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 번역 프로젝트 자료

  1. Cranmer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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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례
    Gillian Varcoe

    결혼에 대한 전례서들은 입교례나 매일기도, 감사성찬례 예식들과는 달리 모든 인간들에게 공통된 자연스런 육체적 욕구와 활동들에서 발생한다. 수천년동안 남녀(부부, 한 쌍)는 직계가족들의 축복 속에서 사랑의 공유와 상부상조(mutual support), 자녀의 양육을 위하여 결합하였다. 역사를 통해서 그리고 모든 사회에서 남녀의 동거행위는 결혼(혼인)을 구성하였다. 혼인에 따른 재산권 분쟁을 피하고 자녀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결혼에 관한 법을 제정하고 규제함으로써, 민간당국과 종교당국이 이후에 개입하게 되었다. 그러나 결혼과 이에 대한 관습은 근본적으로 민사적인(domestic, 집안간의) 문제이다.

    서구세계에서의 근대적 결혼례는 고대 로마의 관행들-신랑과 신부가 서로 손을 맞잡음(joining of hands), 가족제단에서의 희생제의, 결혼 축하연과 케익, 그리고 첫날밤의 예식 등으로 모두 가정에서 거행-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초기교회는 신자들에게 이교도와의 혼인을 자제할 것을 권장하였지만, 민사적인 혼인관례에 개입하지 않고 다만 동물의 희생제의(제물)와 이교도의 축복행위 대신에 성찬례와 그리스도교적인 축복을 거행하였다. 이후에 교회가 결혼례를 주재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맡게된 것을 우연히 발전된 것이라고 한다. 중세시대의 경우, 비밀결혼과 이에따른 자녀의 적자인정과 유산상속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시행된 혼인계약서의 기록을 작성할 수 있는 유일한 지식인은 때때로 성직자뿐이었다.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결혼전례서들은 대다수 사람들 사이에 실제적으로 거행된 결혼예식의 관행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혼인계약서를 작성하고 신부와 함께 금전을 양도하였던 부유층과 권력층의 요구사항들을 반영하고 있다. 정말로 결혼양식들의 전통적인 용어들은 어원적으로 법적인 용어들이다. 예를들면, ‘소유하고 보유한다’(to have and to hold)[소유권과 보유권]는 아직도 법적인 재산소유권을 나타낸다. 신부의 ‘양도’(인도, giving away)와 같은 결혼식의 관행들도 재산권과 법적인 권한와 통제권과 관련된 용어이다. 즉, 신부에 대한 소유권과 통제권을 신부의 부친이나 다른 남성가장에서 신랑에게로 넘겨준다. 많은 초기 결혼 전례서들의 기도문들과 축복문들은 신부만을 위한 것이었다. 부유층에게 재산권과 동맹[인척]관계는 매우 중요하였다. 그러나 대다수 결혼은 성직자나 국가의 개입없이 거행되었으며, 이는 오늘날에도 대다수 지방에서 일반적인 관행이다.

    이 때문에 결혼에 관하여 확고하게 일치된 그리스도교 신학이 없다는 점은 놀랄 일이 아니다. 창세기1장과 2장은 인간의 활동에 대한 하느님의 축복을 나타내고, 구약성서에는 결혼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예언자들로부터 성 바울로까지 결혼은 하느님과 그의 백성들사이의 계약관계를 나타내는 생생한 은유들로 표현되었다. 그리스도교의 결혼예식서들은 이와같은 성서적 사례들 [전거들]-이스라엘의 남녀 족장들의 결혼례들, 예수님이 참석한 가나의 혼인잔치, 결혼 그리고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를 나타내는 신비에 관한 바울로의 은유-을 언급한다. 희랍어인 ‘신비’(mystery)는 라틴어로 ‘성사’(sacrament)라고 표현되었다. 따라서 결혼은 창세기1장에서의 하느님의 명령과 가나의 혼인잔치를 근거로 교회의 성사목록에 포함되었다.

