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트위터를 이용하는데, 우리 성공회 신부님들을 가끔 뵙니다. 그분들 가운데, 원주 교회(대전교구)에 계신 국충국 신부님께서 "Healing Eucharist"에 대한 궁금증과 고민을 던져 주셨습니다. 그 이후 오간 대화를 잠시 여기에 옮겨 놓고, 이에 대한 대화의 장을 마련하려고 몇 마디 보탭니다. 참여와 대화 부탁합니다.
차례
트위터 대화의 내용
요약
의미의 확장
전례 색깔
성찬례에서 위치
안수하는 방법
도유하는 방법
안수와 도유 이후
성찬의 전례와 영성체
트위터 대화의 내용 (주: 트위터의 성격 상 대화가 곧바로 대응하지 않으니, 맥락을 따라 읽으셨으면 합니다.)
cookcg (국충국 신부)
Healing Eucharist 가 뭔가요? 치유 은사집회 같은 것인가요? 다른 나라 교회를 보니, 일 주일에 한 번은 Healing Eucharist 가 있던데, 궁금합니다. 치유기도를 포함한 미사? 도유? 혹은 안수?
주중에 한 번이나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모든 미사 참여자에게 안수기도를 통한 치유와 회복의 경험을 함께 나눌 수 있는 service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품식때만 할 것이 아니라...
(8:42 AM Jun 8th)
viamedia (주낙현 신부)
@cookcg 교단/공동체 맥락에 따라 그 이해가 달라질 겁니다. '치유'에 대한 이해가 다르니까요. 성공회(미국)의 경우 주중에 치유 기도 예배나 미사를 드립니다. 한국에서 언뜻 떠오르는 '치유예배'와는 전혀 다릅니다.
@cookcg 좋은 시도라 생각합니다. 설교(신경-생략 가능, 신자들의 기도) 후, 평화의 인사 전에 초대하여 이마에 기름을 바르며 안수하고 기도하는 것이 통례입니다. 함께 한 신자들도 모여 어깨에 손을 얹으며 참여하면 좋을 것입니다.
(3:43 PM Jun 8th)
cookcg (국충국 신부)
@viamedia 일전에 말씀드렸던 치유성찬례가 수요일 저녁에 있을 예정입니다. 특정문은 예식문에 있고, 병자치유 축복문은 '축복기도서'(윤바우로주교님)를 이용할 계획입니다. 제의 색깔은 어떤 것이 좋을까요?
@viamedia 치유성찬례는 그것에 맞게 죄의 고백 부분이 좀 더 강조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 공도문의 예비기도 부분에 있는 사제와 신자가 서로 주고받는 사죄기도가 적당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5:22 AM Jul 26th)
viamedia (주낙현 신부)
@cookcg 1. 성찬례 맥락에 두신다면 "치유 예식과 성찬례" 혹은 그와 비슷한 표기가 더 나을듯 하고요. '병자 치유'라고 부가 해석된 번역 제목을 피하고 '치유'라는 말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cf. BOS 1994.
@cookcg 2. 한편, 전례 색깔은 통상 해당 절기에 따릅니다. 치유를 '조병성사'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의 맥락에 종속시키지 않고 '일상'에서 좀 더 넓게 볼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필요에 따라 참회를 부각시킨다면, 자색을 쓸 수도 있겠습니다.
@cookcg 3. 참회 예절은 필요에 따라서(사목자의 결정), 혹은 신자들의 요구에 따라서 사용할 수도 있겠으니, '예비기도'(1965)의 사용도 그 맥락에서 쓰기에 좋다고 생각합니다(현대 어투로 고치는 일 필요).
@cookcg 4. 한편, 좀 더 배려할 부분은 '안수하며 기름을 바르는 일'입니다(위치는 설교와 평화의 인사 사이). 사제뿐만 아니라 참여자 모두를 초대하여 어깨에 손을 얹고 안수 기도에 참여토록 하고, 향이 좋은 기름을 쓰길 바랍니다.
@cookcg 이후, 이 치유 예식에 대해 신부님의 생각과 준비 과정, 그 첫 시도와 실제를 [전례 포럼]에서 나누어 주셨으면 합니다. 많은 분들이 큰 배움을 얻을 것입니다. 저도 거기서 좀 더 자세한 내용을 덧붙이겠습니다.
(Mon Jul 26 2010 12:33:54 (PDT) )
요약
위 내용을 다시 정리하고, 대화를 위한 논의 점을 제공하기 위하여 몇 마디 덧붙입니다.
치유 예식과 함께 하는 성찬례: 외국의 여러 성공회에는 이른바 "치유 예배"가 널리 퍼져 있습니다. 대체로 주중의 미사(성찬례)를 이 '치유'의 주제로 정례화한 것입니다.
