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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존 맥쿼리, <<그리스도교 신학의 원리들>> 서문 « 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 자유 토론

번역: 존 맥쿼리, <<그리스도교 신학의 원리들>> 서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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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 prayandwork
    회원

    Principles of Christian theology
    그리스도교 신학의 원리들

    서문

    그리스도교 신학은 교회의 신앙을 하나의 일관된 전체로서 생각하고자 한다. 신학은 단지 신앙의 내적 일관성을 보여주려고 할 뿐만 아니라, 즉 말하자면 몇몇 교리들이 어떻게 일치를 이루는지 뿐만 아니라, 현대 세계에서 우리가 헌신하는 다른 다양한 믿음과 태도들과 함께 신앙의 일관성을 보여주려고 한다. 이 임무들이 완수될 때라야, 신앙은 지성적으로 지탱될 수 있고, 인간 삶의 다양성 전체에 합치할 수 있다

    그러한 신학적 과업은 새로운 문제로, 새로운 상황으로, 새로운 지식으로서 언제고 항상 다시 다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그 길에는 많은 함정이 놓여있다. 때로 신학자는 교회의 살아있는 신앙에서 멀리 동떨어진 아카데믹한 생각 속에서 길을 잃는다. 때로는 지나가 버린 시절의 상징이나 신화에 과도하게 집착한다. 때로는 “세련되어야” 하고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딱한 욕망 속에서, 신학자는 유행하는 철학에 대한 초라한 반영으로 신앙을 축소시켜버린다. 이러한 함정을 비켜갈 수 있는 신학자는 없다. 그러나 모든 신학은 몇몇 결점을 지니리라는 사실이, 신학적 책무를 져버리거나, 교회의 삶에서 신학이 차지하는 위치를 과소평가하는 일에 대한 변명은 될 수 없다. 신학은 교회에 반드시 필요하다. 교회에서 신학이 실패한다면, 그를 더 나은 신학에 대한 요구로 받아들여야지, 신학을 져버려야 한다거나, 신학 없이 지속되는 교회를 상상하는 구실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우리자신을 실천적 과제들에게만 바쳐야 한다거나, 교회 안에서 신학의 자리가 심리학이나 사회학 같은 과학에 의해 대체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은 어쩌면 중요하다. – 나는 이러한 문제들의 중요성을 부정할 생각은 전혀 없다 – 이러한 주장들은 근본적인 신학적 사고의 필요성을 조금도 제거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의 행위는 그것이 명백한 신학적 이해에 의해 조명되지 않는 한 방향을 잃은 우연적 행위에 지나지 않게 된다.

    모든 신학자들에게는 자기 자신의 관점이 있으며 그 관점은 여러 방식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의 내용이 다양한 그리스도교 전통의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극단적이거나 종파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았고, 그리스도교의 다양한 사고와 경험들을 표현하려고 애썼다. 내가 속한 신학교의 설립자들은, 당파싸움에서 자유롭게 살기를 원하고, 교회의 지배나 실천적 급진주의, 모든 극단적 교리들에서 냉정하기를 원하면서, 중도적인 시각과 감정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다정다감하게 모일 수 있는 학교를 세우고자 했다. 내가 속한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오래도록 ‘성공회 중도의 길(via media Anglicana)’을 간직해왔다. 물론, 진리가 언제나 극단들 사이의 중간에 있다고 생각하는 건 우스운 일이다. 어쩌면 일부 내가 취한 입장은 어떤 독자들에게는 매우 극단적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보기엔 인간 존재 자체의 양극성에서 비롯하는 어떤 변증법이 신학 안에서 작동한다. 신학의 역사 속에서 이러한 변증법의 영향은 극단적이고 과장된 관점을 배제해왔다. 교회가 붕괴하거나 화석화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면 안정성과 유연함 모두가 필요하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모든 이들을 만족시키려 하지 않았다. 진정한 차이들은 얼버무리고, 모든 관점들이 진정성을 지니는 한 똑같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그릇된 에큐메니즘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들은 신학에는 진리도 진리 아닌 것도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모든 신학적 기획이 시간낭비라는 것을 시사할 따름이다. 우리는 신학 안에 논란의 여지가 있고 분열을 초래할 수 있는 문제들이 있다는 사실과 마주해야 한다. 그 중에는 중요한 것들도 있고 덜 중요한 것들도 있다. 자연신학은 가능한가 가능하지 않은가? 그리스도교 아닌 종교에서 하느님에 대한 참된 지식은 가능한가 가능하지 않은가? 유아세례는 필요한가, 아니면 오직 성인들에 대한 세례만 있어야 하는가? 주교는 있어야 하는가? 여성성직은 있어야 하는가? 신학자들이 이러한 문제들을 결정하지 않으면 그것들은 그저 얼버무려질 것이다. 나는 이러한 문제들과 더불어 다른 논쟁의 여지가 있는 문제들을 정직하게 다루려고 해왔다. 그러나 각각의 경우에 있어서, 기존의 입장이 전체 신학구조에서 어떻게 뒷받침되고 드러나는지를 보여주는 근거를 제시하려고 했다. 그리고 대안적 관점들에 대한 이해도 함께 제시하기를 원했다.