    15-6세기의 일부 급진적인 프로테스탄트들은 결혼을 다시한번 민간예식으로 전환시켰지만, 종교개혁 신학자들은 결혼례의 성사성에 대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의식들을 필수적인 요소로 생각하여 거의 그대로 수용하였다. 잉글랜드의 경우, 퓨리탄들은 결혼반지의 수여를 반대하였다. 하지만 이 의식은 삭제되었다가 다시 포함되었다. 즉 결혼식 전통이라는 문화적 특성이 순수한 신학적인 변화에 크게 저항하는 사례이다. 한편 오늘날에도 여전히 신부들(brides)을 ‘양도’ (giving away)할 것을 주장한다. 이는 반대로 문화적 영향이 개혁된 예식을 추방한 사례이다. 수세기 동안 결혼예식의 변화는 다른 예식들보다도 세속적 관습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특히 여성의 지위향상은 결혼예식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으며, 성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영향력을 약화시켰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결혼예식은 여성에게 복종을 요구하지 않으며, 또한 결혼을 특히 자녀를 생산하거나 성적인 죄를 회피하는 주요한 수단이라고 특징짓지 않는다.

    전통적인 기도서의 결혼예식

    첫 기도서의 결혼예식은 오랫동안 신학적, 전례적, 문화적 영향을 받아 형성된 솔즈베리예식에 기초[근거]하여 과거의 혼인단계들을 약혼의식들[결혼계약, betrothal]과 부부생활의 시작을 알리는 결혼식의 부부의식들로 축소하였다. 크랜머는 과거에 교회의 정문 앞에서 거행하였던 일부예식들을 모두 교회 안으로 이동시켰다. 과거에 이러한 예식들의 거행은 성격상 여전히 민사적인[domestic] 것이었으며, 가정에서 거행되었다. 새로운 예식의 첫부분에 추가된 권고문 (exhortation)은 ‘교회의 결혼례를 제정한 이유들’ (causes for the which matrimony was ordained)을 세가지로 설명하였다. 즉, 첫째로 자녀를 생산하여 주님에 대한 두려움과 가르침, 그리고 하느님에 대한 찬양 안에서 이들을 양육하기 위하여,’ 다음으로 ‘결혼한 자들이 정결한 결혼생활로 정결한 삶을 살며, 그리스도의 몸[교회]의 순결한 신자가 되기 위하여 간음행위를 피하기 위하여’, 세째로 ‘어려울 때나 풍요로울 때 서로 돕고 위로하는 상부상조의 사회(mutual society)를 만드라기 위하여’.(‘The Nature and Purpose of Marriage’ 참조). 대륙의 개혁가인 마틴 부처는 1549년의 기도서 전반에 대한 자세한 비평서를 작성하였을 때, 결혼예식을 전반적으로 승인하면서도 ‘이유들’의 순서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하였다. 그의 비평은 이후의 결혼신학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즉, 그는 동반자의식 (companionship)과 상부상조(mutual support)가 자녀의 생산과 성의 규제보다 먼저 강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렇지 않다면, 이유에 관계없이 자녀를 생산할 수 없는 자들은 그리스도교의 결혼을 허락받을 수 없을 것이다.

    크랜머의 결혼예식은 혼인관계를 소명으로 이해하는 종교개혁 신학자들이나 성서와는 달리, 어거스틴을 따라 성의 규제를 전적으로 부정적인 측면에서 이해하였다. 이 예식은 낙원, 가나의 혼인잔치, 그리고 바울로의 판단-결혼을 고귀한 것으로 추천-을 언급하면서도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육체와 성적 행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그리고 독신생활이 결혼생활보다 신성하다는 인식을 그대로 반영하였다. 그러나 종교개혁의 영향은 결혼을 ‘하느님의 거룩한 명령(ordinance)’이라는 언급에서 나타난다. 즉 더이상 교회가 제정한 성사는 아니지만, 하느님이 창조때에 명령한 인간의 생활(human practice)이라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이유로 결혼반지에 대한 축복을 삭제하고, 반지를 신랑과 신부 사이의 서약의 징표로 이해하였다. 성혼선언(declaration of marriage)때에는 마태복음 19장5절-‘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자들을 사람이 갈라놓을 수 없다’-을 인용하였다. 루터파의 원문은 ‘[…주신] 자들’이 아닌 ‘[…주신] 것들’로 기도서보다 정확하였다. 그러나 결혼에 관한 그리스도의 진술[선언]은 결혼제도 보다는 결혼한 신랑과 신부에게만 적용되는 특정하고 개별적인 표현이다.

