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 번역 프로젝트 자료

  1. Cranmerian
    회원

    공동기도서
    Marion Hatchett

    한 시대의 일반적인 믿음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당대의 한 개인의 저서보다는 전례서들을 읽어보는 것이다. 여러분이 잉글랜드교회의 신앙을 알고자 한다면, 당대의 유명한 사람들보다는 공동기도서를 읽어보아야 한다. 존 셀던(1584-1654)

    그리스도교의 다른 교파교회들은 특정한 공의회(예를들면 트렌트회의)의 결정사항들이나 특정한 지도자들(루터나 칼빈 또는 웨슬리 등)의 저서들 또는 특정한 신앙고백서(루터교회의 일치서[Book of Concord]나 [장로교회]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최고의 권위를 부여하지만, 성공회신앙(Anglicanism)은 특정한 공의회나 지도자 또는 신앙고백서에 특별한 권위를 부여하지 않는다. 종교개혁시대에 잉글랜드교회의 뚜렷한 특징은 하나의 통일된 전례서의 제정이었다. 곧이어 잉글랜드교회의 변증가들은 이 교회를 옹호하는 논점으로, 공동기도서는 성서에 충실하며 초기교회의 전례[신앙생활]와 일치하며 그리스도교회를 일치시키고 신자들의 신심을 함양시킨다고 주장하였다. 국교회[성공회] 신자들(Anglican)과 퓨리탄들 사이의 구별이 확실해졌을 때, 국교회[성공회] 신자들의 뚜렷한 특징은 공동기도서에 대한 충성심이었다. 이 교회의 신학자들과 변증가들의 설교와 저서들에서 국교회[성공회]의 교리와 신앙생활에 관한 가장 중요한 표준은 공동기도서였다. 이 기도서는 시대에 따라 그리고 세계성공회의 각 관구교회에 따라 개정되었지만, 여전히 전세계적으로 성공회 신자들을 하나로 묶는 주요 원리이다.

    헨리8세가 로마와 단교한 직후 전례의 개혁에 대한 요구는 촉진되기 시작하였다. 마샬의 소기도서(Marshall’s Primer)’, 10개신앙조항, 헨리왕의 명령문들, 주교 신앙서, 13개신앙조항, 힐시의 소기도서(Hilsey’s Primer), 6개조항법, 국왕신앙서, 예식지침서(the Rationale of Ceremonial), 솔즈베리 성무일도서(Sarum Breviary)의 개혁판, 토마스 크랜머의 성무일도 초안들, 영문 대연도, 헨리왕 소기도서(Henry’s Primer), 공식설교문집, 에드워드왕의 명령문들, 전례자문서 (Consultation)의 영문번역본(이 책은 마틴 부처와 필립 멜랑히톤이 쾰른대주교인 헤르만 본 비드를 위하여 저술한 전례서), 성찬예식서(Order of Communion) 그리고 ‘크랜머 교리교육서’등은 전례통일법에 의해서 1549년 성령강림일부터 유일하게 사용되기 시작한 공동기도서를 준비하는 기본자료들이었다.

    1549년 공동기도서

    일부 학자들은 1549년 공동기도서를 단순히 솔즈베리전례(사룸양식의 예식들)를 축약한 것이라고, 일부는 독일의 종교개혁교회들의 예식서(German Church Order교회규정서)를 옮겨놓은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하지만 이 기도서는 두가지 범주에 모두 맞지 않으며, 그 자체로 독자성[통일성]을 갖고있다. 이 기도서는 매우 폭넓은 자료들을 참고하였다. 즉, 초기교회의 교부들, 당시에 라틴어로 번역 출판되기 시작한 동방교회의 전례서들, 중세기 로마교회의 여러가지 전례양식들, 로마 가톨릭교회 추기경인 프란시스코 퀴뇨네스(Francisco Quiñones)가 개정한 개혁 성무일도서(Reformed Breviary), 독일의 종교개혁 교회들의 예식서들 특히 전례자문서(Consultation), 잉글랜드교회의 종교개혁 공식문서들, 그리고 크랜머가 이전에 집필했던 두가지 성무일도 초안들. 이 자료들의 본문은 번역과정에서 거의 모두 개정되거나 편집되었다.

    이 전례서의 제목인 <잉글랜드교회의 사용례를 따라 왕국교회의 공동[매일]기도와 성사들의 집행, 그리고 기타 예식들과 의식들의 규범서>은 중세시대의 여러가지 전례서들과는 달리 전체 왕국내에서 사용될 통일된 전례서라는 점을 나타낸다. 즉 기존의 성직자용 전례서들(미사경본Missal, 성무일도서Breviary, 성사예식지침서Manuale, 주교예식서Pontifical과 예식지침서Customary 또는 “Pie”) 대신에, 성직자와 평신도가 모두 이용할 수 있으며 적당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는 단 한권의 전례서로, 각 예식들의 본문은 백성들의 언어로 표현되어 평신도들의 신앙교육에도 유익하였다.

    교회전례력(Church Year)은 독일 종교개혁 교회들의 예식서를 따라 단순하게 규정하였다. 하루의 기도는 아침기도와 저녁기도만을 규정하고, 수요일과 금요일은 특별히 아침기도후에 대연도와 Antecommunion(성찬례 예식중 성찬기도 직전까지의 예식)을 거행하도록 규정하였다. 그리고‘기존에 미사라고 부르던 주의 만찬(Supper of the Lord)과 거룩한 영성체(Holy Communion)’[감사성찬례에 대한 명칭-역자]는 일요일에 거행하도록 규정하였다. 전례력에 포함된 유일한 성일들[holy days축일들] 또는 특정기도문(proper)을 제공한 유일한 성일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의 축일들과 사도들과 복음서 저자들의 기념일들, 최초의 순교자인 성스테반, 죄없는 어린이들의 순교일(Holy Innocents), 성 막달라 마리아, 성 미가엘과 모든 천사들의 날, 그리고 모든 성인의 날이었다.

