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 번역 프로젝트 자료

  1. Cranmer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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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교회회의들, 주교회의들 그리고 교회총회들
    (Councils, Conferences and Synods)
    Frederick H. Shriver

    그리스도교회의 생활에서 교회회의들(councils)은 그리스도교의 교리와 신앙활동(practice)에서 상호동의 또는 공감[의견일치]을 찾을 목적으로 소집된 교회대표자들의 회합[집회]이다. 성공회전통에서 교회회의는 초기교회와 중세교회의 유산을 16세기의 개혁을 통해서 현재의 입장으로 발전시킨 것으로, 서로 다른 권위와 목적 그리고 구성원에 따라서 여러가지 방식으로 다르게 기능하였다. 첫째로, ‘세계적인’(general또는 oecumenical) 교회회의[공의회]들-4세기에서 8세기에 개최된 교회회의들-은 잉글랜드교회[영국성공회] 그리고 세계성공회(Anglican Communion)의 다른 교회들에서 계속해서 중요한 교회회의로 인정받고 있다.

    둘째로, 국가단위(national), 관구단위(provincial), 그리고 교구단위의 교회회의들-보다 일반적으로 ‘총회’(synod 또는 convention)라고 부른다-는 각 단위의 교회들을 치리하고 규제하는 회의이다. 잉글랜드교회의 경우, 이 교회회의는 켄터베리관구와 요크관구의 총회들[관구의회]-‘성직자회의’(convocation)이라고 한다-을 포함하며, 그리고 보다 최근에 설립되어 평신도 대표자들을 포함하는 ‘전국총회’(General Synod)는 앞의 두 성직자회의의 역사적 권위를 계승하였다. 미국 성공회의 ‘전국 대표자회의’ (General Convention)-매2년마다 개최한다-도 실질적으로 총회(synod)이다. 세계성공회의 각 교회들 또는 관구들은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즉 주교에 의한 정치제도(Episcopal polity)의 일부분으로 성직자 대표자들과 때때로 평신도 대표자들로 구성된 총회(synod)를 통해서 치리되고 있다.

    세째로, 람베스 주교회의는 성공회의 모든 주교들이 참여하며, 일종의 교회회의이다. 람베스회의는 독립적인 성공회교회들에 대한 법적인 권위[권한]를 갖고 있지 않지만, 그리스도교회들 전반과 특별히 성공회교회들이 직면한 문제들을 논의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외에도 성공회교회협의회(Anglican Consultative Council)는 위의 기구들과는 전혀 다른 기구로, 다른 기구들보다 훨씬 대의적인 기구로 세계성공회(Anglican Communion)의 국제적이며 다문화적인 특징을 반영하는 대표자들로 구성된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일반적인 주제들을 논의하며, 결론에서는 교회회의주의(conciliarism) 그리고 20세기 교회일치운동과 성공회교회들과의 관련성에 대하여 몇가지 논평을 피력하려고 한다.

    1. 세계적인 교회회의들(The ecumenical Councils공의회들)

    첫 4차례의 세계적인 교회회의[공의회]인 니케아(325), 콘스탄티노플(381), 에베소(431) 그리고 칼케돈(451) 공의회들은 성공회신학에서 성서 다음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만, 이 공의회들의 권위를 인정하는 방식은 성공회의 고전적인 신학적 방법론에서 이를 표현할 때에 복합적이고 매우 중요하다.

    1559년 [잉글랜드]의회는 엘리자베스1세의 승인을 받아 국왕수장권법을 제정하며, 잉글랜드교회에 대한 잉글랜드 국왕의 주권을 복원하였다(pp. 8-9, 107-8, 393-6 참조). 이 법률에서 ‘첫 4개의 세계공의회들’은 새로이 개혁된 교회에서 이단을 규정하는 권위였다[기준이었다]. 즉, 이단에 대한 판단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다.

    '지금까지[이전에] 정경 성서들의 권위에 의해서, 또는 앞의 정경 성서들의 분명하고 명백한 문구들을 근거로 이단이라고 선포하였던 공의회에 의해서, 이단으로 판정되거나 지정되거나 판결받은 경우를, 또는 이후에 왕국의 성직자회의에서 성직자들의 동의를 얻어 이 나라 의회(High Court of Parliament)[특히 귀족원-역자]에서 이단으로 판정되거나 판결받거나 확정받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문제나 주장도 법적으로 이단이라고 간주할 수 없다.'

    이를 긍정적으로 말한다면, 첫 4차례 공의회들의 교의적인 법률들(dogmatic canons)은 잉글랜드교회와 세계성공회의 다른 교회들에게 그리스도의 위격(person)과 삼위일체 하느님의 각 위격들 사이의 관계들에 관한 기본적인 교리를 제공하였으며, 지금도 여전히 제공하고 있다. 16세기의 루터파와 개혁주의(Reformed)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잉글랜드교회는 4세기와 5세기의 공의회들의 신학(conciliar theology)을 그리스도교 교리의 절대적인 근거인 성서의 교리와 일치하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성서의 가르침과 공의회의 신학 사이의 관련성은 1563년에 보다 자세하게 정의하였다.