    최근 몇 년간 가장 중요했던 에큐메니칼적인 발전은 단연코 다른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대한 천주교의 새로운 노력이었다. 나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이러한 발전들을 염두에 두었고, 화체설이나 교황권, 성모신학 같은 분열을 초래할 수도 있는 문제들을 열린 자세로, 그리고 바라기로는 건설적으로 논함으로써 그러한 발전들에 응답하고자 노력했다.

    우리와 함께 더욱 가까이 살아가고 있는 세계 안의 다른 신앙들과 그리스도교 사이에 증가하고 있는 교류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내가 보기에, 이제는 몇몇 낡은 배타적 태도들을 버리고 다른 위대한 세계종교들을 향해 그리스도교의 일부인 열림과 관용의 정신을 보일 시기이다. 그래서 나는 그러한 열린 자세를 북돋을 수 있는 방식으로 그리스도교 신학의 진리를 보여주고자 했다.

    이 책에 포함되어 있는 많은 철학적 범주들은 마르틴 하이데거의 저서들에 빚지고 있다. 내가 보기에 그가 발전시킨 철학방식과 개념들은 20세기 철학적 (자연) 신학을 가능케 하는 기반을 제공했으며, 현대적인 방식으로 그리스도교의 진리 전체를 더 깊이 표현하고 설명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이것은 우리의 신학이 철학보다 덜 중요해진다는 것을 전혀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 시대의 세속적인 문화와 소통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신앙을 잘 표현해줄 수 있는 최근의 철학적 작업들을, 우리가 과거의 신학자들처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의 신학자들 중에서는 칼 라너가 가장 도움이 되었다. 말하자면, 10년 전만 하더라도, 바르트나, 브룬너, 틸리 같은 프로테스탄트 거인들에게 놓여 있던 신학적 리더쉽은 이제 천주교 학자들에게 넘어갔다. 그들 중에 칼 라너(그 자신에 의하면 하이데거의 충실한 학생인)가 가장 탁월하다. 그는 신앙과 이성, 전통과 새로움, 권위와 자유 같은 특유한 신학의 변증법을 구성하는 난제들을 대가의 방식으로 다룬다.

    루돌프 불트만은 비록 내가 그의 몇몇 입장에 대해 비판적이지 않았던 적이 없었지만, 여전히 신약성서 이해에 있어서 나의 주된 길잡이이다. 신약성서 신학에 있어서, 나는 동료인 존 녹스에게 특별히 교회의 본질에 관한 그의 깊은 통찰력에 빛을 졌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개인적으로도 많은 신세를 졌다. 감사함과 애정을 가지고 이 책을 그에게 감히 바친다.

    출판관계자가 이 작업을 나에게 맡긴지도 4년이 지났다. 편집자들의 인내와 정성, 그리고 유용한 조언들을 준 그들의 독자들에게도 감사드린다.

