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 번역 프로젝트 자료

  1. Cranmer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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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준적인 신학자들(Standard Divines)
    John E. Booty

    성공회신앙(Anglicanism)에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토마스 아퀴나스, 루터교회의 루터, 또는 칼빈[칼뱅]주의자 교회의 칼빈에 필적하는 신학자들이 없다하더라도, 성공회의 신앙과 교리 뿐만아니라 공적인 예배와 개인적인 영성에 대한 표준으로 널리 인정받는 저서들을 저술한 신학자들이 있다. 이 글에서는 이들을 ‘성공회 신학자들’(Anglican divines)이라고 정의한다. 이러한 신학자들에 대한 권위있는[교회가 승인한] 명단은 없으며, 다른 신학적인 확신들을 가진 자들은 다른 신학자들을 거명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신학자들은 그러한 명단들 거의 모두에 포함되며, 또한 교회 전례력의 소축일에서 기념되며, 그들의 저서들은 명저집에 거의 항상 수록되고 있다.

    성공회 신학자의 정의[조건]는 무엇인가? 성공회신앙이 확립되던 시기인 16세기와 17세기에 가장 유명한 인사들중 일부를 조사해보면, 먼저 성공회 신학자는 잉글랜드교회의 주교나 사제로서 후손들에게 많은 저서들을 남긴 학구적인[박식한] 신학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들의 저서들은 주로 넓은 범위의 주제들을 포함하고 있다. 즉, 신학논문들, 논쟁적 또는 호교론적인 소책자들, 신자들의 교육을 목적으로 집필한 교리교육용 저서들, 신자들의 도덕적, 윤리적 결단을 조언하는 저서들과 에세이[시론]들, 평신도들의 신심을 위한 설교집, 전례서들, 기도문들, 그리고 명상집. 성공회 신학자들은 성서와 신경들에 의해서 전달되어 공동기도서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된 신앙에 헌신하는 인물들이다. 따라서 이들은 초기 그리스도교회의 희랍[그리스] 교부들을 본받아 신학과 기도를 하나의 통일체(a whole)로 인식하였으며, 잉글랜드교회에서 표현된 것처럼 하나이고 거룩하고 공교회적이며 사도적인 교회를 추구하며 이 교회를 비방하는 자들-보수파와 급진파 모두-을 반박하며 이 교회[성공회]와 그 신자들을 옹호하였다. 이들은 비아메디아 정신(via media), 즉 타협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분명한 입장으로 하느님의 신비와 보편성 그리고 불완전한[fallible] 세속적인 잉글랜드교회(ecclesia Anglicana)를 통해서 활동하는 하느님의 나라를 증거하는 정신을 추구한다. 성공회 신학자들은 일반적으로 구원에 관한 문제들에서 전통과 이성을 통해서 해석된 성서를 권위있는 것으로 인정하였으며, 성서는 전통과 이성의 존재와 활동을 전제하며 따라서 하느님과 자연, 하느님과 인간, 성과 속 사이의 협력을 전제한다고 믿었다. 이들은 교리와 신앙생활에 대한 권위를 좁게 해석하지 않고, 오히려 폭넓게 해석하였다. 즉, 무오류성의 엄격한 교리를 거부하였다. 따라서 구원에 필수적인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아디아포라 adiaphora)를 자주 언급하였다(p. 296 참조). 이들의 이해에는 원대함(largeness)이 있으며, 이는 창조주, 구세주, 성령이며 처음과 끝(Alpha and Omega)인 하느님의 보편적인 통치속에 있는 모든 백성들과 피조물들에까지 다가가도록 끊임없이 자극한다. 이들의 이해를 자세히 조사해보면, 이들은 항상 그리스도에 헌신하며 십자가의 입장에서 보는 성육신을 강조한다. 이들은 그들의 저서들에서 언제나 희생의 교리, 즉 하느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자기희생의 교리를 강조하며, 신자들에게 그들의 영혼과 육체를 살아있는 희생[제물]이자 합당한 희생[제물]으로 봉헌하도록 격려하였다. 이러한 심오한 신학적인 교리는 성서와 기도서의 전례 모두에서 유래하였으며, 또한 교회[성공회]에서 성찬례와 성찬신심(eucharistic devotion)과 성찬생활(eucharistic living)을 강조하는데 기여하였다.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들이 성공회 신학자들을 정의하는 요소들중 일부이다. 확실히 다른 요소들도 있으며, 이 용어를 정의하는 다른 방법들도 분명하게 있을 것이다.