    1563년 성직자회의에서 성직자들을 위한 교리적 표준으로 제정한 39개 신앙조항은 공의회들의 교령들(결정사항들decrees)과 성서와의 관련성을 명확하게 진술하였다(pp. 90-1 참고). 제8항 ‘세가지 신경들에 관하여’는 니케아신경과 사도신경, 그리고 아타나시오신경(뒤의 두 신경은 ‘공의회에서 결정한’ 신경이 아니지만)은 ‘수용되고 믿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세가지 신경들은 성서의 가장 확실한 보증으로 입증되기 때문이다’. 공의회들(councils)에 대하여 제 21항은 1563년의 권위적인[표준적인] 입장-1571년에서야 의회에서 인준받았다-을 분명하게 설명하였다.

    '공의회들(세계적인 교회회의들General Councils)은 군주들의 명령과 의지없이는 소집될 수 없다. 그리고 공의회들이 개최되었을 때, (이 회의는 인간들의 모임으로 성령과 하느님의 말씀으로 항상 치리되지는 않기 때문에) 공의회는 하느님에 관한 문제들에서 조차도 오류를 범할 수 있으며, 때때로 오류를 범하였다. 따라서 공의회들에서 구원에 필수적이라고 제정된 것들도, 성서로부터 근거한 것으로 밝혀지지 않는다면, 설득력도 권위도 갖지 못한다.'

    이 공식문의 배경은 16세기에 발생한 종교개혁 교회들와 로마교회 사이의 투쟁이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트렌트 교회회의가 거의 끝날 무렵에 39개 신앙조항이 제정되었다. 잉글랜드와 대륙의 프로테스탄트들에게 ‘교황의 교회회의’(pope’s council)는 자유롭고 진정한 공의회가 아니었다. 그러나 새로이 개혁된 잉글랜드교회는 이 교회가 성서 이외의 가르침들이 부당하게 교리로 추가하기 이전에 존재하였던 그리스도교회의 전통적인 가톨릭교회(Catholic Church)를 보존한다는 점을 전세계에 알리고 싶었다. 또한 전반적으로 프로테스탄트들은 삼위일체와 성육신에 관한 그리스도교회의 전통적인 교리를 부인하는 세르베투스(Servetus)와 소찌니(Sozzini)와 같은 급진주의 신학자들 때문에 이 교리들을 분명하게 확인하기를 바랬다. 더구나, 만약에 공의회들의 교리가 그리스도교의 정통성을 정의하는데 사용된다면, 이후에 추가된 화체론과 같은 교의들-이것들 때문에 메리여왕의 치하에서 많은 프로테스탄트들이 죽임을 당하였다-을 고집하는 로마교회의 주장은 후대의 추가물들(innovations)이라는 점을 입증할 것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39개 신앙조항에서 잉글랜드교회는 단순한 ‘전통’-즉 교황 뿐만아니라 공의회의 교령들-은 아무리 진실하거나 존엄하다 할지라도 ‘구원에 필수적인’믿음들을 확정지을 수 없다고 분명하게 선언하였다. 트렌트회의는 교회의 전통을 성서와 같은 수준으로 격상시켰다. 잉글랜드교회의 39개 신앙조항은 이러한 주장을 분명하게 부인하였다. 교회의 권위만으로는 교리를 제정할 수 없으며, 성서에 기술되고 표현된 하느님의 말씀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따라서 잉글랜드교회는 개혁초기에 공의회에서 채택된 교령들이 잉글랜드교회의 교리를 규정하지 못한다고 주장하였다. 최대한으로 말한다면, 국왕수장권법과 39개 신앙조항은 공의회들의 교의적인 교령들-수세기에 걸쳐 전례에서 사용되었던 ‘니케아’ 신경을 포함하여-이 결정적[표준적]이지만 절대적은 아니라고 인정하였다. 다르게 표현한다면, 공의회들의 교의들은 그리스도의 위격의 본질 그리고 삼위일체의 위격들 사이의 관계들에 대한 논쟁적인 쟁점들에 대하여 성서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표현하기 때문에, 이차적인 권위만을 가진다.

