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 자유 토론

  1. Elyot
    회원

    번역 프로젝트의 자료들은 제가 섣불리 다룰 것들이 아니라고 생각되어서, 프로젝트 캔터베리 웹사이트 (http://anglicanhistory.org) 의 글들 가운데 대한성공회와 관련 깊은 것을 골라 시도해 보았습니다. 시간이 나는대로 계속 보완하겠습니다.

    어색하거나 잘못된 부분들을 알려주시면 곧 바로 잡겠습니다.

    ---------------------------------------------------------------------------------------

    원문: http://anglicanhistory.org/asia/kr/corfe.html

    한국의 성공회

    주교 C. J. 코프

    서울, 1905.

    소개

    한국의 영국 성공회 평신도들에게

    한국 관구 성공회의 사제단과 평신도들에게

    선교직에 있는 이들에게

    관구의 사제단에게

    성찬식 거행의 관구적 용례

    선교의 두폭화

    성경과 교리 교육

    공동 기도서와 전례 번역

    성찬

    교리학습자들의 인가

    교회 훈련

    ---------------------------------------------------------------------------------------

    원문: http://anglicanhistory.org/asia/kr/corfe1.html

    한국의 성공회 평신도들에게.

    1899년,6월 25일,서울.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최근에 강화와 서울에서 신자들이 세례를 받았고, 더불어 신자 가족 전체가 그리스도의 교회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되어, 우리는 전능하신 하느님께 대한 신실한 감사함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계 곳곳에서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여러분들이 근 십년동안 계속해 온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실한 감사의 마음과 함께, 한층 무거워진 책임감도 뒤따라야 하겠습니다. 이 책임은 무엇보다도 저와 사제단이 잘 의식하고 있어야 하겠지만, 교회의 모든 신자들이 또한 나누어 가져야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한국 내의 성공회가 소수 유럽인들만의 것이었던 동안에는, 왜 우리는 교회와 기도소에서 거르지 않고 예배를 드리는가, 우리의 다른 이들에 대한 책임은 "함께 있지 않은 이들을 향해 부지런히 나아가는 것" 으로 국한되었습니다. 삶 속에서의 지속적인 실천을 통하여, 우리 종교의 드높은 진리와 힘을,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증거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였습니다. 그러나 지난 두 달 동안에 우리의 의무는 즉시 더욱 분명하고 더욱 진지한 것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로 인하여, 한국인들 - 남자, 여자, 어린이들 - 은 "믿음의 가정" 안에 받아들여졌고, 우리와 함께 "신적 본성의 담지자" 가 되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우리의 서로 다른 직분들을 본다면, 이제 우리와 그들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들에게 감사함으로 가득 채워주시는 하느님, 그리고 우리들과 그들 사이의 관계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한,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면, 우리와 그들 간에는 큰 차이점이 있기도 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가장 어린 형제들이며, 마치 사도 바울이 말한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 과 닮아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경험은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형성되었으며, 그들의 경험은 이교도 세계에서 형성되었습니다. 이제 막 그들은 미신의 어둠으로부터 나와 그리스도 복음의 밝은 빛 속에 섰으며, 오랫동안 형성되어온 그리스도교적 인물들의 사례들에게서 모범을 구하고자 할 것입니다. 처음에 깊은 호기심을 가지면서도 우리들을 바라보앗던 그들의 의심스러운 눈길들은 이제 공감과 격려를 갈망하며, 또한 수많은 세부적인 가르침들을 갈망하는 것으로 바뀌어 우리를 향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앙의 선배들인 우리들로부터 보다 자세한 교육을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부분에, 제가 말씀드린 우리들 모두의 한층 무거워진 책임이 있습니다 - 그 책임은 나의 형제인 여러분 모두가 지고 있으며, 이는 사제들에게보다 여러분에게 더욱 무겁게 지워져 있습니다. 우리의 한국인 그리스도인들은 평신도들입니다. 여러분들처럼 그들도 우리의 입으로부터 구원의 길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그들의 새로운 의무들이 여러분들의 그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 여러분이 주장할 수 있는 어떠한 특권도 그들에게 똑같이 적용됩니다. 만약 우리가 그들을 형제로서 환영하고자 한다면, 만약 우리가 그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그들에게 주려고 한다면, 신앙 교육이 바로 그것인데, 지금이 바로 그러한 때 - 그렇지 않습니까? - 즉 우리들 각각의 신심생활과 예배생활을 그들이 처음으로 배우는 그리스도교회 정식 신자들의 신심생활과 예배생활과 일치하는 생활로 만들어가도록 요청받고 있는 시점인 것입니다. 보편적 교회의 특권들을 향유하는 불변의 조건인 이러한 규칙들은 그들에게 낯선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그리스도교 전통의 나라에서 성장한 우리들은 이러한 규칙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우리의 지식에 따른 것입니까? 우리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하인들과 교사들, 친구들, 그리고 지인들도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규칙들을 지켜야 하며 똑같은 특권들을 향유할 권리를 갖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무경험을 고려할 때, 그들은 여러분에게서 길잡이를 찾으려 하고 여러분이 놓는 예를 따르고자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것, 여러분이 선택한 이 나라에서, 하나이며 나뉘어지지 않은 보편적인 교회의 전통을 영속시키는 것은 바로 여러분의 대단한 특권입니다.