    크랜머는 초기교부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초기교회의 성무일도가 ‘성서 전권(또는 거의 전부분)’을 독서하는데 중점을 두었다고 추정하였다. 따라서 비성서적인 부분들의 독서를 모두 삭제하였다. 또한 그는 성서의 중요한 부분을 생략하지 않기 위하여 성서정과(성서독서표lectionary)를 교회력보다는 세속달력(civic calendar)에 따라 배열하였다. 신약성서는 계시록을 제외한 전권을 매4개월마다 독서하며, 구약성서는 반복되는 부분과 ‘비교육적인 특정한 책과 장들’을 제외한 전권을 일년 동안에 독서하며, 성시는 전편을 매달 독서하도록 배열하였다. 이제 사목직 성직자들은 성무일과를 사적인 신앙생활이 아니라 공개적인 예식으로 집례하여야 한다. 또한 백성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예식을 간단하게 만들기 위하여, 주로 독일교회 예식서의 사례를 따라 많은 후렴구들(anthem)와 응답송들(response)을 삭제하고 송가의 수(diet of canticle)를 대폭 축소하였다. 아타나시우스신경은 일년에 6번[성탄절 공현절 부활절 승천주일 성령강림주일 삼위일체주일 저녁기도-역자]으로 축소하여 대축일에만 암송하도록 규정하였다.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에 거행하도록 규정된 연도[대연도]는 1544년에 허용된 영문예식에서 주로 솔즈베리 순행연도서(순행예식서Sarum Professional)와 루터의 연도에 의존하였으며, 성인들에 대한 기원을 모두 삭제하였다.

    특정들(proper)중에서 [복음환호송인] 층계송(Graduals), 알렐루야(Alleluias), 부속(Sequences-알렐루야 다음에 부르는 노래)와 연송(Tracts-알렐루야 대신에 부르는 노래), 특정 봉헌문구들과 기도들(proper Offertory sentences and prayers) 그리고 특정 영성체후 문구들과 기도들(proper Postcommunion sentences and prayers)은 모두 삭제되었다. 입당송(Introit)의 경우 시편 119장이나 짧은 시편을, 또는 당일과 관련된 시편을 지정하였다. 본기도는 당일에 단 하나만을 사용하도록 규정하였으며, 이 본기도문들중 일부는 라틴어 기도문의 직역으로 일부는 이를 개정하였으며, 특히 성인들의 날들에 대한 본기도문들은 새로이 집필하였다. 서신과 복음의 독서는 기본적으로 솔즈베리전례를 그대로 보존하였다.

    [감사]성찬례 예식(Eucharistic rite)의 경우, 크랜머는 초기교부들과 동방교회의 전례서들, 그리고 독일 종교개혁 교회들의 예식서들을 통해서 기존의 예식을 대폭적으로 수정하였다(pp. 308-9참조). 이제 사제가 사적으로 낭독하는[혼자서 속삭이는] 기도문은 입당송(Introit) 동안에 낭독하는 주기도문과 정심기도(Collect for Purity)를 제외하고 모두 삭제하였다. 기리에와 영광송은 중간에 응답을 넣지않고 낭독하였다. 본기도(Collect of the Day) 다음에 국왕을 위한 기도(Collect for the King)를, 서신독서 후에는 곧바로 복음서 독서와 니케야신경을 낭독하였다. 설교를 하거나 공식설교문집중 한편이나 일부를 의무적으로 낭독하도록 규정하였다. 다음으로 가치있는[올바른] 성찬배수에 대한 권고문(exhortation)은 주로 독일 종교개혁 교회들의 예식서에서 인용하였다. 봉헌(Offertory) 때에 신자들은 자선함(poor men’s box)에 구호품을 넣고, 신자들이 교대로 준비하는 빵과 포도주를 이 때에 제대에 올려놓았다. 성찬기도 전체는 큰소리로 낭독하도록 규정하였다. ‘지상에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의 온전한 상태를 위한 기도’(Prayer for the whole state of Christ’s Church)의 일부분은 로마양식의 축성경(성찬기도Canon)과 독일교회의 신자들의 기도(Prayers of People)에서 인용하였다. 그외 나머지 부분은 로마양식 축성경과 성 크리소스톰의 그리스교회 전례서(성령임재청원의 경우), 독일과 잉글랜드 종교개혁의 공식 문서들, 그리고 성바실의 저서들에 의존하였다. 제정사(Institution Narrative)의 경우, 크게 확대된 로마양식 대신에 전적으로 성서의 서술에 근거한 문장들로 대체하였다. 이 성찬기도는 그리스도의 희생(희생제물sacrifice)에 대한 신중한 신학적인 선언이다. 즉,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온 세상의 죄를 위하여 완전하고 완벽하며 충분한 희생과 봉헌 그리고 보상’을 단 한번에 모두 제공하였으며, 우리에게 ‘자신의 귀중한 죽음을 영원히 기억하며 찬양하라’고 명령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이를 ‘우리들의 필수적인 의무이자 책임’으로,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우리의 희생’으로, 그리고 ‘우리 자신의 영혼과 육신을 합당하고 거룩하며 신실한 희생’으로 바친다. 중세말기에 성찬예배의 신심은 제정사(Institution Narrative)때 성체와 성배(elements)의 거양에 집중하였지만, 크랜머는 성찬의 배수[영성체]를 강조하는 성찬신심을 회복하기를 기대하였기 때문에, 13세기말과 14세기에 도입된[시작되었던] [성찬]거양을 금지시켰다-이는 분명하게 금지시킨 유일한 의식행동이었다. 1548년에 제정한 성찬예식서(Book of Communion)는 집례자와 신자들이 영성체 직전에 성찬에의 초대(Invitation), 죄의 고백(general confession), 용서선언(absolution), ‘위안의 말씀’(comfortable word), 올바른 영성체를 위한 청원기도(Prayer of Humble Access)를 배치하였다. 이 성찬기도서는 주로 헤르만의 전례자문서(Consultation)에 의존하였다. 이러한 영성체 준비예식은 이미 중세말기에 정규미사 밖에서 사적인 고백 직후 보존된 성체를 배수하기 전에 거행했던 신심활동에서 선례를 찾았다. 중세양식의 경우, 영성체에 앞서 집례자가 신자들에게 성찬요소들[빵과 포도주]을 보이면서(showing) ‘세상의 모든 죄를 없애는 하느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하였지만, 크랜머는 이를 분명하게 새로운 본문으로 교체하였다. 즉, ‘우리의 유월절 희생양이신 그리스도는 우리들을 위하여 단 한번 최종적으로 희생제물이 되셨으며, 스스로 십자가의 죽음때에 우리의 모든 죄를 떠맡았기 때문에, 그 분은 세상의 모든 죄를 없애는 정말로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과 함께 기쁘고 거룩한 잔치를 거행한다.’ 1549년 기도서는 구체적으로 제병들(wafer)에 ‘문양을 넣지 않고 기존의 것보다 크고 두껍게’ 만들고 또한 각 제병은 ‘두개 이상의 조각으로 나누어’ 배찬하도록 규정하였다. 이는 그리스도의 부서진 몸과 빵의 나눔이라는 상징성을 다시 회복시키는 조치였다. 이제 평신도들은 면병과 포도주, 즉 두종류를 배수하였다. 성찬집행문는 루터파의 전례들(‘당신에게 주는’, ‘당신을 위하여 흘리신’)을 확대한 것이었다. 영성체후 성서문구들은 대안적으로 사용하지만, 영성체후 기도문은 한가지로 고정하였다. 축복기도(blessing)는 루터파의 전통을 따라 ‘하느님의 평화는 …’를 채택하였다.

