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 번역 프로젝트 자료

  1. Cranmerian
    회원

    교 회 법
    Daniel B. Stevick

    1. 교회와 법
    2. 성공회신앙과 법
    3. 성공회 교회법의 전통
    4. 전통과 근대성
    5. 교회법의 쟁점들
    6. 교회법과 법의 신학

    1. 그리스도교회와 법(교회에서의 법)

    일반적인 의미에서 모든 교회조직체(교단ecclesial body)는 공동의 목적들을 결정하고 수행하는 합의된 방식들을 규정해야 한다는 이유로 법을 가지고 있다. 모든 집단들은, 성격상 공산사회적, 평등주의적, 비공식적인 그리고 카리스마적이라 하더라도, 조직[구조]과 지도부 그리고 내부규정을 보유한다. 이러한 자치규정은 때때로 씌여지지 않은 것으로 대개 무비판적인 전통의 형태를 취하기도 한다.

    종교적인 운동들과 집단들은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시작하지만, 확산되고 성장할 때에 이들은 보다 복합적인 단체가 되며, 보다 다양한 사람들을 포함하게 된다. 따라서 점차적으로 제도화(공적인 단체가institutionalized)된다. 말하자면 그것들의 활동방식은 사회적 구조들, 각 직무들의 구분, 그리고 공직자들과 회원들을 통치하는 명문화된 규정집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된다. 한 집단의 회원들은 종종 이러한 조직화(단체화institutionalization)의 과정을 이득이자 손실로 인식하지만, 이는 불가피하다. 조직화된 교회는 그리스도교회의 인간적 측면(인성humanity)에 포함된다. 더 나아가 조직화된 교회는 성육신적인 신앙에 포함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성령과 단체[조직화된 집단] 사이에는 항상 어느정도의 긴장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신앙공동체의 성숙은 성령의 역할을 축소시키는 것으로 인식될 필요는 없다. 자유롭고 주권적인[독립적인] 성령은 질서(order)를 창출할 뿐만 아니라 이를 비판한다. 연속성과 혁신(새로운 것 단절innovation), 즉 권위와 이에 대한 의심 모두는 성령의 주도권들(활동들initiatives)일 수 있다.

    그리스도교회의 법뿐만 아니라 국가의 법도 때때로 철저하게 실용적일 때가 있다. 그리스도교회는 사건들로 압도당할 때에[사건들에 부딪칠 때], 성령의 의도를 찾으며, 때때로 지혜롭고 훌륭하게, 교회가 당연히 해야할 일을 수행한다. 그러나 실행가능성 또는 단순히 실질적인 효과의 범주를 따르는 것은 교회를 잘못 인도할 수 있다. 십자가 아래서 살아가는 그리스도교회는 측정가능한 성과[결실]을 획득하는 것과 관계없이 수행해야 하는 일들도 있다. 실질적인 효과를 떠나서 각 신앙공동체의 법은 [교회조직의] 구조들과 과정들에서 그리스도교회의 근본적인 성격을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모든 법들은 많은 비법률적인[법과 관계없는] 자료들로 형성되고 판단된다. 교회법은 구체적으로 그리스도교회와 신앙에 대한 신학적인 이해로부터 유래하며, 또한 이에 일치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교회의 가장 깊은 본질은 신비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있어서 보이지 않는다’(골3장2절). 따라서 교회는 항상 이를 탐구하여야 한다. 조직화된 생활의 어떤 형태도 이를 완전하게 표현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회는 끊임없이 자기발견과 자체교정으로 살아가며, 교회의 법률들과 과정들 그리고 조직들 모두는 잠정적인[일시적인] 것들이다.

    그리스도교회 생활의 형태들을 잠정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것들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교회는 그 자체로 하느님이 주신 것(God-given)-즉 ‘진리의 기둥이며 터전’(디모테오전서 3장15절)-이다. 자주 낭독되는 것처럼 교회는 ‘교회가 보유한 신경의 한 부분’이다. 일부 기본적인 단체[제도]들은 그리스도교회의 근본적인 실재에 속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형태들은 공동체가 아니지만, 그 생활에 대한 표현이나 그러한 생활의 완성(formedness)을 통해서 공동체는 실현된다. 교회법은 그리스도교회를 [진정한] 그리스도교회가 되도록 도울 수 있다.

    어떠한 교회도, 그 교회의 치리를 위하여 효과적이며 안정된 법률을 보유하지 못한다면, 쇠퇴할 것이다. 그러나 법은 필수적이라 할지라도, 율법주의와 과도한 법률제정은 짐이 된다. 교회의 법률들은 통일성(단일성)과 선교에 필수적인 것들에 대해서만 주로 말하고 세례신자들의 분별력에 맡기며 공동체의 생활을 새로운 조건들에 자유로이 응답하도록 유지하도록 간단하게[가볍게] 규정되지 않는다면, 교회는 잘못[나쁘게] 치리된다.

    2. 성공회신앙과 법

    이러한 일반적인 전제들을 떠올리며, 보다 구체적으로 성공회의 경험에서 법의 방식들을 말할 차례이다. 세계성공회의 자치관구들은 느슨하지만 동일하다고 볼 수 있는 신학적, 사목적, 성사적 그리고 전례적 전통으로 결합되어 있다. 대체로 이들 모두는 똑같은 권위들과 역사적 사건들-1549년과 52년 기도서부터 윌리엄 템플과 마이클 램지까지-을 인용한다. 이러한 잉글랜드 유산(indebtedness)은 오늘날 비 잉글랜드 성공회들의 숫자가 더 많은 상황에서도 지속되고 있으며, 세계성공회의 대다수 관구들은 교회의 생활과 사상을 이끌 지도자들을 자체적으로 양육하며 다소 독립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성공회 교회들은 어느 곳에 있든 그들의 이야기를 말할 때, 그 도입부는 잉글랜드 이야기이다.

    그러나, 신학, 전례 또는 영성에 대한 성공회적인 전통을 말할 수는 있지만, 성공회 교회들의 교회법에 대한 공통된 전통을 말하기는 어렵다. 성공회의 각 관구들은 교회생활을 그들의 사회적 환경에 적응[적합하게 개조]시키며 자신들의 방식을 형성하고 선택할 수 있다. 그들은 종종 서로를 의식하면서 행동하지만, 그들 모두는 그들만의 역사와 문화적 배경들과 그들만의 주요한 새로운 변화[혁신]의 위기들을 경험하고 있으며, 대다수 교회의 시작이 되었던 잉글랜드와의 제도적인 결합이 약화됨에 따라 보다 다양한 방향으로 성장하고 있다.

    세계성공회의 대다수 교회들은 초기에는 실제로 잉글랜드의 교회법중 일부를 사용하였다. 일부지방의 경우, 잉글랜드의 외교 또는 상업에 참여한 잉글랜드 국민들의 신앙생활을 위하여 잉글랜드교회를 해외에 설립[이식]하였다. 다른 지방의 경우, 식민지 정착민[이주민]들은 그들의 교회를 현지로 옮겨놓고 과거의 신앙생활을 가능한대로 복사하였다. 또다른 지방의 경우, 교회는 잉글랜드 선교회들의 활동으로부터 성장하였으며, 잉글랜드로부터 허가장(charter)과 잉글랜드주교의 전반적인 감독을 받으며 접근하기 어려운 장소들에서 신심생활을 유지하며, 토착민들의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발전시켰다. 이러한 교회들에서 사용되었던 교회법은 바로 잉글랜드의 교회법이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식민지 체험이 없었던 관구들도 일부 생겨났다.

    19세기 내내 그리고 20세기초에 들어와 잉글랜드와 식민지들 그리고 독립된 교회들에서 교회법은 널리 통용되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문제의 본질을 명확히 밝히는] 존재였다. 따라서 효과적으로 활동하는 교회는 법이 필요로 하였으며, 법을 존중하였다. 더구나 법에 따른 교회생활은 박식한 교회법학자들과 법학의 전통으로부터 지원를 받았다. (법학자들중 일부는 성직자들이었지만, 일부는 평신도로 법률가들과 법학자들이었다.) 교회법에 대한 연구는 우수한 인물들의 관심을 받을 만하였다.

    그러나 20세기에 급격하게 교회법은 성공회적인 논의에서 또는 성직후보자의 준비과정에서 거의 관심을 받지 못하였다. 과거에 출판된 중요한 법의 역사와 해설에 관한 책들은 최근까지로 확대되거나 새로운 것으로 교체되지 않았으며, 현대의 교회법학자들은 대체로 몇 세대전의 교재들을 사용하고 있다. (잉글랜드는 예외로, 고대의 특면장들과 재산권과 교직임명권에 대한 복잡한 문제들을 계속 유지하였기 때문에 교회법에 정통한 학자들이 계속해서 필요하였다.) 성공회신앙에 대한 많은 해설들은 교회법을 언급하지만, 박식한 학자들도 그 존재를 거의 인식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리처드 후커의 말대로, ‘법률들’은 ‘가장 중요한 문제들이다.’ 법률들은 교회의 모든 신자들에 영향을 준다. 교회법은 그리스도인들이 책임감과 기쁨으로 살 수 있는 공동생활의 구조들-또는 신앙적인 생활을 방해하는 조건들-을 확립시킨다. 교회법은 현재의 생활에 과거로부터 축적된 지혜를 공급한다. 교회법은 복음 아래서 교회의 양육[성장]에, 그리고 교회가 속한 사회에서 증거와 봉사에 몰두하는 다양하고 널리 퍼져있는 공동체의 권력중심들 사이의 관계들을 공정하게 조정하려고 노력한다. 법률들이 고유의 임무를 수행할 때에는 당연하게 보인다. 그러나 때때로 내부적인 위기가 닥치면, 교회의 법률들은 세상에 알려진다. 교회신문의 글들은 황급하게 그리스도교회의 법이 무엇이며, 법을 어떻게 집행하고 해석해야 하는가를 논의한다. 교회법 학자들은 아마도 배경보다는 그들에 대한 기대 때문에 유명해진다. 일부는 법 그대로 복종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일부는 이를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부는 법이 보다 구체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일부는 자애롭게 포괄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앙공동체의 신뢰성과 더 나아가 미래는 교회가 권위, 교리, 예배, 사목적 권징 또는 선교의 갈등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있는 것처럼 보인다. 교회를 하나의 공동체로 결속시키는 공식적인 법률들이 거의 관심을 받지 못할 때, 그리스도교회는 제기능을 하지 못한다.

