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 설교 자료

태그:

  1. 연중 27주일 - 다해

    제 1독서: 하바 1:2-3, 2:2-4 RCL: 하바 1:1-4, 2:1-4

    RCL 본문은 이 예언서의 제목(1:1)과 독서 두번째 부분의 도입부(2:1)를 포함하고 있어서, 하바꾹 예언자가 응답하고 있는 문제를 잘 드러낸다.

    이 구절들은 세 부분으로 이뤄진 하바꾹서의 요점을 제공한다. 첫째로, 예언자는 자신과 자기 백성이 외국의 정복자들 치하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불의의 상황에 대해 도전하며 울부짖는다: 야훼 하느님께서는 언제까지 이 상황을 내버려 두시렵니까? 그런 다음 응답이 나온다: 야훼 하느님께서는 이 상황에 개입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하느님께서 결정하신다. 조만간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꼭 일어날 것이다. 한편 야훼의 종들이 지녀야 할 태도가 있다. 예언자는 이를 “신실함”(신앙)이라고 부른다. “의로운 사람은 그 신실함(신앙)으로 살리라”는 것이다. 여기서 “신실함”(신앙)(emunah)이라고 번역된 말의 뜻은 변함없는 충성을 말하는데, 곧장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없는게 분명한 상황 속에서도 야훼의 법에 복종하여 이를 지키는 태도이다. 이 단어는 쿰란 계약과 신약 성서에 매우 중요한 말이 되었다.

    하바꾹서에 대한 쿰란 문서의 주석 한 대목을 읽어보면 이렇다.

    “이 말씀은 모든 법에 따라 살아가는 모든 유대인들(쿰란 공동체원들)에게 해당한다. 이 법을 올바르게 가르쳐 주신 분(교파의 창시자, 의로움의 스승)에 대한 그들의 수고와 신실함(신앙)을 보시어,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심판의 집에서 구원해 주실 것이다.”

    여기서 신앙은 신약성서에 말하는 말하는 대로 인격적 신뢰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로마서 1:17과 갈라디아서 3:11을 함께 비교해서 보라. 이 구절들은 쿰란 문서에서 희미하게 나타나는 인격적 신뢰에 대한 설명을 발전시켜서 신뢰라는 의미를 담아낸다. 신앙없는 인간들을 향하여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하신 일은 이 신뢰의 관계에 기반한다. 그러므로 하바꾹 2:4은 바울로의 칭의 교리를 이해하는 핵심 본문이다. 즉 하바꾹의 원래 의미로부터 중요한 발전이 이뤄진 것이다. 히브리서 10:38은 이 원래 의미로 돌아간다. 히브리서 기자의 눈에 “신앙” 혹은 “신실함”이란 역경을 견뎌낸다는 원래 의미를 회복시키고 있다.

    제 2독서: 2 디모 1:6-8, 13-14 RCL: 2 디모 1:1-13

    RCL은 편지의 인사(1-2절)와 감사(3-7절) 부분을 포함하고 있다.

    사목 서신들은 바울로 서신에 포함시키지만, 대체로 바울로 공동체에서 작성된 제 2의 바울로 서신(Deutero-Pauline)으로 본다. 즉 바울로 사도 이후 세대의 상황을 반영하면서, 새로운 상황 속에서 사도의 가르침을 보존하려는 의도로 작성된 것이다.

