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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회 high church 와 저교회 low church « 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 전례 Q &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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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amedia

    회원

    아래 "말씀과 성사"라는 글에서 짧게 언급된 "고교회와 저교회"의 구분 기준에 대해서 zinkoo님께서 매우 중요한 질문을 주셨습니다. 원래 글이 이 문제에 관한 것이 아니었고, 스치듯 언급한 것이었으며, 언젠가 다시 한번 찬찬히 짚어 보아야겠다는 주제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독립된 글로 떼어 많은 분들과 의견을 나눴으면 합니다.

    사실 이에 관한 이야기는 언젠가 서울교구 성직자 포럼 게시판과, 작년 전례 포럼과 세미나에서 몇몇 신부님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만, 우리 인식 속에 퍼져 있는 생각을 되돌아보기에는 그리 충분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우선 이것은 여전히 고민 중이고 연구(까지 필요할지는 모르지만 ^^)하는 중에 나온 제 생각의 정리에 불과합니다.

    저는 "말씀과 성사"라는 글에서 아래와 같이 썼습니다.

    이 참에, "말씀"과 "성사"에 대한 분리된 강조점을 각각 "저교회"와 "고교회"의 틀에 대입시키려는 흐름을 잠깐 짚었으면 합니다. 이런 대입법이 그럴 듯하게 보이지만, 그 역사적인 기원과 속성을 따져서 쉽게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저교회”는 성찬례를 매주일 하지 않는 교회 흐름이고, “고교회”는 성찬례를 매주일 하는 교회의 흐름입니다. 성찬례 거행의 스타일을 가지고 그걸 구분짓는 것이 아닙니다. 흥미롭게도, 요즘 개신교의 여러 교회들이 성찬례를 중심으로 한 전례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zinkoo님께서 이런 의문을 제기하셨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글 중에 "“저교회”는 성찬례를 매주일 하지 않는 교회 흐름이고, “고교회”는 성찬례를 매주일 하는 교회의 흐름입니다. 성찬례 거행의 스타일을 가지고 그걸 구분짓는 것이 아닙니다."라는 부분이 있는데 이것이 일반적인 저교회와 고교회의 구분인가요? 실지로, 메소디스트 들은 매주 성찬례를 하는 것을 강조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들이 일반적으로 저교회라고 분리되는 것은 왜 그런가요? 우리 주위에서 저교회와 고교회의 정의가 애매한 부분이 많은 것 같아서 저는 그 구분 자체를 싫어하지만 그래도 신부님의 생각을 더 듣고 싶습니다.

    이에 대해서, 1) 이런 새로운 이해를 소개한 이유, 2) 용어와 관련한 역사적 사실의 복잡성, 3) 현대 전례 운동이 시사하는 것, 4) 존 웨슬리의 경우, 5) 새로운 대화를 위한 논의 방향 등의 내용으로 생각을 나눴으면 합니다. (이미 zinkoo님은 이런 논의를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다른 분들을 위해서, 그리고 제 자신의 정리를 위해서 다시 한번 언급합니다.)

    1. 새로운 이해의 필요성

    고교회와 저교회에 대해서는 성공회 전통을 조금이나마 안다는 분들은 저마다의 의견을 갖고 있습니다. 그게 역사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옳든 그르든, 심오한 것이든 표피적인 것이든, 학적인 개념 논의이든 상투적인 구분이든 간에, 나름대로 진실을 조금씩을 갖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최근에 "고교회와 저교회"라는 용어를 한국 교회 안에서 어떤 분파적인 운동의 방향과 가치로 잡는 인상이 엿보여서 여러 기회를 통해서 생각의 방향을 바꾸어 보았으면 하여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 성공회는 '고교회 일색이니 저교회가 필요하다'든가, 영국에 갔더니 '저교회가 더 많고 성장하더라. 성공회는 고교회만 있는 줄 알았는데 속은 것 같다'는 말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합니다. 이런 의견의 저변에 깔려 있는 의식의 흐름, 혹은 한국 성공회 내부의 어떤 기운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 보고 싶었고, 이런 인식의 태도가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가 하는 의문도 가져 보았습니다.

    2. 역사적 사실의 복잡성과 용어의 적용

    사실 "고교회"나 "저교회"라는 용어 자체가 적절하거나 옳은 표현은 아닙니다. 일반화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런 "교회"들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다만 그런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지요. 즉 "고교회주의자"(high churchmen)와 "저교회주의자들"(low churchmen)으로 표시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그러나 이런 표현과 역사적 사실, 특히 영국이라는 특수한 정치적 상황과 종교의 관계 등에서 이를 정확하게 헤아려 단적으로 설명하기가 힘듭니다. 또 이 때문에 용어 상의 혼란뿐만 아니라 내용 상의 혼란도 가중됩니다. 이건 우리 탓이 아닙니다. 영국 애들이나 미국 애들도 헤깔려 하고 자기네들 이해하고 싶은 대로 이해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 역사를 좀 헤아려서 우리의 실정에 맞게 이해하면 된다고 봅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잠시 뒤에 설명하겠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이를 "장엄 미사"(high mass)와 "단조로운 미사"(Low Mass)라는 전례 거행 형태 상의 차이를 '고교회'와 '저교회'에 대입시키는 것입니다. 용어 상에 "high"와 "low"가 각각 들어 앉아서 그럴듯 하게 보이지만 그 내용은 전혀 다릅니다. 우선 high mass 와 low mass 의 구분은 중세 때부터 있었고, 이 모두 성찬례의 거행 행태에 대한 표현법이지,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고교회"와 "저교회"의 구분이 아닙니다.