    3. [성공회]교회법의 전통[역사]

    초기부터 성공회신앙의 각 관구들의 조직화된 생활은 각 지방의 조건들이 허용하는 범위내에서 영국성공회의 그것을 본따서 만들었다[모방하였다]. 그들의 교회법 전통과 사용례[관행]는 잉글랜드의 교회법에서 유래하였다. 잉글랜드로부터 멀리 떨어진 세계 각지의 교회법학자들은 초기교회의 공의회들, <Corpus Juris Canonici>, 린우드의 <Provinciale>, 1604년의 교회법들(Canons of 1604), 존슨이 쓴 두권의 <The Laws and Canons of the Church of England>(1720년에 첫출판, 1851년에 재인쇄), 이보다 훨씬 큰 분량의 해설서인 로버트 필리모어(Robert Phillimore)의 두권인 <The Ecclesiastical Law of the Church of England>(제2판, 1895), 그리고 훌륭한 역사적 재검토 문서인 1947년의 보고서 <Canon Law in the Church of England>에 대하여 친숙하게[스스럼없이] 말한다.

    교회법들과 이에 대한 해석에 대한 이러한 영국적인 유산을 통해서, 성공회신앙의 교회들은 보다 오래된 서방교회의 공교회적(Catholic) 교회법전통의 상속자들이다.

    이처럼 깊은 역사는 사도시대의 저서들에서 시작된다. 최초의 그리스도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전통들에 의해서(처음에는 구전의 형태로, 그 후에는 씌여진 복음서들로), 신앙으로 전달된 케리그마(고전15.3-8)에 의해서, 사도들과 예언자들 그리고 교사들의 권위에 의해서(고후 10장-12장; 고전12.1-11; 에페4.11-14; 목회서신들), 성사들의 실천[실행]에 의해서(고전11.23-6; 로마6.3-11), 성령의 인도로 발생한 사건들의 중요성을 인정함으로써(행10.34-48), 집단적인 논의에 의해서(행15.1-35), 일부 윤리적인 지침들에 의해서(갈5.16-26; 에페5.21-6.9), 그리고 공통적인 관습에 의해서((고전11장—14장) 형성되었다. 서신들은 예배(고전11장-14장), 결혼(고전7.1-24) 그리고 죄들의 경중에 대한 구별(요한1서 5.16-17)과 같은 문제들을 조언하였다. 이것들은 공동체생활의 기본요소들로 처음부터 존재하였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에 관한 법들은 문서화되었다.

    2세기 이후부터 교회는 주로 주교들의 교령(decretals), 그리고 지역별과 (니케아이후) 전체적인(general) 교회회의에서 결의한 ‘법규들’(canons, 이 단어는 본래 막대자, 측정하는 막대기 또는 직선자를 의미하였다)을 통해서 치리되었다. 초기 세기들에서 명확한 법규[규정]는 서로 다른 차이들이나 질문[쟁점]들에 대하여 제기되었으며, 판결은 관습과 선례들을 따르는 지역의 주교들에 크게 의존하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씌여진 법률들을 수집하게 되었으며, 514년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우스(Dionysius Exiguus)의 <Dionysiana>는 유명한 교회법률 모음집이었다. 그러나 교회법은 중세 후반기(12세기 중반)에 그라티아누스의 <Decretum>[교령집]에서야 체계적으로 정리되었다.

    그리스도교국 시대에 세속계급(temporality)과 성직계급(spirituality)는 똑같은 백성들이었다. 왕족들은 그리스도교회의 인물[사람]들이었으며, 주교의 법원들은 지역사회의 일부 사건들을 재판하였다. 중세기 내내 종종 개인적인 창안(혁신innovation)과 집단적 권위 사이에, 수도공동체들과 교구 구조들 사이에, 교회와 왕권 사이에, 그리고 중앙과 지방 사이에 긴장이 존재하였다. 교직(office)의 임명권과 교회재산에 관한 논쟁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중요한 법전인 <Corpus Juris Canonici>(교회법령집, 15세기)는 중세 그리스도교회의 법적인 문건들을 집대성하였다. 물론 교황의 법률을 중심으로 씌여진 법들이 상당히 많이 있었지만, 실제로는 관습에 따라 통치되었으며, 교회의 규칙은 사례들과 법원들의 해석에 크게 의존하였다. 또한 지방별 차이는 흔한 일이었다.

    잉글랜드교회는 이러한 중세적인 체계에 완전히 편입되어 있었다. 중세기 위대한 잉글랜드의 교회법학자인 윌리엄 린우드(William Lynwood, c. 1375-1446)는 그의 책 <Provinciale>(1430)에서 켄터베리관구의 법령들을 모든 교회법과 관련시켜 연구하였다. 바로 직전 세기에 일부 학자들은 잉글랜드교회법의 독립성을 주장하였지만, 마찬가지로 일부 학자들은 이에 대하여 반박하였다.

    16세기 종교개혁은 옛 법률들과 구조들을 파괴하였으며, 새로운 법제정 뿐만아니라 법제정을 위한 새로운 근거를 필요로 하였다. ‘성직자들의 항복[굴복]’-1534년 두 성직자회의들에서 통과시킨 법률-은 ‘로마주교는 성서에 따라 잉글랜드왕국에 대하여 다른 외국의 주교들보다도 더 큰 관할권을 갖지 않는다’고 결의하였다. 따라서 잉글랜드교회는 서방 그리스도교회에서 핵심적인 법제정 권력기관[로마-역자]의 관할지역으로부터 벗어났다.
    비록 중세기의 교회법은 국왕의 법률들에 의해서 무효화되지 않은 것들만 계속해서 유효하였지만, 교황권의 거부로 부분적으로 무효화된 법률들로 통치한다는 것은 어색하였으며, 따라서 헨리8세와 에드워드6세 치하에서 교회법의 개혁을 추진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은 <Reformatio Legum Ecclesiaticarum>(교회법의 개혁)이라는 커다란 저술서로 나타났으나, 이 책의 권위는 에드워드6세의 사망으로 상실되었으나, 1570년 파커 대주교의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엘리자베스 치하에서 몇개의 교회법률들은 성직자회의에서 제정되어 여왕의 재가를 받았지만, 여왕의 사망과 함께 효력을 상실하였다. 제임스1세가 왕권을 계승하였을 때에 보다 명확한 법률들이 필요하였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교회법률들을 제정하였다. 이것들은 잉글랜드교회[영국성공회]의 형성기인 첫 몇십년 동안에 형성된 것들이었다. 1604년의 교회법률들(Canons of 1604)은 주로 리처드 벤크로프트의 주도로 작성되었으며, 두 대교구의 성직자회의에서 채택되었으나 의회의 승인을 받지는 못하였다. 이 141개의 법률들은 로마와의 단교 이후 잉글랜드교회의 치리[제도]에서 발생한 변화들을 한데 모은 것이었다. 이 법률들은 잉글랜드교회의 권위[권한]와 왕권과의 관계, 교회[전례]용품들 (furnishing)과 예식들, 그리고 성직자의 의무와 품행과 복장과 같은 문제들을 다루었다. 1604년의 교회법률들은 완전한 법전이 아니었으며, 또한 기존의 규정들도 폐지되지 않은 경우 사실상 계속해서 유효하였다. 이 법률들중 일부는 잉글랜드교회의 자기정의(자아규정self-definition)를 분명하게 표현하였지만, 다른 일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이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폐물이 되었다. 이러한 법률들은 ‘잉글랜드교회의 내무규정들’(standing orders of the Church of England )의 중심부분으로 남아있다.

    바로 이때에 리처드 후커는 그의 책 <Of The Laws of Ecclesiastical Polity>[잉글랜드교회 치리제도의 원리들]에서 잉글랜드교회의 정체의식[동질감]을 전진시켰다. 그는 잉글랜드 교회법 자체를 논의하지 않고, [잉글랜드]교회에서의 권위와 [치리]구조를 매우 심도있고 섬세하게 설명하였다. 그는 자연법 이론가들의 전통에 서서 법을 피조물들(만물things)의 본질에 있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교회 또는 국가의 훌륭한 법률들은 피조물들에 대한 하느님의 통치에 참여한다. 그러나 후커 또한 근대인으로 법률들이 인간의 작업물[창작물]이며, 건전한 법률은 모든 곳에서 동일하지 않으며, 또한 변한다는 점을 인식[정]하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1604년의 법률들은 개정되었고, 교회법률과 교회법원에서 치리되었던 것들중 상당부분은 이제 의회의 법률과 민간법원 관할로 이전되었다. 잉글랜드의 교회법은 법전화[성문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종교개혁 이전의 요소들도 후대의 법률로 대체되지 않은 경우에 그대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법률이 제정되었을 때에 옛 법은 분명하게 폐기되지 않았다. 따라서 교회의 법은 다양하게 교회법원들과 성직자회의와 의회와 국왕에서 나온 교회법률들, 의회의 법률들, 특허장들(charters)과 판결문들 등 여러가지 출처[원천]들에서 수집되어야만 했다. 따라서 잉글랜드 교회법의 근대시기는 ‘잡다한 출처들의 시기’로 명명되었다. 이 때문에 현재의 사건들[소송들]의 경우에 [교회]법을 해석하는 것 뿐만아니라 법이란 무엇인가[법의 정의]를 확립하기란 종종 매우 곤란하였다. 이처럼 복합적이고 다소 분명하지 않은 출처들은 근대시기에 제정된 헌법에 의거한 법률의 시각에서 볼 때에 불만족스럽게 보일 수 있다. 정말로 잉글랜드교회에 속한 많은 사람들에게 [교회]법은 불만족스러웠다. 그러나 여러 세대들로부터 내려온 다양한 원천들에 포함된 이러한 교회법률들은 교회법이 다양하고 복합적이며 연속적인 신앙생활로부터 유기적으로 성장[형성]되었다는 증표이다.

    이제 계속해서 잉글랜드에서의 교회법을 논의하기 전에 다른 지방들을 먼저 살펴보자.

    4. 전통과 근대성(근대화Modernity)[다른 성공회의 법들]

    잉글랜드교회에서 교회법이 제정된 이후로, 교회법은 전혀 다른 상황에 적응하여야 했다. 성 토마스와 윌리엄 린드우드 그리고 깁슨주교의 세계에서 통용되었던 교회법은 로크와 몽테스키외의 세계에 적응하여야 했다. 고정된 계서적인 사회질서를 표현하였던 법률들과 조직들(institutions)은 국민주권론(popular sovereignty) 세력과 타협하여야 했다.

    16,7세기에 잉글랜드교회에서 발생하였던 교회의 신앙정책은 외국으로 수출할 수도 있다는 사상으로 발전되지 않았다. 그러나 성공회 기관들이 근대세계로 서서히 전환하기 시작한 것은 잉글랜드 밖에서 발생하였다.

    스코틀랜드의 교회생활은 제임스1세(스코틀랜드에서는 제임스6세)에 의해서 두 왕국이 결합된 이후에도 잉글랜드로부터 독립적으로 남아있었다. 존 녹스와 앤드류 멜빌의 교조주의적인 지도력으로 칼빈주의 신학과 장로제 교회조직(church order)이 스코틀랜드에 정착되었다. 이후 여러 세대들 동안에 주교제 조직을 따르는 교회와 장로제 주장자들은 계속해서 충돌하였다. 스튜어트왕가 아래서는 주교제 교회들이 번창하였다. 그러나 공화정과 왕정복고후 17세기말에 윌리엄과 메리가 왕권을 계승하였을 때, 스코틀랜드교회의 주교제파는 계속해서 스튜어트왕조를 지지하였다. 이러한 충성심 때문에 주교제파는 소외되어 한세기 후에는 소수파가 되었다. 1746년 컬로든 전투에서 제임스 지지파들이 최종적으로 패배한 이후, 주교제파들에 대한 가혹한 처벌법이 시행되었으며, 교회는 크게 약화되었다-이러한 상태는 처벌법이 폐지된 후에도 한동안 지속되었다.