    크랜머는 다른 예식들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개정하였다. 세례예식의 경우, 본문에 앞선 지시문(rubric)에서 세례는 공적인 행위이며 영아의 그리스도교 입교이자 신자들의 세례언약(profession)의 재확인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 예식은 세례성사의 의미와 필수성을 설명하는 권고문으로 시작한다-이 역시 지시문처럼 독일의 자료들에 의존하였다. 그 다음에 독일예식서들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루터의 ‘홍수기도’(노아의 기도, Flood prayer)를, 그리고 십자성호긋기(signation)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중세 서방교회의 견진례의미의 정의와 관련된 형식을 동반하였다. 구마식(exorcism) 바로 앞에 독일예식에서 사용하는 초기교회의 기도문을 개정하여 번역한 문구를 배치하고, 독일 예식서처럼 어린이를 축복하는 성서의 본문은 마태복음 대신에 마가복음의 본문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 본문은 구마식과 관련된 것이 아니고 유아(infant)세례에 대한 성서적 전거로 사용하였다. 신경과 주기도문-초기교회의 신경암송(redditio symboli)의 일부-의 낭독에 앞서 전례자문서(Consultation)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기도문을 약간 개정하여 배치하였다. 솔즈베리양식에서 규정한 [세례]물 축복기도(Blessing of the Font) 대신에 초기 프랑스교회에서 사용한 기도문들을 사용하였다. 세차례의 포기선언은 전통적인 형식인 사탄과 그의 활동과 허세 대신에 세상과 육정과 악행으로 교체하였다. 세차례의 언약후에 세례후보자의 의향에 대한 전통적인 질문들을 배열하였다. 영아는 ‘허약하지 않다면’ 세차례 침례를 실행한다. 크랜머는 세례옷의 수여 직전에 도유하는 솔즈베리방식을 생략하고, 세례옷을 수여한 후에 ‘성령의 기름부음’이라는 문구를 사용하는 형식과 관련된 도유식을 포함하였다. 이 도유식은 중세 신학자들이 공통적으로 견진례의 질료(matter)라고 이해하였던 것이었다.

    1549년 기도서는 세례예식 안에 ‘견진례’라고 불렀던 중세기 예식을 계속 포함 시키면서도, 독일과 스위스 개혁가들 그리고 보헤미아 형제단(Bohemian Brethren)의 사례들처럼 ‘견진례’라는 또다른 예식을 제정하였다(pp. 294-5참조). 하지만 이 예식은 교리교육과 세례언약의 확언, 그리고 영성체의 허가를 모두 결합시켰다. 공동기도서는 이 예식을 대륙의 개혁가들이나 중세교회의 ‘견진례’ 보다 훨씬 분명하게 주교의 예식으로 만들었다. 성령의 은사를 위한 기도문[후보자를 위한 기도-역자]은 개정되었으며, 의식행동(ceremonial action)은 중세양식의 도유식이 아니라 독일교회의 예식서들처럼 머리에 손을 얹는 행동(안수 laying on of hands)으로 규정하였다. 그다음으로 평화의 인사(peace), 전례자문서(Consultation)에서 인용한 기도문, 축복기도로 마감하였다.

    혼인예식은 공적인 성찬례(eucharist)에서 거행하도록 규정하였다. 이 예식은 솔즈베리(Sarum)전통과 요크전통, 전례자문서와 독일교회의 예식서들, 그리고 국왕 신앙서(King’s Book)의 혼인해설에 주로 의존하였다. 신랑과 신부의 의무를 설명하는 설교가 없을 경우에 사용하는 설교문을 첨부하였다. 신랑과 신부는 당일에 영성체를 하도록 규정하였다.

