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프로젝트의 자료들은 제가 섣불리 다룰 것들이 아니라고 생각되어서, 프로젝트 캔터베리 웹사이트 (http://anglicanhistory.org) 의 글들 가운데 대한성공회와 관련 깊은 것을 골라 시도해 보았습니다. 시간이 나는대로 계속 보완하겠습니다.
어색하거나 잘못된 부분들을 알려주시면 곧 바로 잡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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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anglicanhistory.org/asia/kr/corfe.html
한국의 성공회
주교 C. J. 코프
서울, 1905.
소개
한국의 영국 성공회 평신도들에게
한국 관구 성공회의 사제단과 평신도들에게
선교직에 있는 이들에게
관구의 사제단에게
성찬식 거행의 관구적 용례
선교의 두폭화
성경과 교리 교육
공동 기도서와 전례 번역
성찬
교리학습자들의 인가
교회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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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anglicanhistory.org/asia/kr/corfe1.html
한국의 성공회 평신도들에게.
1899년,6월 25일,서울.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최근에 강화와 서울에서 신자들이 세례를 받았고, 더불어 신자 가족 전체가 그리스도의 교회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되어, 우리는 전능하신 하느님께 대한 신실한 감사함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계 곳곳에서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여러분들이 근 십년동안 계속해 온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실한 감사의 마음과 함께, 한층 무거워진 책임감도 뒤따라야 하겠습니다. 이 책임은 무엇보다도 저와 사제단이 잘 의식하고 있어야 하겠지만, 교회의 모든 신자들이 또한 나누어 가져야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한국 내의 성공회가 소수 유럽인들만의 것이었던 동안에는, 왜 우리는 교회와 기도소에서 거르지 않고 예배를 드리는가, 우리의 다른 이들에 대한 책임은 "함께 있지 않은 이들을 향해 부지런히 나아가는 것" 으로 국한되었습니다. 삶 속에서의 지속적인 실천을 통하여, 우리 종교의 드높은 진리와 힘을,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증거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였습니다. 그러나 지난 두 달 동안에 우리의 의무는 즉시 더욱 분명하고 더욱 진지한 것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로 인하여, 한국인들 - 남자, 여자, 어린이들 - 은 "믿음의 가정" 안에 받아들여졌고, 우리와 함께 "신적 본성의 담지자" 가 되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우리의 서로 다른 직분들을 본다면, 이제 우리와 그들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들에게 감사함으로 가득 채워주시는 하느님, 그리고 우리들과 그들 사이의 관계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한,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면, 우리와 그들 간에는 큰 차이점이 있기도 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가장 어린 형제들이며, 마치 사도 바울이 말한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 과 닮아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경험은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형성되었으며, 그들의 경험은 이교도 세계에서 형성되었습니다. 이제 막 그들은 미신의 어둠으로부터 나와 그리스도 복음의 밝은 빛 속에 섰으며, 오랫동안 형성되어온 그리스도교적 인물들의 사례들에게서 모범을 구하고자 할 것입니다. 처음에 깊은 호기심을 가지면서도 우리들을 바라보앗던 그들의 의심스러운 눈길들은 이제 공감과 격려를 갈망하며, 또한 수많은 세부적인 가르침들을 갈망하는 것으로 바뀌어 우리를 향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앙의 선배들인 우리들로부터 보다 자세한 교육을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부분에, 제가 말씀드린 우리들 모두의 한층 무거워진 책임이 있습니다 - 그 책임은 나의 형제인 여러분 모두가 지고 있으며, 이는 사제들에게보다 여러분에게 더욱 무겁게 지워져 있습니다. 우리의 한국인 그리스도인들은 평신도들입니다. 여러분들처럼 그들도 우리의 입으로부터 구원의 길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그들의 새로운 의무들이 여러분들의 그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 여러분이 주장할 수 있는 어떠한 특권도 그들에게 똑같이 적용됩니다. 만약 우리가 그들을 형제로서 환영하고자 한다면, 만약 우리가 그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그들에게 주려고 한다면, 신앙 교육이 바로 그것인데, 지금이 바로 그러한 때 - 그렇지 않습니까? - 즉 우리들 각각의 신심생활과 예배생활을 그들이 처음으로 배우는 그리스도교회 정식 신자들의 신심생활과 예배생활과 일치하는 생활로 만들어가도록 요청받고 있는 시점인 것입니다. 보편적 교회의 특권들을 향유하는 불변의 조건인 이러한 규칙들은 그들에게 낯선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그리스도교 전통의 나라에서 성장한 우리들은 이러한 규칙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우리의 지식에 따른 것입니까? 우리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하인들과 교사들, 친구들, 그리고 지인들도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규칙들을 지켜야 하며 똑같은 특권들을 향유할 권리를 갖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무경험을 고려할 때, 그들은 여러분에게서 길잡이를 찾으려 하고 여러분이 놓는 예를 따르고자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것, 여러분이 선택한 이 나라에서, 하나이며 나뉘어지지 않은 보편적인 교회의 전통을 영속시키는 것은 바로 여러분의 대단한 특권입니다.
