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 자유 토론

"보혈 조력"이 성공회 신학에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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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한성공회에는 "보혈조력"이라는 직분이 있는데 이 직분의 이름이 성공회 신학에 맞는지 의문입니다. 왜냐하면, 성공회에서는 성체와 보혈 중 한 쪽이 더 중요하다고 하지 않는데 보혈조력이라고 하면 성체는 조력을 할 수 없고 보혈만 할 수 있는 것이 되어서 차별을 두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알기로 대부분의 성공회는 이러한 구별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가령 우리 교회에도 보혈 분배를 도와주는 성도들이 있는데 주교님이 그들에게 준 윤허에는 성체와 보혈을 다 조력할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물론, 성체를 먼저 분배하다 보니 사제가 성체를 분배하고 조력자가 보혈을 분배하는 것이 보통이지만요. 그러나, 성도들이 많아서 분배를 나누어서 할 경우 조력자가 성체를 분배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따라서 "보혈조력"은 "분배조력"으로 이름을 바꾸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2011년 1월 27일 #
  2. "보혈 조력"이라는 말에 대한 zinkoo 님의 흥미롭고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지적하신 점에 대해서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입니다. 많은 분이 이 지적에 귀 기울였으면 합니다.

    zinkoo 님께서는 "보혈 조력" 대신에, 좀 더 넓게 "분배 조력"이라는 말을 제안하셨습니다. 제 생각에는 "영성체 봉사자"라고 하는 것이 더 분명하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 성체 '분배'라는 말을 잘 쓰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느 행위에 대한 세밀한 지시어보다는 우리 모두가 하는 "영성체" 행위를 돕는 것을 드러냈으면 합니다. 그러니 "영성체 봉사자"가 어떨까요? 이러면 "전례 봉사자"라는 큰 범주 안에서 일관성 있는 용어를 마련해 볼 수 있으리라 봅니다.

    "보혈 조력"과 성공회 신학의 일관성에 대한 문제 제기는 신학적 문제 이외의 여러 다른 문제를 제기합니다. 무엇보다도 오래된 관행 탓에 잘못 이해하게 된 신학적 문제뿐만 아니라, 교회 내의 권위주의 문제와도 닿아 있습니다.

    성공회의 일반적인 영성체 방법인 "성체와 보혈"을 함께 영하는 내용은 이미 zinkoo 님이 제대로 지적하셨습니다. 이해를 확장하기 위해서 좀 더 덧붙이겠습니다.

    언뜻 차별적으로 보이는 이 행태는 역사적 연원이 있다고 봅니다. 서방 교회에서는 중세 이후로 영성체 자체가 별로 행해지지 않았으며, 있다 하더라도, "성체"만 영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이 점을 호되게 비판했고, 성공회 역시 그 종교개혁 전통에 따라서 이른바 "양형" 영성체를 표준으로 삼았습니다. (참고로 동방 교회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이런 문제가 없습니다. 큰 성작에 빵과 포도주를 섞어서 축성한 뒤, 숟가락으로 이를 떠먹이니까요.)

    문제는 '성체'만 영하다가, '보혈'을 영하게 된 것이, 하나의 부가적인 현상처럼 인식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혈'을 영하는 것은 이차적인 것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것이고, 이런 부차적인 것은 사제보다는 부제나 다른 이들이 맡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잘못된 관습을 정확하게 개선하지 못해서 생긴 또 다른 잘못된 관습입니다.

    이 사안은 영성체 봉사와 관련하여 두 가지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 하나는 사제만 성체를 나눠주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그리고 '부차적인' 보혈은 다른 '하위 성직자'나 허가를 받은 신자가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등급을 마련한 것입니다. 권위주의지요. 이미 지적된 대로, 성체와 보혈은 그 영성체 봉사자의 교회 직급과 연결되어서는 안 됩니다. 신자가 성반을 받들 수 있고, 사제가 성작을 받들 수 있습니다. 부제가 성반을 받들 수 있고, 역시 주교가 성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로부터 야기된 두 번째 문제는, 영성체를 돕기 위한 사제의 성찬례 참여 문제입니다.

