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 자유 토론

  1. (근 2년 전에 서울교구 성직자 포럼에 올렸던 시시껄렁한 글이 있었는데, 재미가 없어서인지 통 반응이 없었습니다. 최근에 여러분들이 예복과 관련된 질문을 던져오기에 다시 떠올려 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세요? 밑에 그 묵은 글을 올려봅니다. )

    ... (전반부 생략)

    이메일이 좋은 세상이라 서울교구 공문도 태평양 건너까지 오더군요. 잊지 않고 챙겨주셔서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늘 제 눈에 거슬리는 대목이 있는데, 행사 때마다 성직자 예복으로 적시되는 “소백의”라는 용어입니다. 실은 한국에 있을 때도 몇 분들과 시덥지 않게 나눈 적이 있는 소위 “소백의 문제”(^^)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우리 전통의 일부가 된 듯한 느낌입니다.

    제 물음은 이렇습니다. 현재 성공회 성직자들의 예복 가운데 “소백의”라는 놈의 진상이 무엇일까? 뭐 모두 소백의를 입으라 하면서 몇몇은 꼭 “중백의”라고 이름짓는 옷을 입고 나타나는데, 그 까닭은 또 무엇일까? 항간에는 어떤 “겁 없는” 부제가 “중백의”를 입고 나타났다가, 선배 성직자에게 “중백의는 고위 성직자나 입는 옷”이라는 주의와 핀잔을 함께 들었다는 믿지 못할 소문이 흉흉하게 나도는데 그 소문의 속내에는 이 보잘것 없는 하얀 포대기 옷과 관련된 어떤 음습한 권력이라도 결탁되어 있는 것일까? 뭐 웃자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 시시한 이야기에 대한 결론부터 내놓고 가자면 이렇습니다: 현재 입는 “소백의”는 성직자 옷이 아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성직자가 예복으로 입는 옷의 기본은 지금의 “중백의”이다.

    이 간단한 사실이 왜 우리 예복 관습에서는 이상하게 왜곡되었을까요? 그 연유와 더불어, 성공회 성직자의 예복, 천주교 성직자 예복 형태의 영향과 혼돈, 그리고 현재 성공회 안에서의 예복 착용에 대한 생각으로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우선 “소백의”에 대한 용어 자체의 번역에 문제가 있었던 듯합니다. 최근까지 공식기도서로 사용했던 1965년 공도문은 분명히 “소백의”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 기도서의 번역 대본이 되었던 여러 영국기도서의 예를 찾아보면 어김없이, 요즘 우리 식으로 이해하는 “중백의”로 번역할 수 있는 “서플리스”(Surplice)로 되어 있습니다. 즉 한국기도서의 소백의는 사실 중백의를 가리키는 것이지요. 그런데 왜 중백의라는 말을 쓰지 않았는가? 아마도 그 원인은 주교 예복에 대한 설명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즉 주교가 입는 “서플리스”인 “로체”(Rochet)를 굳이 “중백의”로 번역했는데, 사실 이것은 “주교용 중백의”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법한 것이었습니다. 특수 용도의 주교용 중백의가 “중백의” 일반으로 번역되다 보니, 정작 “중백의”로 번역되어야 할 것이 “소백의”가 된 것 같단 말이지요. 그렇다면 “소백의”는 어디에다 붙여야 할까? 지금 한국성공회 성직자들이 입고 있는 형태대로 소매가 짧아서 캐석 위 팔꿈치까지 닿고, 엉덩이를 겨우 가리는 이 흰 예복은 그저 “어린이용 복사복”(cotta)라고 부르면 딱일 듯 합니다.

