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 전례 자료

  1. 한국에서 가질 전례학 포럼에 대해서 자료 요청이 많은데, 그냥 퉁명스럽게 숙제만 내줘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함께 나눌 자료들을 갖고 전례에 대한 질문과 고민을 좀더 깊이해보자는 생각으로 금방 만들어 본 자료를 하나 올립니다. (전례학 포럼 준비 글 댓글로 올렸던 글을 이리로 옮겨 놓습니다). 덩그마니 이미 나온 것들만 던져놓지 말고 좀 새로운 것으로도 성찰의 자극을 삼아보자는 심산입니다. 다음 내용을 따라 성찰을 깊이내려 보시겠어요? 서방 및 동방 교회를 막론하고 생존하고 있는 최고의 전례학자라고 꼽히는 로버트 태프트(Robert Taft SJ) 신부의 글 부분을 올려 놓습니다. (이 양반은 예수회 사제이지만, 이른바 비잔틴-러시아 전례를 따르는 분입니다.) 전례에 관한 신학적 테제라 할 수 있는 이 요약을 함께 읽어 봅시다.

    Robert Taft S.J., “What Does Liturgy Do? Toward a Soteriology of Liturgical Celebration; Some Theses.” In Robert Taft, Beyond East and West: Problems in Liturgical Understading, 2nd revised and enlarged edition. (Roma: Pontificio Istituto Orientale, 2001), 239-258.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Michelangelo Buorarroti, the Sistine Chapel, 1513)
    • 하느님의 손가락(생명을 주는 손가락)과 아담의 손가락 사이에 놓은 간극

    • “전례란 이 두 손가락 사이에 놓인 간극을 채우는 일이다. 이 시스틴 성당 그림이 보여주는 하느님의 메타포는 창조하시는 분, 구원하시며 구속하시는 손으로 우리에게 다가서시려는 분이다. 구원의 역사는 우리의 손을 들어 (혹은 손을 들기를 거부하는 가운데) 이 선물을 끊임없이 받으며, 감사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전례에 대한 전부가 아니겠는가? 물론 여기서 나는 ‘전례’라는 용어를 바울로 신학의 의미에서 넓은 의미로 사용한다. 즉 교부들이 전체적인 ‘오이코노미아’(경륜) 혹은 ‘코메르시움’(주고받는 관계)이라고 불렀던 의미를 포함하는 것이며, 이것은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서 지속되는, 구원의, 주고 받는 관계를 말한다. 이것이 야곱의 사다리에 나타난 구원의 역사이다.”

    • “[그러므로] 전례는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일어나는 구원의 관계이거니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례들은 이 구원의 만남에 대한 특권적인 근간이 되어 이 관계를 몸으로 드러내고 표현한다.”

    • 전례 행위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는 방법

    1. 새로운 계약의 전례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2. 그리스도교 전례는 바울로 신학의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시다는 현실 그 자체이다.

    3. 이 현실은 오직 신앙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인격적인 경험이다.

    4. 전례는 – 좁은 의미에서 실제의 그리스도교 전례들, 예배, 전례적 축하 행위 – 이러한 거룩한 만남의 특권적인 근간이며, 오늘날 이 세상 속에서 우리 안에 현존하시며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현현이자 계시이다.

    5. 전례는 어떤 객체가 아니라 인격의 만남이며, 실존적 관계에 대한 축하 행위이자 표현이다. 이 관계는 곧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 존재하는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 그리고 우리 서로 간의 관계이다. 이 때 성령은 그리스도교 예배를 가능하게 하는 분이다.

    6. 이러한 은총에 넘치는 만남의 기반이자 원천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기에, 모든 그리스도교 전례는 파시카 신비라는 근본적인 메타포를 실행하는 것이며, 이로써 궁극적 실재, 모든 창조와 역사와 삶의 최종적이며 결정적인 의미를 신앙을 통하여 이 신비에 들어오는 이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7. 이것이 실재하며 현실적인 것은 바로 우리가 과거의 사건을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지금이라는 현재성을 축하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속되는 요청이나 우리의 응답이며, 새로운 삶이다. 우리는 이것을 구원이라고 부르며, 이것은 과거의 사건의 사건을 통하여 현재화된 것이다.

