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 자유 토론

  1. Ely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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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는 제가 블로그에 올렸던 자료들인데, 여기에 옮겨 와서 공유하면 좋을 것 같아서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블로그를 위한 것이었다보니, 크리스천이 아닌 분들도 이질감 없이 읽으실 수 있도록, 교계에서 사용하는 용어보다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단어들을 선택해서, 일테면, "하느님" 대신 "신"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하나 고치기엔 양이 너무 많아서 그대로 두었습니다.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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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9월 10일 #
  2. Ely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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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캉팽, 로베르 (플랑드르)

    수태고지

    1418-1419

    76 cm x 70 cm

    고딕 사원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은, 새로운 법이 옛 법을, 배경의 로마네스크 양식 탑으로 표상되는 그것을 대체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교회의 바깥과 탑 위에 있는 조각들과 스테인드 글라스의 성경 구절들은, 이러한 점 그리고 구속 (救贖) 의 관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그것은 모세와 다윗, 또는 이삭의 희생에 대한 이야기이며, 이들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예견하고 있다.

    이것은 초기의 작품으로서, 바이덴이 1427년 캉펭의 작업실에 들어가기 전에 만들어졌다. 거장 자신의 작품이라는 점이 비평가들에게 의심없이 받아들여지고 있지는 않다.

    이 작품은 펠리페 2세가 조각가 야코메 트레초로부터 들여 왔으며, 1584년 엘 에스코리알에 들어왔다.

    2011년 9월 10일 #
  3. Ely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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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퀴벨 이 수아레스 데 우르비나, 안토니오 마리아 (스페인)

    루시퍼의 추락

    1840

    275 cm x 205 cm

    루시퍼는 하느님께서 가장 총애하시는 천사들 중 하나였다. 그는 하느님의 힘에 반항하면서 천국으로부터 추방되었다. 이 주제를 나타내기 위해, 에스퀴벨은, 성 미카엘이 단호한 태도로, 그를 천상의 영광으로부터 내치는 장면을 선택하였다. 이 주제는 성 미카엘이 죄악의 용과 싸우는 장면과 비견될만한데, 이것은 많은 예술가들에 의해 자주 묘사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스퀴벨은 투구를 쓰고 검을 든 성 미카엘의 통상적인 이미지를 피하여, 대신, 두 인물의 표현에 집중하고 있다. 하나는 단호하고, 다른 하나는 혐오스럽다.

    이 그림은 미학적인 절충주의에서 접근되어, 무리요에서 보이는 스페인의 회화적 전통과, 당시 앵그르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마드리드의 궁정 회화적 순수주의를 혼합하고 있다.

    이 작품은 화가가 병으로 시력을 잃었을 때, 마드리드의 예술 학원 회원들이 자신을 도와준 데 대한 감사의 뜻으로 그려졌다 (화가는 후에 시력을 되찾았다). 당시, 이 작품은 평론가들에 의해 환영받았고, 다음과 같은 특징들이 찬사를 받았다: 적당한 색 사용, 정확한 형태의 묘사, 그리고 완벽한 구성.

    2011년 9월 10일 #
  4. Ely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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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레아 드 비바르, 후안 (스페인)

    성 베르나르두스에게 나타난 동정녀

    1540-1545

    170 cm x 130 cm

    동정녀 마리아가 성 베르나르두스에게 나타나고 있는데, 그는 성모에 대한 헌신으로 말미암아, 그녀의 가슴에서 기적의 젖을 받았다.

    시토회의 수사는 그의 전형적인 특징들을 통해 묘사되어 있다. 그의 수도원장 지팡이, 그가 사양한 주교관, 그가 마리아에게 써서 바친 글들을 암시하는 책들.

    이 작품은 원래, 마드리드 주의 산 마르틴 데 발데이글레시아스의 수도원에 있는, 제단화의 가운데 패널이었다.