    병자방문[조병예식]의 경우, 솔즈베리양식은 사망직전의 신자에게만 도유와 영성체를 규정하였다. 하지만 1549년 기도서는 임종직전의 신자만이 아니라 중병을 앓는 신자들까지 포함하였다. 기도서는 환자가 당일의 성찬례에서 축성된 성찬으로부터 영성체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였으며, 또한 다른 날의 경우 환자의 집에서 성찬례를 집례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이러한 조치는 주로 솔즈베리전례와, 쾰른과 브란덴부르그 교회의 예식서들에 근거하였다. 성찬례 예식의 권고문은 사적인 기도나 [공적인 예배에서] 죄의 고백을 통해서도 양심의 갈등을 진정시킬 수 없는 신자들에게 사적인 고백(private confession)을 권고하였다. 따라서 병자방문예식에는 모든 사적인 고백에 사용할 수 있는 용서선언(absolution)을 포함하였다.

    1549년 기도서의 장례예식은 4가지로 구분되었다. 즉 교회 또는 묘지까지의 순행[당시 교회의 옆마당이 묘지였다-역자], 매장(burial), 간단한 기도예식(Office), 성찬례. 이 예식의 원자료들은 솔즈베리 예식지침서, 독일교회의 예식서들, 잉글랜드 종교개혁 소기도서들(primers)에 수록된 별세자를 위한 기도예식(Diriges)의 자료들이었다. 기도문들에 죽은 자를 위한 청원을 포함하였지만, 이 예식의 분위기는 솔즈베리예식보다는 훨씬 덜 참회적이며 보다 희망적이었다.

    성직자 서품예식은 1550년에야 출판되었다. 이 예식에서 하급성직(소품minor order)과 심지어 차부제까지도 삭제하였다. 중세기의 서품예식은 너무 길고 복잡하였기 때문에 이 예식의 필수적인 형상(form)과 질료(matter)에 대하여 끊임없이 논쟁하였다. 새로운 서품예식의 모델이자 주요자료는 스트라스부르의 마틴 부처가 쓴 <성직서품예식서>(De ordinationate legitima)로, 여기에 솔즈베리 주교예식서에서 따온 자료들을 추가하고 다시 배열하였다. 예식에 앞선 서문에서, 크랜머는 주교, 사제, 부제의 세가지 성직은 사도시대부터 존재하였으며, 성직은 ‘안수와 함께 공적인 기도’로 허용되며, 그리고 이러한 성직들은 앞으로도 잉글랜드교회에서 지속될 것이며, 이제부터 이 양식에 따라 서품받지 않은 자는 잉글랜드교회에서 주교나 사제나 부제로 활동할 수 없다고 적시[단언]하였다.

    1552년 공동기도서

    17세기초부터 왕국교회 신자들 일부는 1549년 기도서를 우상화하였지만, 이 기도서가 공식적으로 사용된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데번셔의 반란군들, 에드먼드 본너와 토마스 떨비, 스티븐 가디너와 같은 주교들, 그리고 여전히 옛 전례서를 사용하거나 ‘옛 미사처럼 집례하는’ 사제들에게는 이 기도서가 너무나 급진적이었다. 하지만 노퍽지방의 반란군들이나, 마틴 부처와 피터 마터와 같은 대륙의 개혁가들-이들은 당시에 잉글랜드 대학교의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었다-이나, 존 후퍼와 존 녹스와 같은 일부 사제와 주교들은 충분하게 개정되지 않은 것으로 인식하였다.

    많은 학자들은 1552년 개정기도서의 프로테스탄트 특성을 지적하였지만, 실제로는 극히 일부분 뿐이었다. 매일기도에는 시작부분에 참회양식을 추가하였으며, 복음송가의 대안으로 시편을 포함하였다. 성찬례 양식의 경우 입당송(Introit)을 삭제하였으며, 봉헌때의 성찬식탁준비를 생략하고 성찬기도를 과감하게 축소하였다. 영성체는 일년의 한번에서 세번으로 확대하였다. 성찬집행문은 다른 문구로 교체하였으며, ‘어떠한 실질적이고 본질적인 현존’(any real and essential presence)을 부인하는 검정색 지시문(Black Rubric)을 추가하였다. 성찬후 남은 빵과 포도주는 사목자(curate)가 ‘직접 사용하기 위하여’가져가도록 규정하였다. 세례예식의 경우, 구마식과 도유식을 삭제하고, ‘견진례’에서는 십자성호긋기를 삭제하였다. 병자방문의 경우 보존된 성찬으로부터 영성체를 하는 규정과 도유식을 삭제하였다. 장례예식은 전보다 더욱 간결하게 하여, 성찬례에서 특정기도 (Eucharistic propers)를 삭제하고 죽은 자를 위한 청원기도를 거의 모두 삭제하였다. 전례복의 경우, 제의와 장백의, 튜니카(tunicle), 대례복 그리고 제대의 양초에 대한 언급을 삭제하였다. 이제 ‘석제제대’(altar)라는 용어를 완전히 삭제하였다. 서품례의 경우, 서품자에게 증여하는 상징물로 성서 이외의 것들(사제에게는 성배와 빵, 주교에게는 사목용 지팡이)을 모두 삭제하였다.