    이제 몇가지 중요한 문제들을 여러분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것들이 우리의 신앙생활이 한국인 신자들에게 가장 크게 영향을 주는 문제들이며, 또한 새로운 열정으로 시작하는 그들의 신앙생활이 우리들에게 유익한 영향을 주어야 하는 분야들입니다.

    교리 학습자들을 위한 교리 문답 제5권은, 여러분들이 알고 있듯이, 영국 성공회의 신자들인 우리들의 생활을 규정짓도록 배운 신앙생활들의 개요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들에 대하여 한국인 신자들이 배우는 것은, 여러분들이 배웠던 것과 똑같은 것으로, 영국 성공회가 성서와 기도서, 초기 교회의 보편적 전통들에 근거한 것으로 성공회의 공식적인 신앙선언문들에서 가르쳐운 것들입니다. 여러분은 그들이 이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그들이 여러분들이 배웠던 것들과 다르게 배운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로운 교리학습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즉, 금식생활과 자선활동은 하느님이 모든 사람들에게 명하신 의무로, 영국 성공회도 신자들에게 지키도록 요구한다고 말입니다. 죄의 고백과 사면은 모든 신자들이 지켜야 하는 의무입니다. 죄많은 영혼이 성사적인 죄의 고백과 개인적인 죄의 용서의 확신이 더욱 많이 필요할 때, 이들에 대한 축복은 필요에 따라 교회의 모든 신자들에게 해당합니다. 그리고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영하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부과된 의무와 동일합니다. 왜냐하면 이는 하느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며, 또한 가시적인 일치에 대한 최고의 증언이자 연속적인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근본적인 사안들에 대하여, 우리의 사제들이 교리학습자들에게, 우리 본국의 형제들을 특징짓고 자주 동요시키기도 하는, 의견과 신앙생활의 다양성을 이곳에서 또한 조장하고 반복하리라고는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번의 세례 성사를 9년동안 준비하면서, 우리의 가장 행복한 봉헌적 생활은 형식과 정신의 통일을 이루었으며, 저는 이것이 교회의 역사 전체에서도 정말 유례가 없는 일이리라고 믿습니다. 이러한 잘 고려되고, 잘 시행되었으며, 잘 증명된 통일성에서, 우리의 한국인 형제들은 그 풍부한 혜택을 누릴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로 인하여, 9년동안 우리가 “가르침과 친교” 의 오순절적 합일을 유지하였다면, 이제는 그 어느때보다도 더, 우리 모두에게 허락된 “위대한 은사” 를 부지런히 사용함으로써, 날마다 “주 예수의 부활을 목격” 하는 가운데 오순절적인 “힘” 을 보일 것입니다.

    성사적 고백

    성사적 (일반적과 구별되는) 고백은, 우리 본국의 형제들이 기도서에서 보장된 자유를 누리려 했을 때 부딪혔던, 그러한 어려움들을 우리의 한국인 형제들에게 가져다 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주일의 감사 성찬례를 준비하는 신자들과 죽음을 앞두고 있는 병자들에게 주는 권고를 한국인들도 듣게 될텐데, 본국의 소박한 이들을 혼동시키고 있는 쓸데없는 논란들은 여기 동반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그러하듯이 그들에게도, 성사적 고백이 "강제적" 인 성격을 띤다면 이는 개인의 양심 때문이지, 사제가 강요하기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사제는 "권고하고," "움직이며," 그리고 나서 그의 사제직을 집행할 사람들, 즉 그에 의하지 않고는 "그 자신의 양심을 잠재울" 수 없는 이들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이 관구의 평신도들은 지금까지, 성사적 고백이 한편으로는 우리가 소홀히 한 바도 아니며 다른 한편으로는 거룩한 성사를 받기 위한 준비로서 꼭 필요한 것이라고 사제단이 요구한 바도 아니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교회 훈련