    2011년 9월 10일 #
  5. Ely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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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스타르트, 얀 (플랑드르)

    젊은 신사의 초상

    1520년경

    53 cm x 37 cm

    녹색을 배경으로 한 상반신의 초상에서, 얼굴과 손에 주의가 집중된다. 한동안, 이 작품은 카를 5세로 여겨졌는데, 아마 모델의 인물이 그와 같은 헤어컷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황제의 젊은 시절부터 뚜렷했던 그의 얼굴의 특징들은, 여기서 보이지 않고 있다.

    머리에 쓴 넓은 모자와 부유한 옷차림은, 그가 아주 선별된 계급의 일원이었음을 보여 준다. 이 중에 오스트리아의 마가렛도 있었으며, 하를럼 출신인 이 회화의 거장은 그녀를 위해 일했다. 모델의 우아하지만 표현적이지는 않은 분위기가, 그의 높은 신분을 더 강조해 준다. 그는 장갑을 벗은 왼손에 반지를 들고 있고, 장갑을 낀 오른손은 다른 장갑을 쥐고 있는데, 이는 결혼 초상화에서 나타나는 관습적인 표현이다.

    2011년 9월 10일 #
  6. Ely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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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캉팽, 로베르 (플랑드르)

    동정녀의 약혼

    1420년경

    77 cm x 88 cm

    이 작품에는 두 개의 장면이 나온다. 왼쪽에는, 돔으로 덮힌 원형의 로마네스크식 실내에서, 우리는, 마리아의 남편인 요셉을 상징하는 "꽃핀 지팡이의 기적" 을 본다. 건물의 스테인드 글라스 창, 주두 (柱頭), 팀파눔에는 구약의 장면들이 있어서, 신약의 내용들을 예시 또는 예고하고 있다. 일테면 이삭의 희생은, 그리스도의 구속 (救贖) 을 앞서 보여준다.

    오른쪽에는 고딕 식의 주랑 (柱廊) 아래에서, 마리아와 요셉의 약혼이 묘사되어 있는데, 새 법이 곧 도래함을 알려준다.

    그의 초기 작품들 가운데 하나인 이것에서, 캉팽은 프랑드르의 자연주의 및 사물의 질감에 대한 명확한 묘사와 결합된, 국제 양식의 독특한 이국적인 면모를 유지하고 있다. 성 클라라성 장 (長) 야고보의 모습이 뒷쪽에 그리자유 기법으로, 조각적인 풍모로 그려져 있다.

    한동안 로저 반 데어 바이덴의 것으로 추정되도 하였으며, 이 패널화는 1584년에 엘 에스코리알에 들어왔고, 프라도 미술관에는 1839년 들어왔다.

    2011년 9월 10일 #
  7. Ely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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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자 미상

    토가를 입은 아우구스투스

    18년경

    205 cm x 87 cm x 52 cm

    이 상은 17세기에, A.D. 2세기에 만들어진 토가를 걸친 몸과, A.D. 1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가는 아우구스투스의 두상을 합쳐서 만든 것이다.

    황제는 베일을 쓰고 "Forbes type" 의 초상을 취하고 있는데, 이는 그가 대사제에 임명되었을 때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초상들은 아우구스투스의 신성을 나타내는 문화적 이미지로서, 그가 죽어서 실제로 신성화되기 전에 배포되었다.

    2011년 9월 10일 #
  8. Ely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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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로리, 알레산드로 (이탈리아)

    십자가에서의 하강

    1560년경

    70 cm x 54 cm

    그리스도의 죽은 몸을, 아리마테아의 요셉, 니코데모스, 그리고 복음작가인 성요한이 십자가로부터 떼어내고 있다. 그의 발치에는, 성모 마리아, 죠셋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 그리고 마리아 막달레나가 있는데, 그녀는 고통의 표시로 팔을 들어 올리고 있다. 착한 도둑과 악한 도둑은 나무에 매달려 있다.

    이 장면은, 신약에 나오는 예수의 십자가로부터의 하강 이야기를 따르고 있다 (마태오 28, 57-59; 마르코 15, 42-47; 루카 23, 50-55, 그리고 요한 19, 38-42).

