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 번역 프로젝트 자료

  1. Cranmer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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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품예식서
    Paul F. Bradshaw

    1. 서품예식서의 역사
    2. 서품의 조건들
    3. 각 양식[서품예식]들
    4. 세가지 성직들: 주교와 사제
    5. 세가지 성직들: 부제
    6. 세품예식의 집례자
    7. 성공회 성직에 대한 논쟁
    8. 최근의 변화

    1. 서품예식서의 역사

    개혁된 잉글랜드교회(Anglican)의 첫 [성직]서품예식서는 1550년3월초 <대주교, 주교, 사제와 부제를 임명하고 축성하는(making and consecrating) 형식과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일반적으로 이 예식서의 주요자료는 1549년 잉글랜드로 망명온 독일개혁가 마틴 부처의 서품예식서(ordination order)였다고 동의한다. 이 책에서 부처는 그리스도교회에는 사목자들(minister)의 세가지 직제(신품order)가 있기 때문에, 주교서품예식은 ‘가장 엄숙하고 길게’, 부제의 서품예식은 간단하게 거행해야 한다고 지시하였다. 이러한 지시는 곧 잉글랜드교회의 세가지 서품예식에 그대로 반영되었으며, 또한 주교서품예식은 대주교의 축성에도 사용되도록 의도하였다. 각 예식들 사이의 차이는 중세의 서품예식에서 채택한 성직예물들(elements)의 추가함으로써 분명하게 구별되었다.

    1552년에 공표된 개정기도서(pp.136-8참조)의 출판때에 서품예식서는 기도서와 합본되었지만 독자적인 속표지(표제title page)를 유지하였다. 이 때에 첫번째 예식서를 개정하여 많은 변화들을 추가하였다. 첫 예식서에서 부제와 사제후보자는 ‘장식없는 장백의’(plain Alb)를, 주교후보자는 ‘중백의와 대례복’을 입도록 지시하였지만, 개정 예식서에서는 서품받는 사목직(ordained ministry)의 본질에 대한 중세시대의 개념을 유지시킨다고 주장하는 진보적인 개혁가들의 반대를 수용하여 이 지시문을 모두 삭제하였다. 이와 동시에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각 예식에서 성직(office)에 맞게 증정하는 상징물[성직예물]을 개정하였다. 첫 예식서에서는 중세기의 관행에 따라 새로이 서품받는 자에게 새로운 역할을 상징하는 물건의 인도를 그대로 채택하였다. 즉, 중세기에 부제는 전례에서 그가 낭독하는 복음을 기록한 책을, 사제는 성반과 성배를, 주교는 안수를 받는 동안에 목에 거는 복음서와 그 후에 주교의 권표(상징물insignia)(사목용 지팡이, 주교관, 반지 그리고 장갑)를 인도받았다. 1550년 예식서는 부제에게 신약성서를, 사제에게 성배와 빵과 함께 성서를, 그리고 주교에게는 안수 동안에 목에 거는 신약성서와 그 후에 사목용 지팡이(pastoral staff)를 인도하였다. 그러나 1552년 개정예식서에서 부제는 그대로 신약성서를, 사제와 주교는 이제 성서만을 증정받았다.

    1661/2년의 기도서 개정때에, 서품예식서에 비록 모호하지만 후보자의 전례복에 대한 지시문들을 다시 복원하였다. 즉, 부제와 사제 후보자는 ‘적절한 예복’(decently habited)을, 주교후보자는 먼저 ‘주교용 중백의(Rochet)를 입고’ 시험[심문, 서품서약의 질문들]후에‘나머지 주교복장’을 입도록 규정하였다. 이 때에 개정한 다른 내용들은 아래의 각 절에서 살펴볼 것이다.