    16세기의 태도는 대체로 세계공의회들과 참여한 주교들의 태도, 그리고 교회가 공의회들의 교령을 수용한 방식에 대한 현대의 연구들에 의해서 입증되었다. 공의회들은 세계적이었다(ecumenical). 왜냐하면 황제가 회의를 소집했기 때문에, 또는 주교들이 공식적인 진술문들을 발표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수세기에 걸쳐서 대다수 그리스도인들이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을, 아리우스와 아폴리나리우스와 네스토리우스 그리고 에우티케스(Eutyches)의 이단교리들에 대한 정죄를, 그리고 ‘교황 레오의 서신’(Tome of Leo)과 칼케돈공의회의 교령[그리스도의 위격에 대한 정의](Decree of Chalcedon)과 같은 다른 공의회들의 공식결정문들을 수용하였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니케아공의회에 참석한 대다수 주교들은 전통을 사실상 성서-‘씌여진’ 전통으로 이해되었다-와 동의어로 이해하는 전통이론을 갖고있었다. 이러한 이유때문에 공의회에서 그리고 이후 몇십년 동안 신경에 추가된 ‘homoousios’(똑같은 본체의; 일체시며)라는 용어가 분명하게 성서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를 크게 반대하였다. 공의회의 교부들[주교들] 뿐만아니라 이단자들에게도 아리우스논쟁에 깔려있는 쟁점은 그리스도교회의 전체적인 가르침에 대한 적합한[올바른] 해석의 문제였다. 그러나 이러한 가르침은 성서와 분리된 것으로 이해될 수 없었다. 공의회 시기에는 전통과 성서 사이의 불일치의 가능성을 숙고할 수 있는 이론 자체가 발전하지 못하였다. S. L. 그린스레이드(Greenslade)의 표현대로, ‘성서의 궁극적인 권위는 항상 확언되었지만, 전통에 대한 인식은 매우 강력하였지만 정확하지 않았다-아마도 그 본질상 정확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성서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따라서 전통을 개조하거나 바로잡을 가능성은 충분하게 고려되지 못하였다.’

    엘리자베스의 신앙정책 획립후 한세기 정도후에 성공회 신학자들은 공의회들의 권위에 대한 잉글랜드교회의 가르침의 의미를 명확하게 표현할 필요가 있었다. 일부 성공회 신학자들 그리고 공식설교문집(pp. 148-50 참조)은 첫 6개의 공의회-앞의 4개에 콘스탄티노플(553)과 콘스탄티노플(681)을 포함-의 권위를 인정하였다. 그러나 옥스퍼드 그리스도교 백과사전(Oxford Dictionary of Christian Church)이 간결하게 설명한 것처럼, ‘아마도 [...] 그러한 공의회들이 궁국적으로 잉글랜드교회에서 존경받았던 것은 공의회의 결정들을 수용가능하였기 때문이지 그 반대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공의회들에 대한 성공회의 일반적인 태도를 가장 잘 진술한 것은 아마도 신앙조항 12항에 대한 길버트 버네트(Gilbert Burnet, 솔즈베리주교1689-1715)의 해설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공의회에 대한 엄격한 인식의 경우, 동의할 수 없는 집회가 결코 없었다고 믿을 만한 커다란 이유가 있다. 그리고 우리 교회가 수용한다고 선언하였던 첫 4차례의 공의회들의 경우, 오로지 공의회들의 결론들이 성서에 따라서 결정되었다는 점을 우리가 성서로부터 믿게 되었기 때문에 이 공의회들을 인정한다. 즉, 성자는 성부와 똑같은 본체인 진정한 하느님이며, 성령 또한 진실로 하느님이며, 그리고 신적인 본질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인성과 진실로 연합되었으며 그리고 한 위격 안에 있으며, 그리고 이 두가지 본질은 서로 구별되어 있으며, 그리고 인간적 본질은 신적인 본질에 가려지지 않는다. 우리는 이러한 진리들을 성서에서 발견하며, 따라서 우리는 이것들을 믿는다. 우리는 그들의[공의회들의] 교리를 위하여 이들 공의회를 존경하는 것이지, 공의회들의 권위 때문에 교리를 믿는 것이 아니다. 이들 공의회의 다른 결정사항들중 일부는 인간적인 약점들이 너무 많이 나타났기 때문에, 그들이 결정하였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그것들에 복종할 것을 강요할 수 없다.'

    16-7세기에 리처드 필드와 윌리엄 로드는 버네트의 입장과 일치하는 신학자들중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필드는 공의회들과 이 회의들에 참석하였던 주교들을 매우 ‘존경’하였다.

    '법적인 공의회가 있다면 [...] 우리는 그러한 공의회에서 전원의 찬성으로 결정되는 것이 진실하고 옳은 일이다는 점을 강력하게 추정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 반대사항[모순]을 가장 확실하게 알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와는 다르게 생각한다고 공개적으로 고백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 의심이 남아있다면, 우리는 진리를 찾기위하여 성서와 초기교회(Antiquity)의 문서들을 주의깊게 탐구하여야 한다 [...] 그러나 공의회들에 관하여 [...] 공의회들을 소집하였던 문제-이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생활과 정신에 관하여 매우 중요하고 근본적인 문제였다-에 관하여, 그리고 공의회의 진행과정의 방식과 형태 그리고 제시되었던 증명자료에 관하여,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결정의 의미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처럼 그것들을 확실하게 믿었으며 현재도 믿고 있다고 우리는 고백한다.'

