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 번역 프로젝트 자료

  1. Cranmerian
    회원

    교리교육서들(Catechisms)
    James F. Turrell

    교리교육서는 일반신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그리스도교 교리의 안내책(manual)으로 정의되어 왔다. 그러나 교리교육서는 순수한 신학의 발표 그 이상이다. 교리교육서의 내용은 잉글랜드의 경우 도덕과 신앙생활 등등의 영역에 대한 발표로까지 확대되었다. 이와 동시에 이러한 발표의 형식은 대부분의 경우 일련의 항목별 서술형식보다는 질문과 대답의 형식이었다. 따라서 교리교육서는 정의상 간단한 신앙교육서이다. 이 책은 그리스도교 신학의 구체적인 내용을 전달하려 하지 않는다. 실제적으로 교리교육서는 저자(들)의 입장에서 그리스도교 신앙과 생활의 가장 중요한 사항들만을 해설한 책이다.

    교리교육, 또는 교리와 신앙활동(practice)의 기본사항들을 교육하는 과정은 초기교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교회는 그리스도교에 들어온 입문자들을 ‘예비신자’ (catechumens)로 분류하고, 이들에게 교회의 제한적인 신자지위를 부여하고 장기간의 교육과 감독-길게는 3년-을 거친 다음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교육하였다. 이러한 전반적인 과정을 ‘예비신자 교육과정’(세례준비과정catechumenate)이라고 하였다. 이 용어는 20세기에 다시 사용되기 시작하여 새로운 신앙인들을 양육하는 학습과 숙고, 조언하는 과정을 표현한다. 중세말기에 이르러 예비신자들에 대한 구두교육에 사용된 형식을 때때로 ‘교리교육’(catechism)이라고 하였다. 독특한 질문과 답변 형식은 근대초기시대에 시작되었으며, 특히 대륙의 종교개혁의 가장 유명한 교리교육서인 마틴 루터의 <소교리교육서>(Shorter Catechism, 1529)로 대중화되었다. 일부 프로테스탄트 교리교육서는 단순한 질문과 대답 형식을 회피하고, 교사와 학생 사이의 대화체로 저술되었지만, 루터의 질의-응답 형식이 곧 일반적인 형식이 되었다.

    근대초기시대의 잉글랜드 교리교육서들은 전반적으로 대륙의 프로테스탄트들의 사례를 채택하였다. 대다수는 질문과 대답의 형식이었지만, 일부는 대화형식을 사용하였다. 이안 그린(Ian Green)의 연구서 <그리스도인의 기본사항; 잉글랜드의 교리교육서와 교리교육, 1530-1740>(The Christian’s ABC: Catechisms and Catechizing in England c. 1530-1740)에 의하면, 근대초기시대에 사용된 잉글랜드의 교리교육서들은 상당수였다. 공동기도서에 수록된 교리교육서는 이 시기의 기본적인 교재였으며, 기타 교리교육서들은 기도서 교리교육서의 내용을 확대하여 설명하고, 보다 쉬운 말로 표현하였다. 교리교육서들의 내용에 대한 그린의 집중적인 연구에 의하면, 각 교리교육서들의 내용중 대부분은 일치하며, 잉글랜드 프로테스탄트들 사이의 치열한 쟁점인 예정론과 의식들과 같은 문제에 대해서 온건하게 서술하였다.

    이 시기에 기도서의 교리교육서만이 유일한 영문 교육서가 아니었으며, 또한 유일하게 공식적으로 인가된 교육서도 아니었다. 알렉산더 노웰(Alexander Nowell)의 교리교육서(1570)는 베스트 셀러였으며, 공식적으로 인가받은 교육서가 되었다. 그러나 기도서의 교리교육서는 많은 사람들이 소유한 기도서에 포함 되었다는 이유로 가장 보편적인 교리교육서가 되었다. 이 교육서는 또한 어린이학교 교육교재인 <The ABC with the Catechisme>(1551)과, 신심도서인 <The Primer and Catechisme>(1570)에 다시 수록되었다. 이 두 책은 수년동안 여러차례 대량으로 인쇄되었다.

