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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지면 논쟁 연재] 성경은 동성애에 반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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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Elyot
    회원

    Is the Bible anti-gay?

    Is there justification in scripture for the row that is splitting the Anglican Communion apart?

    guardian.co.uk, Monday 14 December 2009 09.00 GMT

    As the Anglican Communion lurches deeper into schism, with one part electing partnered gay people as bishops, while another urges that they be hanged, both sides claim the Bible is on their side. So what does it say, and can it reasonably be read as urging tolerance? These questions have, admittedly, been ground almost to death in the last 20 years. But there are still people for whom they come as a surprise: what should they be told?

    Monday's response

    Theo Hobson: It's anachronistic to call ancient Israelite culture anti-gay. In any case, Christians must keep their moral thinking mobile

    Wednesday's response

    Davis Mac-Iyalla: The prejudice against gay people among conservative Christians is a cultural attitude not reflected in Jesus' teachings

    Thursday's response

    John Richardson: The short answer is that the Bible is anti-gay. But this doesn't necessarily mean what we take it to

    Friday's response

    Judith Maltby: The Bible can be read in many different ways. The church's confusion about sexuality has its roots elsewhere

    2010년 7월 9일 #
  2. Elyot
    회원

    원문: http://www.guardian.co.uk/commentisfree/belief/2009/dec/14/bible-homosexuality-gay-rights-morality

    우리가 말하는 동성애는 성경에 나오는 동성애가 아니다

    고대 이스라엘 문화가 반-게이적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시대를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그리스도인이라면 도덕적 사고를 열어 놓아야 한다

    테오 홉슨
    2009년 12월 14일 월요일

    질문: 성경은 동성애에 반대하는가?

    동성애는 미스테리하다: 우리는 그게 무엇인지 사실 잘 모른다. 피부색처럼 그것을 유전자에 내재한 것으로 보는 견해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만, 논리적으로는 성립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성애자도 동성애적 욕망을 경험하거나, 적극적으로 동성애적인 시기를 거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성적 정향의 형성에 있어 후천적 요인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도 충분히 명백하며, 동성애라는 우리의 개념 자체가 문화적으로 정의되어 있기 때문이다.

    동성애라는 개념은 상당히 최근에 발명된 것이다. 우리들의 상식에서, 한 젊은이는 그 또는 그녀가 다른 이들과 다르다는 점을 깨닫게 되고, 그 또는 그녀가 이 남다른 정체성에 속한다는 것을 천명하게 된다. 커밍 아웃이란 하나의 선언과 같다: 이것은 단지 거쳐가는 시기가 아니며, 나는 누구라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이 정체성에 소속된다.

    동성애를 하나의 고정된 정체성으로서 강변하는 것, 한 사람이 자신의 영혼 안에서 발견하여 거기에 고착되는 것, 우리보다 앞선 모든 문화들에서는 이것을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동성애는, 마치 축구에 열중하거나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는 일처럼, 단지 잠시 거쳐가는 것에 불과했다. 성적 정향에 대한 생각은 더 자유로웠다. 우리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자유로운 문화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어하지만, 실제로 우리의 동성애에 대한 상식은 다른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우리는 동성애가, 이것 아니면 저것 을 선택해야 하는 정체성의 범주에 가두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정체성으로서의 동성애" 를 관용하려고 노력해왔다. 대신, 일시적인 동성애 또는 양성애도 있는 것인데, 이는 아마 현재의 주된 성 질서에 더욱 위협이 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변화는 상당히 근래에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고대의 이스라엘 문화가 "반-게이적" 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별로 말이 되지 않는다. 동시에, 고대의 그리스 문화가 친-게이적이었다고 말하는 것또한 말이 되지 않는다. 양쪽 문화 모두, 동성애가 무엇이라는 데 대한 우리의 관념을 공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이들 두 문화는, 둘 중 하나가 오늘날의 우리 자신과 더 닮았다기보다는, 둘 서로 사이에 훨씬 더 많이 닮아있다. 둘 다 동성애를 하나의 행동 형태로 보고 있지, 내재적인 정체성으로 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고대 유태인에게, 그것은 역겨운 자기 탐닉의 행동이었고, 이교도의 난잡과 불가분의 것이었으며, 신성한 혼인 관계를 더럽히는 짓이었다. 그리스 시민에게 있어서, 그것은 별 대단찮은 것이었으며; 단지 (남성) 인간 욕망의 한 측면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정말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성경이 동성애적 행위를 비난하고 있는 데 대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 것인가? 이러한 비난을 단순히 반복하며, 그것이 아직도 유효하다고 말하는 것은 타당한가? 그렇지 않다, 두 가지 이유에서. 첫째, 동성애의 의미는 변화했다. 동성애에 대한 오늘날의 상식에서, 한 게이 인격은 스트레잇 인격과 마찬가지로 안정적인 일대일 관계를 추구한다. 게이의 성이 결혼과 무관한 탐닉의 한 형태라는 성경의 생각은, 이제는 통하지 않는다.