    이러한 어려운 시기 동안에 주교제 교회의 연속성은 대체로 소수의 주교들에 의해서 유지되었다. 1743년 주교들은 교회법률집(Code of Canons)을 제정하여 교회를 헌장[헌법]에 의한(constitutional) 주교제 치리조직으로 전환시켰다. 이 교회법에 의해서 주교들은 수좌주교(Primus)를 선출하고, 수좌주교는 다른 주교들의 인준을 받을 때에만 직책을 보존하였다. 교구의 사제들(presbyters)은 그들의 주교를 선출하며, 이 때에 수좌주교와 과반수 이상의 다른 주교들의 찬성을 얻어야 했다. 총회(관구의회Synod)는 주교들로만 구성되며, 총사제(dean)는 참석하지만 발언할 수 있지만 투표권은 없었다. 당시 전례의 상태는 엉망이었기 때문에, 1743년 주교들은 스코틀랜드 성찬예식서(Scottish Communion Office)의 사용을 권고하였다. 이 양식은 1637년의 스코틀랜드 기도서를 통해서 1549년 기도서까지 연결되는 풍부한 전통을 계승하였다.

    스코틀랜드 주교들의 독립적인 지위 때문에 미국으로부터의 요청을 수용할 수 있었다. 사무엘 시베리-커네티컷에서 선출된 주교후보자-는 일년동안 잉글랜드에서 주교서품을 요청하였지만 실패하였으며, 국가와의 결속관계가 없어 교회의 복지를 위하여 자유로이 행동할 수 있는 스코틀랜드 주교들에게 요청하였다. 시베리는 1784년 에버딘에서 세명의 스코틀랜드 주교들로부터 주교축성을 받았다. 그는 즉시 커네티컷 교회가 스코틀랜드 성찬예식을 따르기로 축성주교들과 협약(Concordat)을 체결하였다. 시베리의 영향을 통해서 미국성공회의 감사성찬례 양식은 잉글랜드 기도서들의 전통과는 구별되는 스코틀랜드/서약거부자 전통의 특징들을 수용하였다.

    18세기말 스코틀랜드 성공회는 존 스키너-에버딘 주교-의 지도하에 새로운 활력과 자신감을 회복하였다. 1811년의 교회법 개정으로 교회의 총회(Synod)에 사제들을 포함시켰다. 스코틀랜드를 방문하였던 존 헨리 호바트-뉴욕주교-는 미국성공회의 경험을 바탕으로 평신도를 교회의 실질적인 행정기구에 포함시킬 것을 요청하였다. 그의 권고는 호의적인 반응을 얻었으나, 1863년에서야 교회법률집의 개정으로 평신도들이 교회의 총회들(assemblies)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시작하였다. 스코틀랜드 성공회는 영국의 왕권으로부터 독립되어 독자적인 교회법으로 통치되며 강력한 전례전통을 가진 주교제 교회공동체로서, 18세기와 19세기초의 정형기에 형성된 전통을 계속 유지하였다.

    이와동시에 이와 비슷한 역사는 대서양 건너편에서도 펼쳐지고 있었다. 북미주 대륙의 동부연안의 식민이주지들이 영국연방과의 결합을 파괴하였을 때, 잉글랜드 교회법의 권위도 당연히 파괴되었다. 16세기 이후로 잉글랜드에서 성취된 교회론적 정체성(ecclesial identity)은 다른 나라의 생활에서도 유지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단순히 잉글랜드교회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전달된 공교회적 전통[Catholic origins]에 대한) 충실함과 연속성은 새로운 시작과 결합될 수 있는가?

    필라델피아의 윌리엄 화이트(William White)는 고립되고 파괴된 기존의 식민지 교회들을 여러차례의 ‘대표자회의’(conventions)를 통해서 결집시키는 일을 주도하였다. 새로이 독립한 미국교회는 ‘교리나 권징 또는 예배의 본질적인 면에서, 또는 지역적인 상황이 요구하는 것 이상으로 잉글랜드교회를 이탈하려는 의도는 결코 없다’고 선언함으로써, 잉글랜드 전통에 충실하려고 노력하였다. 머지않아 미국교회는 기도서를 (과격하지 않게) 개정하고, 39개 신앙조항을 보존하며(그러나 이에 서명할 것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주교직을 보존함으로써(그러나 쉽게 성취되된 것은 아니었다), 교리와 전례, 성사들, 사목직에서 잉글랜드교회와의 연속성을 확보하였다. 그러나 교회법과 치리조직(governance)의 문제들에서는 연속성을 갖기란 상대적으로 거의 불가능하였다. 이제 영국의 국왕은 주교들을 임명할 수 없으며, 또한 교직임명권자(patron)와 주교들은 전도구교회의 관할사제를 선택할 수 없었다. 선교회들의 특허장들도 무효화되었다. 교회재산은 지역 단위에서 소유하였다. 옛 법의 기능이 정지되었기 때문에, 교회를 위한 새로운 법률을 제정해야만 했다.

    1784년에 개최된 초기의 대표자대회(Convention)-펜실베니아의 교회들만 참가하였다-는 결의문을 통해서 새로이 조직되는 교회가 자치적이고 독립적이라는 주장을 선언하였다.

    '이들 주에 있는 성공회는 모든 외국의 세속 또는 교회의 권위로부터 독립되어 있으며, 있어야 한다.
    성공회는 다른 신앙단체들과 마찬가지로 그 공동체의 관심사들을 규정하는데 완전하고 독자적인 권한을 가지며, 가져야 한다.
    교회법 또는 법률들을 제정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직자와 평신도의 대표기구 이외에 어떠한 권위도 있을 수없다.'

    18세기는 헌법을 만드는 시대로, 사상가들은 정치제도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였다. 그들은 국가와 그 법의 정당성을 모든 사람들의 동의(common consent)에서 찾았다. 물론 이러한 사상은 존 로크뿐만 아니라 후커와 그라티우스로부터 유래한다. 교회가 준수할 법들을 준비하려면, 이 법들은 반드시 자치를 위하여 제정된 법이어야 한다는 점은 화이트와 그와 함께 고심한 자들에게 분명하였다.

    최초의 완전한 전국총회(General Convention관구의회)가 1789년에 개최되었을 때에, 9개 항목의 헌장[헌법]을 제정하고, 이에 따라 구체적으로 소규모 교회법률들 제정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이후 200년 동안에 확대되고 수정되었지만, 헌장의 기본적인 구조는 여전히 미국성공회를 치리하고 있다.

    미국성공회의 교회법 제정권은 전권을 가진 교회회의(Synod)인 전국총회(General Convention)에 있으며, 전국총회는 주교원과 각 교구의 성직자와 평신도 대표들로 구성된 대표자원(House of Deputies)으로 구성되었다.

    앞에서 설명하였듯이 스코틀랜드 성공회에서 주교축성을 받은 시베리 커네티컷주교는 화이트의 계획이 주교들의 특권[고유권한]을 너무 많이 축소시킬 것을 우려하여 이전의 대표자대회들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교회의 구조 안에 있는 주교원에 참여함으로써 새로이 조직된 교회에 부분적으로 동참하였다. 처음에 주교원의 권한은 대표자원보다 약했지만, 곧 동동하게 되었다. 법률의 제정은 각 원에서 발의할 수 있으며, 법의 제정을 위해서는 두개의 원이 동의하여야 했다.

    대다수의 문제들에 대해서 대표자원은 찬반의 구두표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헌장에 규정된 사항들과 필수적인 청원에 해당하는 사항들에 대해서는 성직자와 평신도를 분리하여 따로이 투표하였으며, 각 교구는 평신도와 성직자를 나누어 단기명투표를 하였다. 따라서 교회의 중요한 사안들에 대해서는 결국 세개의 원으로 구성된 총회[의회]가 되었다.

    전국총회의 대의적인 구조는 각 교구의 총회[교구의회]에서 그대로 모방되었다.

    교회의 총회[의회]는 성직자 대표자들 뿐만아니라 평신도까지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화이트에게 매우 중요한 원칙의 문제였다. (시베리는 커네티컷의 성직자들에 의해서 선출되었다.) 화이트는 1604년의 교회법률들이 잉글랜드교회의 평신도들을 대표하는 의회의 인준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평신도들에게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는 판단을 수용하였으며, 미국교회에서도 법제정권을 가진 총회에 평신도를 포함시키지 않는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까봐 우려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평신도가 우리 교회의 각 총회들에서 항구적으로 배제된다면, 평신도들이 우리가 제정하는 교회법들, 특히 그들의 이익들 또는 일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항들-예를들면 성찬참여의 허용과 금지-에서 이를 결코 복종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리고 평신도들은 그들의 주장을 지지하는 근거로 잉글랜드의 원칙들과 관행을 그들의 주장을 지지하는 근거로 삼을 것이다.'

    처음에 교회의 일부 신자들은 화이트의 주장에 공감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그의 주장은 지남에 따라 널리 확산되었다.

    이 원칙은 미국의 정치적 신념-즉 법률들의 정당한 권한은 피통치자들의 동의로부터 나온다-을 반영하였다. 즉, 국민들은 대표자를 통해서 그들의 법을 만들고 동의하는 투표권을 갖지 못한다면, 그러한 법에 구속받지 않는다. 이러한 확신은 그 자체를 위하여 후커를 인용할 수도 있었다. 즉, ‘따라서 법률들은 대중의 인준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동의는 대표자들의 총회에서 받을 수도 있다. 즉, ‘우리의 동의는 대표자들의 총회에서 우리들을 대신하여 다른 대리인들에 의해서 행사된다. 그리고 대표자들을 통해서 우리가 동의하는 것은 우리의 약속이 아니라고 볼 수 있는 이유가 없으며, 우리가 직접 실행하는 것과 똑같이 우리들에게 구속력을 갖는다.’ 후커는 이 원리를 교회의 법제정에서 평신의 투표권[권리]에 분명하게 적용하였다.

    '그리스도의 특정한 법중 일부는 영원히 교회법의 제정권을 성직자에게만 부여하였다는 것이 증명될 때까지, 우리는 형평과 이성에 가장 일치하는 것 즉, 성직자 뿐만아니라 평신도의 동의가 없다면 […] 어떠한 교회법도 제정될 수 없다는 점을 주장하여야 한다.'