    기도서의 교리교육서는 노웰의 그것과는 달리 매우 간결하였다. 이와 같은 형식은 이후의 시기에도 지속되었다. 이 밖의 많은 교리교육서들-특히 조지 인즈의 교리교육서나 <The Church Teacher’s Manual of Christian Instruction>-은 보충도서로 사용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서에 수록된 교리교육서는 가장 널리 보급되었다.

    1549년 첫 기도서의 교리교육서는 ‘견진례, 그리고 어린이를 위한 교리문답’이라는 제목 아래에 수록되었으며, 교리교육서의 제목은 ‘교리교육서, 즉 모든 어린이들이 주교의 견진례 이전에 배워야 할 내용’이었다. 첫 기도서 교리교육서의 내용은 사도신경과 십계명, 주기도문과 이를 설명하는 항목들로 특히 세속 군주들에 대한 복종과 신실한 생활의 의무를 강조하였다. 1552년의 개정 기도서에서는 십계명의 각 항목에 성서적 전거와 해설을 추가하였다. 1604년에 개정된 기도서에는 개혁주의 교리들중에서 두가지 성사만을 주장하는 항목을 추가하였다. 1662년 기도서는 성사에 대한 항목의 대답을 확대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서술하였으며, 나머지는 문체만을 수정하였다. 그러므로 기도서의 교리교육서는 1549년부터 1662년의 개정판까지 근본적인 변화없이 유지되었다.

    기도서의 교리교육서는 잉글랜드교회가 북아메리카 식민지로 확장한 이후부터 세계성공회에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미국의 독립이후, 1662년기도서의 교리교육서는 당연히 이 지방의 교리교육서를 발전시키는 출발점이었다. 미국성공회의 경험은 이러한 모형(방식, pattern)의 대표적 사례이다. 먼저 미국성공회는 대부분의 지방에서 1549년 교리교육서의 1662년 개정판을 그대로 유지하였으며, 1789년 미국기도서의 제정때에 몇가지만을 수정하였으며, 1892년의 개정 기도서때에는 그대로 보존하였다. 1928년 기도서에서는 교리문답을 ‘Offices of Instruction’로 개정하며, 직설적인 문답형식을 공적인 예배형식으로 전환하기 위하여 기도문들과 응답문들(responses)을 추가하고, 교회의 본질과 사목의 성직에 대한 새로운 자료들을 추가하였다. 또한 이 새로운 자료들을 제거한 문답형식의 교리교육서는 기도서의 끝부분에 ‘교리교육서, 즉 모든 신자들이 주교의 견진례 이전에 배워야 할 내용들’이란 제목으로 다시 수록하였다. 1979년의 기도서는 이를 ‘신앙의 개요’(An Outline of the Faith)라는 제목으로 바꾸고, 교리교육서와 견진례를 분명하게 분리시켰다. 1979년의 교리교육서는 과거의 교리교육서의 내용을 대폭 개정하고 많은 새로운 자료들을 추가하였다.

    교리교육서를 공식예배서안 포함시키는 것은 외견상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왜냐하면 교리교육서는 교육용 교재이고, 기도서는 예배에 사용되는 예식문들의 모음집이기 때문이다. 잉글랜드교회에서 교리교육서를 사용한 사례는 이러한 이유 [병렬]를 부분적으로 설명한다. 첫째로, 1549년의 첫기도서부터 교리교육은 견진례를 준비하는 과정으로 규정되었다. 지시문에 따르면, 견진례는 교회의 성찬에 참여하는 필수적인 전제조건이었다. 둘째로, 교리교육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식 활동으로 구성되었다. 이런 이유들을 고려할 때, 교리교육서를 기도서안에 포함시킨 것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다.