    2. 서품의 조건들

    서품예식서는 서문(Preface)에서 무엇보다도 부제의 년령을 21세, 사제는 24세 그리고 주교는 ‘만30세’ 이상으로 규정하였다. 1575년에 부제의 년령을 23세로 조정하였지만 1662년 기도서때까지 이 서문을 개정하지는 않았다. 서품후보자들은 또한 ‘먼저 추천(calling)를 받고, 면접을 거쳐(실습tried), 시험을 받으며(심문examined), 그리고 필수적인 자질들을 갖췄다고 확인받아야’ 했다. 이러한 조건은 이 당시에 모든 주류 종교개혁 교회들의 서품규정이었다. 이러한 규정은 후보자의 자격조건이 거의 없었던 중세기의 느슨한 관행을 종식시키고, 한편으로 사목직(ministry)에 대한 공식적인 허가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급진적인 종파들[종교개혁의 급진파들]을 반대할 목적이었다. 따라서 ‘추천’(calling)이란 하느님의 내적인 부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항상 그렇다고 가정하였지만), 교회의 외적인 위임(mandate)을 의미하였다. 따라서 (1550년 예식서의 서문을 인용하면) 누구든 ‘스스로의 개인적인 권위에 의해서’ 서품받은 사목직(ordained ministry)의 기능들을 수행할 수 없다.

    ‘면접과 시험’ (trial and examination)에 대하여 서문은 후보자들이 ‘고결한 생활을 하고 범죄기록이 없어야’ 하며, ‘라틴어에 능숙하고 성서에 정통해야 한다’라고 규정하였지만, 나머지 조건은 그 이후에 교회법으로 규정하였다. 중세의 관례를 따라 예식의 시작때에 부제직와 사제직 후보자(주교직은 아님)를 추천(presentation)할 때, 총사제(archdeacon)는 이들을 시험하였으며(examined), 이들이 학식과 ‘신실한 생활’로 적합한 후보라고 확언한 후에, 예식에 참여한 회중들은 이들의 서품에 장애가 될 수 있는 범죄나 결격사유를 제시할 기회를 부여받았다. 각 예식들은 부처의 예식서에 따라 모든 후보자에게 그들의 믿음과 의향에 대하여 여러가지 질문들을 포함하였다. 이러한 공개적인 시험은 개혁주의(Reformed) 교회들의 서품예식의 공통적인 특징이었으며, 중세예식에서 주교후보자에 대한 질문을 모델로 하였다.

    서문은 또한 부제서품은 주일이나 성일[대축일]에 그리고 ‘교회[회중]앞에서’ 거행하도록 지시하였다-이 두가지 조건 역시 모든 개혁주의 교회들의 서품예식의 특징이며, 서품예식을 초기교회에서 실시했던 공적인 행사로 복원하려는 의도였다. 아마도 이 지시문들은 사제서품예식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주교예식의 경우, 이는 이미 중세시대의 관행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지시문이 필요없었다. 하지만 1661/2년의 개정때에 이러한 취지를 나타내는 분명한 용어를 예식의 제목에 추가하였다. 이와동시에 서문에는 부제직을 ‘교회법에서 지정한 시기에’(즉 전통적으로 사계대제에) 서품하며, ‘긴급한 경우’에만 주일이나 성일에 할 수 있다는 진술문을 추가하였다.

    3. 각 양식[서품예식]들

    중세기 동안에 신학자들은 서품예식을 구성하는 최소한의 필수적인 특성들에 대하여 상당히 다양한 입장을 나타내었다. 스콜라신학에 따르면, 모든 성사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따라 두가지 필수적인 요소 즉 ‘질료’(matter)와 ‘형상’ (form)으로 구성되어야 했다. 이런 점에서 ‘질료’는 성사적 행동[성사예식]에서 물질적인 요소를 의미하고 ‘형상’은 질료에 반드시 수반되는 대사(문구words)를 의미하였다. 서품예식의 경우, 중세기 예식에는 점차적으로 매우 많은 의식들이 추가되었기 때문에 ‘질료’와 ‘형상’을 분명하게 정의하기 어려웠다. 또한 당시에는 이 추가된 의식들의 기원을 정확하게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종종 필수적인 요소들에 대하여 이상한 결론들을 내리곤 하였다. 일부 신학자들은 서품예식에 필요한 질료와 형상을 그리스도가 직접 제정하였다고 믿었으며, 일부는 각 예식에 적합한 것들을 결정하는 것은 교회에 위임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많은 학자들은 각 성직의 상징물을 인도하는 의식(ritual)이 서품례의 필수적인 ‘질료’를 구성한다고 믿었으며, 반면에 일부는 도유의식(anointing)이나 손을 머리에 얻는 행동[안수의식]도 포함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이러한 행동들을 수반하는 명령형의 공식문(서품선언문imperative formulae)을 ‘형상’으로 인식하였다.