    바치오 반디넬리의 소묘 위에 알마노 살비아티가 색칠한 작품과 동일한 것으로서, 이 하강 그림은 개성적인 인물들로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는데, 그들 중 몇몇은 성경의 이야기와는 상관이 없다. 단지, 알로리는 로마에서 습득한 해부학과 외피의 표현에 대한 거장적인 솜씨를 나타내 보이고 있다.

    피렌체에서 브론치노와 수학한 후, 알로리는 1554년 로마로 갔다. 거기에 1560년까지 머물면서, 그는 미켈란젤로, 라파엘, 그리고 그 후속 세대의 매너리즘 작가들과 동화되었다.

    2011년 9월 10일 #
  9. Ely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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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라시오, 미켈리 (이탈리아)

    그리스도의 몸을 경배하는 교황 피우스 5세

    1572-1575

    42 cm x 30 cm

    그리스도가 죽어서 침대 위에 누워 있고, 그 옆에 교황 피우스 5세가 무릎 꿇고 있으며, 주위를 천사들이 둘러싸고 있다. 그들 위에는, 두 천사가 성배와 제병을 들고 있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것들이다. 그림의 아랫쪽에는, 아담의 해골이, 첫번째 인간을, 그리고 원죄의 구속을 암시하고 있다. 침대와 바닥에는 수난에 관한 사물들, 즉 가시 면류관과 채찍 같은 것들이 있다.

    이 작품의 주제는, 빵과 포도주로 나타내어지는, 성찬식에서의 고양감이다.

    성 피우스 5세의 모습은, 미카엘 지슬리에리 (1504-1572, 교황의 속명) 본인의 초상이다. 가교자 (pontifice, the bridge-maker) 자신은, 개신교에 대한 카톨릭 대항 개혁의 시기에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다.

    파라시오는 베네치아에서 티치아노와 수학하였고, 이후에는 베로네제와 교류하였다. 베로네제로부터, 그는 다양한 소묘로 화면을 구성하는 방식을 받아들였는데, 그 중 하나는 현재 런던의 대영 박물관에 있는 것으로서, 거기서도 그리스도와 해골의 형상이 보인다. 작가는 같은 구성을 베네치아의 성 요셉 교회 (1573) 의 제단화에서도 사용하였는데, 단, 여기서는 교황의 자리에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

    이 작품은 펠리페 2세 (1556-1598) 의 재위 기간에, 엘 에스코리알의 수도원으로 들어왔다.

    2011년 9월 10일 #
  10. Ely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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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로네제, 파올로 (이탈리아)

    악덕과 미덕 사이의 소년

    1571년경

    102 cm x 153 cm

    교훈적인 의도를 가진 작품으로서, 삶의 도정에서 사람이 이끌리게 되는 두 가지 길을 보여주고 있다: 미덕과 악덕. 미덕은, 고대 이래로부터 그녀의 상징인 월계관을 쓰고 있으며, 몸의 해부학적인 구조를 풍성한 옷자락 안에 감추고 있는데, 소년의 손을 잡고 있다. 악덕은, 금발의 베네치아 창부의 모습으로, 관대한 데콜레테에 많은 보석들을 걸치고, 아이의 주의를 끌기 위해 팔을 펼치고 있다.

    이 장면은, 그리스의 역사가이며 철학자인 크세노폰 (430-354 B.C.) 의 회상록에 나오는, 프로디쿠스의 허구적인 이야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소년 헤라클레스가 양쪽의 길에 이끌렸다는 같은 이야기를, 성 바실리우스 (330-379) 도 언급하였다.

    이것은 베로네제가 젊었을 때 남긴 작품이다. 그는 원숙기에 이 주제를 다시 다루었는데, 아마도 자화상을 넣은 그 그림은, 지금 뉴욕의 프릭 콜렉션에 있다.

    위의 작품은 1666년 마드리드의 알카자르 궁의 재고 목록에서 처음 언급되고 있다.

    2011년 9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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