    잉글랜드교회의 첫 기도서부터 교리교육서에 관한 지식은 견진례의 필수적인 전제조건이었다. 또한 견진례는 성찬참여의 필수조건이었기 때문에, 각 신자의 신앙적 성장과정의 정규적인 단계가 되었다. 1549년 기도서부터 1662년 기도서까지 지시문은 ‘그리고 누구든 견진례를 받기전까지는 성찬의 전례에 참여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였으며, 1552년 기도서부터는 교리교육서의 내용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분명한 조건을 추가하였다. 1662년 기도서에서야 ‘또는 견진례를 준비하는 자’를 추가하여 이 전제조건의 예외를 인정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진례의 전제조건은 16-7세기에 간헐적으로만 집행되었다. 1630년대에 의례주의자(ceremonialist)인 윌리엄 로드 대주교를 지지하는 일부 주교들은 견진례를 성찬참여의 전제조건으로 엄격히 집행하였으며, 17세기 말기에 몇몇 주교들은 사목자들에게 지역별 견진례 행사에 후보자들을 보내도록 지시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교회 지도층[주교들]은 견진례를 성찬참여의 전제조건으로 집행하는데 무관심하였다.

    대신에 교리교육서에 관한 지식은 성찬참여의 필수적인 전제조건으로 채택하였다. 주교와 교구당국자들은 방문조사 목록들(visitation articles)-각 전도구교회가 기도서의 지시문, 교회법률, 국왕과 교구의 명령문 등을 제대로 이행하는지를 점검하는 조사항목들-에서 무자격자들의 성찬참여를 허용하였는지를 조사하도록 요구하였다. 또한 이 방문조사 목록들은 교리교육서에 대한 지식을 성찬참여의 자격결정에서 중요한 기준으로 인식하였다. 더 나아가 이 목록들은 교리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성직자들이 전도구교회의 청소년들을 열심히 교육하는지를 질문하였다. 교회법원들은 이의 준수여부를 조사하고, 교리교육에 태만한 사목자들을 견책 또는 처벌하였다. 집행기관들은 대체로 견진례를 무시하였지만, 교육받지 않은 자들의 성찬참여를 금지시켰다. 교리교육-견진례가 아니고-은 18세기 이전까지 잉글랜드교회의 성인신자가 되는 필수적인 통과의례가 되었다.

    북아메리카 식민지의 성공회 성직자들도 이와 똑같은 기준을 사용하였다. 더구나 식민지에는 주교들이 없었기 때문에, 성직자들은 기도서의 지시문에 관계없이 성찬참여 이전에 견진례를 요구하지 않았다. 정말로 복음전도회(Society for the Propagation of the Gospel) 출신의 뉴잉글랜드 선교사들은 당시 식민지교회를 관할하는 런던주교에게 세례예식때에 대부모에게 어린이를 견진례로 인도하도록 요구하는 권고문을 생략할 수 있도록 요청하였다. 이 편지에서 선교사들은 같은 지방의 회중교회 신자들이 성공회의 기도서가 불가능한 일을 요구한다고 비웃는다고 지적하였다. 대신에 선교사들과 다른 성직자들은 청소년들을 교리교육시키며, 이를 통해서 교회의 성인신자로 성장하도록 준비하였다. 1784년에 사무엘 시베리(Samuel Seabury)의 주교축성이후(1785년에 커네티컷으로 귀국)에야 북아메리카에서 견진례가 가능하였으며, 그는 열심히 견진례를 집례하였지만 모든 주교들이 그렇지는 않았다. 잉글랜드나 북미주에서 성공회의 견진례는 근대초기시대 대부분 동안에 가끔식 시행되는 예식이었으며, 대신에 교리교육은 성인으로 성장하는 통과의례로서 사용되었다.

    기도서의 교리교육서는 근대초기시대에 성직자들이 전도구교회의 청소년들을 매우 공적인 방식으로 교육하는데 사용되었다. 방문조사의 신고서들(returns)-전도구교회의 사목자와 교회회장들이 방문조사 목록들에 대하여 주교에게 보낸 답변서들-은 일반적으로 주일 오후에 실시하는 정기적인 교리교육 시간을 포함하였다. 대다수 성직자들은 이 과제를 성실히 수행하였으며, 대다수 가정들은 자녀들과 하인들을 정기적인 교리교육과정에 출석시켰다. 기도서들(1549부터 1662까지)의 지시문은 교리교육을 저녁기도전 반시간 동안 ‘교회에서 공개적으로’ 실시할 것을 규정하였기 때문에, 교리교육은 교회에서 공적으로 때로는 다른 신자들과 함께 실시되었다.

