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 전례 Q & A

  1. 39 신조의 28항에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신자들은) 성찬의 성체, 보혈을 보관하거나 가지고 다니거나 높이 올리거나 예배하지 않았다." (번역이 미흡해서 죄송합니다.) 여기서 무슨 뜻으로 높이 올린다는 말이 쓰여졌는지 모르지만 종교 개혁 이후 한 동안은 성찬례 때 거양하는 것이 금지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런데, 그런 동작이 언제 그리고 왜 부활되었는지 주 신부님이 (아시는 분이 있으면 다른 분도 괜찮고요) 알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신학적인 의견도 내 주시면 고맙겠고요

    2007년 9월 20일 #
  2. "성체 거양"

    한신부님께서 매우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셨습니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우리 성공회 신학의 성찬례 이해와 실제 성찬 거행의 행동들의 차이가 있어서 혼란스럽습니다. 이 기회에 그 혼란에 대해서 근거를 갖고 여러 신자들, 신부님들과 함께 생각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인용하신 39개 신앙 조항 28항의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28조. 주님의 만찬에 대하여 주님의 만찬은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사람과 함께 이루어야 할 사랑의 표시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한 우리의 구원에 관한 성사이다. 그러므로 올바르고, 합당하게, 또한 믿음을 가지고 우리가 떼는 빵을 영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어 먹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를 나누어 먹는 것이다. 주님의 만찬 안에서 화체(즉 빵과 포도주의 실체의 변화)가 된다는 주장은 성서에서 입증될 수 없는 것이다. 성서의 분명한 말씀에 위배되며 성사의 본질을 버리고 많은 미신의 여지를 주었다. 그리스도의 몸은 이 성찬에서 오직 천상적이고 영적인 방법에 따라서 주어지는 것이며 받아서 먹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먹는 길은 바로 신앙이다. 주님의 만찬의 성사, 즉 성체와 보혈은 그리스도의 제정에 따르면 보존하거나 여기저기 들고 다니거나 들어 올리고 경배하는 대상이 아니다.

    http://wiki.skhcafe.org/영국_성공회_39개_신앙_조항/

    28(조)항은 짧은 문장에 당시 영국 성공회의 성찬례 이해에 대한 여러가지 의미들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다시 풀어보면, 성찬례는 공동체적인 사랑과 구원의 성사이며, 믿음으로 "몸과 피"를 나누어 먹는 행위이다. 성공회는 이른바 "화체설"을 인정하지 않으며, 이에 따라서 생겨낸 행동들인 "축성된 성체 보존," "성체 행령", "성체 거양," "성체 조배" 등을 하지 않는다. 이것들은 주님이 제정하신 것이 아니다.

    사실 이런 해설과 더불어 좀더 파고 들어야 할 의미심장한 말들도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는 성찬은 신앙을 통해서라야 "주어지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주다"의 주어가 누구일까요?

    다시 본래 문제로 돌아갑니다.

    신부님께서 이 문제를 제기하신 것에는, 분명히 한국성공회에서 성찬기도의 제정사 부분에서 성체를 거양하고 궤배하는 관습에 대한 의문이 자리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 볼까요? 지난 6월에 서울에서 가진 전례학 포럼에서 저는 전레 문제에 대한 생각하는 세가지 접근법을 제안했습니다. 즉 역사적 접근, 신학적 접근, 그리고 사목적 접근입니다. 그 접근법을 이 문제에 적용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역사적 배경:

    여기에는 크게 두가지 역사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서방 교회에서 성체 거양이 발전된 역사요, 그 둘은 성공회에서 성체 거양에 대해 왈가왈부 논쟁하다가 현재에 이른 경위입니다. (다들 아시는 내용이겠지만 간단한 복습이라고 여겨주십시오. ^^)

    첫째, 서방 교회에서 성찬 기도 시에 성체를 거양하는 행동은 약 13세기 프랑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교회의 성직자주의, 예배에 대한 희상제의적 강조, 또 대중들의 신심들이 복잡하게 얽혀, 성체 거양이 일반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또하나 중요한 변화는 전례 공간의 위치가 현격하게 바뀐 데서 비롯합니다. 예를 들어 벽에 붙여놓은 제대에서 드리는 성찬례에서 축성된 성체를 보여주어야 하기에, 등 뒤로 보이도록 높여서 들었던 것이지요. 원래는 성체만 들다가 나중에 성작까지 들어올리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성체를 대체로 영하지 않은 분위기가 만연했기 때문에 - 죄인이 어떻게 성체를 영하는가 하는 한없는 죄의식이 팽배했습니다 - 성체를 보는 것만으로도 족하게 되었고 이른바 "보는 것을 통한 신앙"이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후로 예배와 전례는 "보는 것"과 관련되었고, 사람들은 참여자가 아니라 "구경꾼"이 되었죠. 이 구경꾼 신앙인들에게 신앙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신앙하는 방법이 달라지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에 대해 좀더 자세한 설명은 다음 링크를 따라가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viamedia.new21.org/spboard/board.cgi?id=qna&page=1&action=view&number=140-1.cgi&img=no&category=sub_cmt&keyword=%B0%C5%BE%E7&start_num=

