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 자유 토론

  1. Ely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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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 기도서, 제1부: 영국적 혼합

    성공회 기도서는 거의 450년동안 영국적 영성을 형태지었다. 그것의 지속적인 특질들은 무엇인가?

    앨런 윌슨

    최근 작고한 남 캘리포니아 대학의 총장 스티븐 샘플은, 그의 대학원 학생들에게 짖궂은 장난을 하곤 했다. 그는 MBA 클라스의 독서를 인쇄되어 나온지 최소한 250년이 지난 책들에만 한정하였다. 무엇이든 그 오랜 세월동안 끊어지지 않고 사용되어 온 것이라면, 그안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을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그리하여, 공항 서점에 있을 법한 "...하는 법 (how-to)" 류의 문고본들은, 셰익스피어, 밀턴, 마키아벨리, 즉 학생들이 들어는 보았으나 거의 읽어보지는 않은 책들에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영국 성공회의 사제들을 포함하여, 공동 기도서는 그들 의식 속에서 비슷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다.

    새롭게 보완된 부분들도 있지만, 공동 기도서는 영국 성공회의 규범적인 전례로 남아있다. 이 책은 150개가 넘는 언어들로 번역되어 왔다. 그리고 그 단어들은 거의 450년동안 영국인의 삶과 문화 속에서 울려퍼져 왔다. 이제 그것은 영국 성공회에 의해, 인터넷에 전재되어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 공동 기도서는, 당시로서는 새롭게 고안된 통일성을 중심으로 모든 공동체를 불러 모으는, 대담한 시도였다. 이 강력한 계획은, 라틴 교회에서는 21년이 지나서 트리엔트 공의회가 피우스 5세의 미사 식전을 반포하였을 때에야 시행되었다. 공동 기도서는 라틴어로 진행되는 성찬례도 허용하였지만 (실제로 옥스퍼드에서는 오늘날까지 정기적으로 행해오고 있다), 예배는 통상 "사람들이 이해하는 언어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지방어 전례는 천주교로서는 이후 400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 개혁이었다.

    공동 기도서의 영어는 사실,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시간을 초월하는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운좋게 주어진 역사적 우연일 수도 또는 신의 은총일 수도 있겠지만, 기도서는 매우 그 시대를 반영한 산물이며, 근대 영어가 생성되고 있던 시기에 나온 것이다. 이러한 점은 그 책에, 셰익스피어, 말로우, 웹스터에서 느껴지는 것과 같은 떨림과 울림을 부여한다.

    공동 기도서의 어휘는 특히 단순하고도 직접적이며, 문장의 흐름은 고전 수사학의 원리를 신중하게 따르면서 이어지고 또 겹쳐진다. 내용은 어떠한가? 세계의 가장 뛰어난 극작가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자신의 창작인 작품들을 갖고 있지 않은 것처럼, 서구의 그리스도교 예식을 담은 책들도 사정은 거의 같았다. 16세기 이전에는 통일된 전례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주제에 대한 변주였다.

    혁명적이라기 보단 점진적이었다고 할, 토머스 크랜머는, 그의 텍스트를 대부분 전통적인 사룸 미사의 "용례" 에 기반하였고, 퀴요네스 추기경의 성무일도서로부터 보완하여 내용을 확장하고, 쾰른의 헤르만 폰 비드 대주교의 새로운 미사 경본을 참고하면서 내용을 다듬었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전체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하나의 편집본으로서 쓰이도록 할 것이었다.

    시편 텍스트는 커버데일의 번역으로, 감정 기복이 크고, 때로 지나치게 문학적이지만, 풍부하고 유창하다. 본기도는 대개 전통적인 것이며, 성찬례 독서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친정에 가는 일요일의 독서는 갈라디아서에서 뽑은 전통적인 것으로,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며, 자유의 몸이기 때문이다 (역주: 갈라디아서 4.21-31).