    시작부터 분명하게 미국성공회는 주교들을 포함하였지만, 주교의 직책(office)는 성격상 순수하게 영성적이며, [치리]구조에 의해서 권한이 제한되었다. 몇차례의 노력이 실패한후에야 주교직은 스코틀랜드 뿐만아니라 잉글랜드로부터 계승[축성]되었다. 이 교회[미국성공회]의 주교들은 선출되었다-이는 초기교회에서 지역교회의 성직자와 평신도들이 신앙공동체에 잘 알려지고 신뢰를 받았던 인물들 중에서 주교를 선출하였다는 것을 회상시킨다. 그러나 주교의 선출방식에 대한 모델은 없었다. 잉글랜드교회와 로마교회의 모든 주교들은 국왕 또는 교황에 의해서 임명되었다. 결국 각 교구는 전국총회[의회]에서 제정한 교회법률에 따라서 교구총회[교구의회]에서 그들의 주교를 선출하도록 결정하였다. 이는 교구의 신자들과 주교와의 결속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 주교의 선택은 전국교회의 관심사이며, 각 교구의 주교는 주교단의 일원이 된다. 따라서 각각의 주교선거는 전체교회의 주교들로부터 그리고 해당교구의 과반수 이상으로부터 승인을 받아야만 했다.

    때때로 선거과정을 통해서 선출된 주교들은 타협적인 후보 즉, 선출가능한 인물이었다. 확실히 잉글랜드교회의 지명제도는 미국성공회의 선거제도를 통해서는 선출되기 힘든 지도력이 풍부하고 능력있는 인물들을 주교직에 등용할 수 있었다. 더구나 사실상 모든 주교들은 전도구교회 사목자[목회자] 출신으로 교구의 행정을 전도구 사목직의 경험을 모델로 삼았다. 잉글랜드처럼 훌륭한 학장이나 학자출신의 주교는 미국성공회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선출된 주교들의 인품들은 훌륭하였으며, 주교와 신자들 사이의 관계는 매우 밀접하였으며, 주교직의 사목적 개념을 분명하게 표현하였다.

    세속정부의 미국식 형태는 ‘억제와 균형’의 원칙를 표현한 것으로, 절대권력에 대한 불신을 반영하였다-이는 ‘세속적인 칼빈주의’(secular Calvinism)로 불렸던 특징이다. 이 원칙은 미국성공회의 구조에도 도입되었다. 따라서 어떠한 개인이나 단체는 다른 사람들 또는 단체의 동의 또는 의견일치 없이는 거의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각 교구의 주교는 선출된 상임위원회와 함께 일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합의 된 행동들은 공감으로부터 나와야 하기 때문에, 모든 안건들은 자주 매우 느리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안건이 결정되었을 때, 이의 실행은 모든 사람들부터 이해와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미국헌법을 만든 사람들은 국가의 통치조직에 ‘권력분립’을 제의하였다. 즉, 입법부는 법을 만들고, 행정부[집행부]는 이 법들을 시행하며, 사법부는 법을 해석하고 사건들을 판결하였다. 이러한 사상의 일부는 미국성공회의 치리구조에도 반영되었다. 그러나 다소 놀랍게도 국가의 헌법에 규정된 이러한 삼권분립은 미국성공회의 헌장에 부분적으로만 반영되었다.

    미국성공회의 형성기에는 헌장을 제정하고 두 원들[주교원과 대표자원]의 권력분할에 상당한 노력을 집중하였다. 결과적으로 입법부는 사실상 전권을 갖게 되었으며, 전국단위의 행정부와 사법부는 상대적으로 허약하였다.

    •처음에 ‘의장주교’(presiding bishop)는 미국성공회의 연장자 주교로, 이와동시에 교구의 주교이자 커다란 전도구교회의 관할사제였다. 전국단위의 교회에 대한 그의 주요한 의무는 주교원의 회의를 주재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전국단위의 지도력의 필요하였기 때문에, 의장주교의 역할을 상근직으로 전환하고, 직원들과 예산과 프로그램들을 다루는 집행부를 설립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집행부가 성장하는 동안에, 교회법원들은 대체로 발전되지 못하고 그대로 남아있었다. 교회법원은 전국과 교구 단위의 헌장과 교회법에 따라 설치되었고 재판관들도 임명되었다. 그러나 고소[진정]와 재판은 드물었다. 교구와 관구(또는 전국의) 차원의 법원은 거의 개최되지 않았으며, 개최되었을 때에도 재판관들은 가능한 선례기록을 찾아야만 했으며 또한 권위와 과제를 확립하기 위하여 분투하여야 했다. 미국성공회는 국가와 분리되었기 때문에, 교회의 법원들은 내부적인 심판소로 오로지 영성적인 처벌만을 부과하였으며, 재산과 재산권과 같은 문제들은 교회법원에서 세속법원으로 이송해야만 했다. 교회법원이 취약하였기 때문에, 법률들이 불분명하거나 비효율적일 때에 주로 사용하는 방법은 입법으로 되돌아가서 보다 나은 법을 입안하여 채택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미국성공회의 교회법은 판례법이 아니라 거의 전적으로 성문법[실정법]이었다.

    미국성공회 교회들은, 다시 조직될 때에, 주교의 감독이 없었던 시기에 일시적으로 사용하였던 헌법적인[헌장적인] 특징들중 일부를 반영할 수 있었다. 주교, 총사제, 기본재산(endowment), 교회법원과 교직임명권자(patron)가 없었기 때문에, 멀리 떨어져 매우 독립적인 식민지의 지역교회들은 교직임명권자의 기능중 일부를 실행하며, 신자들을 실질적으로 지도하며, 평신도들에게 책임있는 지도자의 역할을 부여하는 ‘교회위원회’(vestry) 또는 전도구교회회의(parish council)를 발전시켰다.

    미국성공회의 탄생사건들은 여러가지 면에서 새로운 출발이었으며, 아마도 로크의 [근본적인] 사회계약에 근접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옛 방식들[관행들]도 여전히 교회의 법률들과 관계없이 유지되었다. 이 때문에 미국성공회에서 1789년 이전의 잉글랜드교회 법률이 어느정도의 권위를 갖는가에 대한 질문들이 제기되었다. 19세기와 20세기의 일부 학자들은 서방교회의 일반적인 교회법과 잉글랜드의 교회법이 미국성공회 교회법의 일부-구체적으로 폐지된 것들은 제외하고-라고 주장하였으며, 또한 미국성공회의 교회법의 본질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초기교회와 잉글랜드교회의 교회법을 연구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식민지시대의 경험을 통해서 표현된 잉글랜드 교회법의 연속성을 인용함으로써 지지를 얻어야만 한다. 그러나 사실상 이러한 법률들[종교개혁이전의 법과 잉글랜드교회법-역자]은 여러가지 조건들로 인하여 식민지들에 적용되지 못하였다. 의심의 여지없이 주교들과 관할사제들과 신자들은 교회법이나 지시문들과 관계없이 활동하였으며, 그럴 때에 그들은 잉글랜드나 초기교회의 모델을 따랐을 것이다. 잉글랜드의 여러가지 관습들은 법적인 구속력은 없었지만 미국성공회의 생활에 정착되었다.

    스코틀랜드와 미국의 성공회교회들은 새로운 법과 헌장에 의해서 설립되었을 때에도 여전히 성공회신앙이 유지될 수 있었다는 점을 처음으로 입증하였기 때문에, [필자는] 이 교회들의 경험을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더구나 이러한 역사는 성공회신앙의 다른 관구들에서 나타나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예증[설명]한다. 잉글랜드는 성공회의 관구들의 주요한 원천[출발지]이면서도, 법적인 상황에서는 독특하며, 다른 지역의 교회들의 조직화된(institutional헌장에 의한 설립) 생활에 대해서는 부분적인 모델일 수 밖에 없다. 세계성공회가 성장함에 따라, 영국성공회를 충실히 따르면서도 독립을 성취한 각 관구교회들은, 항상 스코틀랜드와 미국 성공회들의 패턴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이들 교회들의 체험이 제시하는 것들을 실행하였다.

    다시 잉글랜드로 돌아가서, 19세기초에 발생한 일련의 과정들은 잉글랜드교회를 과거와는 전혀 다를 정도로 독립적으로 만들었다. [이에 대한] 사상들이 중요하였다. 즉, 옥스퍼드운동은 국가에 대한 교회의 굴종[속박]을 비판하며 교회의 영성적인 독립과 권위를 주장하였다. 18세기초부터 19세기중반까지 공식적인 회의기구인 성직자회의(Convocation)는 개최가 금지되었으며, 따라서 교회에 일부 자결권을 부여하고 교회의 법률들을 현대화할 수 있는 중요한 기구는 기능하지 못하였다. 주로 사무엘 윌버포스 주교의 노력으로 성직자회의는 1852년에 재개되었다. 그러나 교회의 법안은 여전히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했으며, 의회는 교회의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서 조차도 필요한 행동을 취하지 못하였다.

    20세기 전반기에 잉글랜드교회의 실질적인 자치를 향한 행동은 아마도 윌리엄 템플의 열정과 확신으로 주도되었던 생활과 자유운동(Life and Liberty Movement)으로 시작되었다. 이 운동의 결과로, 1919년 성직자회의들은 주교원과 성직자원 그리고 평신도원으로 구성된 대표기구인 잉글랜드성공회 총회(Church Assembly)를 설립하였다-각 원의 구성원은 각 교구의회에서 선출되었다. 같은 해에 제정된 국교회 지치법(권한이양법Enabling Act)은 이 총회에 교회법을 입안하여 제출하는 권한-의회는 이에 대하여 찬반만을 표현하다-을 부여하였다. 이 법은 또한 각 전도구교회에 전도구 교회위원회(Parochial Church Council)를 설치하여 평신도들에게 지역교회의 운영에 중요한 역할을 부여하였다.

    이러한 조치들은 부분적으로 잉글랜드교회의 입장을 개선하였지만, 총회에서 승인한 1928-9년의 제안기도서가 두번씩이나 하원에서 거부되었을 때에 불만은 다시 표출되었다. 교회를 대표하지 않고, 또한 교회에 진심으로 관심이 없는 일부 집단이 교회의 기도하는 방식을 통제하는 법적인 위치에 있는 것이었다-이러한 상황은 교회의 많은 신자들을 실망시켰다.