성공회의 '치유 예식'은 대체로 성찬례 맥락 안에 자리 잡고, 안수(머리에 손을 얹어 기도하는 행동)와 도유(기름을 붓거나 바르며 축복하는 행동)를 합니다. 도유가 성직 서품 성사나 조병 성사에만 제한되어버린 역사적 경험이 있으나, 다시금 다른 성사(세례/견진)와 더불어 치유 예배의 맥락에서도 쓰이는 일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좋은 전통의 바른 회복이라 할 만합니다.
한국 성공회 기도서(2004)의 '조병 예식'은 전통적인 '조병 성사'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아서, 치유 예배로 곧바로 적용하기에 불편한 점이 있지만, 부분적으로 생략하고 상황의 필요에 따라 부가하여 치유 예배를 구성하는 내용으로 쓸 수 있습니다.
국충국 신부님께서는 대전교구에서 성공회 출판부를 통해 출판한 [축복 기도서](1999)의 '공기도 때의 병자 치유 축복'(92-99쪽)을 바탕으로 하고, 공도문(1965년) 미사 예비기도의 내용을 '참회 예절'로 부가하여, 치유 예식이 있는 성찬례를 구성하셔서 신자들과 함께 하겠다는 생각을 나눠 주셨습니다. 좋은 기획이요,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축복 기도서]는 대체로 미국 성공회 [사목 예식서](BOS, 1994)의 번역판입니다.
의미의 확장
기존의 '조병 성사'라는 전통적인 이해에서 구체적인 질병을 위해서만 하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고 봅니다(이런 제한은 전형적인 서방 교회의 영향입니다. 동방 교회는 이런 제한을 거의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치유'는 육신의 질병뿐만 아니라, 마음의 고뇌, 생각의 혼란 등과 같은 심적인 무게를 함께 나누고, 하느님의 어루만지시며 고치시는 손길을 경험하는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치유 예식을 일상화하고 정례화하는 일은 의미가 큽니다. 안수와 도유도 이렇게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확대되면 좋을 것입니다.
전례 색깔
통상 해당 절기를 따릅니다. 치유는 일상적인 삶에서 지속되는 문제이니, 일상적 전례력(교회력)의 색깔을 바꿔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참회 예절을 통해서, 참회의 의미를 좀 더 부각하는 것이라면, 자색을 써도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cf. 공도문, 1965).
성찬례에서 위치
치유 예식을 독립적인 예배로 사용할 수 있으나, 성찬례의 맥락에서 사용한다면(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설교 뒤(신경과 신자들의 기도 생략 가능)에 두고, 끝나면 곧바로 평화의 인사로 넘어가면 좋을 것입니다.
안수하는 방법
집전(집례) 사제는 안수를 받고자 하는 이를 초대하여, 그의 이름을 부르며(친밀감)을 머리에 손을 얹어 기도합니다. 이때, 사제만 여기에 참여할 것이 아니라, 해당 전례 혹은 예배에 참여한 모든 이들을 제대 앞으로 초대하여, 안수받는 이의 어깨에 손을 얹어 그를 위한 기도와 축복에 참여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성직 서품식의 안수와 같은 형태). 치유 예배의 성사적 특징 가운데 중요한 한 차원은 '손이 닿아 어루만지는 일'입니다. 공동체의 손길을 통해서, 하느님의 치유의 힘이 전해지니, 우리는 그 안에서 모두 '성사'를 이룹니다.
도유하는 방법
안수가 끝나면, 바로 이마에 기름을 바르거나, 머리에 부어서(기름이 귀하니 쉽지 않지요) 도유를 할 수 있습니다. 이때, 좋은 향기가 나는 기름을 썼으면 합니다. 성유는 원래 구별이 없었으나 그 사용례에서 세 가지로 분리되었습니다(특히 서방 교회 전통에서). 게다가 조병성사에서 쓰는 성유는 향을 넣지 않는 관습이 퍼졌는데, 아마도 병자를 위한 배려였으리라 생각하나, 지금은 따를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오히려, 성유의 좋은 향이 도유받은 이에게 남아 넘쳐서 '그리스도의 향기'로 남는 성사가 되었으면 합니다. 특히, 치유 예식을 위한 성유는 사제가 축복하여 쓰는 오랜 전통이 있었으니, 참조할 만합니다.
안수와 도유 이후
치유 예식이 끝나고 성찬례로 이어진다면, 그 모인 자리에서 곧바로 평화의 인사를 나누면 좋을 것입니다.
성찬의 전례와 영성체
성찬의 전례에서는 성찬기도 4양식(기도서 2004)을 쓰는 것이 적절할 것입니다. 영성체를 할 때는, 안수와 도유를 받은 이를 먼저 초대하여 영성체를 하도록 배려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영성체 후 기도는 그 '치유'의 맥락에서 마련된 기도를 함께 하고, 축복 기도도 그 맥락에서 선택하면 좋을 것입니다.
여기저기서 경험하고 고민하던 바를, 국 신부님의 시도에 자극을 받아 적어 보았습니다. 좀 더 다양한 대화와 경험을 통해서, 치유하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더욱 깊이 경험하고, 신자들을 도울 수 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