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 번역 프로젝트 자료

  1. Cranmer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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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례예식들
    Trevor Lloyd

    오늘날 세계성공회 교회들의 장례예식은 모두 크랜머의 장례예식(1549년과 1552년)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크랜머의 장례예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또다시 초기 로마교회의 장례예식을 이해하여야 한다. 장례예식의 구조-세속적이든 그리스도교적이든-는 주로 시신(body)과 애도자들의 이동경로[장소의 이동]에 따라 결정되었다. 따라서 초기 로마 그리스도교회의 예식들(800년의 Rheinau Sacramentary 처럼)은 로마의 장례관습의 방식(pattern)을 따랐으며 중세말기까지 지속되었다. 장례예식은 장소의 이동에 따라 단절되는 연속적인 예식 (continuum)이다. 사람들은 죽음이 가까워질 때에 가족과 친지들에 둘러싸여 사제의 기도와 마지막 예식들(last rites)을 받기를 기대하였다. 즉, 병자에 대한 사목에서 임종자에 대한 사목으로, 그리고 그 후에 시신과 애도자들에 대한 사목으로 확대되었다. 그 이후의 예식의 방식과 구조(pattern and structure)는 장소의 이동-가정에서 교회와 묘지 그리고 다시 가정으로-에 따라 부분적으로 결정되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세속적인 장례방식을 따르면서도 여기에 희망과 기대를 불어넣었다. 그들은 매장을 준비할 때 시편과 기도문을 낭독하고, 검정색 상복(lugubria) 대신에 흰색 옷을 입으며, 밤이 아닌 낮에 시편과 찬송을 부르며 장례순행을 하며, 무덤에서의 장례잔치 대신에 성찬례를 거행하였다. 어거스틴은 387년 그의 어머니 모니카의 장례예식에 대하여 ‘우리는 장례식을 울음과 통곡으로 거행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죽음을 가장 비참하거나 심지어는 철저한 파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애도하였기 때문이다…또한 보라, 시신을 밖으로 운반할 때, 우리는 울지않고 따라 갔으며 또한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라고 설명하였다. 이 이야기는 희망이 없는 이교도들의 장례예식으로부터의 변화된 분위기 뿐만아니라, 장례예식의 단계와 장소들을 나타낸다. 초기 로마교회와 중세기의 서방교회 예식의 방식(pattern)은 가정에서 거행하는 임종의식(ministry at death)과 시신의 처리(준비), 그 후에 시편과 기도문을 낭독하며 교회로의 이동, 교회에서 거행하는 장례의식(office of the dead)과 성찬례 그리고 기도, 또다시 시편을 낭송하며 매장지로의 이동, 마지막으로 집으로의 귀환으로 구성되었다.

    이러한 방식(pattern)은 크랜머와 종교개혁가들이 연옥에 대한 교리를 반대하였기 때문에 크게 축소되었다. 중세말기의 연옥론 교리는 초기교회의 희망에 따른 확신과 기쁨을 약화시켰을 뿐만아니라, 죽은 자를 위한 면죄부, 기도, 성찬례[미사]와 추도미사에 대하여 금전을 요구함으로써 여러가지 재정적인 부패를 양산하였다. 크랜머는 이 모든 것들을 제거하고 과거의 방식을 두 곳에서[두가지 장소에 실시하는] 거행하는 간단한 예식들, 즉 교회에서의 장례예식(office)과 묘지에서의 매장예식(burial)으로 축소하였다. 이는 곧 1662년 기도서와 최근까지 세계성공회 기도서의 장례예식의 방식이었다. 최근에 개정된 기도서들은 중세기 형식의 일부 요소들을 회복시키려고 시도하였다. 왜 회복시키려고 하는가? 20세기 중반부터 여러가지 문화적 요인들은 전례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하였다.