    1) 그럼 '고교회주의자들'의 주장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고교회의자들'(High Churchmen)이란 17세기 영국 교회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몸부림 속에서 등장한 일단의 성직자와 신자들 무리입니다. 이들이 강조한 것은, 영국 교회가 가톨릭 전통에 근거하고 있으며, 교회와 국가의 일치, 국왕의 권위, 주교의 권위, 그리고 성사들의 권위가 높은 (high) 신적인 기원을 갖는 것이라고 보았고 이를 강조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영국 정치 상에서는 국가와 교회의 일치, 왕권신수설의 주장과 연결되었고, 교회 안에서는 주교직과 성사에 대한 강조가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강조점들은 역사적으로 영국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매우 한정됩니다. 특히 정치적인 강조점들은 영국 이외의 다른 성공회와도 연결지을 만한 점이 없습니다. 즉 여기에는 단절과 연속이 있습니다. 결국 세계성공회에 유의미하게 남는 문제는 주교직의 권위와 성사의 권위에 대한 강조입니다. 이 지점을 강조하면서 나온 것이 이른바 "옥스퍼드 운동"(Oxford Movement)의 주역들입니다. 이들은 이미 그전의 '고교회주의자들'과는 상당히 다른 의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일컫는 좀더 바른 용어는 '성공회-가톨릭주의자들'(Anglo-Catholics)이라 하겠습니다.

    2) 한편 '저교회주의자들'의 주장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역사적으로 보자면, '저교회주의자들'은 국교인 영국 교회(the Church of England) 내의 사람들과, 영국 교회 자체를 반대하던 사람들(비국교도, non-conformists)을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개념입니다. 그들이 어느 쪽에 소속되어 있든 그 특징들은 주교직과 사제직, 성사의 위치를 낮게(low) 보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사실 영국이라는 특수성 속에서 영국 교회(the Church of England)는 교단적 개념이라기 보다는, 국민 교회(national church)의 성격이 강합니다, 다시 말해 이는 한 교회 안에 전혀 다른 분파들 - 단순한 의견 상의 분파가 아니라, 요즘 식으로 말하면 교단적 분열에 가까운 - 이 공존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나중에 이른바 성공회 '복음주의자들'(Evangelicals)과 연결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복음주의자들이 늘 '저교회주의자들'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었고, 이 안에서도 광범위한 일치점이 존재했던 것도, 그리고 어떤 일관성을 갖고 발전하여 오늘에 이른 것도 아니었습니다. 예의 존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는 전형적인 "고교회 전통" 안에서 시작되었고, 영국의 복음주의는 세월이 흐르면서 전혀 다른 색깔들로 많은 변신을 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3) 논란의 지점들

    강조점이 아니라, 분기점이 되는 공통의 주제들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주교직의 문제, 사제직에 대한 이해, 그리고 성사에 대한 이해라 하겠습니다. 이 점에 관련하여 서로 다른 신학적인 주장들과 사목적인 적용들이 있습니다. 다른 문제는 차치하고 여기서는 성사에 대해서 좀더 생각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에 따라 '우리 식'의 고교회와 저교회에 대한 이해의 틀을 마련했으면 좋겠습니다.

    3. 현대 전례 운동이 시사하는 것들

    저는 개인적으로 16세기의 종교개혁이 1차 종교개혁이었다면, 20세기의 교회 일치 운동(Ecumenical Movement)과 전례 (쇄신) 운동(Liturgical Movement)를 2차 종교개혁이라 봅니다. 그 의도와는 관계없이 16세기의 것이 교회의 분열과, 성사에 대한 이해의 분열을 낳았다면, 20세기의 것은 교회의 공통 유산에 대한 재발견과 그에 근거한 새로운 대화와 모색을 추구했습니다.

    교회 전통의 풍요로운 역사에 대한 고민은 지금까지의 서방 교회 중심적인 틀을 벗어나서, 동방 교회의 유산에 대한 관심과 배움으로 이어졌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위계 질서와 직제 뿐만 아니라, 교회의 삶의 형태요 틀인 성사(sacrament)에 대한 이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또 이것은 16세기의 종교개혁이 그랬던 것처럼 좀더 넓고 깊은 차원에서 성서와 초대교회의 삶과 그 경험에 대한 이해를 추구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성사와 관련하여 이 운동이 얻은 깊은 통찰은 "세례와 성찬례'에 대한 것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이를 재론할 필요는 없겠고, 이러한 성사의 기본에 기초하여, 기존의 다른 성사들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검토되고 새로운 배움들을 마련해 놓았습니다. (개신교에서는 특별히 고백성사와 관련한 것이고, 루터교 전통이 오랫동안 씨름해왔던 것이기도 합니다.)

    이 운동의 가시적인 효과는 분명한 것이었습니다. 세례(혹은 이를 포함한 입교의 전과정 Christian Initiation)에 대한 강조와 예식의 개혁, 그리고 성찬례를 주일(부활일의 연속으로서)마다 계속하는 것이었습니다. 최소한 이 운동의 도전과 성과를 깊이 인식하는 교단들은 이 점을 자신들의 삶 안에 실현해 내려고 분투하고 있습니다.

    이 전례 운동은 기존의, 서방 교회 중심적 사고와, 영국 교회의 특수한 역사적 경험의 틀 안에서 논의되는 모든 견해와 용어들을 새롭게 이해하도록 자극합니다.

    결론적으로 제가 "고교회와 저교회"에 이해하는 이면에는 바로 이렇게 "역사적인 기원과 속성을 따져서" 우리 식으로 "쉽게" 말하자는 의도가 있었던 것입니다. 스스로도 헤깔릴 것이 분명한 고교회와 저교회의 역사적인 사정들의 한 대목만을 끄집어 내어서 어떤 대결이나 비판을 위한 지렛대로 삼을 필요가 없고, 그것이 우리 교회가 하느님 선교의 삶을 살아나가는데에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며, 여전히 '성공회의 모국인 영국에,' 혹은 어떤 '원전'에 기대려는 식민지적 사고 방식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입니다.

    다시 말해, 고교회와 저교회에 관련한 '우리 식'의 새로운 이해를 소개하는 것은, 영국 교회의 역사 뿐만 아니라, 이전과 이후, 그리고 특별히 전례 운동이 가져온 중요한 성과에 비추어 재구성하고 우리 선교 현실에서 새롭게 보자는 것이지요.

