4가지 지방어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추가 개정이 필요없었다. 오히려 영문양식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표현을 1972년에 개정하였다. 이 영문양식은 여전히 서구적인 분위기였기 때문에, 1984년에 영문으로 실험적인 감사성찬례 양식을 출판하였다-이 양식은 영문을 현대화하였다기 보다는 전체 양식을 보다 인도식으로 개정하였다. 인도라는 독특한 상황이 의미하는 바는 곧 세계성공회와 남인도 교회와의 관계가 이런 저런 양식 또는 본문의 구성 보다는 토착화(indigenization) 와 관련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CSI전례서가 처음 출판된 후에도 1662년 기도서와 다른 예배서들이 자유로이 계속 사용되었던 것처럼, 오늘날 인도의 영어권에서 1950년의 양식은 지속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참고문헌
    Brown, L.W. Relevant Liturgy.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65.
    Buchanan, Colin, ed. Further Anglican Liturgies 1969-1975. Bramcote, Nottingham: Grove Books, 1987.
    _______, Modern Anglican Ordination Rites. Joint Liturgical Studies 3. Bramcote, Nottingham: Grove Books, 1987.
    Garrett, T.S. the Liturgy of the Church of South India. 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1954.
    _____, Worship in the Church of South India. London: Lutterworth, 1958.
    Ratcliff, E.C. ‘The Ordinal of the Church of South India’, in E.C. Ratcliff: Liturgical Studies, ed. A.H. Couratain and D.H. Tripp. London: SPCK, 1976, 173-83.
    Sundkler, Bengt. Church of South India: The Movement Towards Union 1900-1947. Lutterworth Press, 1954.
    Ward, Marcus. The Pilgrim Church. 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1953.
    Wigan, Bernard, ed. The Liturgy in English. 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1962 and 1964.

    2009년 2월 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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