    서품예식서의 서문은 신약성서의 증거에 의존하여 성직서품을 수여하는 필수적인 의식을 ‘머리에 손을 얻는 행동과 공적인 기도’라고 규정함으로써 그러한 중세적인 혼동을 제거하였다. 이는 오늘날 많은 학자들이 초기교회(early centuries)의 예식과 일치한다고 입증한 결론이다. 그러나 여기에 한가지 차이점이 있다. 초기교회에서 기도는 전체 예배공동체의 청원(침묵 또는 연도의 형식으로)과, 후보자의 머리에 양손을 얻는 동안에 말하는 후보자를 위한 기도로 구성되었지만, 잉글랜드교회의 서품예식서는 그렇지 않다. 아마도 서품예식서의 저술가들은 신약성서가 서품행동에 앞선 회중의 기도만을 말하고, 머리에 손을 얹음과 밀접하게 관련된 후보자를 위한 서품기도(ordination prayer)를 말하지 않은 것으로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부제서품예식에서 후보자를 위한 기도는 예배의 시작부분에서 특별대도(special suffrage)와 마감 본기도(concluding collect)로만 실시하였다. 그 다음에 성서독서(ministry of word)와 시험(examination)후에야 머리에 손을 얹는 행동을 하였다. 이때에 중세기의 양식-형식은 새로운 문장이었다-처럼 기도가 아닌 명령형의 공식문(선언문imperative formula)을 수반하였다. 즉,‘하느님의 교회에서 부제의 직분을 수행하는 권위를 당신에게 위임하니 이를 받으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이었다.

    사제서품예식의 경우도 이와 비슷하였다. 그러나, 이 때의 기도-부처의 예식에서 따온 것-는 머리에 두손을 얻기[안수식] 직전에 위치하였지만, 본래 기도의 핵심부분-후보자에게 성령을 내려달라는 청원-을 완전히 생략하고 대신에 이를 회중을 위한 일반적인 기도로 전환하였다. 머리에 두손을 얹을 때 수반하는 명령형의 공식문(imperative formula)은 주로 요한복음20.22-3-이는 일부 중세기 양식에서도 사용되었다-에 근거하여, ‘성령을 받아라(receive).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하느님의 말씀과 거룩한 성사를 충실히 시행하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이라고 하였다.

    주교예식의 경우, 특별대도(special suffrage)와 본기도를 포함한 연도에 앞서 초대문(bidding)은, ‘우리에게 천거된 이 사람을 승인하여 파송하기’ 전에 드리는 기도에서 회중들은 그리스도의 사례-12제자들을 선택하여 파송하기 전 온 밤을 기도로 보냈다-와 안디옥교인들의 사례-그들이 ‘바울로와 바르나바를 안수하거나 파송하기 전에’ 단식하며 기도하였다-를 따른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이 예식에는 머리에 손을 얻는 행동[안수식] 직전에 후보자를 위한 기도가 있었다. 이 기도문은 부처의 예식서의 기도문중에서 시작부분 그리고 중세기 서품예식의 기도문 일부를 혼합한 것이었다. 반면에 안수때의 명령형 공식문(imperative formula)은 디모데후서1.6-7에 기초하였다. 즉, ‘성령을 따르라(take), 그리고 그대의 머리에 두 손을 얻음으로써 그대 안에 있는 하느님의 은총을 생생하게 간직하라. 하느님은 우리에게 비겁한 마음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를 주신다.’

    서품예식서의 서문에서 기도에 관한 진술에도 불구하고, 머리에 두 손을 얻는 행동과 함께하는[수반하는] 이러한 명령형 공식문(imperative formula)은 잉글랜드교회의 많은 신학자들에게 서품예식의 필수적인 ‘형상’(form)으로 인식되었지만, 17세기에 이르러 로마 가톨릭 신학자들은 사제와 주교 서품예식에 포함된 이 명령형의 공식문(formula)들이 서품하는 특정한 직분을 분명하게 명시하지 않았다고 비판하였다. 따라서 1661/2년의 개정때에 이러한 결함에 대한 비판을 제거할 목적으로 ‘하느님의 교회에서 사제/주교의 직분과 활동을 위하여 이제 안수로써 이를 당신에게 맡긴다’라는 문장을 추가하였다.

