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 번역 프로젝트 자료

  1. Cranmer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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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리교육서(교리문답)의 이해

    JAMES HARTIN, revised by
    JONATHAN KNIGHT

    세계성공회 공동체는 1536년이후부터 교리교육서를 계속해서 사용하고 있다. 심지어 그리스도교 교육방법들에 대하여 새로운 질문들이 많이 제기되었던 1960년대에도, 대다수 성공회 관구들은 전통적인 교리교육서의 교육방법론과 1961년 영국성공회에서 교리교육서 개정을 위한 두 대주교 산하 위원회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서술된 개정된 교리문답[교리교육서]은 영국적 상황에서의 개정과정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이보다 앞서 1887년에 개정시도가 있었으나 결실을 맺지 못하였으며, 이러한 노력은 1926년과 1939년에도 추진되었다. 아일랜드 성공회는 1971/2년에 영국성공회의 개정된 교리문답을 약간 수정하여 채택하였다. 같은 시기에 이와 유사한 과정은 북미주의 교회들, 그리고 인도와 파키스탄과 버마와 실론으로 구성된 연합관구에서도 진행되었다. 이때는 새로운 요구들에 대처하기 위하여 교리문답을 개정하고 [내용을] 확대시키던 시기였다.

    성공회는 기도서들 또는 이와 관련된 전례문서들 안에 교리교육서를 계속적으로 포함시킴으로써, 신자들이 개인적인 신앙이해와 예배의 성실한 참여 그리고 신실한 생활방식들 안에서 성장하여야 한다는 성공회의 강력하고 일관된 확신을 강조한다. 오늘날의 우리도 교리교육서를 우리의 전례문서들에 함께 수록함으로써 이러한 희망을 증언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교리교육서’가 암기위주의 학습이라는 점에 대하여 많은 비판을 받아왔지만, 교회는 이러한 자료들을 교리교육자가 개인적으로 융통성있게 사용하기를 기대한다는 많은 증거들이 있다. 질문과 대답[질의응답]이라는 방식은 실제로 다양하게 응용될 수 있으며, 교사와 학생사이에 진행되는 효과적인 학습체험을 암시하다. 교육계에서 많은 강의들과 수업들은 기본적인 원리들과 보편적인 표현으로 강의하였던 내용을 보다 효과적인 방법으로 분석할 수 있는 질의응답 시간을 이용하며, 이를 통해서 학생들은 정보를 확실하게 이해한다. 교리교육의 방법은 교회의 두가지 책임-그리스도교 신앙과 생활의 기본적인 특징들을 가능한한 명확하게 가르치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서 피교육자들의 개인적인 응답을 이끌어내는 것-을 하나로 결합시키는 방법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인다. 교리교육의 이념은 그리스도교의 학습과정에서 성직자와 신자들 사이의 지속적인 상호교환[접촉]임을 나타낸다. 이 교육은 또한 상대적으로 지역의 소집단에서 사용된다는 의미이며, 지역의 소집단에서의 개인적인 학습체험을 교회의 전반적인 활동과 연결시킴으로써, 교회의 모든 신자들이 같은 방법으로 기본적인 믿음안에서 형성[성장]되었다는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물론 실제로 모든 교리교육이 이러한 결과를 만들지는 않는다. 17세기에 조지 허버트(George Herbert)는 시골 사목자(country parson)가 교회의 공인된 교리문답(Catechism)을 사용하는 이유들을 설명하였다. 즉, ‘그는 부분적으로 권위[당국]에의 복종을 위하여, 부분적으로 통일성을 위하여, 왕국교회의 공식 교리문답을 사용하기를 선호한다. 그럼으로써 똑같이 공통된 진리는 어디에서나 고백될 수 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은 한 전도구교회에서 다른 전도구교회로 자주 이동하기 때문에, 이들은 그리스도교 군사들처럼 똑같은 대답을 교육받아 정통신앙의(Catholic) 대답으로 [각 지역의] 신자공동체를 만족시킬 수 있다.’