    1549년 기도서의 결혼예식은 결혼식 당일에 성찬례에서 영성체를 하도록 규정하였지만, 성찬례와의 연계는 실질적인 결혼관습에 따라 약화되었으며, 1662년의 결혼예식은 ‘반드시 해야한다’에서 ‘유익하다’로 후퇴하였다. 이제 결혼예식은 ‘사목적 예식’(occasional office)으로 신앙공동체의 예배 안에서 거행하기 보다는 가족과 친지 그리고 성직자 앞에서 거행하는 사적인 행사가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이는 본래의 결혼례이다. 즉, 백성들의 민사적인[집안의] 행사에 국가와 교회가 개입하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적이다. 그러므로, 이후 세계성공회 신앙의 표준으로 사용되었던 1662년의 결혼예식은 신자들의 인사나 하느님에 대한 청원으로 시작하지 않고 모임의 목적을 설명하는 권고문으로 시작하며, 법적인 장애의 가능성을 먼저 다룬 후에, 곧바로 동의선언과 혼인서약, 반지의 축복과 수여, 그리고 성혼선언과 축복으로 진행되었다. 이외에 시편과 기도, 설교 또는 결혼의 의무에 대한 지정된 설교문의 낭독이 있을 뿐이었다.

    이러한 형식은 이후 3백년동안 지속되었으며, 새로이 조직된 미국성공회의 기도서(1789년)에서야 개정되었다. 미국성공회 예식의 중요한 변화는 권고문에서 ‘이유들’에 대한 진술을 모두 삭제하고, 결혼의 신성함을 나타내는 언급들-하느님이 제정하였다 등-만을 유지하며, 가나의 혼인잔치에 참석한 그리스도의 축복과 성서의 언급들을 보존함으로써 결혼을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 사이의 신비적 결합으로 상징하였다. 이 직후에 동의선언과 혼인서약을 하였다. 반지의 수여 직후에 주기도문을 배치함으로써 가능한 한 혼인서약에 가깝게 하였다. 그 다음에 기도문들, 마태복음19장의 선언, 그리고 성혼선언과 축복으로 마감하였다. 이러한 단순함과 긍정적인 어조는 이후에 세계성공회 교회들의 향후 예식개정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현대의 양식들: 1차 개정활동
    (Modern Developments: the first Round)

    잉글랜드에서는 1662년부터 20세기후반까지 결혼예식에 대한 공식적인 개정활동은 없었다. 그러나 1928년의 제안기도서는 의회의 승인을 받는데 실패하였지만, 주교들의 승인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이 기도서의 결혼양식은 17세기 이후로 발생한 문화적 변화를 반영하였다. 즉, 성적 활동에 대한 언급을 ‘부드럽게’ 처리하고, 여성[신부]의 복종약속을 삭제하고, 기도문들을 현대어로 수정하고, 그리고 혼인 성찬례의 거행을 허용하였다. 또한 기존의 기도서 양식의 지루한 결말부분을 미국기도서 양식처럼 크게 축소하였다. 그러나 구성은 그대로 유지하였다.

    세계성공회의 기도서 개정활동을 자극한 요인들로 몇가지를 꼽을 수 있다. 제2차 바티칸회의의 지지와 승인을 받은 전례운동(Liturgical Movement)은 강력한 요인이었다. 점증하는 비판적인 세속문화는 예배의 적합성(의미있음, relevance)을 위하여 용어와 문체를 조정하도록 요구하였다. 호주성공회는 법적으로 독립관구가 되자마자 기도서 개정작업을 시작하였다. 호주성공회는 1962년에야 헌장과 전국의회를 결성하였다. 많은 관구교회들의 기도서 개정활동은 1978년의 <호주기도서>, 1979년 미국성공회의 기도서, 1980년 영국성공회의 <대안예식서>로 시작되었다.