    성사에 대한 강조점과 관련하여, 그리고 그 실천과 관련하여, "고교회"를 성찬례를 매주 하는 "흐름"이고, "저교회"를 그렇지 않은 "흐름"이라고 보면 좀더 분명하면서 포괄적인 이해를 가질 수 있으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또한 역으로 이런 식으로 보면 지난 역사의 논쟁에 대해서 새롭게 볼 수 있는 어떤 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제안도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새로운 규정에는 분명히 역사의 연속과 단절이 있습니다. 전통적 고교회주의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성찬례를 매주하는 흐름"과, 전통적인 저교회주의자들이 "성찬례"를 그리 강조하지 않고 하지 않았던 점들이 그 연속이라면, 단절은 성찬례에 대한 이해와 실천의 폭이 이전과는 달리 매우 넓어졌다는 것입니다.

    4. 존 웨슬리의 경우

    언급하신 존 웨슬리와 이른바 메소디스트(Methodist)의 경우는 대표적인 "저교회" 운동의 사례로 인용되곤 합니다. 그러나 사태는 훨씬 복잡합니다. 즉 역사적 사실과 그 이후에 발전된 행태들, 그리고 그 경험들과 관련된 해석들이 뒤범벅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단적인 예만 지적합니다.

    존 웨슬리 집안은 "고교회주의" 분위기가 매우 강했습니다. 그러나 영국의 전통적인 고교회주의자들과는 다른 "국왕 충성 거부자들"(Non-Jurors) 전통에 있는 고교회주의자였다고 하겠습니다. 이것이 웨슬리에 대한 이해의 핵심이기도 하고, 또 난점이기도 합니다. 그가 고교회적 전통에 있었다는 것은 그가 강조했던 당시의 고교회주의자들인 "국왕 충성 거부자들"의 신학과 로마 가톨릭의 신학에 심취했던 것, 그리고 특별히 고대 교회의 삶과 행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연구했다는 것을 통해서도 드러납니다. 그러나 이미 이러한 고교회주의는 영국 자체의 정치적 격변때문에 다양한 의미와 결을 갖고 있었습니다.

    존 웨슬리는 칼빈주의, 특별히 예정설에 적대적이었다는 측면에서 전형적인 영국의 저교회주의자들인 청교도들(퓨리턴)과는 달랐으며, 그의 신성 그룹의 주된 관심사는 어떻게 기도서를 실제로 사용하고, 이를 신앙적 영성적 훈련의 틀로 삼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별명이 메소디스트가 되었던 것이지요. 메소디스트라는 별명은 고교회주의자들이 아닌, 오히려 그들의 행태를 조롱했던 국교의 자유주의자들(전례적으로는 저교회주의자들)이었습니다. 게다가 그가 미국에 선교사로 갔을 때, 성공회-가톨릭주의자들의 선교회로 이해되었던 SPG의 후원을 받았습니다.

    전례 포럼과 세미나에서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만, 우리가 알고 있는 존 웨슬리는 대체로, 미국의 감리교도들에 의해서, 그들의 상황과 입맛에 '해석된 웨슬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특히나 한국 교계에서는 괴이하게도 '장로교적으로 해석된 한국식 미국 복음주의의 웨슬리'라는 긴 수식어를 통해서야 '한국에서 해석된 또다른 웨슬리'가 드러납니다. 이 대표적인 현상 가운데 하나가, 웨슬리의 '회심' 경험과 그에 대한 강조입니다. 이 점은 전통적인 "저교회주의자들"의 신학과도 여러모로 일맥상통하는 점이 많습니다. 어쨌든이 '해석된 웨슬리'도 여전히 '역사의 웨슬리'의 한 부분이긴 하겠지만, 전체는 아닙니다.

    최근의 웨슬리 연구서들은 이런 점들을 잘 지적하고 있다고 봅니다. 특별히 "회심" 강조 - 모라비안들의 영향, 결국 웨슬리는 모라비안과 결별했습니다만 - 의 신학에서 그동안 살피지 못했던 핵심적인 사상인 "성화" 강조의 신학으로의 전환이 현재 웨슬리 연구의 통설인 것 같습니다. (저는 웨슬리 전문가는 아니라서 더이상 자세하게 말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제 최근의 독서에서 나온 결론입니다.)

    그런 점에서 존 웨슬리에게 "저교회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이기는 곤란한 점이 많다고 봅니다. 오히려 영국 성공회 내의 복음주의자 그룹의 중요한 시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의 전통이 영국 복음주의 안에서 균일하게 이어졌던 것은 아닙니다. 다른 복음주의자들, 특별히 복음의 삶과 사회 정의에 관심했던 복음주의 전통은 이러저러한 연유에서 탈각되어, 좀더 개인주의화된 신앙적 신학적 조류로 발전되었고, 영국에서는 1920년대를 거치면서 매우 협소한 이해를 가진 전통이 되었습니다. (특별히 당시 이들의 성찬례 이해를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게다가 1960년 대 이후부터는 미국식 복음주의와의 관련 속에서 새로운 형태를 갖게 되었던 것이지요.

    5. 새로운 대화를 위한 논의 방향

    결국 이러한 복잡한 역사적인 정황들에 대한 생각과 고찰을 거쳐서, "그 역사적인 기원과 속성을 따져서 쉽게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저교회”는 성찬례를 매주일 하지 않는 교회 흐름이고, “고교회”는 성찬례를 매주일 하는 교회의 흐름입니다. 성찬례 거행의 스타일을 가지고 그걸 구분짓는 것이 아닙니다"라는 두 문장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 결론에 이르는 이 긴 설명을 생략하고, 이 두 문장으로 담아내려고 했던 것은 무리였겠고, 그리 친절한 자세도 아닌 것을 압니다. 하지만 아주 짧게, 그것도 본래의 논의에서 약간 벗아났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굳이 언급한 것은, 이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좀 할 수 있도록 자극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zinkoo님께서 물음을 제기하신 것은, 내심 바라던 것이었습니다.