    1622년 제임스1세는 저녁기도의 설교를 교리교육서의 항목에 대한 설명으로 대체할 것을 지시함으로써, 교리교육서의 공적인 성격을 강화하였다. 1630년대의 경우, 일부 교회에서는 주교의 방문조사 목록들의 요구에 따라 저녁기도의 설교 대신에 교리교육을 실시하였다. 1662년 기도서는 이러한 사항을 새로운 지시문에 포함시켜 교리교육을 저녁기도 직전이 아니라 제2독서 직후에 공개적으로 실시하도록 규정하였다. 이는 신자들이 모두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교리교육은 대본(교리교육서)을 따르는 공적인 신앙활동으로, 전례와 밀접하게 연관되거나 그 안에서 실시되었다. 이 모든 것들은 교리교육을 견진례와는 전혀 관계없이 그 자체로 예식화된 활동(ritualized activity)으로 특징지었다.

    이후의 시기에도 이와 비슷한 형식은 지속되었다. 교리교육은 여전히 성직자의 중요한 의무였으며, 기도서의 교리교육서에 대한 공적인 교육활동은 일반화되었으며, 특히 18세기말과 19세기초에 미국과 영국을 통해서 확산된 주일학교에서도 실시되었다. 미국에서는 교리교육을 예배중에 실시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공적인 성격을 유지하였다. 즉 정기적인 주일학교의 교리교육후에 어린이들은 많은 신자들이 모이는 공개적인 시험에서 교리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이와 동시에 19세기에 일어난 영국의 복음주의 부흥운동은 가정에서의 신앙교육을 강조하였기 때문에, 이제 가정에서도 교리교육을 실시하였다.

    하지만 견진례는 교회생활에서 점점 중요해졌으며, 이제 성찬참여의 전제조건으로 강화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잉글랜드에서 18세기 초반부터, 북미주에서는 19세초에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서로 다른 이유였지만 복음주의자들과 앵글로 가톨릭들의 수용으로 1970년대까지 지속되었다. 이 기간 동안에 교리교육은 전반적으로 견진례 예식에 종속되었으며(특히 앵글로 가톨릭들에 의해서), 기도서의 교리교육서-또는 이를 기준으로 확대 해설된 교육서들-는 견진례준비 교육과정, 즉 주교의 방문직전 수주동안의 교육과정에서 교재로 사용되었다. 1970년대의 미국성공회와 20세기말의 영국성공회는 견진례를 받지 않은 신자들에게도 성찬참여를 허용하기 시작하였다. 20세기말까지 교리교육은 견진례에 종속되었지만, 견진례 자체는 일부 교회들에서 중요성을 상실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로 기도서의 교리교육서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일반 신자들에게 영향력을 상실하였다.