    둘째,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성경에 나오는 규율을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할례나 음식 규정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성 바울은, 우리는 하느님의 의지와 종교적 규칙 사이의 관계를 부수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것에 맞추어 도덕을 형성해야 하며, 사랑과 자유를 첫째로 놓아야 한다. 그런데, 성 바울이 명백히 게이의 성을 비난하지 않았냐고? 맞다, 그러나 그것은, 게이의 성이 쾌락주의와 불가분의 것이라는 성경의 일반적인 입장을 그 또한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성애를 비난하기 위해 바울을 인용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의 가장 중요한 메세지를 잡는 데는 실패해 왔다: 신성한 율법은 이제 죽었다는 것.

    따라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맞다, 성경은 동성애적 행위를 비난하며, 도덕적 질서를 위협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신약은 또한 다른 것 역시 비난한다: 신성한 도덕주의. 신약은 반-율법적 혁명을 선언한다. 신약은 우리가 도덕적 사고를 바뀔 수 것으로, 막히지 않은 것으로 열어 놓도록 주문한다. 성경은 그 자신의 성적 도덕주의에 대한 해체의 씨앗을 또한 뿌리고 있는 것이다.

    2010년 7월 9일 #
  3. Elyot
    회원

    원문: http://www.guardian.co.uk/commentisfree/belief/2009/dec/16/gay-christian-bible

    좋은 책의 끔찍한 사용

    보수적 그리스도인들의 동성애자들에 대한 편견은 문화적 태도일 뿐 예수의 가르침을 반영한 것은 아니다

    데이비스 맥키알라
    2009년 12월 16일 수요일

    질문: 성경은 동성애에 반대하는가?

    아니다, 성경은 동성애에 반대하지 않는다. 예수는 어느 누구도 그들의 성적 정향 때문에 외면하지 않았고, 나는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예수가 말한대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다양한 전통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수많은 세기에 걸쳐 성경을 해석해 왔다. 아프리카인들은 그들만의 성경 이해 방식이 있고, 이는 영국에서의 대다수의 것과는 같지 않다. 이 점 때문에 나는 아프리카인들은 이해 능력이 떨어지는 것 아닌가라는 의문을 갖기도 하는데, 나는 감히 말하겠다. 게이, 레즈비언,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들 (LGBT) 에 대한 혐오는, 문화적 차이에 따른 것이다.

    왜 엘지비티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그리고 아프리카의 어느 사회에서든 잘 용인되지 못하는가? 이성애자들은 용인되기를 바랄 필요가 없다. 게이인 우리는 그들 옆에서 그리고 신 앞에서 잘 살아가는데, 왜 그들은 똑같이 내 옆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없는지 나는 의문이다. 만약, 우리가 엘지비티 사람들이 기준이고 이성애자는 두려움이나 혐오의 대상이 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성애자들은, 박해, 학대, 살해의 위협 때문에 자신들의 성적 정체성을 감추어야 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상상할 수 있을까?