    이와 밀접히 연관된 것이 교회 훈련의 문제입니다. 참회 예식의 서문을 작성한 그리스도 안의 우리 교부들은 초대 교회의 훈련이 실전된 것을 안타까워 했으며, 영국의 우리 형제들은 그것이 복구되도록 지금도 해마다 기도하고 있습니다. 본국에서 그것의 복원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이 무엇인지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것이 "복구" 될 수는 없겠지만, 그것의 정착을 가로막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저는 봅니다. 동시에 저는, 미래의 한국 성공회 주교회의가 어떤 훈련 규정들을 그들이 따를 수 없겠다고 발표할 때, 여러분의 동의를 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비록 여러분이 이 나라에서 이방인이지만, 여러분의 권리들은 조약에 의해, 여왕의 신민이자 영국 성공회의 신자로서 보장되어 있습니다.

    2010년 7월 2일 #
  2. Cranmerian
    회원

    중요한 시도를 환영합니다. 세계성공회 전반과 대한성공회에 관련된 문서들을 우리말로 번역하여 정리하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고 시급합니다. 이미 개인적으로 공부하며 번역하신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번역자료들을 한데 모아 공유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교단이나 신학교 차원에서 커다란 프로젝트로 실행하기를 기다리기 보다는, 엘리어트님 처럼 가능한 부분에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혹시나 오역이 생긴다 하더라도 이러한 포럼에서 관심갖는 사람들을 통해서 교정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시도조차 없다면, 이해와 교정을 위한 논의 또한 있을 수 없습니다.

    중요한 시도에 감사드리며, 이러한 번역작업이 지속되기를 기도드립니다.

    2010년 7월 6일 #
  3. Elyot / Cranmerian 님과 함께 이런 소중한 노력을 시작해 주신 Elyot 님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관구 게시판에 올리신 몇몇 번역물도 이곳에 올려 놓으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이 공간이 좀 더 널리 이용될 수 있도록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Tradition is living faith of the dead, Traditionalism is dead faith of the living."
    2010년 7월 6일 #
  4. 신대원에서 말만 있었고 실행되지 못하던 작업이 시작되는 것 같아 환영합니다~! 또한, 감사~

    2010년 7월 7일 #
  5. Elyot
    회원

    이렇게 반겨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성원에 감사드리고, 보완을 계속해 나가겠습니다.

    영어 자체도 제게 어렵지만, 교회 언어는 특히, 한국어로 어떻게 옮기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지 잘 모르겠습니다.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오늘 새로 보완한 부분에서만 고르면,

    and the undoubted traditions of the undivided Church

    같은 문맥에서, "undivided Church" 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실제로는 교파들이 나뉘어져 있지만, 그런 것을 넘어서있는 어떤 관념으로서의, 그리스도의 몸 그 자체인 교회를 말하는 것인지요? 그리스도가 한 분이니까 교회도 하나라는 의미에서. 그리고 한국어로는 어떻게 말하는 것이 좋을지요. 그리고,

    that the communion by the faithful of the Body and Blood of Christ is equally obligatory on all Christians because of the Divine command and as being the supreme and continuous witness to visible unity

    에서, "Divine command" 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2010년 7월 9일 #
  6. Cranmerian
    회원

    the undoubted traditions of the undivided Church는 동방과 서방교회로 분리되기 이전의 교회 즉, 초기교회(early church) 또는 고대교회(ancient church)의 전통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즉, 5-7세기 이전의 교회들의 전통으로 catholic 또는 universal 전통으로도 표현합니다.

    Divine command는 하느님의 명령, 즉 하느님이 신자들에게 꼭 지키도록 요구하는 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몇가지 보충하자면, necessary는 필수적이라는 뜻으로 전제조건에 해당하는 의미입니다. 즉, faith is necessary for salvation이라고 할 때, 신앙[믿음]은 구원의 전제조건이 됩니다. 그리고 practice라는 단어는 우리말로 표현하기가 아주 애매하게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실제'라고 하지만-이럴경우 '이론과 실제'처럼, 교회의 경우 여러가지 신앙생활들 또는 신앙을 실행하는 활동들로 각종 예식들과 의례들, 그리고 신앙을 표현하는 여러가지 행동들(?) 모두를 포함하는 뜻입니다.