    마침내 1969년에 전국의회(General Synod)를 설립하여 총회(Church Assembly)를 대체하였으며, 또한 성직자회의들이 보유하였던 권한 대부분을 승계하였다. 이 전국의회 역시 세개의 원들-주교, 사제 그리고 평신도-로 구성되었으며, 법의 제정을 위해서는 세개의 원 모두의 찬성을 얻어야 했으며,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3분2 이상의 찬성을 요구하였다. 전국의회를 설립한 이 법은 또한 각 교구에 교구의회(Diocesan Synod)를 설립하였다. 잉글랜드교회는 여전히 국가의 법으로 제정된 교회로 남아 있으며, 의회는 교회의 일부 입법에 대하여 인준하여야 하지만, 이제는 훨씬 더 참여적인 자치권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기구들이 설립되고 그 역할을 찾고있는 동안에, 교회법 자체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였다. 1939년에 설치된 한 위원회-의장으로 시릴 가베트 요크 대주교-는 1946년에 유명한 보고서인 <The Canon Law of the Church of England>를 발표하였다. 이 저서는 심각한 역사적 재검토후에 교회법 개정안(Revised Body of Canons)을 제안하며 토론을 자극하였다. 1954년 이 보고서의 출판으로 교회법은 더욱 심각하게 고려되었으며, 1559년에 새로운 본문을 공표하였다. 마침내 <The Canons of the Church of England>를 공표하여 1964년과 1969년의 성직자회의들에서 채택하였으며, 그리고 1970년에 새로이 설립된 전국의회(General Synod)에서 채택되었다. 이 교회법들은 완전한 법전은 아니다. 따라서 교회의 법을 찾기 위해서는 새로운 법 이외에도 아직도 유효한 과거의 법들을 함께 독서하여야 한다.

    따라서 20세기에 발생한 사건들은 잉글랜드교회에 교회의 업무를 치리하는 대의적인 기구를, 그리고 개정되어 유연하며 신뢰를 주는 교회법률들을 제공하였다.

    [아래의 글에서 계속됩니다]

    2012년 5월 15일 #
  2. Cranmerian
    회원

    [위의 글의 연속입니다]

    5. 교회법의 쟁점들

    이제 세기말의 성공회 관구들 사이에서 관심을 요구하는 교회조직과 법의 문제들 몇가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5.1 총회적인 통치형태(교회회의적인 치리형태Synodical government)는 오늘날 널리 확산되었기 때문에 성공회 교회들의 한 특징이 되었다. 앞의 설명이 암시하듯이, 총회적인 치리형태는 먼저 잉글랜드 밖에서 필요에 의해서 발전되었으며, 이제는 잉글랜드에도 확고히 정착하였다. 완드주교는 이러한 과정의 초기 단계 때에 글을 쓰면서 ‘기존의 나라가 이제 새로운 나라들을 모방하였다’고 논평하였다. 대의적인 총회[의회assembly]는 교회 신자들을 자격을 갖춘 어른들로 취급하면서 그들에게 책임적인 역할을 부여한다. 따라서 집단[공동체]적인 논의와 의사결정에서 신뢰가 성장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교회는 자발적인 행동으로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느님의 행동에 의해서 탄생된 초기교회(Catholic) 공동체 안에서 형성되어 사도들의 증언으로부터 내려오는 연속적인 역사로 연결된다는 인식과, 다른 한편으로 설립강령[헌장]에 따라 설립된 자치적인 교회라는 인식 사이에는 불가피하게 긴장감이 남아 있다. 이 때문에 많은 성공회 교회들은 그들의 설립조항들(헌장조항들fundamental articles)에서 그들의 환경을 보다 넓은 배경(context)에 위치시키기 위하여, 성서와 초기교회의 공의회들, 서방교회(Catholic) 전통, 잉글랜드교회 또는 세계성공회를 언급한다. 각 관구교회들은 자신들의 업무를 다른 권위체의 간섭없이 수행하면서도, 동시에 역사적 뿌리들과 세계성공회에 의존한다고 말한다.

    각 관구교회들은 그들의 법과 [치리]구조에서 하느님의 가족(household of God)[교회-역자]의 본질과 성격을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교회는 성공회 교회들을 교회를 정확하게 똑같은 방식으로 이해하지 않으며, 따라서 총회의 형태들도 서로 다르다. 서로 분리된 원들-대다수의 경우 주교, 사제, 평신도-로 구성된 총회[의회]의 조직은 교회의 ‘신분들’[중세적 개념의 계급들 estates]이라는 옛 의식에 의존한다. 그러나 여기서 몇가지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즉, 서품에 근거한 구별과, 세례에 근거한 거룩한 백성들(plebs sancta)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 주교직을 중심으로 하는 서품사목직들은 분명히 하느님의 선물이며, 이것이 없다면 교회는 완전한 교회일 수 없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사목직들은 교회로부터, 교회에서 그리고 교회를 위하여 존재한다. 모든 지도력은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은총의 공유된 생활에 근거한다. 그렇다면, 교회는 그 본질상 어느정도로 계서적인가? 어느정도로 민주적인가? 그리고 이것은 어느정도로 대안적인가, 정치적인 용어로 말한다면 교회의 실제(reality)에 어느정도로 부적절한가?

    성공회의 총회들(synods)은 분명히 장로제총회가 아니라, 주교중심으로 조직된 교회의 총회이다. ([잉글랜드]교회의 치리구조가 장로제와 주교제를 하나로 결합시킬 수 있기를 상상했던 리처드 박스터(Richard Baxter), 제임스 어셔(James Ussher)와 로버트 라이튼(Robert Leighton)의 노력을 늦었지만 인정하여야 한다.) 성공회신앙을 통해서 주교들은 교회의 치리, 교육, 목회, 성사와 사목적 생활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교회의 구조에서 주교의 역할은 필수적으로 인식되지만, 목회적인 치리형태에서 다른 권력기관과의 관련한 그들의 역할은 다르게 표현된다. 일부 관구들의 경우, 주교원은 전례나 교리와 같은 문제들을 제안하거나 결정하는데 독점적인 권한을 보유한다. 다른 관구들의 경우, 주교들은 대체로 다른 원들과 같이 투표한다. 일부 관구의 주교들은 전도구 사목자들을 임명하지만, 다른 관구들의 경우 이에 대한 주교의 권한은 기껏해야 협의뿐이다. 일부 교구들에서 주교는 교회법 또는 관례에 따라 거부권을 갖는다. 일부 관구들(또는 관구내의 일부 교구들)은 관습이나 규칙에 따라 강력한 주교의 전통을 유지하지만, 다른 관구들에서 주교직은 헌장으로 제한된 직책이며, 주교의 권위는 목회적인 지도력 그리고 존경과 경의를 받는 고매한 인품으로부터 나온다.

    이러한 차이들은 종종 역사로부터 유래한다. 일부관구들은 처음부터 주교들과 초보적인 교구조직을 보유하였다. 다른 관구들은 자립교회로 시작하여 교구와 주교직으로 발전하였으며, 일부는 국가단위의 교회 이전에 교구들만 존재하였다. 이러한 지속적인 독립 또는 강력한 중앙집중적 특징은 교회의 교회법적인 구조에서도 발전되었다.

    총회적인 치리형태의 몇가지 실질적인 문제들을 언급할 수 있다. 한 법안을 채택하는데 각 원들의 의견일치를 요구한다면, 이는 각 원에 거부권을 주는 것이다. 이러한 분할은 특정 이익집단에 영향을 받는 성급한 결정을 방지할 수 있는 반면에, 아마도 행동을 신속히 실행하는 것보다 이를 지연시키는데 더 적합하다. 대표하는 방식들도 서로 다르다. 즉, 참가하는 모든 단위들은 똑같은 숫자로 대표되거나, 크기에 따라 달리하기도 한다. 이러한 방식들은 각각 장점과 단점을 갖는다. 일부 교회들은 총회의 회의가 몇일씩 지속되기 때문에 대표자들이 시간적으로 헌신할 수 있는 인물들이어야 한다는 점에 유의한다-이럴 경우 특정한 집단이 된다. 관구들은 종종 이러한 총회가 각 교회들을 대표하기에 충분한지 또는 수적으로 너무 많은 것인지, 효율적인지 아니면 복잡한지[방해가 되는지]를 질문한다. 관구의 경계들이 지리적인 또는 정치적인 단위와 일치하지 않는 경우, 관구는 각 교구들을 의미있는 관계로 결속시킬 수 있겠는가?

    5.2 전례(liturgy)는 항상 성공회의 교회법들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나 전례와 교회법과의 관계는 복잡하다. 성공회 교회들은 루터교회와 개혁주의 교회들의 신앙고백들과 같은 역할을 하는 교리적인 고백서를 갖고 있지 않지만, 모든 교회들에서 기도서(Prayer Book)를 공인[제정]하고 있다. 신앙공동체는 교리적인 선언서가 아니라, 교회를 형성시키고 그리스도인을 형성시키는 틀인 찬양과 기도와 성사적인 행동들을 중심으로 결속한다. 일반적으로 기도서는 각 관구교회의 전국총회[의회]에서 승인되며, 각 지역교회들은 이를 의무적으로 사용하여야 한다. 기도서 또는 그 지시문을 위반하는 것은 곧 성직자에 대한 처벌사유였으며, 19세기에는 의례의 문제로 유명한 논쟁과 재판들이 발생하였다.

    그러나, 독립적인 단체이자 종교적으로 다원화된 사회에 봉사하는 오늘날의 성공회 교회들에서, 기도서의 권위는 법적으로 승인받은 것이라기 보다는 선별되고 사랑받는 매우 유익한 전례라는 사실에 있다. 현대의 대다수 기도서들은 과거의 그것들 보다 휠씬 덜 규제적이며, 집례자와 신자들[참여신자들]이 그들의 예배를 직접 선택하고 실현하도록 허용한다. 일부 성공회 교회들은 대안예식들-일부는 다른 교파교회들의 예식들에서 채택하였다-을 승인하고 있다. 따라서 예배에 대한 규제는 과거보다 훨씬 느슨해졌다.

    때때로 기도서와 그 지시문들을 단 하나의 완전한 문서라고 말한다. 그러나 기도서의 본문들과 지시문들 모두가 똑같이 중요하지는 않다. 기도서의 일부 문구들, 허용과 금지의 사항들은 성공회 예배의 통일성을 확보하려는 것이지만, 다른 사항들은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들이다. 교회의 전례의 의도와 정신 그리고 조화[균형]는 다양한 표현들과 방식들(styles and ways)에서 신앙적으로 실행될 수 있다. 주교와 사제, 평신도의 역할에 대한 정확한 판단은 법이 잘 다루지 못하는 교회의 생활의 분야에서 적절한 역할을 한다.