    1552년 개정기도서는 확실히 대륙의 종교개혁을 선호하는 자들에게 수용가능하도록 하면서도, 보수파들을 포용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중세적 요소들을 다시 도입하였다. 예를들면 소축일(흑색축일Black Letter Days)을 다시 복원하였으며 [4개], 또한 8일간(팔부octaves)도 복원하였다. 이제 매일기도의 의무는 사목직을 담당하는 성직자 뿐만아니라 전체 성직자로 확대되었다. 아타나시오신경은 일년에 6번에서 13번으로 확대하였으며, 중세기의 관례였던 사제의 서신낭독을 복원하였다. 하지만 신자들이 교대로 성찬용 빵과 포도주를 준비하는 규정은 삭제하였다. 중세말기에 관례가 되었던 영성체의 무릎꿇는 자세는 의무로 규정하였다. (1549년 기도서는 영성체의 자세를 규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부 교회에서는 대륙의 개혁교회들처럼 집례자가 본당의 신자석에서 앉아있는 신자들에게 직접 배찬하였다) 여러가지 점들에서 1552년 개정기도서는 프로테스탄트적이라기 보다는 첫 기도서에 대한 반발에 대응하는 것이었다(reactionary). 제2차 전례통일법은 1552년 모든 성인의 날부터 이 개정기도서를 사용하도록 규정하면서, 1549년 기도서를 ‘신실한 예식서’(godly order)라고 언급하며, 오로지 잘못된 설명과 사용방법에 대한 의문들 때문에 개정하게 되었다고 설명하였다. 이는 개정자들의 입장을 잘 설명하는 진술문으로 보인다. 개정기도서에 나타난 변화들은 1549년 기도서에서 모호하였던 점들을 보다 분명하게 진술하고, 지시문을 보다 확실하게 규정하려는 목적이었다.

    개정기도서는 처음으로 특별한 경우의 기도문들(대연도 끝부분에서 오늘날의 간구기도와 감사기도-역자occasional prayers)을 제공하였다. 입당송들은 모두 삭제되었으며, 성 막달라 마리아를 위한 본기도도 삭제되었다. ‘주의 만찬 또는 성찬례의 집행예식’[감사성찬례 예식-역자]에서 주기도문과 정심기도는 이제 큰소리로 낭독하도록 규정하였다. 기리에[자비송]를 9번 반복하는 대신에, 중세기처럼 응답문구를 넣은 자비송과 여러 개혁교회의 양식들의 사례를 따라서 십계명에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의 마음이 이 법을 지키게 하소서’라는 응답문을 넣어 낭독하도록 하였다. 영광송은 성찬례양식의 맨 끝으로 이동시켰다. 설교후에는 자선품의 수집[봉헌], 그리고 ‘지상에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의 온전한 상태’(전 그리스도교회)를 위한 기도문을 배치하였다. 이 기도문은 1549년의 성찬기도의 중보기도를 개정한 것이었다. 다음으로 권고문, 성찬에의 초대, 죄의 고백, 용서선언과 ‘위안의 말씀’을 배치하였다. 성찬기도문 자체는 과감하게 개정되었다. 수르숨 꼬르다, 서문 그리고 삼성경[거룩하시다]은 보존하였지만, [삼성경에서] Benedictus Qui Venit(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는 단 한 줄인 ‘지극히 높으신 주님께 영광’(Glory be to thee, O Lord, most high)으로 축소하였다. 바로 이 다음에 1549년 기도서에서 성찬기도 전의 신심표현이었던 성찬참여 청원기도(Prayer of Humble Access), 그리고 1549년 기도서의 제정사의 결론단락의 개정문을 배치하였다. 여기서 성령청원(epiclesis)을 가치있는[올바른] 성찬배수를 위한 청원으로 교체하였다. 제정사 직후에 성찬의 배찬[분배]을 실시하며, 이 때 신자들은 무릎을 꿇어 배수하도록 규정하였다. 새로운 성찬집행문은 쯔빙글리의 이해를 반영하였다. 영성체직후에 주기도문 그리고 두가지의 영성체후 기도문중 하나를 낭독하도록 규정 하였다. 하나는 1549년의 성찬기도의 마지막 단락을 축소한 기도문이었으며, 또 하나는 1549년의 영성체후 기도를 개정한 것이었다. 따라서 개정된 양식에 의하면, 성찬을 받는 행동[영성체]은 정확하게 중세기 양식에서 성찬을 거양하던 시점이 되었다. 이는 신자들의 신심을 축성된 성찬(elements)에 대한 숭배(adoration)에서 성찬의 배수[영성체]로 대체시키려는 의도적인 시도였다. 성찬례용 빵은 ‘일상식사에서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것’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다.

    세례예식의 경우, 첫 기도서의 십자성호긋기, 구마의식, 세례옷의 수여와 도유를 모두 삭제하였다. 포기선언과 신앙확언, 그리고 세례의향의 표현은 모두 하나로 묶었으며, 침례는 3번에서 한 번으로 축소하였다. 그러나 이 양식은 세례를 통한 중생(baptismal regeneration)의 교리를 1549년 양식보다 분명하게 표현하는 새로운 초대문(bidding)과 감사기도를 추가하였다. 도유식을 삭제하고 이마의 십자성호를 이마에 긋는 것-이는 (세례예식에서 머리 꼭대기에 도유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중세기 견진성사의 도유식을 하는 위치이다-으로 대체하였으며, 이 때에 중세기 견진성사의 도유식 형태를 암시하며 토마스 아퀴나스의 ‘견진성사’의 정의와 연관된 본문을 동반[사용]하였다. 견진례 양식은 크랜머와 다른 개혁가들의 저서들에서 적시된 원리들을 보다 분명하게 표현하였다.

    병자방문[조병예식]에서는 도유식 그리고 보존된 성찬으로부터의 영성체를 삭제하였으며, 병자를 위하여 성찬례를 집례할 때 성찬기도를 축약하는 것도 삭제하였다.

    장례예식의 경우, 죽은 자를 위한 청원은 삭제되었으며, 특별한 기도의식 (Office)이나 성찬례의 거행을 삭제하였다. 그러나 19세기까지 장례예식에 대한 설명들은 때때로 매장식 이전에 매일기도와 성찬례를 위하여 시신을 교회 안으로 운구하였음을 보여준다.