    4. 세가지 성직: 주교와 사제

    중세기의 서품예식들은 기본적으로 사제직을 제의(cultic)와 희생(sacrificial) 을 나타내는 용어로 표현하였지만, 개혁된 잉글랜드교회의 서품예식서는 ‘사제’라는 용어를 계속 사용하였지만 말씀과 사목적 돌봄의 사목직(ministry)을 강조하였다-물론 (pp. 321-4 참조). 이 때문에 서품예식의 복음독서중 하나는 목자와 양에 관한 언급인 요한복음10장이었으며, 주교가 후보자에게 말하는 권고문 (exhortation)은 후보자들을 ‘주님의 가족들을 가르치고 미리 경고하고 먹이고 보살피며, 그리스도의 양들을 찾아다니는 주님의 전달자, 파수꾼, 목자이자 청지기’라고 불렀다. 시험에서의 질문들은 성서의 가르침, 교리와 성사, 그리스도의 권징(discipline), 성실한 기도와 공부, 그리스도의 자녀들에 대한 모범, 그리고 이러한 책임을 수행하는 자들에게 ‘안식과 평화와 사랑’을 권면할 것을 언급하였다. 마지막으로, 주교가 안수후에 새로이 서품받은 자들에게 성서(첫 서품예식서에서는 성배와 빵과 함께)를 인도할 때, ‘... 하느님의 말씀을 설교하고 거룩한 성사를 집례하는 권위를 받으라’고 하였다.

    서품예식서는 주교를 ‘그리스도의 회중[교회-1662년]들을 치리하는 직책 (government)’에 임명한다고 표현하며, 사제서품예식의 질문들을 수정하여 주교의 특별한 직무인 교리의 순수성 유지, 규정 위반자의 교정과 처벌, 그리고 가난한 자들(the needy)의 돌봄을 강조하였다(pp. 333-7참조). 안수직전의 기도는 중세예식의 언어들을 채택하여 후보자에게 ‘하느님과의 화해라는 기쁜소식’을 널리 전파하고, 하느님의 자녀들의 복리(good)를 위하여 권위[권한]를 행사하라고 말하며, 안수후에 [성서를 증정하면서-역자] 후보자에게 말하는 공식문(formulae)은 교육활동(learning)과 사목활동(shepherding)을 언급한다.

    중세시대 내내 신학자들은 사제직과 주교직의 차이에 대하여 상당히 논쟁하였다. 일부 학자들은 이 둘을 사목직의 서로 다른 성직(orders)이라고 주장하였으며, 일부는 주교직을 같은 사제직내의 상위직 또는 ‘고위직’(dignity)으로 인식하여, 주교직에 ‘서품한다’(ordain)라는 용어 대신에 ‘축성한다’(consecrate)고 말하였다. 일반적으로 종교개혁시대의 신학자들은 신약성서가 주교들과 사제들 사이를 구별하지 않았다고 이해하였다. 물론 서품예식서를 집필할 당시에 켄터베리 대주교이자, 틀림없이 이 예식서의 주 집필자였던 토마스 크랜머도 이러한 입장을 공유하였다.