    번역을 하다보면 이해는 되지만 우리말로 표현하기가 아주 어려운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를 말씀드린다면, 최근판의 영한사전, 영어로 된 기독교 백과사전(저는 Oxford Dictionary of Christian Church를 사용합니다)을 짜증날 정도로 뒤적입니다. 힌트를 얻기 위하여 wikipedia도 들락거립니다. 때로는 번역하는 내용에 해당하는 개론서를 읽어보기도 합니다. 물론 한국어로 된 신학서적도 뒤적이고요.

    Elyot님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서두르지 마시고 천천히 번역하세요. 그리고 혼동이 되지않게 추가부분은 새로이 시작하는 것이 어떨까요.

    2010년 7월 10일 #
  7. Elyot
    회원

    Cranmmerian 님, 자세히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반영하여 수정하였습니다.

    추가 부분을 기왕의 글에 덧붙인 까닭은, 원문에서 하나의 아티클 또는 하나의 챕터는, 여기서도 하나의 글 속에 다 담기도록 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포럼에 올라와 있는 다른 번역문들도 그런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 같구요. 그러면 번역이 다 끝난 후 올리면 되었겠지만, 그렇게 하면 마냥 늑장을 부리게 될 것 같아서, 일단 번역이 이루어진 곳까지 올려 놓았습니다.

    그래서 원문도 함께 올려 놓아 그때그때 필요한 지적을 받을 생각이었는데, 그동안 포럼이 운영되어 온 방식이 그와 같지 않았고, 갈수록 분량이 많아져서 읽기에 번거로우실 듯 하므로, 원문은 지우고 그 웹 주소만 맨 위에 표기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여러가지로 익숙지 않고 미숙하므로, 많이 지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2010년 7월 11일 #
  8. Cranmerian
    회원

    Elyot님의 말씀처럼 이 글은 100여년전의 글로 좀 어렵습니다. 그리고 교회용어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조금 헤매는 인상입니다. 특히 Elyot님이 번역하여 올린 다른 글들과 비교할 때. 교회용어에 대한 이해-당시와 현재-를 넓힌다면 더 좋은 번역이 될 수 있으며, 당시 선교사들의 이해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본문중에서 “ ” 는 성서구절을 인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정확한 위치는 찾을 수 없지만. 다른 회원분들의 도움을 바랍니다. 제가 교정한 부분은 [ ]로 표시하였습니다.

    번역은 하는 사람마다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또한 동일한 사람이라도 할 때마다 달라집니다. 혹시 용어에 어려움이 있으시면 제게 개인적으로 연락주시면 도와드리겠습니다. cranmerian@hotmail.com입니다.