이제 몇가지 중요한 문제들을 여러분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것들이 우리의 신앙생활이 한국인 신자들에게 가장 크게 영향을 주는 문제들이며, 또한 새로운 열정으로 시작하는 그들의 신앙생활이 우리들에게 유익한 영향을 주어야 하는 분야들입니다.
교리 학습자들을 위한 교리 문답 제5권은, 여러분들이 알고 있듯이, 영국 성공회의 신자들인 우리들의 생활을 규정짓도록 배운 신앙생활들의 개요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들에 대하여 한국인 신자들이 배우는 것은, 여러분들이 배웠던 것과 똑같은 것으로, 영국 성공회가 성서와 기도서, 초기 교회의 보편적 전통들에 근거한 것으로 성공회의 공식적인 신앙선언문들에서 가르쳐운 것들입니다. 여러분은 그들이 이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그들이 여러분들이 배웠던 것들과 다르게 배운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로운 교리학습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즉, 금식생활과 자선활동은 하느님이 모든 사람들에게 명하신 의무로, 영국 성공회도 신자들에게 지키도록 요구한다고 말입니다. 죄의 고백과 사면은 모든 신자들이 지켜야 하는 의무입니다. 죄많은 영혼이 성사적인 죄의 고백과 개인적인 죄의 용서의 확신이 더욱 많이 필요할 때, 이들에 대한 축복은 필요에 따라 교회의 모든 신자들에게 해당합니다. 그리고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영하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부과된 의무와 동일합니다. 왜냐하면 이는 하느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며, 또한 가시적인 일치에 대한 최고의 증언이자 연속적인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근본적인 사안들에 대하여, 우리의 사제들이 교리학습자들에게, 우리 본국의 형제들을 특징짓고 자주 동요시키기도 하는, 의견과 신앙생활의 다양성을 이곳에서 또한 조장하고 반복하리라고는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번의 세례 성사를 9년동안 준비하면서, 우리의 가장 행복한 봉헌적 생활은 형식과 정신의 통일을 이루었으며, 저는 이것이 교회의 역사 전체에서도 정말 유례가 없는 일이리라고 믿습니다. 이러한 잘 고려되고, 잘 시행되었으며, 잘 증명된 통일성에서, 우리의 한국인 형제들은 그 풍부한 혜택을 누릴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로 인하여, 9년동안 우리가 “가르침과 친교” 의 오순절적 합일을 유지하였다면, 이제는 그 어느때보다도 더, 우리 모두에게 허락된 “위대한 은사” 를 부지런히 사용함으로써, 날마다 “주 예수의 부활을 목격” 하는 가운데 오순절적인 “힘” 을 보일 것입니다.
성사적 고백
성사적 (일반적과 구별되는) 고백은, 우리 본국의 형제들이 기도서에서 보장된 자유를 누리려 했을 때 부딪혔던, 그러한 어려움들을 우리의 한국인 형제들에게 가져다 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주일의 감사 성찬례를 준비하는 신자들과 죽음을 앞두고 있는 병자들에게 주는 권고를 한국인들도 듣게 될텐데, 본국의 소박한 이들을 혼동시키고 있는 쓸데없는 논란들은 여기 동반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그러하듯이 그들에게도, 성사적 고백이 "강제적" 인 성격을 띤다면 이는 개인의 양심 때문이지, 사제가 강요하기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사제는 "권고하고," "움직이며," 그리고 나서 그의 사제직을 집행할 사람들, 즉 그에 의하지 않고는 "그 자신의 양심을 잠재울" 수 없는 이들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이 관구의 평신도들은 지금까지, 성사적 고백이 한편으로는 우리가 소홀히 한 바도 아니며 다른 한편으로는 거룩한 성사를 받기 위한 준비로서 꼭 필요한 것이라고 사제단이 요구한 바도 아니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교회 훈련
이와 밀접히 연관된 것이 교회 훈련의 문제입니다. 참회 예식의 서문을 작성한 그리스도 안의 우리 교부들은 초대 교회의 훈련이 실전된 것을 안타까워 했으며, 영국의 우리 형제들은 그것이 복구되도록 지금도 해마다 기도하고 있습니다. 본국에서 그것의 복원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이 무엇인지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것이 "복구" 될 수는 없겠지만, 그것의 정착을 가로막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저는 봅니다. 동시에 저는, 미래의 한국 성공회 주교회의가 어떤 훈련 규정들을 그들이 따를 수 없겠다고 발표할 때, 여러분의 동의를 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비록 여러분이 이 나라에서 이방인이지만, 여러분의 권리들은 조약에 의해, 여왕의 신민이자 영국 성공회의 신자로서 보장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