    이 본문에 나오는 두 내용은 이러한 사도 이후의 상황을 반영하는 것 같다. (1) 이제부터는 직접적인 영감이 아니라, 안수를 통해서 사목직의 “은총의 선물”(charismata)을 전달하게 되었다. 고린토전서의 상황과 같다. “안수했을 때에, 하느님께서 그대에게 주신 그 은총의 선물”); 그리고 (2) 사도의 말씀을 “건전한 말씀(가르침)”으로 통합시키는 것이다. 에른스트 케제만(Ernst Käsemann)은 이러한 발전의 특징을 “초기 가톨릭주의”라고 정리한 바 있는데, 케제만은 어떤 퇴락과 변조라는 의미로 이 용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은 변화된 상황 속에서 적절하고 필수적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도들의 죽음과 더불어, 바울로가 고린토전서 1장에서 한 것처럼, 사도들이 더이상 개인적인 “카리스마”를 지속적으로 수행할 수 없게 된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디모테오”는 - 또한 사도직을 승계한 모든 후계자들은 - 단순히 전통만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살아있는 증언을 내어 놓아야 했다. 즉 전통을 풀어서 이를 당대의 세계에 적절하게 만들어야 했다. 이러한 증언 활동은, 본문에서 경고하는 바대로, “복음을 위해 고난에 참여”하는 일이 될 것이다 (RCL이 제시하는 본문, 9-13절). 아직 성공회 머물고 있을 적에, 뉴먼(Newman)은 국교회 안에서 혜택만을 누리던 편안한 주교들을 향해서 이렇게 쏘아 붙인 적이 있었다. “이런 식이라면 아예 주교 계승을 없애버리는 것이 원래 주교들이 가졌던 미덕과 순교 전통을 망치는 것보다 훨씬 나은 일이겠다.” 물론 당시 상황에서 매우 비현실적인 발언이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에 근거한 뼈있는 말이었다.

    복음: 루가 17:5-10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라는 오늘 본문의 요청은 신앙의 유혹(scandala)에 대한 경고의 말씀 바로 뒤에 나온다. 오늘 본문의 후반부를 이루는 비유 이야기는 바로 위의 신앙에 대한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다. 제자들에 대한 경고는 이것이다. 신앙이, 그리고 주님께 복종하는 어떤 봉사 활동으로 자신의 신앙을 드러내는 일이, 그에 대한 상을 요구하는 일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너희도 명령대로 모든 일을 다 하고 나서는 ‘저희는 보잘 것 없는 종입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설교

    설교자는 오늘 복음 본문의 첫 부분 - 믿음을 더해달라는 청 - 을 가지고 이를 하바꾹 예언자가 말하는 신앙의 원래 의미와 연결해 볼 수 있겠다. 그런 다음 뽕나무 이야기를 예를 들면 매우 생생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신앙의 힘에 대해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종의 비유에 집중하기로 했다면, 이것은 공덕에 의한 것이 아니라 믿음에 의한 칭의라는 바울로의 교리와 연결시킬 수 있다. 이 교리의 내용은 예수님의 매우 짧은 말씀 속에 좀더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세번째 가능성은, 신약성서의 사도 계승 개념을 발전시켜 보는 것이다. 그것은 사도적 신앙의 지키는 것과 더불어, 고난을 감내하면서 살아있는 증언을 더하는 일이다. 윌리암 템플 대주교의 아버지 프레데릭 템플 캔터베리 대주교는 람베스 궁의 한 아치길에 다음과 같은 말을 새겨 넣었다. “Apostolorum nobis vindicamus non honores sed labores” (새로운 사도들은 명예가 아니라, 수고와 고난을 요구한다.)

    * 라틴어는 영 자신이 없군요. 오역이면 바로 잡아주세요. ^^)

    "Tradition is living faith of the dead, Traditionalism is dead faith of the living."
    2007년 10월 1일 #
  2. 1독서 하바꾹 1:1-4, 2:1-4
    2독서 2디모 1:1-14
    복 음 루가 17:5-10

    주제 : 고난과 역경을 믿음으로 이겨내라.

    (우리나라 말 '이기다'는 승리하다라는 의미도 있지만, 동시에 고난이나 고통을 참고 견디어 낸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믿음을 갖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이겨 내는 것. 그것이 참말 승리의 길이 아닌가 합니다.)

