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 전례 Q & A

  1. 요즘 한 가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기념 성찬례가 옳으냐 하는 것입니다. 성찬례는 철저하게 예수님을 기념하는 것인데 다른 이유로 성찬례를 드리는 것이 옳은가 하는 문제입니다. 물론, 모든 축일은 (성인 축일 포함) 예수님을 기념하는 것으로 이에 이의 없습니다. 또, 무엇을 기념하러 모였을때 먼저 성찬례를 드리는 데도 찬성합니다. 그런데, 성찬례 자체의 주제가 기념이 되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습니다. 특히, 별세 기념 성찬례를 생각해 봅니다. 이것은 교회가 함께 모이는 것도 아니고, 별세자의 가족만 모이는 것인데 성찬례를 드리는 것이 합당한가 하고 질문을 하게 됩니다. 이 질문에 대해 좋은 답변이 있으면 들어보고 싶습니다.

    2007년 8월 24일 #
  2. 오해될 것 같아서 한 말씀 덧붙입니다. 제가 위에서 "예수님을 기념하는 것"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임재 안에서 기념한다는 뜻이지 기념설을 믿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2007년 8월 24일 #
  3. (원래 글 제목에 따옴표와 물음표를 덧붙였습니다.)

    언젠가 한번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인데, 고민을 나누자는 김에 제 생각도 한번 나누고 싶습니다. 다만 문제제기의 뜻을 좀더 넓게 펼쳐 놓고 여러가지 사례를 들어 이야기를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러니까, 사례로 든 "별세 기념 성찬례"는 가장 나중에 검토하기로 하고, 그 전에 몇가지 원칙적인 문제들을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1. 무슨 기념 성찬례 혹은 기념 예배라는 말이 타당한가?

    신부님께서 지적하시는 전반적인 문제제기에 동의합니다. 저는 예수를 통한 하느님의 구원 사건을 기념하고 감사하는 것 말고는 예배(혹은 전례)라 이름붙이는 일이 적절하지 않다는 "완고한"(^^)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디서 굴러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우리 교회 안에서도 "은퇴 찬하 예배"니 하는 국적없고 근거없는 것들이 버젓이 사용되고 있는 모양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누구를 찬하한다는 말인가? 예배라는 말에 하느님을 찬양한다는 뜻이 들어있으니 굳이 이런 특이한 낱말을 붙이는 것은 은퇴하시는 성직자나 어떤 개인의 노고를 칭찬하고 은퇴를 기념하자는 것인데, 이러고보면 한 사람의 영예를 위해서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가 이용당하는 적반하장이 일어납니다. (물론 이런 기회를 계획하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뜻을 폄하하려는 뜻이 전혀 아닙니다.)

    하느님을 향한 기원과 의향을 통한 예배가 있을 지언정 어떤 개인 혹은 지엽적인 문제에 대한 인간적인 축하의 행위는 그것 자체로 즐기면 되는 것이지, 굳이 예배라는 형태에 꿰어 맞춰야 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아마도 믿는 사람들이니까 모든 것을 예배의 형식을 갖추도록 하자는 강박관념이 그 의도와는 달리 예배 자체의 목적을 혼동시키는 역작용을 낳는 참상(^^)이랄 수 있겠습니다 (이게 개신교에서 많지요. 이런 용어도 개신교에서 수입된 것으로 압니다.)

    한마디로 어떤 행사를 빙자하여 습관적으로 예배라는 말을 붙이는 일은 좀 피했으면 합니다. 그럼 예배를 드리지 말자는 것이냐? 그건 아닙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김에 하느님을 예배하고 찬양하고, 함께 모인 의향을 예배 안에서 기념하고(이 기념은 하느님께서 어떤 사건 혹은 사람을 위해서 이루신 일이겠지요), 예배가 끝난 후에 축하 잔치니 식순을 진행하면 된다는 거지요.

    2. 기념식과 예배 (전례)

    이 구분을 하는 것은 어떤 세속의 기념식과 예배를 마구잡이로 혼용하는 것을 굳이 구별하자는 뜻입니다. (그리고 편의상 여기서는 예배와 전례를 같은 의미로 사용하겠습니다.)

    어떤 기념식 혹은 축하 행사를 할 때, 그것이 중요한 예배의 의향이 될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주객의 전도가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여기서 기념식 혹은 예식은 특별한 행사를 말하는 것이고, 이와 관련된 예배는 이 기념하고자 하는 혹은 축하하고자 하는 내용이 하느님의 위대한 사건 속에서 어떻게 자리하고 있는가를 밝히면 되는 것이지, 그것이 세속적인 기념식과 혼용될 필요가 없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성직 서품식이나 성당 축성식과 같은 역사 깊은 매우 전통적인 예식들은 실제로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전례와 유기적인 관계를 갖게 되어 그 자체가 전례가 되었기 때문에 이와는 전혀 다릅니다. 아마 대체로 칠성사라고 전통적으로 부르던 것들이 바로 이런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전례는 전례대로 진행하고 서로에게 축하를 돌리는 일은 나중에 하지 않습니까? 그런 일관성이 있었으면 한다는 것이지요.