    결국 어떤 신학적 논의가 어떤 대결을 벗어나서 좀더 창조적이 되고, 역사적인 몇몇 계기에만 얽매여서 아전인수하는 해석, 그리고 이 허약한 논의에 기대어 우리의 주장을 펴보려는 것에 대해서 한번은 되짚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무리한 줄은 알면서도 고민 끝에 그런 구절을 넣어 보았습니다.

    그냥 지나치지 않고 세심하게 살피고 문제를 제기해주신 zinkoo님 덕분에 제 변명을 보탤 기회를 가졌습니다. 이에 덧붙는 논의와 의견을 통해서 이 부분에 대한 이해가 좀더 깊어지고, 제 자신의 생각도 교정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면 합니다.

    많은 분들의 논평과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Tradition is living faith of the dead, Traditionalism is dead faith of the living."
    2008년 3월 25일 #
  2. ssyu1
    회원

    글 잘 읽었습니다.
    '저교회주의자'와 '고교회주의자'의 차이를 알기 쉽게 설명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 역시 '저교회'와 '고교회'의 개념을 받아들이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왔었습니다.
    가령, 우리가 일반적으로 '고교회'라고 부르는 한 특정한 교회안을 바라보면, 그 속에는 "이 교회가 이래서 '고교회'구나" 라는 생각보다는 훨씬 더 다양한 신앙적 성향과 입장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저교회'라고 불리우는 곳 역시 그러합니다.

    그렇다면 교회 형태상 '저교회' '고교회'의 구분은 무의미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다만 특정한 교회의 분위기를 이끄는 사람들이 고교회주의자들이냐 저교회주의자들이냐 하는 구분이 더 정확하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특정한 교회의 분위기를 결정짓는데에는 사제의 역할도 매우 큰 것임에는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궁금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최근 한국의 개신교안에서 새롭게 형성되는 분위기에 관한 것입니다. 주신부님께서도 다른 글을 통해서 말씀하셨듯이 최근의 많은 개신교회들은 예배안에서 성사적 차원과 전통적인 것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들이 성사의 전통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그것을 다시 회복하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제가 알고 있는 복음주의운동을 하고 있는 한 교회에서도 최근 일년에 두번(부활, 성탄)성찬례를 하는 것에서 매달 한번 성찬례를 하는 것으로 그 횟수를 늘렸으며, 또한 제가 누군가를 통해 전해 들은 교회에서는(그 교회 역시 복음주의적 성향을 가진 장로교임) 매주 성찬례를 한다고 합니다.

    그 몇몇의 교회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이들이 분명 저교회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이 성찬례의 횟수를 늘려가는 이유에는 우리가 바라는 대로 교회 안에서 성사와 전통을 회복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그들이 성찬례를 매주 혹은 매달 하는 이유중에는 최근의 개신교 신자수의 감소와 더불어 찾아온 교세의 위기를 보다 새로운 예배 방식을 통해서 해결해보려는 돌파구로써 인식하고 있다는 점도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정확히 진단한 것은 물론 아닐것입니다. 그러나 충분히 그럴수 있을만한 여러가지 모습들이 현재의 한국의 개신교 안에서는 발견되기도 합니다.(다른 예지만 현재 한국의 개신교에 열풍을 불고온 '영성운동; 이것 역시 복음주의 운동 안에서 활발히 활용되고 있음'은 철저히 그들에 의해서 교세를 늘이기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주신부님께서는 저교회와 고교회를 성찬례를 매주드리느냐에 따라 구분하실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 역시 위의 자세한 설명을 보고 신부님의 의도에 대해서 생각해 볼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교회주의자들이 성찬례를 매주 혹은 매달 드리는 것에 대한 해석은 다른 문제라 할지라도, 최근에 주로 나타나고 있는 저교회 안에서의 정기적인 성찬례의 거행은 또다시 저교회 고교회라는 구분법을 모호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2008년 4월 1일 #
  3. ssyu1
    회원

    다시 글을 올립니다.

    먼저 주신부님의 글을 제가 오해하여 글을 쓴 것에 대한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성공회 안에서 형성된 이해를 개신교에까지 확대하여 적용하려고 한 것은 분명히 오류임을 밝힙니다.

    보다 깊게 관찰하고 숙고한 뒤 글을 써야 했는데...(이래서 공부를 해야 합니다.^^;)

    아무튼 고교회, 저교회에 관한 논의에 참여하고자 하시는 분들께 혼란과 오해를 드려서 죄송합니다.

    위에 쓴 저의 글은 그저 '개신교 안에서 성찬례를 거행하려는 의도' 라는 문제제기쯤으로 보아주셨으면 감사합니다.

    위의 글을 당장 수정하려 생각했지만 당분간은 남겨두려합니다. 비록 제가 착각하여 글을 쓴 것이기는 하지만 또다른 논의점이 있기때문입니다.

    제안하기를, 여기에서는 계속 '고교회, 저교회'에 관한 논의를 하시고 다른 글을 통해서 저의 문제제기에 관한 논의를 이어가주셨으면 합니다.

    다시한번 혼란을 준점 사과드립니다.

    2008년 4월 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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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amedia

    회원

    ssyu1 님, 앞에서 제기하신 문제에 대해서 몹시나 고마워 하고 있는데, 갑자기 "오해"니, "혼동"이니, "사과"니 하시면 제가 더 혼란스럽습니다. (ㅎㅎ)

    ssyu1 님은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원래 제 글에서 좀 더 나가지 못한 점에 대한 지적이고, 두 번째는 이와 관련된 새로운 현상, 즉 개신교에서 전례에 관심을 갖는 현상에 대해서 어떻게 보느냐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제 생각으로 토를 달려는 참이니, 잠시 후 정리되는대로 시도해보겠습니다. (약 기운이 며칠 째 정신을 몽롱하게 해서 집중할 수가 없습니다만...)

    ssyu1 님은 정확하게 제 글의 명백한 허점, 혹은 마지막으로 해야 할 말이 빠진 점을 아주 정확하게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제는 더 이상 고교회, 저교회 구분이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변명 같지만 이 글도 그 결론을 내기 위한 한 과정에 있습니다 (실제로 저는 다른 분들과 이야기하면서 그런 구분법이 더이상 의미가 없다고 공언해왔습니다만).