    첫째로, 대다수 서구사회에서 가족의 크기의 변화와 ‘핵가족’의 확대로 임종자를 간호하거나 직계가족의 임종을 지키는 사람들이 크게 감소하고 있다. 유아사망률의 획기적인 하락 또한 이러한 방향을 촉진시켰다. 이와 동시에 이동성 (mobility)의 확대는 한 지방과의 연결을 약화시켰으며, 화장의 확대로 죽은자를 돌보거나 기억할 수 있는 묘지가 사라졌으며, 또한 시신과 시신의 관리는 보다 청결하고 전문화되었다. 의료방법와 수술기술의 발달은 죽음을 연기시킬 뿐만아니라, 임종과정을 병원으로 전환시켰다. 20세기 중반까지 죽음에 대한 논의는 금기사항으로, 불가피할 경우 완곡하게 표현하며 임종자와 유가족들에게 고통을 주지 않도록 전개하였다. 가정에서의 임종이 사라지는 것은 곧 임종과정에 대한 통제권이 가족에서 전문가들-병원, 요양원, 장의사(장례관리자, funeral director)-에게로 이전되어 성직자의 역할이 점차적으로 불확실진다는 의미이다.

    둘째로, 이러한 변화는 전문화 뿐만아니라 상업화의 확대와 나란히 진행되었다. 이에 따라 장례예식은 시간의 절약과 교통의 편의를 위하여 교회가 아닌 영안실이나 화장장에서 거행할 것을 요구하며, 더 나아가 화장장에서의 장례예식을 20분이하로 축소시키도록 요구하였다. 다음에서 설명하겠지만, 세계성공회의 대다수 관구들은 사망자나 유가족의 바램이 화려하거나 까다롭고 복잡한 예식을 피하고 간단한 설교를 원한다는 장의사들의 입장에 암묵적으로 동조함으로써 이러한 요구에 순응하였다.

    마지막으로, 1970년대 이후로 이러한 획일적인 상업적인 장례식, 그리고 죽음과 사별 과정의 비인간화와 상업화에 반대하는 운동이 발생하였다. 호스피스운동 [임종자에 대한 간호활동]과 사별에 대한 이해의 확산은 이러한 변화를 촉진시켰다. 일부 문화권에서는 장례예식에서 개인의 선택사항을 확대함으로써, 애도의 과정에 대한 통제권을 점차적으로 가족과 애도자들에게로 이전시키고 있다. 이러한 경향이 어느정도로 성공회 기도서들에 영향을 주었는지는 대체로 이 운동이 시작된 1960년대말 이후에 개정된 기도서들의 시기에 따라 판단할 수 있다. 미국성공회의 1979년 기도서는 이러한 인식을 충분히 고려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지만, 영국성공회의 <공동예배>는 이를 충분히 반영하였다. 이것은 또한 ‘산업화’된 서구의 관구들과 죽음에 대한 다른 문화적인 기대들을 갖고있는 관구들 (아프리카처럼) 사이의 문화적 차이를 나타내는 분야들중 하나이다.

    세계성공회의 각 관구들의 장례예식을 비교할 때, 두가지 집단으로 분류할 수 있다. 즉, 1980년대 중반 이전에 개정된 양식들과,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Elisabeth Kübler-Ross)와 다른 학자들이 애도(grief, 슬픔)의 단계들에 대한 통찰력을 전례본문에 반영하기 시작한 이후에 개정된 양식들. 먼저 장례대상자 [죽은자]의 이름을 언급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살펴보자. 1662년의 장례예식은 장례대상자에 대한 이름을 언급할 공간조차 없었으며, 멜라네시아의 양식(1965년과 1985년) 또한 1662년 양식을 거의 그대로 채택하였으며, 유일한 차이점은 ‘형제’와 ‘자매’의 차이였다. 아마도 사망자의 이름은 비공식적으로 언급될 수 있었지만, 예식본문에 ‘이름’으로 지시된 경우는 1970년대 이후-영국의 1965년양식과 미국의 1979년양식-이다. 단순히 이름을 언급하는 것과 사망자의 인간성을 칭송하는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영국과 아일랜드, 케냐의 양식은 말씀의 전례와는 구별하여 예식의 초반에 사망자에 대한 찬사[존경]의 시간을 배정하였다. <공동예배>는 찬사와 설교를 구별하고(“설교의 목적은 이 특별한 사람의 죽음 속에서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예식의 초반에 ‘사망자의 생애를 기념하고 존경하도록’ 권장하며, 이를 위하여 가족들과 친지들이 참여하여 사망자의 생애와 신앙을 상징하는 물품들을 전시하도록 허락한다.