    입당성가 358장 머리들어 문을 보라
    '머리들어 문을 보라'는 시편 24편 '문들아, 머리들어라. 영광의 왕께서 오신다.'라는 시에 곡을 붙인 것이다. 왕이 들어오시니 성문을 열고 승리한 왕을 맞이하라는 내용으로, 영광의 하느님께서 그의 백성들이 예배하는 자리에 임하시는 모습으로 비유한 곡이다. '머리들어 문을 보라'라는 가사는 약간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문들이여 머리들라'라고 번역하는게 더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곡의 진행과 내용이 입당성가로 적절하다.

    층계성가 526장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1독서와 시편, 2독서가 고난을 이겨내기 위해서 굳센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세상의 고난은 때때로 주님을 향한 믿음을 약하게 하는 무거운 짐이된다. 그러나 은혜의 주님 예수께서 그 짐을 대신 져 주시고, 이길 힘이 되어 주시니 꺽이지 말고 주님을 신뢰하자고 노래한다. 오늘 독서의 주제에 적합한 곡이다.
    작사작곡자 호프만은 장로교 목사로 어느 날 슬픔에 잠겨 찾아 온 부인에게 '모든 짐을 예수님께 맡겨라'고 위로하자 곧 힘을 얻었으며, 호프만 목사는 곧바로 이 성가를 썼다고 한다.

    봉헌성가 194장 이전에 주님을 내가 몰라
    주님께서 천하고 나약한 나에게도 직분을 주시니 고맙고 감사하여 죽도록 충성하는 삶을 살겠다고 노래한다. 또한 4절에는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어떤 열매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면류관을 바라보며 충성을 하는 것이라고 고백한다. 봉헌성가로 적당한 곡이다.
    이 곡의 작시자 정용철은 경북 청송 태생의 목사이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조선신학교를 비롯하여 해외의 여러 신학교를 졸업하였다.

    파송성가 456장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라는 가사는 복음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라는 사도들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신앙은 편하고 부유한 삶이기 보다는 사도와 성인들의 삶처럼 핍박과 고난을 견디어 승리하는 삶이다.

    2007년 10월 4일 #
  3. 주일의 주제를 하나의 문장으로 만들어 내는 방식에 따라 의미의 변주가 있으리라 봅니다. 제게는 "믿음은 어떤 해결책이 아니라, 견뎌내는 힘 그 자체"라는 생각이 밀려옵니다.

    참 좋은 선곡 감사합니다. 선곡과 그에 대한 주제와 배경 설명으로 훨씬 이 자리가 풍성해지고 있군요. 한가지 성가 선택과 관련해서 딴지를 걸어봅니다. 성가에는 우리곡 성가가 꽤 많습니다. 그런데 오클로스님의 선곡에서는 우리 곡보다는 외국곡 선호가 보입니다. 주제에 연결시키는데서 우리 곡 선택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알고 있지만 아쉬움이 크거든요.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하시는 김에 고생 좀 더해달라고 부탁드리는 말씀입니다. (하하하)

    2007년 10월 4일 #
  4. 우리곡 성가가 194장이 있습니다. ^^;

    그리고 456장은 옥스포드운동과 관련이 있네요. 작시자 Faber가 영국성공회 사제로 있다가 뉴먼의 영향을 받아서 로마가톨릭 사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믿음'에 대한 신부님의 말씀에 크게 감동 받았습니다.

    2007년 10월 4일 #
  5. 예, 감사합니다. 근데 지금 전화 통화 가능할까요? 070-7893-1412 로 주세요. 한국 시내 전화에요. 거기 시간으로 오후 6시까지는 전화 열어 놓고 있을게요.

    2007년 10월 4일 #
  6. 예, 194장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딴지 걸었어요. 하하... 좀더 신경 써주시면 그렇지 않아도 잘 안쓰는 우리곡들을 많이 이용하시리라 생각해서. 잠깐 동안 전화로 나눈 깊은 대화 잘 간직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07년 10월 4일 #

이 토론 주제에 대한 RSS 피드

답글

글을 올리려면 로그인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