    세계성공회의 현대 기도서들은 일반적으로(전부는 아니지만) 교리교육서를 수록하고 있다. 일부 교리교육서들은 영국성공회의 <개정판 교리교육서> (Revised Catechism, 1962)처럼 기도서와 분리되어 출판되었으며, 대다수의 대안 또는 보완 예식서들-아일랜드의 <대안 비정규예식서, 1993>(Alternative Occasional Services) 와 영국의 <공동예배>들-은 교리교육서를 완전히 생략하였다. 결과적으로 일부의 경우 예배형식은 완전히 개정되어 현대화되었지만, 기존의 교리교육서는 그대로 방치되였다. 이러한 결정은 교리교육서를 기도서 안에 수록한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비난하고 있다. 새로운 대안예식서들은 교리교육서를 수록하지 않음으로써 기존의 교리교육서는 점차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현대의 일부 기도서들은 과거의 교리교육서들을 그대로 또는 추가항목을 덧붙여 출판하였다. 1978년의 <호주기도서>는 1662년 교리교육서를 커다란 개정없이 그대로 수록하였다. 또한 아일랜드는 2004년 기도서에서 과거의 교육서인 1878년의 교리교육서를 포함하였다. 이 교육서는 기본적으로 1662년 교리교육서를 용어만 일부 교체하고(예를들면, ‘영혼적’을 ‘영성적’으로), 중요한 항목 하나를 추가 하였다. 이 책은 감사성찬례에 대한 해설중 주의 만찬[성찬례]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신앙에 의해서 ‘오직 천국적으로 그리고 영성적으로만’(only after a heavenly and spiritual manner) 받는다는 진술문을 추가하였다. 그럼으로써 이 책은 화체론을 제거하고, 성찬의 두 요소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실질적 현존(real presence, 육체적 현존)을 주장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카나다의 1962년 기도서 (1985년의 대안예식서로 비공식적으로 대체되었다)도 이와 비슷하게 1662년 교리교육서를 채택하였지만 새로운 자료들을 많이 추가하였다. 1662년 교리교육서에 대한 일부 수정항목들은 세례신자들을 ‘그리스도의 거룩한 공교회’ (holy Catholic Church)의 일원[정식회원]으로 규정하고,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십계명을 ‘우리 주께서 복음서에서 가르치신대로, 그 정신과 목적에 따라’ 이해하여야 한다고 지적하며, 유아들이 ‘신앙의 가정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적법하게 세례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 교리교육서는 더 나아가 유아세례의 논리적 난제인 대부모의 대리서약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어린이들은 주교의 견진례를 받을 때 … 이 약속을 직접 실행하여야 하며, 또한 기도와 안수를 통해서 성령으로 강건해진다’고 진술한다. 이것은 과거의 교리교육서들에 포함된 견진례의 이론적 근거들중 하나였다. 카나다기도서의 교리교육서는 또한 주일의 준수에 대한 설명을 추가하였다. 즉, 신자는 ‘불필요한 활동을 자제하고’ 교회에 출석하여야 한다. 그러나 교리교육서의 중요한 추가항목들은 ‘추가교육서’(Supplementary Instruction)라는 부제로 분리하여 수록함으로써, ‘교회의 공식 교리교육서’와 분리된 것이지만 견진례 준비에 적합하다고 분명하게 표현하였다. 이 항목은 하나이고 거룩하며 공번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의 본질과, 세상에서의 교회의 선교, 사목직, 성서에 관하여 설명하였다. 이러한 혼합은 교리교육서를 훨씬 유용한 교육도구로 만들었으며, 1978년의 <호주기도서>의 그것보다도 1662년 교리교육서의 보존에 대한 훨씬 만족스런 해결책을 제시하였다.

    과거의 교리교육서를 그대로 보존하는 결정은 그 자체로 몇가지 단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로, 과거의 교리교육서들은 매우 간결하여 그리스도교 신학의 중요한 주제들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고 있다. 둘째로, 이 책은 고어체로 현대의 용어로 설명하지 않는다. 세째로, 이 책은 과거의 세대들이 예상할 수 없었던 현대의 쟁점들을 다루지 않는다. 이 마지막 단점이 아마도 가장 심각한 문제일 것이다.

    이 모든 단점을 가진 과거의 교리교육서의 보존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대안은 16-7세기의 질문과 대답의 형식을 유지하지만, 1549/1662년의 본문을 폐기하고 새로운 질문들과 추가 주제들로 구성된 새로운 교육서를 제작하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1979년의 미국기도서, 1984년의 웨일즈 기도서, 1989년의 남부 아프리카관구의 <성공회기도서>, 1989년의 <뉴질랜드 기도서>, 그리고 2002년 케냐의 <현대예식서>들에서 채택되었다.

    이들의 교리교육서들은 서로 다른 의도로 제작되었다. 미국과 뉴질랜드 기도서는 교리교육서들이 교리에 관한 매우 구체적인 진술문이 아니라, 교사들에게는 교육의 출발점으로 그리고 새로운 신자들에게는 성공회 신앙의 소개로 사용될 수 있는 믿음의 개요라고 분명하게 진술하였다. 미국이나 뉴질랜드의 성공회 신자들은 아마도 그들의 교리교육서의 정확한 내용을 배운 적이 없었을 것이다. 반면에 케냐와 웨일즈 성공회는 신자들에게 교리교육서를 직접 배우도록 요구하였다. 케냐의 교리교육서는 일련의 구체적인 지시문에서 모든 견진례 후보자들에게 이에 관하여 교육받도록 규정하였다. 웨일즈의 교리교육서는 지시문에 이러한 규정을 두지 않았지만, 견진례 예식의 지시문에서 이를 규정하였다. 어느 면에서 케냐와 웨일즈 성공회가 이러한 학습을 요구함으로써 교리교육서을 보다 높이 평가하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미국과 뉴질랜드 성공회는 교리교육서의 형식적 단점들을 인정하고, 교사들에게 본문을 바탕으로 확대하여 가르칠 것을 권장함으로써 이 단점들을 보완하려고 한다.

