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 자유 토론

  1. Ely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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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http://www.guardian.co.uk/commentisfree/belief/2009/dec/07/religious-art-catholicism

    믿음에 빚진 예술

    메리 케니
    가디언
    2009년 12월 9일

    질문: 훌륭한 예술은 신 덕분에 가능했는가 ?

    저메인 그리어 (역주: 1939년생 호주 출신의 영문학자로, 저명한 여성이론가입니다. 좋은 도판 자료들이 많이 들어있는 2003년 예술사 책인 <The Beuatiful Boy> 는 <아름다운 소년 보이> 라는 제목으로 한국에서도 출간되었는데, 반응이 어땠는지는 모르겠네요, 교보문고에서 본 기억이 납니다만) 는, 자신이 회화에 대한 안목을 갖게 된 것은, 호주에서 천주교계 학교에 다니던 시절, 아일랜드 출신 수녀가 보여주었던 성화들을 통해서라고 종종 이야기하곤 했다.

    나 역시 더블린에서 천주교계 학교를 다녔는데, 비슷한 성화들을 많이 보았었다. 거기엔 라파엘, 레오나르도 다 빈치, 무리요, 그리고 베르니니 조각의 사진들이 있었다. 우리는 프라 안젤리코와 원근법에 대한 그의 작품에 특별한 관심이 있었고, 수태고지는 유럽 예술의 역사에서 가장 자주 그려진 주제라고 배웠다. 우리가 본 성화들은, 위대한 걸작들의 값싸고 자그마한 이탈리아산 복제품들이었지만, 내 기억에, 그것들은 아주 예쁘고 색깔이 선명했었다. 나중에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을 방문했을 때, 나는 익숙한 이미지들을, 성모와 아기 그리고 모성의 부드러움이 중심에 표현된 작품들을 많이 알아볼 수 있었다.

    실제로, 내가 아일랜드, 영국, 그리고 유럽 대륙의 많은 미술관들을 방문하게 되었을 때, 나는 유럽 예술의 자기 증명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볼 수 있었는데: 바로 성화들이었다. 학창시절의 수녀님들은 성모자상에 관심이 많았고, 그것을 구주 강생의 주제와 연결시켰지만 - 천주교는 대체로 구약에 약하다 - 그 밖에도 성경에는 유럽의 예술가들에게 상상을 불어넣어 준 이야기들이 아주 많이 있다. 나의 경우에는 성화들에서 시작해서 - 종종 그것들은 교훈적이고, 때로는, 특히 십자가 장면에서는 다소 처연하다 - 나중에는 가정 생활을 표현한 네덜란드 회화들이 내게 가장 잘 맞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다음으로는 19세기 서사 예술의 감상적인 허위를 좋아한다 (역주: 아마 19세기의 소설이나 극장 예술 작품들에 나오는 감상적 장면들을 얘기하는 듯 합니다. <라트라비아타> 의 비올레타나 <백조의 호수> 의 오데트 같은 경우들이 아닐까요)) . 그렇지만 이 모든 것들이 성화들에 대한 애호로부터 출발했다는 것은 아주 명백하다.

    천주교 - 그리고 확실히 라틴계 - 문화는 그림 중심인 데 반해, 개신교 - 그리고 북유럽 - 문화는 글 중심이라는 점은 자주 지적된다. 우리들의 시대에도, 라틴계 문화는 잡지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고 - <Hello!> 지가 스페인에서 발행된다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역주: 연예인의 가십 등이 많이 나오는 화보 중심의 잡지라네요) - 북유럽 사람들은 신문의 글을 더 선호한다; 개신교인들이 천주교의 성화보다는 성경 본문의 글을 더 좋아했듯이 (그리고, 우리는 정교회를 잊어서는 안된다: 러시아의 성당들은 그들의 소중한 아이콘들과 함께, 성경 주제들에 대한 강력한 그림들로 가득 차 있다) .

    현대의 매체들이 그림, 브랜드의 로고들과 함께, 그리고 공항을 가득 채우고 있는 신호와 표시들이 어느 나라 사람들에게나 이해되는 데서 보이듯이, 더욱 이미지 중심이 되어감에 따라, 남북 유럽 문화에 대한 종래의 분석은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 이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이야기가 된다. 많은 개신교 국가들에서도, 이를테면 네덜란드에서는 훌륭한 종교 회화 작품들이 나왔다.

    성화는 우리의 예술적 유산의 원천이자 묘판이다. 당신은 그리스도교적인 (그리고 유대적인) 전통에 지식이 없이 유럽 예술을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성경의 주제들은 초기 기독교 시대부터 계속, 많은 훌륭한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끼쳐, 그들의 상상력을 작동시키고, 그들에게 풀어나갈 이야기 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 물론, 메디치 가의 교황들과 같은 훌륭한 후원자들도 제공해 주었다 (교황이 부패하면 부패할수록, 일설에 의하면, 더욱 예술을 후원하였다) .

    기독교 세계, 유럽이 한 때 스스로를 그렇게 칭했던 대로, 에서 유럽 예술의 위대한 개화에 대하여, 한 가지 언급되어야 할 점이 있다. 예술가들 자신이 반드시 아주 경건한 기독교인인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들 자신보다 더 높은 존재가 있다는 당시의 일반적인 견해에 동의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가 아니다. 인간은 자신보다 더 좋은, 더 높은, 더 비범하고 기적적인 존재를 열망해야만 한다. 그러한 생각이 유럽의 위대한 성당들을 짓도록 하였고, 또 그에 어울리는 음악을 발전하게 하였다. 종교 예술이 모든 사람들의 취향에 맞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것은 유럽 예술의 현란한 성취의 출발점이 되었다.

    나는 현대 예술을 경멸하지 않는다: 누군가 로트코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는다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이가 벽돌더미에서 영감을 받는다고 해도, 역시 괜찮다 (그 느낌이 진실한 것인 한에서, 즉 단지 유행에 영합하는 것이 아닌 경우에) . 트레이시 에민의 흐트러진 침대 (역주: 여기를 참고하세요. http://en.wikipedia.org/wiki/My_Bed) 는 기발한 발상이라고 생각하며, 그 자신의 방식으로, 하나의 도덕적 우화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의 눈을 사로잡았던 성화들은, 다음 세 가지를 나에게 남겨 주었다. (1) 나는 예술의 아름다움이 주는 즐거움에 가장 잘 반응하게 되었다. 그것은 나를 전율하게 한다. (2) 나는 이야기적인 요소에 기뻐한다,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 (3) 현재의 자기 자신보다 더 높은 상태로 고양되는 느낌 역시 나를 전율하게 한다. 저메인 그리어가 옳았다: 우리 모두는 성화들에게 얼마간 예술적인 빚을 지고 있다.

    2010년 7월 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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