    ‘교리교육서’(catechism)란 용어는 메아리처럼 반복한다는 뜻의 희랍어에서 유래하였다. 이는 아마도 교사가 한 문장을 학생들에게 낭독하면, 학생들은 이를 교사에게 대답하는 방식을 설명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이 방식은 처음에는 초보적인 교육단계에서 시작하여 이후에는 모든 종류의 교육으로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이 단어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한 사람에서 다른 사람으로 전달되는 구두교육의 방법이라는 점이었다. 이 단어가 갖는 의미들중 일부는 특히 질의응답으로 교육하는 것을 강조하는 우리의 ‘교리교육서’(Catechism)에 도입되었다. 교리교육서라는 용어는 16세기초에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의 경험과 과정속에서 이러한 특별한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에 이러한 용어의 사용은 새로운 것이었지만, 교회의 신앙을 교육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질의응답으로 교육하는 사례는 유대교 생활의 한 특징이었다. 이러한 배경을 고려할 때, 이 교육방법은 이미 초기 그리스도교회의 생활속에 쉽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교리교육은 예비신자들(catechumens)의 세례를 준비하는 정규과정이었다-이 때의 교육방식은 질의응답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교리교육이라는 전반적인 개념의 중요한 발전은 2세기부터 4세기까지 활발했던 알렉산드리아 교리학교(catechetical school of Alexandria)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곳의 교육은 기본적으로 신학교육으로, 교사들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본요소들에 대하여 강의하였다. 교육은 정규적인 세례준비과정보다 높은 단계까지 진행되었다. 아마도 이들중 일부 강의는 강의후에 질의응답의 방식을 사용하여 강의내용을 이해하고 소화하였는지를 확인하였을 것이다. 이는 오늘날의 교수들이 강좌를 세미나와 비슷한 방식으로 강의후에 몇가지 계획된 질문들을 제기함으로써 학생들이 어려운 논점들을 이해하였는지를 확인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교리교육학’(catechetics)이란 용어와 이와 관련된 다른 용어들은 이 때에 탄생하여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으며, 피교육자[학생]들이 개별적으로 이해하고 수용하고 이에 응답하는 것을 목표로 피교육자들 각각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학습방식을 의미한다.

    400년에 어거스틴은 교리교육이라는 주제로 젊은 부제에게 편지를 썼다. 그는 이 편지에서 디오그라티아스(Diogratias) 부제에게 그리스도교 신앙과 생활의 기본적인 요소들을 가르치는 방법들에 대하여 몇가지 귀중한 실질적인 조언을 하였다. 서문에서 어거스틴은 다음과 같이 썼다.

    디오그라티아스 형제님, 당신은 나에게 보낸 편지에서, 카르타고(Carthage)에서 당신이 신앙에 관한 해박한 지식과 교리교육에 훌륭한 능력을 갖고 있다는 명성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본을 교육받기 위하여 당신을 찾아와 기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항상 당신의 학생들에게 이 중요한 진리를 유익하게 설명하는 방법을 찾는데 많은 어려움을 느낀다고 토로하였습니다.

    교리교육과정에 대한 성 어거스틴의 이해에는 교리교육자의 확신과 이해를 요구하며, 의사소통에 대한 특별한 재능이 필요하다는 점을 포함하고 있다. 그는 교리교육자가 개인적으로 자신의 교육에 대한 좋은 반응을 성취하는데 관심을 가질 때, 청취자들의 신앙과 생활을 증진시킬 것으로 예견하였다.

    중세시대의 교회는 세례를 준비하는 자들을 ‘교리교육’하는 특별한 과제를 새로운 전례적인 상황[견진례-역자]안에 포함시켰지만, 신자들을 교육시키는 책임을 계속적으로 강조하였다. 잉글랜드[교회]의 경우, 이를 위하여 성직자용의 지침서들(manuals)과 평신도용의 ‘소기도서’(primer)들을 제작하였다. 또한 주교들과 교구의회(교회회의synod)는 명령문(injunction)을 공표하여 성직자들에게 어린이들과 성인신자들의 신앙적 책임감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사도신경과 주기도문, 십계명을 영어로[지방어, 모국어]로 가르치도록 요구하였다. 740년 요크 대주교인 에그버트(Egbert)는 ‘모든 사제들은 관할 신자들에게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성실히 가르쳐야 하며, 그들에게 신앙에 대한 이해와 그리스도교의 예배에 따라 살도록 권장하여야 한다’고 지시하였다. 여기서 대주교는 성직자의 직접적인 교육을 강조하며, 16세기의 ‘교리교육’을 의미하는 성직자와 신자들 사이의 대화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클레베소회의(Council of Clevesho, 747)는 사제들이 모국어로 사도신경과 주기도문, 그리고 세례와 성찬례 예식(administration)의 문구와 그 의미를 설명해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16세기의 종교개혁은 시작부터 신자들의 교육을 새롭게 강조하였다. 헨리8세와 에드워드6세는 주기도문과 사도신경, 십계명을 모국어로 교육시킬 것을 국왕명령문으로 공표하였다. 즉, 사제들은 전도구 신자들을 교육시키고, 모든 부모들와 집주인들에게 자녀와 하인들을 교육시킬 것을 권고하여야 했다. 그리스도교 신앙을 청소년들에게 가르치는 임무에 부모와 집주인들을 포함시키는 이러한 시도는 1534년에 출판된 마샬의 소기도서(Marshall’ Primer)에도 반영되었다. 이 소기도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 항목에서 사도신경, 십계명과 함께 세례언약을 해설하였다.