    1552년 서품예식은 후보자의 예복에 대한 규정을 모두 삭제하고, 또한 후보자에게 인도[증정]하는 상징물(성직예물instrument)을 성서만으로 제한하였다.

    1559년 공동기도서

    1552년 개정기도서는 에드워드의 사망과 메리의 왕위계승으로 겨우 1년도 사용하지 못하였다. 메리는 솔즈베리 전례를 복원하였지만, 1558년 왕위를 계승한 엘리자베스는 1552년 기도서를 일부 개정한 새로운 기도서를 1559년에 다시 도입하였다. 개정된 내용의 대부분은 보다 보수적인 인사들을 포용하려는 목적으로 보인다. ‘검정색 지시문’은 삭제되었으며, 성찬집행문은 1552년의 문장앞에 1549년의 문장을 추가하였다. ‘전례용품 지시문’(Ornaments Rubric)(다양한 해석을 야기하였다)을 통해서 ‘에드워드6세의 첫기도서’의 전례복 규정을 복원시켰다. 1561년에는 60개 이상의 소축일(Black Letter Days)을 규정한 새로운 교회력을 발행하였다. 1562년에는 성시의 박절식 번역(metrical version)과 몇개의 성가, 그리고 기도서의 특정한 본문을 박절식으로 개편하여 예배와 설교 전후에 사용하도록 허가하였다. 이는 대륙의 개혁교회들의 박절식 시편송(metrical psalmody)을 선호하는 자들에 대한 양보였다. 엘리자베스치하 동안에 퓨리탄들 사이에는 공동기도서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었다.

    1604년 공동기도서

    제임스1세가 왕위를 계승하기 위하여 잉글랜드로 내려올 때, 퓨리탄들은 주로 1559년 기도서에 대한 불만사항을 담은 ‘천명의 청원서’를 제출하였다. 이에따라 개최된 햄프턴궁회의는 퓨리탄들에 대한 몇가지 양보-그중 가장 중요한 내용은 사적인 세례를 허가받은 성직자만으로 제한하는 것이었다-를 포함한 개정기도서를 인준하였다. 한편 퓨리탄들은 교리교육서에 추가된 세례와 주의 만찬에 관한 내용에 대하여, 그리고 소축일의 추가 등과 같은 소규모 변화에 대하여 불만을 표시하였다.

    1637년 스코틀랜드 기도서

    제임스1세는 통치기간 동안에 스코틀랜드의 전례를 잉글랜드의 공동기도서와 일치시키려고 노력하였다. 마침내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왕정은 1637년 새로이 제작된 기도서를 스코틀랜드교회에 부과하였다. 이 기도서는 통상적으로 ‘로드의 기도서’로 언급되었지만, 이제 주요 집필자들은 스코틀랜드 주교인 존 맥스웰과 제임스 왜더번으로 밝혀졌다. 이 기도서는 1604년 기도서에는 없지만 스코틀랜드인들이 소중하게 여겼던 특징들을 추가하였다. 즉, 성찬요소들 (elements)의 봉헌, 성령임재 청원기도(에피클레시스), 빵의 뗌 그리고 부제의 전례적 역할을 추가하였다. 또한 계시록의 권위를 축소시키고 ‘사제’(priest)라는 용어 대신에 ‘presbyter’를 사용하고, 성서의 본문은 헨리왕 번역본(Great Bible) 대신에 제임스왕 번역본[흠정역]을 사용하고, 스코틀랜드인들이 수용할 수 있는 변화들을 채택하였다. 그러나 스코틀랜드인들을 자극하는 다른 특징들(예를들면 소축일의 확대 등)을 추가하고, 명칭을 ‘공동기도서’로 유지하며 1604년 기도서의 기본적인 형식과 내용을 그대로 보존하였다. 이 기도서를 집행하려는 시도들 때문에 스코틀랜드의 주교제는 결국 일시적으로 폐지되었다.

    1662년 공동기도서

    공위시대 동안에 공동기도서의 사용은 불법으로 규정되었으며, 왕정복고때에 퓨리탄들은 ‘반대항목들’(Exceptions)과 박스터의 대안예식서를 제출하였지만, 이제 기존의 공동기도서의 복원을 주장하는 자들이 의회와 성직자회의를 장악하였다. 코진(Cosin)의 개정 초안-‘더럼기도서’-은 퓨리탄들에 대한 일부 양보를 포함하였지만, 이전에 그와 렌(Wren)이 준비했던 기록들에 주로 의존하였다. 실직적으로 변화는 거의 없었다. 일부 특별한 경우의(occasional) [간구]기도들과 감사기도들, 그리고 ‘선상기도양식’(Sea Form)을 추가하였으며, 예식 본문의 경우 [세례]물의 축복청원과 별세자의 기념 등 몇가지만을 변경하였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본문보다 지시문에서 나타났다. 이들 대부분은 1637년 스코틀랜드 기도서에서 채택되었으며, 성찬례교리의 강화를 나타내었다. 즉, 빵과 포도주는 봉헌때에 바치며, 성찬기도는 ‘축성기도문’(Prayer of Consecration)으로 제목을 바꾸고 빵의 뗌을 복원하였으며, 성찬의 부족때에 성찬기도의 일부를 다시 반복하도록 규정하였으며, 그리고 남은 축성된 성찬은 성찬배수자들이 모두 소화하도록 규정하였다. 서품예식은 장로제적인 해석을 피하는 방식으로 강화되었다. 반면에 1559년이후 제거되었던 ‘검정색 지시문’을 복원하였다. 하지만 내용은 1552년 기도서의‘어떠한 실질적이고 본질적인 현존’ 대신에 ‘그리스도의 타고난 육신과 피의 물질적인 현존’을 부인하는 형식으로 변경하였다. 1662년 기도서는 아직도 잉글랜드교회[영국성공회]의 공식적인 기도서이다.

