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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성공회의 선교와 복음화 이해 « 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 전례와 선교

번역: 성공회의 선교와 복음화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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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성공회 신학 교육 위원회(TEAC)에서 발행하는 소책자 가운데 하나인 '성공회의 선교와 복음화 이해'(An Anglican Understanding of Mission and Evangelism)의 전문 번역입니다. 선교와 복음화에 대한 자의적 해석과 잘못된 이해을 바로 잡고, 성공회 전통 안에서 우리가 부여받은 선교의 사명과 그 공헌을 되새겨 그 신학적인 원칙과 성공회 전통 안에서 되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조금 급히 번역한 것이니 여러분들이 지적해 주십시오. 교정과 교열을 통해서 단행본으로 출간하겠습니다.

    +++++++++++++++

    성공회의 선교와 복음화 이해
    An Anglican Understanding of Mission and Evangelism

    마이클 도우 주교(Bishop Michael Doe)

    번역: 주낙현 신부

    차례

    1. 하느님의 선교
    2. 예수 그리스도의 중심성
    3. 통전적 선교
    4. 선교에 대한 이해에는 성서와 전통과 이성이 필요하다.
    5. 신학의 다양성
    6. 교회 선교의 역할
    7. 성육신의 선교
    8. 문화적 감수성
    9. 진리를 향한 열림과 우리 자신의 불완전을 받아들이는 일
    10. 지도력과 공동체
    11. 성공회 전체를 통한 행동과 상호 지원
    12. 에큐메니칼
    결론

    선교는 그 방법과 목적에서 본질적으로 에큐메니칼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주 특별히 성공회적인 요소들을 외따로 부각시키는 일은 쉽지도 않을 뿐더러 바람직한 일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 역사 안에서 그리고 오늘날 등장하고 있는 것들을 통하여 성공회 전통은 몇가지 독특한 강조점을 갖고 있으니, 이 글에서 나는 그 열 두 가지 강조점을 기술하였다. 이 내용은 몇가지 한계를 동반한다. 선교회의 총무를 맡아 일한 탓에 세계 성공회 여러 곳의 살펴 볼 기회가 있었지만, 내 생각은 어쩔 수 없이 브리티시 지역과 영국 성공회를 배경으로 나온 것이다. 성공회 전통이 세계 여러 곳에서 서로 다른 처지에서 발전하고 있기에, 선교와 복음화에 대한 다른 시각도 있을 것이다.

    1. 하느님의 선교 Missio Dei

    성공회 신자들은 모든 선교의 근원과 목표가 하느님의 본질과 그분의 일에 근거한다고 믿는다.

    선교는 하느님의 일(the work of God - Missio Dei)이다. 곧 창조의 사건으로부터 그리스도께서 으뜸이 되시는 그 성취의 사건에 이르기까지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일이다. “선교는 그리스도인들이 예수께서 펼치신 해방의 선교와, 하느님의 사랑에 관한 복음에 참여하는 것으로, 이 선교와 복음이 육화된 공동체 안에서 세상을 위하여 이를 증언하는 것이다.”

    성공회 신자들은 또한 하느님의 일로부터 하느님의 본질에 이르기까기 우리를 좀더 깊은 이해로 이끄는 이들에게 마음을 열어 감사한다. 곧 거룩한 삼위일체의 핵심에서 일어나는 주고 받음과 오고 감의 교류 속에서, 하느님 본질이 드러내는 그 공동체적 사귐의 표현으로 선교를 바라보도록 하기 때문이다.

    1998년 람베스 회의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모든 선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께서 보이신 행동과 자기 계시에서 나온다... 선교와 복음화를 향한 우리의 소명은 우리에게 계시된 하느님의 본질에 근거한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중심성

    성공회 신자들은 모든 선교가 예수 그리스도에 중심을 두고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목격하며, 하느님께서 어떻게 당신의 세상을 구원하셨고, 우리를 불러 이 사건에 응답하게 하시고 당신의 일에 참여하도록 하시는 지를 깨닫는다. 우리의 응답은 그리스도인의 수를 늘리기 위한, 혹은 세상을 바꾸기 위한 교회 프로그램이라기 보다는,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 안에 이끌려 들어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이는 성령의 활동 속에서 우리에게 방향을 제공하며,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열정을 가져다 준다.

    “성공회 신자로서,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는 복음화와 사랑의 봉사와, 예언자적인 증언을 통하여 세상에서 펼치시는 하느님의 선교에 참여하도록 부름을 받는다”(TEAC, 세계 성공회 신학 교육 협의회).

