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 설교 자료

연중 20주일 -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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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연중 20주일 - 다해

    제 1독서: 예레 38:4-6, 8-10 RCL: 예레 23:23-29

    예레미야 38장에는 우물 구덩이에 빠지게 된 예레미야 이야기를 듣게 된다. 예레미야는 하느님의 심판에 따라 예루살렘이 곧 파괴될 것이라고 예언해오던 참이었다. 정치 권력이 이런 말을 듣고 국가 전복 의도라고 여기는 것도 당연지사, 결국 권력자들은 예레미야의 입을 막으려고 우물 구덩이에 쳐넣는다. 그러나 이때 예레미야는 에티오피아 사람 에벳멜렉 덕택에 목숨을 부지하게 된다.

    이 단락의 소제목 "어머니 당신은 나를 온 세상이 적대하는 사람으로 낳으셨습니다"(역자주: 우리말 성서 번역은 다르다)라는 구절은 이 단락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예레미야의 기도에서 따온 것이다(예레 15:10). "온 세상"은 "온 나라" 즉 유다를 지칭하는 것이겠다. 여기에 비추어 우리가 이 본문을 해석할 때는 예레미야의 구출보다는, 그가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기때문에 배척당하고 고난을 받게 된 사실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므로 예레미야의 고난은 오늘 복음 말씀에 엿보이는 예수의 고난에 대한 전조라 하겠다.

    RCL의 독서는 예레미야가 거짓 예언들에 대한 비판을 다룬다. 하느님은 거룩하신 분이셔서, 거짓 예언자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를 잘 알고 계신다 (29절). 이런 처지에서 예레미야는 겸손하지만, 자신이 하느님의 말씀을 품고 말하는 예언자 가운데 한명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다 (28절).

    제 2독서: 히브 12:1-4 RCL: 히브 11:29-12:2

    이 본문은 앞장에 나온 구약성서 신앙의 영웅들의 활약을 나열한 뒤 이를 결론맺는 권고이다(RCL 본문은 이러한 행적 나열의 마지막 부분부터 시작한다). 이 신앙의 영웅들은 온갖 배교의 유혹을 물리친 신앙의 힘을 보여주은 "증인들"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구약성서의 증인들를 "구름처럼" 경주장에 모인 관중들로 묘사하면서, 그들이 달렸던 같은 경주장을 달리고 있는 이들을 응원하는 모양으로 그리고 있다. 우리가 달려할 길이 이제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이미 세례를 통해서 이 경주에 참여한 것이다. 달리기 선수들이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무거운 옷을 벗는 것처럼, 우리도 자신을 둘러싼 죄의 압박을 벗어버려야 한다

    그러나 구약성서의 영웅들보다 더 위한 분이 계시니, 곧 예수이시다. 예수는 "우리의 믿음의 근원 (선구자)이시며 완성자"이시다. 그분은 지상 생애에서 선구자이셨다. 주님께서 신앙의 길 - 고난을 통하여 영광에 이르는 길 - 을 개척하셨기 때문이다(2절). 그분은 또한 완성자이시다. 주님은 이를 완성하시고, 신앙인들이 고난을 통하여 영광에 이르는 똑같은 경주에서 달릴 수 있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4절부터는 히브리서의 새로운 단락이라고 하겠다(그래서 RCL은 2절에서 끝난다). 여기서 기자는, 히브리서 전체에서 자주 드러나는 것처럼, 그리스도론적 해설에서 이 글을 쓰는 교회의 상황에 대한 윤리적인 해설로 돌아간다. 여기에 있는 신앙인들은 그들의 이웃들(이방인? 혹은 유대인?)에게서 미움을 받고 있다. 하지만 아직 순교를 당하는 고통에 이르지는 않았다.

    복음: 루가 12:39-53 RCL:루 가 12:49-56

    오늘 복음 말씀은 두 부분으로 이뤄진다. 첫 부분(49-50절)은 고통을 견뎌내야 하는 그리스도의 신적 운명에 대해 말한다. 이 부분은 루가 복음에만 특별한 것이다. 두번째 부분(51-53절)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전언에 따라 생겨날 가족의 분열에 대한 것이다. 두번째 부분은 마태오 10:34-35에 병행한다. 먼저 이 두 부분을 나눠서 검토해 보고, 그런 다음 이를 함께 묶어 살펴서 루가가 전개하고자 하는 신학적 의미를 논의하겠다.

