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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변증론자 이글턴" <이성, 신앙 그리고 혁명> 서평 « 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 자유 토론

번역: "변증론자 이글턴" <이성, 신앙 그리고 혁명> 서평

(
Deprecated: Function eregi() is deprecated in /home/skhcafe/liturgy/bb-includes/gettext.php on line 294
1)
  1. Elyot
    회원

    원문: http://www.guardian.co.uk/commentisfree/belief/2010/jan/08/religion-eagleton-atheism-progress

    변증론자 이글턴

    테오 홉슨1)
    가디언
    2010년 1월 9일

    나온지 거의 일년 정도나 지난 책에 대해 뒤늦게 언급하게 되어 안됐지만, 나는 테리 이글턴2) 의 <이성, 신앙 그리고 혁명> 을 최근에 읽어보게 되었다. 나는 이 책이 근래에 나온 가장 중요한 그리스도교 변증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 그 저자가 "그리스도인" 이라는 호칭을 기꺼이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다.

    이 책은 도킨스와 히친스3) 를 논박하고 있다; 그 안에는 합리성에 대한 편협한 부르주아적 해석, 그리고 신앙은 진보의 과정에서 계몽을 통해 무화되어 버렸다는 견해에 대한, 많은 논쟁적인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다 좋은 내용들이지만, 내가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혁명과 그리스도교에 대한 이글턴의 생각이었다.

    그는 물론, 하느님 나라에 대한 예수의 메시지, 즉 가난한 자에게 정의가 있다는 생각에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일반적인 마르크스주의적 견해에는 반대한다: 죽은 예수를 물신화하는 대신, 우리는 예수가 하고자 했으나 실패했던 바로 그 일을 해야 한다는 것 말이다. 대신, 그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신화가 결코 현실도피적 환상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예수의 "죽음과 저승에 내려감은 광란, 폭력, 몽매, 자아 포기로의 여행이다, 그토록 깊은 단절을 가져온 그 혁명이 우리의 우울한 삶의 조건에 해답을 줄 수만 있다면." 이러한 종류의 혁명은 일반적인 마르크스주의자라면 화를 내며 환영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해 버릴텐데, "우리의 우울한 삶의 조건" 은 정치적인 방식으로 개선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글턴에게 있어서, 원죄로 인한 타락이라는 관념은 부차적인 것이 아니다. 이 점은 뒤이어 그가 도킨스와 히친스를 다음과 같이 논박할 때 확인되는데, 그들은 "타락과 구원 같은 매우 유서깊은 관념들을 너무도 간단히 무시해 버린다.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아우슈비츠 이후에조차 구원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글턴에 의하면, 그들은 역사에 대한 이차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합리성의 증대를 통해 세상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것. 그들은 다음과 같은 거대하고 심오한 역설을 오만하게 윤색하고 있다: 진보는 근대성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그것은 불안정하며, 가장 나쁜 종류의 잘못으로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역사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견해는 기적의 개입에 근거하고 있지만, 어떤 점에서 그것은 합당한 이야기가 된다: "그리스도교 신학은, 진보라는 오만한 관념 없이도 역사가 변할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

    그는, 도킨스와 히친스의 주요한 맹점은, 진정한 인간주의4) 는 "비극적인" 면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거부한다는 데에 있다고 한다: "사회주의, 그리스도교, 정신분석학 등 다양한 종류가 있을 수 있지만, 비극적 인간주의는 자아 포기와 극단적 갱신의 과정을 통해서만 인간성은 그 본연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을 고수한다." 이는 다음과 같은 커다란 질문을 낳는다: 어떠한 종류의 "과정" 이 적절한가? 이따금 극장에서 비극을 감상하는 것으로 충분한가?5) 아니면 정신 상담을 받으면 되는가?6) 아니면 노동당에 투표하기?7) 아니면 타락과 구원에 대한 그리스도교 신화에 특별한 권위를 부여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종교의 개입이라는 권위적인 부작용 없이, 어떻게 그 그리스도교적 관념에 접근하거나 그것을 우리 마음 속에 자리잡게 할 수 있겠는가?

    이 책의 귀중한 덕목은 이글턴이 어떤 안정적인 포지션을 고수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대신, 비록 그 자신이 정확히 그리스도인인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리스도교 신화는 사회주의적인 철저함의 가장 훌륭한 형태를 밑받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을 그는 인정하고 있다. 유명한 지식인으로서, 그는 놀라울 정도로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고, 그 자신 아직도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을 겸손히 받아 들이고 있다, 마치 아직 학생이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이 책이 매우 신중하게 "속내를 드러내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가 자신이 마르크스주의보다는 그리스도교에 가깝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마르크스주의는 죄로 인한 타락이라는 관념을 받아들이지 못하기에 그러하다.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인간의 행위는 삶을 바르게 사는 것을 통해 신뢰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만이 이야기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구원" 이다. 이글턴은 분명히 이 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교에 공감하고 있다는 데 대해 왜 그토록 신중할까? 앞서 나는 그가 학생같다고 말했다, 좋은 의미에서, 아직 일종의 모색자처럼 보인다는 뜻으로. 그러나 아마 그는 학생을 닮았으되, 그리스도인이라는 라벨이 붙는 것이 너무도 쿨하지 못해서 견딜수 없어 하는 학생을 닮은 것 같다.

    역주

    1) 영국의 신학자. http://www.guardian.co.uk/global/2007/jun/03/theohobson
    2)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문예비평가. http://en.wikipedia.org/wiki/Terry_Eagleton
    3) 리처드 도킨스는 <만들어진 신> 등을 통해,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신은 위대하지 않다> 등을 통해, 최근 몇년간 무신론 논쟁을 주도해 왔다.
    4) 여기서의 "humanism" 은 도킨스와 히친스가 말하고 있는 것이므로, 그들의 무신론적 입장을 반영하여 "인본주의" 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리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본문에서의 "humanism" 은 뒤에 보듯이 그리스도교까지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므로, "신본주의" 의 대립어로 설정되어 있는 "인본주의" 에 대한 관습적 이해 때문에 적절하지 않은 선택이 된다. "인도주의" 는 인본에 근거하여 박애로까지 나아갔을 때에 쓰기에 적합한 말, 즉 "humanitarianism" 에 가까운 말인 것 같다. "인문주의" 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고전학자들을 언급할 때에 가장 적합한 말이며, 다른 경우에는 반드시 인문 "학" 과의 관련을 전제하는 듯 보이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인간주의" 라고 하면, 인간의 무엇에 대한 주의를 말하는 것인지 얼른 감이 잡히지 않지만, 다른 단어들이 갖는 오해의 가능성들 때문에, 가장 중립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다. 여기서는, "인간의 인간으로서의 성숙 또는 완성을 지향하는 모든 종류의 생각 내지는 활동" 을 의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그냥 "휴머니즘" 이라고 한국어로 쓰는 것이 더 나은지도 모르겠다.
    5) 고대 그리스인들처럼 극장에서 비극을 감상하여 카타르시스를 통해 감정을 순화하면, 이것이 종교와 같은 효과를 갖겠는가?
    6) 종교라는 중세적인 방식이 아니라, 정신 상담이라는 근대적이고 과학적인 대안을 선택하면 되겠는가?
    7) 그냥, 정치적으로 보다 평등을 지향하고 인도주의적인 선택을 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2010년 7월 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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