    영국와 호주의 개정된 결혼양식들은 보수적이다. 호주의 경우, 강력한 복음주의 전통의 완강한 반대로 ‘복종’문구의 완전한 삭제와 같은 급진적인 개정은 실패하였다. 결과적으로 두가지 양식의 결혼례를 수록하였다. 첫번째 양식은 1662년의 결혼양식의 내용과 형식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언어만을 현대화하고 성적 활동의 타락 위험에 대한 직설적인 표현을 약화시켰다. 신부는 복종을 약속한다. 두번째 양식은 전통적인 구성을 그대로 유지하나 혼인서약문을 신랑과 신부에게 똑같이 적용한다. 집필자들은 이 예식이 갑자기 시작하며, 예배의 다른 행동들과는 분리되어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찬례의 거행에 대한 추가사항에서 상당한 다양성을 승인하였지만 결혼예식을 감사성찬례 안에서 복음과 설교후에 집례할 것을 권장하였다.

    영국성공회의 개정양식도 똑같은 문제들에 직면하였다. <대안예식서>의 결혼양식은 이제 본기도부터 시작할 수 있다. 성서독서는 이 직후나 나중에 할 수 있지만, 성찬례가 있을 경우 전반부에 위치하여야 한다. 이러한 순서상의 변화는 아마도 로마 가톨릭교회와 미국성공회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나, 전례학적으로 합리적이다. 즉 소집[모임], 말씀의 전례, 결혼례나 세례등의 다른 예식들, 기도, 영성체, 파송으로 구성된 형식은 이제 초교파적으로 예배의 표준이 되었다. 영국성공회의 양식은 또한 신부의 복종약속을 선택사항으로 규정하였다.

    미국의 경우 1979년 기도서는 여전히 공식전례서로, 결혼예식은 갑자기 권고문으로 시작하며, 곧바로 동의선언-유일하게 신부에게 먼저 묻는다-으로 들어간다. 신부와 신랑의 동의선언이후 세번째 선언으로 참석한 신자들에게 ‘이 두 사람의 약속의 증인이 되신 여러분들은 이들의 결혼생활을 성심으로 지원하시겠습니까?’라고 물으며, 신자들은 ‘우리가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한다. 말씀의 전례는 이 동의선언과 결혼서약 사이에 거행된다. 서약후 반지에 대한 축복과 교환, 성혼선언, 기도와 혼인축복, 평화의 인사, 다음으로 성찬의 전례로 봉헌을 시작하거나 축하연으로 출발한다. 미국기도서는 이외에도 ‘민간결혼의 축복’(the Blessing of a Civil Marriage) 양식과 미래지향적으로 혼인서약 본문만을 규정한 ‘결혼예식서’(An Order for Marriage)를 추가하였다. 이 예식서는 규정된 구조안에서 본문과 의례를 신앙공동체와 결혼당사자들이 결정한다.

    1980년대의 개정 예식들

    이외에 다른 관구교회들의 개정은 주로 1980년대에 활발하였다. 연대순으로 이 개정예식들은 1차 개정활동(first round)에 속하지만, 전례학적으로는 이보다 진전된 예식이며, 1990년대와 20세기 초반에 실행된 2차 개정활동(second round)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카나다의 <대안예식서>는 1985년에 출판되었다. 여기서 결혼예식은 처음으로 감사성찬례 안에서 거행된다. 이 예식의 각 제목들-신자들의 소집, 말씀의 선포, 결혼례(기도문들과 축복), 성찬의 전례-은 이를 분명하게 나타낸다. 신부를 양도[인도]하지 않고, 오히려 가족들에게 이들의 결혼을 축복할 것인지를 질문하며, 출석한 증인들에게도 후원을 묻는다. 권고문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결합과 같은’ 부부의 사랑스런 결합, 서로의 위로와 도움, 그리고 새로운 가정의 형성을 강조한다. 결혼서약문은 신랑과 신부에게 동일하게 사용하며, 전통적인 문구인 ‘나 (이름)은 당신 (이름)을 아내(남편)으로 맞이한다’를 그대로 사용한다. 그러나 결혼의 동의선언의 문구는 기존의 ‘당신은 (이름)을 아내(남편)으로 맞이하겠습니까’를 ‘당신은 (이름)에게 헌신하겠습니까’로 교체하였다.