    윌리엄 로드는 그의 책 ‘예수회 수사 피셔와의 대화’에서 공의회란 대표자들의 모임으로 그리스도교회에 속한 권위만을 가지며 그 이상은 아니라고 지적하였다. 그는 어거스틴의 입장을 따라 공의회가 성령의 도움으로 신뢰를 받는다 할지라도, 이는 공의회가 오류를 범할 수 없다고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인식하였다. 즉, ‘공의회(General Council)는 오류를 범할 수 있으며 따라서 성서보다 열등하다는 것은 어거스틴에게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는 그가 다른 곳에서 진술한 것처럼, ‘성서는 절대적이며 모든 면에서 신성하다(divine). 그러나 교회의 정의[설명]는 suo mono, “약간만”(in a sort or manner) 신성하다. 그러나 약간만 신성한 것은 절대적이며 항상 절대적인 것만큼이나 높은 정도로 근거[토대]가 결코 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로드는 39개 신앙조항의 분명한 추종자-그의 의무이기도 하였지만-였으며, 이러한 입장을 베네트에게 전달하고 있다.

    17세기부터 시작된 성서와 그리스도교 교리에 대한 현대의 비판적인 역사연구의 발전은 성서와 전통(이 경우 보다 구체적으로 공의회의 교리의 권위에 관하여)의 관계에 관한 성공회의 신학을 재조정하도록 요구하였다. 전통과 성서의 관계를 단순히 갈등으로 이해하기란 더이상 불가능하다는 점이 점차적으로 분명하였다. 전통과 성서에 관한 트렌트회의의 교령은 당시의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당대의 프로테스탄트들이 허용하거나 이해하는 것보다 더욱더 논쟁적이었다. 하이코 오버만(Heiko Oberman)은 중세말기의 신학에서 전통에 대한 두가지 서로 다른 태도들을 구별하였다. 그가 명칭한 ‘전통Ⅰ’은 위대한 신학자들의 입장으로 전통을 그리스도교회내에서 ‘성서를 순종적으로[교회의 명령에 맞게] 해석한 것들의 역사’로 이해하였다. 이러한 이해는 공의회의 교령들과 성서적 교리와의 관계에 대한 16-7세기의 프로테스탄트들과 성공회[잉글랜드교회] 신학자들의 태도였다고 볼 수 있으며, 앞에서 버네트와 필드 그리고 로드의 인용문들로 대표된다. 오버만의 ‘전통Ⅱ’는 전통을 ‘성서에 혼합되어 있지만[묻혀있으면서도] 주교의 계승을 통해서 전달된 성서 이외의[밖에] 사도적인 전통으로 넘쳐나온 것들로 이해하였다. 이 후자의 입장은 트렌트 교회회의의 교령에 포함된 것이라고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들은 믿었다. 앞에서 인용한 로드의 입장은 이러한 전통이해와는 조화될 수 없었다. 19-20세기에 원죄없는 잉태(Immaculate Conception), 교황무류론(papal infallibility) 그리고 성모몽소승천(Assumption)에 관한 교황의 교령들(decrees)에 대한 성공회의 거부는 전통적인 성공회적인 입장(distinction)과 일치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18세기의 이신론 논쟁 그리고 계몽주의의 공격적인 환경은 성공회신학 내부에서 전통에 대하여 보다 동정적인 입장을 야기[발전]시켰다. 이신론자들과 일신론자들(Unitarians)은 정통적인 성공회신자들에게 신약성서의 해석되지 않은 본문들은 삼위일체 교리들 그리고 특히 성육신에 대한 분명하고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증거로 사용될 수 없다는 점을 입증하였다. 신경의 형식과 공의회의 공식문들로 표현되었을 뿐만아니라, 초기교회와 중세교회 그리고 종교개혁이후의 프로테스탄트들과 로마 가톨릭교회 신학자들 모두가 이러한 교리를 계속해서 승인하였던 [그리스도]교회의 전통적인 해석은 성공회조차도 전통-물론 오버만의 ‘전통I’의 범주에 속하지만-을 인정하여야 한다는 인식을 낳았다[입장을 제기하였다].

    20세기에는 그리스도교회에서 가르침에 대한 권위(teaching authority)의 발전과정에서 공의회들의 위치에 대하여 많이 논의하였다.

    공의회들의 권위를 이해하는 복합적인 방식 때문에, 신학자들은 성서의 권위에 충실하기 위하여 공의회의 신학-특히 공의회의 전문용어들과 가설들-을 어느정도까지 존중하여야 하는지를 질문하였다. 성공회 신학자들은 이 질문에 대한 의견들을 달리하였다. 이론적으로, 질문은 그리스도의 위격(person)과 삼위일체의 위격들(persons)에 대하여 말하는 전통적인 용어를 수정할 때에 교회가 어느정도까지 나아갈 수 있는가이다. 다른 한편으로 일부는 공의회의 정의들이 신성불가침하며 교정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일부는 용어란 시간적인 제약을 받는 것이며, 따라서 하느님에 대한 현대적 또는 성서적 이해를 완전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2. 총회[지역단위의 교회회의]에 의한 치리형태(Synodical Government)