    세계성공회의 다른 관구들의 개정기도서

    미국의 독립으로 미국성공회는 공동기도서를 개정할 수 밖에 없었다. 즉, 1662년이후 발생한 변화는 변화된 정치적인 상황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하도록 요구하였다. 1662년 전례통일법이후에도 퓨리탄들과 로드파의 제안서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화해의 시도로1688년과 89년에 포괄적인 기도서로 개정하려는 노력은 좌절되었다. 일부 성공회신자들은 동방교회의 전례서들 특히 <사도전승>(Apostolic Tradition)에 근거한 개정서들을 출판하여 소집단들에서 사용하였다. 아일랜드교회를 위한 기도서에는 추가적인 예식들을 포함하였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서약거부자들’(Nonjurors)은 일부 예식들을 개정하여 사용하였다. 일부 광교회파들(Latitudinarians)과 ‘아리우스파’들도 기도서 개정안을 출판하였다. 1784년 존 웨슬리는 미국의 감리교도들을 위하여 개정판을 출판하였으며, 1785년 보스톤의 왕립교회(King’s Chapel)[후에 콜롬비아대학교로 개칭]은 ‘아리우스파’ 인 디오필러스 린제이(Theophilus Lindsey)의 개정안에 기초한 개정기도서를 채택하였다. 최초의 미국기도서의 개정작업에 참여한 자들은 이러한 제안서들과 개정판들에 익숙하였으며 이러한 변화들에 호의적이었다.

    1789년의 미국성공회 기도서는 언어를 현대화하고, 금식에 관한 규정을 단순화하였으며, 반복을 줄이고 사목적 예식들을 축소하며, 매일기도에서 시편송(psalmody)의 선택적 사용을 허용하였다. 또한 이 기도서는 아타나시오신경을 생략하고 대안적으로 사도신경과 니케아신경을 사용하도록 허용하였으며, ‘음간에 내리시어’(He descended into hell)라는 구절을 생략하거나‘세상을 떠난 영혼들이 거하는 장소에’(He went into the place of departed spirit)로 대체하여 사용하도록 허용하였다. 또한 권고문과 병자방문에서 사적인 고백[비밀고백]에 대한 언급을 삭제하고, 즈가리아송가(Benedictus Dominus Deus)를 축소하고 성모 마리아송가(Magnificant)와 성시메온송가(Nunc Dimittis)를 삭제하였다. 이 개정기도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성찬기도로, 1662년 기도서보다 역사적인 성찬기도의 구조와 내용에 더욱 가까운 것으로 스코틀랜드의 ‘위부키’(Wee Bookies-성찬의 전례만을 인쇄한 비공식 소책자)을 모델로 하였다.

    19세기의 기도서 개정은 1892년 미국성공회의 개정기도서 외에 아일랜드성공회의 비국교화에 따른 개정이 유일하였다. 이 1877년 개정판은 당시의 복음주의자들 (Evagelicals)을 수용하는 양보를, 그리고 이 시기에 활발했던 ‘의식주의운동’ (ritualism)에 반대하기 위하여 규정을 강화하였다. 19세기 동안에 영국성공회의 기도서에 대한 유일한 공식적인 변화는 1859년 국가의식들(State Services)의 철폐와, 1871년의 새로운 성서정과 그리고 1872년의 ‘예배단축법’(Shortened Services)의 제정이었다.

    1908년 제5차 람베스회의의 ‘기도서의 현지화과 다양화’(Prayer Book adaptation and enrichment) 위원회는 기도서의 개정을 위한 몇가지 원칙들을 채택하였다. 즉, 지시문을 [그 지방의] 관습에 맞게 채택할 것, 반복과 중복을 축소할 것, 다양화(enrichment)과 대안들 그리고 융통성(elasticity)을 제공할 것, 불명확하거나 오해를 낳을 수 있는 용어를 교체할 것, 기도서의 앞부분에 첨부된 교회력과 성서와 시편정과(Tables)를 개정할 것. 기도서는 곧 스코틀랜드(1912년과 1929년)와 카나다(1922년), 아일랜드(1927년) 그리고 미국 성공회(1928년)에서 개정되었다. 영국성공회의 개정판(1928년)은 성직자회의에서 채택되었지만 의회의 허가를 얻지 못하였다. 이 모든 개정판에서 대부분의 변화는 융통성(flexibility)과 다양화(enrichment)에 대한 관심이었다. 가장 쟁점이 되었던 문제들은 별세자를 위한 기도와, 성찬례교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성찬례양식(성찬기도나 각 순서)의 변화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이후 몇십년동안 세계성공회의 각 관구들은 이와 비슷한 개정을 단행하였다.

    1958년 람베스회의 이후의 개정

    1958년 람베스회의는 보다 과감한 개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몇가지 지침을 제시하였다. 세계성공회 총회(Anglican Congess)는 이를 1963년에 보다 구체적으로 규정하였다. 이때부터 대다수 관구교회들은 기도서를 개정하거나 ‘대안예식서’를 허용하였다. 이러한 개정의 목적은 성서와 초기교회의 유산인 원천[원자료들]으로의 복귀, 전례학의 연구성과의 수용, 그리고 현재의 선교적 사목적 필요에 부응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개정기도서들은 언어를 보다 이해하기 쉽게하고, 사회적 관심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며, 특정한 신앙공동체들의 필요에 맞게 융통성을 허용하였다. 많은 관구교회들은 교회일치운동에 참여하여 전례본문들의 공동번역을 실현하고(영어 전례문 국제위원회, International Consultation on English Texts등), 공동의 성서정과(제2차 바티칸회의 이후의 가톨릭교회 성서정과나 초교파 전례위원회Joint Liturgical Group의 성서정과)를 채택하였다.