    한국의 성공회 평신도들에게.
    1899년, 6월 25일, 서울.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최근에 강화와 서울에서 신자들이 세례를 받았고, 더불어 신자 가족 전체가 그리스도의 교회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되어, 우리는 전능하신 하느님께 헌신하는[신실한, 깊은] 감사함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계 곳곳에서 특히[뿐만아니라] 한국에서 여러분들이 근 십년동안 계속해 온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헌신적인[신실한, 깊은] 감사의 느낌[마음]과 함께, 한층 무거워진 책임의 느낌[책임감-이 말은 코프주교가 강조하려는 말로 보입니다] 역시 뒤따라야 하겠습니다. 이 책임은 무엇보다도 저와 사제단이 잘 의식[인식]하고 있어야 하겠지만, 교회의 모든 지체[신자]들이 또한 나누어 가져야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한국 내의 성공회가 소수 유럽인들만의 것이었던 동안에는, 왜 우리는 교회와 경당[chapels기도소, 정식 전도구교회가 아닌 예배장소]에서 거르지 않고 예배를 드리는가, 우리의 다른 이들에 대한 책임은 "함께 있지 않은 이들을 향해 부지런히 나아가는 것"[성서구절을 인용한 것으로 보입니다-정확한 위치를 모르겠습니다]으로 국한되었습니다. 삶 속에서의 지속적인 실천을 통하여, 우리 종교의 드높은 진리와 힘[supreme truth로 기독교신앙의 참진리 또는 최고의 가치와 권능]을 우리가 접하는[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보여주는[증거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였습니다. 그러나 지난 두 달 동안에 우리의 의무는 즉시 더욱 분명하고 더욱 진지한 것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로 인하여, 한국인들 - 남자, 여자, 어린이들 - 은 "믿음의 가정" 안에 받아들여졌고, 우리와 함께 "신적 본성의 담지자"[하느님의 자녀? 이 부분도 성서구절에서 온것이 아닌가?] 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눈에 우리가 어떻게 보일까를 생각해 보면[하느님 앞에서 우리의 서로 다른 직분들을 본다면], 이제 우리[선교사들과 외국인 평신도들]와 그들[새로운 한국인 세례신자들]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습니다. 우리와 그들, 그리고 우리를 감사의 마음으로 가득차게 해주시는 하느님 사이의 관계만이 확인될 뿐입니다[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들에게 감사함으로 가득 채워주시는 하느님, 그리고 우리들과 그들 사이의 관계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한, 달리 보면[다른 방식으로 표현한다면], 우리와 그들 간에는 큰 차이점이 있기도 합니다[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가장 어린 형제들이며, 마치 사도 바울이 말한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 과 닮아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경험은 기독교 세계에서 형성되었으며, 그들의 경험은 이교도 세계에서 형성되었습니다. 이제 막 그들은 미신의 어둠으로부터 나와 그리스도 복음의 밝은 빛 속에 섰으며, 오랫동안 형성되어온 기독교적 인간성[특성들, 인물들]의 사례들에서 모범을 구하고자 할 것입니다. 처음에 우리에게 던져졌던 의혹의 시선들은 곧 열성적인 호기심의 그것으로[깊은 호기심을 가지면서도 우리들을 바라보았던 그들의 의심스러운 눈길들은] 지금은[이제] 공감과 격려를 갈망하는[뿐만아니라], 또한 수많은 세부적인 가르침들을 갈망하는 것으로 바뀌어 우리를 향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손위 형제일 우리들이 그들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뿐만아니라, 신앙의 선배들인 우리들로부터 보다 자세한 교육을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부분에, 제가 말씀드린 우리들 모두의 한층 무거워진 책임이 있습니다 - 그 책임은 나의 형제인 여러분 모두가 지고 있으며, 사제들에게는 더욱 중요하게 지워져 있습니다[사제들의 책임보다 더욱 무거운 책임감입니다]. 우리의 한국인 기독교인들은 평신도들입니다. 여러분들처럼 그들도 우리의 입로부터 구원의 길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새롭게 설정된 기독교적 의무들이지만, 이를 준수하는 것이 여러분들에게보다 그들 자신에게 더 어려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영문에서 전체가 한 문장인 것 같습니다-그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그들의 새로운 의무들이 여러분들의 그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즉, 여러분이 주장할 수 있는 어떠한 특권도 [마찬가지로] 그들에게 똑같이 적용됩니다. [따라서] 만약 우리가 그들을 형제로서 환영하고자 한다면, 만약 우리가 그들이 [지금]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그들에게 주려고 한다면, [즉]인격의 형성[edification은 신앙교육 또는 신앙의 증진을 위한 여러가지 훈련이나 교육]이 바로 그것인데,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야할 때입니다[지금이 바로 이러한 때입니다] -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들 각각의 기독교적 헌신과 실천의 삶은, 그들이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것과 일치하는 것으로 여길, 교회의 충실한 지체들이 해야 할 헌신과 실천의 삶과 얼마나 멀리 있는가.[즉, 지금이 바로 우리들 각자의 신심생활과 예배생활을 그들(한국인 신자들)이 처음으로 배우는 그리스도교회 정식신자들의 신심생활과 예배생활(devotion and practice로 사적인 신앙생활과 공적인 신앙생활?)과 일치하는 생활로 만들어가도록 요청받고 있는 시점입니다] 한결같이 변치않는 조건으로서, 보편적 교회의 특권을 누린다는 개념은 그들에게 낯선 것입니다[보편적 교회의 특권들을 향유하는 불변의 조건인 이러한 규칙들[신심생활과 예배생활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은 그들에게 낯선 것입니다]. 그들이 자라나온 나라는, 우리가 기독교적 전통의 공기를 호흡한다고 느꼈던 나라인 것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하지만 바로 이러한 그리스도교 전통의 나라에서 성장한 우리들은 이러한 규칙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실천[신앙생활]이 우리의 지식에 따른 것입니까? 우리는 지금 우리들 사이에서만 봉사자로, 선생님으로, 친구로, 지인으로 살고 있으며, 같은 규칙으로 묶여지고 같은 특권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우리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하인들과 교사들, 친구들 그리고 지인들도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규칙들을 지켜야하며 똑같은 특권들을 향유할 권리를 갖습니다. 그러나 곧, 그들의 경험 안에서[하지만 그들의 무경험을 고려할 때], 그들은 여러분에게서 길잡이를 찾으려 하고 여러분이 놓는 예를 따르고자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적인 공기[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것, 여러분이 선택한 이 나라에서[,] 하나이며 나뉘어지지 않은 하느님의 교회라는[보편적인 교회의] 전통을 영속해 가는[영속시키는, 영원한 것으로 만드는, 정착시키는] 것은 [바로] 여러분의 대단한 특권입니다.