    뉴질랜드의 개정 기도서인 <뉴질랜드 기도서>(A New Zealand Prayer Book/ He Karakia Mihinare o Aoteroa)의 결혼예식은 매우 유연(융통성이 있다flexible)하다. 확실히 예비부부는 그들에게 적합한 양식을 선택하도록 권고받는다. 기도서는 세가지 양식을 제시하며, 모두 결혼에 대한 현대적 이해를 반영하여 성의 장점을 불쾌하지 않게 표현하며, 일상언어로 표현한다. 예를들면, 첫번째 양식에서 마태복음 19장5절에 대한 언급은 ‘하느님이 하나로 결합시킨 자들 사이에는 누구도 끼어들지 못한다’로 , 두번째 양식에서는 ‘하느님이 당신들을 하나로 결합시켰기 때문에 무엇도 두사람을 헤어지게 할 수 없다’로 표현한다. 각 양식의 어조는 친근하고 부드럽다. 두번째 양식에서 도입문은 기도의 중요성과 능력, 용서와 화해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동의선언은 ‘나는 (이름)를 사랑하며, 결혼하기를 원합니다’로 간단하다. 부모들에게 이들의 결혼을 승낙하고 지원할 것인지를 물으며, 자녀들에게도 도움을 묻는다. 이 양식은 재혼에 적합하다는 분명한 진술은 없지만, 의도는 분명하다. 세번째 양식은 결혼예정자들에게 각 문단의 표현(wording)을 선택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이 세가지 양식들에서 말씀의 전례의 위치는 크게 다를 수 있으며, 미국의 양식(1979년)처럼 동의선언과 결혼서약 사이에, 또는 전통적인 결혼례처럼 결혼서약후나 기도 이전에, 또는 도입문 다음의 ‘감사성찬례의 위치’에 둘 수 있다. 혼인축복은 서약 이후와 기도전에 시행한다.

    1989년 남부 아프리카관구의 개정기도서는 상당히 보수적인 개정이었던 1954년의 기도서를 다시 개정한 것이다. 이 기도서 또한 전통적 또는 감사성찬례적 구성을 허용한다. 결혼축복은 미국의 양식처럼 예식[결혼례]의 끝에 위치시킨다. 신부의 복종은 선택사항이다.

    제2차 개정활동(The Second-Round Revisions): 1990년대와 2000년대

    호주의 첫 개정기도서는 항상 잠정적인 조치로 이해되었으며, 이를 다시 개정한 기도서는 또다시 2차 개정활동의 첫번째 기도서가 되었다. 시험양식들의 출판과 사용후에 관구의회는 1995년에 <호주기도서>(A Prayer Book for Australia)를 승인하고 출판하였다. 처음의 의도는 결혼예식을 한가지 양식으로 만들려고 하였다. 1978년의 첫 기도서와 1662년 기도서를 모두 승인하였기 때문에, 두가지 양식은 항상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또다시 보수파의 압력으로 전통적인 양식과 현대적인 양식을 포함하였다.

    전례위원회는 두번째 양식의 권고문의 문구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쟁점은 에페소서5장에 나오는 신부의 복종을 포함시키는 문제였다. 이외의 모든 사항은 합의에 도달하였으나, 이 문제는 결국 투표로 결정하였다.

    결혼은 우리의 창조주 하느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하느님의 끊임없는 사랑의 상징이자,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의 결합의 상징입니다.
    그리스도는 교회를 신부처럼 사랑하시고,
    당신의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이름)와 (이름)의 결혼을 소명하하셨기 때문에,
    이들의 서로 다른 은사와 희망을
    사랑과 봉사의 결합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관구의회는 이를 그대로 승인하였다. 이는 결혼예식이 문화적 변화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는 점과, 현대문화의 요구와 그리스도교 전통으로 형성된 문화 사이의 갈등이라는 역사적 성격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관구의회의 토론에서 첫번째 양식에 신부의 복종약속을 포함시키는 문제에 대한 격렬한 찬성과 반대가 있었다. 결과는 독특한 문구로, 신랑은 신부를 ‘사랑하고 보살필 것’을 약속하고, 신부는 신랑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보살필 것’을 약속한다. 그러나 동의선언과 반지의 수여에서 신랑은 또한 신부를 ‘존중할 것’을 약속한다. 두번째 양식은 카나다의 결혼예식-소집, 말씀, 결혼예식, 성찬례-의 형식을 따른다. 개회[시작] 권고문을 마감하는 본기도는 축복의 형식이며, 혼인축복은 성혼 직후에 실시하고, 신랑과 신부와 회중들에 대한 일반적인 축복을 예배의 마지막에 실시함으로써 전 과정을 축복으로 마감한다. 동의선언과 결혼서약의 문구는 신랑과 신부에게 동일하게 사용한다. 시작문과 기도문들중 하나에서 성적활동(sex)을 긍정적인 것으로 언급한다. 첫번째 양식은 마태복음19장5절을 루터교의 번역인 ‘하느님이 결합시킨 것은 누구도 분리시킬 수 없다’로, 이는 개혁가들의 정신으로의 복귀라기 보다는 정확한 인용을 강조한 것으로, ‘자들’을 ‘것’으로 교체함으로써 혼인의 확고불변함(불가해성indissolubility)에 대한 복음의 말씀을 전적으로 결혼한 자들에게만 강조하는 것을 피하려는 것이다.