    자치적인 교회들에서 교회법은 한 전례를 전체교회에 제출할뿐 아니라, 공인받은 후에는 이를 집행하는 역할을 한다. 과거의 대다수 개정기도서들은 기존의 기도서들을 조심스럽게 편집한 것이었지만, 20세기의 개정기도서들은 분명히 과거보다 훨씬 체계적이다. 각 교파교회와 성공회의 각 관구들은 그들의 역사로부터 새로운 초교파적인 전례적인 상황을 진지하게 고려하며, 이에 응답하는 과정을 고안하여야 한다. 교회의 총회는 전례서를 승인하고 보유할 수는 있지만, 이를 초안하고 편집하는 자리는 아니다. 교회는 이러한 작업을 맡은 적합한 능력을 가진 자들에게 책임과 신뢰를 주어야 한다. 16세기 이후의 기도서들은 성공회신앙의 교회들에 20세기의 전례적인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유리한 입장을 제시하였다. 현대의 개정서들은 이러한 전통에 의존하였다. 그러나 개정위원회들이 작업을 시작하였을 때, 그들은 대부분 크랜머와 기도서 전통을 넘어서 초기 그리스도교회에 호소[의존]하였다. 크랜머 또한 그당시의 알려진 정보를 최대한 이용하며 초기교회에 호소하였다. 이러한 과정은 창의적인 충실성을 추구하는 모험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노력은 크랜머의 목표들을 추구하고, 과거의 성공회 기도서들을 통해서 제공된 진전된 출발점에서 시작하지만, 종종 중세말기를 뛰어넘어 초기 세기들의 전례들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정과정에서 나타난 기도서들의 일탈사항들을 고려할 때, 성공회 교회들의 연속적인 전례적 통일성에 대한 우려가 종종 표현되었다. 그러나 전례는 전례 자체의 원자료들과 내적인 기준[표준]에 [책임이 있으며]일치하여야 하며, 교회법은 전례의 방향들을 통제하는 제한된 권한만을 갖는다. 전례에 대한 연구는19세기말부터 급속히 발전하였으며, 성공회 신학자들이 지도적인 역할들을 수행하였다. 학문적인 발견들과 긴급한 사목적 필요라는 입장에서 볼 때, 성공회 교회들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쳤던 전통적인 기도서들은 사회적, 전례적으로 과거의 시기에 고정된 것으로 보였다. 따라서 기도서 개정에 참여한 성공회 개정자들은 그들의 모델로 기존의 기도서들 보다는, 초기교회의 모델들의 단순함을 따르고 많은 교회들에 영향을 끼친 ‘초교파적인 구성들’(ecumenical shapes)을 더 많이 선택하였다. 교회법들은 성공회 관구교회들을 전례적으로 단지 제한된 정도로만 결합시킬 수 있지만, 학문적인 발견들과 사목적 필요성은 그 자체의 설득력으로 커다란 초교파적인 전례적인 공감을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5.3 교리는 논쟁속에 있으며, 그리스도인들은 신학적인 차이들을 나타내며, 이들중 일부는 중요한 문제들이다. 교리적인 논쟁이 교회의 통일성과 평화를 위협할 정도로 확대될 때에, 교회법은 규제하는[통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가-해야 하는가?

    성공회 교회들은 신학적인 확언과 숙고의 전통을 유지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한다면, 성공회신앙의 방식은 권위있는 정의나 진술문으로부터 다른 신학적 진술들을 판단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공회의 방식은 교리의 기본적인 원천[출처]들-즉, 성서, 신경들(둘 또는 세개의 신경들, 그리고 일부 성공회교회들은 계속해서 39개 신앙조항에 약간의 권위를 부여하고 있다)-을 제시하고, 그리고 공동기도서이며, 또한 신자들에게 신학적인 논의에 초대한다. 성공회의 방식은 믿어야 하는 것들의 범위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례를 통해서 성서와 신경들을 전체 신앙공동체 앞에 제시하면서 신자들에게 중심적인 원천들[원자료들]-성직자들은 서품때에 이에 서명하도록 요구한다-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원천들은 성격과 기능을 서로 다르며, 모두 해석을 요구한다. 이것들은 신학이 발생하는 정신(mind)에 있는 장소들이지 신학적인 결론을 나타내는 점들이 아니다. 당연히 성서와 신경들을 해석하는 방식들중 일부는 좋은 의도라 하더라도 증언하려는 복음과 이러한 원천들을 왜곡하기도 한다. 그러나 서투른 해석에 대한 교정은 법이나 재판이 아니라, 보다 나은 해석이다. 신중하게 하는 것이 현명하다. 왜냐하면 한때 파괴적이라고[체제전복적이라고] 인식되었던 많은 사상들이 정당한 것으로 입증되어 거의 모든 곳에서 책임있는 그리스도교 사상가들에 의해서 유지 또는 허용되었기 때문이다. 성공회신앙은 원천들에 대한 어느 한 해석을 최종적인 해석이라고 고집하지 않는다.

    이러한 집중적이면서도 개방된 과정은 불확실하고 불만족스럽게 보일 수 있다. 신중한 사람들은 때때로 교리가 특정하고 명확한 과거의 공식문들에서 표현되었으며, 변경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들은 교회법원이 이러한 교리로부터 심각한 일탈들을 찾아내고 징계함으로써 이러한 전통의 신앙을 옹호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교리적인 논의와 관련하여 교회법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교회법은 하나의 신학적인 사상을 옳은 것 또는 거짓된 것으로 만들 수 없다. 신학은 그 자체적으로 검증된다. 교회의 신학적인 논의와 관련하여 교회법이 할 수 있는 것은 신학의 필수적인 원자료들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동의를 요구하면서도, 신학적 진술의 형식들에 관계없이 자유롭고 책임적인 신학적 탐구를 할 수 있는 분위기[연구공동체]를 조성하는 것이다.

    교회의 교리는 교회의 핵심적인 메세지에서 유래하기 때문에 고정적이거나 과거의 공식문에 한정될 수 없다. 그리스도교회는 복음아래서 물려받은 것뿐만 아니라, 성령의 인도로 항상 다가오는 것에도 관심을 갖는다. 성공회신앙에서 교리에 대한 가장 최근의 공식적, 반공식적인 교리문서들은 교리를 일련의 결과들 또는 확언들의 모음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즉, 성공회의 역사의 권위있는 순간들에 대한 언급하며 자체적인 범주를 지켜나가는 과정-으로 묘사하였다. 교리가 이헐게 표현될 때, 교리는 교회법의 기능의 한 부분으로 볼 수 있다. 즉, 그리스도교회에서 그리스도의 살아있는 성령에 봉사하면서, 책임적인 신학적인 논의의 분위기[연구공동체]를 만드는 비판적인 사상과 사목적 행동의 여러가지 중심들을 확언[인정]하고 창조적 긴장속에 유지시킨다.

    5.4 결혼, 이혼과 재혼, 성별(sexuality) 그리고 교회와 성직에서 여성의 지위의 분야들에서 나타나는 현재의 도전들에 대한 교회의 응답에서 교회법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다소 다르게 보이는 이러한 문제들은 교회법의 제정과정에 다소 비슷한 방식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여기서 하나로 묶어 논의할 것이다.

    교회가 속한 사회가 이러한 문제들에서 도전받기 때문에, 교회 또한 도전받는다. 결혼의 방식들, 이혼과 재혼의 일반화, 성별에 대한 태도들, 교회와 사목직에서 동성애자들의 수용, 그리고 사회와 교회에서 여성들의 동등한 역할은 모두 사실상 전세계적으로 변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왜 우리시대에 발생하고 있는가를 누구도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지난 수세기 동안에 묵인되었던 것들이 갑자기 왜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가 되는가? 한때 안정과 생명을 유지시키는 기관들[조직들]이 이제는 왜 억압적인 기관으로 보이는가? 누구도 20세기의 사회에서 이러한 변화들이 발생하도록 만들지 않았으며, 또한 이를 중단시킬 수 없다. 새로운 것은 과거의 것에 비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며 또한 그 반대의 경우도 마친가지이지만, 오랫동안 잠복되었던 질문들이 이제야 긴박한 대답을 요구한다. 교회는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심각하고 세계적인 사회적 도덕적 동요에 대응하며 응답하는 집단들중 하나이다.

    결혼과 가족, 성별, 그리고 여성의 역할에 대한 문제들 모두는 사회조직-즉, 실질적인 사회질서와 그 사회의 옳고 그름에 대한 인식-에 깊이 얽혀있다. 이것들은 개인적인 자기정의(self-definition)의 자리들이자, 불안정과 불안의 자리들이다. 이에 있는 기존의 방식들에 대한 도전은 개개인의 생활과 집단의 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준다. 즉, 격렬한 감정을 자극하고 공동체를 양극화시킨다. 일부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기존의 규범을 변경하도록 요구하며, 다른 일부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기존의 방식 그대로 수호하여야 한다고 믿는다.

    수세기에 걸쳐서 그리스도교회는 도덕[윤리]신학과 교리 그리고 때로는 성서적 해석의 전통을 통해서 결혼과 성적 태도와 사회적 역할들에 대한 규범을 규정하고 지지하였다. 그리스도교회의 표준들중 일부-특히 이혼과 재혼에 관한 규범들-는 교회법에서 취급되었다.

    사회적 규범들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항상 하나의 문화에 특유한 것이기 때문에, 각 사회나 하위문화마다 적어도 어느 정도는 서로 다르다. 교회들은 이러한 규범들을 낳은 특정한 도덕적 전통들을 부분적으로 비판하고 부분적으로 인정함으로써 이들과 서로 영향을 준다[대화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확신들이 강력하다 할지라도, 동일하지는 않다. 서로 다른 문화적 집단들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들만의 판단기준에 깊이 빠져있어 다른 사람들의 바른 신앙을 인정하기 힘들다. 서구인들에게 표준으로 보이는 윤리적, 목회적 상담의 전통은 재검토 없이 비서구권의 도덕적, 문화적, 사회적 규범들에 따라 살아가는 가족생활의 형태들과 부딪친다면, 매우 파괴적일 수 있다. 일부 관구들은 그들의 상황에서 결혼과 이혼 그리고 재혼에 대한 사목적인 권징[규정]을 완화시키는 행위가 그들의 도덕적인 증거에 대한 배신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나의 특정한 문화적 상황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상황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심판할 수 없다. 그러나 서로 다른 상황에 있는 관구들은 그들의 실재[현실]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인정하고 이해하여야 한다.

    교회는, 속한 사회와 마찬가지로, 도전을 받으면 먼저 오랫동안 검토받지 않았던 사상들을 구별[정리]하기 시작한다. 일부 예언자적이고 직관적인 사람들은 거의 처음부터 문제[쟁점]들을 파악하고 결과를 예상한다. 다른 사람들은 보다 신중하게 검토하고 움직인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과거의[기존의] 확신에 매달린다. 일부는 극단적인 입장들로 갈 수도 있고, 일부는 중간지대 또는 양쪽을 모두 확언하는 방식들을 찾는다.

    교회는 새로운 인간적인[인간학적인] 주장들로부터 도전을 받으면, 문화전반에 대한 논의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당대의 연구들을 언급한다. 이러한 과정은 교회 안팍에서 체험하는 현실[실재]성에 유익하고 적합한 가장 좋은 자료들과 분석들을 사용하여야 한다. 그러나 교회의 내적인 논의 또한 교회 자체의 규범적인 원자료들을 언급한다. 그 특징적인 방식은 성서와 전통을 깊이있게 고찰하는 것이다. 교회는 과거와의 연속성을 확언함으로써 최신유행하는 성향을 회피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전진하고 후퇴한다. 교회가 성서를 새롭게 이해하려고 시도할 때, 때때로 성서가 선택적으로, 비역사적으로, 또는 당시의 문화와 전통의 시각에서 이해되었다는 것을 발견한다. 성서는 결혼과 이혼, 또는 동성애자들, 또는 여성들의 역할에 대하여 기존의 인식들을 말하지 않을 수도 있다. 때때로 긴급한 구체적인 질문과 관련하여 성서는 전혀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는 과거의 상황에서 씌여진 성서를 현재의 상황에 대하여 해석하여야 한다. 새로운 질문으로 원자료들로 되돌아가는 것은 종종 새로운 시각과 새로운 발견을 낳는다. 변화는 발견과 회복[복원]의 시간일 수 있다.