    이제 말씀드릴 사항들은, 우리의 실천이 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 그리고 그들의 실천 또한, 새로운 열정으로 태어나, 우리에게 전반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몇가지 중요한 문제들을 여러분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것들이 우리의 신앙생활(practice)이 한국인 신자들에게 가장 크게 영향을 주는 문제들이며, 또한 새로운 열정으로 시작하는 그들의 신앙생활이 우리들에게 유익한 영향을 주여야 하는 분야들입니다] .

    교리학습자들을 위한 교리문답 제5권[이 책이 무엇인자 궁금합니다]은, 여러분들이 보았듯이[알고 있듯이], 잉글랜드교회[영국성공회]의 지체[신자]들인 우리들이 삶에 질서를 놓도록[우리들의 생활을 규정짓도록] 배운 규칙들과 실천들[신앙생활들]의 대강을 담고 있습니다[개요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배운 바는[이것들에 대하여 우리 한국인 신자들이 배우는 것은], 여러분들이 배운대로[배웠던 것과 똑같은 것으로], 잉글랜드교회가 그 공인된 규범에 따라 모든 곳에서 가르쳐온대로 성경, 기도서, 그리고 나뉘지지 않은 교회의 의심할 바 없는 전통에 기반한 것입니다[영국성공회가 성서와 기도서, 초기교회의 보편적 전통들에 근거한 것으로 성공회의 공식적인 신앙선언문들(공식문서들formularies)에서 가르쳐온 것들입니다]. 여러분은 그들이 우리로부터 받은 가르침 가운데, 여러분 자신이 받은 것과 다른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여러분들은 그들이 이러한 분야들(문제들)에 대하여 여러분들이 배웠던 것들과 다르게 배운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코프 주교는 왜 이 말을 하는가? 선교사들 내부에 한국인 신자들에 대한 교육내용으로 논란이 있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본국이나 미국에서 한국 또는 아시아 선교사들의 교육활동에 대하여 논란이 있는 것은 아닌지? 코프 주교는 이 점[교육의 내용]을 확실하게 말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교리교육에 있어서, 절제와 자선은 하느님이 모든 사람들에게 명하신 의무이고, 따라서 잉글랜드교회[영국성공회] 또한 그 지체[신자]들에게 명하는 바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죄의 고백과 용서는 모두에게 필요하며, 죄짐진 영혼이 성사적 고백에의 필요와 개인적 용서에의 보증을 더 갈구할 때, 이러한 축성은 교회의 모든 지체들이 원할 때 가 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모시는 성찬식은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똑같은 의무인데, 이는 신성의 권능 그리고 가시적인 합일의 궁극적이고도 연속적인 현시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이 단락은 좀 어렵군요. 교리에 대한 자세한 이해가 요구됩니다. 제가 다시 번역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새로운 신자들[교리학습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교육시키고 있다; 즉, 금식생활과 자선활동은 하느님이 모든 인간들에게 명령하신 의무로, 영국성공회도 신자들에게 지키도록 요구하는 의무들이다. 죄의 고백과 사면은 모든 신자들이 지켜야 하는 의무이다. 죄많은 영혼이 성사적인 죄의 고백[고해성사]과 개인적인 죄의 용서의 확신이 더욱 많이 필요할 때에, 이들에 대한 축복은 필요에 따라 교회의 모든 신자들에게 해당한다[***보다 자세한 이해가 필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영하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부과된 의무와 동일하다. 왜냐하면 이는 하느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며, 또한 가시적인 일치[통일성]에 대한 최고의 증언이자 연속적인 증언이기 때문이다.]