    3. 통전적 선교

    성공회 신자들은 선교가 통전적, 곧 “통합적”이라고 믿는다.

    이 말은 1984년과 1990년 세계 성공회 협의회에서 합의한 선교의 다섯 가지 지표에 요약되어 있다. 선교는,

    - 하느님 나라에 대한 복된 소식을 선포하는 일이다.
    - 새로운 신자들을 가르치고, 세례 주고, 키워 내는 일이다.
    - 사랑의 봉사를 통하여 인간의 필요에 응답하는 일이다.
    - 사회의 불의한 구조를 변화시키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 창조 질서를 온전히 보존하고, 지구 생명을 지탱하고 새롭게 하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어떤 순서가 있는가? 어떤 이들은 첫번째 지표가 다른 지표들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곧 그 선포의 방식이 다를지라도 하느님 나라의 관점에서 남을 보살피는 일과 정의를 위한 행동과 창조 질서를 보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이들은 순서와 관계 없이 선택하여 결합시키는 방법을 선호하기도 한다. 특별히 복음화에 좀 더 초점을 맞춘다든지, 사회 정치적 참여에 대해 강조하는 경우이다. 또한 하느님 백성의 삶과 예배를 통하여 새로운 지표를 추가하려는 노력도 있다. 하느님의 선교 안에서 교회의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으로 우리를 이끄려는 것이다.

    대부분의 성공회 신자들은 이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선교는 어떤 그리스도교 자선 단체들이 제안하는 것과 같이 “내 이웃을 사랑하라”는 일로만 축소될 수 없다. 다른 한편으로, 세상 속에서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의 핵심에서 사회적인 보살핌, 정의를 위한 행동, 창조 질서를 위한 보살핌을 더이상 등한시 할 수 없다.

    4. 선교에 대한 이해에는 성서와 전통과 이성이 필요하다.

    성공회 신자들은 성서가 결정적이지만, 전통과 이성도 필요하다고 믿는다.

    성공회 신자들은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성서에서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다른 사안들과 마찬가지로 선교에 대해서 생각할 때도, 성서는 원칙과 기준을 마련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우리는 성서의 무오성을 믿지 않는다. 성서는 명령적(imperative)이라기 보다는 암시적(indicative)이다. “전통과 이성 또한 성공회 신자들이 신학 ‘하는’ 방법의 핵심적인 면모이다.”

    후커(Hooker)의 유명한 세 다리의 의자는 성서와 전통과 이성으로 이뤄진다. 여기에는 이 관계를 결정하는 어떤 중앙집권적인 교도권(magisterium)이 없다. 결정을 내리는 권위가 없다는 이유로, 뉴먼(Newman)은 그 자신이 이전에 교리의 적절한 ‘발전’으로 보았던 것을 저버리고 교회를 떠났다.

    1998년 버지니아 보고서는 이렇게 말한다. “성공회 신자들은 성서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당신의 일을 교회 안에서 소통하시어, 사람들이 이해와 신앙으로 응답하시게 하는 매개(medium)로써, 최고의 권위라고 천명”하며, 또한 “17세기 이래, 성공회는 성서를 ‘전통’과 ‘이성’의 빛에서 이해하고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견지했다.”

    윌리암 로드(William Laud) 대주교는 좀더 전투적인 표현을 써가며, “무오한 교회를 믿는 교황주의자들과 무오한 성서를 믿는 청교도들”을 거부했다.

    5. 신학적 다양성

    성공회 신자들은 신학적 다양성이 선교에 대한 이해를 더욱 창의롭게 한다고 믿는다.

    2005년 IASCOME(선교와 복음화를 위한 성공회 상임 위원회)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공회 신자로서 우리는, 사도적인 진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 예배에 표현된 바와 같이 모든 것들의 최종적인 일치에 대한 희망 안에서, 공통성과 차이가 함께 유지”되며, 이 둘은 선교 안에서 공동체로 사귀기(communion) 위한 계약에 다다르게 된다고 믿는다. 이 계약은 바로, 서로 다른 상황 속에서 우리 신앙의 원천이요, 감화(inspiration)인 예수를 깨달아, “다른 이들의 삶과 상황 속에서 일하시는 그리스도의 현존을 바라보고, 깨닫고, 배우며 향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차이와 불일치를 살피게 하여 서로에게서 오는 비판과 도전에 응답하여 기꺼이 변화하도록 이끌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우리 자신과 세상을 위해 주신 하느님의 화해라는 약속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

    마찬가지로, 2008년 성공회 신학-교리 위원회는 이렇게 말한다. “공동체적인 사귐(Communion)은 초월적인 것이니, 차이들 - 단순히 차이들만을 강요하는 확신의 연결 고리 - 를 변화시킬 수 있다. 공동체적 사귐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서로 다른 문화와 세계관의 사람들을 바르게 포용하고 이를 축하하는 것이며, 그리스도교의 진리에 대한 신선한 향유를 가능케 한다.”