    현대의 교리교육서들은 구조와 내용에서 상당히 비슷하다. 각 교리교육서는 주제별 제목을 사용하며, 그 범위를 1549년과 그 이후의 그것들보다 훨씬 넓게 확대하였다. 1979년 미국기도서의 주제별 제목들은 1928년 기도서나 1662년의 공식 교리교육서보다 훨신 넓은 범위를 다루고 있다. 즉, 성부 하느님, 옛 계약, 십계명, 죄와 구원, 성자 하느님, 새로운 계약, 신경들, 성령, 성서, 교회, 사목직, 기도와 예배, 성사들, 세례, 성찬례, 다른 성사적 예식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희망. 이 중요한 본문은 로버트 그린필드(Robert H. Greenfield)신부가 집필 하였으며, 다른 성공회 관구들도 이를 채택하였다. 남부아프리카 기도서(1989)는 이와 똑같은 주제들을 똑같은 순서대로 채택하면서 여기에 청지기, 단식과 천사에 대한 항목을 추가하였다. 웨일즈의 교리교육서는 미국의 그것과 매우 비슷한 주제들을 채택하였지만, 약간 다른 제목을 사용하였다. 즉, 하느님의 부르심, 그리스도인의 믿음(주로 신경에 관하여), 교회와 사목직, 그리스도인의 복종, 교회와 성령(은총, 예배와 기도, 성사들-세례와 성찬례들, 그외에 견진례, 서품례, 결혼례, 죄의 용서, 치유),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희망. 뉴질랜드의 교리교육서도 이와 비슷하게 인간의 본성, 하느님, 성부 하느님, 성자 하느님, 성령, 성서, 교회, 사목직, 성사들, 기도, 그리스도인의 희망이란 제목을 채택하였으며, 특히 다른 교회들과는 다르게 세계성공회(그리고 현대과학, 세속철학과 다문화주의에 대한 성공회의 입장)를 설명하는 성공회교회라는 항목을 추가하였다(‘세계성공회’참조). 케냐기도서의 교리교육서는 다른 교리교육서들의 주제들을 축약한 제목을 사용하였다. 즉, 하느님의 부르심과 신앙인의 응답, 그리스도인의 믿음, 교회와 사목직, 그리스도인의 복종, 교회와 성령, 그리스도인의 희망.

    현대의 교리교육서들은 이러한 일반적인 유사성과는 달리 내용상으로 중요한 차이점들을 나타낸다. 웨일즈와 남부 아프리카의 교리교육서들은 미국의 그것을 따라 견진례를 ‘그리스도에 대하여 성숙한 신앙을 표현하고, 기도와 주교의 안수를 통해서 성령으로부터 능력(strength,용기)을 받는 예식’이라고 설명하였다. 뉴질랜드 교리교육서는 견진례를 ‘그리스도인의 증거와 봉사를 위임하는 예식’으로 ‘성사적 행동’이라고 설명하였다. 반면에 케냐의 교리교육서는 견진례를 ‘주교의 안수와 기도를 통해서 세례를 완성시키고, 그리스도인의 봉사와 증언을 위하여 능력을 부여하는 예식’으로 정의하였다. 교리교육서들에 나타나는 이러한 차이점들은 세례와 견진례의 본질에 대한 보다 큰 논쟁을 반영한다. 특히 미국성공회는 세례를 완전한 입교례이기 때문에, 견진례는 아무 것도 완결시키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케냐성공회는 견진례를 입교례 과정을 완결시키는 필수적인 예식(즉 세례는 미완성이라는 뜻)이라는 과거의 인식을 따르고 있다.

