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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3주일 -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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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연중 23주일 - 다해

    오늘의 세 본문들은 서로 전혀 다른 주제를 갖고 있다. 제 1독서는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는 것은 오직 하느님의 영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이고, 제 2독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펼쳐지는 인간 관계의 변화를 다루며, 복음은 참된 제자도를 위해서는 재산을 포기하는 것이 전제 조건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공통의 주제를 찾으라는 것은 우리처럼 범상한 이들에게는 큰 무리이다. (굳이 어떤 연결점을 찾는다면 지혜서의 본문과 시편의 내용이랄 수 있겠다.)

    제 1독서: 지혜 9:13-18 RCL: 신명 30:15-20

    지혜서는 솔로몬의 입을 빌은 기도를 보여준다. 이 기도의 초기 형태는 1열왕 3:6-9에 나오는 것으로, 여기서 솔로몬은 식별할 수 있는 "명석한 머리"를 달라고 기도한다. 그런 다음 2역대 1:9-10을 보면, 왕노릇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지혜"를 달라는 기도를 바친다. 지혜서의 기자는 이 점을 부연 설명하면서, 하느님의 뜻은 오로지 지혜와 하느님의 영을 통해서만 헤아릴 수 있다는 교리를 천명한다. 여기서 지혜와 하느님의 영이 병행하여 이 두 개념이 서로 동의어인 것을 제시한다.

    15절은 플라톤의 [파에도]를 연상시키지만, 성서 기자는 여기서 비성서적인 몸과 영의 이분범을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다. 몸은 하느님의 뜻을 아는데 걸림돌이겠으나, 악의 처소는 아니다. 육체는 악한 것이 아니라, 유한한 성격을 갖고 있을 뿐이며, 그 때문에 약점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오직 하느님의 영 혹은 지혜만이 우리가 이러한 유한성을 초월할 수 있도록 한다.

    RCL 본문은 초기 정경 자료의 하나로 이스라엘이 직면한 선택을 강조한다. 두가지 길이 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길은 생명으로 가는 길이요, 다른 신들을 숭배하는 것은 저주와 죽음으로 가는 길이다.

    제 2독서: 필레 9b-10, 12-17 RCL: 필레 1:21

    필레몬에게 보낸 편지는 바울로의 개인 편지 가운데 유일하게 남게된 서신이다. 오네시모는 골라사이의 그리스도인이었던 자기 주인 필레몬에게서 도망쳐 온 노예이다. 그는 바울로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바울로를 만났다. (로마의 감옥이라는 것이 전통적인 견해였으나, 그 거리를 따져보자면, 에페소의 감옥이었으라는 것이 오늘날 대체적인 견해이다. 그러므로 여기는 골로사이-로마라기 보다는 골로사이-에페소가 맞겠다.) 바울로의 영향을 받아 오네시모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를 다시 주인에게 돌려 보내면서 바울로는 그를 "더이상 종으로서가 아니라, 형제"라고 부른다. 이걸로 바울로가 노예제를 폐기하는 것은 아니다 (당시 사회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과 종의 관계를 변화시킨다. 18세기와 19세기에 이르러서야 그리스도인들은 노예제가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다. 바올로는 그리스도 안에서는 노예도 없고 자유인도 없다는 원칙에서 이러한 결론을 이끌어 냈다. 미래의 세대들은 이러한 원칙 안에서 자신들의 구체적인 상황에 비추어 이를 적용해야 할 것이다.

    RCL 본문은 서신의 관례적인 결론을 제외한 필레몬서 전체를 읽는 것에 주목하라.

    복음: 루가 14:25-33

    오늘 복음 본문은 제자됨의 대가에 대한 여러 담화들을 하나로 엮은 것이며, 이 대가를 치러야 할 필요성을 설명해주는 두개의 비유가 뒤따른다(망대를 짓는 사람 이야기와 전쟁을 치를 왕 이야기).

    "미워하라"(26절)는 표현은 가혹하다. 원래 아람어 표현이 뜻하는대로 단순히 "덜 사랑한다"는 것으로 풀이하고 마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이는 반대로 그 의미를 너무 약화시킨다. 그 진정한 뜻은 예수를 따르는 일은 자기 삶 전체를 포기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런 다음에야, 이전에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제자도를 수행해야 하는 지금의 상황에서 포기한 옛 삶의 면면들을 그리스도에게서 되돌려 받는다.

    27절의 담화는 모든 참된 제자들은 문자 그대로 죽음에 직면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순교는 제자됨이 가져오는 궁극적인 결론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순교자들에게 늘 경의를 표했던 것이다.