    ‘세계성공회’(Aglican Communion성공회공동체)는 16-7세기에 아일랜드 [왕국]교회의 개혁과 함께 존재하기 시작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비정상적인 형태였던 스코틀랜드 주교제교회[성공회](Episcopal Church of Scotland)는 1689년에 [국가로부터] 독립된 기구가 되었으며, 그후에 1789년에 미국혁명[미국의 독립]으로 미국성공회가 탄생하였으며, 뒤이에 대영제국의 발전과 해체로 뉴질랜드성공회[1857], 호주성공회, 카나다성공회와 많은 다른 성공회들이 탄생하기 시작하였다. 이 모든 교회들은 국왕 또는 의회와의 관계가 서로 달랐지만, 개별적인 정치적인 특성을 보유하면서도 지역단위의 교회회의[총회]를 통해서(synodically) 치리되었다.

    이 글의 범위내에서 성공회 교회들의 서로 다른 치리구조[정치구조]의 역사와 발전과정을 논의하기란 불가능하다. 20세기후반의 시각에서 세계성공회의 교회들을 살펴본다면, 독립된 성공회교회들이 주교의 권위를 중요하고 독특한 형태로 인정하면서도 사제와 평신도의 대표들을 포함하는 ‘교회회의들’(councils)에 의해서 치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지역단위의 교회회의[총회]적인 성격은 적어도 2세기부터 내려오는 그리스도교회의 전통(일부학자는 1세부터이며, 또한 사도행전 15장-서기 50년-에 기록된 예루살렘에서 열린 ‘교회회의’에서부터 유래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결정들을 내릴때 조직체 전체와 협의하는 공통적인 인간적 체험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지역단위의 교회회의[총회]에 의한 치리형태의 발전은 또한 세속적인 통치형태들에서 대의적인 통치제도(representative government)라는 보다 민주적인 형태들의 확산을 반영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잉글랜드가 ‘의회의 어머니’라면, 마찬가지로 잉글랜드교회[성공회]는 그리스도교회 내에서 대의적인 통치형태의 어머니이다. 1780년대에 설립된 미국성공회의 치리형태-주교원 그리고 평신도까지 포함하는(여성은 1973년부터) 대표자원(House of Deputies)[각 교구에서 선출한 성직자와 평신도 동수로 구성-역자]을 포함하는 총회[대표자회의 Convention]-는 잉글랜드의 세속적인 통치형태와 교회의 통치형태를 혼합한 최초의 사례로 성공회의 새로운 치리형태를 제시하였다. 그 이후로 세계성공회 교회들에서 지역단위 교회회의[총회]에 의한 치리형태의 대의적인 성격은 분명하게 확립되었다.

    그러나 대의적인 성격은 단지 개별적인 교회들 또는 독립적인 ‘관구교회들’에만 영향을 주었다. 오히려 세계성공회(성공회공동체Anglican Communion)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의미에서 세계적인 ‘교회’가 아니다. 오히려 다른 비로마 가톨릭교회들의 세계적인 친교단체(fellowship)와 비슷하다. 예를들면, 잉글랜드성공회, 일본성공회, 또는 서부 아프리카 관구교회보다 상위에 있는 성공회의 권위체는 없다. 이러한 형태가 유익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의구심들이 있을 수 있다. 선교회운동(missionary movement), 영국과 미국의 제국주의, 대영제국의 해체, 그리고 영국과 미국의 문화적인 우월성으로부터의 독립에 대한 진지한 각성은 비영국적인 성공회교회들의 급격한 성장을 촉진시켰다. 문자적인[형식적인-역자] 독립 뿐만아니라 정신의 독립도 지속되었다. 그러나 매우 자연그럽게 새로이 독립한 교회들은 종종 교회일치운동의 대화에서 여전히 보다 경험이 많고(rich) 영향력이 큰 모교회들로부터 안내[지도력, 지침]를 기대하였다. 제국주의적이며 식민지주의적인 태도들의 잔재는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구상의 국가들이 국제적인 통치형태의 구조를 수정하지 않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성공회도 다른 자매교회들이 어떤 형태의 중심적인 권위체로 결합할 수 있는 수단[기구]을 창안할 수도 또는 창안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단일체(unity)에 대한 기대와 독립에 대한 기대 사이의 긴장들은 적어도 19세기 초반부터 지금까지 세계성공회내에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다.

    3. 람베스 주교회의

    람베스 주교회의가 지속적으로 개최됨에 따라, 켄터베리 교구와의 역사적인 결합으로 상징되는 주교직의 공통적인 체험 뿐만아니라 공통적이며 복합적인 전례적인 전통은 일종의 통일성을 제공하였다. 주교들이 참여하는 이 회의는 성공회 교회들 사이의 상호협력의 유용성, 심지어는 필수성까지도 입증하였지만, 마찬가지로 최고의 권위체가 쉽게 성취될 수 없다는 점도 보여주었다. 세계성공회 내에서 보다 중요한 의미의 공식적인 통일체가 존재하려면, 그것은 앞에서 지적한 발전과정들 때문에 아마도 어떤 의미에서 교회회의체적(conciliar)이어야 할 것이다.