    새로운 기도서들의 매일기도는 융통성을 허용하고 다양한 송가들을 제공하며, 성서정과는 교회력과 더욱 밀접하게 결합되었다. 일부 기도서들은 주요축일들-재의 수요일[사순첫날 재축복식], 종려주일, 세족목요일, 성금요일, 부활절(밤예식 포함)과 성령강림절-에 대한 특정전례들(proper liturgies)을 제공한다. [감사]성찬례의 경우 입당예식(entrance rite)을 다양하게 허용하며, 성서독서는 신약성서와 복음 뿐만아니라 구약성서와 시편까지 허용하며, 신자들의 기도에 대한 다양한 양식을 제공한다. 또한 평화의 인사를 복원하고, 성찬식탁예식(Liturgy of the Table)의 4가지 행동구성(action shape)을 복원하였다. 즉 성찬식탁의 준비, 성찬감사기도(Eucharistic thanksgiving), 빵의 뗌, 사제와 회중의 영성체. 새로운 기도서들의 성찬기도는 초기교회의 기도문들의 주요한 구성요소들-구원(redemption) 뿐만아니라 창조와 성육신에 대한 감사, 종말론적인 언급, 성령에 대한 청원, 마감하는 송영 등-을 복원하였다. 그러나 일부 관구교회에서 성찬의 [희생]봉헌(oblation)과 성령청원은 여전히 논쟁거리로 남아있다.

    개정된 입교례양식(initiation)은 각 기도서마다 크게 다르지만 공통적인 관심사를 나타낸다. 즉, 차별없는 세례, 성년의 재언약으로서의 견진례, 견진례와 관계없이 영성체 허용, 부모의 보증인 허용과 언약, 그리고 도유식 등을 포함하는 다양한 의식들.

    일부 관구교회에서는 옛 출산후 예식(churching rite)을 대체하여 아이의 출산이나 입양 감사예식을 채택하였다. 일부는 참회자의 화해예식도 추가하였다. 다른 사목적 예식들도 의식적으로 풍부[다양]하고 융통성있게 개정하였다.

    1958년 람베스회의이후 실행된 개정기도서들은 기도서의 역사에서 가장 급진적인 개정을 단행하였지만, 이들은 모두 1549년의 첫 기도서가 주장했던 똑같은 원리들에 기초하였다. 즉 1) ‘성서에 근거할 것’ 2) ‘초기교회의 예식과 일치할 것’ 3) 그리스도교회를 통일시킬 것 4) 신자들의 신심을 ‘함양’시킬 것.

    참고문헌
    Booty, J. E., The Book of Common Prayer 1559: The Elizabethan Prayer Book. The University Press of Virginia, The Folger Shakespeare Library, Charlottesville, 1976.

    Brightman, F. E., The English Rite: Being a Synopsis of the Sources and Revisions of the Book of Common Prayer with an Introduction and an Apppendix, 2 vols. Rivingtons, London, 1915.

    Buchanan, C. O., Latest Liturgical Revision in The Church of England 1978-1984. Grove Books, Bramcote, 1984.

    Buchanan, C. O., ARCIC and Lima on Baptism and Eucharist, Including the Lima Eucharistic Liturgy. Grove Books, Bramcote, 1983.

    Cadwell, E., A History of Conferences and Other Proceedings Connected with the Revision of the Book of Common Prayer; from the Year 1558 to the Year 1690, 3rd edn. Oxford University Press 1849.

    Clarke, W. K. L. (ed.), Liturgy and Worship: A Companion to the Prayer Books of the Anglican Communion. SPCK, London, 1932; reprinted 1981.

    Couratin, A. H., Reshaping The Liturgy: Invitation to a Parish Enquiry, Church Information Office, 1964.

    Cuming, G. J., The Godly Order: Text and Studies Relating to the Book of Common Prayer. Alcuin Club, London, 1983.

    Cuming, G. J., The Durham Book: Being the First Draft of the Revision of the Book of Common Prayer in 1661 Edited with an Introduction and Notes. OUP 1961.

    Dix, G., The Shape of the Liturgy. A & C Black, London, 1945; Seabury Press, New York, 1982.

    Donaldson, G., The Making of the Scottish Prayer Book of 1637. Edinburgh University Press, 1954.

    Hatchett, M. J., Commentary on the American Prayer Book. Seabury Press, New York, 1980.

    Hatchett, M. J., The Making of the First American Book of Common Prayer 1776-1789. Seabury Press, New York, 1982.

    McGarvey, W., Liturgiae Americanae: or the Book of Common Prayer as Used in the Umnited States of America Compared with the Proposed Book of 1786 and with the Prayer
    Book of the Church of England, and an Historical Accountg and Documents. Philadelphia Church Publishing Company, Philadelphia, 1907.

    Marshall, Paul D., Paryer Book Parallels, 3 vols. Church Hymnal Corporation, New York, 1989, 1990.

    Milton, A., Catholic and Reformed: The Roman and Protestant Churches in English Protestant Thought. CUP, 1995.

    Spinks, B. D. (ed.), The Sacrifice of Praise: Studies on the Themes of Thanksgiving and Redemption in the Central Prayers of the Eucharistic and Baptismal Liturgies. Rome, Centro Liturgico Vicenziano, 1981.

    White, S. J., Christian Worship and Technological Change. Abingon Press, Nashville, 1994.

    2012년 3월 22일 #

이 토론 주제에 대한 RSS 피드

답글

글을 올리려면 로그인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