    세계성공회의 각 관구들이 장례예식에서 애도(grief)를 표현하는 방식은 아마도 세가지로 나누어 고려할 수 있다. 즉, 사목적 안내문을 이용하는 경우, 예식의 목적과 과정(agenda)을 설명하는 문구를 이용하는 경우, 애도를 표시하는 문구를 사용하는 경우.

    <뉴질랜드 기도서>와 영국의 <공동예배>는 예식 시작전에 회중들에게 낭독하는 반쪽 분량의 사목적 안내문(pastoral introduction)을 배치하고 있다. 두 기도서는 애도를 인식하고, ‘애도는 상처처럼 치유하는데 시간과 보살핌이 필요하다’ (뉴질랜드)고 표현함으로써 이 과정에서 예식의 역할을 인정하고 있다. 미국의 1979년 기도서와 카나다의 <대안예식서>, <뉴질랜드 기도서>, <호주기도서>, <공동예배>, 케냐의 <현대예식서> 등은 모두 주의깊은 관심을 표현하며, 일부는 이 문제를 상세히 다룬다. 미국기도서(1979)의 경우, ‘죽은 자를 위한 전례는 부활전례로, 부활에서 이 예식의 모든 의미를 찾는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부활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전례는 기쁨의 전례여야 하며…그러나 이 기쁨 때문에 인간적인 애도를 비신앙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서로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사별할 때 깊은 슬픔으로 나타난다’라고 설명한다. <공동예배>와 <뉴질랜드 기도서>, <대안예식서>는 애도의 과정을 언급하는 일반적인 안내문(introduction)을 배치하고 있으며, 특히 <대안예식서>는 4쪽 분량으로 가장 상세하게 설명한다. 즉, ‘그리스도교 장례예식은 죽음에 대한 경험의 다양한 차원들 반영하는 것이 전적으로 적합하다. 신앙은 믿음만이 아니라, 믿음의 이면인 의심(doubt)까지도 포함한다. 죽음에도 불구하고 신앙과 희망의 전례적인 표현들은 애도자들이 체험하는 근심과 상실감이라는 근원적인 감정을 위한 여지를 남겨두어야 한다. 또한 최근에 상당히 연구된 애도과정을 거부하지 말고 포용하여야 한다.’

    두번째 방식으로, 예식의 안내문에 포함된 예식의 목적과 과정에 대한 설명으로, 집필자들은 여기서 예식의 목적에 대한 그들의 인식을 설명한다. 대부분 후커의 고전적인 설명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즉, ‘먼저 사망한 자에게 사랑을 표시하고, 둘째로 일반적으로 인간에 대한, 특별히 고인에 대한 존경을 표시하라, 마지막으로 산자를 위로하는 교회의 보살핌과, 죽은 자들의 부활에 대한 우리들의 희망을 증언하라.’ 예를들면 영국성공회의 전례위원회는 1964년의 제안기도서 장례예식의 안내문에서 이 예식의 목적을 ‘시신의 경건한 처리를 보장하고, 사망자를 천국의 하느님께 위탁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부활한 생명의 영광을 이 세상과 저 세상에서 선포하며, 우리들에게 다가오는 분명한 죽음과 심판을 환기시키며, 신앙인들은 산 자든 죽은 자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결합되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하였다.