    그러면 누가 성공회 신학자들인가? 먼저 후커, 앤드류스 그리고 테일러라는 이름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근대 성공회신앙의 형성기를 생각하면 홀, 로드, 어셔, 코진 등을 추가할 수 있다. 또한 여기에 형이상학적인(metaphysical) 시인들, 특히 던(John Donne)과 허버트(George Herbert)를 포함시킬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먼저 리처드 후커(Richard Hooker 1554-1600)를 꼽을 수 있다. 그는 존 주얼(John Jewel)로부터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고 인정하였으며, 공동기도서에 깊이 몰두하였다. 더 확대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성공회 신학자들중 탁월한 인물로 크랜머와 주얼을 포함시키겠지만, 확실히 후커가 먼저 올 것이다. 그는 탁월한 신학자였으며, 그의 중심적인 신학저서인 <잉글랜드교회의 치리제도의 원리들에 관하여>(Of the Laws of Ecclesiastical Polity, 1593년부터)는 후대에 매우 커다란 영향을 주었으며, 성공회 가르침[교리]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학자들이 수년에 걸쳐 연구하는 신학적인 저작이다.

    <원리들>(Laws)은 칼빈이 주도하는 제네바교회와 사도행전의 사례들을 따라 왕국교회의 통치형태(치리구조government)의 재편을 주장하는 자들을 반대하며 잉글랜드교회의 통치형태를 옹호하는 저서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보다 훨씬 이상의 것들을 말한다. 제1권은 매우 심오한 철학적인 논문이며, 제8권은 원리(law)의 역사와 정치이론의 역사에서 널리 알려진 교회와 국가에 관한 논문이다. 훨씬 논쟁적인 제6권은 회개와 교회의 권징에 관한 짧은 논문을 수록하며, 이 글은 후에 존 던의 <Devotions upon Emergent Occasions>과 ‘Holy Sonnets’(신앙적인 단시들, 거룩한 소네트) 뿐만아니라 잉글랜드의 도덕신학[윤리신학]의 발전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제5권은 복합적이지만 이성적으로 구성된 이 신학적인 대작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책이다. 자세히 읽어보면 이 책은 공동기도서에 관한 최초의 체계적인 해설서이자 이에 대한 변론서이며, 성육신에 관한 중요한 연구논문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 안에는 그 이상의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제5권은 <원칙들>의 신학적인 핵심으로, 중심적인 56장은 후커의 <Discourse of Justification>과 연결되어 있다. 일괄해서 볼 때 이 두 부분[56장과 논문]은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오며, 인간의 공적과 관계없으며, 그리고 의인화[구원]의 바로 그 순간에 성령의 선물을 받으며 [이 때부터] 성화 (sanctification)가 실현되기 시작한다는 후커의 확고한 신념을 나타낸다(pp. 72-7 참조). 제5권 56장에서 이러한 가르침은 참여(participation협조)의 개념과 관련된다. 이 개념은 그가 주장하는 성화의 교리를 더욱 심오하고 보편화[일반화]시키며, 또한 세례와 성찬례는 그리스도에의 참여(따라서 하느님에의 참여)의 수단-따라서 세례는 의인화의 성사가 되며, 성찬례는 성화의 성사가 된다-으로 성사를 이해하는 길을 준비한다. 놀랄 것도 없이 후커는 성사가 주는 목적들-개인적인 구원과 공동체적인 구원-을 강조하고,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변하는지 아닌지 그리고 변한다면 어떻게 변하는가를 논의하는 것을 경멸[무시]하였다. 다른 사람들처럼 그에게 축성은 성찬[요소들]의 마술적인 변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찬[요소]의 사용에 있었다.

    따라서 후커에게 신학한다(doing theology)의 의미는 학문적인 작업[몰두] 또는 지적인 게임[시합]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었다. 신학은 기도를 포함하며, 궁극적인 문제들에 관심한다. 그의 신학적 관심은 구원에 대한 개인적인 열망[기대]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그는 하느님 안에서 모든 것들[만물]의 통일성, 그리고 공동체 특히 예배공동체가 지극히 중요하다는 점을 깊이 의식하고 있었다. 그에 의하며, ‘하느님은 단순히 사물 그 자체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들 안에 있는 하나로 창조하였으며, 모든 것들 중에서 각각은 다른 것들에도 관심[이해관계]을 가지며[다른 것들과 관련되어 있으며], 따라서 전체 세계에서 피조된 어떠한 것도 “나는 네가 필요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여기에는 성직자이자 박물학자[자연주의자]로 <The Wisdom of God Manifested in the Works of Creation>의 저자인 존 레이(John Ray 1625-1705)의 저서에서 제시된 것과 같은 자연세계에 대한 관심의 토대가 있을 뿐만아니라 향후에 나타날 정치적 사회적 행동의 토대가 있다. 마지막으로, 후커는 켄트지방 비샵스본 시골 전도구교회의 사제로 그의 양들에게 생명의 빵과 생명의 물을 먹이고 돌보면서 일생을 마감하였다. 그는 성공회 신학자들 중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커다란 겸손함을 나타낸다.