    첫번째 부분은 두번의 "내가 말한다"는 말씀으로 이루어졌다(역자주: 우리말 번역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이미 완성된 사실로서 당신의 선교 사명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첫번째 말씀은 예수님께서 직접하신 말씀이라 하겠는데, 당신이 지닌 예언자적 선교 사명에 대한 자의식을 표현한다. 한편, 두번째 말씀은 당신의 순교를 세례로 언급한다(마르 10:38 참조). 이것은 "사후 예언"(vaticinium ex eventu)라 불리는 것으로, 그리스도교의 세례 신학을 반영한다(로마 6장 참조). 이 두번째 말씀은 첫번째 예수님의 원래 말씀에 대한 초기 교회의 부연 설명이라고 볼 수 있겠다. 예수께서 이 땅에 가져올 "불"(종말론적 심판의 한 상징)은 그분의 종말론적 메시지를 앞두고 어떤 결단을 내리라는 그분의 촉구이겠다. 이후 교회가 덧붙인 두번째 예수의 말씀은 예수의 죽음에 관한 의미를 담고 있으며, 부활 이후 예수의 종말론적인 메시지가 십자가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케리그마)로 대치될 것을 의미한다. 이 가르침 또한 결단을 촉구한다.

    가족의 분열에 관한 두번째 이야기(Q 자료)는 미가 7:6로 거슬러 올라가는 묵시론적 전통을 반영한다. "동방의 사고 속에서 사회의 붕괴는 항상 두려움의 지배와 연결된다. 이 두려움의 지배는 구원의 시대에 선행하며, 이것이 유대교의 묵시론적 전통에서 종말의 한 표징이라는 것은 놀라운 것이 아니다."(J.예레미아스). 이 말씀이 예수님 자신의 것인지 아니면 부활 이후의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것인지 분명하게 밝히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결단을 촉구하는 예수의 사목에서나, 십자가에 대한 가르침(케리그마)의 결과로 결단을 촉구하는 부활 이후의 공동체에서나 모두 발견된다.

    이 두 전통 - 즉 예수님의 두번의 말씀과 가족의 분열 - 을 함께 묶으면서, 루가는 가족의 분열이 십자가에 대한 가르침(케리그마)의 당연한 결과임을 보여준다. 최근까지 학계의 일반적인 평가는 루가에게 십자가 신학이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루가가 바울로나 마르코와 같이 구속을 위한 죽음으로서 십자가를 말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루가 22:19b-20을 보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내어주는 내 몸이다. 나를 기념하여 이 예식을 행하여라'하고 말씀하셨다. 음식을 나눈 뒤에 또 그와 같이 잔을 들어 '이것은 내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의 잔이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이 피를 흘리는 것이다' 하셨다." 이 부분은 루가 고유의 자료로서, 부가적인 것이 아니라고 일반적으로 보는데, 이 점은 루가가 전례를 통하여 표현되는 구속론을 잘 알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물론 루가는 그의 신학에서 구속론적인 언어를 사용하지 않지만, 고유한 십자가 신학을 가지고 있다. 곧 그리스도에게 십자가는 하느님께서 정하신, 영광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이다(24:26). 이제 신앙인들은 같은 고난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오늘 본문의 두번째 부분을 보라). 이 고난은 여러 형태일 수 있다. 가족과 사회에서 배척당하고 추방당하는 것이며, 여기에서는 명시되지는 않았으나, 순교가 그것이다.

    RCL 본문은 54-56절을 추가하여 새로운 부분을 구성한다. 이것은 비유 이야기인데, 예수 당대의 사람들이 날씨가 어찌되리라 예견할 수는 있으면서, 구원의 역사에 대한 표징을 식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예수의 말씀과 행적이 임박한 하느님 나라를 위한 예표인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설교

    오늘 본문들의 전언은 모두에게 익숙한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겠다. "십자가 없이, 면류관은 없다." 예레미야는 "구름처럼 모인 증인들"을 통해서 이것을 말해주며, 우리 신앙의 선구자요 완성자이신 예수께서는 이 땅에 불을 가져오시고, 순교의 세례로 세례를 받으신다. 또한 그 결과,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가족의 분열을 경험한다. 설교자는 현대 사회 안에서 신앙인들이 짊어지는 십자가의 구체적인 형태들을 분명히 드러내고, 신앙인들이 이미 들어선 이 경주에서 끝까지 달릴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한다.

    RCL을 사용하는 설교자라면, 본문의 마지막 부분(54-56절)을 선택해서 다가오는 하느님 나라의 표징을 식별하고, 현재 교회와 국가, 지역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적시하여, 이것들이 임박한 하느님의 심판과 구원의 표징이라는 점을 식별하도록 돕는 것도 한가지 가능성이겠다.

    "Tradition is living faith of the dead, Traditionalism is dead faith of the living."
    2007년 8월 1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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