    스코틀랜드의 1987년 양식의 안내문은 사목적 돌봄(pastoral care)의 대상들 (opportunities)을 세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즉, ‘먼저 직계가족들에 대한 사목을 들 수 있다. 둘째로 교회에 거의 또는 전혀 출석하지 않지만 중요한 순간으로 장례식에 참석한 자들에게 죽음과 영원한 삶에 대한 복음의 말씀을 전달할 수 있다. 세째로 장례예식은 그리스도교 신앙이 삶에 의미를 주고 죽음으로 이를 완성하는 방식을 우리 사회에 공표하는 선언이다. 이러한 과제를 성취하기 위하여 장례예식은 하느님의 사랑과 용서 그리고 부활의 약속을 말하여야 하며, 이것들을 죽음과 애도라는 직접적인 인간적 체험과 연계시켜야 한다. 또한 신학적인 진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하여 인간의 감정들의 순수함을 반드시 인정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들을 전례의 ‘소집’(gatherings) 본문에 포함시키려는 노력-결혼예식에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느님 앞에 모인 것은…’과 같은 사례에도 불구하고-은 상대적으로 소수의 기도서들-아일랜드,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만 채택되고 있다. <공동예배>의 경우는,

    우리가 오늘 여기에 모인 것은
    하느님 앞에서 우리의 형제/자매 (이름)를 기억하며
    그 분의 생애에 감사를 표시하며
    그분의 시신을 매장/화장하며
    우리들의 애도를 서로 위로하기 위함이다.

    세번째 방식으로, 애도를 표시하는 문구(words of grief)는 1662년 양식에는 없었지만, 1928년의 제안기도서에 기도문의 형식으로 ‘전능하신 하느님, 모든 자비와 위로를 주시는 하느님, 슬퍼하는 자들을 자애로 위로하시고…’라고 표현하였다. 미국의 1979년 기도서는 기도문들에서 ‘주여, 당신께서는 마르타와 마리아의 슬픔을 위로하셨습니다…당신께서는 친구인 라자로의 무덤에서 우셨습니다. 슬픔에 빠진 우리를 위로하소서’라고 표현하였다. 그러나 1985년 이후에서야 퀴블러-로스의 계승자들의 통찰들을 반영하는 보다 구체적인 표현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가 겪는 사별에 화를 낼 때…(스코틀랜드)

    우리는 이 죽음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을 고백합니다(호주)

    우리의 슬픔과 충격을 진정시켜 주시고 위로하여 주소서(공동에배)

    상처와 무력함의 기억들을 치유하소서(공동예배)

    각 관구들의 장례예식의 구조들 또한 이러한 폭넓은 차이를 나타난다. 대체로 초기의 양식들[1980년대 중반 이전의 양식들]은 앞에서 지적한 대로 1662년 양식의 형태을 (다소 축소하여) 유지하였다. 미국, 스코틀랜드, 남부 아프리카와 케냐의 경우, 양식은 1662년처럼 성서의 문장들로 시작하지만, 호주와 뉴질랜드, <공동예배>는 인사와 환영의 말씀으로 시작한다. 카나다의 <대안예식서>는 세가지 양식으로, 그중 하나는 전통적인 형식(pattern)을 그대로 따르며, 두번째 양식은 인사와 참회로 시작하여 감사성찬례로 인도한다. <공동예배>는 이처럼 보다 감사성찬례적인 형식(pattern)을 의도적으로 채택하였다. 왜냐하면 참회(말로 표현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미안함의 표현 등)는 당연히 적합한 것이며, 또한 성찬례가 없을 경우에도 이 예식은 안내문의 표현대로 천국지향적이 되기 때문이다. 안내문에서 ‘장례예식은 그 자체로 인간에서 하느님으로, 지상에서 천국으로 이동한다. 즉, 참석자들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성서의 독서와 기도로 천국을 향하여 이동하기 전에 죽은자의 지상의 삶을 기념하고, 하느님께의 의탁과 매장(commendation and committal)으로 절정에 다다른다’라고 설명한다.