    둘째, 종교개혁은 서방 중세 교회에 만연한 이런 문제점들을 지적하게 되었고, 당시 영국종교개혁자들도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이러저러한 논란 끝에 "39개 신앙 조항"에서 이를 정리합니다. 그런데 이게 상당히 중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당시 로마 가톨릭 교회에 대한 혐오적인 시선이 가미된 상태에서 이런 문서가 나왔습니다. 기본적으로 이후부터는 영국교회에서는 성체 보존, 거양, 이동, 행렬 등이 금기시되었습니다.

    물론 이런 습관은 이 문서 이후에도 영국 교회에서 지역적으로 여전히 남아 있었다고 봅니다. 그러다가 이른바 옥스퍼드 운동이 일어납니다. 이 신학적 운동의 영향을 받아 교회 전례에 적용시킨 이들이 바로 19세기 '의례주의'(Ritualism) 운동의 주역들입니다. 이들이 다시 중세 교회의 관습들을 교회에 불러 들입니다. "의례주의" 운동은 말에서 풍기는 것처럼 수구꼴통들의 이상한 습관이 아니라, 오히려 성찬례가 없고, 대충대충 아침기도 드리고 마는, 당시에 편만했던 에배 불감증에 대한 각성과 도전이었던 셈입니다. 옥스퍼드 운동은 사라졌지만, 의식주의 운동은 상당한 성과를 가져왔습니다. 수도원의 부활, 전례복의 사용, 성찬례 거행에서 중세적인 관습의 부활 등이 그러한 것이었지요 (향의 사용, 성체 거행 등). 그리고 이들이 몇몇 중요한 선교회들에도 영향을 미쳐 널리 퍼지게 되었는데, 한국성공회도 이런 일단의 흐름과 끈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학적 설명:

    아, 그렇다면, 이거 중세적 관습이니, 종교개혁의 산물인 성공회로서는 당연 배격해야 하는 것 아니겠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주장입니다. 의례주의 운동은 중세 - 타락한 중세가 아닌 건전한 중흥기의 중세 - 에 대한 낭만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대로, 예배의 중요성에 대한 각성과 도전으로 이런 것들을 부각시킨 것이지요. 교회 예배가 끼리끼리들 노는 잔치인지, 자기들 편한 말만 듣고가는 반상회인지 구분이 통 안가는 동안에, 전례란 하느님의 현존을 기억하며, 거룩하게 바쳐야 할 어떤 위대한 행위라는 주장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거 맞는 말이거든요. 그래서 의식주의 운동은 이후 세계 성공회 전례 행태에 엄청난 영향을 끼칩니다. 쉽게 말해서 성공회 안에서 성찬례가 중요한 주일 예배로 다시 등극하게 된 게 겨우 100년 되는 일이라는 것이지요. 그 100년 동안 전례 운동이라는 것이 있어서 모든 그리스도교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기본적으로 의식주의 운동과 일맥상통하는 경향이 있었던 거지요.

    여기까지는 이해하겠는데, 신학적으로는 여전히 문제가 남습니다. 성체 보존, 거양, 행렬, 조배는 대체로 화체설과 결부된 것인데, 이를 인정하지 않는 성공회 입장에서는 되새겨 봐야 할 문제라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기도서에서는 거양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종치는 것도 그렇고, 유향 드리는 방법, 혹은 성찬상 차리는 방법도 그렇습니다. 사실 거양에 대한 어떤 언급이 텍스트에는 없지요. 있다하더라도 그건 전례 지침(루브릭)에 불과합니다. (우리 전례의 집전 모습들의 문제에 대해서는 언젠가 블로그에 쓴 글을 신부님들께 나눠드린 적이 있습니다.)

    성공회는 기본적으로, 하느님 백성의 예배 전체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계시고, 특별히 성찬기도 전체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성령을 통하여 현존한다고 믿습니다. 그것이 기본적인 성공회의 성찬례 신학입니다. 이렇게 보면 축성의 순간도 사제가 십자성호를 긋는 것을 통해서 어떤 손동작을 하는 "어느 순간"이 아니라, 성찬기도 전체가 되고, 여기서 변화하는 것 - 여기서 원래 화체의 의미가 중요합니다만 - 은 빵과 포도주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기도 하다는 것이며, 봉헌되는 것 역시, 우리가 드린 노동의 산물인 빵과 포도주, 그리고 우리 자신의 봉헌이라는 점입니다.