    결국에는 새로운 주장이 더이상 생겨나지 않는다. 각 당파들은 자신들의 주장만을 반복한다. 토론은 종결되고 공식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러나 결정은 종종 관구의회[총회]에서 아마도 교회법의 채택, 폐지 또는 수정이라는 단 한차례의 행동으로 나타난다. 모든 당사자들이 동시에 행동할 준비가 되어있는 것은 아니다. 두개의 원에서 ‘통과’되고 다른 원에서 ‘부결’되면, 제안은 통과나 부결이 확실해질 때까지 다시 상정될 것이다.

    교회가 새로운 방식을 채택한다면, 이를 수용하는 과정(process of reception)이 뒤따른다. 새로운 법률들은 기존의 법률들처럼 새로운 행동과 새로운 구조들에 의해서 지지를 받아야 한다. 새로운 방식들은 새로운 의미에서 옳고 당연한 것으로 인정받아야 한다-하지만 이러한 수용을 너무 빨리 쉽게 받아들임으로써 많은 사람들은 변화가 너무나 오래 걸리고 어려워야했던 이유를 의아해한다.

    사상과 태도들과 행동들의 이러한 통합과정은 미래에 또다른 문제가 제기될 때까지 숙고할 시간을 제공한다.

    5.5 문화, 가변성:교회법은 항상 주위 문화[환경]의 형태와 양식으로 표현된다. 교회법적인 절대주의는 부절적하다. 제국주의적인 사회에서 교회는 제국처럼 보였다. 봉건제 또는 군주제 사회들은 당시에 교회생활의 질서를 반영하였다. 현대의 서구사회에 있는 그리스도교회는 관료집단의 형태를 많이 모방하고 있다. 부족사회에 있는 교회는 교회생활, 권위를 실행하는 방식, 그리고 내부소통의 방식들을 부족사회의 [생활]양식으로 표현한다. 사회의 모든 구성물[개념]들은 일방적이고[편파적이고] 불완전하며,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종종 사용해야 하는 모델들을 완화시키거나 순화시키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러한 적응[적용]과정을 통해서 교회는 신자들에게 당연하게 보이는 공동체의 생활양식을 활용한다. 조직체[교회기관]들(institutions)은 신자들이 살고 있는 질서정연한 생활이 옳다고 인식하도록 자아인식(perceiving self)을 만든다. [따라서] 사람들은 공동체의 익숙한 형태들에 들어가, 그것들로부터 도움을 받고 활동하게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다. 일부 서구인들은 안건을 만들고, 이를 토론하고, 다수결 투표로 채택하는데 능숙하지만, 다른 사회의 사람들은 이러한 과정에 매우 당황한다. 집단적인 그리스도교적인 정체성의 기본요소들-성서, 신경들, 성사들 그리고 성직들-은 신앙공동체의 생활형태를 구속[제한]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들은 폭넓게 적응될 수 있다. 이 문제는 중요하다. 왜냐하면, 오늘날 대다수 성공회 교회들이 비서구교회로 다문화적인 세계성공회의 일원이라는 점은 기존의 교회법을 형성시킨 전통들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조직하는 방식들-그리고 그러한 전통으로 형성된 사람들은 이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을 발전시킬 수 있다.

    6. 교회법과 법의 신학

    법은 실제적 분야이자 이론적인 분야이다. 아마도 성공회 교회들에게 좋은 교회법을 제정하는 것만큼 시급한 것은 교회생활의 내적인 구조들과 과정들에 대한 엄격하고 근거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자각이다. 교회법은 명확한 규정들의 모음집 이상이어야 한다. 법률들은 이의 수용과 정당성을 얻기 위하여 법에 관한 해설집이 필요하다. ‘“신자들은 법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고 말할 때에 법을 심각하게 고려해야되는 신앙공동체는 “좋습니다. 그렇다면 법은 무엇에 책임을 집니까?”라는 질문을 엄격하게 다루어야 한다. 법에 대한 해설집이 없이 법을 갖고있는 교회에서 법은 독단적으로 보일 수 있다.

    교회법들은 법을 초월하는 것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신앙공동체의 생활을 형성시키려는 교회의 노력이다. 교회법들은 교회법이 만들지 않은 생활을 규제한다. 교회법이 봉사하여야 하는 가치들과 목적들은 법률들 그 자체에 의해서 제공되지 않는다. 교회는 법을 알지만 법의 제정 이전의 출처들과 법의 제정목적들 안에서 법을 해석할 줄 모르는 법률전문가(legal technician)를 경계하여야 한다.

    이 글의 첫부분에서 언급한 것처럼, 20세기 초반 이후로 교회법에 대한 성공회의 연구는 감소되었다. 최근에 이 분야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두가지의 운동들[제2차 바티칸 교회회의와 에큐메니칼운동-역자]과 연구서들이 나타났다.

    6.1 최근의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회법 연구들
    교회법에 대한 성공회의 학문적 연구는 오랫동안 이 분야에 대한 로마 가톨릭교회의 광범위한 문헌들-신중한 사상과 방대한 학식을 대표하는 전통-에 의존하였다. 그러나 20세기초까지 로마 가톨릭교회에서의 교회법은 교회재판소의 업무 그리고 어려운 소송들을 자세히 분석하기에는 복잡한 법조항들과 교회재판소의 업무 때문에 그 의미를 거의 상실하였다. 이 교회법들의 이론은 스콜라철학의 범주들에 결합되었다. 따라서 교회법은 전문가들의 영역이 되었으며, 그 자체로 전통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20세기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교회론, 교회일치론(ecumenicity), 그리고 사목적인 선교론의 중요한 쟁점들과는 거의 관련이 없었다. 따라서 창의력있는 젊은 학자들은 교회법을 관료들과 고문서 연구가들에게 일임하였다.

    대체로 과거에 (로마 가톨릭 학자들 뿐만아니라 이들을 따르는 성공회 학자들 사이의) 논의들은 교회법을 재판과 관련하여[사법적으로] 생각하여, 교회법을 하느님의 권위와 통치라는 개념들에 근거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즉, 교회법의 토대는 그리스도교회와 구체적으로 교회의 계서적인 성직구조(hierarchy)에 부여된 그리스도의 왕적인 권위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이해될 때, 교회법의 목적는 가능한대로 인간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그리스도의 확고하고 자애로운 통치에로 인간생활을 인도하는 것이다. 교회법을 하느님의 권위에 근거시키려는 노력으로, 법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그리스도교회의 법률들을 신격화하고, 교회의 목회적인(pastoral) 업무를 도덕주의적인 방식으로 이해하는 경향이었다. 이러한 이해에 따르면, 법이란 위로부터 그리스도교회로 내려와 각 신자들에게 전달된다. 이 과정에서 신자들은 대체로 수동적이다. 이러한 하향적인 모형[형태]은 ‘영광의 신학’(theologia gloriae)의 법적인 표현으로 보인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회의의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로,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회법은 새로운 교회론 그리고 신앙공동체의 인간적인 생활에 대한 관심을 포현함으로써, 활발하고 지적으로 도전적인 분야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사상들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법은 자유를 위한 것이다; 법은 목회적이며 생명을 부여하는 기능을 한다; 법은 그리스도교회처럼 그 자체로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법은 세례신자들의 타고난 권리들을 보호하고 독제정치를 억제한다; 권위는 지역단위로 그리고 합의제로(collegially) 행사되어야 한다. 이처럼 소규모 르네상스에서 제기된 쟁점들과 발전된 개념들은 성공회신앙의 교회들에게도 해당된다.

    6.2 에큐메니칼 연구들(Ecumenical Studies)
    교회일치적이자 비교문화적인(cross-cultural) 탐구는 그리스도교회의 제도[조직]화된(institutional) 생활을 심각하게 고려하였다. 만약 교회가 고립적으로 살아간다면, 교회는 교회의 공동생활을 규정하는 방식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교회가 똑같이 예수 그리스도에 충성하지만, 역사와 자기이해가 다른 교파교회들과의 대화에 참여하면, 반드시 비교하고 듣고 배워야 한다.

    더구나, 교회들이 함께 세상에 대하여 말하며 교회밖을 바라볼 때, 그들은 기존의 신앙공동체 생활들을 다르게 보게된다. 역사적으로 서구의 교회들은 구원적인 선교활동을 실천하기보다는 교파의 보존에 더욱 열중하였다. 이러한 교회들은 서구의 문화적인 인습을 전달하지 않고 비그리스도교 세계와 접촉하며 살고 있는 지역사회들을 복음화하는 다른 교회들에 의해서 자기반성을 위한 거울을 제공받을 수 있다. 서구의 교회들은 곧 그들이 살고있는 세속화된 사회에 대한 선교에 직면하고 있다. 대다수의 경우 유럽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소수파이며, 교회신자들의 수가 막강한 미국에서도 교회들은 경계할 정도로 세속회된 사회에 대한 전속사제로 되는 것을 허용하였다. 그러나 서구의 교회들은 수세기 동안 그리스도교국가에서 유리한 지위를 누리면서 형성된 교회생활의 형태를 고집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자기기만에 빠져있다.

    교회간 그리고 문화간의 대화들은 모든 참가자들-아마도 거의 성공회신자들-에게 엄격한 자기비판을 실시할 것을 요구한다. 기존형태의 교회생활은 그리스도교회의 본래적인 선교적 성격과 과제에 조적합한가? 조직체의 생활(corporate life)은 복잡하게 얽혀있다. 기존의 조직이 목적들에 기여하였을 때 이를 버리는 것보다는 이를 개선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그러나 전반적인 축소-특히 이념에 의해서 실행될 때-는 단체[조직체]의 생활에서 다양성과 인간성을 제거시킬 수 있다. 이제 흔적만 남은 것으로 보이는 과거의 조직형태들은 그동안 알려지지 않고 인정받지 못했던 기능들을 수행할 수도 있다. 우리는 때때로 이러한 기구들을 폐기하고 나서야 그 목적을 깨닫고 다시 조직한다. 그리스도교회의 생활은 근본적으로 복잡하다. 따라서 여기에는 어느 한 시점에서 인식한 것보다 더 많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교회의 일치운동(ecumenicity)으로부터 오는 도전은 훨씬 더 근본적이다. 성공회신앙은 그리스도교의 유서깊은 과거로부터 유래하며, 미래에 재통합될 그리스도교회-현재로부터 형성되지만, 오늘의 교회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될 수도 있는 교회-를 향하여 수많은 죽음들과 부활들을 헤쳐나갈 것이다. 성공회 신앙생활의 제도화된 특성들은 상상력을 갖고 그리스도교의 유서깊은 과거와 현재에 다른 교파교회들과의 진행중인 대화활동의 측면에서, 그리고 알 수 없는 요구들과 기회들을 가져올 미래의 측면에서 현재의 교회구조들을 상대화시켜야 한다.