    이 시기 동안에 영국성공회도 두번째 개정에 착수하였다. 그 결실인 <공동예배> (Common Worship: Services and Prayers for the Church of England)는 두가지의 결혼양식을 수록하였다. 두번째 양식은 감사성찬례에서 거행하는 것으로 소집, 말씀, 결혼례, 성찬의 전례, 파송으로 구성되었다. 혼인축복은 성혼선언 직후나, 성찬기도 끝의 주기도문과 빵의 뗌 사이에 실시할 수 있도록 배치하였다. 북아메리카[미국과 카나다 교회들]의 영향으로 동의선언을 결혼의 장애가 없다는 선언 직후에 실시하며, 또한 말씀의 전례 이후에 결혼서약을 실시한다. 서문은 결혼의 목적에 대한 긍정적인 진술을 표현하며, 호주의 예식처럼 성을 긍정적으로 표현한다. 즉, ‘결혼의 은사는 아내와 남편을 성적 결합의 기쁨과 애정 안에서 하나로 결합시키며, 삶의 마지막까지 기께이 헌신하게 한다.’

    아일랜드교회도 2004년에 새로운 기도서를 발표하였다. 결혼예식의 첫번째 양식 (the Form of Solemnization of Matrimony)은 1662년의 예식을 개정한 것으로, ‘이유들’의 순서를 그대로 포함하였다. 두번째 양식(The Marriage Service)은 최근의 경향을 따라 결혼의 목적으로 먼저 상부상조, 성에 대한 긍정적인 언급, 자녀의 생산과 양육의 순서로 강조하였다. 기도서는 또한 민간결혼식 후의 축복과 기도 예식(a Form of Prayer and Dedication after a Civil Marriage)을 수록하였다.

    케냐교회의 <현대예식서>(2002)의 결혼예식(Wedding Service-Holy Matrimony)은 인사로 시작하며, 서문은 결혼에 대한 성서의 긍정적인 언급, 부부간의 정절 (fidelity)에 대한 요구, 그리고 감성적 육체적 욕구의 완성과 자녀의 양육을 언급한다. 그 다음에 곧바로 결혼에 장애가 없음을 선언한다. 흥미롭게도 케냐교회는 아직도 예식전 3주간동안 결혼을 공고하는 규정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영국과 아일랜드 이외의 관구들의 개정 기도서들에서 삭제된 조항이다. 다음으로 전통적인 형식으로 된 ‘동의선언’(Making Promises)과 ‘결혼서약’(Making Vows)을 신랑과 신부에게 똑같이 적용한다. 그 직후에 새로이 만든 축복연도 (blessing litany), 주기도문, 시편낭독, 말씀의 전례와 설교, 어린이 축복기도, 일반적인 축복, 평화의 인사로 진행된다.

    두번째 양식은 ‘결혼축복식’(Blessing of Marriage)이라는 명칭으로 ‘관습적인 결혼예식이나 민간예식으로 결혼하였으나 교회의 축복을 원하는 신앙인 부부’를 위한 예식이다. 이상하게도 이 양식에만 있는 선택용 기도문은 에페소서5장을 ‘이 남자가 아내를 온전하고 헌신적으로 사랑하게 하시고, 이 여인이 그 사랑을 복종과 존경으로 화답하게 하소서’로 표현한다. 세번째 양식으로 ‘결혼서약의 재확언’ (Reaffirmation of Marriage Vows)을 포함한다. 이 양식들의 중요한 특징은 특별한 문화적 특징을 분명하게 표현한 것으로, 반지의 교환에 대한 대안의식들과 호읍 (우는소리ululation)과 같은 축하하는 응답들을 포함하고 있다.