    따라서 예식서의 서문은 ‘성서와 초기교회의 저자들을 열심히 독서한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교회에 주교, 사제, 그리고 부제라는 사목자들의 성직(직분order)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는 확언으로 시작하였다 할지라도, 이것이 곧 서품예식서를 집필한 자들 모두가 주교와 사제가 분리된 성직(order)을 구성한다는 점에 일치하였다는 의미는 아니다. 마치 1549년 기도서의 성찬기도 양식이 성사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를 모두 포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의도적으로 표현된[씌여진] 것처럼, 서품예식의 구체적인 특색들이 주교서품 후보자가 새로운 성직(order)이나 새로운 성령의 권능을 받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특별한 역할(function)을 교회로부터 위임받는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첫째로, 부제와 사제서품예식은 ‘서품하는 성직인 부제와 사제의 의무와 직분(office)이 그리스도의 교회에 얼마나 필수적인가를 선언하는 권고(exhortation)’로 시작하였지만, 주교축성예식에서는 이러한 지시문이 없다. 들째로, 부제와 사제서품예식들의 제목에는 ‘성직에 서품하는’(ordering) 말을 사용하지만, 주교예식의 경우에는 그대신에 ‘축성한다’(consecrating)는 용어를 사용한다. 세째로, 주교예식 자체에 ‘서품하다’(ordain)와 ‘성직에 서품하다’(order)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직분’(직책office)이란 단어도 단 한번만 사용되었지만, 그대신에 ‘축성하다’(consecrate)와 ‘직무’(work) 그리고 주교의 사목직(ministry of a bishop)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네째로, 연도에 앞선 초대문(bidding)에서 바울로와 바나바스를 위임하기 전에 안디옥교회가 행한 기도(사도행전13.3)를 회중의 의무[신자들의 역할]에 대한 선례로 인용한다. 다섯째로, 주교서품 뿐만 아니라 사제서품예식에서도 서신독서로 디모데전서3장-주교가 갖추어야 할 자질들을 말한다-을 사용함으로써 신약성서에서 나타나는 주교와 사제의 동일성(일체성identity)을 계속 강조한다. 또한 사제서품예식에서 대안으로 사용할 수 있는 서신으로 사도행전 20.17-35을 제시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이 본문은 특히 28절에서 에페소교회의 원로(elder)들을 ‘하느님의 회중들[교회]을 보살피는’ 일을 맡은 ‘감독’(관리자overseer)으로 묘사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사제서품예식의 안수때의 명령형 공식문은 ‘성령을 받아라 (receive)…’로 시작되지만, 주교예식에서는 ‘성령을 따르라(take), 그리고 그대의 머리에 두손을 얻음[안수함]으로써 그대안에 있는 하느님의 은총을 분발시킨다는 것을 기억하라. . .’로, 이 때에[안수 때에] 새로운 은사(gift)를 부여받는 것인지 아니면 이전의 안수때에 받은 은사를 회복[회상]시키는 것인지 매우 모호하다.

    이후에 잉글랜드교회(Church of England)의 퓨리탄들은 이러한 논점들을 이용하여 사제와 주교의 구별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지만, 17세기 이후로 주교제 지지자들은 주교를 분리된 별개의 성직(order)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1661/2년의 기도서 개정때 이에 맞게 수정한 것은 놀랄 일이 아니었다. 즉 주교축성예식의 제목에 ‘축성하는’이라는 단어앞에 ‘서품 또는’(ordained or)을 추가하고, 후보자의 추천때에 사용하는 문구(words)에서 ‘축성하는’ 단어 앞에 ‘서품 그리고’(ordained and)를 추가하였다. 성서본문의 낭독의 경우, 사제서품예식의 성서본문인 디모데전서 3장을 에페소서4.7-13로 교체하고, 사도행전20장은 주교축성예식으로 이전하였다. 사제서품예식의 세가지 복음독서 본문중 두가지인 마태28.18-20과 요한20.19-23-을 주교축성예식으로 이전시켰으며(이는 아마도 사제가 아니라 주교가 사도들의 계승자라는 점을 보여주려는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하나도 마태9.36-8로 교체하였다.

    더구나 이 예식에서 ‘목회자’(목사 pastor)라는 용어는 완전히 삭제되었으며, 이 때문에 퓨리탄들은 잉글랜드왕국 교회에서는 주교와 사제가 그리스도의 양떼들(flock)을 통치한다고 가르친다고 더이상 주장할 수 없었다. 대신에 이 단어는 주교축성예식의 시작부분에 있는 새로운 본기도(collect)에 나타난다. 여기서 이 기도문은 주교를 또한 ‘신실한 권징’을 집행하는 자로 표현한다. 주교의 ‘바른 치리’(well-governing)에 대한 언급은 연도후의 본기도에 포함되었으며, 시험에 추가된 질문들에는 이제 성직자를 서품하는 의무를 분명하게 명시하였다. 마지막으로 안수때의 명령형 공식문(imperative formula)을 ‘안수함으로써 이제 당신에게 위임된, 하느님의 교회에서 주교의 직분(office)과 직무(work)를 위하여 성령을 받으라(receive).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그리고 안수함으로써 그대안에 있는 하느님의 은총을 분발시킨다는 것을 기억하라. . .’로 수정하였다.