    설교

    앞서 말한대로, 오늘 본문들에서 분명한 공통 주제를 찾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그 중 하나의 주제만 선택하고 다른 것은 무시하는 것이 좋겠다.

    지혜서 본문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다룬다. "나를 향한 하느님의 뜻을 어떻게 식별할 수 있는가?" 설교자는 성령의 도움을 받은 여러가지 길들을 지적할 수 있겠다. 기도와 성서 공부를 통하여, 혹은 영적 조언자(영적 지도자)의 조언을 포함한 다른 그리스도인의 조언을 통하여, 그리고 무의식중이나마 교회의 전례 생활에 충실하게 참여하는 것을 통해서 식별력을 얻을 수 있다.

    필레몬에게 보내는 편지는 우리와 다른 사람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의 영을 받아들이라는 요청이다. 이 역시 우리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우리의 인간적 관계들을 변화시키기 전에 사회를 변화시켜야 하는가? 아니면 인간적 관계들의 변화가 사회 구조의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인가?" "교회는 사회 정치적 운동을 지원해야 하는가? 아니면 교회의 임무는 개인들을 변화시키고 그들이 성스러움 안에서 성장하도록 해야 하는가?"

    오늘 복음은 매우 불편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어떻게 부자 교회들은 제자됨의 전제 조건으로 그 모든 재산을 포기할 수 있을 것인가?"

    "Tradition is living faith of the dead, Traditionalism is dead faith of the living."
    2007년 8월 23일 #
  2. 1독서 신명 30:15-20
    2독서 필레몬서
    복 음 루가 14:25-33
    주 제 제자가 되려면

    입당성가 344장 다 찬양하여라
    본격적인 가을로 접어들고 있다. 9월8일은 '백로'절기로 만곡이 무르익는 완연한 가을임을 알려주는 절기이다. 때 맞추어 지겹던 장마가 끝나고 있다. 하느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것은 신자들의 기쁨이다. 3박자 곡으로 입당성가로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나 노래의 내용은 입당성가로 적당하다. 그러므로 입당성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부드러운 왈츠풍 보다는 부점(첫박자)을 살려서 경쾌한 분위기로 부르도록 한다.

    층계성가 496장 주님의 사람아
    복음의 주제를 잘 반영하고 있다. 또한, 위 주석가가 빌레몬서에 관해서 던진 질문에 대해서 "생각과 말과 행실"로 왕되신 주님을 섬기라고 노래하고 있다. 개인구원이냐 사회구원이냐의 논쟁에 머물지 말고 "할일이 많고 많으니 다 나와 일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바울로 사도가 오네시모의 빚을 "대신 갚겠다"고 말한 것은 오늘날 교회의 사회적책임을 무겁게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필레몬에게 "내가 말하는 이상의 일까지도 해주리라고 믿습니다."라며 은근히 종의 멍에를 풀어줄 것을 요구하는 것은 명령이 아니라 개인의 감동에 의해서 변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사회적, 개인적 계층이나 연계고리에 얽매이지 말고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일하라는 것이다.
    곡의 길이도 층계성가로 적당하고, 2독서와 복음을 잘 연결해 주고 있다.

    봉헌성가 570장 주안에 있는 나에게
    헛된 것으로 부터 떠나서 십자가 밑에 '짐을 풀었다'는 성가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아주 잘 표현하는 성가라고 생각된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는 삶은 실제로는 '기도'와 '노래'를 부르며 '보호'와 '동행'의 삶이다. 주님을 따르는 일은 근심을 모두 내려놓는 쉼이다. 설교 후에 부르게 되는 봉헌성가로 적당하며, 주님만 따라가리라는 결단을 봉헌하도록 이끄는 성가이다.

    파송성가 493장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주님을 따르기로 작정 하였으나, 우리는 헛된 것들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사랑의 주님께서는 이런 약한 우리들을 잘 아시고 말씀과 기도속에서 조금씩 변화된 삶을 살게 하신다. 내 고집대로 사는 삶을 포기하고 내 '심령 주님 것'임을 선언할 때, 주님은 내 삶을 '주님의 형상'으로 조각하시고, 이끄신다. 신자의 삶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따르기로 한 첫 사랑을 기억하고 항상 '사랑과 충성'을 바치는 삶이다.
    4박자 곡으로 마치 질문과 답변의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자기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고 세상속으로 나아가서 그리스도인으로 살 것을 다짐하도록 이끌어준다. 파송성가로 적당하다. 주제도 오늘의 복음을 잘 드러내 준다.

    2007년 9월 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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