    공동 기도서는 개혁 작업의 중심을 이루었으며, 그것은 당대에 마무리될 수 없었다. 감성적인 면에 있어서는 일반적으로 개혁되었지만, 교의적으로는 혼잡하여서, 이러한 점은 300년 후에 법률적인 문제를 야기할 것이었다. 기이하고 모호한 규정들, 예를 들어 사제와 교회의 장식물들은 에드워드 6세 (역주: 1537-1553) 의 재위 2년도 양식으로 고정되어야 한다는 부분은, 거의 이해될 수 없었고, 시행되지도 못하였다.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1566년에 규정들에 대한 개략적인 지침을 마련하였지만, 그것은 20세기까지도 명확하게 정리되지 못하였다.

    기도서의 교리 문답은 성경, 신경, 십계명, 주의 기도에 기반한 단순한 믿음을 형태짓도록 의도되었다. "프로테스탄트" 라는 단어는 기도서에 나타나지 않는데, 기도서의 첫번째 판본은 이 단어가 그 익숙한 느낌으로 쓰이기 이전에 나왔기 때문이다; "앵글리칸" 이라는 말도 나오지 않는데, 이 단어는 19세기에 이르러서야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로 사용되게 되었다.

    공동 기도서는 진보와 보수 모두를 화나게 만들었다. 그러나 아직, 하나의 또는 또다른 형식으로, 기도서는 아주 잘 정착되어 있다. 영국 성공회의 43개 주교좌 성당들에서, 그것은 여전히 매일 쓰이고 있다. 당신이 영국 어디에 살든, 당신이 사는 곳에서 수 마일 이내에서 누군가는, 주일인 오늘 기도서를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기도서는 당연히 샘플 박사의 목록에 들어갈만 하다.

    2011년 9월 10일 #
  2. Elyot
    회원

    공동 기도서, 제2부: 아기 머리에 물 적시기

    우리는 왜, 아마도 하느님을 믿을 수 없을 아기들에게 세례를 주는가? 아우구스티누스가 은총과 원죄에 관해 옳았기 때문에.

    앨런 윌슨

    그리스도인의 삶은 세례와 함께 시작된다. 공동 기도서의 세례 의식은 나라 전역의 일요일 오후를 채우곤 했는데, 크랜머가 그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생각한 바와, 그의 책을 특징짓고 있는 인간성에 대한 시각은, 여전히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가치가 있다.

    크랜머는, 1960년대에 유행한 교묘한 단어를 쓰자면, 아기들에게 "차별없이" 행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공동 기도서를 사용하는 사제들은 누구에게 세례를 줄지에 대해 구분을 두는 것이 금지되었다 - 요점을 말하자면, 사제는 사제일 뿐이며, 하느님이 아닌 것이다. 공동 기도서는 양친이 그들 아기에게 세례를 줄 것인지 하룻밤동안 고려하도록 하였고, 만약 그들이 받아들일 수 없다면, 다음날 아침에 거부할 수 있었다. 세례는 믿음으로 거행되며, "아무런 의심없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이 자비로운 일을 허락하시어, 이 아이들을 그분의 거룩한 세례로 인도하시도다."

    1662년 이전에는 성인 세례에 대해 어떠한 조항도 없었으며, 그것이 부가되엇을 때, 부분적으로는 식민지 농업 때문이었고, 또한 당시의 영국 내젼 때문에 세례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크랜머는, 건강한 아이라면 기꺼이, 머리에 물을 적시는 대신 세례반에 잠길 것으로 생각했다 - 이러한 바램은 이후 450년동안 1000번에 999번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었다.

    의식 자체는 중세의 것에서, 소금과 거품 따위의 군더더기를 극단적으로 걷어낸 것, 그리하여 무엇보다도 그 핵심적인 단순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1549년 기도서는 크리솜 (흰 옷) 과 도유를 남겨 놓았지만, 이것들 역시 곧 소멸되었다. 세례 의식은, 이상적으로, 일요일 아침의 대예배 시간에 거행된다. 그것은 공동체 전체의 일이기 때문이다. 시간에 대한 이러한 개념은, 그러나, 블레어 말투로 하면, 목표라기 보다는 열망이며, 요구 사항이 아니다.