    3. 전례 - 하느님과 하느님의 백성

    예배 (전례)를 간단히 표현하자면, 하느님의 주도적인 구원 사건, 그리고 이에 따른 하느님 백성의 응답과 축하라고 하겠습니다. 여기서 하느님의 주도권은 하느님 중심성, 그리고 이에 대한 하느님 백성의 응답은 공동체의 응답이요 축하라는 점이 강조되어야겠습니다. 즉 어떤 몇몇 개인 혹은 어떤 개별 사안 (특별 미사의 의향과는 구별되는)을 두고 예배가 이름지어지거나 하는 일들이 지양되었으면 합니다.

    굳이 이름짓겠다면, (예를 들어) "성찬례와 누구누구 은퇴식"이러면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게 이상하거나 정보를 잘 전달하지 못한다면, 누구누구 은퇴식(혹은 무슨 행사)로 소개하고, 먼저 성찬례를 드리고, 이후에 축하잔치하겠다고 밝히면 족합니다. 물론 성찬례가 되었건 저녁기도(만도)가 되었건, 그 에배와 은퇴식(혹은 기타 기념식)의 의미가 연결되어야겠지요. 그게 아니라면, 모여서 감사기도 한번 드리고, 축하행사로만 진행하면 족하다고 봅니다. 예배를 장식물로 삼지말고 말이죠.

    4. 장례 미사, 그리고 추모 예배(미사)의 경우

    상장예식 안에 있는 장례 미사는 한 인간의 삶과 죽음을 세례와 성찬례를 통한 그리스도와의 일치라는 점을 되새기며, 한 인간의 삶에 대해 하느님께서 펼치신 구원의 은총을 기념하는 가장 중요한 전례라고 하겠습니다. 게다가 산 이와 죽은 이의 구별이 없이 상통하는 '성인들의 교제"를 경험하는 것이기에, 상장예식에서 성찬례(미사)는 가장 중요한 전례이겠습니다. 그러니 이것이 문제가 될 것은 전혀 없지요. (여기서 하나 짚고 가자면, '장례 감사 성찬례' 혹은 '장례 성찬례' 같은 말은 쓰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말 감이 좋지 않고 오해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별세 미사"는 좀 검토할 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따지고 싶은 것은 "별세 미사"라는 말이 썩 좋은 우리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 떠나는 미사"도 아니고 "아마 별세자를 위한 미사"의 준 말이겠는데, 이것도 우리 성공회 신학의 전통에서 보자면 문제의 여지가 많은 표현입니다. (여기에 깃든 역사적인 기원 등은 상술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단순하게 전례의 형태에 따라 "추모 미사" 혹은 "추도 예배"라고 하면 됩니다.

    "추모 미사"는 상장예식의 성찬례의 한 연장선 상에서 그 의미를 되새기면 좋겠습니다. 교인들 전체가 아니라, 가족들만 모였다 하더라도, 가족들이 원한다면 성찬례를 드리는 것도 문제될 게 없이 좋습니다. 앞서 말한대로 산 이와 죽은 이의 교류가 하느님의 구원 사건의 빛에서 비추는 방법은 성찬례가 가장 탁월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기서 기존의 '별세 미사'의 고정관념들을 넘어서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례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필요합니다.)

    또한 집에서 추모 예배를 드리는 것도 좋다고 봅니다. 다만 추모 예배인 경우에는 굳이 성직자 초대할 것 없이 집안 가장의 인도로 "추모 예배"를 드리는 것이 우리 문화 전통에도 맞고, 가족들이 좀더 가족 예배를 위해 적극적이 된다는 점에서 추천할 만한 일이라고 봅니다. 이미 우리 새 기도서는 추모 예배문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사족입니다만, 저는 전통적인 제사(몇가지 사안들에만 지침을 주도록 하고)를 그대로 따르는 것도 전혀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만...

    불필요하게 길어졌나요? 다른 분들의 의견을 기대합니다. 그러면서 저도 좀 고쳐볼게요.

    "Tradition is living faith of the dead, Traditionalism is dead faith of the living."
    2007년 8월 25일 #
  4. 혼자 생각 - 위에서도 언급한 바 있는데 고질적인 명칭인 "퇴임 찬하 예배"이 여전하다. 내용이야 어찌됐든, 문패가 이렇게 달리면, 방향과 초점이 달라져버린다. 그리고 실은 내용도 그렇게 따라간다.