    6. 교회 선교의 역할

    성공회 신자들은 교회가 선교와 그 수행의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믿는다.

    교회 - 그리고 우리에게는 성공회 신자가 되라는 부르심 - 는 자의적인 행동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께서 이루신 일과 여전히 하시는 일에 참여하는 것이다. 버지니아 보고서에 따르면, “교회는 하느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공동체적 사귐 안에 참여하는 공동체적인 사귐이기 때문에, 종말론적 현실과 중요성을 갖고 있다. 교회는 역사 안에서 하느님의 최종적인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대림 사건(Advent)이다.”

    교회의 삶과 예배가 “선교의 표지”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들도 있다. 분명히 말하건대, 교회됨을 ‘유지’하는 일은 선교에서 분리될 수 없다. 이는 특별히 교회의 성사적 삶의 참 뜻이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선교는 하느님 백성의 삼위일체 신앙을 형성시키고, 이들을 사목과 선교의 삶을 위해 힘을 부여하는 전례 안에서 거행되고 선포된다. 이는 거룩한 세례와 성찬례의 참 뜻이니, 세례를 받아 주님의 식탁에 참여하는 것은 교회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하나이요, 계속되는 선교에 투신하는 것이다.”

    7. 성육신의 선교

    성공회 신자들은 선교가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뿌리한다고 믿는다.

    성공회는 유럽의 그리스도계가 여전히 강력할 때, 영국의 국가 교회로서 시작됐으며, 그것이 가져온 모든 타협들과 함께 적잖이 부와 권세를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영국 성공회는 또한 국민 교회의 설립을 통하여 국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사목구(parish) 체제를 통하여 지역 공동체를 섬기는 - 이로써 단순히 예배처가 아닌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로 변화시켰다 - 길을 보여 주었다.

    성공회가 서로 다른 문화적 정치적 상황에 뿌리를 내리면서, 이 전통은 여러 다른 방법으로 표현되어야 했다. 때로는 공식적으로나 좀더 비공식적으로 ‘국교회’ 형태를 유지하기도 했고, 때로는 국민적인 공동체 생활에 관여하는 여러 교회들 가운데 하나가 되기도 했다. 때로 성공회는 소수자로서 존재하고, 독재 정권, 혹은 다른 지배적인 종교의 박해를 상황에 있기도 하다.

    오늘날, 여러 다른 방법으로, 성육신 사건에 대한 성공회의 선교는 사회적 보살핌, 의료와 교육 기관, 공동체 개발, 평화와 정의를 위한 행동을 통하여 증언하고 있다. 이는 성공회가 그리스도를 세상 속에서 발견하며, 그분과 같은 섬김으로써 그리스도를 따르려 하기 때문이다. TEAC 보고서가 말하는 대로,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으로, 하느님의 평화와 정의와 화해시키는 사랑을 실천하면서, 우리는 모든 선한 사람들과 협력한다. 우리는 세속화, 가난, 고삐풀린 탐욕, 폭력, 종교 박해, 환경 훼손, 그리고 HIV/에이즈 등이 가져다 주는 가공할 도전을 인식하고 있다. 이에 응답하여, 우리는 파괴적인 정치적 종교적 이데올로기에 예언자적인 비판을 가하고, 교육과 의료 혜택, 화해에 드러나는 인간의 복지를 위한 보살핌의 유산을 건설한다.

    8. 문화적 감수성

    성공회 신자들은 선교가 그 문화적 맥락을 깊이 고려한다고 믿는다.

    (영국에 처음으로 선교사를 보냈던) 그레고리 교황의 원래 지시는 이랬다. “(캔터베리의) 어거스틴에게 전하시오. 어떤 경우에라도 (토착) 신전들을 파괴해서는 안되고, 그 신전들 안에 있는 우상을 척결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그 모든 외적인 기쁨을 빼앗기지 않는다면, 안에 있는 것들을 훨씬 쉽게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강요하거나 이식하기보다는 함께 할 수 있는 길을 찾으면서 마련한, 이와 같은 지역 문화에 대한 존중은 성공회 선교를 가장 잘 드러내는 표지이다.