    이와 비슷하게 현대의 교리교육서들은 성서에 관한 신학에 대해서도 차이점을 나타낸다. 케냐와 웨일즈의 교리교육서는 성서를 ‘먼저 성서저자들에게 영감을 불어넣고 인도하셨던 성령에 의해서 우리에게 전달된다’라고 주장한 반면에, 미국과 남부 아프리카의 그것은 성서를 설명할 때 ‘하느님이 인간인 저자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다’고 주장한다. 뉴질랜드의 경우, 미국과 남부 아프리카의 설명과 거의 똑같지만 ‘하느님’ 대신에‘성령’으로 표현한다. ‘인도하여’라는 표현은 단순한 영감보다는 보다 지시적인 역할을 의미한다. 더구나 미국과 남부 아프리카의 교리교육서는 성령이 ‘교회를 성서의 진정한 해석으로 인도한다’고 주장하며, 뉴질랜드의 교리교육서도 근본적으로 똑같은 입장을 표현한다. 이것들은 성서를 읽을 때 해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 과정에서 교회기관에 커다란 역할을 부여한다. 웨일즈와 케냐의 교리교육서는 다른 인식을 나타낸다. 즉, 신앙인은 ‘성서를 통해서 하느님이 성령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우리에게 당신을 알게하고 당신의 의지를 실천하게 하실 것이라는 기도와 희망으로 성서를 읽어야 한다.’적어도 이 두 교리교육서들은 교회를 성서해석 과정에서 제외시키고, 개개인이 독서때에 성령의 직접적인 인도를 받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다른 면에서 보면, 케냐와 웨일즈 교리교육서는 해석작업 자체를 요구하지 않고, 성서의 문자적인 독서를 지지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는 미국과 뉴질랜드, 남부 아프리카의 교리교육서들이 완전히 거부하는 것이다.

    교리교육서들내의 이러한 차이점들은 세계성공회 교회들 사이의 차이점들을 반영하고 강화시킨다. 전례와 매우 비슷하게 교리교육서는 사용자들에 의해서 형성되고, 사용자들을 형성시킨다. 이 교리교육서들은 처음부터 제작된 상황을 반영한다. 즉, 국가단위의 교회들은 기존의 교육서를 그대로 사용하거나 또는 독자적으로 새로운 형식을 만들거나, 다른나라 교회의 현대판을 채택하여 각 형식을 수정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신자들이 케냐처럼 교리교육서를 직접 접촉하든가, 미국과 뉴질랜드처럼 교사들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접촉하든 간에, 교리교육서들은 교회를 이끌어 갈 미래의 세대들을 형성시킬 힘을 갖고 있다.

    참고문헌

    Booty, John E. ‘Since the Reformation: An Emphasis on the American Experience’, in A Faithful Church: Issues in the History of Catechesis, ed. John H. Westerhoff III and
    O. C. Edwards, Jr. Wilton, Conn.: Morehouse-Barlow, 1981.

    Brewer, Clifton Hartwell. A History of Religious Education in the Episcopal Church to 1835. New York: Arno Press, 1969.

    Green, Ian. The Christian’s ABC: Catechisms and Catechizing in England, c. 1530-1740. Oxford: Clarendon Press, 1996.

    Meyers, Ruth A. Continuing the Reformation: Re-Visioning Baptism in the Episcopal Church. New York: church Publishing, 1997.

    Strauss, Gerald. Luther’s House of Learning: Indoctrination of the Young in the German Reformation. Baltimore: John Hopkins University Press, 1978.

    Tudor, Philippa. ‘Religious Instruction for Children and Adolescents in the Early English Reformation’, in Journal of Ecclesiastical History, 35(July 1984), 391-413.

    Wright, Susan J. ‘Confirmation, Catechism and Communion: The Role of the Young in the Post-Reformation Church’, in Susan J. Wright, ed., Parish, church, and People: Local Studies in the Lay religion, 1350-1750. London: Hutchinson, 1988, 203-27.

    2009년 3월 1일 #

이 토론 주제에 대한 RSS 피드

답글

글을 올리려면 로그인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