    필자는 오늘날과 미래를 위하여 교회법의 이론적이며 실질적인 과제로 나타나는 쟁점들을 몇가지 소개하려고 한다.

    6.3 복음
    그리스도교회는 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과 행동에 의해서 설립되었다. 교회는 예배와 증언과 봉사를 위하여 존재한다. 따라서 그리스도교회의 근본적인 자기이해는 법적이 아니라 신학적이다. 그리고 신학은 복음에 대한 해설이며, 복음은 성서에서 증언된 것처럼 하느님이 모든 백성들을 사랑하고, 자유롭게하고, 존엄하게 만드는 행동이다. 그리스도교회의 신자들은 항상 이러한 복음에 접근하며[복음과 대화하며], 복음이 그들을 새롭고 진정한 형태들의 복종과 사목으로 인도할 때, 교회법은 반드시 평가를 받고 [그 결과를] 따라야 한다.

    법과 [교회의] 구조들은 복음에 봉사하는 것이라는 일반적인 이론이 주는 한가지 직접적인 의미는 교회법학자들이 법적인 전문성을 가지면서도 신학과 그 역사에 정통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법이 신학과 기본적인 성서적 문헌들과 상호작용하는 미개척분야에서 살고[활동하고]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영성적인 사회의 조직화된[제도화된institutional] 측면을 다루고 있으며, 따라서 그들이 다루고 있는 것들을 신앙의 궁극적인 측면들과 관련하여 이해해야 한다. 교회법의 문제들을 누가 다루어야 하는가, 법률가들 또는 신학자들? 어느 쪽에서 다루든 문제는 있다. 서로간의 협력이 바람직해 보인다.

    6.4 변화와 갈등
    변화는 인간적 조건이며,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조건이다. 그리스도교회에서 변화는 단순히 변화하는 가르침들 또는 전례적인 예식활동들의 문제가 아니다. 변화는 이를 제일 먼저 손실로 인식하는 개인의 일대기들[전체적인 삶]과 집단의 역사들 속에서 측정된다. 격렬한 감정들이 폭발하며, 생활의 모형들은 개인들의 한계점들에서 파괴된다. 매우 다양화된 교회들이 변할 때, 그들은 천천히 움직이며 모든 신자들이 똑같은 속도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일부 신자들은 교회가 변해야 한다고 인식하지만, 다른 신자들은 그들이 알고 사랑했던 교회가 쇠퇴하고 있다고 느끼며 이를 보존하기 위하여 행동해야 한다고 느낄 것이다. 따라서 신앙공동체가 합법적인 방식으로 중대한 변화를 결정하였지만, 일부 신자들이 이를 수용하기를 거부할 때, 교회법에 대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격한 감정들은 깊게 형성되고 신자들은 서로 반목하기 때문에 반대자들은 때때로 화해를 추구하지 않으려 한다. 그들은 타협을 항복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러한 불화는 교회의 공직자들[교직자들]과 그들이 집행하는 교회 법률들을 시험한다. 조직화된 구조들(조직구조들coporate structures)은 공익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으면서 어느 정도의 긴장(갈등stress)을 흡수할 수 있는가? 그리스도교회는 다수파의 독재 뿐만아니라 소수파의 독재를 피할 수 있는가? 임의단체(자발적인 모임들voluntary society)인 현대의 교회들은 반대자들에게 일정기간 동안 법의 준수를 강요할 수 있는 제한적인 권한만을 갖고 있다. 교회의 합법적인 행동들을 준수하지 않는 개인들이나 집단들에 대하여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는가? 반대하는 집단들에게 아마도 일정 기간동안 독립적으로 그들만의 방식대로 남아있을 수 있는 여지를 줄 수 있는가? 이는 외교적인 방식이다. 즉, ‘양심조항’을 만들고, 시간이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맡기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자들에 대하여 인내하고 이해하려는 태도는 단순히 복종하는 자들을 소외시키거나 심지어 교회법적으로 불이익을 줄 수도 있다. 두가지 예를 들어보자: 일부 교회들은 모든 세례받은 어린이들에게 성찬참여를 허용하지만, 다른 교회들은 허용하지 않는다. 한 지역교회에서 성찬에 참여하는 어린이들이 다른 교회에서 그들이 수용하기 힘든 이유들로 주님의 식탁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당할 수도 있다. 이와 비슷하게 많은 교구들 또는 관구들이 여성들의 성직을 허용하지만, 다른 교구나 관구는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이 때에 한 관구에서 법적으로 서품받은 여성 성직자가 세계성공회의 다른 교회들에서 주교, 사제 또는 부제로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상황은 사소한 문제이거나 일시적인 문제인가? 이러한 현상들은 신앙공동체를 위협하는 신호들인가? 오늘날 일부 집단들은 이념적인 반대로 인하여 실질적인 분파(schism)가 되었다.

    일부 관구들은 이러한 위기들을 겪지 않았지만, 이런 종류의 심각한 쟁점들이 교회와 사회에서 깊고 만연된 변화들에 의해서 발생한다면, 앞으로도 수년동안 교회의 법적인 구조들과 이 구조들이 정당한 조직으로 만들려는 자들을 시험할 것이다.

    6.5 신앙공동체(Community)
    교회법은 공동체의 생활로부터 성장하며, 반대로 공동체의 생활을 형성시킨다. 즉, 교회법은 신자들을 공동의 권리와 책임을 갖는 구조[조직]에 결속시킨다. 교회법률들의 무미건조한 본문들은 서로 경청하고, 봉사하고, 보살피고, 용서하는데 헌신하는 신자들의 공동체를 언급한다. 그러나 어떠한 신앙공동체도, 그 시작이 이상적이었고 법률들을 신중하게 제정하였다 하더라도, 결점을 드러낼 것이다. 조직화된 생활의 갈등적인 특색들은 건전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나타날 것이다. 집단들은 보편적인 가치과 그들의 가치를 혼동할 것이다. 당국자들은 멀고도 무관심한 것처럼 보일 것이고, 교회의 권력중심부는 서로를 불신할 것이다. 권력은 권력을 향해서 흐르고, 약자들은 방치[배제]될 것이다.

    교회법이 언급하는 공동체는 세례를 기초로 한다. 교회법의 근본적인 질서(조직order)는 라오스(laos) 즉, 전체 백성들이다. 그러나 교회법-전통적으로 그리고 아마도 불가피하게-은 성직자의 문제들에 집중하며, 평신도들에 대해서는 주로 교직의 자격조건, 결혼과 이혼, 성사들의 허용과 배제와 관련해서만 말한다.

    더 자세히 말한다면, 세례는 가치와 존엄을 부여하는 것이며, 사회에서의 지위에 관계없이 사람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생활하게 만든다(갈 3.27-8). 교회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제기함으로써 교회법에 따라 만들어진 공동체를 검사할 필요가 있다. 즉, 일부의 것들을 보고 다른 것들을 보지 않는 집단의 성향 때문에, 교회에서 일부 신자들은 ‘비가시적인’존재 즉, 무시되거나 이등신자 또는 제한된 권리를 가진 자리로 밀려난 존재인가? 교회의 활동적이고 의사결정생활은 모든 수준에서 모든 신자들이 그들의 재능들과 소명들에 따라 참여할 수 있게 개방되어 있는가? 교회활동에 적합한 정보들이 모든 신자들에게 자유로이 제공되는가? 교회의 공직자들과 행동방식들에 불만을 가진 신자들이 항소할 수 있는 적절한 길이 열려있는가? 절대적인 권한을 어느 한사람의 수중에 귀속시킴으로써 위험한 조직들을 만들지는 않는지? 일부 로마가톨릭 저술가들은 ‘세례신자들을 위한 권리장전’(Bill of Rights for the Baptized)을 제안하였다. 특정한 조직상의 문제점들[불만들]은 보다 나은 법들과 보다 참여적인 구조들에 의해서 완화될 수 있다. 법은 베제시키거나 포함시키거나, 축소시키거나 향상시키는데 사용될 수 있는 강력한 힘이다.

    그러나 문제의 일부분은 법을 집행하고 구조[조직]들을 기능하게 만드는 정신이다. 만약 법을 형성시키는 복음이 하느님의 자유롭고 존엄하게하는 행동이라면, 교회법은 반드시 규칙이라는 측면이 아니라, 후원과 봉사라는 측면에서 해석되어야 한다(마가 10.45). 그리스도교회는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위하여 자신을 바친 그리스도의 행동에 참여함으로써 존재한다. 만약에 교회법들과 그 운영방식에 대한 모델이 ‘국가들’의 방식들에 크게 의존한다면, 이는 기대하기 어려운 원칙이다. 교회의 오류가능성, 최고의 법률들과 법률가들의 불완전성을 인정하면서, 교회법은 십자가의 신학(theologia crucis)을 구현하여야 한다. 교회법은 오만을 억제하고, 근본적인 겸손을 포용하여야 한다. 교회법은 하느님의 종들의 종이 되려고 노력하여야 한다.

    모든 성공회 교회들은 질서있는(orderly) 방식들로 활동하고, 인간의 대행자들을 통해서 실행된다 할지라도 하느님의 선물인 법을 따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들이 법을 따를 때라도, 그들은 법이 교회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구체적인 생활에 봉사한다는 점을 인식하여야 한다. 즉, 법은 의견의 불일치에도 불구하고 질서와 공평성을 유지함으로써 포용성, 통일성과 평화를 추구하여야 한다. 그리고 법의 봉사를 받는 교회는 복음에 봉사한다.

    따라서 교회법은 그리스도교의 근본적인 메세지에 의해서 확립되는 동시에 상대화된다. 교회의 지도자들과 법을 제정하는 기구들의 첫번째 과제는 입장이나 당파 또는 이념을 대표하거나 전체의 의지를 발견하고 공감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칼 바르트는 ‘신앙공동체의 질서’(The Order of the Community)에서 예상과는 달리 때때로 신랄하고 장황하게 논의하면서,‘중대한 문제들이나 작은 문제들이든, 이 모든 것들에서 진정한 교회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목소리를 듣는 것으로부터 나온다’고 말하였다.

    참고문헌

    Berman, Harold J., the Interaction of Law and Religion. Abingdon Press, Nashville TN, 1974.

    The Canon Law of the Church of England, Being the Report of the Archbishop’s Commission on Canon Law, together with Proposals for a Revised Body of Canons. SPCK, London,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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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evick, Daniel B., Canon Law: A Handbook. Seabury Press, New York, 1965.

    Sykes, Stephen W. (ed.), Authority in the Anglican Communion. Anglican Book Centre, Toronto, 1987.

    2012년 5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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