    성공회 주교들의 첫번째 회의는 1867년9월 켄터베리주교의 런던공관인 람베스궁에서 개최되었다. 이 회의에는 잉글랜드, 아일랜드, 카나다, 미국, 그리고 대영제국의 식민지 지역들의 주교들이 참여하였다. 1850년대 이후로 특히 미국과 카나다에서 일종의 국제적인 성공회총회의 설립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였다. 실제로 람베스 주교회의는 매 3년마다 개최되는 카나다관구의 관구의회[총회]가 롱리(Longley) 켄터베리 대주교에게 ‘국내와 해외의 잉글랜드[성공회]교회의 주교들의 전국총회’를 소집할 것을 요청하였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이 회의는 커다란 성과없이 4일만에 끝났지만, 만났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성과였다.

    1878년의 두번째 람베스회의는 선례를 확립하였다는 점에서 첫번째보다 훨씬 더 중요하였다. 1888년의 세번째 회의는 해외의 청원없이 에드워드 벤슨 대주교가 직접 소집하였다. 바로 이 회의에서 유명한 ‘람베스4개조항’이 탄생하였다(pp. 249-50 참조). 대주교가 제시한 논의사항[안건]들중 하나는 성공회교회들과 다른 교파교회들과의 관계에 관한 것이었다. 1885년 시키고에서 개최된 미국성공회의 전국총회(General Convention)에서 주교원은 성공회교회들과 다른 교파교회들 사이의 통합을 논의하는 기본사항으로 4개의 원칙을 규정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 4개의 원칙은 성서, 사도신경과 니케아신경, 세례와 성찬례의 두가지 성사, 그리고 ‘지역별로 개작된(adapted정착된)’ 역사적 주교직이었다. 이 결의안은 어떤 법적인 또는 의무적인 효력없이도 많은 성공회교회들에게 타 교파교회들과의 관계를 규정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인정받았다.

    또한 바로 이때에 벤슨대주교는 이러한 성공회 주교회의[람베스회의-역자]에 대하여 전반적으로 합의된 이해가 되었던 것을[입장을] 설명하였다(이 글은 그의 일기장에서 인용한다).

    '나는 회의를 시작할 때, 우리가 교리들 또는 권징에 대한 구속력있는 결정들-이는 우리교회의 헌장에 맞지 않는다-과 미국과의 관계를 결정하려고 시도한다해도, 이 회의는 결코 총회가 아니며, 그렇게 개조될 수 없으며, 또는 자격이 없으며, 또는 이 회의의 권한내에 있지도 않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사실상 이 문제들은 롱리와 테이트 대주교의 연설 등에서 이미 예견되고 결정되었다.'

    이후의 회의들-그 중에서 1920년 회의는 그리스도교회의 통일에 대한 호소로, 1948년 회의는 세계대전으로 발생한 엄청난 파괴의 치유라는 점에서 중요하였다-은 앵글로-색슨세계 밖에 있는 성공회교회들의 비약적인 성장을 반영하였다. 회의에서 토론되고 어느정도 보고서에 반영된 주제들의 범위는 커다란 문화적 다양성 속에서 성공회의 자의식을 증진시켰다. 그러나 처음부터 성공회신앙의 한계를 넘어서 그리스도교의 통합(unity, 일치)은 항상 주요한 주제들중 하나였다. 람베스회의들은 막대한 비용을 소모하며, 결과적으로 회의의 가치에 대하여 적지않은 비판을 받아왔다. 예를들면, 비용문제, 실질적인 비효율성, 영국 또는 앵글로-색슨 중심의 논의, 그리고 참여자를 주교만으로 제한하는 것. 그러나 실제로 공통적인 문제들에 관한 협의에 대한 기대가 무산되었을 때, 상호간의 책임을 완전하게 수행할 수 있는 또다른 효과적인 방법을 만들어내지는 못하였다.