    제 경험을 들어 이야기하면 이렇습니다. 제가 한동안 성가수녀회의 주일 미사 채플린으로 일했고, 이른 아침 미사가 끝나면 서울 주교좌 성당 9시 미사에 참석한 몇몇 분들을 위한 성서 연구 모임을 지도했습니다. 이 모임이 끝나는 시각이 약 11시 45분쯤인데, 곧장 11시 미사를 드리는 성당으로 뒷문을 통해 들어가 성직자석에 참여하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성체'를 사제가 나눠줘야 하는데, 사제가 부족하니, 저더러 미사 중간에, 그것도 성찬기도마저 거의 끝나고 영성체만 하는 때에 참여해달라는 것이었죠. 아직도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는 매우 좋지 않은 관행입니다. 성찬례는 그 사건에 참여한 전체 공동체의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관행은 공동체의 '지금 여기'의 사건과 관계없는 (좀 세밀하게 말한다면) 이가 갑자기 끼어드는 행위입니다. 게다가 이는 성직자의 역할을 공동체 안과, 그 사건에서 찾기보다는 성직자의 '기능'에 맞춰서 이해하는 무의식의 단면을 드러냅니다. 다시 이것이 바로 잘못된 여러 성직자 권위주의의 밑거름이 됩니다.

    내친김에, 원래 토론 주제와는 다르지만, 이 두 번째 행태와 조금은 관련이 있는 이야기를 보태겠습니다. 어떤 분들, 특히 몇몇 성직자들은 이미 그날 미사에 참석하여 영성체를 했다는 이유로, 다른 시간에 행하는 미사에 참석하고도 영성체에는 참여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영성체는 한 번만 한다는 오래된 관습이 구전으로 내려오던 바가 있었으나, 이는 명백히 잘못된 신학에 근거한 행태입니다. 즉 성찬례와 영성체를 '지금여기' 공동체 안에서 벌어지는 하느님의 지속적인 사건이요, 그 구원 행동에 대한 축하와 참여인 것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온 것입니다. 다들 영성체하는데 멀뚱히 앉아 있는 그런 분들을 다시는 뵙지 않았으면 합니다.

    더 많은 논의가 이어졌으면 합니다.

    "Tradition is living faith of the dead, Traditionalism is dead faith of the living."
    2011년 1월 28일 #
  3. Cranmerian
    회원

    두 분의 지적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그러면서도 명칭에서는 여전히 '조력' '분배'라는 용어를 쓰는 것은 여전히 무의식적으로나마 말씀하시는 원론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평신도가 참여하는 것이 조력을 위하여, 봉사만을 위한 것이 아닐 것이며, 또한 성직자의 영역을 침범하는 행위도 아닐 것이며, 오히려 신앙공동체의 예배에서 신자로서 나름대로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또 두 분의 말씀에서도 그런 뜻을 읽습니다.

    저는 아주 오래전에 미국 엘에이에 있는 성 제임스[야고보]교회에서 이 교육을 받았습니다. 매 주일 아침 일찍 예배에 참석하곤 했는데 어느 해에 한국인 신부님께서 이러한 봉사를 권해서 교구에서 시행하는 한나절 교육을 받고 '수료증'(?)을 받고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교회에서는 이러한 사람들을 'chalice bearer'라고 했는데 교육을 받는 장소에서 받은 조그만 책에는 'lay eucharistic minister'(LEM)라고 적혀있더군요. 이에 대한 역사 이야기와 제대에서의 실습(?)으로 잘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였지만 하루를 보내고, 그 다음부터 교회의 9시예배에서 순번으로 한달에 한번정도 봉사했습니다.

    이 글을 읽고 미국성공회 사전을 찾아보니, 본래의 명칭은 헌장에 있는 그대로 LEM이고, 성체와 보혈의 나눔활동을 모두 허용하고, 특히 병환으로 교회의 예배에 출석하지 못한 신자들에게 성찬을 전달하는 역할까지 수행한다고 합니다. 일부 보수적이거나(?) 관행적인 교회에서는 주로 보혈을 조력(?)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chalice bearer라는 명칭만을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이 점에서는 한국성공회도 마찬가지군요. 성체와 보혈에 차별없이 허용한다고 규정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무의식적으로 차별하고 있으니까요.

    다시 명칭으로 돌아가서, 미국성공회의 정식용어를 우리말로 번역한다면 '평신도 성찬사목자'라고 할 수 있지요. 너무 거창하지만, 한번쯤 생각해볼 수 없을까요?

    앞에서 나온 용어들 중에서 '조력' '분배'라는 말은 성찬례, 신자와 성직자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지속시킬 수 있으며, 영성체라는 말은 성찬을 받는다는 것, 특히 성체를 받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나눔[하느님과 신자, 그리고 신자들과의 나눔]의 의미를 살릴 수 있는 용어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미국성공회의 용어는 너무 거창하다면, '성찬 봉사자'라는 말은 어떨까요?

    그리고 두 분의 말씀대로 이러한 봉사자들에 대한 교육과 이들의 활동을 활성화시키는 방법은 없을까요?

    2011년 1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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