    5. 세가지 성직: 부제

    부제서품예식의 마지막 본기도와 지시문은 부제들이 최소한 일년후에‘이 하급 성직’에서 ‘상급성직’으로 진급하며, 이 기간 동안에 ‘교회의 사목활동 (Ecclesiastical administration)에 관한 모든 것들에 완전하고 능숙한 전문가가 될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예식은 집필자들이 이 성직을 단순히 사제직의 발판-이는 중세적 이해이며, 불행하게도 서품예식서가 집필된 이후에도 지속되었다-과는 다른 것으로 이해하려는 특색들을 포함하고 있다.

    첫째로, 사제서품예식과는 달리 이 예식 전반에서 성령을 수여한다는 언급이 전혀 없다. 주교와 사제서품예식과는 달리 ‘성령이여 오소서’라는 성가도 이 예식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또한 안수때의 명령형 공식문(imperative formula)도 성령을 언급하지 않으며, 다만 ‘부제의 직분(office)을 수행하는 권위’만을 언급한다. 그리고 연도의 마감 본기도에서는 이러한 성직자(minister)에의 지명이 주교와 사제서품예식의 동일한 본기도에서 ‘성령’을 언급하는 것과는 달리 ‘신의 섭리(divine providence)라고 말한다. 정말로 성령에 대한 언급은 전체 예식에서 단 한번-후보자의 시험중 첫번째 질문에서-만 나타난다. 이 질문은 다른 두 예식에는 없는 것이다. 즉, 이 질문은 후보자가 이 직분(office)을 맡기 위하여 ‘내적으로 성령의 감화를 받아서’ 이 직분을 선택하였다고 확신하는가를 묻는다. 이러한 요구사항은 거의 확실히 사도행전6.2-7(이 예식의 대안 서신독서들중 하나)에서 사도들의 지시에 따라 신자들이 ‘성령이 충만한’ 스데파노와 그의 동료들을 지명한 이야기에서 유래하였을 것이다. 이는 곧 여기서 부제직은 사도들을 통해서 활동하는 하느님의 섭리의 창조물로 인식되었으며, 사목활동에 대한 교회의 권위는 이미 성령을 받은 자들에게 부여되었다는 것을 제시한다. 이는 그리스도가 사도들에게 성령을 부여하였듯이 사제후보자에게 성령을 부여하는 사제직과는 대조된다.

    둘째로, 부제서품예식은 중세기의 예식에서 언급한 역할들-성찬례 조력, 성서낭독, 세례의 집례와 설교-을 여전히 언급하면서도 부제를 단순히 전례적인 역할들만을 수행하는 것 뿐만아니라, ‘전도구의 병든자와 가난한 자, 불구자’를 찾아다니는 의무를 갖는다고 묘사한다. 이러한 역할은 그리스도교 역사의 흐름속에서 사라졌던 것들이었으나, 다른 종교개혁가들이 이미 제시하였듯이 부제직의 핵심이었다. 세례집례는 부제의 정상적인 기능이 아니라는 퓨리탄들의 비판에 응답하여, 1661/2년 기도서 개정때에 ‘사제가 없는’경우들로만 제한하였다.

    6. 서품예식의 집례자

    서품예식서는 잉글랜드교회의 모든 사제와 부제의 서품예식 집례자를 당연히 주교라고 여기고, 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예식서는 주교의 축성때에 집례자를 관구의 대주교 또는 ‘지명받은 다른 주교들’로 지시하였다. 중세초기의 관행에 따라 사제서품 예식에 참석한 다른 사제들 그리고 주교축성에 참석한 다른 주교들도 후보자의 안수에 참여하였다. 전통적으로 주교축성에는 적어도 세명의 주교가 참여해야 했다. 서품예식서는 이에 대한 최소한의 수를 규정하지 않았지만, 대주교에게 후보자를 추천하기 위해서는 두명의 주교가 더 필요하였다. 엘리자베스의 통치 초기인 1559년에4명의 주교들이 매튜 파커를 켄터베리대주교로 축성하는데 참여하였으며, 1620년 스코틀랜드 서품예식서는 지시문에서 적어도 3명의 주교가 새로운 주교를, 그리고 4명의 주교가 대주교를 축성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그이후의 축성식들에는 보통 그 이상의 주교들이 참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잉글랜드교회가 이러한 방식을 항상 유일하게 적법한 서품방법으로 간주하였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1550년 서품예식서의 본래 의도는 기존의 관례(practice)[주교가 항상 서품의 집례자-역자]를 고칠 급박한 필요성이 없었기 때문에 그대로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증거에 따르면, 16-7세기의 잉글랜드교회내의 공통된 의견은 주교에 의한 서품이 가능한 경우에 그대로 유지하지만, 불가능한 긴급한 경우에는 유럽의 다른 종교개혁 교회들의 경우처럼 사제에 의한 서품도 충분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주교에 의한 서품을 거부하고 그 대신에 사제들이나 회중들에 의해서 서품된 잉글랜드 퓨리탄들에 대해서는 이러한 긴급성이 없었기 때문에 전혀 다른 입장을 취하였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공화정시기 직후 1660년 잉글랜드교회에 주교제를 복원할 때(pp. 19-25참조), 주교들은 공위시대 동안에 다른 방법으로 서품받은 모든 사목자들(ministers)에게 주교에 의한 서품으로 다시 받도록 요구하였다.

