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 자유 토론

  1. 성공회 신문의 요청을 받아, 성공회 신문에 "전례 여행"이라는 꼭지를 마련했습니다. 신문사에서 요구한 것은 성공회 정체성과 전례가 어떤 연관이 있는지 밝혀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몇몇 분들과 이 문제를 상의했습니다. 꼭 필요한 주제인데 만만치 않은 이야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가장 깊은 염려 가운데 하나는 성공회가 비록 겉으로는 전례적인 교회인 것처럼 자처해 왔으나, 실제 신앙 생활의 내용과 형식에서 전례에 대한 이해가 그리 튼튼하지 못하다는 염려였습니다.

    약속한 날짜는 다가오고 더는 미룰 수도 없는 처지여서 연재의 대강을 마련했습니다. 대체로 전례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과 역사, 그리고 현대 전례 운동과 성공회 안에서 나누고 있는 전례의 주제들을 각각 살펴 볼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는 여러 대화와 피드백을 통해서 고쳐보기도 하고, 갑작스러운 질문과 문제제기에 응답하는 여유도 가지려 합니다. 무엇보다도 전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여행이었으면 합니다.

    이 여행이 풍요로워지려면 많은 길벗들이 함께 참여하여 대화를 나눠야할 것입니다. 신문은 일방적인 매체이니 그런 대화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포럼을 통해서 여러 생각을 나눴으면 합니다. 어차피, 원고료가 없으니 이곳에 그대로 올려놔도 되리라 싶습니다. ;-) 제 글은 대화를 위한 기초적인 문제제기, 혹은 대화 자료였으면 합니다. 어떤 의견이든 요구든 환영합니다. 서로 어깨동무하고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한걸음씩 내딛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성공회 신문 발행일(주일)에 맞추어 이곳에 올리겠습니다. 아래는 첫 회에 해당하는 연재를 시작하는 말입니다.

    <<성공회 신문>> 2011년 2월 20일

    주낙현 신부와 함께 하는 전례 여행 1

    연재를 시작하며

    “그 누구도 섬처럼 떨어진 자가 아니며 그 전체요, 한 사람은 그 대륙의 한 부분일 뿐이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바로 그대를 위해 울리나니.”

    17세기 영국을 살았던 성공회 사제요 시인 존 던(John Donne)의 명상록 한 조각이다. 이 아름다운 글이 시처럼 회자하여 헤밍웨이의 소설 제목(1940년)이 되어 더 널리 알려졌다.

    그 소설의 배경은 스페인 내전(1936-1939년)이었다. 당시 천주교의 지원을 받은 군부 세력이 군사 쿠데타를 계획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스페인 국민은 물론, 헤밍웨이 자신을 비롯하여 자유와 정의를 지켜려던 이들이 전 세계에서 몰려들어 군사 쿠테타 세력과 싸웠다. 소설가는 그 전쟁 경험을 기초로, 우리 삶이 이뤄야 할 사랑과 정의와 자유는 어느 혼자만의 일도, 혹은 나와 동떨어진 남의 일이 아니며, 모든 이들이 함께 돕고 연대하여 이뤄내야 할 것이라 그렸다. 어찌보면 그 소설은 존 던의 글에 대한 한 해석이었는지 모른다.

    존 던 신부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그는 알 수 없는 자신의 질병과 그 고통을 기도로 살피면서, 하느님께서 만드신 한 인간의 삶이 무엇인지를 깊이 되물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만드신 한 인간과 그 생명은 뿔뿔히 흩어진 한 개체가 아니며, 그 한 인간 자체로 온 창조 세계 그 자체이며, 하느님의 창조 세계에 속한 모든 것들은 서로 연결되어 하나인 것을 깨달았다. 사제인 그가 보기에, 이 모든 사람을 연결시키고 하나로 묶는 것은 교회 공동체였다. 그리고 그 교회 공동체는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영성체에 초대하여 먹이고, 결혼시키고, 마침내 하느님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전례와 성사를 그 행동으로 삼는 곳이었다.

    교회의 종소리는,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의 전례적 삶 안에서 하나가 된 우리를 위해서 울리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우리는 하나이며, 그 하나인 우리를 위해서 서로 살아가야 한다고. 모든 이들에게 선사하신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와 자유를 우리 모두가 함께 축하하며 누려야 한다고. 그리고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시작이었던 하느님께로 돌아가야 한다고.

    몇 세기의 여행을 거쳐 이제 우리 자신에게로 돌아와 몇 가지 물음을 던져본다. 그렇다면 지금 교회 공동체는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무엇인가? 교회의 생활 양식인 전례와 성사는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무엇인가? 이 전례와 성사의 공동체는 나와 우리에게 “어느 누구도 섬처럼 떨어진 자가 아니며, 그 자체로 전체”인 것을 되새기며 경험하게 하는가? 아니, 이 물음 이전에, 우리는 교회와 전례와 성사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그 생각들은 나의 생각인가, 교회의 생각인가? 내 가족 전통의 생각인가, 한국 성공회의 생각인가? 그 한국 성공회의 생각은 여전히 하나인 몸을 이루고 있는 성공회의 큰 전통과 잇닿아 있는가, 아니면 동떨어져 있는가? 성공회 만의 생각은 다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한 백성이 된 그리스도인들과, 하느님의 모든 창조 세계와 잇닿아 있는가, 아니면 동떨어져 있는가?

    연재할 전례 이야기는 이런 물음에 고민스러운 대답 찾기의 여행이요 여정이다. 안타깝게도 그 여정 막바지에 이르러 그 대답이 분명해지리라 확신할 수가 없다. 아니 더 많은 물음들만 잔뜩 얻게 될는지 모른다. 다만, 그 여행에 여러분을 초대하고, 이미 그 길을 걸었던 신앙의 선배들을 불러 동행하려 한다. 여럿이 동행하는 그 길은 느릿할 것이다. 지난 역사에 대한 회고가 마음을 언짢게도 할 것이고, 서로 마음이 마음이 맞지 않아 다투는 일도 있을 것이다. 갈 길은 먼데 금세 아파오는 다리에 포기하는 이들도 이도 있을 것이다. 손쉬운 ‘패키지 투어’가 아니라고 시작부터 볼멘소리를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동안 접해 보지 못했던 생소하고 어려운 지도 용어와 논리에 머리를 쥐어 뜯을 지 모른다. 그래도 이 불편한 여정이 더 재밌을 것 같지 않은가? 이 상서롭지 않은 여정이 더 많은 생각거리와 추억거리를 남기지 않겠는가?

    그 여행의 출발을 알리는 종소리를 울려볼까? “바로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종소리.”

    "Tradition is living faith of the dead, Traditionalism is dead faith of the living."
    2011년 3월 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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