    8. 그러므로 우리의 전례는 과거의 사건을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현존하는 분, 즉 지금이나 과거의 당신의 모든 존재를 영원히 포함하며, 또한 우리를 위해 이 모든 것을 하신 분을 축하하는 것이다.

    9. 그리스도교 전례는 그러므로, 살아있는 아이콘이다. 이것은 어떤 표지들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인격들(persons)으로 구성된다.

    10. 예수 또한 전례를 구성한다.

    11. 그리스도교 전레는 그러므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실성에 근거한다. 그래서 멜카이트 정교회 신학자 장 코르봉이 제대로 표현한대로 “원천이 되는 전례”이다.

    12. 성서가 인간의 말로 된 하느님의 말씀이라면, 전례는 하느님 안에 살게 될 사람들의 행동으로 나타나는 하느님의 구원 행위이다.

    13. 우리의 진정한 그리스도교 전례는 바로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이다. 우리는 전례 안에서 그 생명을 살고 축하한다. 그 생명은 바로 성령이다.

    14. 현존하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교회에 현존하는 것의 근간은 그분이 신앙 안에 현존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신앙에 앞서 성령의 현존이 있다. 신앙은 성령의 활동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성령의 행동이 신앙을 가능하게 하고, 이 성령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신다.

    15.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현존하는 모든 방식은 성령을 통한 이 기본적인 현존의 현실화이다. 이것은 신앙 안에서 받아들여진다.

    16. 교회의 전례 사목 안에 특별히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현존은 전례가 지금 우리 안에서 펼치시는 그리스도의 구원 행동을 함께 축하한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이로써 전례는 교회의 신앙에 대한 표현이다.

    전례의 신비:

    전례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고, 하느님의 구원 사건이 일어나는 일, 그리고 이 전례의 성사를 통하여 우리가 먹고 자라나며, 우리 안에 계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일을 우리는 신비라고 부른다.

    이 신비는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인이 살아가는 생활의 중심이라는 것이며, 바로 이 신비를 교회는 성령을 통하여 말씀으로 선포하고, 전례를 통하여 그것을 깊이하며 새롭게 한다.

    전례와 세계 – 삼위일체:

    전례의 모임을 떠나 세속의 임무로 돌아갈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전례 안에서 경험한 것으로 우리의 삶을 동화시키고, 이 신비를 우리의 삶 속에서 현실화하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작은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다. 전례란 적극적인 예언 행위이기 때문이다. 전례의 목적은 공동체의 예배 안에서 교회가 보여준 모본을 우리의 삶 속에서 재생산하는 것이다. 영성 생활이란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라는 말에 다름 아니며, 전례란 신비한 몸(교회)이 하느님과 갖는 관계에 대한 공동체적인 표현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인간이신 예수께서 성부 하느님과 성령님과 맺는 관계이기도 하다.

    전례 영성:

    전례 영성은 공동체적인 사목과 교회의 예배의 일치이다. 여기서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 전례와 개인 신심이라는 이분법이 작동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전례가 하는 일이며, 전례가 의미하는 바이다. 전체인 그리스도, 즉 그 머리와 지체들을 다른 사람들 안에서, 신앙과 희망과 자비행을 통해서 만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전례를 행하는 것도, 전례가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Tradition is living faith of the dead, Traditionalism is dead faith of the living."
    2007년 5월 8일 #
  2. dhkim1023
    회원

    오호~ 제목만 봐도 멋있네...
    전례에 대한 이런 좋은 글 있으면 바쁘신 와중이라도 많이 올려주삼^^
    열심히 읽을께요!!!

    2007년 5월 11일 #
  3. 테제는 늘 해제가 있기 마련인데, 사실 원래 글도 그런 테제에 대한 자기 해명의 글로 풀어가는 형식입니다. 시간이 없어 글 전체를 옮겨 놓지 못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테제들에 대한 우리들 자신의 해제를 만들어가보자는 의도도 있습니다. 가장 중요하게 다가오는 것부터 이 글을 씨앗삼아 한번 생각을 영글어봅시다.

    2007년 5월 1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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