    ***일단 제 나름대로 이해한 내용을 바탕으로 교정해 보았습니다. 저도 헷갈리는군요.

    2010년 7월 18일 #
  9. Elyot
    회원

    Cranmerian 님이 교정해주신 것을 거의 다 반영하여서, 본문을 고쳤습니다. 여러번 읽어 보아도, 각각의 부분에서, 저로서는 그보다 나은 대안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Crammerian 님이 아니셨으면 오독과 오판으로 가득 찬 것을 번역이라고 놓아둘 뻔 했습니다. 거듭 감사드립니다.

    2010년 8월 1일 #
  10. Cranmerian
    회원

    Elyot님이 새로이 교정한 번역을 첫 부분에 수정하여 게재하였기 때문에, 중간에 이 글을 읽는 회원들은 다소 혼동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직 전문을 다 번역한 것이 아니고, 지금 그 작업을 하는 중입니다. 부분적이더라도, 나중에 완결할 수 있도록, 다음 부분은 첫 부분을 다시 수정하지 마시고, 마지막 부분에 연결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사소한 번역의 문제 보다는 본문을 이해하기 위하여, 원문과 번역문을 함께 올립니다.

    Sacramental Confession.

    The question of sacramental (as distinct from general) Confession will present to our people few of the practical difficulties which beset our brethren at home when they wish to avail themselves of a liberty which is secured to us by the Prayer Book. The Exhortation to the faithful in preparation for Holy Communion on the Lord's Day and to the sick in preparation for death will be listened to by Coreans without the accompaniment of any of those irrelevant issues which are now confusing simple folk at home. As with yourselves so with them, if Sacramental Confession is "compulsory" it will be because the conscience of the individual, not the priest, compels. The priest "exhorts," "moves," and then waits to exercise his ministry on those who find that they cannot otherwise "quiet their own conscience." But the Laity of this Diocese know quite well by this time that Sacramental Confession is neither on the one hand neglected by us nor on the other is it required by the Clergy as a necessary preliminary to receiving the Holy Sacrament.

    성사적 고백

    성사적 (일반적과 구별되는) 고백은, 우리 본국의 형제들이 기도서에서 보장된 자유를 누리려 했을 때 부딪혔던, 그러한 어려움들을 우리의 한국인 형제들에게 가져다 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주일의 감사 성찬례를 준비하는 신자들과 죽음을 앞두고 있는 병자들에게 주는 권고를 한국인들도 듣게 될텐데, 본국의 소박한 이들을 혼동시키고 있는 쓸데없는 논란들은 여기 동반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그러하듯이 그들에게도, 성사적 고백이 "강제적" 인 성격을 띤다면 이는 개인의 양심 때문이지, 사제가 강요하기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사제는 "권고하고," "움직이며," 그리고 나서 그의 사제직을 집행할 사람들, 즉 그에 의하지 않고는 "그 자신의 양심을 잠재울" 수 없는 이들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이 관구의 평신도들은 지금까지, 성사적 고백이 한편으로는 우리가 소홀히 한 바도 아니며 다른 한편으로는 거룩한 성사를 받기 위한 준비로서 꼭 필요한 것이라고 사제단이 요구한 바도 아니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1. 성사적 고백(Sacramental Confession)은 사제에게 죄를 고백하였던 고해성사로 private or auricular confession이라고 하며, 일반적 고백(general confession)은 감사성찬례의 죄의 고백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공회에서는 1549년의 첫 기도서부터 고해성사를 삭제하고 감사성찬례 예식에 이를 공적인 고백(general confession)으로 포함하였습니다. 이 편지의 시기(1899)를 고려한다면, 아마도 이 때에 영국에서 옥스퍼드운동의 신학을 계승한 ritualist들이 도입하기 시작한 종교개혁 이전의 의식들과 예식들중 고해성사(당시 로마 가톨릭교회의 예식)을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영국내에서는 이러한 의식들과 예식들 때문에 상당한 논란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법적인 기도서는 1662년 기도서입니다.