    그것이 서구로부터 들어온 것이라는 반복된 주장에도 불구하고, 동성애는 노예선과 그리스도교 선교사의 도래 이전부터 아프리카에 존재해 왔다. 그리스도교가 들어오고, 나의 조상들에게 그리스도교와 더불어 문화의 변화가 강요되고, 서구식의 도덕과 윤리적 가치가 부과되고, 동성애 관계는 금기라는 생각이 소개되기 전에도, 하느님과 믿음 역시 존재하고 있었다.

    성경에는 노예제도를 뒷받침하는 데 쓰일 수 있는 구절들이 있다. 다른 구절들은 우리가 더 이상 금기나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는 행위들에 대하여 오래된 방식의 처벌을 주장한다. 몇몇 보수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모순되는 구절들을 일치시켜서, 성경을 문자대로 읽는 일에 열중해 있다. 그들은 창세기, 레위기, 그리고 성 바울을 읽고 나서, 어떠한 형태의 동성애적 행위도 하느님은 심판하시고 야단치실 것이라는 근거로 특정한 구절들을 제시한다. 이러한 독해의 바탕 위에서, 우간다같은 나라에서는 동성애자들에 대해 종신형이나 사형을 도입하려 하고 있다. 성경같은 좋은 책을 그러한 끔찍한 무기로 사용하는 사람 앞에서, 분열이나 이단은 비교 거리도 되지 않는다. 그것은 신에 대한 가장 큰 모독일 것이다.

    2010년 7월 9일 #
  4. Elyot
    회원

    원문: http://www.guardian.co.uk/commentisfree/belief/2009/dec/17/bible-homosexuality-jesus

    회피하는 대답들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짧게 말해, 성경은 동성애에 반대한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것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존 리차드슨
    2009년 12월 17일

    질문: 성경은 동성애에 반대하는가?

    성경은 동성애에 반대하는가? 짧게 대답하면 "그렇다." 테오 홉슨은 그것이 우리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훌륭하게 논했지만, 데이비스 맥키알라는 예수의 메시지를 구약의 한 구절 (레위기 19:18) 로 요약하고자 했지만, 이러한 대단히 현대적인 질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성경은 동성애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이러한 대답들이 분명히 무언가를 회피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성경이 동성애를 반대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가 말하려는 것 그 자체인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마치, 한 율사가 예수에게 "구원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라고 묻고, 가장 큰 계명을 지키라고 대답을 들었다는 이야기와 같다. 그 대답은 옳은 말이지만, 더 큰 진실은 이러한 질문의 형식 밖에 놓여 있다. 뒤에 이어지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역시, 남을 도와야 한다는 지당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질문한 사람의 세계관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에 대한 성경의 관점은 무엇인가. 창세기 1장 27절에는 하느님이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빚으시고 ... 남성과 여성으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고 나와 있다. 하느님와 인간의 성은 한 문장에서 결합된다. 이에 대한 우리의 해석은, 성경을 일관성 있는 전체로 볼 것인가, 또는 그다지 긴밀히 관련되어 있지 않은 신성에 대한 "사색" 의 나열로 볼 것인가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후자라면, 이 이야기는 외따로 떨어진 수수께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떠한 문제에 대해서든 "성경의 관점" 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여기서 하나의 주제가 시작되는 것을 볼 것이다. 이후 이 주제는 더욱 발전되고 명확해져, 이윽고 성경이 하나의 계시로서 열어보이게 될 것이다.