    그러므로 1661/2년 서품예식서를 개정할 때, 잉글랜드교회의 사목직(ministry)으로 인정받기 위한 절대적인 조건으로 주교에 의한 서품을 요구하도록 개정하였다. 이전의 서품예식서 서문은 아직 주교나 사제나 부제가 아닌 자는 ‘이후부터 아래의 형식에 따라서’ 서품받지 않으면 직분(office)을 수행할 수 없다고 진술하였지만, 이제는 이를 수정하여 ‘이후부터 아래의 형식에 따라서, 또는 이전에 주교의 축성이나 서품을 받지 않았다면, 누구도 합법적인 주교나 사제나 부제로 인정될 수 없다’고 하였다. 이러한 조건은 모든 비주교제 교회에서 서품받은 사목자들에게 적용되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잉글랜드와 그 밖의 지방에서 잉글랜드교회(Church of England)는 주교에 의하지 않은 서품(non-episcopal ordination)의 충분성을 부인하는 입장-의도적은 아니었다 하더라도-을 채택하였다.

    7. 성공회 성직에 대한 논쟁(Anglican Orders controversy)

    16세기 이후로 성공회의 성직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신학자들로부터 지속적으로 무효라고 공격받았다. 먼저 이러한 공격은 엘리자베스1세의 지명을 받은 매튜 파커의 대주교 축성때에 충분한 수의 주교들이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축성과 그 이후의 잉글랜드교회 주교들의 축성은 무효라는 점에 집중되었다. 더구나 1604년 ‘낵스헤드 거짓소문’(Nag’s Head Fable)의 유포로 더욱 확장되었다. 즉, 실제로 파커는 칩사이드에 있는 낵스헤드 술집에서 이상하고 불법이자 유효하지 않 예식으로 축성되었다는 소문이었다. 여기에 파커의 주 축성자[집례자]인 윌리엄 발로우(William Barlow)의 주교축성에 대한 잔존기록이 없다는 사실로 더욱 확대되었다. 잉글랜드교회 신학자들은 이러한 역사적인 기록에 대한 의심을 해명하는데 주력하였으며, 이후 두 교파[교회]간의 논박은 상대적으로 이러한 점들을 강조하지 않았다. 그러나 서품예식의 필수적인 조건들을 구성하는 것들에 대하여 상당히 다양한 주장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잉글랜드교회의 서품예식은 질료나 형식이나 의도에서 결함이 있다는 비난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이 지루한 논쟁은 마침내 1896년 교황 레오13세의 교서 <Apostolicae Curae>의 공표로 정점에 다달았다. 이 교서는 1550년의 주교와 사제 서품예식에서 형식과 의도에 결함이 있다고[불완전하다고] 선언하였다. 즉, 사제서품예식에서 안수때의 명령형 공식문(imperative formula)이 형식적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제라는 성직이나 그에 해당하는 은총과 권능을 분명하게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형식상 충분하지 않았으며, 또한 이 예식의 다른 기도문들 역시 여러가지 이유들로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정당한 형식을 제공할 수 없었으며, 특히 희생과 사제직에 대한 중세 서방교회(Catholic)의 개념에 대한 언급을 모두 삭제하였기 때문에 적법한 형식을 충족시킬 수 없었다. 똑같은 주장은 주교예식의 명령형 공식문(formula)과 기도문들에도 해당되었다. 그리고 이것들의 의미는 시간이 지나도 변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1662년의 개정 예식서도 헛수고였다. 더구나 잉글랜드교회(Church)의 과거행동(what did)을, 그리고 그리스도에 의해서 제정된 성사의 본질에 속한 것을 거부하는 분명한 의도로 과거의 예식을 새로운 예식으로 교체하였다는 것은 ‘성사에 필수적인 의도가 결여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의도 또한 성사에 역행하며 이를 훼손시킨다는 점’을 분명하게 입증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이 교서는 ‘잉글랜드교회의 예식에 따라 수행된 성직서품은 과거와 현재 모두에서 절대적으로 무효이다’고 결론지었다.