    그러므로 새로운 기도서를 준비할 때, 세례예식과 견진예식의 신앙선언과 포기선언에 대한 권위있는 해설로, 그리고 각 전도구교회에서 매주일 오후에 실시하는 교리교육의 기본원리[토대]로 사용하라는 지시문과 함께 교리교육서를 이에 포함시킨 것은 당연하였다.

    ‘교리교육서’(catechism)라는 제목은 16세기초에 처음으로 그리스도교 교육서 또는 교육체제를 표현하는데 사용되었다. 종교개혁은 신앙교육을 특히 강조하였기 때문에, 많은 교리교육서들이 출판되었다. 마틴 루터는 1529년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대화체로 <소교리교육서>(간단한 교리교육서Shorter Catechism)을 출판하였다. 이 책은 16세 교리교육서들 중에서 가장 유명하였으며, 오늘날에도 루터교의 기본도서로 사용되고 있다. 칼빈주의자[장로교-역자] 전통에서는 <하이델베르그 교리교육서>(1563)가 마찬가지로 중요한 책이었다. 잉글랜드교회의 1549년 기도서에 포함된 교리교육서는 견진례를 준비하는 교육서였다. 로마 가톨릭교회[천주교] 역시 많은 교리교육서를 출판하였으며, 이들중 상당수는 정말로 교리해설서였다.

    존 보시(John Bossy)는 그의 책 <서방의 그리스도교, 1400-1700>에서 신자들에 대한 이러한 교리교육서의 확대를 16세기에 일어난 새로운 변화들 중에서 가장 커다란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하였다. 교리교육서의 사용 초기부터 부모들이 가정에서 자녀들을 이러한 방식으로 교육시키를 희망하였다. 이는 루터의 <소교리교육서>의 이상적인 목적이었다. 그러나 곧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과 가톨릭[천주교] 종교개혁 모두는 교리교육을 성직자의 의무에 포함시켰다.

    따라서 잉글랜드교회의 지도자들은 교리교육이 전도구교회의 일상활동이며, 그리고 주일 오후를 교회에서 어린이들이 세례때에 부여받았던 의무들을 암기하는 교육을 받으며 지낸다면 그 전도구교회들은 높은 신앙의식을 갖게될 것이라는 종교개혁된 교회들의 공통적인 관행을 채택하였다. 로마 가톨릭교회들 역시 종교개혁 교회들의 교리교육의 성공에 자극받아 그들의 교리교육서의 개요를 채택하여 집필하기 시작하였으며, 예수회는 이를 대규모로 실행하였다.

    16세기의 교리교육서들은 이미 세례를 받은 어린이들의 교육을 목표로 하였기 때문에, 이전에 받은 세례의 의미 그리고 견진례를 준비하는 신앙인의 책임에 집중하였다. 이는 교리교육을 세례의 준비로 실시하였던 초기교회의 사례와는 완전히 대조적이다. 이러한 차이는 중세교회에서 입교례인 세례와 견진례가 완전히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존 보시는 16세기의 교리교육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교리교육서는 복종심을 심어주고, 종교개혁 교회들 사이 뿐만아니라, 가톨릭[천주교]과 프로테스탄트와의 차이 뿐만아니라 종교개혁 교회들 사이의 경계를 분명하게 구별짓도록 고안되었다. 또한 이 책은 사려깊은 신앙생활의 토대가 되었을 것이다. 한편으로 교리교육서는 공동체(communitas)로서 하나의 통일된 그리스도교에 대한 인식, 사회적 제도(institution)로서의 성사에 대한 의미, 또는 간단히 이웃사랑을 고취시키는데는 그렇게 적극적이지 않았다.