    후커는 이후 시대에 나타난 신학자들을 판단하는 기준, 즉 표준을 제공하였다. 랜스럿 앤드류스는 후커를 잘 알고 있었으며, 윈체스터 주교로 그의 일생을 마감하였다. 앤드류스는 후커의 <원칙들>과 같은 대작을 저술하지는 않았지만, 후커보다 더 많은 분량의 저서들을 남겼다. 여기에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비방자들을 반박하며 잉글랜드교회를 옹호하였던 <Tortura Torti>와 <Two Answers to Cardinal Perron>과 같은 논쟁적인 저서들도 있다. 그는 사망후에 출판된 <Ninety-Six Sermons>과 <Preces Privatae>로 가장 유명하였다. 이 책들에서 그의 심오한 신심이 가장 잘 나타나며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 외에도 그리고 기도와 주기도문에 대한 설교들과 같은 교리교육용 저서들, 그리고 과 같은 전례서들도 있다. 그의 기본적인 신학적 입장은 그의 설교들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앤드류스는 은총의 보편성(universe)-즉 은총은 하느님의 창조[피조물]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시킨다-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후커와 일치하였다.그에 의하면, ‘자연은 그 자체로 “선”하지만 완전하지 않으며, 그리고 율법(Law)은 그 엄격함 때문에 그 불완전함 때문에 불가능하다. 자연은 “선”과 분리되지 않으며, 율법도 그것과 분리될 수 없다. 그러나 은총은 이 두가지[자연과 율법-역자]에 추가되어 이것들을 완벽하게 만든다. 따라서 창조된 질서의 일부분인 이성은 방해물이 아니라 보조물[도와주는 도구]이다. 이성은 주님의 양초이며, 이 자연의 빛에 저항하는 자들은 모두 빛의 반역자들(rebellus lumini 악인-욥기24:13)이다. ‘이 빛은 므비보셋의 경우처럼 몰락하여 정지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왕족이었기 때문에 다시 되살아났다.’그리고 은총은 바로 이러한 일을 하기 위하여 온다. 여기에 앤드류스의 핵심적인 가르침이 있다. 이것은 그의 인생을 통해서 그의 사상의 중심이었다.

    그의 설교들은 설교의 교리 뿐만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방식에서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T. S. 엘리어트는 그의 시 ‘재의 수요일’을 작시할 때에, 재의 수요일에 요엘서 2.12-13에 대한 앤드류스의 설교에서 돌아오라(회개하라 turning)의 이미지에 감명을 받았다. 이 설교에서 앤드류스는 마치 영감을 받은 무용가가 회전을 하는 것처럼 돌아오라를 깊이 생각하였다. 즉, ‘바로 지금 이 순간이 한 해의 전환점이며 [...] 지금 모든 것들이 전환하고 있으며, 따라서 우리도 우리의 시대를 하느님께로 전환시켜야할 것이다.’ 즈가리야 12.10에 대한 성금요일의 설교는 신자들 앞에 높이 설치된 십자가 위에 있는 그리스도, 창에 찔린 그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와 물에 대한 명상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죄로 그의 옆구리를 찌른다. 그러나 그 분은 그의 사랑으로 우리들을 찌른다. 그리고 그의 찔린 옆구리에서 세례의 물과 성찬례의 피가 나온다. ‘피와 물이 흐르는 것을 쳐다보라 그리고 낭비되지 않도록 하라, 그리고 이를 받아라.’ 오늘 우리는 거룩한 신비들에서 이 피를 받을 것이다. 즉, ‘바로 오늘 죽임을 당한 것처럼, Morning Hart[그리스도]의 몸[육신]을 먹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거기서 우리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하여 흘리신” “귀중한 피”인 “구원의 잔”을 받는 자들이 될 수도 있다.’

    19세기에 R. W. 처치(Church)는 ‘그리스도교적이며 신앙적인[종교적인] 이성, 즉 하느님의 정신을 반영하는 이성을 옹호하였다는 점’에 대하여 후커의 공헌을 높이 평가하였다. 그리고 앤드류스에 대해서는 ‘그리스도교 역사의 권리들’을 옹호하였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였다. 앤드류스는 잉글랜드교회가 보편적인 교회와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그 교회의 역사에 속해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자신의 <Preces Privatae>에서 서방교회 뿐만아니라 동방교회에서도 영감과 많은 내용을 의존하였으며, 하나의 그리스도교회에 속한 구성원들인 모든 교회들(‘로마 가톨릭, 동방교회, 서방교회, 영국교회’)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앤드류스의 영향력이 느껴지는 한, 성공회신앙은 몰역사적이거나 편협하지 않을 것이다.

    제레미 테일러(Jeremy Taylor 1613-67)-옥스퍼드의 올 소울 칼리지의 평의원(felow전임)이자 아일랜드 다운과 코너(Down and Connor)교구의 주교-는 후커와 앤드류스의 길을 추구하였다. 그의 방대한 저서들에는 설교집, <Golden Grove>와 같은 매일기도 지침서, 결의론(casuistry)에 관한 유명한 저서인 <Doctor Dubitantium>, 영성적인 고전도서들인 <The Rule and Exercise of Holy Living>와 < The Rule and Exercise of Holy Dying>, 유익한 논문들인 <The Doctrine and Practice of Repentance>와 <The Worthy Communicant>, 교훈적인 저서인 <Life of our Blessed Lord and Savior Jesus Christ>와 <Discourse of Confirmation>, 그리고 호교론적인 저서인 <Dissuasive from Popery>와 <An Apology for Authorized and Set Forms of Liturgy>를 꼽을 수 있다. 테일러는 우리들에게 17세기 뿐만아니라 성공회의 역사를 통해서 성공회신앙의 강력한 실천적, 윤리적, 도덕적인 특징들(thrust)을 환기시킨다.