    오늘날 대다수 양식들은 시편과 성서낭독 이전에 본기도(collect)를 배치하고 있다. <대안예식서>는 예식 시작때에 신자들과 함께 낭송하는 매우 단언적인 본기도-‘하늘에 계신 하느님, 당신은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들에게 참 신앙과 확실한 희망을 주셨나이다…’-를 배치하는 형식(pattern)을 채택하였으나, <공동예배>는 이러한 형식을 탈피하였으며, 호주의 예식은 모임주제를 매우 잘 표현한 아래의 신자들의 기도문(congregational prayer)을 배치하였다.

    사랑이신 하느님, 당신만이 생명의 근원입니다.
    당신의 생명주시는[활력있는] 성령을 우리에게 충만하게 하시고,
    또한 우리들 하나 하나에게 깊은 애정으로 채워주소서.
    슬픔에 가득찬 저희들에게 당신의 평화의 차분함을 주소서.

    모든 양식들은 매우 다양한 성서독서를 규정하며, 많은 관구들-영국, 스코틀랜드, 케냐, 호주 등-은 설교를 의무사항으로 규정한다. 남부 아프리카의 경우는 선택사항이지만, 설교할 경우 ‘성서본문의 해설이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미국과 <대안예식서>는 설교후에 사도신경을, 호주는 테데움(Te Deum)의 일부 (대안예식서처럼)와 부활송가(Easter Anthems)를 배치[낭독]한다.

    1990년대와 2000년대초의 양식들은 신자들의 기도(중보기도, intercessory)를 매우 길게 수록하고 있으며, 호주와 <공동예배>(공동예배의 ‘신자들의 기도’ 참조)는 가장 많은 기도문을 배정한 사례로 꼽을 수 있으며, 반면에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웨일즈는 짧은 기도문을 배정하고 있다. 케냐의 예식은 ‘집례자는 추모기도(위령기도memorial prayer)때에 죽은자의 중요한 기억[업적]들을 언급함으로써 애도자들을 신앙적으로(prayerfully) 인도하여야 한다’라고 지시한다. 스코틀랜드는 친지들이 직접 작성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고별기도(farewell prayer)의 모델을 제공하고 있다. 많은 예식들은 일부 기도문을 유족들이 즉석에서 또는 직접 작성하고 낭독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필자는 회중들이 예식에 참여하는 문화의 확대와 이 기도와의 관계에 대하여 다시 설명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신자들의 기도후에 위탁(commendation)과 매장(committal)으로 이어지며, 최근의 감사성찬례적인 예식에서는 파송(dismissal)으로 마감한다. 1662년 양식은 간단히 은총기도(the grace)로 마감하며, 스코틀랜드 기도서는 ascription(‘To the one who is able to keep you from falling’)으로 마감하지만, 다른 기도서들은 보다 자세하다. <현대예식서>는 묘지의 매장과 (선택사항인) 십자가(비석)의 설치후에 사용하는 은총기도 뿐만아니라 여러가지 축복기도문들 (blessings)을 수록하고 있다. <공동예배>는 파송(dismissal)을 주기도문과 성시므온의 노래, 기타 적합한 기도문으로 마감할 수 있으며, 또한 사적인 매장의식의 경우 이 예식의 전부나 일부를 사용할 수도 있다. <대안예식서>와 미국기도서(1979)는 부활절 축복기도(Easter Blessing)를 사용하며, 후자는 그 다음에 부활절 파송(Easter dismissal)을 추가한다.