    교리교육서는 부모와 민간당국에 대한 존경과 태도를 훈련시키는 효과적인 교육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과정에는 평온하며 질서정연한 공동체의 한 요소인 ‘그리스도교인의 예의’(civility, 예법)를 전달하려는 목적도 포함되었다.

    우리에게 친근한 잉글랜드교회의 교리교육서는 1549년의 첫기도서에 포함되었다. 이것과 1548년의 교리교육서-대실패로 끝났다-와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첫 기도서는 이 책을 전혀 참고하지 않았다. 교리교육서는 기도서에서 ‘견진례, 그리고 어린들을 위한 교리교육서’라는 예식에서 찾아볼 수 있다(pp. 295-9참조). 지시문에 의하면, 견진례를 받으려는 자는 신앙조항[사도신경]과 주기도문, 십계명을 모국어로 말할 수 있어야 하며, ‘이 요약된 교리교육서의 질문들, 그리고 주교들이 임의로 추가하는 질문들’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전도구교회 사목자들은 적어도 6주에 한번씩 주일 또는 축일의 저녁기도 직전에 반시간[30분]동안 공개적으로 어린이들에게 교리교육서를 가르쳐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또한 부모들과 고용주[장인], 여주인들[집안의 마님들]은 아직 견진례를 받지 않은 그들의 자녀들과 도제들, 하인들을 이 교육에 참석시키도록 규정하였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기도서[1559년]는 성직자들에게 이 교육을 매 주일과 축일의 저녁기도 직전에 성실히 실시하도록 규정하였다. 이제 잉글랜드교회는 왕국교회의 신앙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서를 보유하였다. 이는 교리교육서의 구성으로 볼 때 전 신자들을 대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이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그리스도교 교육체계를 만들려는 중요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1549년 기도서에 포함된 교리교육서는 ‘지난 10년 동안이 뱔표되었던 잉글랜드교회의 공식적인 문서들-1539년의 힐시의 소기도서와 1543년의 국왕신앙서 포함-에 전적으로 의존하였다.’ 맥컬러에 의하면, 이 때[1549]에 크랜머는 이미 성찬례신학에 대한 기존의 입장을 넘어, 1550-51년 발표한 <변론서>(Defence)과 <답변서>(Answer)에서 장문으로 설명한 입장을 채택하였다. 즉, 기존의 입장인 그리스도의 ‘실재적 또는 육체적 현존’(real or corporeal presence)을 거부하고,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영성적 현존’(spiritual presence)을 나타낸다는 입장을 채택하였다.

    16세기의 교리교육서는 4가지 부분-그리스도인의 특전과 고백, 사도신경, 십계명 그리고 주기도문-으로 구성되었다. 1604년 기도서는 성사에 대한 항목을 추가하였다. 이 항목은 성바울로 대성당의 수석사제(Dean)인 오버올(Overall)이 1560년대와 70년대에 수석사제였던 노웰(Nowell)이 집필한 교리교육서들의 내용을 포함시켜 집필하였다. 16세기 하반기는 잉글랜드에서 신앙교육서에 커다란 관심을 가졌던 시기였다. 이러한 관심은 교황청의 지속적인 권리주장과 프로테스탄트 신앙내의 급진파들의 위협에 대응하여 잉글랜드교회의 분명한 신앙적 입장을 왕국민들에 교육시킬 필요성 때문이었다. 곧이어 이미 성찬에 참여하는 신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리교육서와 일반학교에서 사용할 수 있는 교리교육서를 출판하였다. 학교의 확산으로 왕국교회의 가르침[신앙]을 교육시킬 기회는 더욱 확대되었다. 1662년 기도서에서 교리교육서는 세례예식과 견진예식 사이에 독자적인 항목으로 배치되었다. 기존의 제목에서 ‘어린이’란 용어를 ‘신자들’(person)로 교체하였다. 1662년 이후로 기도서내 교리교육서의 제목은 ‘교리교육서, 모든 신자들이 주교의 견진례 이전에 배워야 할 항목들’이 되었다. 성직자들은 이 공식 교리교육서로 어린이들을 열심히 교육하였으며, 주일과 축일의 저녁기도중 제2독서후에 공개적으로 교육하여야 했다. 이는 아마도 전 신자들을 어린이들의 교육과정에 포함시키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신자들’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의미는 미국 올바니교구의 에스톤 올드햄주교의 저서인 <현대의 교리교육서>(The Catechism today, 1929)의 진술문에서도 잘 나타난다. ‘먼저 필자는 교리교육은 청소년들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기존의 잘못된 인식을 교정하고 싶다. 교리교육은 성인들에게도 똑같이 소중하고 필수적이며[…] 교회의 공식적인 교리교육서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증진시키려는 모든 신자들에게 필수적이다.’ 성공회는 이러한 청소년 교육이 성년의 그리스도인 생활의 기초가 된다는 희망으로, 수세기를 통해서 공식 교리교육서에 기초한 교육을 실시하는 확고한 전통을 형성하였다. 공식 교리교육서는 잉글랜드교회[영국성공회]처럼 기도서 안에 포함되었으며, 전세계 성공회 교회들은 이를 개정 또는 수정하여 사용하고 있다. 카나다와 미국은 여러차례의 개정을 통해서 연령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교육도구로서 공식 교리교육서의 내용과 구성을 현대화하였다.