    편의를 위해서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영어명칭-1965년 번역어-바로 잡은 용어 순)
    Cotta : (1965년 번역어 ?) : 소백의 (어린이용 복사복)
    Surplice : 소백의(1965년 번역어) : 중백의 (실제로 서플리스에 해당하는 말)
    Rochet: 중백의(1965년 번역어) : 주교용 중백의
    Alb: 장백의(1965년 번역어) : 장백의 (캐석 위에 제의 밑에 입는 예복)

    둘째로 중백의의 형태를 찾아가 볼까요? 이 또한 소백의와 중백의의 형태상 혼돈을 가져온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영국식 중백의와 그 밖의 지역 중백의 – 특히 천주교회 –의 형태가 다릅니다. 즉 영국식은 목선이 원형에 소매 폭의 곡선이 크게 내려온 것이 특징이라면, 천주교식은 사각형 목선에 어깨부터 같은 폭의 소매가 손목까지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성공회 성직자들이 입는 옷은 아무리 잘 봐줘도 천주교식 중백의를 입는 것인데, 안타깝게도 그 소매 길이가 손목에도 못 미치고, 결국 “어린이용 복사복”에 머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천주교 성물점에서 가서도 소백의를 달라하면 알아듣지 못하죠. ‘아 중백의요’ 하면서 내주는 것이 바로 천주교식의 중백의였습니다. 우리는 그걸 또 소백의라고 굳이 부르며 입고 있습니다.

    이런 판이니 영국식 중백의를 입었다고 고위성직자들에게 핀잔을 주고 받았다는 이야기가, 제게는 내내 누군가가 성공회를 모함하려고 꾸며낸 허황된 이야기로만 들릴 뿐인 것이지요.

    그러니 이런 참에, 지금 형태의 소백의는 벗고, 용어도 좀 정리하고, 성공회 안에서 오랫동안 착용했던 형태의 원형 목선에 소매 넓은 중백의를 입자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가수녀원에서도 이 중백의를 참 예쁘게 잘 만드십니다.

    중백의 이야기 나온 마당에 중백의 착용에 대한 성공회의 전통을 말해볼 수 있겠습니다. 중백의는 기본적으로 영국성공회의 전례 개혁 이후의 공통적인 예복이었습니다. 평상복인 캐석 위에 예식을 위해 입었던 것이 중백의였으며, 성찬의 전례를 거행하는데도 이의가 별로 없었던 예복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색깔별 영대는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고, 다만 설교자는 “티펫”이라는 “검은 영대”를 입어서 말씀의 권위를 표현했습니다. 현재 주교님이 입으시는 주교용 중백의와 자색(혹은 홍색) 겉옷(치미르) 위에 걸치는 검은 색 영대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것 역시 모든 성직자들(부제와 사제를 막론하고)이 착용했던 것입니다.

    색깔있는 영대 사용은 제의와 더불어 성공회 내의 전례 회복 운동과 함께 광범위하게 퍼졌는데, 그 기원이 각각 다르고 길지만, 광범위한 사용은 성공회 역사 상 채 100년에 불과합니다. 하여튼 그 와중에 한국에서는 ‘티펫’을 사용한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게 됐습니다. 다만 여전히 지금도 사용한다면, 절기 혹은 축일 행사와 관련이 없이 말씀의 전례를 만을 가진 예배나 아침, 저녁 기도에 설교자(부제, 사제, 그리고 설교 권한을 받은 전도사도...)가 사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럼 제가 이곳 미국 동네에서 보는 모양새를 잠시 그리면서 마칠까 합니다. 신학교에서는 우리가 입는 형태의 소백의는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복사도 더 이상 소백의는 입지 않고, 그저 모두 중백의를 입습니다. 지역 교회에서도 찾아보기 힘든게 소백의입니다. 평신도들도 입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굳이 찾아 보려면, 어린이 성가대나, 어린이 복사용 예복장을 뒤지면 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한국에서는 성가대도 중백의 모양의 성가대복을 입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성직자들이 어린이 복사용 예복인 소백의를 아직까지 고집하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별 시시한 이야기를 가지고 이렇게 장광설을 늘어놨으니, 신부님들의 귀한 시간을 빼앗은 것을 어떻게 보상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다음 기회에 또 시시한 이야기로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건강들 하세요. 사랑하는 신부님들…

