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 설교 자료

  1. 연중 26주일

    제 1독서: 아모 6:1a, 4-7

    지난 주 구약성서 본문이 사회의 불의에 관한 문제를 다루었다면, 오늘 본문은 개인적인 사치를 물리치라고 말한다. 이 내용은 오늘 복음의 "부자와 라자로" 비유 이야기에 잘 맞는다.

    제 2독서: 1디모 6:11-16 RCL:1디모 6:6-19

    디모테오전서 6장에서 뽑은 이 본문은 성직 서품(안수)에 관한 권고로 해석되었다(E.케제만). 이 권고의 말씀 속에서 성직 후보자는 세례를 받을 때 했던 신앙 고백을 되새긴다. 성직자는 이 신앙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야 하다. 이것은 성직 서품과 세례 사이에 놓은 중요한 관계를 제시한다. 성직 서품이란, 세례의 소명을 누군가를 위해 펼치려고 취하게 되는 형식이다. "십계명"도 실제로 이런 성직 서품의 권고였을 것이다 (모세가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세우며 전하는 권고를 보라: 민수 27:19-21). 이 구약성서의 유형은 이후 유대교 회당과 초대 교회(히폴리투스의 [사도전승]에 있는 서품식 내용을 보라)에 성직 서품의 한 모본이 되었다.

    RCL 전반부에 6-10절을 더하고, 17-19절을 후반부에 덧붙였다. 이 구절들은 사목자들이 신자들에게 부의 위험성들을 경고하도록 한다. 10절은 돈을 좋아하는 것 자체가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돈을 좋아하다 보면 이를 둘러싸고 악한 것들이 이런 저런 모양으로 드러나게 된다는 뜻이다.

    복음: 루가 16:19-31

    부자와 라자로 비유의 첫부분은 아주 잘 알려진 이야기로, 저승에 가서는 모든 위치가 뒤바뀐다는 것이다. 이 구절로만 보면 도덕적인 훈계로 끝나고 만다. 그러나 복음의 비유 이야기는 마지막 부분에서 우리를 놀라게 하곤 한다. 부자와 아브라함의 대화가 그것이다. 바로 여기에 오늘 비유의 핵심 주제가 놓여 있다. 부자는 라자로를 통해서 아직 살아있는 자신의 다섯 형제들에게 특별한 경고를 전해줄 수 있게 해달라고 청원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대답은 이미 이들이 성서의 말씀을 갖고 있으며 그것으로 족하다는 것이다. 성서의 말씀을 통해서도 움직이지 않을 사람은 부활과 같은 기적으로도 마음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주님께서 비유 이야기를 하신 핵심이였으리라.

    부정직한 청지기 비유 뒤에 재산의 올바른 사용에 대한 담화를 전달한 뒤에 오늘 비유 이야기가 나온다. 이로써 루가 기자(그리고 성서정과의 편집자들)는 오늘 비유 첫부분을 조심스럽게 다룰 것을 제안한다. 저승에서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위치가 뒤바뀌는 운명에만 집중해서는 안된다. 자칫 잘 알려진 비유때문에 아브라함의 품 안에서 노니는 저승 교리를 만들어서는 안된다.

    설교

    특별한 상황(성직 서품식을 갖는 교구의 경우)에서는 제 2독서의 말씀이 제시하는 바대로 성직 서품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세대를 넘어서 계속 이어져오는 사도적 전통은 사도적 계승 안에 있는 주교가 손을 얹어 안수하는 상직적 행위를 통해서 잘 드러나고 있다. 구약성서와 복음서 본문을 갖고서는 부의 책임있는 사용이라는 지난 주일의 주제를 계속할 수 있겠다.

    "Tradition is living faith of the dead, Traditionalism is dead faith of the living."
    2007년 9월 25일 #
  2. 입당성가 367장 주 야훼 하느님
    히브리 노래는 단조로 어두운 느낌을 주면서도 장엄하거나 경쾌한 것이 특징이다. 음의 진행이 가사의 내용처럼 수직적이고 상승하는 느낌을 주는 곡으로 입당성가로 적당하다.

    층계성가 513장 주님의 본을 따라
    WCC(세계교회협의회) 서울대회(일명 JPIC-정의평화창조질서의보전 대회라고 불림) 에서 채택된 곡이다. 형제와 이웃을 위해 마음을 열고 나눔의 삶을 살자고 노래하고 있다.

    봉헌성가 510장 저 북방 얼음산과
    원곡에는 그린란드 얼음산, 인도의 산호섬, 아프리카의 금모래 등을 언급하며 선교에 대한 비전과 참여를 촉구하는 곡이다. '온 몸과 재산들여 복음전하자'라는 가사가 복음을 위한 그리스도인의 헌신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파송성가 473장 만민의 어진 아버지
    J.G.Whittier 휘티어는 19세기 중엽 미국의 시인이다. 퀘이커 교도의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남북전쟁 이전부터 열렬한 노예해방논지를 펴는 등 평화와 인권을 사랑한 시인이다.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 나타나는 주제를 잘 담고 있는 곡이다. 곡조도 4박자의 곡으로 흥겨우면서도 낮게 깔리는 부분에서 감동을 주는 곡이다.

    ps. 글 올리기를 눌렀는데 그만... 로그인 시간이 너무 오래된 모양인지 그대로 로그아웃되고 썼던 글을 날아가 버렸습니다. ㅠㅠ 두번째 글을 쓰니 짧아지네요. ^^; 앞으로는 글 올리기 전에 꼭 저장을 해야겠습니다.

    2007년 9월 2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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