    그러나 TEAC 에서 지적하는 바와 같이, 때로 우리 문화 - 유럽, 아프리카, 또는 그 무엇이든 - 는 우리의 진정한 소명을 보지 못하게 할 수 있다. “성공회 신자로서, 우리는 하느님의 선교 속에서 누리는 공동의 삶과 그에 대한 투신이 여러가지 결함과 실패로 얼룩져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곧 식민지 유산의 부정적인 측면들과 권력과 특권을 자신 만을 위해 잘못 사용한 일들, 평신도와 여성들의 공헌에 대한 평가 절하, 자원의 불공평한 분배,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과 억눌린 사람들의 경험에 눈감았던 사실 등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새로운 겸손함을 가지고 주님을 따르고자 하며, 이로써 우리는 구원의 복음을 말과 행동으로 자유롭고 기쁘게 전파할 수 있다.

    오늘날 세계 성공회의 많은 지역에서, 이는 다원주의 문화에 대한 대응을 포함한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의 전통을 다시 되새길 수 있다. 종교 간 대화를 위한 네트워크에서 내놓은 최근 보고서는 이렇게 말한다. “성공회는 종교개혁 이후에 나타난 세계의 그리스도교적 다원주의에 대해서 독특한 방법으로 응답했다. 그리고 이러한 유산은 우리 시대의 종교적 다원주의에 대응하는데 특별한 재능을 제공한다.”

    9. 진리를 향한 열림과 우리 자신의 불완전을 받아들이는 일

    성공회 신자들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를 선교 안에서 지속적으로 성장시킨다.

    윌리암 로드 대주교는 “더 나은 징표에 대한 잠재성”이라 말한 바 있거니와, 그의 20세기 계승자인 마이클 램지 대주교는 이렇게 단언했다. 성공회 신앙은 “어떤 체계나 고백이 아니라, 방법이요, 활용이요, 방향”이다. 그러므로 “성공회의 가장 위대한 특징은 그 불완전성(에 대한 인정)이며, 그 사고에서 긴장과 고민을 놓지 않는다. 서툴고 정돈되지 않아서, 오히려 능란한 논리를 혼란케 한다. 이 교회가 파송된 것은 그 자체를 ‘가장 좋은 형태의 그리스도교’로 칭송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부서진 불완전성으로 보편 교회(the universal Church) - 이 안에서 모두가 죽었다 - 를 드러내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다른 신앙 전통들에 관여하는 태도로서, 일찌기 1897년 람베스 회의에서 시작하여 최근의 TEAC 선언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문제들을 바라보는 노력이었다. “다른 신앙 전통의 공동체들과 우리가 맺는 관계와 대화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라는 증언과 평화에 대한 갈망, 그리고 상호 존중과 이해를 결합시킨다.

    10. 지도력과 공동체

    성공회 신자들은 선교가 주교의 지도력 아래서 모든 세례받은 이들이 가진 책임이라고 믿는다.

    선교는 교회의 임의적 행동이 아니요, 그저 내키는 대로 선택할 사안이 아니다. 오히려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데 핵심적인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1821년 미국에서 성공회가 설립되었을 때, 스스로를 “내지 및 해외 선교회”(Domestic & Foreign Missionary Society)라고 했던 것이다. 1922년 영국 성공회 교리 위원회는 보편 교회를 “선교적 형제애의 끝없는 확장”이라 기술했다. 단순히 신자들이 모인 지역 공동체가 아니라는 말이다.

    “하느님께서 교회에 맡기신 화해의 선교와 사목은 세례 안에서 모든 하느님의 백성(laos)에게 주어졌다”고 버지니아 보고서는 말한다. 많은 관구 교회가 만든 새로운 전례들은 견진례로 이어지는 위임에서 이 점을 강조한다. 또한 서품 예식에서 주교의 최우선적인 역할과 책임은 선교 안에서 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1998년 람베스 회의는 이렇게 말했다. “세계 성공회의 모든 주교와 교구, 그리고 교회의 최우선적인 임무는, 예배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복음을 모든 이들에게 선포함을 통하여, 그리고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하느님 나라와 하느님의 정의를 말과 행동으로 증언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느님의 사랑을 안에서 나누고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제 모두 선교 교구들이다!”