    성경에서는 너무 자주, 인간의 결혼과 성이 그 최악의 모습으로 묘사되곤 한다 - 그런 예는 무수히 많다. 반면, 전체적으로 보면, 하느님이 인간과 맺는 관계는 결혼의 언어를 빌어 묘사되고 있다. 따라서, 성경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결혼을 이야기하면서 끝을 맺는다: "나는 성스러운 도시, 새로운 예루살렘이 하느님으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신부로 단장하여 남편을 위해 아름답게 차려 입고서." (요한 계시록 21:2) 여기서 하느님은 위대한 신랑이시다.

    그러나 이것은, 하느님의 사랑이 어떤 점에서 신랑의 그것과 같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결혼이 우리와 하느님과의 관계로부터 유출된다. 그것은 단지 "이미지" 이다,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이미지인 것처럼. 그러므로, 진정한 영성에 대한 위협이 되기는 커녕, 성은 구원에 대한 하나의 통찰을 제시하며, 이것이 인간의 경험에 있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아가서는 뛰어난 성경적 묘사를 통해 잘 보여준다.

    그러나, 데이비스 맥키알라가 옳게 본대로, 예수는 성경 전체에 있어서 해석적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그는 또한 가장 강한 어조로, 결혼의 신성한 "모델" 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평생을 함께 하는 계약을 맺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밝혀 두었다.

    이 테두리를 벗어난 성의 모든 방식들은, 많거나 적거나 간에, 하느님의 품성을 반영하고자 하는 이상에서는 벗어난 것일 수 밖에 없다. 어떤 경우들은, 예수가 말한대로, 단지 그들의 믿음이 부족한 탓이므로 용인되었다. 또 어떤 경우들은 단호하게 금지되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성에 대한 성경의 입장은 성경이 반대하고 있는 행동들의 목록을 통해 정의될 수 없다. 오히려 우리는, 하느님의 본성과 그분이 피조물과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 위에서, 그것을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2010년 7월 11일 #
  5. Elyot
    회원

    http://www.guardian.co.uk/commentisfree/belief/2009/dec/18/bible-christianity-religion-gay?intcmp=239

    성경과는 별 상관이 없다

    성경은 여러가지 다른 방식으로 읽힐 수 있다. 성에 대한 교회의 혼동은 다른 곳에 그 뿌리가 있다.

    쥬디스 몰트비
    2009년 12월 18일 금요일

    성경은 동성애에 반대하는가? 그렇다, 성경은 동성애에 반대하기도 하지만, 어린이 체벌, 사형, 노예제도에 찬성하기도 한다. 이 질문은 그 자체로서보다는, 그보다 훨씬 중요한 "우리는 어떻게 성경을 읽는가" 라는 문제를 지적하고 있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두 가지 요점을 들어 얘기해 보자.

    첫번째는, 불편한 진실인데, 우리는 모두 성경을 선택적으로 읽는다는 점이다. 모두가 그렇게 한다, 가장 극단적인 자유주의자들로부터 가장 극단적인 근본주의자들까지. 우리는 모두 선택을 하고 (항상 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성경에서 어떤 구절, 어떤 단락, 어떤 서 (書) 를 다른 부분들보다 더 권위있다고 여긴다. 이러한 선택들은 개인적이기도 하고 공동체적이기도 하다. 내게, 예수의 비유들은 신약에서 가장 도전적이고 관심가는 부분이며, 내가 가장 자주 그리로 돌아오게 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는 내 경우일 뿐이다 - 나는 모두가 그런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내 희망으로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는 예수의 가르침을, 남자가 머리를 기르는 것은 "자신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일이라는 바울의 고집보다 우선적으로 여길 것이다. 성경을 "균형있게" 읽는다는 것은, 읽되 성경에 합당한 존중감을 가지고 읽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을 어떻게 읽는가에 대한 두번째 요점은, 우리는 그것을 언제나 맥락을 고려하며 읽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적인 상황, 우리가 처한 시간과 장소, 우리 자신이 인간이라는 조건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며, 이는 1-2세기의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스도인들이 노예제도에 기반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러한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진 자연적 질서의 일부로 보였던 것이 - 성경을 읽음으로써 보증되었던 시각 - 내가 옳게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은데, 지금은 보편적으로 비난받는 것이 되었다. 그러나 18세기와 19세기에, 그리스도인들은 노예제도의 도덕성에 대한 격한 논쟁을 벌였으며, 성경은 노예주와 노예폐지론자에게 똑같이 영감을 제공해 주었다.