    다만 제 안에 두 가지 고민이 있다는 걸을 이해하고 이 논의를 계속해 나갔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 글과 앞에 올린 "말씀과 성사"에 대한 글은 목적이 조금 다릅니다. 이 문제도 계속 논의를 통해서 드러났으면 합니다.)

    첫째, 최소한 "고교회와 저교회"에 관한 글에서 제가 관심하는 문제는 어떤 결론을 내릴 때, "결론적인 선언"만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그 결론에 이르는 과정을 갖추어야 그 결론이 실제로 힘을 얻겠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 대한 고민들은, 실제로 그 결론이 틀렸다 하더라도 이후에 다른 결론, 혹은 조정된 결론을 내기 위해 좋은 근거가 됩니다. 과정 자체의 오류나 자료를 지적할 수도 있고, 그 자체에서 뭔가를 배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포럼에서만은 "선언적 결론"을 유보하고 우리의 논의를 발전시켰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좀더 도발적으로 새로운 구분을 제시한 것은, 우리기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는 방식을 바꿔야 하는데, 거기에는 나름대로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근거를 부실하게나마 제시해봤고, 다른 분들의 참여를 통하여 좀더 논의를 풍성하게 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둘째, 이 구분법에 대한 재정의를 시도하고 뒤틀기를 해 본 또다른 이유는, 확실하지도 않은, 혹은 매우 피상적인 이해를 갖고 우리 교회 안에서 끊임없이 고교회-저교회를 대립시켜서 보고 있는 흐름때문이었습니다. 스스로를 "고교회주의자"라고 하는 분이든, "저교회주의자"라고 하는 분이든, 이 이해를 적용하는 방법이 비슷합니다. 이 점을 한번 되짚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거니와, ssyu1님의 결론은 제가 말하지 않은, 혹은 잠시 유보해 놓은 결론을 아주 분명히 드러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지우지 마세요!!!

    그나저나, ssyu1님이 제기하신 요즘 한국 개신교의 전통적 전례 도입 현상, 그리고 이른바 "영성 붐"에 대해서 여러분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시나요?

    2008년 4월 2일 #
  5. Cranmerian
    회원

    저는 ‘이제 더이상 저교회와 고교회의 구분은 필요없다’는 비아 메디아님의 결론에 반대합니다. 저교회적 성격과 고교회적인 성격은 그리스도교의 한 교파인 성공회의 태생적 특성입니다. 이 두가지 특징은 성공회내에 처음부터 자리잡은 것으로 이 두가지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고 어느 하나를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즉 이 두가지 요소는 성공회 교회안에 내재하는 것으로 구별이 있다면 어느 하나를 더 강조하고 덜 강조할 뿐입니다. 더구나 오늘날 우리 교회안에 이런 성향을 분명히 밝히는 분들이 있다면 더더욱 중요한 문제입니다.

    먼저 비아메디아님의 ‘말씀과 성사’라는 제목을 보다 정확하게 표현-좀 건방지더라도-한다면, 저는 평신도의 신앙생활 측면에서나 사목자들의 사목방침이란 면에서 ‘말씀중심의 신앙(사목)생활’과 ‘전례중심의 신앙(사목)생활’로 고치겠습니다. 여기서 전례란 성공회가 지정한 전례생활-최소한으로 공동기도서에 지정된 예배활동들-을 말합니다.

    다음으로 ‘고교회파’와 ‘저교회파’에 대한 정의의 문제입니다. 비아 메디아님의 지적처럼 두가지의 구분점은 ‘성직과 주교직 그리고 성사’에 대한 이해로 구별됩니다. 이 두가지 성향은 성공회 교파교회의 모태가 된 잉글랜드교회의 종교개혁때부터 시작됩니다. 즉 고교회나 저교회라는 용어는 17세기말에 사용되기 시작하였지만, 그 뿌리는 잉글랜드교회의 개혁시기에 비롯되었습니다. 즉 잉글랜드교회는 하느님의 절대적 구원능력-루터의 이신칭의-을 강조하는 신앙생활로의 전환을 실천하면서도 전통적인 전례생활을 상당부분 보존하였습니다. 문제는 종교개혁의 제2세대인 엘리자베스 후반기부터 제임스와 찰스시대의 교회에서 분명하게 구별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먼저 ‘성직’에 대한 이해에서 저교회파는 프로테스탄트신앙의 ‘만인사제직’을 따라 모든 신앙인은 중세처럼 ‘사제’의 중개를 받아 하느님의 구원은총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직접 상통하기 때문에 프로테스탄트 성직자는 평신도와 마찬가지지만 그 역할을 달리 할 뿐이기에 사제보다는 사목자(minister)라는 명칭을 사용하였습니다. 하지만 고교회파는 이와는 달리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별을 강조합니다. 더 나아가 중세시대와는 다르다 할지라도 성직자의 특권적(?) 성격을 주장합니다. 주교직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저교회파는 종교개혁가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성직의 등가성을 주장합니다. 즉 성공회의 경우 주교와 일반 사목자(오늘날의 주교와 신부)는 역할의 차이이지 신분의 차이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고교회파의 경우는 이 구별을 강조하고, 더 나아가 아마도 윌리엄 로드 주교의 시대처럼 주교직을 하느님이 직접 설립하였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성직과 주교직을 특히 강조하는 고교회파들은 성직자만이 집례하는 전례생활-특히 성사-을 특별히 강조합니다. 심할 경우 전례생활을 충실히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구원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저교회파들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당연히 말씀의 설교와 성서공부 , 성서의 말씀에 따른 신앙생활을 강조합니다.극단적일 경우는 성서의 문자적 적용을 강조합니다. 이들에게 교회의 구조나 전례는 상대적인 요소일 뿐입니다.