    올바른 행동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펠라기우스적인 열정을 강조함으로써 의인론의 진리를 경시하게 만들 수 있다. 테일러는 후커의 의인론과 성화론으로부터 일탈하였다고 비난받았다. 그러나 만약 그랬다면, 그는 주로 조지프 홀(Joseph Hall)의 관심을 공유하였기 때문이었다. 홀은 <The Divine Arte of Meditation>(1606)에서 가장 강력하게 표현하였듯이, 지성(intellect) 또는 올바른 교리를 강조하는 동안에 감정들-그리고 따라서 진리의 관점에서 인간행동의 교정-을 경시 또는 무시하였다. 후커는 하느님의 법[원리]의 목적 또는 의도에 주의[관심]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며, 따라서 성찬례의 경우 은총은 물질적인 성찬요소들의 변화가 아니라 생활의 변화를 만들기 위하여 부여된다고 주장하였다. 테일러 역시 변화된 삶, 참회, 거룩한[신실한] 삶과 거룩한 죽음에 관심하였다.

    더구나 테일러는 그의 저서인 <The Liberty of Prophesying>에서 필수적인 요소들 또는 근본요소들과 아디아포라(adiaphora)[비본질적인 요소] 사이의 구별에 관한 논의에 참여하였다. 후커는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오직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만을 믿는 것(물론 믿음은 사랑의 행동을 낳는다)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함으로써 칼빈주의자들을 격분하였다. 테일러는 로마서 10장9절을 인용하며 후커의 입장에 동의하며, 사람들은 이 핵심적인 구절로부터 다른 교리들을 추론할 수 있지만 ‘이러한 추론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신앙조항으로 강요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결론지었다. 또한 그러한 추론이 교회의 필수적인 믿음에 추가될 정도로 ‘믿음을 보다 자명하게’만드는 적법한[합리적인] 작업을 넘어설 때 교회는 이를 따를 필요가 없다. 이러한 활동은 믿음을 ‘보다 넓고 통합적인’ 것으로 만들지만, 사실은 오히려 편협하고 배타적으로 만들며 심지어는 거짓과 독선으로 만든다. 따라서 테일러는 후커가 주장한 것과 같은 이성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유지하였다. 그에 의하면, ‘나는 이성을 독특한 주제로 생각하지 않고, 모든 주제들을 관통하는 초월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계시와 철학, 그리고 공적인 체험, 그리고 개연성 또는 논증의 모든 다른 근거들이 우리에게 내용[논의의 주제]를 제공할 때 이성은 이들을 이용할 뿐이다.’이러한 이해는 테일러의 시대에 근거를 상실하고 있었다. 이성의 영역은 점점 현대과학이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것과 같은 유사[준]-수학적인(quasi-mathmatical) 이성으로 제한되고 있었다. 그러나 후커식의 이해는 소위 성공회 신학자들에 의해서 지속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신학자들은 학자들로, clerus Angliae stupor mundi[성공회 성직자 세상의 경이]라는 말로 명명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신학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서(summa) 또는 신학의 체계들[조직신학서]을 저술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성서와 전통, 특별히 초기교회의 전통과 공의회들과 교부들, 그리고 이들보다는 덜 중요하지만 여전히 중요한 중세시대와 당대의 위대한 신학자들에 의존하였으며, 또한 하느님이 준 이성에 근거하여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것을 해석하며, 복음을 해설하고 국교회를 옹호하며 설교하고 교육하고 조언하고 충고하였다. 그들의 지성은 우주로 확대되었으며, 자연의 신비들을 통찰하고, 경외심을 갖고 궁극적인 것을 존중하며, 그리고 신비와 기적은 인정하였다.

    후커와 앤드류스 그리고 테일러의 계승자들은 누구인가? 물론 찰스시대 국교회의 다른 신학자들(Caroline divines), 그리고 케임브릿지 플라톤주의자들, 그리고 이들을 계승한 훌륭한 관용주의자들[광교회파](Latitudinarians)을 포함시킬 수도 있다. 18세기에는 웨슬리 형제들과 와이트필드를 꼽을 수 있으며, 또한 윌리엄 로와 조지프 버틀러를 꼽을 수 있다-로는 로 버틀러는 <Analogy of Religion>로 유명하였다. 일부 비평가들은 틸롯슨, 워터랜드 그리고 워버톤과 같은 뛰어난 신학자들을 생략한 것을 유감으로 여길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후커와 앤드류스, 테일러가 다음 세대들에게 남긴 영향력에 미치지 못하였다.