    존 맥쿼리

    유니온 신학교, 뉴욕

    신판 서문

    이 책이 출판된지도 10년이 지났다. 내 자신과 독자들에 대해서 완전한 개정판을 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고 있었다. 개정판은 여러 새로운 소재들을 담고 있다. 거의 모든 주제들에 있어서 새롭게 생각하고 또 새로운 신학적 발전들에 주목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많은 독자들과 비평을 준 사람들, 그리고 내가 바라는 좋은 책을 만들 수 있도록 나를 자극해준 친구들, 격려해준 출판관계자들에게 감사드린다.

    존 맥쿼리.
    크라이스트 쳐치, 옥스포드.

    Principles of Christian theology

    Preface

    Christian theology seeks to think the Church’s faith as a coherent whole. It aims not only at showing the internal coherence of the Christian faith, that is to say, how the several doctrines constitute a unity, but also at exhibiting the coherence of this faith with the many other beliefs and attitudes to which we are committed in the modern world. Only if these tasks are accomplished can the faith be held intelligently and be integrated with the whole range of human life.

    The theological task needs to be done over and over again, as new problems, new situations, and new knowledge come along. But there are many pitfalls along the way. Sometimes the theologian gets lost in academic speculations that are far removed from the living faith of the Church; sometimes he clings tenaciously to the myths and symbols of a bygone age; sometimes, in a pathetic desire to be “contemporary” and “relevant” he reduces the Christian faith to a pale reflection of whatever happens to be the currently popular philosophy. No theologian can hope to avoid all the pitfalls. Yet the fact that every theology will have some flaws is not a reason for turning away from the theological task, or for underestimating the place of theology in the Church’s life. Theology is indispensable to the Church, and where theology fails, we must take this as a demand for better theology and certainly not as an excuse for turning away from it or for imaging that the Church can get along without it. It is foolish, for instance, to suggest that we need devote ourselves only to the practical tasks of Christianity, or that theology can be replaced in the Church by such sciences as psychology and sociology. However important these matter may be –and certainly I have no wish to deny their importance- they do not in the slightest degree take away the need for fundamental theological thinking. Christian action itself will become aimless and sporadic unless it is illuminated by clear theological understanding.

    Every theologian must write from his own perspective, and this will be limited in various ways. I hope, however, that the presentation offered in this book will be helpful to readers from a wide range of Christian traditions, for I do not think that I have taken up many “extreme” or “sectarian” positions, but have tried to bring to expression the broad mainstream of Christian thought and experience. The founders of the Seminary in which I teach aimed at making it one “around which all men of moderate views and feelings, who desire to live free from party strife, and to stand aloof from all the extremes of doctrinal speculation, practical radicalism, and ecclesiastical domination, may cordially and affectionately rally. The Christian communion to which I belong has for long been celebrated for the via media Anglicana. Of course it would be absurd to imagine that the truth is always midway between the extremes, and perhaps some of my positions will seem extreme enough to some readers. Nevertheless, there is a kind of dialectic that operates in theology and that arises, I believe, out of the polarities of human existence itself. The effect of this dialectic throughout the history of theology has been to exclude extreme and exaggerated points of view. The Church needs both stability and flexibility in its theology if it is to go forward, and not be either disintegrated or petrified.

    Let me say frankly, however, that I have not tried to please everyone. I have no use for that mistaken kind of ecumenism which glosses over genuine differences and seems to suggest that every point of view is equally valid, so long as it is sincerely held. Those who think in this way are really saying that there is neither truth nor untruth in theology; and this implies, in turn, that the whole theological enterprise is a waste of time. We have to face the fact that there are many controversial and divisive issues in theology, some more important, others less so. Natural theology or no natural theology? A genuine knowledge of God in the non-Christian religions, or no such knowledge? Infant baptism or adult baptism only? Bishops or no bishops? Women in the ministry, or men only? These are issues about which the theologian has got to decide, or else to become evasive. I have tried to deal frankly with these and other controversial questions; but in each case I have sought to give reasons for the position taken, to show how this positions is implied and supported by the total theological structure, and, I hope, to show also some understanding for alternative points of view.