    결론

    결혼예식에 대한 개정의 역사는 문화적인 압력과 이에 대한 각 관구의 서로다른 미묘한 반응을 나타낸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회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법적인 혼인이전에 동거생활을 하며, (법적인 의미에서) ‘쉽게’ 이혼하고 다시 결혼하는 ‘연속적인 일부일처제 결혼’(연속단혼serial monogamy)이 일반화되고, 동성간의 결합도 합법화되고 있다. 교회는 이러한 추세에 적응하면서도 방어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오늘날 독신생활이 혼인보다 더 신성하다거나, 성적 활동이 본질적으로 나쁘다고 생각하는 성공회 교회는 없다. 쉽게 구할 수 있고 안전한 피임도구로 촉진된 성생활의 자유에 대한 교회의 반응은 애매하였으며, 결혼의 신성함을 우려하는 책자들은 많이 있다. 그러나 결혼을 준비하는 남녀와의 대화는 다시 강조되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결혼은 그들에게 헌신과 축제이자 자녀를 생산하고 양육하는 욕구에 관한 것이다. 또한 결혼은 안전한 공동체 그리고 ‘소로간의 지원과 보살핌’에 대한 욕구와 연결되어 있다.

    서방교회는 결혼을 성사적으로 이해하는 함으로써, 교회나 집례자가 결혼의 ‘제작자’(maker)라는 이해를 항상 회피하였다. 결혼의 집례자는 혼인의 당사자들이다. 민간 또는 전통결혼에 대한 케냐교회의 축복예식은 이 점을 잘 보여준다. 즉, 두 사람은 함께 생활하는 동안에 혼인을 ‘형성하는 것’이고, 교회는 이러한 혼인을 ‘형성’하려는 약속을 축복한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례는 미국교회의 입양예식으로, ‘당신은 이 여자을 어머니로 받아들이겠습니까?’와 ‘당신은 이 남자를 아버지로 받아들이겠습니까?’라고 묻는다. 가족관계 또한 결혼처럼 약속과 서약으로 구성된다.

    케냐교회가 관습적인 결혼을 교회예식에 포함시켰다는 사실은, 민간과 교회 당국의 제휴-전통적인 기도서 전례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는 결혼예식의 본질에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낸다. 교회가 민간 또는 관습적인 결합에 ‘추가’한 것-전례로 축복하는 평생동반자 의식-은 전례의 문제가 아니라 결혼에 대한 신학에 속한 것으로, 현재까지 이에 대하여 합의된 내용은 없다. 불일치 분야중 하나는 ‘축복받을 수 있는 결합’(blessable union)이란 무엇인가 이다. 이에 대하여 진행중인 논의는 미래의 결혼예식에서 나타날 것이다.

    전례에 관한 한, 결혼예식은 감사성찬례처럼 다양한 선택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미 미국과 뉴질랜드 기도서들은 여러가지 양식들을 제공하였다. 특히 강조할 점은 교회의 표준규정을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할 당사자들이 개인과 가족,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결혼에 대하여 생각하고 결정하고 헌신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례를 집필하는 작업에는 감성적인 일반화(sentimental trivialization)라는 위험이 내재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또한 중대한 사목적이자 신학적인 이해를 요구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것이 곧 전례서가 해야할 일이다[뜻하는 바이다].

    참고문헌

    Searle, Mark, and Kenneth W. Stevenson. Documents of the Marriage Liturgy. A Pueblo Book. Collegeville, Minn.: The Liturgical Press, 1992.

    Stevenson, Kenneth. Nuptial Blessing: A Study of Christian Marriage Rites. Alcuin Club Collections. London: SPCK, 1982.

    Thatcher, Adrian. Marriage After Modernity: Christian Marriage in Postmodern Times. New York: New York University Press, 1999.

    2009년 3월 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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