    먼 바다 건너에서

    주낙현 합장

    (2005년 5월 10일)

    "Tradition is living faith of the dead, Traditionalism is dead faith of the living."
    2007년 4월 11일 #
  2. 익명
    미등록

    신부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소백의(cotta)는 성직자의 예복이 아닙니다.
    'superpellicium(surplice)'라는 단어를, 중백의로도, 소백의로도 번역을 하는데,
    (국내의 영한사전들을 찾아봐도, [가톨릭대사전] 등 전문사전류에도, 원 표제어는 위와 같습니다)
    두 가지는 구별되는 예복이지요. 그래서, 주지하다시피, 소백의는 따로 'cotta'라 부릅니다.

    [가톨릭대사전](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에는, 이렇게 되어 있더군요:

    중백의 (superpellicium / surplice):
    장백의를 조금 짧게 변형한 것으로 성직자들이 미사와 행렬 등 성사(聖事)집행 때에 수단 위에 입는 옷. 길이가 무릎까지 오며 소매 폭이 넓고 소매 끝과 아랫단의 수(繡)가 놓여져 있거나 레이스가 달려 있거나 아무 장식 없는 것이 있다. 장백의와는 달리 띠 없이 입는다. 12세기경에 로마에서 처음 착용하기 시작하였다. 중백의는 장백의 대신으로 입을 수 있으나 장백의 위에 제의(祭衣)를 입는 경우에는 장백의 대신 입을 수 없다. (⇒) 장백의

    소백의 (superpellicium / surplice) :
    ① 원래는 성직자가 성무 집행 때에 입었던 길이가 짧고 소매 폭이 넓은 흰 옷(surplice). 11세기, 장백의에서 발전된 것으로 길이는 무릎까지 오며 허리띠 없이 입는다. 라틴어 명칭 'superpellicum'에서 알 수 있듯이 원래는 겨울에 모피옷 위에 입었다. 15세기 이래로 길이가 더 짧아지고 성체를 분배해 줄 때, 행렬, 축복, 장례식 등 성무 집행 때 장백의 대신 입게 되었다. 오늘날은 사제를 시중하는 복사(腹事)들이 미사나 행렬 등 기타 의식에 복사용 수단 위에 입는다.
    ② 교황, 추기경, 주교, 대수도원장 등 고위 성직자들이 행렬 등에 입는 아마포로 된 흰색의 제의(rochetum). 형태는 중백의와 비슷하나 소매폭이 좁은 것이 특징이다. 소매부리와 가장자리에 레이스로 장식되어 있는데 레이스의 길이는 이 옷을 입는 사람의 위계(位階)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간혹 'choir dress'라는 명칭을 접할 수 있는데요,
    우리가 늘 접하는, 수탄(soutane. cassock)에 중백의(supplice)를 입은 복장이죠.
    [Naver 지식in]의, mylucio님은,
    "제가 찾아본 자료에서는 12세기초에 로마 가톨릭에 중백의가 도입되어
    초기에는 하급 성직자와 성가대에서 입었다는 내용은 찾았습니다.
    그리고 16세기에 갈라져 나간 성공회의 성가대에서는 많은 교회에서
    아직까지도 다양한 색상의 수단에(로만 칼라 제외) 중백의를 입고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라고 말씀하시네요.
    ( http://kin.naver.com/db/detail.php?d1id=6&dir_id=60303&eid=wwSjBJgTjJ7fOWTFJrjgsTiz4aLqVO2u&qb=vLqwobTrurk= )
    이 내용은 맞는 것 같습니다.
    루터교 예배학자 박성완 교수님도, [루터교 예배 이해](서울:컨콜디아사, 2000)에서,
    성직자의 예복으로 장백의, 영대, 제의, 수탄, 중백의(surplice), 띠,
    전례 봉사자의 예복으로 장백의와 수탄, 소백의(cotta)를 꼽습니다.
    (166-168쪽)

