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 자유 토론

  1. 주낙현 신부와 함께 하는 전례 여행

    10. 전례 운동 2 - 하느님 백성의 예배와 선교 공동체

    지난 회에 살핀 것처럼, 성공회는 개인과 공동체가 서로 부딪히는 새로운 상황에서 전례를 통해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가치를 조화하려고 노력했다. 비슷한 처지에 있던 다른 교회들도 이 문제를 두고 씨름했다. 특히 19세기 서구 사회의 큰 변화를 맞았다. 사회의 이념과 신앙에서 지적이고 개인주의적인 태도가 더 널리 퍼지게 되면서, 교리와 위계로 지탱하던 교회의 관습적 권위는 설 자리를 잃었다. 한편, 급격한 산업화 때문에 오래된 농촌 공동체가 무너지고 도시에는 많은 사람이 몰렸다. 대체로 낮은 임금을 받는 공장 노동자요 도시 빈민이 된 이들의 삶은 비참했고 교회와 전례에서 멀어졌다.

    교회는 이러한 변화에 당황했다. 이때 교회는 무엇인가? 교회와 전례는 어떤 관계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이것이 근대 ‘전례 운동’의 물음이었다.

    전례 운동은 당연히 전례 전통의 교회에서 먼저 움텄다. 성공회가 그랬듯이, 이제 천주교의 성직자들과 전례학자들이 신앙과 교회와 사회 문제를 전례와 연결하여 사태를 진단하고 질문을 던졌다. “교회는 예배하는 공동체이고, 이 예배와 전례 공동체 속에서 신앙이 자란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전례에 참여할 때라야 진정한 신앙을 키울 수 있다. 전례가 신자들의 참여와 공동체성을 잃으면 개인 신앙생활에 왜곡이 일어나고, 이것이 다시 교회에 영향을 미쳐 악순환이 일어난다. 이래서는 세상 속에서 교회가 빛이 될 수 없다. 어떻게 바로 잡을 것인가?”

    이 운동 처음에는 중세 초기 교회에 대한 낭만적인 동경이 있었다. 중세 초기 교회를 전례와 공동체의 이상으로 생각해서 그 관습과 교리를 회복하면 된다고 보았다. 천주교뿐만 아니라 성공회에도 그렇게 생각한 사람이 꽤 있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이런 단순한 과거 회귀로 전례 공동체를 회복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새로운 방법을 세웠다. 그것은 성서와 초대 교회, 그후 교회 역사의 다양하고 풍부한 전통에 대한 재발견, 그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 그리고 성령의 힘에 기대어 현대 상황에 적용한 쇄신이었다.

    전례 운동은 전통의 재발견과 연구와 쇄신이라는 방법으로 다음 내용을 강조했다.

    첫째, 사회와 교회에서 인간관계의 핵심은 공동체이다. 예배는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공동체의 활동이다.

    둘째, 형식과 교리와 의무에 치중하던 예배 생활에서 벗어나 교회 공동체와 신앙생활의 바탕인 성찬례와 성무일도를 회복하고 개정해야 한다.

    셋째, 하느님의 백성인 신자들은 전례, 특히 성찬례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신자는 보편적인 사제직을 함께 나누기 때문이다.

    넷째, 성서와 초대 교회, 다양한 교회 전통의 경험을 회복하고 서로 배워야 한다. 이로써 분열된 그리스도교는 일치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다.

    다섯째, 성찬례를 통해서 경험하는 변화와 나눔은 세속 사회를 향해 비판하고 발언하는 원칙이 되어야 한다.

    전례 운동은 위의 강조점을 통해서 성공회, 천주교, 루터교 같은 전례 전통의 교회에 쇄신을 가져왔다. 그뿐 아니라 20세기 내내 다른 교회들에 큰 영향을 끼쳤다. 전례 전통 교회들이 서로 비슷한 전례 구조와 행동을 보이고, 교회력이나 성서정과를 공유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특히 천주교는 1960년대 바티칸 2차 공의회에서 “전례 헌장”을 발표하면서 획기적인 개혁의 원칙을 마련했고, 그 영향으로 교회 일치 대화는 더욱 힘을 얻었다. 유럽의 루터교는 전례가 어떻게 신자의 사회 참여 훈련과 원칙이 되는지 특별히 고민했다.

    이런 경험에 기대어, 그동안 전례에 관심이 없던 개신교회들도 전례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마침내 1982년 교회 일치 모임인 세계교회협의회(WCC)는 ‘리마 문서’라는 전례와 신학 문서를 통해서 전례 운동의 중요한 원칙들을 다시 확인했다.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건에 감사하며 하느님을 예배하고 친교하는 공동체이며, 구원 사건을 일으키시는 하느님의 협력자가 되어 참된 인간성을 회복하려는 선교 공동체이다. 100여년 전 물음에 대한 응답인 셈이다.

    다만, 이런 전례 운동의 풍요로운 경험과 원칙에서 여전히 비껴있는 교회들도 있다. 특히 전례 운동을 경험하지 못한 선교사들이 시작한 교회들이나, 전례 전통과는 아예 담을 싼 교회들이 그렇다. 지난 100여년 동안 성공회를 비롯한 여러 교회들이 참여하여 마련한 성과를 함께 나누지 못한다면 큰 손실이다. 전례 운동의 큰 흐름과 동떨어져 제한된 경험으로 입과 눈으로만 전수된 전례는 옹색하게 보인다. 반면, 관습적 전례 경험에 대한 반감으로 전례 전통을 좁게 보거나 오해하는 일도 잦다. 전례 운동의 경험이 보여주듯이, 전례 개혁과 쇄신은 풍요롭고 넉넉한 경험과 연구, 그에 대한 열린 태도와 적용으로만 가능하다.

    지금까지 전례의 오랜 역사를 따라 무겁게 걸어왔으니, 이제 오해하기 쉬운 주제들과 무심했던 이야기들로 가벼운 발걸음을 돌릴 때가 되었다.

    (성공회 신문 2011년 7월 11일치 6면)

    "Tradition is living faith of the dead, Traditionalism is dead faith of the living."
    2011년 7월 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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