    조지 허버트(George Herbert)는 17세기 성직자들의 사목활동에서 교리교육의 이상적인 위치를 그의 저서인 에서 설명하였다. 그는 한 장을 ‘시골사목자의 교리교육’이라는 제목으로 설명하면서, 결론으로 하느님의 진리를 설명하는데 꾸밈없는[수수한] 연극적인 예화들을 사용할 것을 주장하였다. 즉 ‘의심의 여지없이 성서는 이[예화]를 잘 활용하고 있다. 성서는 쟁기, 손도끼, 그릇, 누룩, 노래하고 춤추는 아이들을 말하며, 일상에서 사용하는 물건들도 일상생활 뿐만아니라 천국의 진리들을 밝히는데도 사용된다는 점을 가르쳐준다.’ 허버트는 사목자의 교리교육에 생생하고 친밀하며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매우 잘 인식하고 있다. 즉 사목자는 자료와 내용을 갖고있지만, 효과적인 의사소통의 수단들을 개발하여야 한다.

    시골 사목자는 교리교육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는 공식 교리교육서에서 모든 교리들을 뽑아내어야 한다. 청소년들에게는 말 그대로, 어른들에게는 본질을 [...] 그는 모든 교인들에게 교리교육에 출석하도록 요구해야 하며 [...] 신앙적으로 성숙한 신자들은 그들의 지식을 점검하고, 서약을 갱신하며, 또한 두 경우 모두 그들의 생각을 넓힐 수 있다.

    허버트는 교리교육을 점진적인 과정으로 이해한다. 즉 전도구교회의 다양한 집단들은 다양한 단계의 신앙적 이해를 나타내기 때문에 다른 처방을 요구한다. 그리스도교 교육에 대한 그의 이해는 분명히 요람에서 무덤까지이며, 그의 교육자료들은 ‘모든 교리들을 쉽게 요약해 놓은 왕국교회의 공식 교리교육서’ 였다. 허버트는 지방의 사목자에게 자신만의 독특하고 보충적인 질문들을 묻는 것을 배우도록 권고한다.

    질문을 매우 평범한 용어로 비교하며 묻고 학생의 일상어를 이용함으로써, 대답자[학생]을 돕고 칭찬할 수 있다 [...] 이는 학생들이 쉽게 즐거움을 찾을 것이며, 교리교육자는 이러한 방법을 잘 활용한다면, 무지하고 멍청한 영혼들을 신앙의 무지로부터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 설교와 기도시간에 잠자거나 돌아다니는 자들도 질문을 받았을 때, 그 뜻을 바로 알아차릴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설교시간의 교육보다 훨씬 유익할 것이다.

    20세기에 세계성공회의 각 관구교회들은 교리교육서를 개정하고 확대하였다. 영국성공회는 1926년과 1939년에 개정을 시도하였다.