    By far the most important ecumenical development in recent years has been the new outreach of the Roman Catholic Church to Christians of other communions. I have been very much aware of this development while writing this book, and have tried to respond to it by discussing openly and, I hope, constructively, such supposedly divisive issues as Mariology, the papacy and transubstantiation.

    Equally important are the increasing contacts of Christianity with other faiths in a world where we are all living more closely together. It seems to me that the time has come for the abandonment of some of the old exclusive attitudes, and for a new openness and generosity of spirit on the part of Christians toward the other great world-religions. I have accordingly tried to present the truths of Christian theology in a way which will encourage such openness.

    For many of the philosophical categories employed in this book, I am indebted to the writings of Martin Heidegger. As it seems to me, his way of phiosophizing and the concepts he has developed provide the basis for a viable twentieth-century philosophical (“natural”) theology, and can be used further for the articulation and elucidation of the whole body of Christian truth in a contemporary way. This does not mean in the very slightest that our theology is being made subservient to a philosophy; but it does mean that, like theologians of the past, we can avail ourselves of such current philosophical work as will best serve to express the faith in terms that communicate with the secular culture of our time.

    Among contemporary theologians, I have found Karl Rahner the most helpful. In saying this, I am acknowledging that the leadership in theology, which even ten years ago lay with such Protestant giants as Barth, Brunner, and Tillich, has now passed to Roman Catholic thinkers. Among them, Karl Rahner (himself a penetrating student of Heidegger) is outstanding. He handles in a masterly way those tensions which constitute the peculiar dialectic of theology mentioned above: faith and reason, tradition and novelty, authority and freedom, and so on.

    Rudolf Bultmann has remained my principal guide in the understanding of the New Testament, though I have never been uncritical of some of his positions. In New Testament theology, I am indebted also to my colleague, John Knox, especially for his profound insights into the nature of the Church; and I owe him so much in other and more personal ways that I have ventured to dedicate this book to him, in gratitude and affection.

    Four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ublishers invited me to undertake this work. I wish to thank their editors for their patience and courtesy, and their readers for some useful suggestions.

    John Macquarrie

    Union Theological Seminay, New york

    Preface to the New Edition

    It is ten years since this book was first published, and I have felt it a duty both to my readers and to myself to make a thorough revision The revised edition contains a great deal of new material; indeed, there is scarcely a topic on which I have not felt obliged to think afresh and to take note of new theological developments.

    I wish to thank the many reviewers, critics, commentators, and friends who have stimulated me to produce what I hope will be a more adequate book, and also the publishers for their encouragement.

    John Macquarrie

    Christ Church, Oxford.

    2011년 5월 24일 #
  2. Cranmerian
    회원

    존 메퀘리라는 분에 대해서는 주신부님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분의 <성사들에 대한 안내>(A Guide to the Sacraments)라는 책을 한번 읽어보았습니다 . 당시에 제게는 어려운 책이었지만, 전례에 대한 다른 책들을 읽을 때마다, 이에 대한 신학적 숙고를 참고하느라고 중간 중간 다시 읽어보고 있습니다. 조금은 오래된 책이지만 ‘신학적으로 생각하는 방식’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이 서문을 처음 읽었을 때 이 분의 명성을 다시한번 확인하는 것 같습니다. 저로서는 기본적인 원칙을 분명하게 제시하는 부분에 공감합니다. 좋은 책을 읽고 나누기 위하여 이렇게 번역해서 소개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제게는 무엇보다도 두번째 단락이 우리들에게 ‘경종’ 내지는 ‘각성’을 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첨부하신 원분을 살펴보면서 그 뜻을 더욱 분명하게 밝힌다는 의미에서 섣불리 다시 번역해 보았습니다. 물론 저도 번역을 더러 하였지만 정말 힘든 작업이고 많은 시간도 소모되고, 때로는 이해하려고 시작하였다가 번역 그 자체에 얽매이기도 합니다. 마찬가지였으리라 생각합니다. 이해하는 것을 번역으로 표현한다는 것이 정말로 힘들고, 번역하는 사람마다 그 표현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는 점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혹시나, 이미 내가 번역하는 것에 대해서 다른 사람이 손을 댄다는 일에 기분 좋을 사람은 없습니다. 저도 마찬가지구요. 하지만 서로 격려를 받는다는 마음으로, 그리고 이러한 첫 번역이 없었다면, 그 다음의 교정 또한 더 힘들었을지도 모릅니다.