    19세기에 이르면, 성공회의 유명한 복음주의자들 중에서 특출한 찰스 시메온(Charles Simeon 1759-1836)을 꼽을 수 있다. 그는 <The Offices of the Holy Spirit: Four Sermons Preached before the University of Cambridge>와 같은 수많은 설교집의 저자였다. 그의 핵심적인 저서는 <Horae Homileticae: or, Discourses digested into one continued series, and forming a commentary upon every book of the Old and New Testament>이다. 시메온은 윌리엄 로메인 등과 함께 성서에 열중하였으며, 타락에 의한 인간본성의 부패(corruption) 그리고 개심 (conversion)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부패의 회복이라는 두가지 교리를 가르쳤다. 그러나 그의 동료들중 일부가 개인적인 신심을 권장할 때에 왕국교회의 공적인 예배를 경시하였던 것과는 달리, 시메온은 국교회의 전례를 변호하고 옹호하였다. 그는 ‘우리들의 전례서[기도서]의 목적와 취지는 우리의 마음을 거룩하고 천상의 상태로 끌어올리려는 것이며, 또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죄인이 갖는 희망의 유일한 토대로 삼을 수 있도록 우리들을 단련시키는 것이다’고 가르쳤다. 그는 ‘진리, 온전한 진리를 두려움없이, [...] 그리고 무례하지 않게 공표하며, 모든 내용이 온건하고, 솔직하고, 실질적으로, 평화롭게, 그리고 사랑으로 표현된’ 시도서를 존경하였다. 시메온은 앞의 신학자들처럼 방대한 신학적인 저서들을 집필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많은 부분에서 그들과 거의 일치하였다.