    알렐루야.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셨습니다.
    주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아갑시다.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매장의식(committal)의 문구는 거의 항상 Media vitae(‘살아있는 동안에도 우리는 죽음을 경험한다’으로 시작하며, 세계성공회의 각 양식들에서 아주 비슷하다. <공동예배>는 이와는 달리 땅속의 매장(과 당연히 재의 매장)만을 말하며, 화장에 대해서는 다른 형식(‘이제 매장을 준비하기 위하여 그<또는 그녀>의 시신을 화장한다’)을 사용한다. 이와는 달리 스코틀랜드 양식은 ‘재는 재로’ 문구앞에 ‘불로의’(to the fire) 매장을 분명하게 언급한다. 그러나 세계성공회의 각 관구들 사이에 나타나는 신학적인 차이는 역사적으로 죽은 자와 기도문에 대한 상반된 이해로 나타나며, 특히 위탁과 이에 따른 일부 기도문들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미국 기도서(1979)와 <대안예식서>는 현대의 앵글로-가톨릭의 사례를 따라 동방교회의 전례에서 따온 죽은 자를 위한 kontakion(‘그리스도여, 당신의 종을 성인들과 함께 쉬게하소서…’)과 ‘구하오니 당신의 교회의 신자로 받아주소서’라는 기도를 사용한다. 이 양식들은 다음의 기도문으로 마감한다.

    주여, 이 분을 영원토록 평안히 쉬게 하소서;
    이 분에게 영원한 빛을 비춰주소서
    이 분의 영혼과, 모든 별세한 신자들의 영혼이
    하느님의 자애를 받아 평안히 쉬게 하소서, 아멘.

    스코틀랜드는 kontakion과 ‘ 이 세상을 떠나시오…’기도문을 함께 사용하며, 케냐는 kontakion이나 ‘천사들께서 당신을 천국으로 인도하소서…’라는 기도문중 하나를 사용하며, 묘지에서는 기도(‘우리 형제의 영을…하느님의 영원한 품에 보낸다’)후에 계시록7장15-17절(‘그들은 하느님의 옥좌앞에 있으며 밤낮으로 그분을 섬긴다’)을 낭독한다. 뉴질랜드 양식은 ‘떠나시오…’라는 기도를 채택하고 있지만, 호주와 아일랜드는 죽은자를 위한 기도라고 볼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다. 아일랜드는 호주처럼 위탁(commendation)을 ‘고별기도’(Farewell)라고 명칭하며, 본래 <공동예배> 용으로 집필된 기도문을 약간 수정하여 사용한다. 즉,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구세주이신 하느님,
    당신의 권능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이기시고 영광을 얻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승리를 확신하고
    그리스도의 약속을 공언하며,
    당신의 종을 …당신의 자애로운 품으로 떠나 보냅니다.

    <공동예배>는 이 기도를 ‘위탁과 고별’이라고 명칭하며, 똑같은 기도를 ‘우리는 (이름)을 당신의 자비에 맡깁니다’와 함께 사용하며, 또한 기도서의 후반부에 위탁과 위임에 대한 7가지의 다른 기도문들을 수록하고 있다. 이 기도문들 다음에 배치된 소제목 ‘임종때의 기도’에는 별세자를 위한 kontakion과 ‘구하오니… 받아주소서’, 두가지 형식의 ‘떠나시오…’를 수록하고 있다. 영국성공회 전례위원회는 하느님께 위탁하는 기도문들은 당사자가 살아있는 동안-예를들면 임종예식처럼-에도 완전히 허용되지만, 별세하고 몇일이 지난 후에는 완전히 허용되지 않지만, 앞의 단계들[예식들]에 참석하지 못한 조객들을 위하여 예식의 초반부에 요약된 의식으로 거행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채택하였다. 시간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를 기반으로 한 이러한 인식은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한편 미국기도서(1979), <대안예식서>와 <공동예배>는 지역의 상황에 따라 쉽게 개작할 수 있게 기본요소만 규정한 장례양식을 수록하고 있다.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케냐와 뉴질랜드 양식들은 1662년 양식을 따라 장례예식과 연관된 감사성찬례의 본문을 전혀 준비하지 않고 있지만(뉴질랜드는 두줄의 지시문만 수록), 오늘날 대다수 장례양식들은 감사성찬례로 거행하도록 본문들을 수록하고 있다. 미국기도서(1979)는 성찬기도 특정서문(proper preface)과 영성체후 기도문을, <대안예식서>는 성찬기도 전체를, 호주와 <공동예배>는 감사성찬례 전체를 수록하고 있다. <공동예배>는 복음에 대한 환호응답(gospel acclamation)(‘하느님이 이 세상을 지극히 사랑하시어 그의 독생자를 주셨다’ 또는 ‘주 안에서 별세한 자들은 축복을 받으니…’)과 세가지 성찬기도 서문(preface)을 수록하고 있다. 이 본문들은 예식의 초점을 관에서 빈무덤과 천국의 잔치로 이동시키는 효과를 나타낸다. 즉,