    무엇보다도 저자가 말하는 ‘근본적인 신학적인 숙고’가 중요하다는 지적을 되새기고 싶습니다. 적어도 교회의 지도자들-성직자들과 평신도 지도자들-이라면, 교회에서 발생하는 여러가지 일들에 대하여 기본적으로 신학적으로 숙고하는 일이 필수적이라고 생각됩니다. 요즈음은 어느 교단이나 교회에서도 ‘편리하다’거나 ‘멋있다’고 이러한 신학적 숙고조차 없이 도입하고, ‘불편하다’거나 ‘답습적이다’는 이유로 아주 중요한 것들을 너무나 쉽게 저버리는 일이 많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이 있지만. 어느 경우든 이러한 결정을 하기 전에 한번 더 저자의 지적처럼 ‘근본적인 신학적 숙고’를 거치는 작업을 하나의 과정으로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리라고 생각됩니다.

    아마도 공부를 하시느라고 이 책을 읽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성공회의 신학에 대한 책들은 많지만, 우리말 로 번역된 책이 거의 없기 때문에 우리들에게 어려움이 많습니다. 선구자가 된다는 생각으로 매진해주시기를 부탁드리며, 결실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제가 번역한 두번째 단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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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학적 과업은 새로운 문제들과 새로운 상황들, 새로운 지식들이 나타날 때마다 [언제나] 새로이 수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작업에는 많은 함정들이 도사리고 있다. [예를들면] 때로는, 신학자들이 교회의 살아있는 신앙과 너무 동떨어진 상아탑속의 사색[논의]에 빠져 길을 잃기도 하고, 때로는 지나간 시대의 신화들[성공적인 신학들?]과 상징들에 지나치게 집착하기도 하고, 때로는 “세련되어야” 하고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지나친[병적인] 욕망으로, 신학자들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당대에 유행하는 철학을 따라가며 이를 초라하게 흉내내는 것으로 축소시켜 버린다. 이러한 모든 함정들을 비켜갈 수 있는 신학자는 없다. 그러나 모든 신학이 몇몇 결점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 때문에, 신학적 책무를 져버리거나 교회의 삶에서 신학이 차지하는 위치를 과소평가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신학은 교회에 반드시 필요하다. 교회에서 신학이 실패할 때, 우리는 이것이 더 나은 신학에 대한 요구로 받아들여야지, 신학이 필요없다는 이유로 또는 교회가 신학 없이도 과업을 잘 수행할 수 있다고 상상하는 구실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예를들면,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실천적인 과제들에만 집중할 필요가 있다거나, 또는 그리스도교회에서 신학은 심리학과 사회학과 같은 과학들로 대체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러한 문제들이 아무리 중요하다 하더라도(필자는 이러한 문제들의 중요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근본적인 신학적인 숙고를 뺏어갈 수는 없다. 그리스도인의 행위는 명백한 신학적 이해에 의해 조명되지[설명되지, 안내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방향을 잃고 돌발적인[한차례로 끝나버리는, 일관성없는] 행동이 되고 말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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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5월 31일 #
  3. prayandwork
    회원

    / Cranmerian 책 전체를 읽어내기도 버거운 처지인지라 아직 무엇을 나눌 깜냥이 못 됩니다. 그저 공부하면서 연습 삼아 번역해본 것인데 좋은 분들의 조언을 받으면 공부에 진전이 있을 것 같아 올렸습니다. 이렇게 지적해주시는 것이 제게는 참으로 큰 도움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2011년 6월 2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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