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용어에 대한 토론이 시작한 김에 그 동안 많이 생각해 온 삼품 성직의 명칭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으면 합니다. 성공회의 삼품 성직은 주교, 사제, 부제입니다. 그런데, 제가 던지고자 하는 질문은 이 성직의 한국어 명칭이 바르게 지어졌냐 하는 것입니다. 물론, 대한성공회는 천주교보다 늦게 시작했고 또, 중국과 일본에 이미 성공회가 있었으므로 천주교나 다른 성공회가 쓰는 용어를 그대로 쓰게 된 배경은 이해합니다. 그리고, 이미 굳어진 용어를 쉽게 바꿀 수 없다는 점도 압니다. 그러나, 최소한 용어의 잘못된 점을 지적함으로 같은 용어를 쓰더라도 다른 생각으로 쓰고 또, 앞으로는 바꿀 수 있는 계기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적어봅니다.
주교의 원어는 '에피스코포스"입니다. 이는 "에피스코페오"라는 동사에서 나온 단어인데 '돌보다, 실피다' 등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에피스코포스는 '돌보는 사람'이라는 의미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감리교에서 쓰는 '감독'이라는 표현이 '주교'라는 표현보다 더 정확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돌봄'은 가르침을 통한 돌봄이니, '주교'라는 표현도 그렇게 부정확하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사제의 원어는 '프레스비테르'입니다. '노인'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에서 파생되었는데 '원로, 어른' 등의 의미를 갖고 있지요. 실지로 공동번역에서는 '원로'로 개역판에는 '장로'로 번역되었습니다. 영어 등 유럽어 권에서는 이 단어를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쓴 경우가 많은데 영어로는 priest라고 변형되었지요. 그런데, 원래 원로라는 의미의 이 단어가 다른 의미를 갖기 시작합니다. 중세의 교회에서 사제직을 제사를 드리는 의미로 축소해서 해석하다 보니 '제사드리는 사람'이라는 뜻인 '사제'의 의미를 갖게 된 것입니다. 종교개혁 당시 개혁가들은 이러한 의미 때문에 priest라는 말을 거부하기도 했지만 영국의 경우 이 단어를 그대로 유지한 체 원래의 의미인 '원로'의 의미를 회복하려고 했습니다.
이러한 배경을 생각할 때 '프레스비테르'를 '사제'라고 번역한 것은 성공회 신학에 안 맞는 번역입니다. 성공회는 성찬례를 모든 교인이 같이 드리는 제사로 생각하고 (따라서 모든 교인이 사제직을 갖고 있고) 프레스비테르는 교회의 어른으로서 이 제사를 이끄는 역할을 하니까요. 영어로 집전자를 president라고 하는 것도 이런 의미를 포함합니다. 따라서, 프레스비테르의 직분은 교회의 원로로서의 직분이고 사제직은 원로직에서 파생된 임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프레스비테르를 사제로 부름으로써, 때때로 성공회 교인조차도 이 직분을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많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교인들의 목자, 아버지로 이해하기 보다는 예배 집전자로 이해하는 분이 꽤 있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사제'라는 명칭을 '원로'라고 바꾸기가 힘들다면 최소한 성공회에 익숙한 '신부'를 공식 명칭으로 쓰는게 어떨까 생각합니다. '아버지'라는 표현은 성서에도 나오고 (1고린토 4:15) 원로직의 입장을 잘 표현하는 단어이니까요. (여성 사제도 어머니로서가 아닌 아버지로서 교인들을 지도하는 것이니 여성사제를 '신부'라고 불러도 무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부제'의 원어는 '디아코노스'인데 이는 '디아코네오'라는 동사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섬기다, 시중들다'라는 의미이지요. 따라서, 부제는 섬기는 직분입니다. 주교나 사제가 가르치고 돌보는 직분인 것과 대조가 되지요. 그런데, '부제'라는 이름을 붙임으로 이 직분이 사제직에 종속된 것처럼 보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제가 되는 한 과정일 뿐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리스도교의 지도자는 섬기는 지도자가 되어야 함으로, 사제가 되는 과정에 부제를 거치도록 한 전통은 절대로 지지합니다. 그러나, 부제를 단순히 사제의 집전을 돕는 사람으로 보는 것에는 반대합니다. 부제는 섬기는 직분입니다. 오늘날의 표현을 쓰면 사회선교를 하는 직분이지요. 이는 분명히 사제의 직분과는 구별되므로 다른 나라의 성공회나 감리교 등은 평생 부제직을 많이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한 성공회에는 아직 그런 부제가 한 명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섬기는 소명을 받은 분은 많은 것 같은데. 이것은 변해야 합니다. 섬기는 소명을 받은 분은 평생 부제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려야 합니다. 그리고, 사제가 되는 과정으로 부제가 된 분들도, 봉사의 사역을 주로 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부제 경험을 하게 되고 그것을 잘 하는 분들에게만 사제 서품이 주어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제'라는 명칭은 분명히 바뀌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공동번역에는 '보조자'라고 되어 있지만 약간 어색한 느낌이 들기는 하네요. 좋은 표현이 있으면 제안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 다른 표현이 없다면 정교회에서 하는데로 '보제'라는 표현을 써도 부제보다는 낫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어쩌면 그리 중요하지 않은 주제일지도 모르지만 모두 한 번 쯤 생각해 보면 좋은 주제라는 생각으로 적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