    19세기의 잉글랜드교회[성공회]에는 적어도 일부 측면에서 후커와 앤드류스 그리고 테일러를 따르는 신학자들이 많이 있었다. 지면의 제한으로 ‘표준적인 신학자들’로 볼 수 있는 자들로 한정한다면, 존 키블(John Keble), 에드워드 부버리 퓨지(Edward Bouverie Pusey), 그리고 성공회시기의 존 헨리 뉴먼(Jonh Henry Newman)을 영향력을 가진 학자들로 꼽을 수 있다. 이들은 논쟁적인 저서들-키블의 순회재판 설교와 <이 시대의 소책자들>(Tracts fror the Times)-에서부터 설교집 (homiletics)-뉴먼의 대학교와 전도구교회 설교들은 아직도 애독되고 관심을 받고 있다-까지, 그리고 신학적인 저서들-푸지의 <the Doctrine of the Real Presence>와 성 어거스틴의 <Confessions> 편집서-에서부터 신심도서들-존 키블의 <The Christian Year>와 뉴먼이 편집 출판한 앤드류스의<Preces Privatae>-까지 폭넓은 분야에 걸쳐 이해와 관심을 표현하였다. 후커의 <Works>(저서들)을 최초로 현대적으로 편집하여 발행한 사람은 바로 키블이었다. 옥스퍼드운동의 지도자들중 다른 학자들로는 로버트 아이삭 윌버포스(Robert Isaac Wilberforce)-3권의 저서들중 <The Doctrine of the Incarnation>으로 유명하다-와 리처드 처치(Richard Church)-옥스퍼드운동의 역사를 저술하였으며 유명한 설교자이자 평론가였다-와 그 배경으로 누구보다도 사무엘 테일러 콜리지(Samuel Taylor Coleridge)를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키블, 뉴먼과 푸지처럼 커다란 영향을 끼친 학자들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프레더릭 데니슨 모리스(Frederick Denison Maurice 1805-72)는 수년동안 런던의 법학원들(Inns of Court)중 링컨법학원의 전속사제로 수년간 활동하였으며, 사망때까지 케임브리지 대학교 윤리신학과 윤리철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는 충실한 국교회 사제로서 그리스도교 사회주의운동(Christian Socialist movement)의 창시자였으며, 또한 신학적인 대작인 <The Kingdom of Christ>부터 주간지인 <민중을 위한 정치학>(Politics for the People)에 기고한 논설들까지 다양한 글들을 집필하였다. 그의 설교는 가장 영향력이 컸으며, 특히 <링컨법학원 설교집>, 그리고 <The Doctrine of Sacrifice>과 <The Prayer Book ... and the Lord’s Prayer>이란 제목으로 출판된 설교들이 유명하였다. 모리스는 ‘그리스도를 인정하는 것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의 머리(head)’로 이해하는 그의 그리스도론으로, 따라서 성과 속 사이의 넓어지는 간격을 메우는데 성공함으로써, 이성을 ‘필수적일 뿐만아니라 보편적인 것과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함으로써, 성서와 성육신한 주의 교회에 대한 그의 헌신으로, 매우 유명하였으며 따라서 성공회 신학자들중 하나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그의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19세기의 다른 학자들을 꼽는다면, 순수이성론자들(Noetics) 중에서 리처드 왜틀리(Richard Whately), 자유주의자들(Liberals) 중에서 토머스 아놀드(Thomas Anold), 그리고 칼빈주의자 복음주의자들 중에서는 J. C. 라일(Ryle)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케임브리지 삼총사인 라이트푸트, 호트, 그리고 웨스트코트에 필적하지 못한다. 조지프 바버 라이트푸트(Joseph Barber Lightfoot더럼교구 주교)는 바울로의 서신들에 대한 주석서들을 저술하고, 초기교회 교부들의 저서들을 편찬하며 그리스도교 사목직에 대하여 집필하였으며, 그리고 수많은 설교를 하였으며 후에 여러 권의 설교집을 출판하였다. F. J. A. 호트(Hort)는 케임브리지 대학교 학자이자 사제로 웨스트코트와 함께 신약성서의 희랍어판을 편찬하였으며, 신약성서의 서신들에 대한 주석서를 집필하였으며,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의 저서들을 편찬하고, <The Christian Ecclesia>, 신경들, 그리고 <the Way, the Truth, and The Life>에 관한 강의들을 출판하였다. 브룩 포스 웨스트코트(Brooke Foss Westcott)는 적어도 그의 저서들에서 앞서 언급하였던 모델들을 가장 분명하게 따르는 신학자이다. 그는 성서신학자로 신약성서의 서신들에 대한 주석을 집필하였으며, 신약성서 정경의 역사, <The Bible in the Church>과 <English Bible>에 대한 역사를 집필하였다. 그는 <Christus Consummator>와 <The Incarnation and Common Life>와 같은 신학적인 저서들을 발표하였으며, 또한 <The History of Religious Thought in the West>를 연구하고 사도신경에 관하여 강의하였다. 그는 설교를 많이 하였으며, 여러 권의 설교집을 출판하고 <Common Prayer for Family Use>를 준비하였다. 더구나 그는 그의 신학적인 통찰을 당대의 산업사회에 적용하는 책들-<Lessons from Work>, <Social Aspects of Christianity>, <The Two Empires>과 <the Church and the World>-을 발표하였다. 웨스트코트는 라이트푸트와 호트처럼 후커와 앤드류스, 테일러로서 발견된 성공회적인 사상을 현대세계의 역사적인 성서비평, 자연과학, 그리고 산업화된 현대세계로 전환시키는데 기여하였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 살고 있다는 믿음을 고백하며, 이러한 작업을 수행하였다. 즉, ‘그리스도이시며, 그리스도께서 전달하는 생명, 즉 우리가 그 능력을 깨닫을 수 있도록 우리의 온전한 존재를 채워주는 생명은 하느님과의 실제적인 친교이다.’ 더구나 ‘그리스도의 오심, 즉 성육신은 이 두 세상을 하나로 결속시키며, 세상적인 것들-그 모든 활동들을 포함-을 소위 천국의 성사로 만든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전환하는 시기에는 찰스 고어(Charles Gore 1853-1932)를 꼽을 수 있다. 그는 옥스퍼드교구 주교로 신학적인 논문들-<The Reconstruction of Belief> 등-에서부터 설교집-<The Deity of Christ> 등-까지, 교육적인 저서들-<The Church and the Ministry> 등-에서부터 당대의 문제들을 다루는 저서들-<Christ and Society> 등-까지 폭넓게 집필하였다. 20세기초의 윌리엄 템플(William Temple 1881-1944)-켄터베리 대주교-은 3권의 신학적인 저서들-<Mens Creatrix>, <Christus Veritas>과 <Nature, Man, and God>-과 그의 유명한 저서들인 <Faith and Life>과 <Reading in St John’s Gospel>, <Repton School Sermons>, <Christianity and Social Order>를 집필하였다. 템플은 당대 뿐만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성공회신앙에서 우주를 포용하는 영성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템플에게 그리스도교 생활의 목표는 하느님과의 친교, 즉 ‘사랑의 친교-자기를 잊고[헌신적인] 그리고 자기를 내어주는[이타적인] 사랑의 친교’이다. 그밖에 20세기의 신학자로 누구를 꼽을 수 있는가? 아마도 파러(Austin Farrer), 램지(Ian Ramsey), 닐(Stephen Neill), 로빈슨(J. A. T. Robinson)을 꼽을 수도 있다. 당대에 유명한 이들이 후대까지 권위있는 인물로 남을 지는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성공회가 16, 17세기의 잉글랜드교회에 뿌리를 두었다고 하더라도, ‘성공회 신학자들’의 명칭은 영국인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스코틀랜드인들은 로버트 라이턴(Robert Leighton 1611-84)를 꼽을 것이다. 그는 에딘버러 대학교의 신학교수이자 글래스고 대주교로 신약성서의 각 서들에 대한 주석과 강의, 신학강의와 주석강의들을 출판하였으며, <An Exposition of the Creed, Lord’s Prayer, and Ten Commandments [...] To which is annext a short catechism>과 명상, 영성훈련, 그리고 <Rule and Instructions for a Holy Life> 그리고 설교집들을 집필하였다. 라이턴은 주교직과 장로제주의를 결합시키려고 시도하였으며, 그럼으로써 그의 조국을 분열시키는 상처를 치유하려고 노력하였다. 이 때문에 그는 를 집필하였다.