    이러한 구별은 이분법적인 것은 아닙니다.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강조점의 차이일 뿐입니다. 더구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전례와 말씀중 어느 하나를 더욱 강조하는 것은 상황판단과 선호도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기준-성직, 주교직, 성사에 대한 인식-을 대입한다면 보다 분명해집니다. 이러한 특성들은 새로운 시대적 상황에 따라 각 파들내에서도 여러 갈래로 분화됩니다. 문제는 이 분화된 갈래를 보고 고교화파로 또는 저교회파라고 못박는 행위는 잘못된 판단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목활동에서도 어느 한파만이 성공적이었고 실패하였다고 단정짓는 것도 잘못입니다.

    문제는 한국성공회내에 있다고 봅니다. 말씀과 전례라는 태생적 특성이자 모순(?) 또는 한계를 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여기에 각 교회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단순하게 평가하는 버릇입니다. 건방지게 말해서 한국성공회내에는 진정한 의미의 ‘고교회파’도 ‘저교회파’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즉 신앙생활에서 전례생활을 목 아프게 외친 성직자들이 얼마나 됩니까? 교인들에게 기도서가 지정한 전례생활을 철저히 지킬 것을 강조하고 교육하는 사목자들이 몇이나 됩니까? 하느님의 말씀을 강조하고 구원의 말씀을 성실히 공부하고 실천할 것을 교육시키고 강조하는 사목자들과 이를 지키는 평신도들이 얼마나 됩니까?

    저는 이런 분들이 전혀 없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소리없이 말씀과 전례의 균형을 유지하고 참다운 신앙생활을 강조하신 분들이 있었고 지금은 많은 분들이 계십니다. 여기서 이렇게 논의하는 것도 어찌보면 비참한(?) 현상황을 어떻게 타개할까라는 고민 때문에 좋게 말해서 남의 성공담이라도 배워보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씀과 전례가 성공회의 태생적 특성이라면, 이를 효과적으로 실현함으로써 신앙생활과 사목활동에 도움이 되는 길을 찾기를 기대합니다. 이는 아마도 각 교회의 상황에 따라 그리고 사목자의 성향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이 포럼에서 가능하다면 ‘사례연구’를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비록 과학적인 방법은 아니더라도 경험담을 근거로 논의할 수 있다고 봅니다.

    고교회파를 지향하든 저교회파를 지향하든 중요한 것은 먼저 신학적 토대를 확고히 하는 것입니다. 비록 현학적이라는 비판을 받더라도 이론적인 이해와 역사적인 이해는 필수적이며 사목활동을 더욱 끈질기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전통은 죽은자의 살아있는 신앙이요, 전통주의는 산자의 죽은 신앙이다’

    2008년 4월 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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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inkoo

    회원

    고교회와 저교회의 구분이 무의미하다는데 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Cranmerian 님의 생각에도 공감합니다. 제가 고교회와 저교회의 구분이 싫은 이유는 그 구분을 지음으로서 우리의 생각에서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것이지요. 결국, 두 분야가 다 중요한 것인데 그것을 양자택일로 보려는 자세 때문에 양쪽의 장점을 다 받아들이는 기회를 놓지기 쉽다는 것이지요. 물론, Crsnmerian 님의 말씀대로 강조점의 차이는 있지요. 그러나, 그렇다면 그것은 하나의 스펙트럼 안에서 어디서냐의 문제이지 고교회냐 저교회냐하고 단정지어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웨슬리의 경우는 좋은 예라고 생각합니다. 주신부님이 지적하신대로 그는 고교회 전통에 있었습니다. 모라비안의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모라비안을 크게 비판한 이유도 그들의 교회관이 잘못되었다고 믿었기 때문이고, 누가 그의 설교의 권위가 어디서 나오냐고 물었을 때 그는 "런던 주교가 나에게 손을 얹었을 때 나에게 생긴 그리스도의 권위"라고 대답함으로써 서품의 성사성 뿐 아니라 주교의 권위를 강조했습니다. 매주 성찬을 한 것도 (당시로서는 드문 일) 그가 얼마자 고교회적인가를 보여 줍니다. 그러나, 그는 필요에 따라 저교회 방향으로 움직일 줄도 알았습니다. 윗필드가 야외에서 설교를 하는 것을 처음 보았을 때 그는 그것이 매우 특이하다고 생각하며 거부했지만 결국은 자신도 야외에서 설교를 하게 됩니다. 메소디스트 운동의 초창기에는 그는 평신도 들은 설교를 못하게 금지했지만 운동이 커지자 평신도 설교가들도 설교하도록 허락합니다. 그리고, 미국에는 성공회 주교가 한 명도 없는 척박한 상황에서 자신이 직접 서품을 함으로 감리교가 탄생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찰스 웨슬리는 철저하게 반대했다는 점에서 찰스 웨슬리가 더 고교회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 부분에 대해서는 저도 동의하지 않지만 어쨌든 웨슬리가 고교회-저교회 구분에 얽매이지 않았다는 사실은 높이 삽니다. 저 자신도 어떤 부분에서는 고교회적인 신학을 갖고 있으면서 어떤 부분에서는 저교회적인 신학을 갖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런 구분을 하기 보다는 신학의 각론을 진지하게 토의하는 것이 더 옳다고 믿습니다.

    2008년 4월 1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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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amedia

    회원

    이야기가 싱겁게 끝났나요? 반응이 없어서 토를 한번 달아봅니다. 사람들은 싸움과 논쟁 구경하는 걸 좋아하니 그런 서비스를 한번 해볼까 하는 겁니다. (그런데 눈팅만 하지 마시고, 함께 이야기했으면 좋겠어요.)