    2009년 1월 14일 #
  5. ssyu1
    회원

    천주교에서 행해지는 소위 말하는 '사(私) 미사'(예를 들면 수능생을 위해 드리는 미사와 같이 한 개인을 위해 드리는 미사 등)는 이 문제에 관해서 더 논란의 여지를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에 비하면 성공회의 미사가 훨씬 더 공동체 지향적이죠. 성공회에서는 별세기념미사 외에 살아 있는 대상을 위해 미사를 드리는 경우는 보지 못했습니다. 글쎄요. 저는 이러한 경우들이 우리나라 민간토속신앙의 흔적들이 교회 안으로 유입되어온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그러나 사제가 누군가에게 복을 빌어주고 그 댓가를 얻는 형식은 그것이 '기념 예배'든 '개인을 위한 미사'든 교회를 위해서는 좋지 않은 일입니다.

    논점을 이탈한 것일수도 있겠지만 저는 더 큰 현실적인 문제가 '댓가성 미사'가 존재한다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천주교 사제는 어느 부잣집의 아들을 위해 미사를 드려주고 얼마를 받았다더라 라는 말도 안되는 경우가 오직 하느님께만 드려야 할 거룩한 미사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성공회는? 성공회 안에서는 이러한 망측한 경우가 존재하는가? 저는 아직 들어보지는 못했습니다. 그것은 성공회가 철저히 공동체적 미사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천주교의 경우, 교우들이 없는 상황에서 사제 혼자서 미사를 드리지만 성공회는 반드시 교우 1명 이상이 함께 있어야 미사가 이루어집니다.)

    다시 논점으로 되돌아와서...
    모든 예배와 모든 미사는 오직 하느님을 위해 드려지는 것이 전적으로 옳은 것입니다. 우리가 별세기념 성찬례라고 말을 하지만 실제로는 감사성찬례 안에서 별세자를 기념하는 순서가 있는 것이지 성찬례 전체가 별세자를 위해 구성되지는 않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성공회 안에서 이러한 별세 기념 감사성찬례는 소위 천주교에서 말하는 '사 미사'가 되어가는 위험성이 다분히 존재합니다. 결국 제생각은 한 가정의 요청으로 이루어지는 별세기념미사를 없애자는 것입니다. 그것은 각 가정에서 가족들끼리 모여서 진행하는 추도예배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우리 성공회 전통안에는 일년에 두번(설날과 추석)에 전체가 모여서 드리는 별세자 기념성찬례가 존재합니다. 별세자 기념을 미사로 드려야 한다는 향수속에 있는 이들은 일년에 두차례 드리는 공동체적인 미사에 참여하면 될것입니다. 이것이 미사를 훼손할 위험도 피하면서 별세자를 위한 전례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요.

    2009년 1월 15일 #
  6. ssyu1 님 / 전반적으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의견에 동의합니다. 앞서 제 글에서 밝힌 문제를 좀더 현실의 예를 들어서 설명하셨다고 생각합니다. 동의하면서도 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1. 주일 혹은 매일 미사에서 별세자를 호명하여 기억하자 - 사실 우리는 미사 때에 어떤 의향을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자들의 기도 안에서 별세자를 기억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이때 그 주일 혹은 그 날에 근접하여 추모할 분들을 호명하여 기억하고 기도하면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성공회는 "성인들의 상통"을 굳게 믿는 사람들입니다.

    2. 추모 예배는 가족에게로 - 제안하신 대로 원래 우리 문화 이해 속에서 제사가 가족 공동체 안에 속했던 것처럼, 그것을 가족에게 돌려주었으면 합니다. 이를 통해서 가족들은 스스로 추모 예배를 만들고 그 추모 혹은 기억의 행위를 그 가족에 맞게 해석할테니까요. 그것이 더욱 토착화에 기여하는 방법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설날과 추석에는, ssyu1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교회 공동체 안에서 전례를 행하는 것은 매우 좋다고 봅니다.

    3. '기복'은 종교의 근간이 아닐까? - 성공회 안에서는 '댓가성 미사'라는 것은 없으리라고 확신합니다. 다만 사제는 복을 빌어주는 사목적인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복 신앙이라는 것에 대한 비판은 여러 면을 살펴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립적인 의미에서 '기복', 그리고 그 형태인 '기복 신앙'은 종교의 근간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훼절되는 과정에 대한 면밀할 평가를 하지 않고 싸잡아 비판하는 건 어떤 점에서 '주지주의'로 흐를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4. 사목적 배려를 통한 접근 - 그럼에도 우리 문화에서는 별세자들에 대한 각별한 기억이 있습니다. 소중한 전통입니다. 그런 점에서 별세 미사, 연미사 하는 것들이 퍼졌는지 모릅니다. 그 종교적인 태도와 처지들을 고려하고, 가족들에 대한 사목적인 배려를 통해서 서서히 변화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5. 더욱 망측한 일은 -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위에 개인 생각으로 짧게 적었다 시피, 무슨 '퇴임 찬하 예배'와 같은 얼토당토 않는 신조어와 괴상한 행위들이 아무런 거리낌없이 통용되고 있다는 겁니다. 지금 다루고 있는 "별세자를 위한 미사"보다 더욱 망측하고 해괴한 일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2009년 1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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