    식민지 시대의 미국성공회에서는 사무엘 존슨을 꼽을 수 있다. 그는 갓 설립된 예일대학의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커네티컷의 사제이자 목회자였으며, 킹스 칼리지(후에 콜롬비아 대학교로 개칭)의 초대학장이었다. 존슨은 간단한 <Encyclopedia of Philosophy>를, 잉글랜드교회의 옹호론인 <Three Letters to Dissenters>와 <Letters Concerning the Sovereignty of God>를 집필하였다. 그리고 교리교육서인 와, 세련된 설교들인 과 <Usefulness and Great Duty of Prayer>, 그리고 <The Beauty of Holiness in the Worship of the Church of England>를, 그리고 개인용이자 가정용으로 과 <Two Collects>를 출판하였다. 존슨은 성육신 교리를 우리가 그리스도에 연합하는 도구[매개]로 강조하였으며, ‘따라서 우리의 본질과 연합되고 그 안에 거주하게 함으로써 그 분은 우리와 결합하여 우리 안에 거주하고 우리는 그분 안에 거주한다. 그러므로 그 분의 몸의 장막에 거주함으로써 그 분은 스스로 결합하셨으며 인간 안에 거주하신다.’

    독립한 미합중국의 미국성공회의 윌리엄 포처 듀보스(William Porcher DuBose)는 테네시주의 남부대학교(University of the South) 교수였다. 그는 미국교회에서 매우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사상가로 인정받았으며, 수많은 저서들-<The Reason of Life>, <The Gospel in the Gospels>, <The soteriology of the New Twstament>와 <High Priesthood and Sacrifice>를 포함-을 집필하였다. 그는 확실히 다방면에 관심과 열의를 가진 박식하고 열성적인 남부지방 성직자였으나 자주 언급되지는 않았으며, 미국성공회의 교회력에서 그를 기념하고 있다. 그 밖의 다른 신학자들을 언급한다면, 존 헨리 호바트(뉴욕주교), 윌리엄 미드(버지니아주교) 등은 당시에 뛰어난 학자들로 신학적인 논문들을 저술하고, 영향력있는 설교자들로 명성을 얻으며, 공적인 신심생활과 사적인 신심생활을 위한 자료들을 제공하고, (미드의 한 저서의 제목처럼) <성공회를 사랑하는 이유들>을 제공하였다. 그 외에도 두 주교를 꼽을 수 있다. 필립 브룩스-매사추세스주교-는 유명한 설교가이면서도, <Baptism and Confirmation>과 <Preaching>, <Tolerance>, <the Influence of Jesus> 그리고 모음집인 <Essays and Addresses, Religious, Literary, and Social>를 저술하였다. A. V. G. 알렌의 말대로, 브룩스와 다른 광교회파 성직자들은 ‘후커와 버틀러 주교와 마찬가지로 인간이성이 신적인 계시를 입증하기 위하여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재능(도구faculty)이라고 주장하였다.’

    두번째로 필리핀의 주교로 후에 서부 뉴욕의 주교였던 찰스 헨리 브렌트는 카나다에서 태어나고 성장하였으며, 필리핀 군도에 있는 교회에서 활동하였다. 원숙한 능력을 가진 교회정치가인 브렌트는 또한 사려깊은 신학자로 <The Commonwealth, its foundations and pillars>, <The Mount of Vision, being a study of life in terms of the whole>와 <Presence>를 저술하였으며, 또한 심오한 영성적 지도자로 <Adventures in Prayer>를 출판하였으며, 그의 책 <With God in the World>에서 지구상의 복지에 관심하였다. 물론 이들 이외에도 미국성공회와 세계성공회의 다른 관구들에도 다른 인물들이 있다. 카나다의 경우, 브렌트 외에도 필립 캐링턴-퀘벡대주교-은 마가복음에 대한 주석과 카나다교회의 역사, <The Early Christian Church> 그리고 <The Meaning of Revelation>를 저술하였다.

    이외에도 세계성공회 교회들에서 수많은 성직자와 학자들을 언급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신학자들을 입증하는 방식은 앞에서 충분하게 설명하였다. 이제 비 앵글로-색슨 성공회 교회들-특히 남반구의 교회들-이 발전함에 따라 성공회 신학자에 대한 기준도 확대되고 개정되어야 한다. 또한 지금까지 성공회 신학자들에 대한 논의를 남성에 한정시켰다는 점도 지적하여야 한다. 세계성공회의 여러 교회들에서 여성의 성직서품을 허용함에 따라 이러한 제한은 곧 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과거의 여성들 중에서 미래의 여성성직자들이 선배들로 인식할 수 있는 인물들이 누구인가를 질문하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