    1956년5월 켄터베리와 요크대교구의 성직자회의(Convocation)는 대주교에게 교리문답서 개정위원회를 설립하도록 요청하였다. 이 위원회는 1558년에 조직되어 1961년에 보고서와 함께 개정판 교리문답서를 제안하였다. 이 위원회의 진술서들은 우리에게 1960년대에 교리문답서의 지위를 잘 보여준다.

    위원회가 해결해야 할 첫 질문들중 하나는 교리교육 형태의 학습이 20세기에도 여전히 타당한가였다 [...] 다수의 의견은 이를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질문과 대답의 방법은 각 개인에게 자신의 행동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강조한다. 이러한 방법론이 공개적으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점은 바로 구식적[오래된] 방법이란 이유로 폐기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위원회의 입장은 당시에 라디오와 텔레비젼에서 질문과 대답 형식의 시리즈로 청취자와 시청자들 뿐만아니라 사색가들의 커다란 관심을 유발시키고 있던 퀴즈 프로그램의 높은 인기로 강화되었다.

    또한 위원회는 두 종류의 교리문답서-성인용과 어린이용-를 제작하자는 제안을 거부하였다.

    교육을 강조하는 교회는 공식 교리교육서의 사용을 후원한다. 교리교육자는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교리교육서의 내용을 선택하고, 이를 자세하게 설명하는 사람이다. 이를 위하여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고려한 자료들을 모두 포함시키고 싶지만, 충분한 지면이 없다[...] 공식 교리교육서는 교사에게 맡기는 하나의 도구임을 의미한다.

    개정판 교리교육서를 제작할 때, 위원회는 새로운 내용에 많이 추가하고 언어를 현대화하였다. 위원회는 당시의 변화된 사회적 조건들-신분구조의 약화와 온정주의에 대한 반대-을 고려하였다. 개정판 교리교육서는 기존의 형식에 교회의 예배와 사목직, 성사들와 은총의 다른 수단들, 성서, 신앙인의 의무와 희망에 관한 새로운 자료들을 추가하였다.

    이 책이 출판된 후에 개최된 토론들에서 두가지 주요한 쟁점들이 분명하게 나타났다. 성공회의 신앙과 신자들의 책임을 간결하고 충분하게 진술한 교리교육서를 집필하기란 매우 어렵다는 점, 그리고 이와 동시에 당시의 어린이교사들의 요구사항들을 충족시킬 수 있는 형식으로 신앙과 책임을 설명하기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프랭크 컬훈(Canon Frank Colquhoun)신부는 그의 저서인 <교리교육서와 견진례> (1963)에서 개정판 교리교육서를 이용한 견진례 준비교육의 모형을 설명하면서, ‘성공회의 공식 교리교육서의 가치는 요약적이고 포괄적이며, 간결하고 성서적이라는 점이다. 이 책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필수적인 사실들을 확고하게 근거하며, 부차적인 문제로 본론을 벗어나는 것을 거부한다’고 하였다. 또한 그는 1891년 벤슨(Benson) 대주교의 유명한 발표문을 인용하였다. ‘나는 어떤 교파교회도 성서의 진정한 정신과 교리들을 설명하는 영국성공회의 교리교육서와 같은 지침서(manual)를 보유한 적이 없었다고 확신한다.’

    세계성공회 교회들은 공식 교리교육서에 대하여 강한 애착과 관심을 보여왔다. 이러한 애착과 관심은 성공회 신자들이 그리스도교 신앙을 스스로 이해할 필요성을 강조해온 우리들의 종교개혁 체험을 계속해서 나타내고 있다. 교리교육서의 방법론은 신자들의 현재위치인 직접적인 삶의 현장에서 시작하며, 이들에게 교회내에서 자신들의 위치에서 생각하고 신자됨의 의미를 발견하기를 권장한다. 현재 우리는 세례의 의미를 다시한번 검토하고 있으며, 이는 곧 교리교육서의 출발점이다. 우리가 스스로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라고 인식하는 것은 곧 제자직(discipleship)의 모든 의미들을 보다 깊이 검토하기를 요구한다. 이는 공식 교리교육서에서 설명된 방식이다. 단순하고 직설적인 질문들은 많은 쟁점들을 검토하도록 요구한다. 즉, 현실적인 이해속에서 우리의 기본적인 믿음은 무엇인가, 공동체에서 우리의 인간적인 삶을 구성하는 원칙들은 무엇인가, 우리가 인간의 문제들에 직면하였을 때 우리를 인도하고 강화시켜주는 원천들은 무엇인가. 공식 교리교육서는 우리들에게 그리스도교 믿음의 틀안에서 인간적 체험과 성장의 과정속에서 이러한 탐구와 분석을 요청한다. 이는 성공회의 예배생활과 친교속에서,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생활원리들을 실천하고 증언하는 보다 넓은 세상속에서 형성되는 인격적 성숙에 이르는 길이다.