    2. ‘병자들에게 주는 권고를’- 여기서 권고는 기도서의 병자[방문]예식에 나오는 죄의고백에 대한 ‘권고’을 말합니다. “움직이며"는“제안하는”으로. ‘그리고 나서 그의 사제직을 집행할 사람들, 즉 그에 의하지 않고는 "그 자신의 양심을 잠재울" 수 없는 이들을 기다립니다.’-> ‘사제는 권고하고 제안하며, 그리고 나서 이러한 권고나 제안으로 자신의 양심을 달랠 수 없는 신자들에게 자신의 사목직(ministry, 사목적 책임, 활동)을 수행하기를 기다립니다.’

    3. 이 관구의 평신도들은->이 교구의 평신도들은. 거룩한 성사(Holy Sacrament)를->감사성찬례의 빵과 포도주 또는 성찬을 말합니다.

    Church Discipline.

    Closely connected with this matter is the question of Church discipline. Our Fathers in Christ who wrote the Preface to the Commination Service deplored the loss of the discipline of the primitive Church and our brethren in England still pray annually that it may be restored. What difficulties there are in the way of its restoration at home I know not. But here, though it cannot be "restored," I see nothing to prevent its being established. At the same time I must remind you that whatever Canons of Discipline the future Synod of the Church in Corea may promulgate they cannot be binding, without your consent, on you, in a country where, though you are aliens, your rights are secured to you by Treaty as subjects of the Queen and members of the Church of England.
    If then you wish fully to identify yourselves with our native brethren and take your great part in building up a national Church in Corea I counsel you to make a fresh study, with this view, of the Church's order and discipline as contained in the Prayer Book; and to remember that while you can follow out here the Church's rules in all simplicity, without either being misunderstood or raising angry controversy, your determination to fall into line with our Corean brethren in such matters cannot fail to be most helpful to them and most beneficial to your own souls.

    교회 훈련

    이와 밀접히 연관된 것이 교회 훈련의 문제입니다. 참회 예식의 서문을 작성한 그리스도 안의 우리 교부들은 초대 교회의 훈련이 실전된 것을 안타까워 했으며, 영국의 우리 형제들은 그것이 복구되도록 지금도 해마다 기도하고 있습니다. 본국에서 그것의 복원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이 무엇인지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것이 "복구" 될 수는 없겠지만, 그것의 정착을 가로막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저는 봅니다. 동시에 저는, 미래의 한국 성공회 주교회의가 어떤 훈련 규정들을 그들이 따를 수 없겠다고 발표할 때, 여러분의 동의를 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비록 여러분이 이 나라에서 이방인이지만, 여러분의 권리들은 조약에 의해, 여왕의 신민이자 영국 성공회의 신자로서 보장되어 있습니다.

    1. 훈련이라고 번역하신 discipline이란 단어도 참 어렵습니다. 교회의 중요한 여러가지 규정들(교회법들)을 제정하고, 이를 제대로 실행하고 있는지를 감독하고, 이를 무시하거나 변경하여 사용하는 자들을 징계하는 활동을 모두 포함합니다. 우리말로 어떤 용어가 적합할지? 저는다른 글을 번역할 때에 ‘권징’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만 문맥에 따라 다르게 번역하여야 하는 용어같습니다.

    2. 참회 예식의 서문(the Preface to the Commination Service)-> the Commination Service은 사순절의 시작날인 재의 수요일 예식을 말합니다. 1549년의 첫 기도서부터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이란 용어 대신에 사용되었습니다. Preface는 이 예식의 첫 부분에 나오는 권고문을 말합니다. 이 예식의 서문에 의하면, 당시에 이 예식을 public penance(공적인 참회예식)으로 사용할 수도 있도록 만든 것같습니다.

    3. 미래의 한국 성공회 주교회의가 어떤 훈련 규정들을(whatever Canons of Discipline the future Synod of the Church in Corea...) 미래의 한국[성공회]교회 교회회의(교구의회 또는 관구의회). 여기서 Synod란 교회의 공식적인 기구로 최종적인 결정권과 법제정권을 갖는 회의를 말합니다. Canons of Discipline-> 권징에 관한 교회법률들

    4. ‘동시에 저는, 미래의 한국 성공회 주교회의가 어떤 훈련 규정들을 그들이 따를 수 없겠다고 발표할 때, 여러분의 동의를 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와 동시에 저는, 미래의 한국교회[성공회] 교회회의[예를들면, 교구의회나 관구의회]가 어떠한 법률들을 제정하더라도, 이러한 법률들은 여러분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에게 구속력을 가질 수 없다는 점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2010년 8월 6일 #

이 토론 주제에 대한 RSS 피드

답글 »

글을 올리려면 로그인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