    먼저 존 주얼의 <Apology>(1564)를 번역한 앤 베이컨(Ann Bacon)은 박식하고 열성적인 쿡가문의 자매들중 하나이다. 그리고 엘리자베스1세의 공적인 연설들과 기도문들은? 존경할만한 복음주의자인 하나 모어(Hannah More1745-1833)는 소책자들과 논문들, 성 바울로에 대한 연구서들, 그리고 <Christian Morals>에 관하여, <Practical Piety>과 <Book of Private Devotions>를 저술하였다. 그러나 그녀가 매우 박식하지 않다고 불평할 수도 있으며, 당대를 넘어서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 인물은 아니다. 그러나 에버린 언더힐(Everlyn Underhill)은 확실히 박식하며 많은 성공회 신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녀의 주요 저서들은 학문적인 고전으로 <Mysticism>(1911)과 <Worship>(1937)이며, 그 밖에도 보다 대중적인 저서들인 <The Life of the Spirit and the Life of To-day>와 <The Fruits of the Spirit> 등을 집필하였다. 언더힐은 예찬(adoration)과 상통과 협력을 삼위일체적인 신앙과 생활을 대표하는 것으로 이해함으로써, 그녀는 이전 세대의 성공회 신학자들이 강조하고 물려준 것들을 요약하였다. 그녀의 저서들에서 신학과 기도는 하나였으며, 그녀는 성과 속, 개체와 공동체, 그리고 이와 비슷한 구분들과 같은 이분법을 극복하려고 노력하였다.

    에버린 언더힐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하더라도, 비다 스커더(Vida Scudder)의 저서들은 성공회 신학자들의 특징들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녀는 미국의 웰즐리대학교의 영문학 교수이며, [성십자가 여성신우회]Society of the Companions of the Holy Cross의 초기 회원이었다. 스커더는 시에나의 케서린(Catherine of Siena)의 편지들을 번역하여 편찬하였으며, 프란시스코 수도회의 초기역사를 집필하였다. 그녀는 소설, 제임스 헌팅턴의 전기, 학문적인 연구서인 <The Life of the Spirit in Modern English Poets>를 저술하였다. 사회주의자인 그녀는 당대의 사회적 위기들에 대한 그리스도교 복음의 의미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Christian Citizenship>과 <The Witness of Denial>, <The Social Teachings of the Christian Year>에 관한 책들을 발표하였다. 스커더, 언더힐, 모리스, 퓨지와 시메온, 그리고 후커와 앤드류스, 테일러에게 희생의 개념은 매우 중심적으로 중요한 문제였다. 스커더에 의하면, ‘우리가 살 수 있고, 지속적으로 쇄신되는 희생을 택하여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존재-그렇지 않으면 전혀 살 수가 없다-가 되도록 제공했던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의 궁국적인 행동이다.’‘그것은 상호의존이라는 오묘한 신비에 대한 보증이며, 자기 만족적인 삶을 살아가려는 모든 시도들에 대한 영원한 거부이다. 실존 그 자체는 지속적인 상통(하느님과의 상통Communion)이며, 그안에서 인간은 보편적인 하느님에게 매달려[의존하며] 살아간다.’

    성공회 신학자들에 대한 범위을 확대하고 개정할 때, 20세기에서 여성뿐만 아니라 유명한 평신도들을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 잉글랜드의 C. S. 루이스(Lewis)는 나니아(Narnia) 시리즈와 다른 소설들-<The Screwtape Letters> 등-과 그리스도교를 옹호라는 평론들로 유명하였다. 그 외에 법률가인 오웬 바필드(Owen Barfield), 매우 독창적인 시인이자 신학자인 찰스 윌리엄스(Charles Williams)를 꼽을 수 있다. 여성인 도로시 세어즈(Dorothy L. Sayers)는 <The Mind of the Maker>와 같은 신학저서를, 단테의 번역과 주로 호교론적인 저서들로 공헌하였다. T. S. 엘리어트(Eliot)-미국출생이지만 성향은 영국인이었다-는 앤드류스와 형이상학적인 시인들에 깊은 관심을 갖고 이들을 해설함으로써 성공회신앙을 일반독자들에게 전달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가장 완전한 인간성에 필수적이며 기도서 예배에서 가장 완전하게 나타나는 통합된 감성의 사례들을 설명하였다. 최근에 미국의 경우, 칼 바르트가 칭찬한 윌리엄 스트링펠로우(William Stringfellow)를 꼽을 수 있다. 이러한 성공회 신학자들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며, 표준적인 신학자의 명단에 포함될 수도 있다. 이들은 성공회 지역교회의 신자이자 열렬한 신앙인으로서 개인적이자 사회적 생활이 신학과 신심과 본래부터 결합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성공회 신학자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 글에서 언급된 사람들의 삶과 신학적인 저서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신학자들에 대한 ‘표준적인’ 또는 권위있는 명단은 없지만, 잉글랜드교회(ecclesia Anglicana)와 일치하는 전통에 서서 성공회에 봉사한 사람으로, 학식과 신심을 겸비하고 후대에까지 세계성공회에 어느정도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들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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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4월 2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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