    Cranmerian 님께서 "고교회"와 "저교회"에 대한 상세한 역사적인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매우 놀라운 식견이어서 많은 걸 배웠습니다. 특별히 역사적인 상황에 대한 사려 깊은 조사나 성찰없이, 기분과 선호도에 따라서 대충 어떤 편의 용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비판은 모두들 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다시 "말씀과 성사"에 관한 제 글과 관련해서, 저보다는 좀더 현장 감각을 갖고 그에 대한 논평을 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역사적인 맥락에 관한 설명에 대해서는 더이상 덧붙일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말씀과 성사"에 대한 이야기는 지난 번에 쓴 글의 생각을 고수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Cranmerian 님의 지적이 사람들에게 널리 퍼져 있는 생각에 더 가까이 있지만, 널리 퍼져 있는 생각에 들어 있는 그 구분에 대한 표현들과 인식들은 대체로 "16세기 종교개혁"의 방식과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그 대결적 상황에 나온 수사학 혹은 논리들이 그대로 남겨져 있다는 겁니다. 이 말은 다시, 16세기 종개개혁 이후, 특히 20세기 에큐메니칼 운동(교회 일치 운동)과 전례 운동의 성과들을 반영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제가 "말씀과 성사"라는 글에서 그 일반적인 구분법을 넘어서보자고 한 것입니다. 또 이런 이유때문에 이 구분법들에 관한 역사에서 "연속과 단절"이 있었음을 세심히 살펴야 한다고 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Cranmerian 님은 "저교회와 고교회의 구분은 필요없다"는 주장에 반대하신다면서도, 실제로는 잘못된 구분법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런 용어를 쓰면서 우리 교회를 어떻게 규정할까 하는 것보다는 우리 신앙 생활의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그 처지에서 "사례 연구"를 제안하시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바로 위에 쓰인 zinkoo 님의 글은 이 논의 고민과 더불어서, 그 내용을 잘 정리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웨슬리에 대한 추가된 이야기를 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08년 4월 22일 #
  8. Cranmer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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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inkoo님의 지적으로 저도 조금 자세히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즉 잉글랜드 국교회라는 스펙트럼내에서 고교회적인 성향과 저교회적인 성향이 함께 존재하면서 강조점의 차이이지 서로 상반된 개념으로 양자택일을 해야하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어느 교단이나 이러한 성향들은 존재하지만, 잉글랜드에서는 이러한 성향을 high church와 low church라는 명칭을 부여하여 사용하였고, 상대적으로 더욱 심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잉글랜드국교회의 전통을 물려받은 세계성공회와 대한성공회 역시 이같은 유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바로 이점 때문에 저는 ‘이제 더이상 저교회와 고교회의 구분은 필요없다’는 비아 메디아 님의 결론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학생의 입장에서 선생님을 반박하려니 밑천이 딸리고 다가올 불이익이 겁나지만, 고교회니 저교회니 하는 논란은 성공회가 존재하는 한 언제나 따라다닐 것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개념이라도 규정하고 써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앞으로의 논의에서도 논점을 정확하게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고교회적 성향과 저교회적인 성향의 개념을 어디서부터 규정할 것인가? 저는 이 용어가 태어난 시대를 기준으로 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앞에서 지적한 비아 메디아님의 기준-성직, 주교직, 성사-이 최소한의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비아 메디아님의 지적처럼 이후에 새로운 역사적 상황-새로운 문제제기나 위협-에 직면하여 이에 대처할 때 두 경향내에서도 여러 갈래로 쪼개졌기 때문에, 이 때부터는 이 용어의 일괄적인 적용이 어렵고 오히려 새로운 상황이나 사상에 직면하여 어떻게 변화되었는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zinkoo님이 말씀하신 웨슬리의 경우처럼(개심체험과 성령이라는 새로운 요소), 비아 메디아님이 논의의 확장을 노리는 전례운동과 에큐메니칼운동에 대한 대응에서도 저교회적인 경향과 고교회적인 경향내에 너무나 다양한 목소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다양한 갈래들중 어느 하나만를 선택하여 이를 고교회나 저교회라고 윤색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전개과정에 대한 이해가 더욱 중요하다고 봅니다만, 저는 자세히 모르기 때문에 비아 메디아님의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2008년 4월 2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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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amedia

    회원

    어떤 역사적 용어의 사용은 그 유래와 원래 의미와 더불어서, 그것이 현재의 시점에서는 어떻게 사용되고 어떤 의미로 변주되는가도 살펴 보아야 한다고 봅니다. 이 두 가지 일이 행복하게 만나는 경우도 있지만, 역사가 복잡할 수록 그 의미의 차이가 왜곡되고 변형되는게 심해서, 이에 대한 언급이 불필요한 혼란을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 한동안은 역사적인 신학적인 의미를 밝혀내는 일과 더불어, 이 과정에서 우리 현재에 적절하게 적용할 수 있는 안내를 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고교회와 저교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관심과 글은 바로 이 고민 선상에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이미 첫글에서 "고교회"와 "저교회"의 구분법 문제, 그리고 이 문제를 '우리 식'으로 바로보는 방법의 내용을 제안했습니다. 이는 분명 하나의 제안이고, 이 제안은 장래에 불필요한 이런 이분법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라고 봅니다.

    Cranmerian 님은 이런 구분법의 폐기 주장에 반대하고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만, 이런 구분법의 폐기는 제가 지금 당장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논의의 과정을 거친 후에 내릴 결론의 방향이라고 이미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실제로 '고교회'와 '저교회'의 역사적 맥락을 설명했고, 이른바 학문적인 수준에서 이에 대한 논의를 지속하는 한편, 우리의 사목 현장, 즉 성직자와 신자들이 이 문제를 바라보는 당장의 실천적인 관점을 제공하기 위해서 우리 현실에 맞는 고교회와 저교회에 대한 이해 방식을 제안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Cranmerian 님이 이후에 펼치시는 설명은, 제가 여러 번 지적한 "역사의 연속과 단절"이 어떤 단선적인 개념 규정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고 읽힙니다. 우려하는 바는 Cranmerian 님께서 고교회와 저교회의 역사적 유래와 그 특성에 과도하게 집중하는 탓에, 그 시각이 이후의 복잡한 역사 전개에 대한 이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듯 합니다.