    사실, 주지하다시피, 중백의란 장백의를 간소화한 예복이며,
    천주교 또한, 모든 전례 봉사자의 공통 의복으로 장백의를,
    그 대용으로 간소화한 예복으로, 중백의에 수탄을 입도록 규정해 놓았습니다.
    ([로마 미사전례 총지침] 336, 339항 등 참조)
    실제로, 한국 및 해외의 천주교의 실태를 보더라도,
    성찬분배자, 복사, 독서자, 해설자 등 평신도 전례 봉사자들은
    수탄 위에 중백의를 입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입니다.
    다만, 어린이 복사의 경우 조금 짧은 중백의,
    (이것을 소백의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길이만 짧을 뿐, 팔은 손목까지 다 덮거든요. 중백의라 봐야겠죠)
    또는 변형된 여러가지 옷들을 입습니다.

    아무튼 각설하고,
    수탄 위에 중백의를 입는 것을 두고, 성직의 위계적 이해에 비추어,
    부제가 감히 중백의를 입느냐 운운한다는 것은,
    만약 그러한 일이 실제로 있었다면, 상식 이하의 납득하기 어려운 사건이 아닐런지요.

    대한성공회만 놓고 보면,
    수탄을, 최소한 신학생 이상의 예복으로 생각하는 듯한데,
    이것 또한, 저는 도대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물론, 천주교의 신학생(학사)들 또한, 수탄을 입고,
    수탄이, 성직자 또는
    사제직을 위해 공부하는 신학생들의 옷으로 인식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분명 평신도 전례 봉사자들도 늘상 입거든요?
    옷 자체에 위계의식을 투영하는 것, 우습고 부질없다고 생각합니다.

    신부님께서도 말씀하셨거니와,
    전례학 교과서나 사전에 나오는 형태의 'cotta'는,
    이제는 해외의 전례용품 쇼핑몰들을 다 뒤져도 구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별별 형태의 예복들을 팔고 있는데도, 적어도 저는 본 기억이 전혀 나지 않습니다.
    하워드 갤리도, [성공회 예전 안내서]에서,
    소백의의 착용을 극구 말리더군요.
    미관상 보기 싫으므로, 성가대, 복사에게도 추천하지 않는다는군요.
    (27쪽)

    그리고, 첨언하자면, 위에서 mylucio님의 언급과,
    [로마 미사전례 총지침]의 예도 말씀드렸지만,
    성가대 또한, 수탄 위에 중백의를 입거나,
    장백의에 띠를 착용하는 것이 보기에도 좋고, 전례의 전통에도 준하는 게 되지 않을까요.
    전례가 율법이 되어서는 안되겠지만,
    현재 한국의 천주교, 개신교, 성공회를 막론하고,
    한국 교회의 성가대복은, 그 연원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신부님의 문제 제기가, 시시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중백의는 고위 성직자나 입는 예복이니,
    사제보다 아래인 부제나 평신도 전례 봉사자들은 입어서는 안된다라는 의식이,
    과연 실제로 존재한다면,
    이것은 성직 권위주의 중에서도, 말이 안 되는 근거없는 권위주의일테니까요.
    그리고, 전례에는, 미적 요소 또한 중요하다고 봅니다.
    전례의 육체성, 감각성을 생각해 볼 때,
    사제와 주교, 부제의 정규 제의와 예복 뿐만 아니라,
    평신도 전례 봉사자들의 예복까지도, 중요하게 다뤄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천주교의 [총지침]과 지역 규정들처럼, 법규로 정하는 것도 좀 지나치겠지만,
    왜곡된 지식이 성직 권위주의와 결탁, 습합하는 것은 더 옳지 않겠습니다.

    2007년 4월 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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