    이것으로 이 문제는 완전히 종결되지 않았고, 논쟁은 지속되었다. 로마 가톨릭 학자들은 이 교서의 의미를 명확하게 해석하려고 시도하였으며, 잉글랜드교회 학자들은 이 교서의 논리에 도전하였다. 그러나 에큐메니칼 대화의 확대와 성사신학에 대한 다른 접근방법의 출현으로, 이제 서품과 사목직에 대한 두 교파교회간의 대화는 전혀 다른 기본원리에 기초하여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아마도 이러한 이야기에서 얻는 긍정적인 교훈으로, 성직(order)의 적법성은 예식이나 의도나 주교적 계승과 같은 형식상의(사소한technical) 문제들에 근거해서는 만족스럽게 결정될 수 없으며, 오히려 이러한 사목직들(ministries)을 수행하고 그러한 성직서품을 실행하는 교회기관[교파 교단]의 믿음[신앙]의 충분성을 인정하는 것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8. 최근의 변화[발전]

    세계성공회의 다른 관구들은 먼저 1662년 서품예식서를 그들의 상황에 필수적인 부분만을 반영하여 최소한으로 수정하여 사용하였다. 그러나 1927-8년 영국성공회의 기도서개정 시도(실패하였지만)이후 서품예식서에 포함된 여러 특징들은 세계성공회의 다른 관구들의 개정에 영향을 주었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부제예식에서 안수직전에 서품기도를 도입하고, 사제예식의 서품기도에 후보자를 위한 청원을 추가하며, 주교예식에서는 서품기도중 후보자를 위한 청원을 강화하였다. 그러나 세계성공회의 서품예식에 새로운 모형을 정립시킨 것은 바로 1958년 남인도교회를 위하여 작성된 서품예식이었다. 이 예식서는 안수 때의 명령형 공식문(imperative formula)을 모두 삭제하고, 대신에 초기교회의 관례(practice)를 따라 서품기도로 대체하였다. 그 이후로 이는 세계성공회의 거의 모든 관구의 예식서 개정-미국성공회의 1979년 기도서와 영국성공회의 1980년 <대안 예식서>-에 표준이 되었다. 남아프리카 관구교회만이 유일한 예외이다.

    참고문헌
    Bradshaw, P. F., The Anglican Ordinal: Its History and Development form the Reformation to the Present Day. AC 53. SPCK, London, 1971.

    Brightman, F. E., The English Rite, Vol. ii. Rivingtons, London, 1915, pp. 928-1017.

    Buchanan, Colin, Modern Anglican Ordination Rites. Grove Books, Nottingham, 1987.

    Franklin, R. W.(ed.), Anglican Orders: Essays on the Centenary of Apostolicae Curae 1986-1996. Mowbrays, London, 1996.

    Hill, C. and Yarrold, E. (eds.), Anglican Orders: The Documents in the Debate. Canterbury Press, Norwich, 1997.

    Hughes, John Jay, Absolutely Null and Utterly Void. Sheed and Ward, London/Corpus Books, Washington, 1968.

    Hughes, John Jay, Stewards of the Lord: A Reappraisal of Anglican Orders. Sheed and Ward, London and Sydney, 1970.

    Whitaker, E. C., Martin Bucer and the Book of Common Prayer. AC 55. Mayhew-McCrimmon, Great Wakering, 1974, pp. 176-83.

    2012년 4월 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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