    11. 성공회 전체를 통한 행동과 상호 지원

    성공회 신자들은 선교가 세계 성공회 전체 안에서 나눠야 할 행동이라고 믿는다.

    IACOME 보고서가 되새겨 주는 바와 같이, “세계 성공회는 세계 선교를 위한 비전 안에서 성장했다.” TEAC 역시 지적하기를 “우리는 하느님의 화해시키며 생명을 주는 선교를 세계 성공회 전체 안에서 과거와 현재에 걸쳐 남녀노소의 창조적이며, 값지고 신실한 증언과 사목을 통하여 거행하고 있다.”

    과거에 선교는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향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이제 모든 처소에서 하느님께서 불러 쓰시는 각 교회들의 선교적 응답은 인력과 생각과 재력의 교류를 통하여 만들어내는 새로운 상호 지원의 틀을 필요로 한다. 선교회는 이제 그 역할이 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IASCOME 보고서의 말대로, “세계 성공회가 독립적인 교회들의 세계적인 가족으로 계속 발전하면서, 우리는 각각 지역과 지방, 국제적인 수준에서 선교를 위한 도전과 기회를 껴안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선교 협력을 위한 성공회의 독특한 기회를 제공하면서 우리의 신앙과 선교 유산을 소중히 여긴다.”

    이는 우리가 나누는 세계 성공회가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믿음을 돈독히 한다. 이 공동체는 우리의 호불호에 따라 만들어지거나 분열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그러움과 서로에 대한 책임 안에서 드러나야 할 선물이다.

    12. 에큐메니칼

    성공회 선교는 더 넓은 에큐메니칼 협력 안에서 서로 주고 받아야 한다.

    성공회가 그 독특한 선교적 사명을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하느님께서 부르신 모든 백성 - 보편 교회 - 의 한 부분일 뿐이기에, 세상 안에서 펼쳐지는 하느님의 행동에 참여해야 한다. 1867년 첫 람베스 회의는 “우리의 선교 활동 안에서 더 큰 일치를 유지”하기를 촉구했다.

    성공회 계약 문서 (세인트 앤드루 문서)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공동 선교는 이 계약 너머에 있는 다른 교회들과 전통들과 함께 나누는 선교이다. 우리는 전체 복음의 삶을 발견하는 기회들과 세계에 퍼진 교회와 화해와 선교의 나눔을 위한 기회들을 포용할 것이다. 모든 성도들과 함께 우리는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는 구원의 사랑을 좀더 온전하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결론

    이 작은 책자는 성공회 전통이 선교와 복음화를 이해하는데 가져다 주는 특별한 강조와 공헌을 기술하려는 노력이었다. 이는 보존되어야 할 전통이며, 동시에 우리는 그 적용을 늘 점검해야 한다. 16-17세기의 청교도들에서 시작하여 18-19세기의 여러 부흥 운동들을 거쳐, 우리 시대의 은사적 소비주의 교회에 이르기까지, 사람 수를 늘리는 일을 우선적인 사명으로 삼았던 소위 ‘거듭난’ 신자들의 교회들이 이러한 유산을 대치하려고도 했다. 그와 나란한 시도들이 다른 편에도 있었다. 소위 가톨릭파들은 선교보다는 유지에 급급하여 성육신을 성사지상주의로 축소시키려 했다. 자유주의파들이 교회의 선교를 그저 쉽게 세속 문화나 다종교 문화에 맞추려는 유혹에 굴복한 적도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어느 경향을 갖든 모든 성공회 신자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지속적으로 도전을 받아야 한다. 그분에게서 모든 선교가 흘러나와 끝나기 때문이다. 성공회 전통은 그 본질에서 지역 문화와 관계한다. 그러므로 여러 다른 모양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자에서 기술하려고 한, 선교에 대한 성공회의 독창적인 접근 방법은 오늘날 하느님께서 교회를 어디로 부르시는가에 대한 우리의 에큐메니칼한 이해에 큰 공헌을 제공한다. 2008년 람베스 회의에 모인 주교들이 모인 것은 이러한 유산을 보존하고, 이 유산으로 우리의 미래를 만드는 책임을 지려는 것이었다.

    20090910:rev.2 각주 삽입(출간용),누락부분 보충
    20090909:rev.1 본문 번역

    * 원문-후주, 번역-각주: 어떤 것이 나은가?
    * 원문 출처(주) 표기 방법: 기준(Chicago style)을 세워 고칠 것인가?

    "Tradition is living faith of the dead, Traditionalism is dead faith of the living."
    2009년 9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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