    죽음으로부터 부활한 자 안에서
    우리의 부활 희망은 분명해졌다.
    부활한 생명에 대한 영광스런 약속으로
    죽음의 악취는 사라졌다.

    그리고

    부활의 기쁨은 우주를 채우고,
    그러므로 우리는 천사와 대천사와 하나가 되어…

    영국성공회의 <사목적 예식>(Pastoral services)이란 책자의 서문에는 ‘장례예식은 인간적 여정의 마감이자 전 과정의 여정(journey) 그 자체이다… 애도하는 것은 하나의 과정으로 여러 단계들로 표현되기 때문에, 교회가 사목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것은 이 여러가지 단계들을 인식할 수 있는 예식들과 자료들을 미리 또는 나중에 요약으로 반복하여 말하는 것이라고 믿는다’라고 말한다.

    <공동예배>에는 이 여정에 장례예식 이외에 병자방문예식(Ministry to the Sick)과 임종예식(Ministry at the Time of Death), 별세후에 가정에서 드리는 기도문들, 장례예식 이전에 가정이나 교회에서 드리는 기도문들, 시신[관]을 교회로 영접하는 의식, 밤샘기도(vigil, 7편의 성시와 기도문, 성서독서), 장례식 직후의 가정기도, 재의 매장을 위한 예식, 이후에 드리는 별세기념예식, 매년 별세일에 드리는 별세기념예식을 수록하고 있다. 유족들은 이 각 단계들마다 하느님과 서로에게 다른 것들을 말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여러 단계들로 구성된 과정 또는 여정을 인정하는 것은 각 예식들에 애도의 과정을 반영할 수 있다. 이는 아마도 보조적인 예식들에 대한 가장 분명한 이론적 설명이지만, 대다수 관구들은 이중 일부의 예식만을 수록하고 있다. 미국, 카나다, 호주, 뉴질랜드와 남부 아프리카는 모두 임종예식을 수록하고 있으며, 또한 (미국제외) 장례예식 이전의 기도문들을 제공하고 있다. <대안예식서>의 양식은 교회의 시신영접 예식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미국기도서(1979)는 이를 위하여 분리된 예식을 밤샘기도의 연도와 함께 사용한다. 스코틀랜드는 가정에서의 기도, 집을 떠날 때의 기도, 관을 닫을 때의 기도를 수록하고 있다. 즉,

    아버지, 당신의 종이 죽음의 마지막 잠으로
    웃음과 눈물을 보였던 눈을 감았습니다.
    이제 잠에서 깨어나 두 눈으로 당신의 영광을 바라보게…