    복잡한 역사 전개의 예는 이미 지적한 웨슬리의 경우도 그러하고, "고교회 운동"이라고 매우 단조롭게 지칭되어 오해가 깊어지는 '옥스퍼드 운동'에도 적용됩니다. 그 운동의 지도자 가운데 하나였던 존 헨리 뉴먼도 그 신앙적 배경은 실제로 영국 교회 내의 복음주의 흐름이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에 대해서 우리와 같은 후세대는, 우리 자신이 위대해서가 아니라, 역사라는 거인에 무등을 탄 채로 바라보기에 좀더 멀리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역사의 무등에 탄 난쟁이인 우리가 기대고 있는 중요한 어깨 가운데 하나가 바로 에큐메니칼 대화를 통한 그리스도교 전통에 대한 좀더 넓은 연구와 전례 운동을 통해서 제기되고 연구된 내용들입니다. 이 최근의 성과를 통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여전히 19세기의 논쟁 안에 머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p.s. 저는 어떤 식으로도 "선생"이 아닙니다. 저 역시 밑천이 없으니 이런 동네를 만들어서 듣고 배워보자는 겁니다. 또한 제가 생각하지도, 할 수도 없는 "어떤 불이익"에 대해서는 겁내지 않으셔도 됩니다. ㅎㅎ

    2008년 4월 24일 #
  10. Cranmerian
    회원

    비아 메디아님은 고교회파와 저교회파와 관련하여 ‘우리식’의 새로운 이해를 추구하면서, 성사에 대한 강조점과 그 실천과 관련하여 < ‘고교회’는 성찬례를 매주하는 흐름이고, ‘저교회’는 그렇지 않은 ‘흐름’이라고 보면 좀 더 분명하면서 포괄적인 이해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통해서 과거의 역사를 새롭게 볼 수 잇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과거와의 단절로 성찬례에 대한 이해와 실천의 폭이 크게 확장되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앞에서 말씀과 전례(성사)를 성공의 태생적인 특징이라고까지 했습니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저교회파와 고교회파의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에 대한 개념규정을 16-7세기에 집중한다고 해서 이후의 전개과정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고교회파와 저교회파를 성공회라는 하나의 스펙트럼안에 있는 경향성을 나타낸다고 하였읍니다. 덧붙인다면 이 둘의 중간지대는 오히려 이들보다도 더 넓게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두가지 성향은 복합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분명하게 구별지을 수 없을 때도 있고 동시적으로 존재할 수도 있기 때문에 어떤 성향을 더 강조하고 덜 강조하였느냐라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고 봅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 두가지의 극단적인 성향을 마치 이 두가지 성향의 대표인 처럼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비아 메디아님의 지적처럼 ‘단선적인 개념규정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문제는 잘못된 이해나 교단정치적인 이용을 올바른 이해를 통해서 극복하자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사와 관련하여 비아 메디아님의 고교회와 저교회의 구분법(위의 요약에서)은 또다시 이분법적인 이해를 시도하여 본질을 흐뜨린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구분은 지나친 단순화이고, 성사의 신학적 의미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20세기 이전에 고교회파 성향의 성직자들은 성찬례를 잉글랜드 국교회가 규정한 수보다 자주 거행하였으며, 저교파성향을 포함한 대다수의 교회들은 국교회가 규정한 수(일년에 4번)만큼의 성찬례를 거행하였습니다. 고교회파 성향의 성직자들이 집례하는 성찬례에 모든 신자들이 다 참여했던 것도 아닙니다. 당시 성찬례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그 전에 자기 나름대로의 신앙적 성찰을 먼저 요구했습니다. 이 때문에 평신도들중 일부만이 자주 참여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당연히 성찬례를 통해서 하느님의 구원의 은총을 받는 것이기 때문었습니다.

    20세기의 전례개혁운동과 교회일치운동의 성과를 수용하여 매주일 성찬례를 거행하고 전례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수용하는 것과 고교회와 저교회적인 성향과의 관련성을 직접적으로 연관시키는 것은 지나친 것이 아닌가 봅니다. 세례와 성찬례에 대한 초대교회들의 삶과 경험을 수용하는데 두 경향의 차이점은 있을 수 있어도, 이 결실의 수용 여부로 구분할 수 없다고 봅니다. 오히려 입교례(initiation, 오늘날의 세례와 견진, 성찬례참여을 하나로 묶은 것)를 수용하기 주저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고교회적인 성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특히 성찬례의 경우, 오늘날 우리교회에서도 차별화(?)를 위하여 명칭까지 새로이 만들고 있습니다만(좋은 의미라도), 전례학 개론이나 초대교회의 삶에 대한 개론서만 읽어봐도 신앙의 선조들이 드렸던 예배 자체가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를 하나로 묶은 예배였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이것이 곧 우리들이 따라야 할 예배이지 무슨 특별한 예배인 것처럼 이름을 만들어야 하는지 안타깝습니다.

    성사와 관련하여, 성사에 대한 신학적 이해도 여기에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저교회파와 고교회파와의 구별에서 성사를 ‘높게’그리고 ‘낮게’보려는 이해를 하나의 기준으로 지적했습니다. 물론 이들은 모두 성사를 좁게, 교회가 규정한 성사들만을 생각하였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오늘의 우리들은 이렇게 좁게 규정할 수 없다고 봅니다.

    다음으로 이 모든 논의들의 뒤에 숨어있는 ‘현재 우리들의 교회 상황’에 대한 서로 다른 평가입니다. 이 논의에서 명확하게 드러나지않고 있습니다만 토론의 참여자들이나 관중들은 나름대로의 평가를 갖고 있다고 봅니다. 저 역시 오히려 이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앞에서 사례연구를 제안하였습니다.

    2008년 4월 2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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