    이외에 성공회교회들의 세계적인 모임 또는 성공회의회[대회](Congresses of Anglicans)-평신도포함-이 런던(1908), 미니에폴리스(1954), 그리고 토론토(1963) 에서 개최되었다. 오늘날 이와같은 모임이 다시 개최되기는 거의 불가능해 보이지만, 특히 마지막 두 회의는 람베스회의가 아무리 중요하다 하더라도 세계적인 성공회신앙의 유일한 목소리로 이해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대회(Congress)들은 많은 성공회신자들에게 세계성공회의 다양성과 통일성을 표현하고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아서 마이클 램지 대주교와 스테판 베인주교-1960-67년에 세계성공회의 사무총장(Executive Officer)-의 영향으로, 토론토대회[회의]는 1968년 람베스회의의 과제를 준비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 람베스회의는 제3세계의 문제들, 그리고 가난한 나라들과 교회들 그리고 부유한 나라들과 교회들 사이의 격차에 대한 세계적인 인식의 확산을 반영하여 세계성공회 협의회(Anglican Consultative Council)를 설립하였다. 이 협의회는 1971년에 처음으로 개최되었으며, 이후 세계성공회의 유대관계를 향상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1971년부터 82년까지 이 협의회의 사무총장이었던 존 하우(John Howe) 주교는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여러가지 면에서 세계성공회 협의회(ACC)는 독특하였으며, 그리고 지금도 독특하다. 협의회는 성공회에서 헌장을 가진 유일한 세계적인 기구이다. 또한 이 협의회는 세계성공회 전체로부터 권한을 부여받았다 […] [그리고] 성직자와 평신도를 포함한다. 모든 성공회교회들은 회원이며 [...] 전체 숫자는 비교적 작아서 회의를 보다 자주 개최할 수 있으며 […] 협의회는 매 2-3년마다 개최되며, 상임위원회는 매년 개최된다. 가능한한 협의회는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개최하려고 노력한다.'

    협의회는 아직도 상대적으로 설립된지 얼마 안되며, 또한 그 활동도 개별 교회들과 신자들에게 분명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 협의회 역시 대규모 기관들의 모든 ‘집행부들’이 경험하는 똑같은 문제들을 겪고 있다. 그러나 이 협의회는 적어도 존경할만한 모체인 람베스 주교회의처럼 각각의 성공회교회이 관구교회의 무관심속에 묻혀있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보장한다. 그리고 람베스회의처럼 세계성공회의 통일성을 증진시키는 여러가지 방식들을 통해서 발전할 것이다.

    4. 결 론

    세계성공회의 ‘교회회의적인’(consiliar) 성격은 아마도 현대의 성공회신앙에서 가장 알려지지 않은 것들중 하나이면서도, 가장 독특한 특징들중 하나이다. 이것은 거의 모든 다른 교회기구들과 공유하는 특징이며, 또한 교회일치운동(Ecumenical Movement)의 중요한 부분이었던 특징이다. 그리스도교계(Christendom)의 진정한 공의회(general council)에 대한 희망은 14-5세기에 발생한 교황청의 대분열(Great Schism)이후로 특히 간절하게 존재하였다. 종교개혁시대의 프로테스탄트들에게 트렌트회의는 희망하였던 공의회가 아니었다. 그러나 루터와 칼빈은 첫 4차례의 공의회들의 성과를 존경하였기 때문에, 공의회의 이상을 그리스도교회의 한 기능인 성인들과의 상통(communion sanctorum)으로 상향시켰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제2차 바티칸회의이후 교회회의 우위론(운동conciliarism)에 대한 폭발적인 활력과 열정을 체험하였다. 세계교회협의회가 세례, 성찬례, 그리고 사목직에 관하여 발표한 리마문서-1972년에 발표한 일종의 ‘공의회적인’(conciliar) 문서이다-는 그리스도교회의 역사에서 가장 잘 논의된 신학적 발표문들중 하나가 되었다. 이 두가지의 발전은 교회통합(church unity)에 대한 점증하는 분위기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2000년이 다가오는 이 때에, 비로마 가톨릭교회들에 대한 교황 요한 바울로2세의 의사표시는 희망적으로 보인다 할지라도, 개별 교파교회들 내부 그리고 교파교회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분열과 논쟁은 (화해 뿐만아니라!) 일종의 순수한 공위회적인 구조(공의회우위론conciliarism)가 필수적일 뿐만아니라, 획득하기도 어려운 것으로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공의회원칙들-이는 성공회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들중 하나와 일치한다-이 그리스도인들의 상통[통합, communion]을 추구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한 인식은 목표로 남아있어야 한다. 정확하게 내부적인 논쟁에 대한 성공회적인 해결책 때문에, 성공회신자들은 스스로를 위하여 그리고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진정한 공의회사상[공의회우위론]의 미래를 인정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성공회의 경우, 성공회의 치리제도의 발전과정을 반영하는 현대의 공의회주의(conciliarism)는 주교의 중요한 역할(이것을 세계성공회의 유일하게 독특한 특징으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다)을 보전할 뿐만아니라, 교회의 다른 성직들과 평신도직들의 대표자들의 참여를 의미할 것이다.

    교회에서 주교직의 기능이 개별적인 교회들에게 그리스도교회가 세계적인 친교 (상통관계fellowship)-ecumenical and catholic-라는 사실에 더욱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라면, 그러한 기능은 주교들이 교회회의(council)에 함께 모일 때에 가장 분명하게 표현된다. 그러나 국가단위 또는 관구단위로 독립된 성공회교회들의 성숙하는 신앙활동에서 교회의 주교들은 consensus fidelium, 즉 신자들의 친교를 나타내는 유일한 대표자들이 아니다. 성직자와 평신도 또한 대의적인 공감 (representative consensus)의 일부이다. 4-5세기의 위대한 공의회들에 참여한 주교들이 스스로 진정으로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것 그대로 그리고 사제들과 평신도들이 이해하는 바 그대로 교회의 신앙을 진정으로 대표한다고 인식하였다면, 이제 (그러한 공의회들을 소집하였던 황제의 권한이 없을 경우) 교회의 공의회적인 성격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주교들만이 아니라 전체 교회의 대표자들을 포함하여야 한다.