    아일랜드는 가정과 장의사, 영안실 모두에서 사용할 수 있는 단일한 양식을 수록하고 있다. 지역적 문화적 차이도 나타난다. 뉴질랜드의 경우, 마오리족의 관습을 반영한 ‘사망후의 가정기도’예식은 집안의 모든 방에서 ‘우리는 모든 악령의 영향을 씻어내기 위하여 성수를 뿌린다…’며 기도한다(p.272참조). <공동예배>의 이와 비슷한 의식은 사별로 인한 주거지변동(이사,relocation)에 더 많은 관심을 쏟는다. 즉, ‘소중한 기억이 담긴 각 장소마다 당신의 평화와 기쁨을 주소서.’ 케냐양식에 대한 주의사항(notes)은 또다른 문화적인 경고로 보인다. 즉, ‘케냐성공회 관구의회는 전체 장례예식을 2시간 이내로, 접대음식(feeding)가 있을 경우 이를 최소한으로 축소할 것을 권고하였다.’ 이는 일부 아프리카 지방에서 접대에 대한 만연한 세속적 기대-이로인해 유족들이 파산할 수도 있다-에 대한 경고이다.

    재의 매장예식은 일반화되어 남부 아프리카와 <대안예식서>, 뉴질랜드, 호주 등에서 독립적인 예식으로 수록하고 있다. <공동예배>는 이를 장례예식과 분명하게 연계시킨다. 즉, ‘우리는 장례식에게 (이름)를 전능하신 하느님의 손에 위탁하였습니다. 이제 우리가 (이름)의 유해를 매장할 때,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과 우리 자신들을 하느님의 보살핌에 맡깁니다.’ 뉴질랜드는 더 나아가 묘비-‘새로운 시작의 상징’-의 건립과 제막식을 수록하고 있다. 어린이의 장례예식은 이제 일반화되었으며, 일부(호주와 공동예배)는 신생아의 장례예식도 수록하고 있다. 자살한 자에 대한 장례예식을 따로이 규정한 경우 (케냐)는 드물다(‘자살한 자에 대한 묘지기도’참조). 1662년 기도서는 시작 지시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들에 대해서는 장례예식의 사용을 금지시켰지만, 오늘날 대다수 관구들은 정상적인 예식을 사용하는 것(특별기도 포함)이 옳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드문 경우지만, 미국기도서(1979)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고백하지 않은 자에 대한 장례예식(Book of Occasional Services에서)을, 케냐는 세례받지 않은 자에 대한 장례예식을 수록하고 있다.

    지금까지 세계성공회의 각 관구들의 장례예식의 변화에 영향을 끼친 신학적 문화적 요소들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요약하면, 죽음과 임종에 대한 이해에 자신감을 표현하기 시작하였으며, 일부 관구에서는 부활과 천국에 대하여 대담하게 말하기 시작하였으며, 각 단계별 예식을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또 하나는 교회의 신학[교회론]의 중요성을 회복하기 시작하였다. 즉, 교회공동체는 신앙인들의 장례를 위한 ‘가족’중심지(family place)이다. 점점 더 많은 가정들이 장례예식을 상담할 뿐만아니라 참여하고 있다. <공동예배>와 호주기도서는 가족들이 사망자의 상징물들을 전시할 것을 권고하며, 뉴질랜드는 어린이들의 꽃봉헌을 권고한다. <대안예식서>의 안내문은 이를 문화적 뿐만아니라 신학적 교회론적인 문제임을 바르게 지적하고 있다. 즉, ‘가족들의 예식을 보다 큰 교회공동체의 보호에 맡기는 것은 사망자의 직계가족들과 친지들의 책임을 점차적으로 약화시켰다…중요한 것은 장례예식은 성직자나 집행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들은 사망자의 가족과 친지 집단으로, 이들이 그리스도인들일 경우는 보다 큰 신앙공동체의 친교 안에서 적합한 자리를 찾을 수 있다.’

    참고문헌

    Jupp, Peter C., and tony Rogers. Interpreting Death: Christian Theology and Practice. London: Cassell, 1997.

    Rowell, Geoffrey. The Liturgy of Christian Burial. Alcuin Club Collections 59. London: SPCK, 1977.

    Sheppy, Paul P.J. Death, Liturgy and Ritual. 2 volumes. Aldershot: Ashgate, 2004

    Walter, Tony. Funerals and How to Improve Them. London: Hodder and Stoughton, 1990.

    2009년 3월 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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