    어떤 이들은 노예제도가 너무 극단적인 예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좀더 온건한 예를 들어 보자. 어떤 한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됨과 동시에 군대에 복무할 수 있는가, 즉 평화주의의 지점에 서라는 복음의 권고에 복종할 수 있는가? "다른 뺨을 돌려 대라" 는 예수의 가르침은, 권력자들이 "헛되이 칼을 차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라는 바울의 시각을 극복하는가? 명백히, 대부분의 교회 역사 가운데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바울 쪽의 입장에 있었다. 영국 성공회의 39개 조항은 평화주의에 반대하며 사형을 지지한다. 나는 성공회 사제로서 내 교회 안에 있는 평화주의적 전통을 높게 평가하며, 동시에 힘의 사용은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고도 믿는다. 나는 사형을 분명히 반대하지만, 동시에 나의 입장은 내 교회가 그 역사의 대부분 시간동안 견지해온 전통적 가르침과 반대된다는 점을 인정하며, 성경은 양쪽 중 어느 입장을 옹호하기 위해서도 쓰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내가 사랑하는 교회는, 정당한 전쟁의 도덕성을 믿는 사람들도 평화주의자들의 도덕적 일관성도 함께 안을 수 있다. 동시에 우리는, 사랑과 헌신의 관계에 있는 게이 그리스도인들은 도덕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함께 안을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 사실 이것은 인간의 생명을 앗아가는 문제와 관련된 불일치보다 더 중요한 분열이다. 나는 성 문제와 관련하여 지구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성공회의 사이코드라마가, 성경과 과연 얼마나 상관이 있는지 의문이다.

    2010년 7월 25일 #
  6. Cranmerian
    회원

    잘 읽었습니다. 제게는 이 주제가 혼돈스럽지만, 도움은 되었습니다.
    번역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2010년 7월 27일 #
  7. Elyot
    회원

    감사합니다. 저도 요즘 이것저것 읽고 알아 가면서, 명쾌해지기보다는 갈수록 혼돈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입니다.

    2010년 7월 29일 #
  8. Eolyot / 수고로운 번역에 기대어, 많은 이들이 논쟁적인 사안에 대한 이해를 넓혔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수고에 고마운 인사를 드립니다.

    이런 논의를 통해서 무지에 따른 편견에서 벗어나 "혼돈"으로 들어서는 일은 오히려 좋은 일이라고 봅니다. 편견이 '명쾌'와 동의어로 남아 있는 한, 좀 더 깊은 차원의 '명쾌'한 이해는 요원한 일이니까요.

    한편, 이 짧은 지상 논쟁으로 문제되는 현안인 '동성애와 성서'를 다 풀이할 수 없지만, 논의의 흐름은 드러난다고 하겠습니다. 이것이 '지면 논쟁'이니 어떻게 논의가 진행되는지, 제대로 비판하거나 반박하고 있는지, 그 근거들이 분명한 지를 살피면, 논쟁을 통해서 배울 점이 많을 것입니다.

    어쨌든 흥미로운 점 하나는 이 네 편의 글로만 제한해서 본다면, 성서를 통해서 '현재의' 동성애를 반박할 수 있는 근거는 별로 없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존 리차드슨의 글은 어이 없게도 스스로 '문제를 회피하는 글'이 되었고, 근거나 논리에서 가장 위약한 글이 되었습니다.

    "Tradition is living faith of the dead, Traditionalism is dead faith of the living."
    2010년 7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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