    이 신학의 견지에서, 우리가 습관적으로 하고 있는 제정사 이후의 성체 거양은 뭔가 아귀가 안맞는 것이지요. 오히려 성체 거양의 시점은 성찬 기도를 종함하여 마감하는 마지막 삼위일체 영광송이 가장 좋은 위치라고 봅니다. 성공회 기도서의 전통은 여러 논란 끝에 결국 이 성찬기도 결론부분인 영광송을 하나의 절정으로 보았고, 현대 성공회 신학 역시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이 부분이야 말로 성찬의 봉헌과 우리 자신의 봉헌을, 우리 구원의 들리심을 위하여 "들리신" 그리스도의 몸과 구원 행동을 삼위일체의 전망 속에서 완벽하게 일치시기기 때문입니다.

    사목적 적용:

    역사도 좋고, 신학도 다 좋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렇게 알고 믿고 신앙을 키워온 신자들이 있는데, 한꺼번에 바꿀 수 있나? 오히려 혼란을 가져다 주고, 교회는 교회대로 이런 식 저런 식 하면서 어떤 일치의 느낌이 훼손될 것 아닌가?

    이런 걱정은 사목적인 관점에서 타당합니다. 그러나 다시, 그럼 역사와 신학하고 우리 신앙은 따로 놀아야 되는건가? 또 이런 물음도 있습니다. 이 역시 타당합니다. 사목적 적용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역사가 이러고 신학이 이러니, 당장 뜯어 고쳐야 하는거요"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언젠가 말씀드린 것처럼, "신앙"의 언어, 특히 그것이 어떤 상징과 결부되었을 때, "상징의 언어"는 매우 보수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머리로는 어찌 이해해 볼지라도 몸과 감정이 안따라줍니다. 역으로 그게 상징의 힘이요, 그게 전례의 힘이기도 합니다. 이 점을 무시하면 전례도 역시 무시해야 합니다. 이런 점들을 보듬고 가야하는 것이 또한 사목입니다.

    앞서 제기한 "의식주의" 운동은 매우 사목적인 운동이었습니다. 이들이 성체를 보관하고, 사제가 작은 성체함에 넣어 가지고 다녔던 것은, 당시에 창궐했던 전염병, 그리고 극심한 노동 착취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외롭게 병들고 죽어가는 이들을 위한 보살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른바 전례운동이 대체로 사회정의 운동과 결합되었고, 이 때에 이른바 전례와 사제직에 대한 "고교회적" 이해가 상당히 잘 맞아 떨어졌습니다. "사제가 있는 곳이 교회다"라는 주장은 당시 참석하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 사제들이 찾아가 성찬레를 베풀고, 이곳이 바로 교회라며 위로하는 사목적 행동에서 이해할 수 있는 주장입니다.

    하여튼 전례의 사목적 적용을 위해서는 몇가지 절차가 필요합니다.

    첫째, 신학적 결론을 전례 행동에 그대로 적용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걸 절차의 첫대목으로 뽑는 것은 성직자들이 이 점을 자주 잊기 때문입니다. 특히 신학자들이 그렇지요. 이거 참으로 덜 익은 자세입니다.

    둘째, 전례의 역사와 신학에 대한 교육이 필요합니다. 설득이 필요합니다. 설득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아귀가 안맞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면 됩니다. 신학적 이해와 우리의 행동이 서로 부합하지 않는 것을 두고 이야기를 펼쳐야 합니다.

    셋째, 신앙인들의 경험에 경청해야 합니다. 특히 성찬례 때의 신앙적 경험의 흐름을 눈여겨서 살펴야 합니다. 그 흐름을 타면서, 마지막 성찬기도 영광송이 지닌 신앙적 절정과 "아멘"을 통한 응답에 대한 이해로 이끌어야 합니다.

    넷째, 교회 전례의 변화는 최소한 교회 내의 "전례 위원회" 혹은 "예배 위원회"의 연구와 협의를 통해서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이 교회를 혼란스럽게 하지 않고, 전례에 변화를 주려는 사제를 보호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이런 절차들을 거친 뒤라야 뭔가 변화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동반하지 않고 혹은 고려하지 않고 뜯어고치겠다고 말하면 그건 고치지 않는 것만 못합니다. 불필요한 상처를 주니까요.

    이제 제 경우를 이야기하겠습니다.