    크랜머는 세례가, 신비로운 방식으로 죄를 씻어내는 일이라고 보았다. 조지 고험 신부같은 빅토리아 시대의 복음주의자들에게는 매우 당혹스럽게도, 공동 기도서는 명백히 세례가 가진 재생의 역할을 가르친다. "이 아이들이 다시 태어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접붙혀지는 것을 보며 ..." 다시 말해, 크랜머는 성사에 주관적인 가치 그 이상이 있다고 믿었다.

    크랜머의 세례 전례는, 무엇보다도, 서방의 아우구스티누스주의에 대한 철저한 표현이다. 그것은 5세기부터 영국인들을 사로잡아온 펠라기우스주의를 분명하게 거부한다. 펠라기우스주의는, 만약 하느님이 상식을 갖고 있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지시해 준다. 하느님은 분명히, 죄와 구원을 위한 가능한 많은 부분을 인간들의 소관으로 해 두었을 것이다, 마치 대처 여사가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사유화하듯이.

    믿음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최선을 다하는 (역주: 살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부름이 될텐데, 이는, 교회에 가는 것은 하느님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이라는 모호한 느낌을 생겨나게 할 수도 있다. 이러한 헛소리의 경박한 면은, 성공적인 본보기가 되는 데 실패한 사람은 누구든, 다른 사람들에게 대한 본보기로 자기를 정당화하는 분노의 덫에 걸려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 또다른 영국적 추태로서, 이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설득력있었을 리 없다. 펠라기우스주의는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전반적인 태도이다. 그것은 교회 뿐 아니라, 타블로이드판 신문에도, 학교 순위표에도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반대로, 모든 인간들은 바램과 실제의 이루어짐 사이의 간극을 경험하며, 그것은 허리띠를 졸라매는 그들의 노력을 넘어선다는 점을 본다. 구원은 은총의 선물이지, 보상이 아니다. 사람들은 은총이란 정확하게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그것을 얻을 수 있을지 논의하겠지만, 아우구스티누스의 결론은, 구원은 값없는 은총으로 주어지지 인간의 노력으루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동 기도서의 세례는 아기가 하느님을 믿는가 만큼이나, 하느님이 아기를 믿는가에 관한 것이며, 우리는 아마 이런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강하게 주장할 것이다. 어떠한 도덕적 노력도, 어떠한 믿음의 확실성도 인간을 구원하지 못한다. 하느님은 "우리는 그 스스로 하는 어떠한 일이 대해서도 믿음을 갖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신다," 좋은 일에 대해서조차도.

    인간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이해는, 우리의 인간적 오류, 우리가 가끔 어깨를 으쓱 추어 올리며 "인간적인 본성" 이라고 부르곤 하는, 우리 밑에 깔려있는 악의 가능성을 강력하게 상기시킨다. 이것은 사소한 실수로 겪는 손실 따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이십 세기의 재앙인 도덕적 실패들을 이야기한다 - 나치의 학살, 소련의 강제 수용소, 크메르 루주의 킬링 필드. 공포는 보통 순수한 열심당원들에 의해 저질러졌다, 높은 이상을 지녔으나, 믿음에 대해서는 단순한 능력도 없는, 현대의 계몽된 사람들이 정말 악한 어떠한 짓이라도 저지르듯이.

    욥기 이래 그래왔듯이, 사람들은 하느님의 존재를 논쟁하는 데 있어 공기처럼 자유로워야 한다. 그러나, 만약 사람들이 악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지를, 그들 자신의 행동이 악이 될 수도 있는지를 논쟁 삼으려 한다면, 나는 그것이 혼란스러운 것일 뿐더러 위험하기까지 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이 아물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그것이 잠재적으로 흠결을 가질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은, 열심을 낙담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허위에 전적으로 기만당하지 않도록, 겸손으로서 그것을 보충하기 위한 것이다.

    2011년 9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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