    세계성공회의 최근의 기도서들을 조사해보면 교리교육서의 미래에 대한 세가지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영국성공회의 <대안예식서 1980>은 견진예식에서 교리교육을 전혀 언급하지 않으며, 예식문 안에 교리교육서의 내용을 전혀 수록하지 않고 있다.[견진례와 교리교육을 연계시키지 않는다-역자] <호주기도서>(1978)는 1662년 기도서의 교리교육서를 의미의 변화없이 현대어로 수정한 교리교육서를 수록하였다. 이 기도서는 견진예식에 대한 두가지 양식을 규정하였다. 두번째 양식에서는 교리교육서에 대한 언급이 없었지만, 첫번째 양식은 ‘우리 교회는 견진례를 받고자 하는 자들이 사도신경과 주기도문, 십계명을 알고 이해하여야 하며, 교회의 공식 교리교육서에 수록된 질문들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한다’는 문구를 포함하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미국성공회의 제안기도서(1977)에는 ‘일반적으로 교리교육서라고 불리는 신앙의 개요’[신앙의 개요-기존의 교리교육서]라는 문서를 수록하였다. 이 문서는 공통적인 교리문답 전통을 반영하면서도, 그 구조는 체계적인[조직신학적인] 저술로, 먼저 ‘인간의 본성’이라는 항목으로 시작하여 죄, 계약, 성서, 성사 등등을 다룬후 마지막 항목에서 ‘그리스도인의 희망’을 설명하였다. 하지만 전 항목들을 질문과 답변의 형식으로 서술하였다. 지시문에서 이 개요는 ‘교사를 위한 출발점’이며, ‘기도서를 펼쳐보는 새신자들을 위하여 성공회의 가르침을 간단히 요약한 것이다’고 말하였다. 확실히 이 신앙의 개요는 1662년의 교리교육서를 무시하였다거나 또는 앞의 대안예식서처럼 침묵하는 위험을 선택하지 않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시도이다.

    교리교육서는 역사를 통해서 오늘의 우리에게 전달되었으며, 독특한 16세기적 이해를 반영하고 있다. 신앙적 체험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급격하고 복잡한 변화의 시기에 발생하였다. 교리교육서의 내용과 방법을 제정한 저자들은 신앙인들에게 자기인식이 확고한 기반을, 그리스도교의 기본적인 원리들에 대한 확고한 토대를, 그리고 혼란스럽고 벅찬 세상에서 그리스도인 생활에 대한 열렬한 열망들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하였다. 그들은 신자들이 신앙생활을 당대의 시대와 장소에서 실현되는 인간체험으로 이해하고,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이 주도하는 은총의 활동에 의존하도록 가르치기를 기대하였다. 20세기의 성공회 신자들도 마찬가지로 급격한 변화를 요구하는 혼동스런 세계에 살고있다. 공식 교리교육서의 기본개념과 접근방식은 여전히 우리들에게 우리의 현대적 상황속에서 우리의 언어로 신앙적으로 응답하도록 인도한다. 공식 교리교육서의 방식으로 생각하고, 믿고, 기도하고, 살아가는 것은 ‘성공회신앙’(Anglicanism)이라고 부를 수 있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신앙적 체험의 핵심일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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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reen, I. M., The Christian’s ABC: Catechisms and Catechizing in England c. 1530-1740. Clarendon Press, Oxford,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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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egenthaler, D., ‘Religious Education for the Citizenship: Primer and Catechism’ in

    J. Booty (ed.), The Godly Kingdom of Tudor England. Morehouse-Barlow, Wilton CT,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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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udor, P. ‘Religious Instruction for Children and Adolescents in the Early English Reformation’, Journal of Ecclesiastical History 35 (1984), pp. 391-413.

    Wilson, W. G., The Faith of an Anglican: A Companion to the Revised Catechism. SPCK, London, 1980.

    2012년 4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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