    성공회-로마 가톨릭교회 국제위원회의 최근 발표문들은 주교와 교황의 권위에 관한 문제들을 다루면서 공의회의 권위에 관한 문제를 논의하였다. 여기서 아마도 불가피하게 교황무류론과 수좌권이 성공회와 로마 가톨릭교회 사이에서 가장 불화적인 쟁점들임을 고려하였기 때문에, 공의회들을 주교들의 회의로 가정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에서의 권위(I)에 관한 베니스 진술문[합의문](1976)은 주교들이 갖고 있는 ‘진리를 증진시키고 오류를 식별하는 특별한 책임’을 수행할 때에 주교와 함께 성직자와 평신도의 위치를 인정하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러한 특별한 책임을] 수행할 때에 주교와 평신도와의 상호작용[대화]이 그리스도교의 생활과 충실성을 보장하는 안전장치이다’고 인정하였다.

    베니스 진술문과 19812년의 이에 대한 ‘해설문’(Elucidation)은 39개 신앙조항 그리고 그이후 39개 신앙조항에 대한 성공회 신학자들의 해석으로 복귀하는 고전적인 성공회의 입장을 반복하였다. 즉, 공의회의 교령들은 공의회가 ‘구원의 중심적인 진리들을 공식화하고’ 그리고 ‘성서에 충실하고 전통과 일치’할 때에만 구속력을 갖는다. 또한 이 문서는 ‘수좌권’(primacy)과 ‘공의회의 권위’ (conciliarity)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여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국제위원회는 로마주교의 수좌적 권위라는 중대한 쟁점을 논의하였다. 그러나 원칙은 주교들의 관구 또는 교구 관할권 안에서 주교들중의 한 주교의 수좌권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었다.

    국제위원회는 또한 공의회의 교령들에 구속력을 부여하는 진정성(authenticity)의 문제에서 교회에 의한 ‘수용’(reception)의 위치를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설명하였다.

    '수용은 결정을 창출하지도 합법화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이것[수용]은 그러한 결정이 신앙을 진정으로 표현하는 필수적인 조건들을 성취하였다는 최종적인 표시이기 때문이다. 이를 수용할 때, 전체 교회는 이해와 응답이라는 연속적인 과정에 몰두한다. 국제위원회는 [...] 다른 한편으로 규정(definition)은 전체 교회에서 수용될 때까지 권위를 갖지 못한다는 입장이나, 아니면 심지어 이를 수용하는 것으로부터 권위가 유래한다는 입장을 거부한다. 마찬가지로 국제위원회는 공의회가 매우 자명하므로 공의회의 규정들은 수용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거부한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세계성공회는 공의회의 권위에 관한 명확한 가르침을 발전시키지 않았다. 이는 주로 16세기(또는 아마도 11세기) 이후로 그리스도교회(서방교회?Catholic Church)의 분열된 성격을 인정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성공회 전통의 역사 전체는, 의회적인 대표성과 민주적인 치리형태라는 환경에서 볼 때, 교회의 신앙과 생활에 관한 중요한 결정들은 오직 진정으로 대의적인 기구에서만 가능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강화시켜 왔다. 그러므로 20세기 후반부에 성공회 교회들은 새로운 공의회 신학(conciliar theology공의회우위론 신학)을 분명하게 말하여야 한다. 한편으로 로마 가톨릭교회는 교황이 주재한 제2차 바티칸회의라는 활력적인 사례를 , 다른 한편으로 세계교회협의회는 협의회의 구조 안에서 발전되고 있는 공의회신학에 대한 공감이라는 유망한 사례를 각각 제공하고 있다. 공의회들은 스스로 교회의 문제들을 해결한 적이 결코 없었다. 공의회들의 권위는 제한적이며 임시적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당대에 진정한 그리스도교 증언과 믿음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럴때에 초기교회의 공의회들처럼 공의회들은 성령에 의해서 말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회는 교회회의들(councils,공의회)에서 협의하는 관례를 통해서만이 통일성을 추구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Anglican-Roman Catholic International Commission, The Final Report. SPCK and Catholic Truth Society, London,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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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ll, C. and Yarnild, E. (eds), Anglicans and Roman Catholics: The Search for Unity. SPCK/CTS, London, 1994.

    Huizing, Peter and Walf, knut (eds), The Ecumenical Council: Its Significance in the Constitution of the Church. T. & T. Clark, Edinburgh/Seabury Press, New York, 1983.

    Margull, Hans (ed.), The Councils of the Church. Fortress Press, Philadelphia, 1961, esp. S. Neill, ‘The Anglican Communion and the Ecumenical Council’, pp. 370-90.

    2012년 5월 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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