    우선 신자로서 제 경험입니다. 이곳 신학교든 교회든, 제정사 뒤에 성체 거양을 하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천주교에 가면 우리 한국 성공회에 대한 향수를 자극받습니다. 어쨌든 그냥 성반(성작)을 들어 조용히 보여주고 말지요. 거양 앞뒤로 하는 궤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성반(성작)을 들어 하신 제정사의 끝마디마다의 짧은 순간에 머리를 숙여 절합니다. 외롭지 않게 몇몇 친구들도 그리하더군요. 하지만 성찬기도 마지막의 거양은 분명하게 합니다. 저는 그걸 똑바로 쳐다보며 힘차게 "아멘"으로 화답합니다.

    이제, 집전사제로서 말씀드립니다. 저는 궤배도 거양도 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 예를 행하라"는 제정사 마디마디에 성반과 성작을 들어 참여한 이들이 잘 보도록 합니다. 약간 멈추은 짧은 시간이 있을 뿐입니다. 교인들은 여기서 절을 하거나, 십자 성호를 긋습니다. 성찬기도 마지막 영광송을 할 때 먼저 한 성반과 성작을 눈높이로 들어올리고 신자들이 아멘 한 뒤에야 내려 놓고, 그 다음 절을 합니다. (다른 것을 몰라도 성찬 기도만은 가능하면 노래로 하려고 합니다. 작은 공동체에서는 이것이 참여와 경건함을 높이는 방법이고, 성찬기도의 중요성을 돋보이게 하기 때문입니다.)

    좀 길어졌군요.

    여러 신자들과 신부님들의 고견을 기대합니다.

    "Tradition is living faith of the dead, Traditionalism is dead faith of the living."
    2007년 9월 20일 #
  3. Cranmerian
    회원

    먼저 28 항은 중세시대의 미사,또는 성체성사에 대한 이해를 거부하고 새롭게 정의하는 내용입니다. 중세의 미사 이해는 sacrifice, 즉 그리스도의 죽음을 재현(enactment)하는 것이었습니다. 매 미사 때마다 그리스도는 다시 한번 십자가에 처형당함으로써,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은총을 생산합니다. 바로 이 때문에 미사는 가장 강력한 중보기도가 되었습니다. 개혁가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은 단 한번으로 모든 인간들 - 과거, 현재, 미래 - 의 죄를 대속하였다고 믿었기 때문에 죽음을 의미하는 미사라는 용어를 폐기하고, 유사한 의식, 의례들을 폐지하였습니다. 성찬례에 일상용 빵을 사용하고, 축성한 빵에 대한 경배, 숭배행위금지, 거양금지 등 sacrifice를 암시할 수 있는 행위들까지 모두 금지, 폐지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화체론을 거부하였지만, 이에 대한 해석은 루터의 real presence와 즈빙글리의 기념론으로, 후에 칼빈의 spiritual receptionism 로 나뉘었읍니다. 39개 조항의 전신인 42개 조항신에서 크렌머 또한 칼빈의 입장과 동일한 인식을 선언하였습니다.

    하지만 교회개혁이 정착된 후-1600년 정도- 교회 의 권위강화, 또는 보수화 현상으로 교권을 강화하고, 예배를 아름답고 거룩하게 만들려는 집단들이 부상하면서 중세교회의 사례들을 복원하기 시작하였읍니다. 이들이 바로 로드파 성직자들로 신앙적으로는 프로테스탄트였지만, 당시의 가톨릭 교회에 대하여 우호적인 입장을 취함으로써, 퓨리탄뿐만 아니라 온건파들로부터도 저항을 받았습니다. 이 때의 국왕인 찰스1세의 전제정치와 맞물려 왕국은 극단적으로 분열되어 내전에 휩쓸립니다. 국왕은 처형되고, 공화정이라는 새로운 실험과, 신정정치, 느슨한 국가교회에서 기존의 주교제와 기도서 예배는 수구세력으로 금지되었으며, 각종 새로운 교파들이 탄생하였습니다. 그러나 실험은 실패하고 군주제가 복원되었읍니다. 이 때에 지방 지주들은 기존질서를 확고히 유지하는 길은 기존의 신분질서, 특히 주교제교회를 강력히 유지하는 길로 인식하고 로드파의 인식을 상당히 유지 하였습니다.

    오늘의 문제는 소위 미사라는 성찬예배를 어떻게 이해하는 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봅니다.

    기념예식, 감사, 신앙고백, 잔치(banquet), 즉 나눔의 잔치 등... 여기에 상징적 행위를 고려한다면, 어떤 시점에서 성체를 거양하는 행위도 좋다고 봅니다. 이왕이면 커다란 면병을 사용하고 이를 쪼개어 함께 나눠먹는 것도 좋다고 봅니다.

    2007년 11월 1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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